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다시 나타난 해븐즈 게이트 (141/143)

Chapter 08 다시 나타난 해븐즈 게이트

          1          

 학림고와 학림 재단의 수뇌부들을 줄줄이 잡혀 들어가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유한은 이틀 정도를 쉰 다음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접속했다.

 "지그, 너 그동안 접속 안 하고 뭘 했어?"

 송코가 댓바람에 달려와 호들갑을 떨었다.

 "일이 좀 있어서요.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 형?"

 "당연하지. 지금 아르페디아 온라인이 난리도 아니야."

 "무엇 때문에요?"

 유한의 물음에 송코는 유한이 지난 며칠 동안 접속하지 않은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다.

 "헤븐즈 게이트 때문이야. 그저께 공식 홈페이지에 더스트 평원에서 헤븐즈 게이트로 보이는 유적을 발견했다는 글이 올라온 뒤로 한다 하는 유저들은 모두 그곳으로 몰려갔어."

 그래서 재철소가 썰렁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리지스와 아스란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 둘도?"

 "그래. 나도 좀 있다 합류할 생각이었어."

 "허!"

 유한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헤븐즈 게이트를 찾아도 스타레이가 없으면 열 수 없고 자격이 안 되면 천계에 올라도 바로 쫓겨난다.

 그런데 무럭대고 헤븐즈 게이트로 향하다니. 유한은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누가 뭐래도 헤븐즈 게이트 처음 연 사람이 그였고. 토르로부터 인정을 받는 사람도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럼 우리도 출발하죠."

 유한은 짐마차를 소환한 뒤 송코와 함께 헤븐즈 게이트가 발견되었다는 브로딘 왕국의 더스트 평원으로 향했다.

 헤븐즈 게이트.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하는 고렙 유저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 본 이름이다.

 일정 자격을 갖추면 천사가 내려와 헤븐즈 게이트를 찾으라고 종용을 하는데, 헤븐즈 게이트를 열면 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고 한다.

 "신들의 세계?"

 "일종의 천계겠지. 듣자니 각 직종의 신들과 만날 수 있다고 해."

 대장장이면 대장장이의 신 토르. 상인이면 상인의 신 디요른. 전사나 기사면 전신(戰神) 아레스 등등.

 "그들을 만나서 뭐 하게?"

 "바보. 지금까지 신이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어. 그저 그런 신이 존재한다고만 알려졌을 뿐. 그런데 직접 신을 만나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해 봐. 그 명예가 어마어마하지 않겠어?"

 "그럼 유니크 아이템이나 히든 스킬 같은 걸 줄지도 모르겠네?" "당연하지."

 신이 인정한 유저.

 그것은 각 직종에서 최고의 유저라는 말과도 같았다.

 그 외에도 헤븐즈 게이트를 열면 엄청난 보상을 받을거라는 소문이 있었다. 덕분에 랭커들뿐만 아니라 랭커에 들지 못한 유저들도 상당수가 헤븐즈 게이트를 찾아왔다.

 그렇게 유저들이 웅성거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저쪽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지그다!"

 "대장장이 지그도 왔어!"

 현재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가장 유명한 유저를 꼽으라면 누구나 지그를 꼽을 것이다.

 그는 아르페디아의 철 시장을 장악한 거물이며, 과거 혼자서 광룡 카세라스를 잡은 뛰어난 전사 바츠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반지그 동맹을 가뿐하게 밟아 준 겉로 유명세가 더해졌다.

 "쯧쯧! 아예 사람들로 평원이 가득 찬 것 같네요?"

 짐마차를 몰고 있던 유한은 평원에 가득한 유저들을 보고 혀를 찼다.

 헤븐즈 게이트는 누가 사용하든 한 번 사용한 뒤엔 자동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데. 뭐 먹을 게 있다고 이렇게 많이 온 건지.

 "그만큼 최고가 되고 싶다는 거겠지. 보상도 탐이 났을 거고."

 "형도 헤븐즈 게이트를 열고 싶어요?"

 유한의 물음에 송코는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글쎄.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겠지.

 '하아. 오늘 일 쉽지 않겠군.'

 "지그야! 여기야. 여기." 

 "어? 시아 너도 왔어?"

 "리지스가 혼자 가기 심심하다고 해서."

 채린의 안내로 유한은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헤븐즈 게이트 유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일행들이 모여 있었다.

 리지스. 옌스. 에이린. 오펜. 로키. 블랙.

 "어? 넌 왜 왔냐?"

 NPC인 블랙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자 유한이 의아해 물었다. 헤븐즈 게이트를 여는 것은 유저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후손. 이곳에서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마왕이 강림하는 거라면‥‥‥."

 "천계에서 내려오는 마왕도 있냐!"

 유한은 블랙을 외면해 버리고는 리지스에게 물었다.

 "지금 상황이 어때?"

 "일촉즉발이야."

 "일촉즉발?"

 "저길 봐."

