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6화 (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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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5)

다시 사는 천재 작가 5

Y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장.

Y일보는 한국의 주류 일간지였다.

게다가 올해는 마감일이 가장 늦어 테이블엔 투고 원고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한 마디로, 올해 신춘문예의 대미.

심사는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한국 유수의 소설가들과 평론가들 9명이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모여 있었다.

“올해도 원고량이 정말 많네요.”

“이거 다 보려면 우리 죽었어요.”

“점심 든든히 드시고 오셨죠?”

“심사 끝나면 술 한 잔 해야겠는데요? 보기보다 엄청 피곤한 일이잖아요, 이거.”

심사위원들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명패를 찾아 자리에 앉았다.

빈 자리는 단 하나.

‘조인창 심사위원’이라는 명패만 덩그러니 놓인 자리.

조인창 한국대학교 국문과 명예 교수.

한국 문학의 대학자로, 특히 이상 문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연구가였다.

한국 문학계의 아버지.

그것이 조인창 교수를 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안 오시는 걸까요? 편찮으시다는 얘긴 들었는데...”

“위암 말기라고 하시니까...”

“하지만 심사위원 제의를 받아주신 걸 보면 오실 마음이 있으셨을 텐데.”

“요 며칠 부쩍 몸이 더 안 좋아지셨다나 봐요.”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조인창은 이들에게 정신적 스승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한 기자가 심사장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부 기자 서인희라고 합니다. 이번 신춘문예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서 기자는 심사장을 슥 둘어보았다.

“다 오신 것 같으니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8시까지 마무리해 주시고요, 저는 옆 사무실에 있을 테니 필요하면 바로 불러주세요.”

“조 교수님은 안 오시나요?”

서 기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아침에 조 교수님 아드님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교수님께서 어젯밤부터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못 오신다고요. 당선자 선정은 다른 심사위원분들의 결정을 따르시겠다고 하셨어요.”

심사조차도 볼 수 없는 상황이라니.

심사위원들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장례식에 갈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럼, 각자의 앞에 놓인 원고부터 살펴봐주세요. 그럼...”

서 기자가 그렇게 나가려던 차였다.

드륵...

회의실 문이 열렸다.

“조 교수님?!”

“...교수님!”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인창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그는 코 밑에 산소줄을 댄 채, 겨우 호흡을 하고 있었다.

휠체어를 미는 사람은 조인창의 아들이자 유명 영화감독이었다.

“아버지께서 꼭 오셔야겠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중년의 아들은 자신이 졌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는 조인창의 명패 앞으로 휠체어를 끌었다.

“내가 안 늦어서 다행이군요. 다들 앉아요, 다리 아프게 왜 다 일어나 있나.”

조인창이 들릴 듯 말 듯한 쇳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창백한 얼굴 사이에서 열정으로 빛나는 눈.

그것이 바로 조인창의 위대함을 말해주는 듯했다.

“새로운 소설가를 뽑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소.”

조인창이 엷은 웃음을 지으며 원고를 하나 짚었다.

문학을 위한 대 학자의 살신성인.

그것은 심사위원들에게 적잖은 자극을 주었다.

웃음기 하나 없이, 모두들 눈에 불을 켜고 원고를 보았다.

3시...

4시...

5시...

종잇장 넘어가는 소리만 가득했다.

중앙 원탁에 소설이 하나 둘 씩 쌓여갔다.

심사위원들이 눈에 띄는 소설을 모은 것이다.

그렇게 한 번 원고가 추려지면, 모든 심사위원들이 다시 돌려 읽고 토론을 한다.

그 토론 끝에 단 한 명의 당선자가 결정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춘문예였다.

그러나 조인창은 아직 한 편의 작품도 뽑지 않았다.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거나 너무 나이브한 형식을 반복하고 있다. 그 어떤 것도 매력적이지 않아.’

“흐음....”

조인창은 낮은 한숨을 쉬며 또 하나의 원고를 치웠다.

그리고 다음 원고를 본 순간, 멈칫했다.

‘<세속적 사랑의 노래>... 평범한 제목은 아니군. 키치한 건가, 장난스러운 건가, 아니면 슬픈 건가...복합적이야’

그는 그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읽었다.

“이런...”

조인창이 이마를 짚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그의 곁을 지키던 아들이 물었다.

조인창은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핏줄이 선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원탁에 갖다 놓거라.”

아들은 <세속적 사랑의 노래> 원고를 원탁으로 옮겼다.

조인창은 온 몸에 힘이 빠진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뭔가에 혼을 빠진 듯 멍한 얼굴로.

겨우 다음 원고를 잡았으나, 집중을 못 하고 눈을 비볐다.

“아버지. 충분히 보셨으니 이제 병원으로...”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다.”

