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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8화 (8/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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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7)

다시 사는 천재 작가 7

이 세상에서 문창과 만큼 소문이 빠르게 도는 곳도 없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이들이 모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당선 전화를 받은 지 딱 하루가 지났다.

하루종일 대학원 사람들이 교학팀 사무실로 축하 인사를 하러 왔다.

“축하해. 혜경이.”

“그렇게 고생하더니, 난 너 될 줄 알았다.”

“정말 축하드려요, 선배님~”

은근히 혜경을 깔봤던 인간들이 대부분이었다.

참 뻔뻔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나 자신의 평화를 위해 인사를 대충 받아줬다.

하지만 오희라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어머, 혜경아~ 얘기 들었어. 정말 축하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그녀를 빤히 올려다봤다.

빨갛고 기름진 입술이 잘도 움직인다.

“네 소설, 나는 될 줄 알았어, 얘. 우리 같은 지망생으로서 합평 열심히 했잖아. 그게 다 쓸모가 있었나보다, 그치?”

무슨 소리.

당신 합평은 요샛말로 ‘1도’ 도움이 안 됐다.

“이거 만년필이야. 좋은 펜이 있어야 좋은 글을 쓰지.”

오희라가 몽블랑 마크가 박힌 상자를 내밀었다.

1930년대였다면, 환장을 하고 달려들었을 만년필.

나는 그 상자를 다시 오희라에게 밀었다.

“요즘 누가 만년필을 써요.”

“아, 그, 그래? 오호호호! 하긴, 그럴 수도 있지. 누나가 더 좋은 펜으로 바꿔,”

“됐어요.”

“어?”

“됐다고요. 펜 많아요. 그런데 제가 좀 바빠서요, 가주셨으면 하는데.”

“그래그래, 누나가 시간 뺏으면 안 되지.”

오희라는 상자를 핸드백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내게 슬쩍 물었다.

“저기, 누나도 시상식에 가서 혜경이 축하해줘도 되지?”

...이거였군.

신춘문예 시상식.

웬만한 작가, 평론가, 문학 교수, 연구자들이 모이는 몇 없는 행사였다.

식이 끝나고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소설가 지망생이나 신인 작가들에게 인맥을 넓힐 최고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런 중요한 자리인 만큼, 수상자의 가족과 초대를 받은 지인만 관객으로 참석 가능했다.

그런 자리에 당신을 초대하라고?

거기까지는 남편 백이 안 닿는 모양이지?

“어딜 따라오세요.”

“...뭐?”

“어딜 따라오려 하시냐고요. 누구 얼굴에 먹칠을 하려고.”

주위 사람들이 귀를 쫑긋하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됐다.

남들 눈에 착하게 보이는 거, 다 의미 없다.

금홍이도 마침 자리를 비웠으니 할 말 다 해버려야겠다.

“김혜경. 너 누나한테 말이 너무 심하잖아. 나는 좋은 마음으로-”

“전 선배 같은 스타일 싫어요.”

“뭐, 뭐?! 너 미쳤니? 누가 너보고 사귀쟤? 얘가 왜 이렇게 삐딱해. 사람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호의요? 지난 3년 동안 저 스트레스 받는 꼴 보는 재미로 학교 다니신 분이 꼴랑 등단 좀 했다고 비벼보고 싶어서 선물 사다 바치는 그 호의요? 저는 선배 진짜 싫어요. 선배가 차라리 자존심이라도 세웠으면 덜 싫었을 텐데, 이렇게 낯짝 싹 바꾸는 거 보니까 역겨워서 못 봐주겠어요. 알아들어요?”

김혜경의 몸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 왔던 울분.

그것이 화산 폭발하듯 폭발했다.

“혜경아...너 이러다 후회해. 우리 남편 U대학 국문과 교수야. 아는 출판사 한둘도 아니고. 무슨 말인지-”

“알아요. 선배한테 잘못 보이면 출판사들이 저한테 청탁 안 줄 거라 이 말이잖아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쪼르르 가서 남편한테 일러바치라고요. 그리고 평생 그렇게 자존심도 없이 사세요. 아주 잘 어울리시니까. 더 볼 일 없으면 나가세요. 여기 일하는 곳이지 아줌마들 수다 떠는 데 아니에요.”