 리지스가 가리킨 곳은 헤븐즈 게이트 유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유저들이 세 무리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었는데, 헤븐즈 게이트 유적을 지키려는 자들과, 이를 빼앗으려는 자, 그리고 기회를 노려 어떻게든 차지하려는 자들이었다.

 "B.O.B 길드와 다크 나이트 길드가 한편을 먹었고, 나머지 십대 길드가 또 한편, 그리고 중소 길드나 소속이 없는 유저들이 나머지 한편을 먹었어."

 자세히 바라보니 그들의 소속을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헤븐즈 게이트가 발견된 것이 사흘 전이라고 하던데, 왜 아직까지 안 열고 있는 거지?"

 로키는 처음 발견했을 때 열 것이지 왜 아직도 지켜보고만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게이트를 여는 결정적인 열쇠가 없기 때문이에요."

 "열쇠?"

 로키는 유한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천사가 천공의 문을 열기 위해선 별빛을 찾으라고 하잖아요. 별빛이 바로 열쇠인데. 그 별빛이 무슨 아이템을 지칭하는 건지 아직 모르니까요."

 헤븐즈 게이트를 여는 데는 반드시 별빛, 스타레이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스타레이는[스타레이가→스타레이는 by. 곰] 획득하기 어려운 아이템이다. 신의 광물이라 불리는 운석을 제련해야 얻을 수 있는데, 일단 운석부터가 획득하기 굉장히 어렵다.

 유한이 알기로, 국내외를 통틀어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운석을 소유하고 있는 유저는 열 사람이 채 안 되었다.

 아르페디아 대륙에서는 자신과 귀련, 그리고 해외의 유저 중 몇 사람뿐인 것이다.

 이 운석을 제련해 스타레이로 만들어야 헤븐즈 게이트의 열쇠로서 가치가 있다.

 '흐흐흐. 고로 저 게이트를 열 사람은 나와 귀련 누나밖에 없다는 말씀!'

 유한이 내심 의기양양해 할 때 리지스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엉덩이를 비볐다.

 "지그야.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싫어!"

 유한이 내용을 듣지도 않고 딱 잘라 거절하자 리지스가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어쩜 그럴 수 있어? 네가 없는 동안 제철소를 돌봐 준 게 누군데‥‥‥."

 '알았어, 일단 들어는 줄 테니까 말해 봐."

 유한이 좀 너무했나 싶어 허락하자. 리지스가 웃으며 말했다.

 "시아한테 들었는데, 너 일전에 청해도에서 헤븐즈 게이트를 연 적 있다며? 그래서 말인데. 그때 사용했던 열쇠 좀 빌려 줄 수 없어?"

 당시 청해도에 같이 있었던 동료들은 유한이 헤븐즈 게이트를 연 열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 열쇠 일회용이던데."

 "진짜?"

 "그래, 쓰고 나니까 없어지더라고. 나 사실 그때 천계까지 갔었는데 자격이 안 된다고 문전 박대 당했어."

 유한의 말을 듣고 리지스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러나 금새 기운을 차린 그녀는 다시 말을 건네 왔다.

 "그래도 열쇠로 쓰인 아이템이 뭔지는 알고 있는 거지?"

 "그렇긴 한데 워낙 구하기 힘든 거라‥‥‥ 그렇게 쫓겨 날 줄 알았으면 사용하지 않는 건데 말이야."

 유한은 능청맞게 아쉽다는 투로 고개를 저었다. 리지스는 그런 그의 팔을 잡고 흔들어 댔다.

 "그게 뭔지 좀 가르쳐 줘! 나 이번에 '트레이드 퀸(Trade Queen)' 이라는[라는→이라는 by. 곰] 칭호를 받고 싶단 말이야.

 상업의 신 디요른에게 인정받으면 트레이드 퀸이라는 칭호를 얻는 모양이다.

 이렇게 리지스가 유한에게 로비를 하자 에이린과 옌스가 뒤질세라 나섰다.

 "지그 오빠. 나 홀리 세인티스(Holy Saintess)가 되고 싶어."

 "바츠, 난 배틀 마스터(Battle Master)가 되고 싶은데‥‥‥."

 "유한아. 나도 안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마지막은 한쪽에서 무게를 잡고 있던 로키의 말이었다.

 '허, 이 사람들이!'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유한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부터 뭐가 된 다음에 그들이 요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유한이 한심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언덕 아래를 응시 하고 있던 오펜이 소리쳤다.

 "드디어 움직인다!"

          2          

 김요셉과 아스란을 비롯한 몇몇 톱 랭커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헤븐즈 게이트 유적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 온 게 엊그제. 문제는 거의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데 있었다.

 게이트는 하나인데 이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많자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발 빠르게 치고 나간 게  B.O.B 길드와 다크나이트 길드였다.

 암묵적으로 동맹을 맺은 두 거대 길드는 길드원들을 동원해 헤븐즈 게이트 유적을 에워싸 버렸다. 자신들 외에 어느 누구도 차지할 수 없도록.

