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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15화 (1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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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14)

다시 사는 천재 작가 14

“나 대신 강의에 좀 나가줘야겠네.”

“네? 강의라 하시면...”

“한국대 ‘문학창작 특강’ 말이네.”

당황스러운 제안이었다.

갑자기 강의라니.

게다가 한국대학교 문학창작 특강은 조인창 교수가 수십 년간 이어온 명강의로 유명하다.

1930년대에는 교수나 선생이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2021년에는 작가들이 교수가 되고 싶어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안정적으로 창작을 하고 싶으니까.

안정적 기반이 있어야 오래 창작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보니 불쾌한 주객전도가 생긴다.

교수가 되기 위해서 글을 쓰는 작가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김한 같은.

그래서 김한은 경력을 쌓기 위해 글쓰기보다 대학 강의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내가 김혜경의 몸에 들어와 이러한 정보를 받아들였을 때,

나는 다짐했다.

절대로 교수를 목표로 글을 쓰지 않겠다고.

글을 쓸 시간을 강의로 낭비하지 않겠다고.

“음...저는 강단에 설 능력이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나는 돌려서 거절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갓 등단한 신인 작가가 한국대 특강을 맡는다는 것도,

신인 작가 주제에 그런 엄청난 자리를 거절한단 것도.

“자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겠지.”

“....”

“그러니 부탁한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말 잘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치게 많아. 하지만 자네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찾기 힘들지.”

“....”

“올라가서 아무 말도 안 해도 상관없네. 자네를 보는 것만으로도 수강생들에겐 영광일 테니.”

“하지만 저는 박사과정 중의 학생에 불과한데요. 또...한국대 학생도 아니고요.”

“알아. 한국대 국문과 교수들도 내켜하지 않을 거야. 그들도 다 강의가 고픈 제자와 후배들을 줄줄이 달고 있겠지. 하지만 내 강의의 후임자는 내가 정하네. 자네에게 조인창의 추천이라는 힘을 실어주지. 그걸로 부족하겠나?”

...솔직히 말하면 흔들린다.

한국대.

그곳 공대의 전신이 바로 내가 나온 경성보통고등학교다.

말할 것도 없이 한국 최고의 대학.

한국 최고의 대학의 문학청년들의 얼굴이...궁금했다.

또,

조인창 교수의 부탁이라면 들어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순호의 아들이 아닌가.

“어떤가?”

“...좋습니다. 해 보죠.”

“잘 됐군. 강의는 돌아오는 학기부터 시작이야. 1주일에 1회, 2시간씩이지. 커리큘럼은 자네가 알아서 해. 특강이니 점수를 줄 필요도 없어.”

“네, 교수님.”

“자네 덕에 한 짐 덜었군. 슬슬 내 신변을 정리하는 중이라서 말이야.”

조인창 교수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곧 사라졌다.

“후우....”

그가 얕게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교수님?”

“며느리를 좀 불러주게.”

조인창 교수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몸이 좋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아, 네.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가는 길에 며느님을 불러드리겠습니다. 부디...쾌차하십시오.”

얼른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때, 하얗고 주름진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교수님?”

“자네 같은 작가가 세상에 나와서 다행이야.”

조인창 교수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

조인창 교수와의 만남.

그것은 그 자체로 마술과도 같았다.

그는 1933년에 태어나 2021년에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탄생과 죽음의 시절에 함께했다.

언제나 젊은 20대의 이상으로서.

이 사실은 내게 충격적인 영감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변하지 않는 존재.

늙지 않는 존재.

시간을 거스른 존재...

생각의 끝에, 한 가지 제목이 떠올랐다.

<부활>

올드한 단어다.

하지만 본질적이며, 강렬하다.

나는 다짐했다.

다음 소설의 제목은 <부활>이다.

그리고 조인창 교수와 나의 만남을 은유적으로 담을 것이다.

***

교학팀 사무실에서 곰곰이 소설 구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훈이 내 자리로 찾아왔다.

“형, 홈페이지 ‘잡문’ 메뉴엔 결제 시스템 안 해요?”

“거기는 무료야. 한 장도 안 되는 쪽 글들인데.”

“그래도요. 이름도 좀 바꿉시다. 잡문이 뭐예요. 멋없게.  ‘에세이’로 바꾸는 게 어때요?”

“잡문이란 단어 좋잖아, 유머러스하고 부담 없고. 보는 입장에서 부담되지 않는 게 진입장벽도 낮추고 좋아.”

“그래도 조회수가 어마어마한데. 요즘 평론들, 형 홈페이지 글에서 인용 잔뜩 해가는 거 알아요?”

모를 리가.

요즘 나오는 문학잡지에서 내 이름 안 찾는 게 더 어렵다.

그게 비난이건 칭찬이건.

“어제 잡문에 올린 짧은 글, 번역도 해서 주세요. SNS에 올리게.”

“아, 그거 안 줬나? 미안해. 지금 해줄게.”

“뭐 재밌는 거 하나 봐요?”

가만히 듣고 있던 금홍이가 슬쩍 물었다.