“아, 아줌마? 야, 너!”

“누나 소리 좀 그만 하시고요. 못 들어주겠네, 정말.”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고 이어플러그를 꼽았다.

오희라는 쪽이 팔리긴 했는지 사무실을 휙 나가버렸다.

오희라는 쪽팔려서라도 사무실에서 도망쳤을 것이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지훈이다.

나는 이어플러그를 뽑았다.

“형...이젠 대단하단 말도 안 나와요. 오 선배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형밖에 없을 거예요. 완전 사색이 되선 나갔어요.”

이 녀석, 기분 찢어진단 얼굴이었다.

어째 내 등단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크흠...저...그런데 시상식 말이에요.”

“아, 맞다. 너 1월 2일 오후 2시에 시간 되냐? 시상식에 좀 와주라. 친구가 너밖에 없다.”

“혀엉...당연하죠. 전 형이 저 안 데리고 가면 서운하려고 했어요.”

“넌 당연히 와야지.”

“꽃바구니 안에 멜론 담아갈까요?”

“그거 좋지.”

“저기,”

하고 우리의 말을 끊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있었으니,

그건 마침 사무실에 도착한 금홍이었다.

“...네. 금홍 선생님.“

“등단...하신 거죠?”

금홍이도 문창과 출신이다.

등단의 의미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난 살짝 겁이 났다.

금홍1은 내가 글을 쓰는 걸 싫어했다.

보기에만 그럴듯하지 돈을 못 번다는 이유에서였다.

혹시 금홍2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돈 벌기는 글러버린 사내구만! 하고.

하지만 금홍2는 달랐다.

“축하해요, 혜경 선생님. 저 등단한 사람 처음 봐서 너무 신기해요.”

그녀의 얼굴엔 신기함과 경외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수줍음까지.

“고마워요, 더 빨리 했어야 했는데...늦었죠.”

“못 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데요. 스물여덟이면 빠른 편 아닌가요? 아무튼 대단해요.”

...그럼 내 시상식에 와줄래?

하지만 갑자기 들이대면 부담스러워 할 거다.

천천히... ‘빌드 업’을 하자.

“...금홍 선생님은 학부 때 뭐 썼어요?”

“저도 소설이에요.”

“아. 소설 아직도 써요? 관심 있으면 이번-”

“아뇨, 없어요.”

“...네?”

“소설에 관심 하나도 없어요.”

금홍인 정색을 하고 말했다.

문창과 졸업생이 저리 말하는 것도 참 대단한 일이었다.

이게 바로 ‘철벽’이라는 건가?

하지만 난 ‘시상식’의 ‘시’자도 안 꺼냈는데?

잘은 모르겠다.

어쩌면 금홍인 소설 자체에 노이로제가 있는 걸지도.

“그럼...실례가 안 된다면 진로는 어느 방향으로?”

금홍인 대답 대신 책상의 수험서를 짚어 들었다.

그 표지엔...이렇게 쓰여 있었다.

[바리스타 자격증-2급]

...이런.

다방 주인이 꿈이던 금홍1.

바리스타가 꿈인 금홍2.

이것도 우연일까.

***

드라마엔 묘한 매력이 있다.

소설은 작가에게 모든 권한을 맡긴다.

하지만 드라마는 나름의 문법을 고려해야 한다.

생동감 있는 대화.

눈에 보일 듯한 미장센.

약간의 클리셰.

소재의 신선함 등.

이 모든 것을 다 따져봐야 하는 게 드라마다.

혜경의 지식이 없었더라면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작품은, 혜경이 나 이상을 돕는 셈이었다.

Rrrrrr....

교학팀 문창과 전화가 울렸다.

금홍이 능숙하게 전화를 받았다.

“문예창작학과 사무실입니다. 아 네,...교수님. 네. 네.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금홍이는 전화를 끊고 내게 말했다.

“이현강 교수님께서 선생님 찾으시는데요?”

“저를요? 왜요?”

“몰라요. 기분 별로 안 좋아 보이시던데...”

그 사람이 기분이 좋은 적이 있긴 한가.

나는 알았다고 말하곤 그의 교수실을 찾아갔다.

달칵-

“교수님, 윽...쿨럭..”

