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1화 (11/204)

#   11 - 3780249

#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10)

다시 사는 천재 작가 10

하룻밤 사이에 승패는 결정되었다.

‘이상’이란 대담한 필명을 가진 신인 작가의 압승.

승부의 쐐기를 박은 건 Y신문사 인터넷뉴스에 대서특필된 영상과 캡쳐본이었다.

그 영상의 내용은 이랬다.

김한(모자이크는 됐으나 누가 봐도 그였다)이 ‘이상’의 노트북에서 <세속적 사랑의 노래> 파일을 삭제하고

출력한 원고를 한 장 한 장 찍은 후

‘이상’에게 신춘문예 투고 포기를 유도한다.

영상이 어찌나 잘 찍혔는지, 모호한 부분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전날 올라왔던 ‘이상’의 인터뷰는 다시금 회자되어 인터넷을 달궜다.

-이런 천재가 표절 작가 때문에 빛을 못 볼 뻔했다니...

-소설 봤냐? 미쳤다, 이 작가. 역시 클라스가 다르다. 인터뷰에서도 표절 얘기 하나도 안 하고 자기 작품 얘기만 했잖아. 자신 있다 이거지.

-이 작가 닉값 함ㅋㅋㅋㅋ 인터뷰랑 같이 보면 더 꿀

-와 근데 김한이 표절에다가 증거인멸이라니 충격이다.

-김한 젊은 작가 중에선 잘 나가지 않아?

-원래 사람 욕심이 끝이 없는 법이다.

-지도교수도 몰랐을까? 알면서 눈감아 준 눈친데.

-몰랐겠냐. 나 문창과 나왔는데 교수들은 제자들 글 다 알아. 빼박 눈감아 준 거임.

***

“김혜경 이 개새끼야!!!”

교학팀 사무실 유리문이 벌컥 열렸다.

김한이 사색이 되선 다짜고짜 내게 달려들었다.

멱살을 잡으려는 그놈을 가볍게 피했다.

흥분하는 놈 피하는 건 어렵지 않다.

“너 이 새끼. 감히 몰카를 찍어? 너 그거 내가 명예훼손이랑 초상권 침해로 고소할 거야 이 새끼야!!”

“선배! 이게 무슨 짓이에요!”

어느새 지훈이 달려와 김한을 붙잡고 말린다.

“놔 줘라, 지훈아.”

“하지만 형.”

“괜찮아.”

지훈이 불안한 듯 김한을 놓았다.

김한은 씩씩대며 나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안다.

이놈이 완패를 당해놓고 왜 꼬리를 내리지 않는지.

하등한 줄만 알았던 혜경에게 당한 게,

그래서 작가 생명이 끝난 게 믿기지 않을 거다.

지금에라도 혜경을 위협해서 상황을 바꿀 수 있단 착각.

바로 그 착각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 꼴사나워지는 거다.

“김한. 나도 영상까지는 안 풀려고 했어. 적당히 너만 눈치 채서 꼬리 말 수 있도록 인터뷰 하려고 했지. 난 시끄러운 거 싫어하니까. 하지만 어제 얘기해보니까 안 되겠더라. 너 같은 놈은 문단에 두기엔 내 비위가 너무 약해.”

“어-그래? 너 그 선택 후회하게 될 거야. 내가 아는 변호사가 몇 명인 줄 알기나 해?”

“그래? 그럼 고소해.”

“어. 할 거야. 하라면 못할 줄 알아?”

“이쪽도 제대로 저작권위반이랑 허위사실유포로 고소 진행할 테니까.”

“네가 무슨 돈으로? 너희 집 찢어지게 가난 한 거,”

“학생!!!! 당장 그만두지 못해요?!!”

김한의 입을 틀어막아 버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금홍이었다.

금홍이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금홍이?”

얼마나 학과 일에 관심이 없었으면 과 사무원이 바뀐 것도 몰랐던 눈치인가.

금홍인 정색을 하고 말했다.

“김한 학생, 당장 안 나가면 경찰 부릅니다.”

“김한? 너희 쌍으로 미쳤어? 어디 감히 선배한테-”

“...나가라고 쓰레기야. 네가 나한테 차이고 보낸 그 저질 문자들 내가 다 가지고 있어. 너 혜경 선배 고소하면 나도 그 문자 신문사에 푼다?”

“뭐? 이 시발...내가 언제 그런 문자를...!”

“당당하면 고소하라고. 발정난 새끼야. 차여놓고 내가 먼저 꼬리쳤다고 소문 낸 증거도 다 갖고 있으니까.”

김한이 드디어 입을 다물었다.

이 쓰레기 놈이 금홍이에게 한 짓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지만, 괜히 오바하지 말자.