 이에 뒤늦게 도착한 다른 십대 길드의 길드원들이 거칠게 항의했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유저들은 어부지리를 노리기 위해 호시탐탐 틈을 살피고 있었다.

 "이러다 큰 싸움이 벌어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어이. 아스란. 네가 좀 말려봐."

 나름 평화주의자(?)인 김요셉의 말에 아스란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이야기해 봤습니다. 하지만 제 말을 안 듣더군요."

 "그럼 어쩌지? 이대로 내버려 둬야 하나?"

 "그나마 어느 누구도 헤븐즈 게이트를 열 수 없어 다행입니다. 만약 어느 한쪽에서 열쇠를 가진 자가 나타나면 바로 전쟁이 시작될 테니까요."

 지금은 대치 상태일 뿐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헤븐즈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어느 한쪽에서 열쇠를 가진 자가 등장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열쇠를 빼앗기 위해서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이고 그러면 이곳 더스트 평원은 거대한 전쟁터로 변해 버릴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느 망할 자식이 열쇠를 가지고 있지? 설마 아직 게임에 등장 안 한 것 아냐?"

 김요셉의 물음에 아스란이 집히는 것이 있는지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닙니다. 일전에 헤븐즈 게이트가 한번 열린 적이 있거든요. 제가 조사해 본 바로는 대장장이 지그가‥‥‥."

 그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갑자기 낯선 차림의 외국인들이 유저들을 가로지르며 헤븐즈 게이트 유적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들이 접근하자. 유적을 지키고 있먼 B.O.B&다크나이트 길드원들이 무기를 뽑아 들고 앞을 가로막았다.

 "당신들은 누구요?

 "우린 찬드라 대륙의 제일 길드 흑룡방이다. 그리고 나는 그 흑룡방의 방주인 프랭클린이라고 한다."

 찬드라 대륙을 양분하는 세력 중의 하나인 흑룡방.

 이곳이 찬드라 대륙이었다면, 주변의 유저들은 물론 프랭클린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들까지 모두 물러섰을 것이다.

 그러나 B.O.B와 다크나이트 길드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흑룡방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지도 못하거니와, 자신들은 아르페디아 대륙에서 정상을 다투는 길드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흑룡방이 여기는 무슨일이요?"

 "거기 유적에 볼일이 있어서 말이지."

 헤븐즈 게이트를 찾으라는 천사의 명을 받은 것은 아르페디아 대륙의 한국인 유저들만이 아니었다. 찬드라나 후소를 비롯한 외국인 유저들에게도 천사는 나타났다.

 "별빛을 찾아 천공의 문을 열면 '무황(武皇)의 칭호를 준다고 하더군. 그래서 무황이 되기 위해서 이 먼 대륙까지 온 것이다."

 프랭클린은 더스트 평원에서 헤븐즈 게이트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지기 전에 이미 휘하의 문도들과 함께 아르페디아 대륙에 들어와 있었다.

 철십자 길드의 대륙 통일 전쟁 때 상륙조차 못했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헤븐즈 게이트를 찾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찬드라 대륙에선 사방팔방 다 찾아봤지만 없었기에.

 그렇게 아르페디아 대륙 곳곳을 둘러보고 다니다가 더스트 평원에서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다행히 유적은 아직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듯.

 "다음 기회를 노리시오. 지금 이 유적은 B.O.B와 다크나이트 두 길드의 공동 소유요."

 "그건 너희들 멋대로 정한 것 아닌가. 별빛이 없어 유적을 가동시키지도 못하는 주제에 부둥켜안고만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군."

 프랭클린의 비웃음에 B.O.B와 다크나이트 길드원들이 발끈했다. 그러나 그들은 경솔하게 덤비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섣불리 싸움을 벌이면 다른 유저들만 좋아할 것이기에.

 "가동 능력이 없으면 소유 자격 역시 없는 것. 그런 너희들과 달리, 나에겐 자격이 있다."

 프랭클린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에 차고 있던 패검을 뽑아 들었다. 손잡이가 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가늘고 긴 패검은 태양 아래서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오오오!"

 유저들이 감탄을 터트리자 프랭클린이 거만하게 말했다.

 "유성검(流星劍)이라고 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을 녹여 만든 신검이지."

 "별을 녹여 만든 신검이라고?"

 유저들은 프랭클린의 손에 들린 유성검을 자세히 바라 보았다. 예사롭지 않은 검의 빛은 정말 천상에 빛나는 별빛과도 같았다.

 "이것이야말로 천공의 문을 열 수 있는 별빛‥‥‥ 아, 아니! 이놈들이!"

 말을 하다 말고 프랭클린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성검을 헤븐즈 게이트의 열쇠라 확신한 유저들이 흑룡방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저게 열쇠다! 뺏어!"

 "먼저 차지하는 자가 임자다!"

 "흥, 건방진 코리안들! 감히 나에게서 유성검을 빼앗겠다고?"

