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7화 (7/204)
  • #   7 - 3773247

    #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6)

    다시 사는 천재 작가 6

    금홍이.

    솔직히 말하면 난 여자를 많이 만나왔다.

    하지만 하늘에 맹세코 금홍이만큼 사랑한 여자는 없다.

    요정에서 기생이던 금홍이를 본 순간, 한 눈에 반했다.

    나의 적극적인 구애에 잠시 같이 살기도 했다.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폐병환자인 나는 금홍이와의 생활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고, 우린 헤어졌다.

    그러나 얼마 후, 기회가 찾아왔다.

    큰아버지의 유산으로 큰 돈을 물려받은 것이다.

    나는 그 돈으로 다방 <제비>를 차리고 금홍이에게 편지를 썼다.

    ‘당장 결혼할 수 있음 – 이상’

    금홍이는 편지를 받고 날 찾아왔다.

    그리고 <제비>를 보고 아주 좋아했다.

    -이런 가게를 갖는 건 내 평생의 꿈이었어요, 이상 씨!

    그러나 나도 금홍이도 경영엔 젬병이었다.

    2년 후, <제비>는 문을 닫았다.

    금홍인 가게의 간판을 떼기도 전에 홀연히 사라졌다.

    나의 가난을 피해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난 내 가난을 원망할 뿐, 금홍이를 욕하지 않았다.

    그녀를 나의 문학적 뮤즈로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런 금홍이가...

    지금 내 앞에 다시 나타나다니.

    “그, 금홍이?!”

    놀란 내가 소리쳤다.

    이 긴 생머리의, 새침한 인상의 금홍이가 빤히 날 보았다.

    “네...금홍이요.”

    내가 알던 그 금홍이와 딱 닮았냐면, 그것도 아니다.

    내가 알던 금홍이는 더 키가 작고 가무잡잡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금홍이는 서양의 공주처럼 크고 희다.

    하지만 왠지...

    금홍이를 처음 봤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유임 선생님이 내 옆구리를 살짝 찌른다.

    “샘, 왜 그래요, 갑자기.”

    “아니,...금홍이가...금홍이가...”

    그러자 금홍이가 피식 웃는다.

    조금은 귀찮고 난감하다는 얼굴로.

    “저, 내일 다시 오면 될까요?”

    “아, 네네. 그러세요. 인수인계 해드릴게요.”

    금홍이는 얼른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멍하니 사무실 문을 바라보았다.

    “형. 괜찮아요?”

    “아? 어어.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었다.

    이거 혹시 꿈인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금홍이가 온 게 그렇게 좋아요? 정신을 못 차리네.”

    “뭐? 너 금홍이를 알아?”

    “쟤 문창과 퀸카잖아요. 쟤 따라다니는 남자애들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뭐라고? 죽일 놈들.

    “...난 그런 거 아니야. 난 쟤 몰랐어.”

    “금홍이 금홍이 거린 건 뭔데요.”

    ...할 말이 없다.

    금홍이가 날 비웃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를 귀찮게 할 남자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뭔가, 오해를 산 기분이었다.

    시무룩해짐과 동시에 이성적 판단이 돌아왔다.

    이건 그냥 우연일 확률이 높다.

    따지고보면 동명이인도 아니다.

    금홍이는 기생 시절 이름이고, 본명은 ‘연임’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진짜 기가 막힌 우연이 아닌가.

    ***

    교학팀 근무가 끝나고, 지훈이가 자취집에 오기로 했다.

    그리고 일곱 시 무렵.

    “형- 저 왔어요.”

    “어. 문 열어줄게.”

    지훈이가 멜론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멜론 엄청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울 정도로.”

    지훈인 이따금 이런 식으로 날 놀려댔다.

    하지만 나도 그 선물이 싫진 않았다.

    “잘 사왔다. 안 그래도 다 먹어가던 차였어.”

    우리는 멜론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지훈이는 아마 소설에 대한 감상을 들으러 왔겠지만 바로 그런 얘길 시작할 순 없으니까.

    나는 간간히 그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멀끔한 얼굴에 구김살 없는 표정.

    지훈이의 아버지는 공장을 운영하는 자산가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테가 났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난 본론을 꺼냈다.

    “너는 소설을 왜 써?”

    지훈인 예상치 못한 물음이었는지 꽤 당황해했다.

    “네? 그거야...소설을 좋아하니까요.”

    “소설을 읽는 게 좋은 거야, 쓰는 게 좋은 거야? 아님 소설 자체가 좋은 거야?”

    “그건...모르겠어요.”

    답은 정해져 있다.

    읽는 게 좋으면 애독가가,

    쓰는 게 좋으면 작가가,

    소설 자체가 좋으면 연구자가 체질이다.

    “음...잠시만요.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지훈인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멜론을 한 접시 다 먹어치울 때까지.

    “...소설 자체가 제일 좋고...읽는 게 그 다음이고...쓰는 게 마지막이려나요.”

    “근데 왜 작가가 되려고 생각했어? 문학 연구 쪽으로 가는 게 성향에 더 맞지 않아?”

    “어렸을 땐 문학을 한다! 라고 생각하면 작가만 떠올리잖아요. 또...그게 멋져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길로 들어섰는데...갈수록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런데 대학원까지 들어왔는데 이제 와서 길을 되돌리긴 늦은 게 아닌가 싶고요. 또, 따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요, 저.”

    이 녀석, 김혜경과 판박이다.

    아마 몇 년 더 지나면 열등감에 고통 받겠지. 김혜경처럼.

    “먼 길을 돌아가지 마.”

    “네?”

    “네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게 정해져 있는데 왜 자꾸 다른 길로 가려는 거야.”

