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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1)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1)
먼저 김혜경의 기억을 되짚어 보자.
김혜경. 28세. 가난한 농사꾼 집안의 외동아들.
인수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석, 박사까지 진학할 만큼 문학을 사랑했다.
학비는 교내 교학팀 행정사무조교 장학금으로,
생활비는 잡다한 아르바이트로 충당.
그 와중에 두 달에 한 편씩 단편소설을 쓴다. 성실하군.
독서도 충분히 한 편이고 석사 논문 수준도 훌륭하다.
그러나 신춘문예는 8년째 낙방.
학부 시절에는 본심까지 올라가기도 했으나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는 예심 통과도 버겁다.
노력에 비해 성적이 너무 나쁜 편.
그의 문제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유행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다.
‘잘 쓰는 작가’는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전통적인 창작 기법을 능숙하게 자기화하는 작가.
또는 새로운 스타일을 선도하는 작가.
김혜경이 알던 정보를 조합하면...2000년대 이후 문학계는 후자 타입의 작가를 원한다.
이른 바 ‘스타일리스트’의 책은 진정성이 떨어져도 잘 팔리니까.
하지만 김혜경은 전자, 즉 전통파에 해당한다.
두 번째, 대학원 사회가 그를 심하게 위축시켰다.
여기서 ‘김한’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한은 석사 1학기에 이미 등단을 하고 지금도 문단의 루키로 활동하는 중이다.
게다가 그는 대한민국의 대표 소설가인 이현강 교수의 개인 조교이자 애제자다.
그는 등단을 한 후 공공연하게 혜경을 무시하고 천대했다.
혜경에게 자신의 조교 잡무를 떠맡기는 건 예사였고, 그의 소설을 심하게 비난했다.
혜경은 그저 참는 수밖에 없었다.
문창과 대학원에서 등단 작가의 위상은 높았다.
게다가 이현강 교수의 애제자를 건드렸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른 대학원생들도 그를 따라했다.
안 그래도 오랫동안 ‘지망생’에 머물며 자격지심에 절어 있던 그들이었다.
막 대해도 괜찮은 사람.
김한이 허락하고 이현강이 묵인하는 문창과 공공 샌드백.
그들에겐 김혜경은 훌륭한 스트레스 쓰레기통이었다.
김혜경은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달고 살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이 병든 상태에선 스타일이고 뭐고 제대로 된 글이 나올 리 없는 법.
풀리지 않는 글...
대학원 내의 왕따...
교수의 무관심...
이런 종합적인 문제들로 김혜경은 충동적으로 자살을 선택했다.
그의 억울한 감정이 마치 내 것처럼 느껴진다.
이 타오르는 마음은 내가 그의 몸을 빌린 값이겠지.
그래. 한번 더 결심했다.
나는 나를 위해, 그리고 김혜경을 위해 이 인생을 바꿔볼 생각이었다.
먼저, 2020년 한국 문학계가 바라는 신인 작가가 되어줘야겠지.
그 누구의 소설보다 앞서가는 스타일로.
잘 된 일이다.
스타일이야말로 나 ‘이상’의 트레이드마크가 아닌가.
***
나는 김혜경의 근무처인 인수대학교 교학팀으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30분 전에 지하주차장에 가서 자리를 맡아야 한다.
그리고 이현강 교수가 차를 몰고 오면 90도로 인사.
이현강이 차에서 내려 차키를 던지면, 그걸 받아서 대신 주차.
이것이 김혜경의 첫 일과다.
하지만 난 그런 짓 따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물론이요 앞으로도 영원히.
복도 저 끝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며 날 불렀다.
정확히는 김혜경을.
“혜경이 형!”
서글서글한 인상의 이 청년은 올해 문창과 석사로 진학한 후배 송지훈이다.
“형 아침에 왜 연락 안 받았어요?”
자살하느라.
라고 말할 순 없지.
“늦잠 잤어. 피곤해서.”
음...아무래도 말투도 ‘김혜경’의 것으로 나오는 듯하다.
덤덤하고 높낮이 없는 그런 말투.
수수하고 깔끔하게 생긴 김혜경의 얼굴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송지훈의 코끝이 벌겋다.
이 추운 11월에 한데에서 서있다 온 사람처럼.
“너 어디 있다 와?”
“아, 그게...형이 연락이 안 돼서 제가 대신 교수님 주차장 자리 맡고 왔어요.”
“뭐?”
“한 선배가 저라도 가라고 해서...괜찮아요. 아침에 정신 깨고 좋죠, 뭐.”
지훈이 헤헤 하고 웃는다.
여기서 ‘한 선배’란, 김한을 말한다.
김혜경으로 부족해서 송지훈마저 부려먹다니.
발끈, 화가 났다.
요즘 김한의 기고만장함은 절정에 다다랐다.
국내 최대의 문학 출판사 ‘가라사대’에서 첫 소설집을 계약했기 때문이다.
‘가라사대’의 임원 중 하나가 이현강 교수인 건 말할 것도 없고.