 분노한 프랭클린은 공격하는 유저들에게 유성검을 휘둘렀다. 검은 무복을 입고 은빛 잔상을 남기는 유성검을 휘두르는 프랭클린의 모습은 날카로운 이를 번득이는 한 마리의 검은 용과도 같았다.

 "모조리 죽여라! 이 기회에 우리 흑룡방이 일마나 강한지 똑똑히 보여 줘라!"

 "복명!"

 멘데이를 비롯한 흑룡방의 무사들은 달려드는 한국 유저들을 상대로 무기를 휘둘렀다.

 과연 흑룡방의 고수들은 강했다. 프랭클린이 가려 뽑은 정예들답계 출수할 때마다 이성을 읽은 벌 떼처럼 덤벼들던 한국 유저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하지만 그들의 기세도 오래가지 못했다. 점차 강한 유저들이 달려들고, 마법사와 성직자, 궁수들까지 가세하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더구나 처음에는 무질서하게 덤벼 대던 한국 유저들은 시간이 갈수록 조직적으로 싸워 나갔다.

 처음엔 단순히 검을 빼앗자는 욕심이 앞섰지만 프랭클린과 흑룡방의 실력을 보고 일단 먼저 그들을 쓰러트리자는 생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이런! 문도들을 더 끌고 올 걸 그랬나?'

 100여 명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건만. 개미 떼같이 몰려 드는 한국 유저들을 상대로는 너무 적은 숫자였다.

 인해 전술에 밀린 혹룡방은 하나하나 쓰러지기 시작, 마침내 프랭클린과 먼데이. 그리고 몇몇 고렙 문도들밖에 남지않았다.

 "내가 실수했군. 너무 배짱을 부린 게 화근이야. 얼른 이곳을 벗어난다!"

 "그렇게는 안 돼지."

 프랭클린이 문도들에게 명령을 내렸을 때였다.

 그의 뒤에 있던 흙바닥이 출렁거린다 싶더니 날렵한 슈트를 입은 사내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검은 초승달 길드의 길드장 키라.

 그것이 프랭클린의 배후에 나타난 사내의 이름이었다.

 키라는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손에 쥔 자마다르를 프랭클린의 들을 노려 찔렀다.

 "죽어라!"

 "크억!"

 등 위에서 기습을 당한 프랭클린은 심장을 정확히 찔렸다.

 찬드라 대륙에서 알아주는 고수인 그였지만, 다수의 유저와 싸운다고 힘을 많이 소진한 상태였다. 거기다 랭커급 어쎄신인 키라의 기습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

 "비, 비겁한‥‥‥."

 "훗, 당한 네가 멍청한 거야. 그런데 이게 헤븐즈 게이트의 열쇠란 말이지?"

 키라는 프램클린이 죽어 가며 떨어트린 유성검을 주워 들고 히죽 웃었다.

 "감히 방주님을 해하다니!"

 "당장 저놈을 죽여라!"

 아직 살아 있는 흑룡방 문도들이 분기탱천하여 키라에게 덤벼들었다.

 눈앞으로 상대가 달려들고 있었지만, 키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크어어억!"

 돌격하던 흑룡방 문도들의 몸에 창이 꽃혔다. 갑자기 땅에서 창이 솟구쳐 올라와 피할 틈이 전혀 없었다.

 그들을 공격한 것은 검은 초승달 길드의 도적들이었다. 키라와 함께 땅을 파고 몸을 숨기고 있던 그들은 상대가 머리 위로 지나가기 무섭게 암습을 펼쳤다.

 "후후후. 멍청한 양키 놈들."

 키라는 쓰러진 흑룡방 문도들을 비웃어 주며 헤븐즈 게이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는 얼마 가지 못했다.

 힘들게 흑룡방과 싸운 유저들이 키라가 헤븐즈 게이트를 열도록 가만히 내버려 둘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키라는 자신을 둘러싼 유저들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여러분의 희생이 더 컸으니. 사나이답게 깨끗이 포기하죠."

 그렇게 말하며 키라는 돌아서더니 손에 든 검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저기 유성검이 날아간다!"

 "와! 줍는 사람이 임자다!"

 유저들은 키라가 검을 던진 쪽으로 몰려가 아귀다툼을 벌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검은 초승달 길드원들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키라를 바라보았다.

 "왜 겨우 빼앗은 검을 양보하신 겁니까?"

 "너희들도 바보군. 내가 진짜 앙보할 줄 알았나?"

 "앗!"

 키라는 진짜 유성검을 슬쩍 보여 주며 씨익 웃었다. 좀 전에 집어 던진 검은 비슷하게 생긴 일반 강철검이있다. 돌아서는 순간, 진짜와 바꿔치기한 것이다.

 "이제 내가 헤븐즈 게이트를 열 것이다! 그리하여 어쎄신 헤드(Assassin Head)가 되는 거지!"

 "조용히 하십쇼. 주위에서 듣겠습니다."

