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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12화 (1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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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11)

    다시 사는 천재 작가 11

    “전 앞으로 한국 출판사에서 청탁을 받지 않겠습니다.”

    장내가 술렁였다.

    다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출판사 대표들은 귓속말을 하며 날 손가락질 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제 소설이 발표되기도 전에 김한 작가와 표절시비가 붙어 곤혹을 치렀습니다.”

    김한의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이 더 술렁거렸다.

    그리고 저 쪽에서,

    서 기자가 노트북을 켜고 내 말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지난 3주간 수없이 많은 제의를 받았습니다. 제 원고를 김한 작가에게 넘기고 내년 신춘문예를 노리라는 제의들이었죠. 그렇게만 하면 청탁을 주겠다는 출판사들이 많았습니다.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요.”

    나는 K출판사의 표한수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그는 얼굴이 시뻘게져선 눈만 껌뻑거렸다.

    “또한, 김한 작가에게 원고를 넘기지 않으면...제게 청탁이 오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이들도 많았죠.”

    이현강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밝히는 건 성급한 짓이다.

    문단에서 그의 기반은 굳건했다.

    섣불리 여론전을 펼쳐서 좋을 게 없다.

    다만, 어디선가 내 수상소감을 귀담아 듣길 바랄 뿐.

    “그래서 저는 아예 한국 출판사의 청탁을 안 받기로 했습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서인희 기자의 손이 빨라졌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작가들에게요.”

    나는 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건방지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못하실 겁니다. 저는, 한국문학이 죽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산소호흡기 달고 겨우 연명하는 수준이죠.”

    “뭐, 뭐야?!”

    “이게 듣자듣자하니까!”

    “그만 해! 신성한 자리에서 어디!”

    귀빈석의 소위 ‘어르신’들이 벌떡 일어나서 날 삿대질했다.

    저들이야 내 말을 이해 못 할 것이다.

    저들은 ‘책을 보던 시대’의 수혜를 받았으니.

    하지만 신인 작가들은 아니지 않은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나는 계속 말했다.

    “소설을 보는 사람들은 점점 더 적어지고 있습니다. 책은 팔리지 않고, 출판사는 충분한 원고료를 작가들에게 주지 못합니다. 작가 분들은 진심으로, 청탁을 통한 원고료만으로 집 월세라도 제대로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귀빈석에 앉아 있던 젊은 작가들의 눈빛이 빛났다.

    이건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자신의 글에 제대로 된 글값을 받는 작가가 몇이나 됩니까? 적어도 여기엔 한 분도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창작 노동자가 어째서 이렇게 헐값에 창작물을 팔아야 하는 게 이치에 맞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너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문단을 떠나면 될 것 아냐!”

    표한수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땀을 질질 흘리는 꼴이 볼만 하다.

    “아뇨. 근본적인 문제를 보셔야죠. 저는 계속 글을 쓸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에 다시 소설의 붐을 일으킬 겁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만든 판에서는 아닙니다.”

    “뭐, 뭘..어쩌겠다는..”

    “저는 제 글을 독자들에게 직접 팔겠습니다. 출판사를 거치지 않을 테니, 청탁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단상을 내려왔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저 경악과 놀라움이 가득할 뿐이었다.

    ***

    Y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끝나고 서인희 기자는 문화부로 돌아왔다.

    남자 선배 하나가 의자를 주욱 끌며 서 기자에게로 왔다.

    “시상식에 미친놈 하나 나왔다며?”

    “좀 이따가요. 저 지금 바로 기사 써야 해요.”

    “그 놈 기사야?”

    “놈이 아니라 작가님이에요.”

    서인희는 어느새 이상의 팬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몇 없는 한국 문학 독자이자,

    기자가 되기 전엔 출판사 직원이기도 했다.

    그녀는 출판사들이 작가들에게 푼돈을 주면서 갑질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때 작가를 꿈꿨던 그녀도 그 모습에 학을 떼고 꿈을 접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방금 전 시상식은 대단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청탁을 하나라도 받기 위해 비굴해지는 작가가 아니라,

    작품 자체로 밀어붙이는 작가.

    그거야말로 그녀가 꿈꾸던 ‘작가’의 이상이었다.

    서 기자는 아주 우호적인 문체로 기사를 작성했다.

    이상이 주고 간 메모의 내용을 첨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방금 전 시상식이 끝난 후,

    이상은 뒤풀이도 가지 않았다.

    대신 서인희 기자를 찾아와 메모지를 한 장 내밀었다.

    -이건 기사에 좀 첨부해주셨으면 해요.

    -이게 뭔가요?

