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6화 (1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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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15)

다시 사는 천재 작가 15

집에 돌아와 지훈이 톡으로 보내준 링크를 따라 들어갔다.

재일교포 커뮤니티의 뉴스 란 메인에,

내 이름 ‘이상’이 있었다.

<한국의 신인 작가 이상, 한국 문단을 바꾸려 하다>

기사엔 내 등단의 표절 해프닝, <세사노>에 대한 설명, 논란이 된 수상 소감, 그리고 홈페이지 주소까지 나와 있었다.

그 덕에 <세사노> 일본어 번역 페이지의 조회수도 급등했다.

하루 만에 삼천 회.

생각지도 못한 쾌거였다.

커뮤니티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등단 제도는 꽤 어렵다던데, 그걸 뚫고 작가가 된 거지?

-그렇지. 천재 이상의 이름을 본 따서 필명을 지었네.

-소설이 좀 신기해. 묘한 기분이 들게 한 달까? 번역도 훌륭하네. 누가 한 걸까? 수준급인데.

-약간 옛날 말 같긴 한데, 괜찮네.

-그거 알아? 번역 있잖아, 작가가 직접 했대.

-뭐? 대단하잖아.

-이 작가, 일본인 할아버지랑 사는 거 아냐? 조금씩 그런 말투가 보이는데.

-그런 거 차치하고서라도 이 소설, 대단한 건 분명해.

-내가 자주 가는 일본 커뮤니티로 퍼 나를래. 교포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나도. 한국 작가여도 일본에서 유명해지는지 한번 보자고.

“일본인 할아버지와 사는 것 같다...라고...흠.”

역시.

1930년대에 멈춘 내 일본어는 아직 완벽하게 현대적이진 않다.

재일교포들이 내 글에 관심을 가져준 건 좋지만,

일본어 공부가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우웅-우웅-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대학교 국문과 학과장 김진하입니다.

학과장.

한 과의 교수들 중 수장의 역할을 하는 교수를 뜻했다.

우리 과의 경우는 원로교수인 송 교수가 맡고 있고.

음...올 것이 왔군.

“예, 안녕하세요. 이상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상 선생님. 그...저, 다름이 아니라 저희 한국대 국문과 교수진들이 오늘 조인창 선생님께 다음 학기 특강을 이상 선생님께 넘긴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조인창 교수님께서는 이상 선생님을 적극 추천했으나, 저희 입장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강의 자리를 줘야 하는 제자와 후배들이 줄을 선 처지라서...

되도록 한국대 출신을 쓰고 싶다 이거다.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인수대학교라는 내 출신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

하지만 나도 그냥 꼬리를 내릴 순 없다.

이건 조인창 교수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네. 어떤 입장이신 줄은 압니다. 하지만 저는 이야기가 다 된 줄 알고 타 학교에서 제가 맡기로 한 수업을 캔슬했는데요.”

물론 거짓말.

지금은 세게 나가야 할 타이밍이다.

-허, 참...난감하군요.

“예. 제게도 난감한 일입니다.”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쪽에서 대안을 내놓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일단 저희가 다시 한 번 얘기해보겠습니다. 혹시 교양 강의 자리라도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지.

그런 자리가 있으면 한국대 출신들을 넣으면 그만 아닌가.

왜 적선하듯 교양 강의를 쥐어주고 나더러 물러나라는 거지?

“아뇨. 피차 곤란한 상황이니 같이 말씀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한국대 쪽으로 가죠.”

-네? 선생님께서요? 흠...

“제가 가면 안 되는 자리인가요? 아니면 제가 조인창 교수님께 상황을 좀 설명해보죠.”

-아, 아닙니다. 오십시오. 내일 저녁이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학과장이라도 조인창 교수는 무서운 모양이군.

“좋습니다. 6시쯤 찾아뵙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오십시오.

이놈의 학연...

학교마다 학풍이라는 게 있다.

그 학풍이 적절히 섞여야 학문이 더 발전되기에, 원칙적으로는 타학교 강사와 교수를 적극 초빙해야 한다.

하지만 이놈의 대학들은 대부분 이런 꼴이다.

자기 제자들 밥그릇 챙기는 일에만 급급하지.

“6시라... 내일 일정이 빠듯하겠네.”

나는 달력을 찢었다.

벌써 3월이었다.

말인 즉슨,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단 뜻이었다.

***

“학기 첫 날부터 합평수업이라니, 너무 끔찍하지 않아요?”

지훈이가 궁시렁거렸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강의실로 가는 중이었다.

“어차피 오리엔테이션이니까 금방 끝나잖아.”

“그래도요. 오늘 합평 순서 정할 때 또 얼마나 기싸움을 해댈지...벌써부터 기 빨린다니까요.”

그건 그랬다.

합평 수업의 첫 시간은 그 학기의 합평 순서를 정하게 되어 있다.

그래야 학기가 안정적으로 굴러가니까.

문제는 오희라와 패거리들이었다.

후배들이 좋은 자리를 배정하면,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를 빼앗았다.

김한도 비슷한 짓을 하긴 마찬가지.

그나마 김한이 없는 게 위안은 위안이지.

