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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4화 (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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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3)

    다시 사는 천재 작가 3

    예상대로였다.

    김혜경의 <세속적 사랑의 노래>에 대한 김한의 힐난이 쏟아졌다.

    “오 선배 소설이랑 소재가 비슷하네요. 이 소설은 여자가 남자를 버리는 거죠? 돈이 없다는 이유로요.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감정선이 과해요. 여자가 미안하다 울부짖는 내용을A4 8장이나 쓴 것도 대단하네요. 두 줄 정도로 줄일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남자를 떠났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요.”

    인정.

    “이 이별이 말해주는 의미도 모호해요. 교육과정 교과서에서 다루는 이별의 정한, 뭐 이런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이 여자의 감정 서술 방식에 새로운 시선이나 스타일이라도 담겨져 있나요?”

    역시 인정.

    혜경의 소설은 부족했고, 과잉되었으며,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는 티가 났다.

    “저도 한 마디 해도 될 까요?”

    이번엔 오희라였다.

    김한은 할 말이 잔뜩 남았단 표정이었지만 오희라에게 기회를 넘겼다.

    “하아...전 이런 소설만 보면 불쾌해서...”

    오희라가 연극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일단 한이가 얘기한 부분 모두 공감해요. 토시 하나 빠질 것 없이. 하지만 저는 이 소설의 가장 큰 문제가 진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드는데...글에서 슬픈 척을 하니 기만당하는 느낌? 저는 그래요.”

    역시 오희라는 하수다.

    김한은 적어도 글을 제대로 볼 줄 안다.

    하지만 오희라는 그저 앙갚음을 위해 추상적인 지적만 늘어놓는다.

    진정성? 기만? 그만큼 모호한 단어가 어딨단 말인가.

    “제가 좀 더 말해도 되겠습니까?”

    오희라 말이 끝나자마자 김한이 손을 든다.

    이런 식으로 합평이 쏠리면 교수가 제재를 해야 하지만...

    “해 봐.”

    이현강이 그런 걸 해줄 리가 없지.

    “아니요, 교수님.”

    나는 김한의 말을 막았다.

    혜경의 소설에 대한 합평은 이걸로 충분하다.

    이젠 내 소설 차례다.

    “충분히 들었습니다. 저도 예상했던 문제점들이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제가 앞부분을 좀 퇴고했는데...지금 여기서 같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퇴고를 해서 가져왔다고?”

    “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A4 1장 가량이니 부담 없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 놈 왜 저래? 미쳤어?

    이현강의 표정이 딱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큰 신경 쓰기 싫다는 듯 혜경의 원고를 치웠다.

    “나눠 줘 봐. 이 한심한 소설 쳐다보는 것도 고역이니.”

    나는 출력해 온 <세속적 사랑의 노래> 수정본을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다들 내 글을 읽었다.

    “....”

    “...아....”

    강의실엔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수정본을 확인했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사 구조는 동일합니다. 다만 주인공의 발화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원본의 주인공이 미안해하며 사랑을 증명했다면 수정본의 주인공은 화를 내며 사랑을 증명하는 식이죠.”

    “....”

    부가설명을 했는데도 말들이 없다.

    오희라도, 김한도, 이현강까지.

    “흐음......”

    이현강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석사 신입생 하나를 가리켰다.

    “너, 말해 봐.”

    “아...저요? 아...이건...와...모르겠어요. 제가...제가 이걸 평가해도 되는 건지...놀랍다는 말밖에는 안 나와요. 설명을 못 하겠는데, 글 자체에 아우라가 느껴져요.”

    “그 오른쪽. 말해 봐.”

    “지금 이 여자가 가난한 남자를 욕하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 여자가 남자를 그 분노의 무게만큼 사랑하는 게 느껴져요. 그것도 한 장만에. 제가 제대로 읽긴 한 건가요? 왜 이런 게 느껴지지?”

    “...그 오른쪽.”

    그 오른쪽은, 지훈이었다.

    “이거 정말 재밌어요. 구조적으로 새로워요. 맞아요. 처음에 ‘사랑은 무슨 개새끼야’이라고 해놓고 내내 사랑을 욕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기묘하고 이율배반적인 느낌을 독자들에게 주고 있어요. 사랑이란 감정을 인정하기 싫어서 일부러 험난한 모험을 하는 것처럼....”

