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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14화 (1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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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13)

    다시 사는 천재 작가 13

    1933년 다방 <제비>. 이상 24세.

    이상은 오랜만에 <제비>를 찾은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순호.

    그는 경성보통대학 출신 동문으로, 국문과를 나와 국어 교사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줄담배를 피워 대며 문학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그들의 즐거움이고 만남의 목적이었다.

    밥도 술도 없이 이야기는 술술 풀렸다.

    조순호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상이, 난 소설이 좋아. 그 중에서도 자네의 소설에 제일이라고 생각해. 이번에 발표한 작품도 최고였어.

    이상은 성냥으로 탑을 쌓으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너도 써. 쿨럭-건축학과인 나도 글쟁이가 됐는데, 너라고 못 할까. 쿨럭!

    -나는 재능이 없어. 교사나 하면 딱이지. 그리고 줄줄이 딸린 동생들은 어쩌라고.

    -하하. 누구 집은 부자인 줄 알겠네. 콜록...찢어지게 가난한 건 나도 마찬가지야. 쿨럭쿨럭!

    이상의 기침에 성냥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는 권태롭게 성냥을 쓸어 담아 성냥갑에 넣었다.

    -그렇잖아도 글쓰기를 그만해야 할지 고민 중이야. 쿨럭...건강도 그렇고...돈도 안 되고.

    -아니야. 그러지 마.

    -쿨룩...잘 모르겠어. 그냥 돈이나 잔뜩 벌고 싶어.

    -자넨 천재잖아.

    -뭐? 쿨럭...

    -상이, 넌 할 수 있어. 넌 우리나라 문학에 다시없을 불세출의 천재니까.

    -불세출의 천재?

    -그래. 자네는 그런 사람이야.

    -내가 가진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아부를 떠나.

    겉으로는 그렇게 눙치고 말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좋아 죽을 것 같았다.

    ‘불세출의 천재’

    세상에 잘 나오지 않는 천재란 뜻이었다.

    예술가에게 그보다 더 멋진 수식어가 어디 있는가.

    사람이라는 게 참으로 간사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글쟁이 짓을 계속할지 말지...

    고민이 깊어 잠을 못 이뤘다.

    하지만 그의 한마디에 이렇게 기력을 얻을 줄이야.

    ‘나란 인간은 참, 귀도 얇단 말이지.’

    하지만 이상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새침을 떨었다.

    -자네 좋아하는 양갱이나 더 갖다 주지.

    빈 접시를 들고 카운터로 갔다.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금홍이가 이상을 노려봤다.

    -장사도 안 되는데 뭘 그렇게 퍼주는 거야?

    -콜록...조금만. 오랜만에 왔잖아.

    -저렇게 청승맞게 혼자 오지 말고 친구라도 좀 데리고 오라고 그래.

    -알았어. 너무 화내지 마. 콜록...

    이상은 접시에 양갱을 덜어서 가지고 나갔다.

    -콜록...콜록!!

    -자네 괜찮아?

    -요즘엔 약을 먹어도 자꾸 기침이 나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상은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았다.

    -담배는 좀 끊는 게 좋지 않겠어?

    -콜록...싫어. 이 짓마저 못 하면, 콜록! 무슨 낙으로 사나.

    -오래 살아서 많은 글을 남겨야지. 어딜 일찍 가려고.

    -콜록! 콜록! 콜록...

    이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래 살아야 해, 상이.

    -알겠다구. 알겠어. 잔소리는.

    -그리고 나, 아들을 낳았어.

    -아들? 콜록! 축하해. 그간 잘 보이지 않던 게 그 때문이었나?

    -응. 아내가 경미한 산욕열을 앓아서.

    -저런...자네, 이렇게 나와 있어도 되나?

    -지금은 다 나았어. 그나저나 나, 내 아들놈은 꼭 작가로 만들 거야.

    -콜록!...지 버릇 개 못 주고.

    -나는 돈도 없고 재능도 없어서 꿈만 꾸다 말았지만, 내 아들은 혹시 알아? 자네 같은 천재일지도.

    -돈 잘 버는 천재이길 바라네. 콜록...콜록...이름은 지었나?

    -아직.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아서. 자네가 지어줄 텐가?

    -애 이름을 나 같은 놈한테 맡기면 쓰나.

    -자네의 기운을 받아 대 작가로 만들려고.

    -지독하네. 쿨럭....흐음....

