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9 아이언 마스터
1
유한이 퀴즈시합을 선언한 3일 후.
더스트 평원에 가히 기록적인 인파가 모여들었다.
게시판과 방송, 그리고 각종 매체를 통해 퀴즈 시합 이야기를 들은 유저들이 자신들도 참가할 수 있다는 소식에 너도나도 참가를 신청하고 평원으로 몰려온 것이다.
그중에는 외국 유저들도 상당수 섞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사랑스럽고 깜찍한 MC 미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정민입니다.]
MC와 해설자의 인사가 지나가고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되었다.
[이정민 씨. 이곳 더스트 평원에 수많은 유저들이 모여들었는데요. 그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좀 전에 저희 방송국에서 집계한 바에 의하면 오십만 명이 조금 넘는 숫자가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합니다.]
[오, 오십만 명이요?]
【정확히는 51만 3.206명입니다.]
그 엄청난 숫자에 더스트 평원에 모인 유저들은 물론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까지 놀라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기, 기록이다!'
단일 게임. 단일 장소에 이렇게 많은 유저가 모인 적은 전 세계 모든 게임 장르를 통틀어서 처음이었다.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일.
나중 이 소식을 접한 드림맥스가 기념 이벤트를 벌인다나 어쩐다나.
[어, 엄청난 수로군요.]
[그만큼 스타레이를 얻어 헤븐즈 게이트를 열고자 하는 유저들의 열망이 큰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보다 더 많은 분들이 올 수도 있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요?]
[실제 아르페디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보다 몇 배는 많은 분들이 참가 신청을 하셨으니까요.]
그러나 뽑힌 것은 50만 명 정도가 고작이다.
너무 많이 몰리면 통제도 어렵고. 렉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우려한 드림맥스에서 예심을 거쳤기 때문이다.
공식 홈페이지에 참가 신청을 하면 예심 문제가 나타났고 다섯 문제 중 세 문제 이상을 맞추면 참가 자격을 획득 할 수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먼 미루는 정신을 차리곤 이정민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정말 헤븐즈 게이트를 열려면 스타레이거 있어아 하나요? 다른 열쇠나 아이템으로 열 수는 없는 겁니까?]
[제가 드림맥스에 문의한 결과 아직까지 스타레이 외의 헤븐즈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열쇠는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그 님이 가지고 있는 스타레이가 유일한 열쇠라는 말인데. 지그 님이 그걸 왜 유저들에게 내놓겠다고 한거죠? 그냥 자신이 열어 버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이정민은 3일 전 이곳 더스트 평원에서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설명에 미루가 연방 감탄사를 터트렸다.
[제 손에 들린 이것이 바로 스타레이입니다. 지그 님이 우승자에게 주라며 이벤트를 주최한 저희에게 맡긴 거지요.]
[이아! 지그님은 정말 통이 크고 위대한 유저로군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지그 님이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하며 세운 모든 업적을 합친 것보다 오늘의 일이 그에게 더 큰 명성을 안겨 줄 것입니다.]
"와아. 지그 만세!"
"지그! 지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더스트 평원에 모여 있던 유저들이 지그의 이름을 환호했다. 그러자 유한의 명성 수치가 쭉쭉 올라갔다.
[ -수많은 유저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 -명성이 3.000 올랐습니다.]
[ -명성이 3.000 올랐습니다.]
[ -명성이‥‥‥.]
[ [레전드(Legend)] 칭호를 받았습니다.]
'허억!'
동료들과 함께 평원의 한편에 서 있던 유한은 떠오르는 메시지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유저들이 함성을 한 번 지를 때마다 명성이 3천씩 올랐기 때문이다.
하긴, 한두 명도 아닌 무려 50만 명분의 환호다. 3천이라는 숫자가 오히려 작을지도.
그렇게 유한이 메시지창을 보며 놀라고 있을 때 화려한 폭죽과 함께 드디어 퀴즈 대회가 시작되었다.
[자. 그럼 드디어 여러분들이[여러분들이 드디어→ 드디어 여러분들이 by. 곰] 기다리던 '스타레이 쟁탈배 퀴즈 대회' 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
미루의 선언에 유저들이 다시 한 번 함성을 질렀다. 그 함성 소리에 더스트 평원이 떠내려갈 듯했다.