“예?”

“놀라서 그래.”

부자는 작게 속삭였다.

“뭐가 말입니까...?”

“누군가가...살아 돌아 온 것 같은 기분이다.”

***

소설 투고 후 당선자 발표까지 걸리는 시간은 2~3주.

그래도 1월 1일 전에는 무조건 당선자에게 전화를 한다.

그 사이 대학원은 겨울방학을 했다.

문창과의 가장 조용한 시즌.

다들 신춘문예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한 시간을 보낸다.

학교를 지키는 건 조교들 뿐.

이현강의 뒤치다꺼리는 남자 후배들이 떠맡고 있다.

주차장 자리 맡기.

온갖 잡스러운 심부름하기.

그 집안 잡일하기 등.

물론 구체적인 명령은 김한을 통해 이뤄진다.

이현강이 지주라면, 김한은 마름이랄까.

나는 요즘 문학 공모전을 찾고 있다.

신춘문예 당선 수상금은 고작 500만원.

그나마 이건 많이 받는 거다.

등단 후 청탁을 받으면 기껏해야 70만원에 내 소설을 팔아야 한다.

이게 대한민국 작가의 현실이다.

작가들이 피로 쓴 글을 이런 푼돈에 가져가다니.

화가 난다.

1930년대보다 나아진 게 대체 뭐란 말인가.

그러니, 뭐가 됐던 ‘글’로 돈을 벌 방법을 찾아야 한다.

드륵드륵...

마우스 휠을 굴리며 상금을 훑었다.

백...삼백...이백...흠...오천...오천?!

달칵! 나는 페이지를 클릭해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엠플릭스 드라마 공모전 - 직업·전문직물>

한국 드라마의 세계화를 위한 창의성과 참신함을 갖춘 드라마를 찾습니다.

현실적으로 제작 가능한 미니시리즈 극본을 모집합니다.

직업·전문직물 원고만 모집 가능합니다.

응모 형식 : 기획안과 16회 분량의 줄거리, 4편 분량의 트리트먼트, 2편 분량의 극본.

...이거다.

시나 소설만 쓰다가 굶어죽을 생각은 없다.

그건 이미 전생에서 뼈져리게 해 봤다.

사실 나는 드라마의 ㄷ자도 모른다.

1930년대는 티브이도 없었고, 영화도 겨우 보던 시대다.

하지만 모범생 김혜경은 다르다.

그는 지난 8년 간 전공인 소설 외에도 시, 평론, 드라마 수업을 꾸준히 들었다.

특히 영상물에 관심이 많아 머릿속에 든 이론도 탄탄하다.

공모 마감일은...1월 2일.

...3주 남았다.

빠듯하다.

하지만 5천이면 빠듯해도 할 만하다.

그런데 뭘 쓴다?

직업·전문직이라...

흠, 전문직...

...그건 나잖아?

‘이상’이 ‘이상’이 되기 전, 그러니까 ‘김해경’으로 살던 시절에는 잘 나가는 건축기사였다.

건축기사 생활을 하다가 등단을 하고 작가가 된 셈이지.

하지만 이건 당장의 아이디어일 뿐.

또한 김혜경은 드라마는 잘 알아도 현대의 건축에 대해선 문외한이다.

나는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건축 코너에서 볼 만한 책을 골라서 그 자리에서 훑어보았다.

그 동안 한국의 건축학은 많이 발전했다.

1930년대에 비해 복잡하고 섬세해졌다.

공부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책을 빌렸다.

현대 건축에 대한 이해야 며칠이면 끝날 거다.

문제는 이걸로 무슨 이야기를 쓰냐는 거다.

생각에 잠긴 채 도서관을 나서려 할 때였다.

나는 멈칫하고 도서관 한 구석을 바라보았다.

문학 코너.

“....”

지금까지 문학 코너를 일부러 피해 다녔다.

특히 ‘한국문학’ 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 곳으로 가면, 내 책이 있을 테니까.

그 책들을 보면 기분이 이상할 것 같았다.

내가 죽은 게 현실로 느껴질 것 같아서.

하지만 그것은 한번은 보고 넘어 갈,

피할 수 없는 유혹이기도 했다.

나는 천천히 문학 코너로 들어갔다.

“...많이도 갖다 써먹었네. 출판사 놈들.”

수많은 출판사와 수많은 판본들.

나의 소설과 시, 수필, 하다못해 잡스러운 글까지 다 책으로 나와 있었다.

심지어 내 이름을 딴 문학상까지 있었고.

책을 들춰보다가 몰랐던 사실도 하나 알게 됐다.

내 아내 동림이가 유명한 화가와 재혼해서 백년해로를 했다는 것이다.

