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는 천재 작가 ⓒshoro
불세출의 문학 천재 이상
비운의 문창과 대학원생에게 빙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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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천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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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프롤로그
0. 프롤로그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그 천재가 바로 나,
불세출의 문학 천재 ‘이상’이오.
그리고 그 천재가 방금 죽었다 이 말이오.
나, 이상. 본명은 김해경.
1910년 8월 20일 조선에서 태어나 고작 28년을 살고 요절했다.
사는 동안 예술에 내 몸과 영혼을 바쳤다.
문학뿐이랴.
조선 최고의 대학 경성보통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 졸업하고 내로라하는 건축과 미술상을 휩쓸기도 했다.
1931년 22살.
시 <이상한 가역반응>으로 문단에 데뷔한 후, 많은 이들이 날 천재라 말했고 나 역시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내 마음 같지 않았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지 않는 이상 조선땅에서 문학을 한다는 건 가난으로 향하는 쾌속선.
더구나 나는 워낙 빈곤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감도>, <지도의 암실>, <자화상>...
내놓는 작품마다 비평가들과 독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이 벌리는 건 아니었다.
값싼 원고료는 술 몇 잔, 담배 한 보루면 동이 났으니까...
다른 작가들처럼 건강한 육신을 믿고 가난을 견디며 글을 계속 썼다면 어땠을까.
내겐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23살. 나는 ‘죽음의 병’이나 다름없는 폐결핵에 걸렸다.
그 덕에 생업이던 건축기사 일마저 그만두고 강제로 요양을 해야 했다.
그렇게 가난하고 아픈 와중에도 사랑은 찾아왔다.
아름다운 금홍이...내 첫사랑.
나는 금홍이를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다방 <제비>를 차렸다.
하지만 <제비>는 2년 만에 망했다.
금홍이도 하룻밤 만에 내 곁을 떠났다.
돈도 사랑도 없는, 심지어 육신마저 불완전한 내 삶...
나를 버티게 하는 건 문학이었다.
나는 쓰고 또 썼다.
<날개>, <산촌여정>, <봉별기>, <권태>...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천재’라는 명성은 여전했지만 역시 돈이 되진 않았다.
조선땅에선 부자만이 문학을 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사이 동림이란 여인과 결혼도 했다.
좋은 여자였다.
그녀와 함께하며 내 생활도 좀 나아지는 듯 했지만...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문학적 영감을 받기 위해 홀로 일본에 간 것이다.
돈도 직업도 없이 동경을 떠돌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고문이나 다름없는 조사를 당했다.
그것도 한 달간이나.
일제강점기 조선의 지식인들이라면 한번쯤 겪는 수난이었다.
평범한 젊은이였다면 술 한 잔 털어먹고 잊을 일.
문제는 내 몸이 평범하지 않다는 데에 있었다.
나는 원래부터 심각한 폐병 환자였으니까.
경찰서에서 석방된 나는 조선에서 온 친구들의 도움으로 바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
나를 검사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폐가 형체도 없다’고.
동림이가 급하게 조선에서 일본으로 넘어왔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임종을 앞둔 상태였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멜론...멜론이 먹고 싶어...
동림은 멜론을 사러 나갔다.
그리고 몇 분 후...내 숨은 힘없이 끊겼다.
1937년 4월 17일 새벽.
‘이상’이란 이름을 가졌던 나, ‘김해경’은 2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
.........억울하다.
건강하지 못한 육신이
예술가를 보살펴주지 않는 조선땅이
끝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운명이
...이 비루한 껍데기에 차고 넘치는 내 천재적 재능이.
그래. 나는 아직 이 세상과 굿바이-인사하고 싶지 않다.
사랑하고 싶고
돈을 벌고 싶고
내 문학으로 더 인정받고 싶다.
내 염원이 너무나 강해서일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니, 느낄 수 있었다.
내 영혼이 저 세상으로 떠나지도 소멸되지도 못하고 긴 어둠 속을 떠돌고 있다는 걸.
얼마나 이렇게 떠돈 것일까.
1년? 10년? 100년? 아니면 1초일지도.
그리고 어느 순간,
“!!!!!!!”
내 머릿속에 낯선 기억과 정보들이 폭포처럼 욱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미래의 조선땅에 살고 있는 한 사내의 정보이자, 그의 모든 기억이었다.
...대한민국...2020년...김혜경...28세...가난...아프신 어머니...문예창작학과 입학...학사졸업...대학원...석사...아니, 박사까지...만년 조교...학과의 노예...신춘문예...예선탈락...반복...재능부족...낙담...좌절...자기혐오...주위의 무시...천대...비교...서러움...불면증...조울증...우울증...그리고...투신 자살...
번쩍!!!!
눈을 떴다. 아니, 떠졌다.
“하아...하아....”
별안간 새파란 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 부셔...여긴...”
내가 누운 곳은 허름한 건물의 화단.
무척 놀라긴 했지만, 나의 본능과 감각이 이 상황을 먼저 이해했다.
내 영혼은 110년이 넘는 시간을 날아와
28살 동갑내기인 ‘김혜경’의 몸에 들어왔다.
몸을 차지하니 김혜경의 기억과 감정 역시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었다.
그는...방금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비관하며 투신자살을 했다.
아마 그의 영혼이 빠져나간 순간에 내 영혼이 그의 몸을 차지해버린 것 같다.
‘...요술인가, 꿈인가, 아니면 신이 만든 장난인가.’
꿈뻑꿈뻑 눈을 깜빡이며 하늘을 보았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는 받아들였다. 내가 다시 태어났다는 걸.
1937년에서 2020년으로,
김해경에서 김혜경으로,
이 천재성을 가지고 비운의 소설가 지망생에게로.
“큽...”
주륵-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시 삶의 기회를 얻은 게 기뻐서 울었다.
김혜경의 비루한 삶이 불쌍해서 울었다.
또...2020년에도 내 글이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울었다.
“크...크흐...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웃기 시작했다.
새 삶을 얻은 기쁨은 타인에 대한 연민보다 크다.
인간은 본래 그런 동물인 것을.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있다.
바로 김혜경의 건강한 육신이다.
아무런 하자 없이 제 기능을 하는 폐.
무슨 조화인지 자취방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음에도 상처 하나 나지 않은 몸.
...한 마디로, 날개가 돋은 기분이었다.
“그래...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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