 부하들의 만류에 키라는 흠칫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성검을 차지하겠다고 아귀다툼 중인 유저들 말고,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유적을 지키고 있는 B.O.B와 다크나이트 길드원들.

 그들은 좀 전에 흑룡방주가 유성검을 내밀었을 때도 꿈쩍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별다른 욕심이 없다는 듯 그들의 눈빛은 무심하기 짝이 없었지만, 키라는 안심 할 수가 없었다.

 혹시 아는가. 모두가 지쳤을 쯤에 덮쳐서 검을 빼앗으려 들지.

 그러나 키라외 예상은 빗나갔다. '후중'이라는 이름의 다크나이트 길드의 간부가 키라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 왔다.

 "그 검으로 헤븐즈 게이트를 열고 싶습니까?"

 "마음은 그런데 댁들이 막을거 아니오?"

 아무리 랭커 어쎄신이라지만. 키라는 기습이 아닌 싸움은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B.O.B나 다크나이트 길드같은 거대 길드와는 더더욱.

 "막지 않을 테니 어디 열어 보시죠."

 "엥?"

 "우리도 지키고만 있으려니 지루해서‥‥‥."

 그러면서 후중은 유적을 지키는 B.O.B와 다크나이트 길드원들에게 비켜 주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키라의 앞으로 유적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좍 열렸다.

 이들이 보인 뜻밖의 행동에 키라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저, 정말 나한테 양보해 주는 겁니까?"

 "고맙거든 나중에 우리들 의뢰나 공짜로 받아 주던가."

 "딴소리하기 없깁니다!"

 키라는 헤븐즈 게이르 유적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리고 스톤헨지를 담은 유적 가운데 유성검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이제 하늘의 문이 열린다!'

 키라는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빛의 기둥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물러섰다.

 그러나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고‥‥‥ 결국 10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당황한 키라는 유성검을 유적 이곳저곳에 옮겨 놓아 봤지만. 역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이거 왜 이래? 혹시 가짜인가?"

 "크크크, 머저리 같은 놈."

 먼저 그를 들여보낸 후중을 위시하여 주변의 B.0.B길드&다크나이트 길드원들이 킬킬거리며 키라를 비웃었다.

 여전히 영문을 알지 못한 키라에게 후중이 친절히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멍청아, 그딴 걸로는 천공의 문은 안 열려. 천공의 문을 열 수 있는 건 따로있다."

 B.O.B와 다크나이트는 철십자 길드 붕괴 이후, 협력 관계에서 대립 관계로 돌아섰다.

 주된 이유는 아르페디아 최강 길드라는 명예와 마노스 제국의 이권 때문이었지만. 길드 상위 고렙들의 헤븐즈 게이트 수색과 탐문이 원인이기도 했다.

 그들은 궤스트나 탐험을 통해 아르페디아 대륙 곳곳을 누비며. 헤븐즈 게이트와 연관된 모든 것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헤븐즈 게이트와 그것을 여는 별빛이 스타레이라는 특수한 물질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즉 유성검은 열쇠가 아니라는 사실.

 스타레이에 대한 정보를 알려 온 것은 B.O.B 길드의 창설 멤버인 아크 위저드 아스란이있다. 그는 이 정보를 대가로 양 길드의 화해를 이끌어냈다.

 헤븐즈 게이트 유적이 더스트 평원에서 발견되자 두 길드는 협력하여 유적을 봉쇄하고, 먼저 스타레이를 갖고 오는 길드 쪽에 헤븐즈 게이트를 양보하기로 했다. 그리고 천공의 문을 연 쪽이 다음번에 못 연 쪽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현재 두 길드의 상위 고렙들은 스타래이를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아스란이 스타레이를 구할 수 있는 방법까지는 말해주지 않은 탓이다.

 "그러니까. 댁들은 열쇠가 뭔지 알고 있어서 유성검을 뺏는 데 가담하지 않았던 거로군."

 "지키는 게 심심해서 네 삽질을 구경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하하! 그랬단 말이지?"

 허무하게 웃던 키라는 인상을 무섭게 구기며 자마다르를 손에 들었다.

 "이것들이 누굴 광대로 알고!"

 "애들아, 구경 다 했다. 저 머저리 자식을 부활 포인트로 보내 줘라."

 후중의 명령에 B.O.B의 마법사 유저들과 다크나이트의 궁수 유저들이 돌격하는 키라에께 마법과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키라는 장렬히 전사했다.

          3          

 "뭐야. 이거 유성검이 아니잖아!"

 "키라 이색히! 우릴 속였어!"

 키라가 죽기 전, 유적 밖에서 아귀다툼을 계속하던 유저들은 그가 던진 낚싯밥을 확인했다.

 분개한 그들은 키라를 찾았지만, 이미 녀석은 유적 안으로 들어가 버린 후였고, 얼마 후 엄청난 폭음이 헤븐즈 게이트 유적에서 들려왔다.

 처음에는 천공의 문이 열리는 소린 줄 알고 놀랐으나. 곧 키라가 마법에 맞아 죽은 소리라는 걸 알았다.