    지훈이 녀석, 잘 읽어냈다.

    녀석도 혜경 못지않게 문학 공부를 열심히 한 티가 난다.

    그때였다.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오희라였다.

    “저는 이 소설이 좀 기분 나빠요. 여자를 모욕하는 것 같아서.”

    “모욕이라뇨?”

    지훈이 놀라 물었다.

    “이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건 알겠어요. 느껴져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인여성 캐릭터를 이렇게 욕이나 하는 어린애로 만들 이유 있나요? 게다가 떠나는 쪽은 여자인데...왜 여자가 욕을 하죠? 이해가 안 돼요. 이건 작가의 윤리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나왔다.

    악인 캐릭터에 딴죽을 걸 수 있는 최강의 조커 카드.

    ‘윤리의식’

    분위기가 싸해졌다.

    오희라는 내가 무슨 성범죄자라도 된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오희라에게 물었다.

    “무엇이 윤리적이지 않다는 거죠? 오 선배님.”

    “이 여자는 자신이 이 관계를 배신해놓고 남자 탓을 하잖아요.”

    “당연하죠.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윤리랑은 하등 상관없는 이기심이니까요.”

    “뭐라고요?”

    “그 누구도 애인을 위해 연애를 하지 않아요. 자신을 위해서 하지. 그게 돈이건 감정적인 것이건. 윤리적인 사랑을 추구할 순 있죠. 하지만 그것도 종래에는 자기만족으로 귀결됩니다. 윤리의식 역시 결국 자기의 기준이니까요. 제 소설의 여자는 돈도 좋고 사랑도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돈이 없는 상황이 화가 나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마치 금홍이와 나처럼.

    기생이던 금홍이는 예쁘고 똑똑하고 매력적이었다.

    나는 그런 금홍이가 좋았다.

    금홍이도 나의 많은 걸 좋아했지만 가난만큼은 저주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을 위해 서로를 만났다.

    다만 <제비>가 망하고, 금홍이가 자신을 위해 날 떠났을 뿐이다.

    “...그런 식의 설명까지 해야 한다면 소설은 실패한 소설 아닌가요?”

    “제가 설명 드리기 전에도 아셨던 것 같은데요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도 알고, 그 마음이 윤리적이지 않고 이기적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으니...제 설명이야말로 요샛말로 TMI죠,”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선배님. 문창과에서 18년이나 계신 관록이 느껴지네요.”

    “저...제가 끼어들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아까 쉬는 시간에 나에게 말을 걸던 여학생이었다.

    “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이해가 돼요. 저라도 제 상황에 화가 나서 탓할 사람을 찾을 것 같거든요.”

    “맞아요. 여자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이해가 되는 상황이라...전혀 기분 나쁘다거나 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눈치만 보던 학생들이 나섰다.

    용기를 내는 얼굴들에 젊은 혈기가 느껴졌다.

    오희라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저렇게 어린 학생들에게 반박을 당한 건 처음일 거였다.

    하지만 이렇게 평등하게 토론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대학원이다.

    서열을 나눠가며 개처럼 싸우는 곳이 아니라.

    “여기까지 했으면 합평은 충분하군. 김혜경.”

    이현강이 말했다.

    “나쁘지 않아.”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 한 마디는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지금껏 이현강에게 칭찬 한 마디 들어보지 못한 혜경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나의 첫 합평이 끝났다.

    지훈이와 귀찮은 일이 생길까 얼른 대학원 건물을 나섰다.

    “형.”

    “어.”

    “저 오늘 형 진짜 다시 봤어요. 똑똑한 건 알고 있었지만...소설도 엄청 늘었잖아요.”

    “그러냐.

    “형을 보니까...나도 소설을 막...막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심으로.”

    그건 참 뿌듯한 말이었다.

    ‘이상’으로서도, 선배로서도.

    누군가 내게 영감을 받는 것 멋진 일이다.

    “그럼 그냥 가지 말고 저녁이나,”

    사줄게.

    라고 말하려했다.