[우선 참가자가 많은 관계로 ○X 문제를 풀겠습니다. 답이 ○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왼쪽으로. X라 생각하시는 분은 오른쪽으로 가서 서시면 됩니다. 이동 시간은 1분입니다.]
미루의 말과 함께 초록색 평원에 하얀색의 커다란 ○,X의 문자가 생겨났다.
[그럼 첫 번째 문제. 바르카스 왕국의 수도 이름은 발덴이다.]
첫 번째 문제인 만큼 쉬웠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바르카스 왕국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에나 긴장해서 어리바리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
꽤 많은 유저들이 X쪽에 섰다가 탈락했다. 그 중에는 외국 유저들도 상당수 끼여 있었다.
"이건 불공평하잖아!"
"그래. 차라리 찬드라 대륙의 수도 이름을 대라고 해!"
하지만 그들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헤븐즈 게이트가 아르페디아 대륙에 있는 고로, 아르페디아 대륙과 관련한 문제가 많아 나올 것이라고 이벤트 공지창에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항의하며 물러나지 않던 유저들은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모여 있던 GM들에 의해 강제 퇴장 당했다.
[첫번째는 몸풀기였지만 두 번쨰부터는 많은 분들을 솎아 내기 위해 점점 어려운 문제가 나갈 겁니다. 모두 바짝 긴장하세요.]
[그럼 두 번째 문제. 행운의 여신 이름온 티케다.]
순간 더스트 평원에 침묵이 감돌았다. 행운의 여신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유저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갈팡질팡 갈피를 못 잡는 유저들이 다수 발생했다.
"으악! 도대체 뭐냐고!"
"좀 전에 ○가 나왔으니까 이번에는 X가‥‥‥."
"난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야지."
우왕좌왕하는 사이 1분의 시간이 흘렀다.
[정답은 ○였습니다!]
이정민의 선언에 유저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크아악! 이번에도 ○였나!"
"아 많은 사람이 모두 허당이라니!"
그들 중에는 은근슬쩍 X에 있다 ○러 가랴다 GM에게 걸려 질질 끌려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2
○X 문제는 모두 20문제가 출제되었고. 약 1만 명의 유저만 살아남았다.
그들이야아말로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깊이 알고 있는 진짜배기 유저들. 대부분이 베타 테스트 때부터 게임을 해 오던 골수팬이었다.
○X 다음은 주관식 문제였다. 오래전 TV에서 인기를 끌었던 모 프로그램을 차용한 것인데, 유저들 앞에 전자 보드가 하나씩 생겨났다.
[일단 ○X 문제의 터널을 무사히 넘기신 여러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금부터는 주관식 문제인데 여기 이정민 씨가 문제를 내면 여러분들이 그 답을 전자 보드에 적으시면 됩니다. 그럼 이정민 씨.]
[네, 미루 씨. 첫 번째 문제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아르페디아 대륙과 레뮤다 대륙을 잇는 화랑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말론 회랑이지.'
과거 말론 회랑을 통해 레뮤다 대륙으로 간 적이 있는 유한은 손쉽게 전자 보드에 정답을 적었다.
힐끔.
유한의 옆에 있던 옌스가 그의 보드를 훔쳐봤다.
그 순간 경고창이 뜨며 GM이 옌스의 앞에 소환되었다.
"부정행위입니다. 옌스 님은 행사장 밖으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아, 아니라고! 난 그저‥‥‥."
"다 봤습니다. 증거 영상 띄울까요?"
GM의 싸늘한 한마디에 옌스는 고개를 축 숙이고 행사장 밖으로 나갔다. 괜히 우겼다가 증거 동영상 나오면 망신만 산다.
[그럼 정답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답은 말론 회랑입니다.]
"와아아!"
계속해서 문제는 나왔고 맞추는 자와 맞추지 못하는 자로 희비가 갈렸다.
유한은 그들 속에 섞여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그는 계속해서 문제를 맞혀 살아남았다.
바츠, 지그를 키우면서 게임도 많이 했거니와. 타 대륙 사이트나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게임 요소들도 공식 홈페이지와 공략 사이트를 뒤지며 부지런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열세 번째 문제 플레임 마운트 지역의 보스 몬스터는 누구일까요? 정답은 자이언트 샌드웜입니다. 틀리신 분들은 퇴장해 주세요.]