“김한이 뭔데 너한테 그런 걸 시켜? 네가 맡은 과는 영문과잖아.”
그렇다. 지훈은 영문과 행정조교다.
영문과에 대학원생이 없어서 문창과에서 파견을 보낸 것이다.
“누가 하면 어때요, 형. 맨날 형만 추운데서 고생하잖아요.”
착한 녀석이다.
‘연줄’을 생각한다면 혜경을 멀리할 법도 한데 오래 전부터 친동생처럼 그를 잘 따랐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고맙다, 지훈아. 하지만 다시는 그런 거 안 해도 돼. 다음에 김한이 또 그러면 네 업무가 아니라고 잘라서 말하고. 협박이라도 하면 김혜경 선배가 하지 말라 했다고 말 해.”
“엥? 형 갑자기 왜 이래요?”
지훈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긴, 교수 말 한 마디면 벌벌 떨던 김혜경이었으니.
그때였다.
퍽!!!
누군가 내 뒤통수를 갈겼다.
“헉. 형 괜찮아요?”
지훈이 놀라 눈이 동그래진다.
“김혜경이.”
...익숙한 목소리. 김한이다.
뒤를 돌아보니 비열하게 실실 웃는 면상이 볼만하다.
김한의 얼굴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 차가운 분노가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지각이냐? 불성실하긴. 안 그래도 학과 일 신경 쓸 거 많은데 너까지 이러지 말자?”
이놈은 학과 일에 신경 써 본 적이 없다.
제 일도 다 혜경에게 떠맡겨 온 놈인데.
오늘따라 왜 이리, 속된 말로 ‘가오’를 잡지?
아니나 다를까. 예쁘장한 여학생들이 우릴 보고 있다.
김한은 작년부터 학부의 소설 창작 강의를 맡고 있다.
소설가랍시고 예쁘장한 수강생들만 추려서 데리고 다닌다더니...알 만하다.
“교학팀은 9시 출근이야. 지금은 8시 55분이고. 그리고 이현강 교수님 주차장 자리는 앞으로 네가 맡아. 개인 조교는 너잖아.”
“뭐? 너 미쳤냐? 왜 이래?”
김한이 얼굴을 구긴다.
쌍욕을 하고 싶지만 여학생들 눈치가 보였겠지.
또, 이현강이 요샛말로 ‘갑질’을 한다는 소문이 나면 애제자로서 골치가 아파질 테니.
“하하...얘가 잠이 덜 깼네. 주차장은 임마, 우리끼리 존경의 의미로 한 거잖아.”
“그러니까 존경심 가득한 애제자인 네가 하라고. 내 후배까지 귀찮게 하지 말고.”
김한이 입을 다문다.
하긴, 여기서 길길이 날뛰어 이미지를 구길 바보는 아니지.
그는 영악하게 말을 돌린다.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나중에 얘기하자. 이거, 복사 좀. 오후에 있는 내 수업 자료야.”
그는 내게 A4용지 한 묶음을 내민다.
“네 소설이야?”
“그래. 단편 신작.”
신인작가 주제에 자기 소설을 수업 자료로 쓰다니.
오만한 놈.
나는 김한의 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제목은 <난장>.
점집의 난장판을 20대 초반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전통적 비속어와 인터넷의 비속어가 융합되어 새로운 웃음 코드를 창출한다. 한 마디로 유쾌함을 노린 소설.
김한은 확실히 스타일리스트다.
유행에 반 박자 앞서 있고 기교에는 여유가 흐른다.
김혜경은 김한의 이런 스타일을 항상 부러워했지.
하지만...
이 소설, 잘 보면 허점투성이다.
이런 남 흉내나 내는 앵무새 소설 따위-
“이런 걸 수업 자료로 쓴다고? 학생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뭐?”
“언어를 융합해서 위트를 주는 목적이 뭐지? 웃음 자체를 위한 웃음인가? 그렇게 모던한 척 하면서 궁색한 신파를 섞은 서사를 깐 이유는? 평론가들한테 칭찬이 고팠나? 이 말놀이가 인물들에게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한다거나 상징적으로라도 전복을 꾀할 수 있나?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 소설이 존재가치가 뭐냐고. 이 소설이야말로 ‘난장’ 그 자체네.”
“야, 김혜경.”
“매체의 언어를 뒤섞는 스타일...저번 ‘가라사대’ 계간지 여름호에 발표된 한지온 작가의 <수사기밀>에서 이미 쓴 기법 아니야? 그럼 이 스타일조차 새로울 게 없지. 한 마디로,”
“김혜경!!!!”
“건질 게 하나도 없어.”
김한의 소설을 그에게 다시 내밀었다.
복도에 정적이 감돌았다.
“이...새끼...미친...”
“내 말 못 믿겠어? 그럼 저 학생들에게 읽혀봐. 내 말이 틀렸는지.”
머리 좋은 김한이 이 소설의 한계를 모를 리 없다.