고생만 시켜서 미안했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서가를 보다보니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물론 내 입으로 천재 천재 거리며 살아오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는 건 달랐다.

그렇게 짧게 살다 갔는데, 한국 문학에 이런 발자취를 남겼다니.

문득 오래 전 만났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상이, 넌 할 수 있어. 넌 우리나라 문학에 다시없을 불세출의 천재니까.

불세출의 천재.

나는 그 말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힘이 들 때마다 그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런 영광스런 별명을 지어준 그 친구는 내게 또 이렇게 말했다.

-오래 살아라, 상이. 꼭 그래야 해.

하지만 난 28살의 나이로 죽어버리고 말았다.

아마 그 친구는 많이 슬퍼해줬겠지.

만약 내가 이렇게 미래에서 새 삶을 얻은 걸 안다면...

분명 나보다 더 기뻐할 거다.

그 친구의 얼굴이 문득 그리워졌다.

먹먹한 기분을 안고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다.

지훈이가 내 자리에서 알짱대고 있었다.

“웬일이냐?”

“형, 나 이번 신춘도 다 떨어졌나 봐요. 아무데서도 연락이 안 와요.”

“Y일보 당선자 나왔대?”

지망생 판은 거기서 거기라서, 당선 전화를 받으면 소문이 난다.

그런데, 설마 나 떨어졌나?

“아뇨. 그런 건 아닌데...저는 Y일보는 기대도 안 했어요. M일보에 그래도 제일 괜찮은 걸 냈는데 M일보 당선자가 나왔대서요. 어디 전문대 문창과 학생이래요. 그런데 웬 책이에요? 건축학?”

“음...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

“그런 게 있어. 그래서, 하소연 하러 온 거야?”

“아뇨, 형. 저 진지하게 부탁할 게 있어요.”

“부탁? 뭐?”

“제 소설 좀 봐주세요. 그리고 진단을 좀 내려주세요. 문학을 그만 할지, 말지.”

...바쁜데.

저 건축학 책도 다 읽어야 하고.

하지만...예전의 날 잡아 일으켜 준 친구를 생각했다.

그에게 받았던 걸 지훈이에게 물려 줄 시간인가 보다.

지훈이도 그 정도 도움은 받을 자격이 있는 녀석이고.

“그래. 안될 거 없지.”

“고마워요! 형 카톡으로 소설 보내 놓을게요.”

“알았어. 지금 당장 봐줄게.”

지훈이는 자기 소설에 자신이 없다.

합평을 할 때도 귀가 벌게져선 고개만 끄덕인다.

그런 녀석이 먼저 소설을 보여주다니.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지훈이가 보낸 소설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형식보다는 스토리의 진정성에 집중하는...이를테면 리얼리즘이 살아있는 소설.

정성들인 묘사와 솔직함이 장점이었고...

단점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너무나 투명하다는 것.

즉,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이 없다는 것.

“후우...”

한숨이 나왔다.

자기 시각이 없다는 건 작가로선 치명적인 단점이다.

그거야말로 작가의 재능이요, 성격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말해준다...”

그렇다고 지훈이가 문학을 포기하길 바라지 않는다.

저렇게 성실한 녀석인데 당연히 보상을 받아야지.

하지만 소설가로서...? 글쎄...

그렇게 난데없는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혜경 샘.”

“네, 유임 선생님.”

“아까 말하는 걸 잊었는데, 제 후임이 이제 곧 인사하러 올 거예요.”

유임 선생님의 계약은 이번학기까지다.

정확히는 내일.

어제 교학팀 사람들과 소소하게 송별회를 하기도 했다.

“아쉽네요. 이제 학교 올 일 없어요?”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죠. 여긴 그냥 알바 한 거고.”

맞는 말이다.

학교 사무원은 졸업생이 취업 준비와 병행하여 잠깐 하는 알바나 마찬가지니까.

“이번 사무원은 문창과 졸업생이라던데요?”

“그래요?”

“샘도 알려나, 이름이 뭐였지...좀 특이했는데.”

“지금 졸업생이면 하나도 몰라요. 학번 차이가 몇 갠데.”

“그런가. 아! 저기 왔다. 이리 와요.”

유임 선생님이 손짓을 했다.

그 손짓이 닿는 곳에, 긴 생머리의 여학생이 서 있었다.

...놀랐다.

꽤나 눈에 띄는 미인.

“...와서 인사해요. 같이 일 할 김혜경 조교선생님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묘하다.

묘하게...낯이 익다?

왜지? 기억에 전혀 없는 학생인데?

“학생, 이름이 뭐라고 했죠? 내가 그새 잊어버려서.”

유임 선생님이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금홍, 이금홍이에요.”

...뭐?

“그, 금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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