나는 손가락으로 김한의 머리를 툭- 밀었다.

“나가.”

“엇, 이런 미친!”

또 툭-

“나가라고.”

여러모로 당황한 김한은 속수무책으로 사무실 문까지 밀려나갔다.

마지막으로 툭-

“그럼 굿바이-.”

나는 그대로 그놈의 머리를 사무실 밖으로 밀었다.

꼴사납게 넘어진 놈은 나와 금홍이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꼴을 혜경이도 봤어야 했는데.

어디선가 보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길 바랄뿐이었다.

***

김한은 자퇴를 했다.

강사직에서 짤린 건 물론이요,

가라사대 출판사와의 소설집 계약도 파기됐다.

위약금을 무느라 자취방을 빼고 본가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현강은 김한을 만나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귀찮다는 듯 가족과 함께 헝가리로 여행을 가버렸다.

기자들의 연락도 모두 무시.

가족과 웃고 있는 사진만이 별스타그램에 올라올 뿐이었다.

나는 그 일주일 간

그러니까 학교가 좀 조용한 동안 많은 걸 했다.

드라마 계획서 초안을 완성했고

지훈을 통해 컴공과 조교들을 소개받았다.

내 글을 올릴 간단한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현강은 여행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날 불렀다.

헝가리에서 잘 놀다 온 모양인지, 얼굴이 폈다.

그렇게 싸고돌던 김한이 학교와 문단에서 쫓겨난 건 이미 잊은 듯했다.

그나저나

지난 일주일 동안 이현강은 어떻게 머리를 굴렸을까.

“너 벼르고 있는 출판사 대표가 한둘이 아닌 건 알지?”

출판사 대표들?

등단은 내년에 하란 소리를 해대던 치들을 말하는 건가.

“오희라 걔 남편도 한 가닥 하는 양반이야. 그쪽에도 네 소문 파다하더라. 글 좀 쓴다고 건방지게 군다고.”

“글 좀 쓴다고 봐주시니 감사하군요.”

“내가 장난치는 거로 보여?”

“저도 장난 아닙니다.”

머리 조아릴 것 없다.

이 사람은 더는 내 스승도 선생도 아니다.

이현강은 짜증난다는 듯 담배를 꼬나물었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어린놈의 새끼가 건방지게.”

“....”

“김한 그 머저리 일이야 어쩔 수 없고. 넌 이제부터 말에 신경 써.”

“무슨 말씀입니까.”

“시상식에서 한 마디만 더 보태. 김한과의 일, 지도교수와는 아무 상관없다고. 그리고 이번 학기부터 이 방 조교로 들어와.”

“저보고 교수님 개인 조교를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내 밑에서 문단 분위기 익혀.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알아듣지.

나보고 김한 대신 이현강의 개가 되란 뜻이 아닌가.

어림없는 소리.

“첫 번째 제안, 싫습니다. 교수님이 김한의 표절과 관계 없으신 거, 압니다. 다만 눈감아주셨다고는 생각합니다. 아예 상관이 없으신 건 아니죠.

두 번째 제안 역시 싫습니다. 저는 교수님 밑에서 배울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이현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담배연기를 뻐끔뻐끔 뱉어냈다.

“그럼, 사무실 자리를 오래 비울 수가 없어서...가보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

“김혜경.”

이현강이 말했다.

“등단작이 네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지?”

“그럴 수도 있겠죠.”

“....”

“‘청탁’을 통해서는요.”

나는 교수실을 나와 버렸다.

***

멜론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드라마 집필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드라마 원고모집 마감은 시상식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시상식 전날,

1월 1일에는 극본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1장 분량의 기획서

16회 분량의 줄거리

8화 분량의 시놉시스

2화 분량의 대본

쓰긴 다 썼지만 전체적으로 세심한 퇴고가 필요했다.

드라마의 제목은 <무너지는 날>

줄거리는 이렇다.

한 건축가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저택을 하나 인수한다.

한편 건축가에겐 남모르는 능력이 있다.

자신이 있는 공간에 저장된 기억을 읽고, 그 세계로 다녀오는 능력이다.

건축가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저택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다.

문제가 해결되면 저택의 방을 하나씩 허물고,

그 공간에 새로운 집을 짓는다.

문제는 시놉시스였다.

시놉시스는 간결한 형식을 갖춰야 하는데 자꾸만 장면화 된 글이 나오려 한다.

소설가의 고질병이다.

며칠을 고생하다가 어느 날 밤 마무리를 지었다.

극본은 온라인 접수가 원칙이었다.

나는 얼른 엠플릭스 담당자 메일로 극본을 보냈다.

“...어휴...겨우 했다. 시간이...딱 10시네.”