다만 그 한계를 같잖은 기교로 숨기려다 들통이 났으니 수치스럽겠지.
역시, 김한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다.
시뻘게진 손으로 소설을 가져갔을 뿐이다.
“복사는 네가 해. 어디 시간강사 주제에 행정조교한테 일을 시켜?”
난 마지막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너, 한번만 더 내 몸에 손대면 죽여 버린다.”
얼굴이 붉다 못해 퍼레진 김한 따위 알 바 아니다.
나는 출근을 하기 위해 교학팀 사무실로 들어가려 했다.
“야.”
김한이 내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충격에 빠진 채 멀거니 서 있던 여학생들에게 대뜸 소리를 질렀다.
“뭘 보고 있어! 강의실 안 들어가?!”
“아,...! 네...”
“가, 가볼게요.”
여학생들은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김한은 날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놔. 너 때문에 진짜 지각하겠어.”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지껄이는 기술은 어디서 배웠냐?”
“말 같지도 않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김한은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나 내 글에 대해 파악도 못 하는 머저리요’ 하는 말과 같으니.
“하. 등단도 못한 놈이 책 몇 권 읽은 모양이지.”
그는 내게 속삭였다.
“오늘 10시 수업에서 네 소설 합평하지?...그때 보자.”
합평이란 교수와 학생들이 창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누는 것을 의미했다.
예술계 대학만의 전통 있는 수업방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학원에서 합평은 달랐다.
의미 있는 조언을 해주는 건 몇몇 뿐.
대다수는 ‘개인적인 의견’이란 말 뒤에 숨어 비난과 폭언을 해대길 즐겼다.
그러니까 김한의 말은...
오늘 합평 수업에서 김혜경의 소설을 갈기갈기 찢어주겠단 선전포고였다.
“그래. 어디 해 봐. 하지만 내 소설의 핵심을 똑바로 짚어야 해. 재밌겠네.”
“...미친 새끼.”
김한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가버렸다.
숨죽이고 있던 지훈이 내 팔을 붙잡았다.
“형...형 맞아요? 딴 사람 아냐?”
음...아니지.
“하긴. 전 형 공부 열심히 하는 거 알고 있었어요. 이제야 그 티를 내시네요. 그런데...괜찮겠어요?”
지훈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안다.
이현강의 애제자를 건드렸으니 어떤 불이익이 닥쳐도 이상하지 않다.
어쨌든 우린 9시 5분에 교학팀 사무실로 들어섰다.
나는 사무실 중앙의 ‘문예창작학과’ 팻말이 놓인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 안쪽엔 지난 1년 간 호흡을 맞춰 온 박유임 사무원이 앉아 있다.
영문과 출신인 그녀는 나보다 한참 어리다.
하지만 조교는 직급상 사무원의 밑이니 꼬박꼬박 존대를 해왔다.
“웬일로 지각을 했어요?”
“일신의 변화가 많아서요.”
“아침부터 바쁘시네~. 조교분들이 샘 테이블 위에 일 올려두고 갔어요.”
그렇잖아도 그 일거리들을 빈 테이블로 몽땅 옮겨버리는 중이었다.
“샘, 뭐해요?”
유임 사무원이 물었다.
“이건 제 일이 아니니까요. 저는 유임 사무원이 주신 일만해요. 이건 개인 조교들 일이에요.”
“그...렇긴 한데. 괜찮겠어요?”
오늘 참 많은 사람들이 내게 괜찮으냐 묻는다.
아마 김혜경이 괜찮지 않게 살아서겠지.
“유임 선생님도 개인 조교들 일 받아주지 말아요. 그 사람들, 선생님 선배가 아니라 선생님이 관리해야 할 사람들이에요.”
“저야 뭐 계약 기간 끝나가는 데요.”
“그래도요.”
나는 일거리들을 옮기고 조교들 단톡방에 톡을 하나 남겼다.
[제 책상에 둔 일거리들 가져가세요. 오전 중으로 안 가져가면 파쇄합니다.]
핸드폰 알람을 꺼버리고 책상 앞에 붙어 앉았다.
“유임 선생님, 지금 저한테 시킬 일 있어요?”
“아뇨. 없어요.”
“시킬 일 있으면 저 살짝 치세요.”
나는 이어플러그를 꼈다.
카톡을 본 조교들이 찾아와도 무시할 수 있도록.
컴퓨터 바탕 화면엔 김혜경의 단편소설이 있었다.
그가 우울증 약을 씹어 먹으며 겨우겨우 완성한...유작.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수준 미달의 졸작.
저번 주 일요일,
김혜경은 손을 덜얼 떨며 수업 단톡방에 이 소설을 올렸다.
극심한 우울증에도 소설을 완성하다니.
말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사이지만 기특하다.
하지만 김혜경의 고통과는 아무 상관없이,
수강생들은 지금쯤 비난의 말을 가득 준비해놨을 거다.
지금은 9시 10분. 합평 수업은 10시.
“50분이라...해 보자.”
50분이면 도입부 정도는 고칠 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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