    “...제가 잘하는 게 뭔데요?”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소설에 대한 글쓰기’.”

    “비평이요?”

    “뭐, 그런 셈이지.”

    “에이~! 형, 비평은 아무나 해요? 한국대 나온 사람들도 비평 등단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긴데! 그건 소설보다 더 어려울 걸요?”

    “너한테는 더 쉬울지도.”

    사실 지훈이가 수업에서 합평을 했을 때 느꼈다.

    소설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고.

    “아무튼, 내 의견은 그래. 잘 생각해 봐.”

    이야기는 그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고민할 시간이 많이 필요할 테니.

    “거참...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해서 싱숭생숭하게...”

    지훈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뭔가 떠오른 듯 내게 말했다.

    “형, 솔직히 말해 봐요.”

    “뭘?”

    “이금홍 좋아하죠?”

    “오늘 처음 봤다니까.”

    “첫눈에 반했겠지.”

    “아니야.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거야.”

    “알았어요. 일단은 그렇게 넘어가 줄게요. 하지만 형, 괜한 기대 하지 말아요.”

    “무슨 기대?”

    “걔 문창과 남자랑은 절대절대 안 사귀는 걸로 유명하거든요. 철벽 고수라던데.”

    안다.

    아까 날 보고 짓던 비웃음만 봐도 느낄 수 있다.

    난 덤덤한 척 물었다.

    “왜? 1학년 입학했을 때 양아치같은 복학생한테 크게 데였대?”

    “어? 어떻게 알았어요?”

    “뻔하지. 대학교 연애.”

    “그런데 그 복학생이 누구게요?”

    “모르지.”

    “김한 선배에요.”

    ...그건 생각 못했다.

    어떻게 그 놈은 싫은 짓만 골라서 할까.

    아무튼 지훈인 신나게 떠들고는 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멜론 껍질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며 생각했다.

    김한과 금홍이...오래 사귀었을까.

    금홍이가 신입생 때라면 적어도 4년 전의 일이다.

    “아이씨...열 받아.”

    나는 신경질적으로 건축학 책을 들춰보았다.

    숫자와 각도의 세계 안에서 내 마음은 점차 안정되어갔다.

    어렸을 땐 화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날 길러주신 큰아버지는 내가 ‘환쟁이’가 되는 걸 극구 반대하셨다.

    기술을 배우길 원하던 그의 뜻대로 난 건축기사가 되었다.

    건축 도면도 그림은 그림이니까.

    도면 속 각도와 숫자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됐다.

    지금처럼.

    그리고 문득- 아이디어가 하나 튀어 올랐다.

    집을 짓는 이야긴 식상하다.

    하지만 부수고 다시 짓는다면?

    마치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금홍이처럼.

    두 금홍이를 같은 사람이라 쳐보자.

    내가 알던 금홍이를 금홍1이라 하자.

    오늘 만난 금홍이를 금홍2라 하자.

    금홍1과 결별하고 금홍2를 사랑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금홍1과의 추억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걸...건축과 연결해보자. 부수는 것도 건축의 일부다. 건물 안에 사람들의 기억이 녹아 있고 그것을 아름답게 부술 수 있다면...”

    급하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

    어젯밤, 나는 결심했다.

    금홍이를 완벽하게 동료로 대하겠다고.

    그것이 현재로서 그녀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금홍이는 인수인계를 받으러 교학팀 사무실로 왔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같이 일하는 사이니까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여기선 다 그렇게 해요.”

    “아...네. 선생님.”

    “금홍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금홍인 처음엔 경계심을 보였다.

    하지만 내가 선을 지키자, 그녀의 얼굴도 편해졌다.

    금홍1은 남자의 관심을 즐기길 좋아했다.

    금홍2는 남자의 관심을 경계한다.

    그 둘, 다른 사람이 맞긴 맞나보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드라마 구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우웅-우웅-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저...이상 선생님 되세요?

    “...맞는데요.”

    -안녕하세요. 저는 Y신문사 문화부 기자 서인희라고 합니다. 이번에 당사 신춘문예에 <세속적 사랑의 노래>라는 단편소설 보내주셨죠?

    “그런데요.”

    -혹시 어디에 발표하셨거나 다른 신문사에 중복투고 하셨나요?

    “아닌데요.”

    -또는 다른 사람의 원고를 인용하거나 재구성하셨나요?

    “전혀 아닙니다.”

    -저희 쪽에서 따로 검토 과정을 거치긴 하겠지만...일단 축하드립니다. 이상 선생님의 작품이 이번 신춘문예 소설부문에서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한 번 한 등단, 두 번은 못 하랴.

    하지만 정말 기뻤던 건...

    내 문학이 21세기에도 통했다는 점이다.

    -곧 신문에 올라갈 기념사진 촬영이 있을 예정입니다. 시상식은 내년 1월 2일이고요. 상금은 그 후에 지급됩니다.

    기자는 친절하게 앞으로의 일정을 말해줬다.

    -그럼 사진 촬영 날에 뵙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아, 저기...여쭤볼 게 있는데요. 다른 심사위원분들도 궁금해 하신 점인데...

    “네. 말씀하세요.”

    -본명이 ‘이상’이신가요?

    “아니요. 필명입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필명을 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하긴.

    미치지 않고서야 필명을 ‘이상’으로 할 신인 작가는 없다.

    “그냥, 그 이름이 떠올라서요.”

    그렇게 난 혜경의 몸에 들어온 지 한 달만에 등단을 했다.

    그리고 내 등단으로 인수대 문창과 아니, 한국 문단은 발칵 뒤집혔다.

    김한이 가라사대 계간지 봄호에 발표한 신작 <나의 악마의 노래>.

    그 작품과 나의 <세속적 사랑의 노래>가 표절시비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