그렇게 바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2021년이 된 지는 이틀이나 지났고,

나는 당장 Y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장으로 가야 한다는 걸.

***

시상식장은 인산인해였다.

Y신문사 측이 준비한 꽃과 이름표를 가슴팍에 꽂았다.

그리고 얌전히 다른 수상자들과 앉아 식을 기다렸다.

다른 수상자들은 가족과 친지를 줄줄이 달고 왔다.

혜경의 부모님은 등단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뻐하셨다.

그러나 농사 때문에 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했다.

결국 내가 데려온 사람은 지훈 하나다.

혜경의 부모님은 굉장히 미안해 하셨지만...내 입장에선 이편이 더 나았다.

살가운 아들 역할을 하는 건 고역이었다.

무엇보다도...미안하지 않은가.

사정이야 어찌됐건 혜경의 몸을 빼앗은 것이니.

그래서 상금이 들어오면, 반은 혜경의 부모님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아쉬우시겠어요.”

옆에 앉아 있던 시조 당선자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뭐가요?”

“소설부문 심사 보신 조인창 교수님이 못 오셨잖아요.”

조인창 교수.

국내 최고의 문학 박사이자,

혜경도 존경에 마지않던 롤모델이다.

“듣기론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대요. 그래도 심사는 꼭 보시겠다고 산소줄 달고 심사장에 오셨다나봐요...”

...그렇게까지?

나는 퍽 감동이었다.

그 노교수가 그런 정성과 열정을 들여 뽑은 작품이,

바로 내 소설이라는 것이.

그녀가 내게 슬쩍 말했다.

“그래도 수상자는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니까. 나중에 찾아가 인사해 보세요. 젊은 사람이라 이런 거 잘 모를 것 같아서.”

“아. 감사합니다.”

인맥을 그런 식으로 쌓는 건 싫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아픈 와중에도 끝까지 심사를 보셨다면,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였다.

또...조인창이라는 이름은 내게 왠지 익숙했다.

어디서 들었더라.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던 이름 같은데.

그때였다.

“자네가 김혜경이야?”

배가 잔뜩 나온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네. 그렇습니다만.”

“나 K출판사 편집장 표한수네.”

“아...안녕하십니까.”

그는 내 손을 잡고 대충 악수를 했다.

K출판사라면 이현강의 사주로 전화를 한 곳이 아닌가.

그것도 제일 먼저.

“지금 다들 저기서 자네 얘기만 하고 있는 거 알지?”

그가 슬쩍 가리킨 곳에는 그와 비슷한 인상의 남자들이 숙덕거리며 날 보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그가 대끔 혀를 끌끌 찼다.

“등단을 해도 청탁 못 받는 작가들이 널리고 널렸는데...자네가 뭘 모르는군. 등단만 하면 작가가 되는 건줄 알아?”

이런 얘기 이제 지겹다.

“두고 보면 알겠죠. 편집장님. 제 앞길은 제가 챙기겠습니다.”

“...건방지긴. 이 교수한테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지...필명으로 장난이나 치고, 지가 무슨 이상이라고...엥이...”

그는 욕을 중얼거리며 귀빈석으로 갔다.

심사위원들과 편집장들, 작가들이 가득한 곳으로.

그가 뭐라고 입을 털었는지 사람들이 나를 흘긋거렸다.

뭐, 상관없다.

축하와 칭찬만 받으려고 온 자리는 아니기에.

아니, 이제 곧 저들에게 미친 듯이 욕을 듣게 될 거다.

“자, 지금부터 2021년 Y일보 신춘문예 시상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시조, 시, 동화, 희곡, 평론, 소설

시상은 총 여섯 부문으로, 소설은 마지막 순서였다.

앞선 당선자들이 불려나가 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동화 수상자는 살짝 울먹이기까지 했다.

나는 당선이 처음이 아니라 그런지...별 감흥이 없었다.

그냥 담담히 내 할 말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 부문 당선, ‘이상’님.”

사회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의례적인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강단으로 나가 상패와 꽃다발을 받았다.

지훈도 튀어나와 꽃다발을 하나 안겨주었다.

“지금부터 소설 부분 당선자 이상 님의 수상소감을 듣겠습니다.”

나는 마이크 앞에 섰다.

할 말이 아주 많았다.

2020년 11월에 혜경의 몸으로 들어 온 후, 지금까지.

한국 땅에서 소설을 쓴다는 의미를 충분히 알았다.

“부모님과 친구,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감사 인사는 이걸로 충분하다.

“덧붙여,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장내가 조용했다.

모두들 날 보고 있었다.

“저는 앞으로 한국의 출판사에서 청탁을 받지 않겠습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