    -제 홈페이지 주소예요. 앞으로 제 글은 여기에다가 올릴 거라고, 그렇게 기사를 써 주세요.

    -그럼 1대 1로 글을 판다는 게...

    -네. 일단은 이런 시스템이에요. 아직은 초라하지만요.

    쑥스럽다는 듯 말하곤, 이상은 훌훌 시상식장을 떠났다.

    서 기자는 기사를 마무리 하고 바로 인터넷에 게시했다.

    당분간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반복해서 올릴 생각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신인 작가 이상, 소설의 붐을 일으키려 하다>

    ***

    홈페이지의 주소는 www.strange2021.net.

    단순하지만 직관적으로 생겼으며 게시판도 세 개뿐이다.

    단편소설

    장편소설

    잡문

    시는 없다.

    예전엔 시도 썼지만 이번 생엔 소설에만 집중하기도 했다.

    한 곳에 에너지를 쏟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에는 별도의 결제시스템이 존재한다.

    단편소설은 이천 원, 장편소설은 한 화에 천 원.

    독자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그러나 너무 헐값도 아닌 선.

    시상식 직후 홈페이지에 <세속적 사랑의 노래>를 올렸다.

    내 등단이 이슈는 이슈였던 모양이다.

    일주일 만에 조회수가 만 회에 육박했다.

    서 기자가 기사를 잘 써준 덕도 있고.

    그대로 돈이 됐다면 이천만 원이 굴러들어왔겠지만...

    안타깝게도 무료공개였다.

    등단작은 Y신문사에도 소유권이 있기 때문이다.

    또, 홍보 차원에서도 나쁘지 않고.

    한편,

    온갖 문학· 매체에서도 앞 다투어 내 얘길 하고 있었다.

    ‘이상의 혁신, 가능할까?’

    ‘한 신인 소설가의 전복적 시도.’

    ‘젊은 작가의 미래에 대해 묻다’

    ‘발칙한 작가의 시대’

    등등...

    그 중에선 내 방법을 지지하는 이도,

    비판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소설가는 밥벌어먹기 힘들다’라는 명제를 부정하진 않았다.

    수없이 많은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그걸 다 수락했다간 이미지 소모만 될 게 뻔했다.

    좀 더 확실한 한 방이 있을 때, 대중에게 내 모습을 보일 작정이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뭐, 나름대로 성공적인 데뷔였다.

    등단 후 내 생활은 전과 똑같다.

    10시 취침 6시 기상.

    하루 1시간의 운동.

    교학팀 사무실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남은 시간엔 글을 쓴다.

    그게 일기같은 잡문이건 소설이건.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였다.

    철학과 테이블에서 지훈이 날 불렀다.

    “형, 홈페이지에 사람 진짜 많이 들락이는데요?”

    요즘 지훈인 내 홈페이지에 부쩍 관심이 많다.

    “이 일본어로 된 글은 또 뭐예요?”

    “그거 내 소설 번역한 거야.”

    “<세사노>요?”

    “세사노? 그게 뭐야?”

    “<세속적 사랑의 노래>. 제가 줄였어요.”

    “남의 소설로 잘 논다.”

    “그런데 웬 번역? 누가 해준 거예요?”

    “누구긴. 나지.”

    “형 일본어도 할 줄 알아요?!”

    당연하지.

    1930년대서 대학 나오려면 일본어는 기본이다.

    게다가 내가 건축기사로 일했던 곳도 조선총독부다.

    물론 1930년대의 일본어와 지금의 일본어는 좀 다르다.

    혜경은 히라가나도 모르는 사람인지라...

    일본의 현대 문법을 참고하긴 했는데, 잘 됐으려나.

    “취미로, 조금.”

    “그랬구나...형 진짜 양파 같은 사람이네.”

    “일본어 페이지는 실적이 별로야. 나중을 위해 만들어놓은 거지.”

    “아무래도 홍보가 필요할 것 같은데...그런데 영어 번역은 안 해요?”

    “영어는 잘 못 해. 혹시 너 영어 잘 해?”

    “영어 잘 하는 문창과 본 적 있어요?”

    지훈이 너스레를 떨었다.

    하긴, 맞는 말이었다.

    인문대를 통틀어 문창과 학생들의 토익 점수는 꼴찌다.

    “이거 물 들어왔을 때 별스타그램이랑 짹짹이, 페이스노트에도 연동해요. 요새 글 좀 읽는다는 사람들 다 형 얘기만 하는데.”

    “나 그것까지 할 시간 없어.”

    혜경과 나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기 PR이 너무나도 귀찮고 관심이 없다는 거다.

    “흠...제가 해드릴까요?”

    “됐어. 너도 바쁘잖아.”