    이상은 잠시 생각에 잠겨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질 인에 창성할 창을 써. 어질고 잘 나가는 놈이 되라고. 인창...인창 어때?

    ***

    ...생각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인창 교수의 나이를 검색했다.

    ‘1933년 생. 88세.’

    ...태어난 해도 딱 맞는다.

    조인창 교수가 내가 아는 그 사람이라면...

    이건 정말 소름끼치는 우연이었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 만든 필연인가.

    김혜경의 몸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나는 이 운명이 조금 무서워졌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내게 선택지는 없다.

    목표점도 확실하다.

    묵묵히 글을 쓰고, 돈을 버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다시 ‘불세출의 천재’로 남는 것.

    나는 조인창 교수의 집에 가기 전에 백화점에 들렀다.

    그리고 순호가 유독 좋아하던 양갱을 한 박스 샀다.

    <제비>에서 팔던 싸구려 양갱과는 차원이 다르게 비싼 것이었다.

    조인창 교수가 문자로 보내 준 집 주소는 연희동 부촌이었다.

    차 없이는 다니기 힘들 정도로 높다락 오르막길.

    그 길을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 올랐다.

    그의 집 앞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다.

    저택의 기세의 눌린 채, 침을 꿀꺽 삼켰다.

    덜컹-

    누군지 묻지도 않고 문이 열렸다.

    문 안에 선 이는 우아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었다.

    “이상 선생님 되시죠?”

    “아, 예. 맞습니다.”

    “아버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전 며느리고요.”

    “그러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집안사람이 직접 마중을 나올 줄은 몰랐다.

    영화에서 보면 이런 집들은 고용인이 나오던데.

    뭐랄까.

    손님을 맞이하는 품격이 느껴졌다.

    나는 부인을 따라 정원을 지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넓고 고즈넉한 집이었다.

    “커피를 드릴까요? 아니면 차?”

    “차를 주세요. 양갱을 사왔거든요.”

    “어머, 제게 주시면 제가 다과상에 내다드릴게요.”

    “그럼 부탁합니다.”

    나는 쇼핑백을 부인에게 넘겼다.

    부인은 거실의 가장 안쪽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똑똑-

    “아버님, 이상 선생님 오셨어요.”

    부인이 문을 살짝 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책이 어지럽게 쌓여 있어서, 안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들어가세요. 계실 거예요.”

    “아, 네.”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책들을 피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고요하고 침침한 방이었다.

    벽면에 꽂인 책 대부분은 나의 작품들과,

    그 작품을 주제로 한 논문들이었다.

    조인창 교수가 쓴 책들도 책장 하나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저 안쪽 작은 테이블에,

    사진으로만 봤던 조인창 교수가 앉아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오, 잘 왔네. 이상 선생.”

    조인창이 빈 자리를 권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과, 귀에 걸려있는 산소줄.

    그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 그 자체였다.

    “자네로군.”

    조인창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와 악수를 했다.

    나뭇가지처럼 거칠고 메마른 손이었다.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시상식 때에 못 뵈어서...”

    그는 대답 없이 내 얼굴만 빤히 보았다.

    ...딱히 할 말이 더 생각나지 않는데.

    사실 병색이 너무 강해서, 순호와 닮았는지도 판단이 안 됐다.

    “자네 글 잘 읽었네. 썩 내켜서 쓴 느낌은 아니지만, 범접할 수 없는 스타일을 구사하더군.”

    어떻게 알았을까.

    혜경이 쓴 원본을 수정했던 글이어서, 내 의도를 백퍼센트 살리진 못했다는 걸.

    역시 대 학자는 다르다 이건가.

    “등단 기사에서 자네의 소감을 읽었네. 정말 청탁은 안 받는 건가?”

    “...예.”

    청탁을 안 받기로 공표했지만,

    그새 몇몇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 글을 좋게 봐줬을 수도,

    혹은 이슈를 만들고 싶은 욕심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뭐가 됐건 내가 한 말을 지킬 생각이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뭐...뭐가 됐건 다음 작품은 자네가 내켜서 쓴 걸 보고 싶군. 자네도 그러고 싶겠지.”

    실제로 그런 글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나보다 나를 더 꿰뚫어보는 사람이라니.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망생 생활을 오래 했는데...겨우 이렇게 데뷔를 했네요.”

    “등단을 준비한 지는 몇 년이나 됐지?”

    “팔 년입니다.”

    혜경의 기준으로.

    “...이해가 잘 안 가는데.”

    “네?”