우리는 강의실로 들어갔다.

“혜경아, 안녕.”

“혜경 선배, 안녕하세요.”

“혜경아~ 방학 잘 보냈어?”

“너 이번 학기에도 사무조교 하는 거야?”

다들 우르르 몰려와서 한 마디씩 말을 걸었다.

그들의 속내야 뻔했다.

‘등단을 했으니 친하게 지내자, 난 널 무시한 적 없어.’

그 꼴을 본 지훈이 질린다는 얼굴로 자리를 잡았다.

“네네, 잘 지냈어요. 비켜주세요.”

나도 그들을 슬쩍 피해서 지훈 옆에 앉았다.

지훈이 내게 속삭였다.

“드럽고 치사해서 진짜...나도 빨리 등단을 하던가 해야지.”

“너, 비평 써보라니까?”

“안 그래도 생각중이에요.”

“오, 그래? 어떤 작품으로.”

“비밀이에요. 다 쓰면 알려줄게요. 다른 사람들한텐 비밀이에요. 윽...오 선배 와요.”

오희라와 무리들이 강의실로 들어왔다.

그녀들은 나를 슬쩍슬쩍 노려보았다.

보아하니 카페테리아에서 실컷 내 욕을 했겠군.

아무튼 잘 됐다.

그 같잖은 콧소리를 더는 안 들어도 된다니.

그들 바로 뒤에 이현강과 장선미가 도착했다.

오희라 무리들이 이번에는 장선미를 노려봤다.

자기 패거리에서 나가 조교씩이나 된 게 아니꼽다 이거지.

하나같이들 유치해서 못 봐주겠다.

이현강은 학생들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방학동안 잘 지냈나. 다들 신춘문예 투고하느라 고생 많았어. 그리고-”

이현강이 날 보았다.

“당선이 된 사람도 운이 좋았음을 잊지 말고 오만에 빠지지 말도록.”

문창과에서 등단은 가장 축하받을 일이다.

그 축하에 앞장서야 할 사람은 스승인 교수고.

어째 이현강은 날이 갈수록 사람이 치졸해지는군.

“이번 학기 합평 순서를 정해야겠지.”

조용했다.

합평 순서는 전적으로 이현강의 마음이었다.

다만, 사정이 있다면 학생들끼리 순서 교환은 가능했다.

“일단 다음 주는 신입생 오인나와... 김혜경이 하지.”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첫 번째 합평의 의미는 남다르다.

신춘문예에서 떨어졌다는 히스테리와 새 학기의 열정이 뒤섞여 모두가 가장 열심히 합평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물론, 합평자의 입장에선 그저 ‘욕먹는 시간’.

게다가 소설을 준비할 시간도 충분치 않으니

학기 초반의 합평은 주로 입지가 약한 신입생들이 맡는다.

등단자에게 첫 번째 합평을 시킨다는 것.

그것은 내가 얼마나 이현강의 눈 밖에 났는지 잘 알려주는 증거였다.

하지만 상관없다.

다음 주면 <부활>이 마무리된다.

자신 있다.

“네. 알겠습니다.”

“자신 있나보군.”

나는 대답대신 미소를 지었다.

강의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두고 보지. 자 계속해서 그 다음 주는...”

이현강은 즉석에서 한 학기의 합평 커리큘럼을 다 짰다.

“오리엔테이션인데 오래 할 것 있나.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수업이 끝나자 오희라는 벌써부터 제 순서를 바꾸려고 혈안이었다.

오희라의 합평은 한 달 뒤.

소설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다만 당장 소설을 준비하기도 귀찮고 준비해놓은 소설도 없는 거겠지.

“한 번만~ 너는 모범생이라 소설 이미 있잖아.”

“아, 아니에요, 언니...저도 이제 써야 해서.”

“얘, 언니는 애가 이제 중학교 가. 얼마나 바쁜 줄 아니? 같은 여자로서 그것도 이해 못 해줄 거야?”

“맞아, 언니한테 양보 좀 해줘. 한 달이면 할 만하잖아.”

“아...그게....”

불쌍한 신입생 한 명이 오희라에게 잡혀 있다.

못 본 척 하려 했는데, 예전 날 혜경이 떠올랐다.

혜경은 저런 식으로 오희라에게 순서를 빼앗겨 되도 않는 소설로 합평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합평에서 제일 신나서 질타를 한 게 오희라였고.

“저기요.”

나는 난감해하고 있던 학생을 불렀다.

그녀는 구세주를 만난 듯 내게 왔다.

“네. 혜경 선배.”

나는 오희라 무리에겐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바꾸지 말라고 했다고 말해요.”

“네?”

“김혜경 선배가 이현강 교수님을 너무너무 존경해서, 수업 기강 해칠까 봐 엄청나게 눈치를 보고 있다고요. 그래서 마음대로 순서 바꾸면 내가 학생 가만히 안 두겠다고 협박했다고. 그렇게 말해요. 김혜경이 겁나서 못 바꾸겠다고.”

“...그렇게 말해도 괜찮을까요?”

“물론 학생의 용기도 필요하겠죠.”

용기.