"아아. 틀렸다."
유한과 함께 퀴즈 시합에 참가한 채린은 그만 중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오답을 쓴 유저들과 함께 퇴장하던 그녀는 아쉬웠던지 GM에게 물었다.
"저기 패자 부활전은 언제 하나요?"
그녀의 물음에 이미 탈락해 한쪽에서 구경 중인 유저들의 귀가 솔깃했다.
패자 부활전!
이 얼마나 아름답고 상냥한 단어란 말힌가.
보통 이런 퀴즈쇼에는 아쉽게 떨어진 사람들을 위한 패자부활전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GM의 답변은 채린과 수많은 탈락자들의 기대와 사뭇 달랐다.
"패자 부활전 안 합니다."
"왜요!"
채린의 항의에 수천 명 유저들의 원망스런 외침이 더해졌다. 그러나 안색 하나 바꾸지 않는 GM이었다.
"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만."
정말이었다. 이벤트 관련 공지창에는 패자 부활전이란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떨어지면 그냥 끝인 것이다.
하긴 예심부터 독하게 유저들을 추려 낸 드림맥스가 패자 부활전을 할 리가 없었다.
"끝났다. 꿈도 희망도 날아가 버렸어."
"흑흑, 내가 아는 문제 좀 내주지."
슬퍼하는 유저들과 달리 채린은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은 아직 헤븐즈 게이트에 오를 자격이 되지 못했으니까. 이번 이벤트도 스타레이가 탐이 났다기보다 호기심이 생겨서 참가했을 뿐이다.
"지그야. 내 몫까지 힘내!"
"응! 꼭 우승할게."
채린의 응원을 받은 유한은 곧 이어진 다음 문제도 수월하게 풀었다.
3
20번째 문제까지 풀었을 때, 시합장 안에는 이제 100여 명의 유저만 남아 있었다.
거기서 참가자들에게 잠깐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으아아! 가만히 앉아서 문제만 푸는 데도 이거 쉽지 않구먼."
"그럼 포기하시던가."
유한이 어깨를 두드리며 중얼거리자. 바로 옆에 있던 B.O.B 길드원이 빈정거렸다. 후중이라고 하는 그는 3일 전까지만 해도 헤븐즈 게이트 유적을 지키고 있었다.
"퀴즈 대회에 참가할 것 같으면 상품은 왜 내놓았습니까?"
"계속 가지고 있으면 재미없으니까 그렇죠. 좀 아슬아슬한 맛이 있어야 성취감이 느껴지고 단련도 되는 거라고요."
"그렇다고 엄청난 가치를 가진 아이템을 덜렁 내놓다니‥‥‥ 나라면 절대 그런 어리석을 짓을 안 합니다."
그러면서 후중은 유한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나 유한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니까 댁은 B.O.B 길드에서 상위 고렙들의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는 겁니다."
"뭐라고요?"
"그에 반해 나는 바츠로 혼자 드래곤을 잡고, 지그로 제철소도 지었어요. 아까 봤으면 알겠지만 남부럽지 않은 애인도 있도 그게 다 남들 보기에 어렵고 어리석은 직을 한 대가죠."
유한의 말을 다 들은 후중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이번엔 아무 대가도 얻지 못하게 해 드리지."
"뭐 그러시든가."
후중은 앞쪽의 진열대에 놓여 있는 스타레이를 바라보았다.
이정민에게 맡겨졌다가 그 자리로 옮겨진 스타레이는 별빛처럼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저것만 있으면 길드 최고위 간부가 되는 건 금방이다!'
후중이 망상을 하거나 말거나. 유한은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우리 애들이 얼마나 살아남았을까?"
저편에 오펜과 에이린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보였다. 옌스는 진작에 자신의 것을 훔쳐보다 탈락했고, 채린은 열세 번째 문제에서 그리고 로키는 열다섯 번째 문제에서 탈락했다.
리지스는 어이없게도 ○X문제에서 탈락했다. 답이 애매한한 문제에서 갈피를 못 잡고 왔다 갔다 하다가 실격 처리된 것이다.
"쯧쯧. 그러게 준비 좀 잘하고 올 것이지."
유한은 혀를 찬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휴식 사간은 이제 거의 다 끝나 가고 있었다.