    “그런 스타일을 살릴 줄 아는 작가가...28살 때까지...8년이나 빛을 못 봤다고?”

    “...과찬이십니다.”

    “칭찬이 아니네.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런 거야.”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어디 가서 기세에 밀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인창의 카리스마는 실로 대단했다.

    단 한 편의 소설로 이렇게까지 날 파악하다니.

    “필명은 왜 그렇게 정했지?”

    평범하게 대답하자.

    “별 이유 있나요. 존경해서죠.”

    “그래서 그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건가?”

    아, 이건 좀 억울한데.

    “스타일의 방향을 지향하는 것뿐입니다. 또, 세상에 같은 스타일이란 없으니까요.”

    나는 언제나 새로운 것, 앞서 나가는 것을 추구했다.

    1930년대에서 앞서 나가는 것과,

    2020년에서 앞서 나가는 것은 같을 수가 없다.

    아무리 영혼이 같은 ‘이상’이라 하더라도,

    혜경의 기억이 스며든 ‘이상’은 다른 사람이다.

    조인창이 빙그레 웃었다.

    웃으니, 순호를 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맞아. 나도 같다고 생각하진 않네.”

    “그럼 왜 그런 말씀을...”

    “자신에 대한 자네의 생각이 궁금해서.”

    “....”

    “내가 보기엔...자네는 이상 그 이상이거든.”

    말장난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난 그 말에,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불세출의 천재.

    그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고양감이 밀려왔다.

    “수십 년 동안 이상 문학을 연구했지. 이상의 문학은 몇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어. 권태, 체념, 무욕, 무기력 등등...자네의 소설도 같은 결에서 써졌어. 하지만 자네는 거기에 기묘한 열정을 더해놨더군.”

    정확했다.

    권태, 체념, 무욕, 무기력.

    그것은 1930년대 나의 삶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에 와서 삶의 새로운 열정을 얻었다.

    그 마음가짐이 나의 글에도 반영된 걸까.

    “...이상 연구를,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내가 겨우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부인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향 좋은 차 두 잔과, 양갱이 작은 접시에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이상 선생님이 양갱을 사왔어요. 곁들여 드세요.”

    부인은 차와 양갱을 두고 나갔다.

    조인창 교수는 양갱을 물끄러미 보았다.

    “양갱은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셨지.”

    그리고 포크로 아주 조금 맛을 보았다.

    “난 아파서 많이 못 먹으니, 자네가 많이 먹어줘야겠군.”

    아니.

    먹을 정신이 없었다.

    방금 전 그의 말을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다.

    “이상 연구를 왜 시작했냐고? 그것도 사실 아버지 때문이지. 아버지가 이상의 친구였거든. 교편을 잡으셨던 세월보다...이상과 우정을 나눈 이 년의 시간이 평생의 자랑이셨어. 어려서부터 어찌나 내게 그의 책을 읽히던지. 하지만 난 아버지를 닮아 창작엔 재능이 없어. 대신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지.”

    “...성함이...?”

    “조 순자 호자.”

    맞구나.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내가 죽기 사 년 전, 순호가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지금 내 앞에 앉은 이 노인이라니.

    어질 인에 창성할 창 자를 쓰라고 했던 내 말대로,

    그는 정말로 그런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 같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러자 조인창 교수도 나를 가만히 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탁이 하나 있네.”

    조인창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탁이요?”

    “그래. 그것 때문에 자네를 여기까지 불렀어.”

    “뭐, 뭐지요?”

    “나는 한국대에 작년까지 계속 특강을 나갔지. 한국대엔 문창과가 없잖나. 그럼에도 작가가 되고 싶은 학생들을 위해서 문학 특강을 해왔어. 하지만 올해 암 수술을 받고 나서는 그러질 못했어.”

    그가 위암 선고를 받은 건 삼 년 전이었다.

    긴 투병 기간에도 그는 학교 특강을 빠지지 않는 열정으로 존경을 받았다.

    “이 꼴로는 앞으로도 못 나가겠지.”

    “아...아닙니다. 쾌차하실 겁니다.”

    조인창 교수가 말없이 웃었다.

    “난 이제 곧 죽을 거네. 항암도 포기하고 집에 들어앉아 있는 걸 보면 모르나?”

    할 말이 없었다.

    그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어떻게 모른척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부탁이라는 것은...”

    “나 대신 강의에 좀 나가줘야겠네.”

    “네? 강의라 하시면...”

    “한국대 특강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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