엄청난 담배연기가 교수실 안에 가득 차있었다.

이 정도면 옆방 교수들에게도 실례 아닌가?

생각해보니, 양 옆 교수실 모두 초임 교수들이었다.

아직 학교에서 자리를 못 잡은 막내 교수들 말이다.

폐병은 이런 인간이 걸려야 하는데!

“콜록...콜록...어쩐 일로.”

“앉아.”

소파에 앉아 있던 그는 턱짓으로 앞자리를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는 <세속적 사랑의 노래> 출력본과 가라사대 계간지 봄호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등단했다지?”

“예.”

“일단 축하해. 그런데-”

이현강은 가라사대 봄호를 좌르륵 넘기더니 내 앞으로 내밀었다.

그 페이지에 있는 건...

[나의 악마의 노래 – 김한]

김한의 새 작품이었다.

나는 천천히 책장을 넘겨봤다.

합평 때 공유했던 첫 장 외엔 모두 다 똑같았다.

점 하나, 따옴표 하나까지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정말 저질렀을 줄이야.

멍청하기 짝이 없다.

한편 내 여유로운 태도가 이현강의 심기를 거스른 것 같았다.

내가 덜덜 떨면서 억울해하길 바란 건가?

“설명해 봐.”

“김한이 제 글을 베꼈군요.”

“그래. 김한이 베꼈겠지.”

...이건 좀 의외다.

내 말을 믿어준다고?

아니, 그러면서도 왜 김한이 아니라 날 부른 거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현강.

“내가 소설이 완성되면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았나?”

“저는 드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김한이 그러더군요. 교수님께서 제 소설을 안 보기로 하셨다고. 신춘문예에 내지도 말라 하셨다고.”

“김한이?”

“모르셨습니까? 중간에서 김한이 장난을 친 모양이네요.”

“김한에겐 신경 꺼라.”

이현강이 내 말을 잘랐다.

“사태 파악이 안 돼? 너는 이제 표절로 도마에 오를 거야. 사람들은 신인작가보다는 잘 나가는 기성 작가의 편을 들겠지. 김한이 잡아떼면 네가 절대적으로 불리해.”

“....”

“네 말을 믿어 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김한은 이 일로 더 승승장구 할 거야. 이슈가 되는 작품은 많이들 쳐다볼 테고, <나의 악마의 노래>는 홍보가 될 테니까. 작품도 인기도 얻는 거지. 반면 너는 등단도 취소되고 얼굴은 팔릴 대로 팔려버려서 다신 문단에 데뷔할 수 없게 될 거다.”

“...제게 뭘 원하십니까, 교수님.”

이현강이 담배를 깊이 빨았다.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아직 네 작품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어. 나야 Y신문사에 후배가 있어 미리 작품을 받아 읽었지만. 하지만 가라사대 봄호가 오늘 발간됐잖나. Y신문사도 지금쯤 이 일로 비상이 터졌겠지. 분명 네게 해명을 요청할 거야.”

“그래서요?”

“네가 베꼈다고 해.”

“....”

“그 말만 하면 네 신상은 내가 보호해 주지. 등단은 내년 신춘에 하면 되잖아. Y신문사야 다른 작품을 선정하면 그만이고.”

“...다른 말씀은 다 이해가 갑니다만,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습니다.”

“뭔데.”

“김한을 왜 이리 감싸고도시는지. 껍데기밖에 없는 놈인 걸 누구보다도 잘 아시면서.”

이현강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그는 완벽한 능력주의자였다.

김한이 이뻐서 이렇게까지 해줄 리가 없었다.

“건방진 질문 그만두고 내 말대로 해. 알았나?”

“아니오. 그렇겐 못 합니다. 못 들은 거로 하죠.”

“하하...”

이 교수가 낮게 웃었다.

“뭔가 크게 착각하는 것 같은데...이번에 김한과의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네 작가 생명은 끝이야. 시작과 동시에 끝나는 거지.”

“누가 그렇게 만든단 말입니까.”

“누가 그럴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나.”

...이현강.

그 자신을 말하고 있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청탁이 오지 않도록 만들겠단 소리였다.

청탁을 못 받으면 작가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희라의 같잖은 협박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현강은 정말로 그렇게 할 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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