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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10화 (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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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9)

다시 사는 천재 작가 9

문단이건 연예계건 이슈는 아주 중요하다.

이슈는 소비자의 ‘관심’이기도 하니까.

심지어 표절 시비?

문단에서 그보다 더 뜨거운 감자는 없다.

누군가 펜을 꺾고 매장되어야 끝나는 싸움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나는 <세속적 사랑의 노래>를 이슈의 중심에 올리기로 했다.

한국에 한 줌 남은 문학 독자들은 물론이고,

대중 독자들의 관심까지 끌 좋은 기회였다.

서 기자와의 인터뷰 첫 날.

나는 표절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세속적 사랑의 노래>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소설의 시작이야 김혜경이 했지만

수정하고 완성을 한 건 나니까.

“사랑하는 여자에게 버림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제가 돈이 없어서 그랬죠. 하지만 그 여자가 떠나는 이유가 이해돼서 붙잡지도 못했어요. 제가 가만히 있으면 있을수록, 그 여자는 더 못되게 굴었어요. 애처로울 만큼 저를 싫어하고 싶어했죠. 저는 그녀가 불쌍했어요.”

그것은 금홍이와 나의 이야기였다.

“우리의 내면은 모두 어린애나 다를 바 없어요. 그 여자도 굉장히 철이 없었죠. 그래서 ‘나는 사랑보단 돈이 좋아’라고 말하지 못하고 ‘돈이 없는 네가 싫어’라는 말만 반복했어요. 하지만 그 여자, 그렇게 말하는 순간 자신조차도 싫어졌을 거예요. 제 소설의 여자 역시 대단히 혼란스러운 상태로 나오죠. 불쌍해요 가련하고. 그래서 사랑스럽기도 하고요.”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금홍이와의 일을 마음 터놓고 이야기한 건 처음이었다.

서 기자는 착실하게 내 말을 받아 적었다.

인터뷰는 1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잘 갈무리해서 기사로 내주세요.”

“좋은 기삿거리가 될 것 같아요. 그 소설, 그냥 봐도 좋았는데 이 얘길 들으니까 더 좋은데요?”

그게 바로 내가 바라던 바였다.

“그런데...표절 해명은 정말 안 하시려고요?”

“그건 내일 하죠. 혹시 모르니 명함이나 한 장 주세요.”

서 기자와 나는 내일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니 여덟시가 다 되어 갔다.

나는 드라마를 이어 쓰다가 열 시에 잠이 들었다.

***

아침에 교학팀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사무원들과 조교들이 날 보는 눈빛들이 심상치 않다.

“안녕하세요, 금홍 선생님.”

“아...안녕하세요.”

금홍이가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아마 다들, 나와 김한의 표절시비 기사를 봤을 거다.

나도 오는 길에 인터넷 신문으로 한번 훑어봤다.

내가 한 인터뷰는 Y신문사 하나.

나머지는 모두 김한의 인터뷰 기사였다.

내용이야 딱 생각했던 그 수준이었다.

자신을 질투한 대학원 동기 하나가 노트북을 훔쳐서 어쩌고저쩌고...

댓글들도 예상대로였다.

-한국 문학판 썩긴 썩었다. 망하려니 별 같잖은 짓을 다 하네.

-내가 이래서 한국 소설 안 읽음ㅋ 원래 노잼임

-나 소설 덕후라 가라사대 계간지에서 <나의 악마의 노래> 읽었어. 그런데 정말 좋긴 하던데? 설명은 못 하겠는데 막 대단해ㅋㅋㅋ그런데 표절이라고? 뭐야 이게.

-김한 말고 신인A 인터뷰 Y신문사에 떴다.

-신인A 이름은 모르지?

-같은 학교 동기라는데? 사실 알아보면 알 수 있을 듯.

-신인A 인터뷰 보면 그럴 듯 해. 그거 보고 소설 봐라. 개잼이야. 여자 개 못됐는데 존나 이해됨 ㅋㅋㅋㅋ

잘 되어가고 있군.

적잖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저기...샘.”