지훈이가 이러쿵저러쿵 홈페이지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러자 금홍이도 슬쩍 아는 척을 했다.

“저도 홈페이지 들어가 봤어요. 일본어로 된 거, 혜경샘이 번역한 거였어요?”

“네, 뭐...해줄 사람이 없다 보니까요.”

“지금 영어 번역자 구하는 중이에요. 금홍 샘 영어 잘 해요?”

지훈이가 물었다.

금홍이는 선뜻 대답을 못 했다.

하긴, 금홍이도 문창과니까 영어는 약하려나.

“못...하진 않아요. 번역 정도는 할 수 있는데. 영문과 복전했거든요.”

...뭐라고?

당장 합시다.

“그럼-”

“혜경 선생님!”

누군가 뒤에서 날 불렀다.

장선미였다.

“홈페이지 얘기 하고 계셨어요? 저 거기 팬인데.”

“아, 네. 무슨 일이세요?”

“이현강 교수님께서 연구계획서 폼 달라고 하셔가지고요.”

“찾아서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일 다 봤으면 좀 가라.

금홍이와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아까...영어 번역자 구하시는 것 같던데.”

“어? 선미 너 영어 잘 해?”

송지훈. 오늘따라 눈치가 없구나.

“오빠, 저 유학 갔다왔잖아요. 혜경 선생님, 저 쓰세요. 저 잘 해요.”

”고맙지만 괜찮아요.”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금홍 선생님께서 해주실 거예요.”

금홍이가 장선미의 눈치를 살짝 본다.

흠, 그러고보니 장선미가 금홍이의 선배였지?

장선미가 한 마디 더 했다.

“선배, 저는 무급으로 해드릴 수 있는데...”

아니, 돈은 상관없다.

내가 돈을 줘서라도 금홍이가 해줬으면 하니까.

금홍이가 거절한다 해도 장선미에게 내 글을 맡길 생각은 없다.

장선미는 방금 우리의 대화를 들었다.

금홍이가 번역을 할 의사가 있다는 걸 눈치 채고도 그 자리를 뺏으려 하다니.

하지만 우리의 금홍인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럼 제가 하죠. 물론 저는 돈 받을 거예요.”

“좋네요. 그럼 장선미 조교님, 연구계획서 외에 또 준비해드릴 게 있나요?”

“...아뇨. 그거면 돼요. 감사해요, 선배님.”

장선미는 어색하게 웃더니 얼른 사무실을 나갔다.

지훈이 내게 슬쩍 물었다.

“형...선미 싫어해요?”

“넌 오희라는 싫어하면서 쟤는 괜찮냐?”

“상냥하잖아요. 예의바르고. 비꼬는 것도 없던데?”

“우리한테만 안 그러는 거야, 우리한테만.”

금홍이에겐 분명 무례하게 굴었잖아.

게다가 우리들은 눈치 채기 힘든 교묘한 선에서.

“...그런가...아무튼, 그럼 금홍 선생님이 번역해주시는 거죠?”

“맡겨주시면요. <세사노>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언제부터 모두가 내 소설을 <세사노>라고 부르게 된 걸까.

“네. 부탁드릴게요. 일단 천천히 해주세요.”

나는 금홍이에게 번역료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지훈과 똑같이 오십을 주면 형평성에 어긋나니, 일단 편당 삼십으로. 물론 잡문 번역료는 따로 지급하고.

얘기가 끝나갈 무렵, 금홍이가 말했다.

“방금, 감사했어요.”

“뭐가요?”

“장선미 조교님이요.”

“아. 짜증났죠.”

“항상 미묘하게 굴어요. 남 뒷담화는 하고 싶지 않지만...”

“않지만?”

“저 선배, 제가 김한 선배와 사귈 때부터 제 얘길 많이 하고 다녔거든요. 헤어진 후에는 좀...안 좋은 방향으로?”

“어떤 타입인지 알 것 같네요.”

이 세상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있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호감을 느끼거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불쾌를 느끼는 사람.

혹은 그 반대의 경우들.

요샛말로 무슨 ‘마음의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엮여서 좋을 것 없다는 거다.

다시 사무실의 평화가 찾아왔다.

슬슬 <부활>의 내용이 잡혀가고 있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그 장면 안에 한 남자가 태어난 시간과 죽는 시간이 조각조각 이어진다.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그리고 그 두 시간을 오가는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로, 죽어가는 남자를 다시 탄생으로 되돌린다.

삶과 시간의 의미를 함께 통찰할 수 있는 주제의식과, 조각보같은 시간을 뒤섞는 스타일.

제대로만 써진다면...둘도 없는 작품이 될 것이다.

“형, 퇴근 안 해요?”

지훈이가 날 불렀다.

벌써 여섯 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설만 구상했군.

조교와 사무원들과 함께 사무실을 나왔을 때였다.

“저기, 혜경 선배님...”

누가 날 부르나 했더니, 장선미였다.

그녀는 사무실 문 앞에 서있었다.

“...왜요?”

“저기,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요.”

“어...형, 난 먼저 갈게요.”