 "진짜 키라가 죽었냐?"

 "다크나이트 길드원인 내 친구가 귓속말을 보내 줬어. 유성검도 열쇠가 아니라고 하던데."

 중요 정보릍 들은 유저들은 더한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아놔. 그럼 우린 왜 싸운 거야!"

 "B.O.B랑 다크나이드 길드 자식들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단 말이잖아."

 "이런 망할 자식들!"

 유저들은 살기등등해서 유적으로 다가갔다. 유적을 지키는 B.O.B와 다크나이트 길드원들은 곧장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

 또다시 싸움이, 그것도 평원을 뒤흔들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질 것만 같았다.

 "쳐라!"

 드림맥스 7층의 게임 관리실. 정경욱은 스크린을 보며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흐흐, 그래! 이래야지. 이러라고 만든 건대 말이야!"

 그는 B.O.B와 다크나이트 연합군이 유저 군단과 싸우는 것을 보며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더스트 평원에 헤븐즈 게이트 유적이 나타난 것은 정경욱의 농간이었다.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긴 것인데, 그 이유는 철십자 길드가 망한 이후 한동안 아르페디아 대륙이 조용하자 헤븐즈 게이트를 분쟁거리로 삼기 위해서었다.

 그의 기대대로 B.O.B와 다크나이트 길드는 유저들의 공적이 되었고, 오늘 더스트 평원에서의 전투를 기점으로 아르페디아 전역으로 분쟁이 확산될 것이다.

 헤븐즈 게이트를 두고 고렙들은 혈투를 벌일 것이고, 철십자 길드의 대륙 통일 전쟁 때 패퇴했던 해외 거대 길드들도 다시 아르페디아 진출을 도모할 것이다.

 그리되면 아르페디아 대륙은 또다시 대전란의 시대를 맞게 될 터. 

 "좋으신가 봅니다?"

 "좋고말고!"

 결에 있던 손석진의 물음에 정경욱은 맞장구를 쳤다.

 "이렇게 대판 싸움이 나야 무구가 깨지고 아이템이 소모될 게 아닌가. 손해를 만회하려고 유저들은 게임을 더 할 것이고, 그럼 우리 회사 이윤이 올라가지."

 그렇게 말하며 정경욱은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네가 총애하는 지그 녀석의 수입이 짭짤해질 것 아닌가."

 "글쎄요, 유한 군 본인은 그 짭짤한 소득을 원치 않는 것 같습니다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정경욱의 물음에 손석진은 스크린을 가리켰다.

 스크린에는 유한이 블랙을 대동한 채 싸우고 있는 유저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비치고 있있다.

 "모두 그만!"

 유한은 더 이상의 난장판을 지켜보다 못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이름을 알아본 유저들이 일단 전투를 중지했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헤븐즈 게이트를 차지하려는 거라면 어림 반 푼 어치도 없습니다."

 유저들이 경계의 는빛을 보이자, 유한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러분들은 헤븐즈 게이트를 열 방법을 아십니까?"

 "당연히 별빛을 찾으면‥‥‥."

 "별빛이 뭔지 확실히 아십니까? 그리고 별빛이라 생각한 것을 찾았다 해도 유적이 작동되지 않으면요?"

 이미 좀 전에 키라가 별빛이라 여겼던 유성검을 바쳤는데도 유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별빛은 운석이 아니란 말인가? 그게 아니면 거기에 또 다른 수수께끼가 있다는 뜻?

 유한은 여기서 좀 더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별빛은 운석이 맞습니다. 하지만 운석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죠."

 "그러면요?"

 "운석을 정제한 스타레이라는 게 필요한 겁니다. 스타레이 정제법을 아는 유저는 저를 포함해서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단둘밖에 없고요."

 물론 드워프도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인간들, 그러니까 유저에게는 알려 주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에게도 스타레이는 귀중한 비밀이니까.

 "지그 님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유저 중의 한 명이 그렇게 물었다. 유한은 뒤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동료들을 소개하며 말했다.

 "예전에 저는 제 친구들과 청해도라는 섬에 가서 헤븐즈 게이트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천공의 문을 열었죠."

 유한의 말을 듣고 유저들이 웅성거렸다. 헤븐즈 게이트가 최초 등장한 곳이 바로 청해도였기 때문이다.

 "그럼 지그 님이?"

 "예, 저와 제 친구들이 헤븐즈 게이트의 최초 발견자입니다. 이후로 헤븐즈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고 여러분들에게도 천사가 찾아올 수 있게 된 거지요."

 유저들의 웅성거림은 더 커졌다. 여기 있는 유저들 중에는 유한과 블랙이 당시 청해도에서 오와리 번과 싸우는 것을 본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 있는 불신을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때 같이 갔던 제 친구들이 증언해 줄 겁니다."

 "친구 분들이랑 작당하지 않았다는 보장은 있습니까?"

 지그가 유명하다고 해서 그의 말이 모두 맞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경쟁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건‥‥‥."