금홍이가 날 불렀다.

“네?”

“잠깐만 밖으로.”

“아...네.”

나는 금홍이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금홍이가 날 데리고 간 곳은 교내 카페테리아였다.

그녀는 겁나게 달아 보이는 아이스 카페 모카를 휘핑크림까지 올려서 두 잔이나 주문했다.

우리는 카페 구석 자리에 마주앉았다.

“드세요.”

“사주는 거예요?”

“돈 주시게요?”

“아, 아닙니다. 잘 먹을 게요.”

나는 빨대로 카페모카를 쪽쪽 빨아먹었다.

그나저나 금홍이 얘가 왜 이러지.

“...커피 맛을 코코아로 덮어버렸네. 교내 카페는 어쩔 수 없다니까.”

금홍이가 바리스타 공부를 한 티를 내며 중얼거렸다.

난...난 맛있는데, 달고.

“크흠...저기, 다른 게 아니라.”

“네.”

“저도 봤어요. 기사.”

“아. 그러셨구나.”

“곤란하시겠어요.”

나는 빨대로 휘핑크림을 휘휘 저었다.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있으니까요. 괜찮아요.”

내 덤덤한 반응이 의외였는지, 금홍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잠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생각하는 모습도 예쁘다.

“전 샘이 표절했을 거라고 생각 안 해요.”

...믿어주는 건가?

“한다면 김한 그 개새끼가 했겠죠.”

...그냥 김한이 싫었던 거군.

신입생 때 김한에게 크게 데였다더니.

아직도 많이 싫어하는 구나.

“맞아요. 김한이 한 짓.”

“혜경 샘, 하룻밤 사이에 김한 그 새끼가 얼마나 입을 털고 다녔는지 알아요? 신문사를 열 군데는 돈 것 같아요.”

금홍이가 열변을 토했다.

“샘도 신문사 다 돌아버리지 그랬어요. 억울하게...씨...”

“인터뷰는 한 곳에서만 해도 충분해요. 반복해서 뭐 해요.”

“순진하시네요. 물량전이 얼마나 중요한데.”

금홍2와 금홍1의 공통점을 더 찾았다.

둘 다 고운 얼굴에 입이 걸걸하다는 것.

그리고 차이점도 찾았다.

금홍2는 금홍1과 달리 내 걱정을 해준다는 것.

“마음 써줘서 고마워요.”

내 말에 금홍이 살짝 웃었다.

웃으니 더 예쁘구나.

그런데 의외다.

그저 김한이 싫을 뿐이라고 길길이 날뛸 줄 알았는데.

“바보가 아니라면 두 사람 인터뷰만 봐도 알아요. 누가 그 소설을 썼는지.”

“그런가요.”

“하지만 세상에 바보가 너무 많잖아요.”

“일단 금홍 선생님이 믿어주시니까 됐어요.”

그러니 이렇게 어설프게 날 위로하고 있는 거겠지.

힘내라고. 기죽지 말라고.

금홍이 팔짱을 끼고 날 가만히 보았다.

김한과 사귀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

그 새끼가 얼마나 나쁜 놈이고...뭐 이런 속풀이들.

하지만 금홍이는 그저 산뜻하게 이렇게 말했다.

“도와드릴 일 있으면, 꼭 도와드릴게요. 우리, 같은 교학팀 이잖아요.”

***

우웅-우웅-

모르는 번호. 또다.

“하아...”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상 선생님이죠? 저 J출판사 이사입니다. 표절 사건 때문에 마음고생 많으십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번 등단을 포기하시고 내년에 등단을 하시면 저희 출판사와 함께-

“끊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이현강이 인맥을 얼마나 써댄건지..

중소 출판사에서 끊임없이 전화가 온다.

하지만 정말 비열한 건 따로 있다.

정작 이현강이 쥐고 있는 가라사대에선 연락이 안 온다는 거다.

직접적으로 꼬투리 잡힐 일은 안 하는 거지?

사무실에서 내내 드라마를 쓰던 나는 화장실에 갔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는데 익숙한 얼굴이 거울에 보인다.