[드디어 우승자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이정민 씨, 과연 어느 유저가 스타레이를 차지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지그 님이 유라한 것 같습니다. 바츠 때 부터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골수팬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걸로 따지면 랭킹 1위의 김요셉 님이나 5위의 아스란 님도 유리하지 않을까요?]
그들도 클로즈 베타 테스트부터 게임을 해 오던 유저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탈락하지 않고 다음 문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분들도 강력한 우승 후보입니다. 자, 그럼 다음 문제를 내겠습니다. 최초로 헤븐즈 게이트가 열린 청해도는 아르페디아 대륙과 후고 대륙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데요, 카잔 공국의 바니아스 항구에서 몇 해리 떨어져 있을까요?]
점점 같수록 난해한 문재들이 출제되었다.
그 결과 나름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대해 잘 안다던 유져들도 탈락하고. 급기야 김요셉과 아스란도 떨어졌다.
마흔아홉 번 문제까지 와서 단 두명의 유저만 살아남았다.
유한과 그의 옆에 있던 후중이었다.
두두두둥!
최후의 승자를 가리기 위한 일대일 대결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효과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지그야, 지면 안돼!"
"후중아! 우리 길드의 명운이 너에게 달렸다!"
유한과 후중을 응원하는 유저들은 저마다 함성을 높였다. 그러나 그 함성도 이정민이 50번째 문제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숸 번째 문제입니다. 지금부터 최후의 두 분은 미루양이 말하는 영어 구문을 듣고 해당 지역이 어디인지 답을 적으시기 바랍니다.]
[This is the north of the continent. This is always covered with snow and Ice‥‥‥.]
"이봐요!"
황당했던 나머지 후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한도 영덩이를 붙였을 뿐이지. 심정은 그와 다르지 않았다.
아니 갑자기 영어 구문으로 문제를 내면 어쩌자는 말인가?
"아르페디아 대륙은 한국 유저들의 대륙이잖아요! 왜 영어로 문제를 내는 겁니까?"
후중의 항의에 근처에 있던 GM이 말했다.
"후중 님. 이제 아르페디아 대륙에도 많은 외국 유저 분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분들과 대화하기 위해선 외국어 실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통역 서비스가 있잖아요! 댁들이 지원하면서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그러나 GM은 털끝 하나 당황하지 않고 응답했다.
"통역 서비스는 그저 유저들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상대의 마음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선 언어를 배워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하긴 그래서 세라가 한국어를 배우는 건가?'
유한은 동생의 여자친구인 세라를 떠올렸다. 자신과 달리, 유현이 영어에 유창함에도 세라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상대를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상대에게 우리의 말과 문화를 강요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입니다. 과거 강대국들이 그랬다고 우리까지 그래선 곤란하지요, 안 그렇습니까?"
"으으‥‥‥."
GM의 대꾸는 더할 나위 없이 옳았다.
더 항의할 수 없었던 후중이 자리에 주저앉자. 그의 항의로 영어 구문 낭독을 중단했던 미루가 다시 입을 열었다.
[There are many dwarfs. This area Is the capital of‥‥‥.]
'아놔 쓸데없이 혀 굴리지 마! 듣기 힘들잖아!'
유한은 미루가 말하는 영어 구문을 해석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글을 보고 해석하는 것과 달리, 듣고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다. 무엇보다 지금은 난대없이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 당황해서 풀이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세라한테 영어를 좀 배우는 건대.'
가까이에 좋은 선생을 두고 사용하지 못하다니.
그러나 지금은 후회할 때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린 유한은 미루가 말한 구문 중에서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던 단어들을 떠올린 뒤 머리를 굴렸다.
'보자! 북쪽에 눈과 얼음, 그리고 드워프들이라면‥‥‥.'
답은 대강 나왔다.
그러나 대강 나온 답을 그대러 적을 수는 없었다.
'이게 대체 노스아크를 말하는 거야. 아님 배르겐을 말하는 거야?'
지역이란 게 국가를 말하는 건지, 도시를 말하는 건지 긴가민가했다. 중간에 'capital' 이란 단어를 듣기도 했지만. 단순히 언급된 것인지 문제와 큰 관련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에라이! 일단 적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한은 전자 보드에 답을 적어 들어 올 렸다.