 유한이 뭐라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아스란이 나타나 그의 말을 받았다.

 "제가 보증합니다."

 "다, 당신은?"

 "아크 위저드 아스란입니다."

 "나도 보증하죠."

 아스란의 뒤를 이어 김요셉, 아르샤, 카쉘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얼굴 보기 어렵다던 상위 10위까지의 톱랭커들 중 반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스란과 김요셉은 유한의 말을 보중할 수 있는 이유를 늘어놓았다.

 "헤븐즈 게이트를 찾으면서 잠시 부캐를 키우는 귀련님과 동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귀련 님은 지그 님이 스타래이를 제련할 줄 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헤븐즈 게이트의 비밀을 풀기 위해 헬리오스 교단의 교황님에게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다 끝내고 나니 그 양반이 정보를 일러 줬는데. 신의 광석을 제련한 스타 레이라는 물질이 바로 별빛, 헤븐즈 게이트의 열쇠라고 하더군요."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유저들은 그제야 수긍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먼저 유한에게 반박했던 유저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혹시 두 분도 지그 님과 말을 맞추신 거 아닙니까?"

 "디질래요?"

 김요셉의 정중하고 살기 넘친 한 마디에, 반박하던 그 유저는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유한은 그 정도로는 사람들을 완전히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아 인벤토리에서 스타레이를 꺼냈다. 언제든 쓸 수 있도록 운석의 일부를 정제하여 만들어 둔 것이었다.

 그는 꺼내 든 스타레이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손에 들고 높이 치켜 올렸다.

 "이게 바로 스타레이입니다. 바로 제가 정제한 것이죠."

 꿀꺽!

 곳곳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급기야 몇몇 유저들이 무기를 들고 유한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블랙과 유한의 친구들을 비롯해 김요셉과 랭킹 10위의 초고렘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자, 감히 누구도 덤벼들지 못했다.

 "지금부터 지그 님께 칼을 겨누시는 분들은 제가 장송곡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7위 랭커인 음유시인 카셀의 싸늘한 엄포에, 그나마 미련이 남아있던 유저들도 공격을 포기했다. 하지만 카셀도 유저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거 보이신 이유가 뭡니까? 헤븐즈 게이트를 열 자격이 있다고 시위하는 겁니까?"

 방금 전에 흑룡방주인 프랭클린이 그랬다. 그러나 유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제가 스타레이를 이렇게 공개한 데는 한 가지 목적이 있어서입니다. 바로 무모한 싸움을 막고 싶다는 거죠."

 유한은 한국 유저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것이 소규모 길드전이거나 사소한 분쟁이라면 끼어들지도 않았다. 그저 싸울 놈들 시원하게 싸우도록 부추긴 후 무기나 팔아먹으면 그만.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모여든 유저는 기천 명이 넘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아르페디아 대륙의 내로라하는 고렙들.

 그들이 만약 오늘 이곳에서 서로 원한을 가지게 되면 앞으로 아르페디아 온라인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쩌면‥‥‥.

 '혼란을 틈타 진출해 오는 해외 유저들한테 아르페디아 대륙이 먹혀 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씀.'

 유한은 정경욱이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점까지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는 이 스타레이를 여러분 앞에 내놓기로 했습니다."

 유한의 한마디가 폭탄이 되어 유저들의 뇌리를 뒤혼들었다.

 스타레이를 내놓는단다.

 헤븐즈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열쇠인 스타레이를!

 유저들은 저마다 마른 침을 삼키며 에타게 유한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에게 스타레이를 넘겨 달라는 듯.

 "하지만 지그 님. 스타레이는 하나고 여기 모인 유저들은 기천 명이 넘습니다. 그걸 누구에게 주실 겁니까?"

 김요셉이 물었다.

 유한은 이미 생각해 놓은 바가 있었기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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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븐즈 게이트는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들 자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저는 천계 문앞에서 쫒겨났죠.

 "그래서 최고 경지가 아닌 사람은 배제하겠다는 말입니까?"

 "아뇨 헛되이 스타레이르 쓰지 않도록 미리 일러 주는 겁니다."

 그렇게 응답한 유한은 다시 유적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열망은 같습니다. 언젠가 최고의 경지에 올랐을 때 이 스타레이가 필요하겠지요."

 사실 여기 모인 유저들 중에는 천사에게 아직 부적합하다는 말을 들은 이들도 있었다. 그저 뒤지지 않겠다는 오기로. 남에게 헤븐즈 게이트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욕심에 달려온 것이다.

 '하긴 지금은 실력이 모자라도 나중에는‥‥‥.'

 '미리 열쇠를 구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지.'

 유저들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유한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스타레이는 하나고, 원하는 분들은 많습니다. 전 가장 공정한 시합을 통해 스타레이의 주인을 뽑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정한 시합이라고요?"

 "어떻게 공정한 시합을 할 수 있습니까?"