그 말에 여학생이 가만히 입술을 물었다.

그리고 결연하게 돌아 서서 오희라에게 내 이야기를 열심히 전했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등단만 하면 다야?”

오희라는 들으란 듯 궁시렁거렸다.

하지만 정작 ‘등단만 하면 다’라고 생각한 건 그쪽이었는지

그대로 강의실을 나가버렸다.

나와 지훈이도 슬슬 가려던 참이었다.

“저기-혜경 선배님.”

이현강과 함께 나갔던 장선미가 다시 강의실에 돌아왔다.

“왜요?”

“교수님께서 찾으시는데요.”

이현강이?

장선미를 따라서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이현강이 흡연실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어. 시킬 게 있어서.”

“네. 어떤 일이시죠.”

“학과 개편 보고서. 다음 주까지.”

“네?”

학과 개편 보고서.

한 마디로 과의 비전을 계획한 총체적인 보고서다.

학생, 인사, 교과 모든 것을 통괄하는 어마어마한 작업.

지금부터 시작해도 다음 주까진 절대 못 끝낸다.

“교학팀에서 학과 개편이 있단 얘긴 못 들었는데요.”

“우리 과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려고. 교학팀 쪽에서 먼저 완성하면, 그걸로 교수들끼리 협의할 거야.”

“...다음 주 까지 말입니까?”

“그래. 진행 해. 그러라고 조교 뽑은 거 아닌가?”

이현강은 담뱃불을 끄고 유유히 떠났다.

그의 의도야 뻔했다.

소설 합평을 시켜놓고, 정작 쓸 시간을 안 주겠다는 뜻.

써놓은 소설이 있다 해도 마지막 퇴고를 할 기회를 빼앗는 거고.

<부활>은 초고를 한 번 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어설픈 부분이 있어 퇴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걸 어쩐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몇 걸음 떨어져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지훈이 다가왔다.

“형, 오늘 어디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 그랬지.”

한국대.

한국대에 가서 교수들을 만나야 했다.

“슬쩍 들어보니까, 학과 개편 보고서? 혹시 그거 쓰라는 거예요?”

“맞아. 영문과는 그런 거 없지?”

“학기 중에 그런 거 절대 안 시키죠. 그리고 일주일 안에 그걸 어떻게 써요? 아무리 그게 조교와 사무원 일이라고 해도.”

말을 듣다보니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이건 금홍이의 일이기도 하구나.

괜히 나에게 엮여서 귀찮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 순 없었다.

“일단 저도 좀 도울게요. 일단 양식을 찾고,”

“아니야, 지훈아. 하지 마.”

“네? 하지만...시간이 없잖아요.”

“...생각이 있어. 일단 넌 모르는 거로 해. 금홍 선생님한테도 일단 말하지 말고. 형 먼저 갈게.”

이건 그냥 내 시간을 뺏기 위한 이현강의 심술이었다.

괜한 일에 다른 사람까지 힘을 뺄 이윤 없지.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의미 없는 보고서 따윈 절대 쓰지 않을 작정이다.

***

한국대학교는 인수대학교와 서울의 정 반대편에 있었다.

지하철을 한 시간이나 타고 도착한 한국대학교는 무지막지하게 컸다.

심지어 학교 안에 버스가 다니다니. 충격이었다.

어쨌든 나는 버스를 잡아타고 용케 인문대학을 찾아갔다.

인문대학 건물 1층.

국문과 사무실에는 조교들로 보이는 이들이 가득했다.

멀뚱히 서있으니,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아, 예. 국문과 교수님들을 뵈러 왔는데요.”

“어머! 혹시 이상 선생님이세요?”

그 한 마디에 시끌벅적하던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곳의 모든 이들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 이상입니다.”

사람들이 슬금슬금 내게로 다가왔다.

천연기념물 도롱뇽을 보는 듯한 눈으로.

저들의 시선을 보아하니 국문과 사무실을 제대로 찾아오긴 한 것 같다.

“와...진짜 이상이다.”

“신기해.”

“아, 악수해도 되나?”

“저 정말 팬인데... 다음 소설은 언제 나와요?”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대답했다.

“음...일주일 후면 나올 것 같아요. 그런데 교수님들은 어디 계시죠?”

“아, 국문과 회의실에 계세요. 절 따라오세요.”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 조교가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향해 손을 훠이훠이 내저었다.

“다들 할 일들 해. 내가 모셔다드릴 거야. 선생님은 절 따라오시죠.”

조교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얼른 그를 따라 나갔다.

이런 식의 날것의 인기는 낯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회의실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남자 조교가 내게 슬쩍 물었다.

“저희 학교 문학창작 특강 강의를 하실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맞나요?”

“글쎄요. 저도 그러길 바라고 있어서요.”

“저는 국문과 사무조교예요. 특강 조교도 맡을 예정이니 잘 부탁드려요.”

나도 사무조교인데.

조교에게 조교가 붙는 상황이 좀 웃기긴 했다.

“그럴게요. 조교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차한승입니다.”

한승 조교는 씩 웃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예요. 노크해드릴게요.”

한승 조교가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커다란 회의용 탁자에 일곱 명의 교수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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