그는 답을 베르겐이라고 적었고, 후중은 노스아크라고 적었다. 북소리가 심장 박동에 맞춰 뛰는 가운데, 이정민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쉰 번째 문제. 정답은‥‥‥.]
이정민은 중간에 잠시 말을 끊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한과 후중에겐 매우 길게 느껴졌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가고 마침내 그 짧고 긴 시간이 끝났다.
[정답은 베르겐입니다.]
"앗싸! 이겼다!"
유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치켜들었고.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이 달려와 그를 붙들고 헹가래를 쳤다.
"지그야. 잘했어!"
"자식, 틀리면 쥐어박아 주려고 했는데‥‥‥."
한편, 패배한 후중은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이 상황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마지막 문제는 엉터리다. 영어 구문 따위가 안 나왔으면 질 이유가 없었다.
"결국 저 자식을 이기게 만들려고 수작을 부린 거지?"
퀴즈 대회를 제안한 지그와 진행한 방송국, 그리고 드림맥스가 서로 짜고 친 것이 틀림없다. 그리 판단한 그는 스타레이가 놓여 있는 상품 진열대로 달려갔다.
"저건 내 거야! 내가 가져야 한다고!"
너무 갑작스런 상황이라 유저들도 GM도 그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이런 비겁한 놈!"
"크억!"
상품 진열대로 달려갔던 후중은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블랙의 일격을 맞고 멀리 나가떨어졌다.
후중은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최강의 블랙 아이언인 블랙이 단지 주먹의 풍압만으로 그를 날려 버렸기 때문에.
사실 블랙이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상품 진열대에는 결계가 쳐져 있었는데. 그겉 깨고 스타레이를 쥘 수 있는 것은 오직 퀴즈 시합의 우승자뿐이었다.
그런 결계에 그런 시스템이니, 애초에 후중이 스타레이를 가로챌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제길, 왜 이렇게‥‥‥."
"후중 님!"
분에 겨워 부르르 떠는 후중을 부축하는 사람이 있었다.
예전 B.O.B 길드의 창립 멤버였던 아크 위저드 아스란. 후중보다 먼저 떨어졌던 그는 끝까지 싸워 준 후중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절말 잘하셨어요. 힘내서 다음번엔 우리가 이기도록 하죠."
"‥‥‥예."
후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 갔다. 모두들 결과에 실망하긴 했지만. 상위 고렙도 아닌 후중이 끝까지 남아서 싸워준 것을 대견하게 여겼다.
길드원들의 위로와 다독임을 받고 마음을 추스른 후중은 여전히 기뻐하는 유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속이 쓰리긴 했지만. 그래도 인정해주기로 했다.
엄청난 가치의 아이템을 내놓고, 많은 유적들과 동등하게 겨뤄서 끝까지 승리한 대장장이 지그를.
"모두 승자에게 박수를 쳐 줍시다."
후중이 먼저 박수를 치자. B.O.B 길드원들을 비롯해 이번 퀴즈 시합에 참여했던 수많은 유저들도 모두 유한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수십만의 박수와 갈채가 평원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퀴즈 시합은 막을 내렸다.
4
퀴즈 시합으로 진을 쏙 뺀 유한은 그날은 푹 쉬고. 다음 날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헤븐즈 게이트 주변에는 여진히 많은 유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유한의 앞을 막거나 스타레이를 빼앗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유한의 동료들처럼 헤븐즈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구경하러 왔을 뿐.
"자, 그럼 다녀올게."
"잘 갔다 와."
"지그 너 다음엔 나 도와주기다!"
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헤븐즈 게이트 유적 안으로 들어온 유한은 스타레이를 내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적에서 하늘까지 닿는 빛의 기둥이 세워졌다. 그리고 모두의 눈앞에서 유한의 모습이 사라졌다.
천상의 세계에 올라온 유한. 아래를 내려다보자 아르페디아 온라인 대륙들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다시 이곳에 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감회가 몰려왔다.
저번에 왔을 때는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해 금방 쫒겨났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있었다.
'토르에게 반드시 인정을 받고 말겠어!'
그때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리라 다짐한 유한은 구름 위의 신전으로 향하는 제단을 올랐다.