 유저들에게서 다시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각 직업군의 능력에 차이가 있고, 역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공정한 시합을 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싸움으로 하면 전투직 유저들이 유리하고, 뭔가 만드는 것으로 하자면 생산직이 유리하다. 또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할 지에 대해서도 복잡하게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공정한 시합을 치르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끼리끼리 모여 가위바위보라도 할까요? 수천 명이서?"

 "난 가위바위보 하면 매번 진다고요!"

 유한이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유저들의 목소리가 뚝 그쳤다.

 그들을 일별한 유한은 진지한 업굴로 말했다. 마침 좋은 생각이 있었다.

 "퀴즈 시합으로 합니다."

 그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유저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아르패디아 온라인에 관한 문제들로 최후의 한 사람을 뽑는 겁니다. 열망이 강한 유저 분이라면 게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만하면 스타레이를 가질 자적이 있을 거고요."

 설명을 들은 유저들은 수글 할만했던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유저들은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고렙들이었고,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래도 편향된 문제가 나올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나 같은 궁수에게 대장장이가 잘 아는 문제들만 계속 나오면‥‥‥."

 궁수인 어느 유저가 불만을 제기했다. 김요셉도 수긍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무제 출제에 대해서도 공정성을 가해야 맞겠군. 그걸 공정하게 해 줄 사람은‥‥‥."

 "GM 한테 부탁해 볼까요?"

 손석진과 안면이 있는 유한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불쑥 튀어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저희가 하겠습니다"

 "앗! 당신들은‥‥‥?"

 유한의 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게임 방송 버추얼 에이지의 취재팀이었다. 해설자 이정민은 카메라맨과 함께 더스트 평원의 상황을 취재하러 왔다가 유한의 말을 들었다.

 '이건 대박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가 맡아야 해!'

 그렇게 생각한 이정민은 진심과 열의릍 담아 말했다.

 "지그 님이 생각하신 퀴즈 시합 이벤트 저희가 꼭 하고 싶습니다! 모든 준비를 저희가 책임질 테니 부디 맡겨 주심시오!"

 "하지만 드림맥스에서 허락할지‥‥‥."

 "드림맥스는 걱정 마십시오. 저희 쪽에서 다 알아서 설득하겠습니다."

 '하긴 이런 건 방송국에다 말기면 잘할 거야.'

 그렇게 생각한 유한은 버추얼 에이지 팀에 퀴즈 시합의 운영과 문제 출재를 맡기기로 했다.

 방송국까지 나선다고 하자 더 이상 반대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제3자가 말으면 확실히 공정성은 유지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댁들도 유적 수비는 그만하고 퀴즈 시합에 참가하는 게 어떻습니까?"

 유한은 여전히 헤븐즈 게이트 유적을 지키고 있는 B.O.B와 다크나이트 길드원들에게 제안했다. 그러자 후중을 비롯한 책임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길드 상위 고렙들이 언제 스타레이를 구해 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탁 트인 평원에 있는 유적을 언제까지 지킬 수도 없는 노릇.

 "일단 의향부터 물업봐야겠지."

 그렇게 판단한 길드 간부들은 길드장을 비롯해, 탐험중인 상위 고렙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적은 쪽지를 보냈다.

 생각보다 답장은 빨리 도착했다. 내용은 '참가한다'였다. 아무래도 스타레이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던 모양.

 "좋습니다. 우리 길드는 참가합니다."

 "우리도!"

 퀴즈 시합 참가를 결정한 두 길드는 헤븐즈 게이트 유적의 포위를 풀었다. 어차피 스타레이가 없으면 가동하지 않을 곳이니 더 이상 시간 낭비 하며 지키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누구 맘대로 퀴즈 시합을 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정경욱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르페디아 대륙을 피로 물들이는 대전쟁을 고대하던 그는 지금의 상항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게임의 주체는 유저들입니다. 유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야죠."

 손석진의 말에 정경욱은 한사코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이벤트의 기획이나 진행은 오직 운영자인 우리가 할 일이야!"

 "왜 말이 안 됩니까? 그럼 유저들이 게임 내에서 소소하게 여는 사냥 시합니다 보물 찾기도 모두 금지해야 하겠군요."

 "그, 그건‥‥‥."

 딱히 할 말이 없어지는 정경욱이었다.

 처음부터 회사 이익과 자기 만족을 위해서 꾸몄던 일, 명분이 없는 정경욱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손석진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싱긋이 웃었다.

 "그럼 하는걸로 알겠습니다. 버추얼 에이지 팀과는 제가 이야기하지요."

 "이, 이봐!"

 손석진을 말려 보려던 정경욱은 포기하고 그 자리에 푹 앉았다.

 고개를 들자 스크린에는 오늘의 분쟁을 중재한 유한의 모습이 꽉 들어차 있었다. 그는 자신도 퀴즈 시합에 참가할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휴, 그래. 대장장이 지그 니가 최고다."

 다음 날, 공식 홈페이지에는 퀴즈 이벤트와 관련한 공지가 대문짝만 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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