김한이다.

그런데 김한의 얼굴이 웬걸, 양쪽 뺨이 퉁퉁 부어있다.

그놈은 날 보더니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하필 화장실엔 그놈과 나 둘뿐이다.

김한은 다짜고짜 내 멱살을 억세게 잡았다.

“야, 이 모자란 새끼야. 교수님이 이번 글 신춘에 내지 말랬잖아. 왜 일을 키워?”

“뭐 뀐 놈이 성내고 있네. 왜? 네 그 존경스러운 교수한테 사랑의 매 좀 맞았나 봐?”

“어. 사랑의 매 좀 드시고 온 힘을 다 해 내 뒤 봐주고 계신다. 멍청한 네 놈 때문에 말이야.”

뻔뻔한 놈.

말 섞기도 싫다.

나는 그놈의 손을 뿌리치고 나가려 했다.

“너, 문단에 발붙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번 일의 결과랑 관계 없이.”

말인 즉슨,

내가 표절 시비에서 이겨도 청탁을 못 받을 거란 뜻이다.

그 반대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이쯤 되니 궁금할 지경이다.

김한 저 놈은 왜 저렇게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지?

“김한.”

그놈은 여유만만하게 고개를 까딱인다.

“너는 예전부터 왜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아?”

“하!”

김한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렇게 한참이나 낄낄대더니, 내게 말한다.

“재밌잖아.”

“....”

“너도 알잖냐. 창작 스트레스 장난 아닌 거. 원형탈모 걸리는 작가들 한 둘이 아니더라. 그런데 널 보면...난 너무 좋았다?”

“....”

“네가 제일 열심히 하고, 네가 제일 진지한데...맨날 바닥을 기고 있잖냐.”

“....”

“사람은 원래 자기보다 못한 놈을 보고 살아야 하는 법이야. 나한텐 네가 그 조건에 딱 맞아떨어졌고.”

“....”

“일이 이렇게 돼서 나도 참 슬퍼, 이 친구야. 네가 계속 내 곁에서 빌빌대길 바랐는데. 이번 일로 다 망쳤잖아.”

개새끼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개새끼일 줄이야.

이 말을 듣고 있는 내가 ‘이상’이어서 다행이다.

‘김혜경’이었으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이상하지 않다.

...도무지 용서가 안 된다.

“야, 김한.”

“왜?”

“내가 오늘 생각이 좀 많았다. 너의 처분에 대해서.”

“처분? 지랄하네. 네가 뭔데?”

“그런데 방금 결정했어.”

나는 그렇게 말하곤 화장실을 나왔다.

인적 드문 계단에서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서 기자님. 저 이상입니다.”

-네. 작가님.

“오늘 저희 인터뷰 잡혀 있었잖아요. 2회차.”

-네. 맞아요.

“못 갈 것 같아서요. 아니,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기획 인터뷰라서 이미 지면도 다 정해져 있는 건데...

“아뇨. 지면은 충분히 채우실 수 있을 거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서 기자님 명함에 적힌 메일로, 제가 지금 뭐 하나 보낼 거예요. 그거 보시면 감이 잡히실 겁니다.”

-하아...무슨 말씀이신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일단 보내주세요.

서 기자는 갑작스런 인터뷰 펑크가 불쾌한 듯했다.

하지만 내 메일을 확인하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어쩌면 쾌재를 부를지도.

***

“어우. 갑자기 뭐야, 이 사람.”

서인희는 죽상이 되어서 문화부 팀장의 눈치를 보았다.

지금 신춘문예 표절 사태는 문화부의 핫이슈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 인터뷰가 취소되다니.

팀장이 안다면 노발대발할 게 뻔했다.

‘일단 뭘 보내는지 확인을 해보자. 쓸 만할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인터뷰보단 아닐 텐데...망했다.’

서인희는 초조하게 메일을 기다렸다.

디링-

메일이 오자마자 확인을 했다.

제목도 내용도 없이 온 이상의 메일.

그 메일에 담긴 건 2분가량의 짤막한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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