지훈이가 눈치를 보고는 혼자서 가버렸다.

“무슨 일이에요? 저 퇴근했는데.”

“그게...이쪽으로.”

장선미는 나를 또 비상계단으로 데려갔다.

뭐야. 바빠 죽겠는데.

“뭔데 이러세요.”

“...흑...”

...왜 울어?

장선미는 밑도 끝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쎄한 느낌이 올라온다.

잘못 걸린 것 같다.

“...왜 우세요?”

“선배님, 선배님이 저 싫어하시는 거 알아요.”

그건 그렇지.

“제가 희라 언니랑 같이 어울려서 그런 거잖아요. 하지만 입학하고 언니가 너무 잘 해줘서 커피 몇 번 마신 게 다예요. 그 언니, 이상한 거 알고 난 뒤론 함께 어울리지도 않아요.”

하고 구슬프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다.

누가 보면 오희라랑 놀았다고 혼낸 줄 알겠네.

“오 선배 때문인 거 아닌데요.”

“네?”

장선미가 울음을 뚝 그치고 날 봤다.

예상했던 대답이 아니었겠지.

이 여자의 계획대로라면,

‘제가 왜 선미 조교를 싫어해요. 안 싫어해요. 제발 울지 마세요.’

등의 말이 나오길 기다렸을 테니.

그러면 ‘하지만 번역 일도 금홍이에게 맡기고...’라고 말 끝을 흐릴 테고.

물러터진 남자라면 결국 번역을 장선미에게 맡길 거다.

...한심할 정도로 얕은 수.

“전 장선미 조교님한테 아무 감정 없어요. 좋을 것도 싫을 것도.”

“....”

“그러니 그냥 편하게 조교 일 보세요.”

“선배님, 혹시 금홍이가 제 얘길 하던가요?”

여기서 갑자기 금홍이 얘기가 왜 나와?

금홍일 걸고넘어지지 말라고, 한 마디 해주려던 참이었다.

우웅-우웅-

전화가 울려댔다.

지훈이었다.

그새 무슨 일이지?

“여보세요.”

-형. 아직도 선미 만나고 있어요?

“아니. 이제 헤어졌어.”

나는 장선미에게 이만 가보겠단 의미로 고개를 한 번 까딱하곤 비상계단을 나섰다.

“무슨 일이야?”

-형, 대박이에요!

“뭐가?”

-형이 일본어로 번역한 <세사노>, 재일교포들이 보는 한인 뉴스에 소개됐나 봐요!

“정말이야? 어쩌다가?”

-재일교포 기자가 기사를 썼대요. 한국으로 출장 왔다가 형 등단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봐요.

혹시나 하고 일본어 번역을 했는데...

일이 이렇게 풀릴 줄이야.

“그 뉴스, 메이저야?”

-교포들 사이에서는 Y일보랑 비슷한 급의 일간지예요. 일본어 버전도 있어서, 일본인들도 적잖이 읽고요.

“우리 홈페이지는 소개 됐고? 그게 제일 중요해.”

-당연하죠. 형 이러다가 월드 스타 되는 거 아니에요?

지훈이 낄낄거렸다.

“그래. 그렇게만 되면 내가 너 월급 올려준다.”

-됐어요. 지금도 감지덕지네요.

전화를 끊었다.

“하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작가의 본질은 청탁도 강의도 뭣도 아니다.

바로 글, 글이다.

그리고 그 글을 실은 홈페이지가 부흥하려 한다.

작가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작이었다.

***

혼자 남은 장선미는 멀거니 서 있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즘 우습게 소비되고 있는 말이긴 하지만...

‘그녀에게 이렇게 구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하...누가 저 좋아한대? 왜 저렇게 튕겨?”

짜증난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눈물은 이미 오간 데도 없었다.

‘김혜경이랑 친해지려고 오희라랑 연도 끊었는데...젠장.’

혜경에게 딱히 이성적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친해지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두고두고 써먹을 인맥이 될 텐데.

장선미의 이런 방식은 한때 김한에게 잘 먹혔다.

상냥하게, 하지만 털털하게.

사귀는 건 아니지만 사귀는 것처럼.

김한은 장선미를 작가들 모임에 액세서리처럼 달고 다녔고, 장선미는 거기서 쌓은 인맥으로 작은 문학잡지에 글을 싣기도 했다.

한 마디로 ‘윈윈’인 관계.

하지만 김한이 무너지자, 그녀의 인맥도 거품처럼 사라졌다.

장선미의 입장에선 문단도 결국 정치였다.

정치의 기본은 강한 편에 붙는 것.

그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이용하는 것.

그리고 지금 대학원의 실세는...단연 김혜경, 아니 ‘이상’이 아닌가.

“그런데 이금홍 걔는 뭐야 진짜...”

김한도 꼬시더니, 이번엔 김혜경인가?

얼굴 좀 반반하다고 괜찮은 남자들만 꿰차려 하다니.

장선미는 손거울로 얼굴을 한번 살피고 비상계단 밖으로 나갔다.

저 멀리서 혜경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역시, 저만한 남자가 없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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