한참을 오른 뒤 신전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환한 빛무리와 함께 온몸에 빛을 두른 존재가 나타났다. 번쩍이는 방패와 긴 창을 든 천사였다.
"멈추시오!"
과거 유한을 쫒아낸 장본인은 유한의 아래위를 한 번 살피더니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대 자격을 갖추었구려."
"그동안 고생 좀 했어요. 이제 안으로 들어가도 되죠?"
"물론이요. 들어가시오."
천사가 길을 비켜 주자. 유한은 당당한 걸음으로 눈앞에 있는 신전에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커다란 문이 열리며 드넓은 신전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치 커다한 대장간처럼 생긴 신전의 모습은 여전했다.
그 끝에 커다란 화로가 있었고 예의 토르가 모루에다가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토르는 뒤를 힐끔 보더니 한 마디 했다.
"왔느냐?"
'왔느냐? 아놔 이 양반이!'
이놈의 게임은 NPC들이 왜 다 이따윈지!
토르는 대강 작업을 마무리하더니 유한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지그여. 이곳에 온 이유는?"
"천사가 댁한테 도전해서 인정을 받으랍디다. 그럼 아이언 마스터가 될 수 있다며."
"훗, 루시엘이 그런 말을? 하긴 넌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충분하구나."
자격이 충분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다. 지금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지그만큼 자격을 충족시킨 대장장이 유저는 아마 없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인 토르는 망치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유한의 앞에 작업대가 하나 생겨났다. 작업대에는 몇 가지의 광물과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나에게 인정을 받고 싶으면 나와 생산 시합을 해서 이겨야하느니라. 하겠느냐?"
[ -[대장장장이의 신 토르의 시험]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기 위해서는 대장장이의 신 토르와 경합을 해서 이겨야 한다. 경합에 패할 시 한 달 동안 천계의 재입성이 불가능하며 경합의 내용와 방법은 수시로 바뀐다.
*보상 : 1.아이언 마스터의 칭호. 2.합금 창조 스킬.]
'헉! 합금 창조 기술?'
엄청난 보상이 있을 거란 소문은 있었지만, 그게 설마 합금 창조 스킬 일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라.
유저가 원하는 합금을 만들 수 있다면, 언젠가 에르겐 합금 이상의 강도와 마법적 성질을 띄는 합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흐흐흐!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금속 시장은 아예 내 손 안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는 게 되지.'
그렇게 생각한 유한은 당장 수락했다.
"토르 님의 시험 받아들이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네가 거절했으면 당장 쫓아내려 했다."
토르외 말에 유한은 그럴 줄 알았다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뭘 만들어야 합니까?"
"한 시간 내로 여기 작업대 위의 광물들을 이용하여 검을 만들어야 한다. 검은 사람에게 있어 유용한 병기이자, 도구. 나보다 우수한 검을 만들었을 때. 너는 아이언 마스터가 되는 것이다."
"훗! 검 만들기라. 생각보다 쉽네요."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작업대 위의 광물들을 본 유한의 안색이 싹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건 철. 이건 텅스텐, 망간이란 건 알겠는데 이쪽 금속들은 도대체 뭐지?'
몇 가지는 유한이 처음 보는 광물들이었다. 그는 손을 가져다 대 광물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마리나사이트]
설명 : 전설상의 광물로서 현존하지 않음. 신인들의 기술을 이어받은 고대 드워프 종족이 바닷물을 분해헤서 얻었다는 광물. 물 위에 떠 있을 정도로 가볍다.]
[데모니움]
설명 : 마계의 광물. 마족들이 무구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무척 무겁고 강도가 세서 제련이 쉽지 않다.
[가드늄}
설명 : 대장장이의 신 토르가 만들었다는 광물. 이 세상의 그 어떤 금속보다 강하고 단단하다.
하나같이 대단한 광물들.
그러나 유한의 안색을 펴지지 않았다. 처음 보는 광물들을 어떻게 제련해야 할지 막막했기 떄문.
토르를 바라보니, 그는 큼지막한 손으로 몇 가지 광물들을 가져다 신전 안의 화로에 넣고 풀무질을 시작하고 있었다.
유한도 일단 짐마차를 소환해서 준비를 마쳤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익숙한 금들을 집어 들었다.
'손석진 씨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이벤트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노림수를 파악해야 해.'