    하지만 이내 주머니 사정을 떠올렸다.

    저번 달 아르바이트 비를 조교 회비로 빼앗긴 게 컸다.

    그 돈으로 교수들 종강 선물을 산다나.

    물론 그 짓을 추진한 건 김한이었다.

    “...나중에 밥이나 같이 먹자.”

    “좋죠, 형.”

    ...내가 꼭 돈 번다.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이건 ‘김혜경’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가난은 ‘이상’에게도 지긋지긋한 걸림돌이었으니까.

    “어이. 김혜경.”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김한이다.

    “너 그 소설 신춘문예에 낼 거야?”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이유가 없으므로.

    다만 그가 내 수정본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 아니야. 이 교수님께서 그거 완성하면 출력해서 가져오라셔.”

    “왜?”

    “왜긴 왜야, 봐주시려고 그런 거지. 너 신춘문예 붙이시려고. 영광인 줄 알아.”

    “...알았어.”

    보여주는 건 상관이 없다.

    이현강의 평을 받아들이는 건 내 자유니까.

    그렇게 뒤돌아 가려는데 또 물었다.

    “너 왜 교문 쪽으로 가?”

    “오늘 근무시간 끝났으니까. 집 가야지.”

    “? 미쳤어? 어디 조교가 교수님들 퇴근하기도 전에 자리를 비워? 우리 교수님 연구 자료 출력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건 네 얘기겠지. 네 교수 시중은 개인 조교인 네가 들어.”

    난 바쁘다.

    어서 집에 돌아가서 내 소설을 완성시켜야 한다.

    김한의 말대로 나는 <세속적 사랑의 노래>를 신춘문예에 낼 생각이었다.

    꽥꽥대는 김한을 무시하고 교문을 나섰다.

    “지훈아. 이번 해 마지막 신춘문예 마감일이 언제였지?”

    원래 혜경이 꿰고 있어야 하는 정보다.

    하지만 죽기 전의 그는 신춘문예 공고를 보는 것조차도 힘들어했다.

    “웬만한 곳은 오늘 내일이 마감이에요. Y일보만 다음주 12월 4일 까지고요. 어휴, Y일보에 사람 많이 몰리겠죠?”

    원래 마감이 제일 늦은 신문사에 원고가 제일 많이 몰리는 법이다.

    “너 몇 군데 낼 거야?”

    “전 다섯 군데? 안 될 거 아는데 그래도 넣어야죠. 그리고 지금 고치고 있는 건 Y일보에 내려고요. 형은요?”

    “많이도 내네. 난 하나.”

    “고작 하나?”

    “Y일보에.”

    “형, 지금 쓰고 있는 그 소설 말하는 거예요? 그 소설 좋긴 한데...일주일 밖에 안 남았잖아요.”

    난 대답 대신 그냥 웃었다.

    일주일밖에 안 남았으니 이렇게 부리나케 집으로 가려는 거 아니겠냐.

    지훈과 나는 자취집이 서로 멀지 않았다.

    지훈은 소설이 잘 안 써진다며 하소연을 했다.

    언젠가 녀석의 글을 제대로 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때였다.

    “아, 그래서 형...저 진짜 이번에도 안 되면 아버지가 그냥 공부 접고 집안일이나 도우라고 난리를 쳐서...형...? 형?”

    “...”

    “왜 과일가게를 쳐다보고 있어요? 과일 먹고 싶어요?”

    ...주륵.

    “엑? 형 왜 울어요?! 혀엉...괜찮아요?”

    “...멜론...”

    “...멜론?”

    “멜론이...멜론이...”

    그렇다.

    과일 가게에 쌓여 있는 멜론.

    그걸 보니 내 비참한 죽음이 생각나버린 것이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른다.

    “메, 멜론?...엥? 이 형님이 왜 이러시지. 아, 잠깐만요.”

    지훈이 과일 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멜론 두 개를 들고 나왔다.

    “이, 이거 사줄게요. 그만 울어요. 쪽팔려요.”

    나는 그렇게 멜론을 두 개나 받았다.

    무겁다.

    하지만 이건 ‘이상’이 견뎌야 했던 삶의 무게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멜론을 양 손에 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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