    “올려주는 것만 할게요. 저 한때 경영학과 복전하면서 마케팅도 배웠어요.”

    “그랬어? 그런데 왜 그만뒀어?”

    “문학으로 마케팅을 해볼까 해서 복전해본 건데...융합이 쉽지 않아서요. 문학 산업 발전이 그쪽을 따라잡질 못하는 거죠. 그래서 관뒀어요.”

    그 상황에서 문학이 아닌 경영을 관두다니.

    지훈이도 어떤 면에서 참 대단한 놈이다.

    “형이 형 소설에서 제일 사람들이 땡겨 할 부분 한두 줄만 골라 줘요. 내가 이미지로 따서 올리면 되니까. 그리고 형 홈페이지 주소랑 연결되게 해줄 게요.”

    그것 참, 더할 나위 없는 마케팅이다.

    그런 훌륭한 일을 그냥 맨입으로 시킬 순 없지.

    “지훈아, 너 아예 아르바이트를 할래?”

    “에이, 뭐 이런 일로 돈을 받아요. 나중에 돈 벌면 줘요. 지금은 됐어요.”

    “아니야. 그것도 노동인데 당연히 값을 쳐줘야지.”

    지훈이 고개를 스윽 든다.

    “...그럼 달에 십만 원만 줄래요?”

    십만원은 무슨.

    “오십.”

    “형 미쳤어요? 그렇게 많이 줄 돈이 어딨어요? 상금 받은 것도 반이나 부모님께 보냈잖아요.”

    생길 거야.

    이런 자신감도 없이 내 글을 팔 순 없지.

    “아, 됐어요. 십 만원만 줘요. 밥이나 한 끼 사주시고.”

    “오십 줄게. 대신 내가 일본어로도 써줄 테니까 일본어 게시물도 만들어. 수익에 따른 인센티브도 챙겨줄 거고. 영어는...다음에 하자. 밥은 네가 사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형이 진짜...”

    기가 막혀 하는 지훈을 두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지훈의 얘길 들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순수문학 작가가 대중을 사로잡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훈이 SNS를 잘 관리해주면, 효과는 있겠지.

    하지만 한계 역시 분명하다.

    그것은 내 작품이 ‘글’이라는 것에 있었다.

    21세기에 와서 가장 참담했던 건...

    바로 ‘글’이 ‘영상’에 완전히 밀렸다는 점이다.

    즉, 이미지 없는 상품은 제대로 된 값을 못 받는다는 점.

    “...이미지라.”

    그때 문득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맞다. 조인창 선생님.”

    “조인창 선생님이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금홍이가 되물었다.

    문창과나 국문과에서 조인창을 모르는 학생은 없다.

    “네. 그 분께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은데...혹시 학교 차원에서 가능해요?”

    조인창 선생은 한국대 명예교수다.

    인수대도 중위권 대학은 되니까, 학교를 통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음...개인정보는 안 알려줄 걸요? 대신 그쪽 교학처에 전화해서 담당자 연결은 해줄 수 있어요.”

    “그럼 부탁 좀 드려요, 금홍 선생님.”

    “잠시만요.”

    금홍이는 일을 참 잘 했다.

    척척 전화를 걸더니 똑 부러지게 상황 설명을 했다.

    잠시 후 금홍인 내게 전화를 넘겨주었다.

    -한국대 국문과 사무실입니다. 조인창 교수님과 연락을 하고싶으시다고요?

    “네, 맞습니다.”

    -이런 전화가 정말 많이 걸려와서요...먼저 말씀 드릴 게, 조인창 교수님께서 몸이 별로 안 좋으셔서 약속을 거의 잡지 않으세요. 아마 안 될 확률이 클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라도 전해 주시면...”

    -말이야 전해드리죠. 너무 기대하지 마시라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전해드릴까요?

    “...이상이라고 전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면 아실 겁니다.”

    김혜경이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이라면,

    조인창 교수는 자신이 뽑아놓은 신인작가를 모른 척 하지 않을 것이다.

    -아! 이번에 Y일보로 등단하신 분이죠? 저 기사 읽었어요. 정말 대단하시던데요. 홈페이지도 들어가 봤는데 다음 글은 언제 나오나요?

    문단 일에 관심이 많은 걸 보니 국문과 사무실이 맞군.

    그나저나 다음 글이라.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이번엔 저만의 이야기를 쓰려고요.”

    김혜경이 아닌 이상만의 글.

    이번엔 그런 글을 써 볼 작정이었다.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저기, 선배님.”

    웬 여자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들었다.

    검은 단발머리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여자가 서있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내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현강 교수님의 새 조교 장선미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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