전사나 기사가 아레스를 이길 수 없듯 대장장이 유저가 아무리 노력해도 토르를 능가할 수는 없을 터. 그렇다면 여기에는 손석진이 유저들에게 바라는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면 토르와의 시합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유한은 곰곰이 생각하며 일단 집어 든 금속들을 각기 제련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토르와 지그 모두 한 자루의 검을 만들어 냈다. 토르는 유한의 검을 힐끔 바라보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지 그런 평범한 광물들로 검을 만들었느냐? 내가 특별히 준비해 둔 것들도 많은데‥‥‥."
"그저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처음 보는 금속을 사용하면 더 단단한 무구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련 과정에서 실패할 확률도 높다.
그저 광물의 이름만 보고 혹해서 달려드는 대장장이는 진정한 고수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유한은 제련과 합금. 생산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지금까지 많은 무구를 생산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한 집중력과 정성으로 검을 만들었다. 여기서 패한다고 해도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토르는 두 검을 집어 들더니 그대로 부딪쳤다.
깡!
그런데 평범한 광물로 만든 유한의 검이 의외로 토르의 검을 깨 버렸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유한은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생각했던 손석진의 노림수. 그것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
토르는 유한이 만든 검을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말을 건냈다.
"이 검을 만든 비결은?"
유한은 자신감 있게 자신이 생각한 비결에 대해 설명했다.
"대장장이가 생산으로 대장장이의 신을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서 저는 어떻게 토르 님께 이길 수 있을까 깊이 생각했지요. 그 결과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저 전설의 광물들은 대장장이의 눈을 현혹하기 위한 미끼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 결화 유한은 자신이 다뤄 본 광물들만 가지고 검을 만들었다, 그것도 기본에 충실해서.
"아마 토르 님께서는 대장장이의 마음과 인성을 알고 싶으섰을 것입니다. 어설픈 기술로 자신의 능력을 뽐내기보다는 사용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검을 만드는."
"흠. 계속 말해 보아라."
"전사는 무기에 자신의 목습을 맡기고, 목수나 석공 같은 장인은 연장에 자신의 실력을 맡깁니다. 그들의 믿음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하며, 낯설지 않고, 검증된 재료와 기술을 사용해서 무기와 도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아는 것 외에 다른 광물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짝짝작!
유한의 설명이 끝나자 토르가 박수를 쳤다.
"놀랍구나. 나의 생각을 정확히 꿰뚫어 보다니!"
'네 생각이 아니라 손석진 씨의 생각이겠지.'
유한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지그 넌 정말 훌륭하게 나의 시험을 통과했다. 그래서 그에 걸맞은 상을 내리겠다."
토르의 말과 함께 유한의 앞에 메시지창들이 떠올랐다.
[ -[대장장이의 신 토르의 시험 퀘스트를 성공했습니다.]]
[ -명성이10.000 올랐습니다.]
[ -[아이언 마스터] 칭호를 받았습니다.]
[ -[합금 창조] 스킬을 배웠습니다.]
'오오. 드디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아이언 마스터 칭호를 받았다.
초보 대장장이 시절에 파부치에게 이야기만 들었던 그 전설의 칭호를!
이것은 아르페디아 최고의 대장장이라는 귀련조차도 얻지 못한 칭호. 이로써 유한은 귀련을 오롯이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었다.
[ -[합금창조 스킬]
설명 : 몇 가지 조거을 갖추면 새로운 합급을 창조하고 이름을 붙여 줄 수 있다. 오리하르콘을 비롯해 전설 속에 사라진 합금들을 연구하고, 앞으로 전설이 될 합금들을 창조해 보도록 하자.]
'후후후!'
앞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다 줄 노다지 스킬에 유한은 입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그렇 이곳에서의 일도 끝났으니 돌아가도록."
토르가 망치를 바닥에 한 번 내리치자 유한의 몸이 번쩍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게임 최초로 신의 시험을 통과한 유저가 나타났다.
한때 독불장굼이었던 바츠의 유저.
해킹을 당하면서 모든 것을 잃었지만, 또다시 일어나 모든 것을 되찾은 아르페디아 온라인 최고의 대장장이.
아이언 마스터 지그
드워프를 능가하는 실력을 가지고 대륙을 주름잡는 강철왕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