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7 학림고의 활극
1
반지그 동맹을 밟아 주느라. 며칠 밤을 새워 게임에 매진한 유한에게 전화가 왔다.
"누구십니까?"
피곤에 절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상대는 혀를 찼다.
"밤새 게임을 한 겁니까?"
"개발자님이시군요. 무슨 일입니까?"
상대와 말씨름을 하고 싶지 않아 바로 용건을 물었다.
잠시 혀를 찬 손석진은 본론을 꺼냈다.
"제가 학림 아카데미와 관련해 조사를 했는데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손석진은 드림맥스를 움직여 학림재단과 관련 인물들을 감시하고, 전직 티쳐스의 선생들 컴퓨터까지 해킹했지만 좀저첨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
계속 시간을 끌면 그들이 눈치를 채거나 다른 누군가 비리를 터트릴 수 있기 때문에 곤란해진다.
그래서 손석진은 유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번에 유한군이 도울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지요?"
"네. 뭘 도와드릴까요?"
학림고와 학림 재단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웬만한 것은 협조할 자세가 되어 있는 유한이었다.
그의 물음에 손석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학림고에 들어가 놈들의 장부와 시힘지를 빼 와 주십시오."
"장부와 시험지요?"
유한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무리 그가 학림고를 싫어한다지만 이건 이야기가 달랐다.
중거 확보라는 명분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절도 아닌가.
"제 해킹 실력을 아실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놈들의 컴퓨터에는 의심쩍은 장부나 문제지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아마 회선이 단절된 컴퓨터나 금고 같은 곳에 보관해 두었나 봄니다."
"하지만 전‥‥‥."
유한이 망설이자 손석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확보하지 못하면 학림 재단은 고발되어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겁니다. 유한 군은 그런 꼴을 보고 싶으신 겁니까?"
"당연히 아니죠!"
"그럼 반드시 그들을 파멸시켜 지금까지 부정 축재한 재산이 사회에 환원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장부가 꼭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었지만, 그래도 사회에는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다. 학림 재단의 부를 그런 이들에게 되돌리자는 말은 유한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무엇보다, 학림고가 부정 축재 한 재산으로 정현일 자식이 배 두들기며 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 안 들키면 되잖아!'
그렇게 생각한 유한은 수락했다.
"좋습니다. 제가 하지요. 하지만 그 전에 개발자님이 해 줘야 할 일이 있습니다."
유한은 자신이 학림고에 침입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일들을 말해 주었고. 그의 말을 들은 손석진은 당연히 해 준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학림고 침투 계획은 완성되었고, 이제 실행을 남겨 두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다 끝내 버리는 거야.'
과거 자신의 악연은 물론 현재 학생들의 고통까지 그 모든 것을 청산하기로 다짐한 유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 가는 시간.
유한은 학림고 교문 근처에서 자신의 복장을 내려다보았다.
엿날에 입다 처박아 둔 교복을 어제 찾아 깨끗이 빤 뒤, 다림질까지 해서 입었다. 머리를 단정히 깎고, 입에 아이스바를 하나 물자. 누가 봐도 군것질 중인 학림고 학생으로 보였다.
용기를 낸 그는 당당하게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급식이 싫어 밖에서 점심을 사 먹는 학생도 있고, 교문 밖 분식집에서 군것질을 하고 오는 학생도 있기에. 누구도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다.
유한이 벌건 대낮에 학교에 침입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은 죄(?)가 많은 학림고와 재단이 야간과 주말에 집중적으로 경비를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한과 손석진은 주중 대낮에 과감히 일을 벌이기로 정했다.
'예상보다 정공법이 잘 통하는 군'
교문을 통과한 유한은 교무실이 있는 학교 본관으로 다가갔다. 그래도 한때 학림고의 학생이이었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기에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침내 유한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본관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시작인가?"
본관 앞에 다다른 그는 나무 뒤에 숨어서 숨을 들이켰다. 긴장되었기 때문이다.
'가자!'
손바닥으로 얼굴을 두들긴 유한은 본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복을 입었기에 얼굴을 아는 사람들만 피하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래도 주의해야 하지만 다행히 교무실이 있는 건물 3충까지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교무실 근방에 다다른 그는 근처 화장실에 숨어들었다.
'교무실 잠입을 손석진 씨가 확실히 책임져 준다고 했지?'
오후 1시 40분
유한이 손목시계를 보며 약속 시간을 확인했을 때였다.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학교 건물 전체에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화재 경보였다.
손석진이 약속된 시간에 학림고의 시스템을 해킹해 울리게 만든 것이다.
화재 경보가 울리자. 교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뭐야? 불이 난 거야?"
"어디? 어디?"
"암튼 우린 수업 안 하는 거지?"
"병신, 당연하지!"
불난 덕분에 수업을 재끼게 된 학생들이 복도에서 떠들어 대자, 뒤늦게 교실에서 나온 선생이 조용히 시켰다.
"모두 조용히! 자자, 침착하게 줄을 서서 앞 열부터 계단을 내려간다, 실시!"
그렇게 교사들의 지도하에 학생들은 전부 운동장으로 나갔다.
건물을 빠져나온 선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눴다.
"대체 불이 어디서 난 거야?"
연기라곤 한 줄기도 피어오르지 않자, 선생들은 어리둥절했던지 고개를 연방 갸웃거렸다.
"혹시 오늘 소방 훈련한다는 말 있었습니까?"
"그련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만."
"이거 혹시 어떤 녀석이 구석에서 담배 핀 것 때문에 센서가 작동한 게 아닐까요?"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화재 경보가 울렸는데 무시할 수도 없어 일단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다 나갔나?"
교사가 텅 비자. 유한은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근방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는 교무실익 문을 열었다. 교무실 안쪽에 교감실이 있는데, 다행히 교감실 문은 잠기지 않았고 안에 사람도 없었다.
'휴우!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서둘러 교감실을 뒤졌다.
이번에 문제지 유출을 주도하고, 과거 티쳐스 선생들과 접선한 것은 교감인 정석재였기에 장부나 시힘지도 정석재가 관리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게 아니면 곤란한데‥‥‥."
그러다 유한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홈칫 놀랐다.
그가 발견한 것은 교감실 한편에 설치되어 있는 CCTV.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있었던 터라 발견이 늦었다.
감시 카메라요? 제가 모조리 먹통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러니 뒤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손석진의 말을 떠올린 유한은 CCTV를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정말 전원이 나가 있었다.
'손석진 씨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내심 안도한 유한은 다시 교감실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당히 미심쩍은 금고를 하나 발견했다.
벽에 불어 있는 액자를 떼어 내자 나온 건데, 영화나 소설을 보면 악당들이 보통 그곳에 보석이나 중요한 서류 따위를 숨겨 놓곤 했다.
'이거겠지?'
이럴 때를 대비해서 손석진에게 받아 온 것이 있었다.
일명 만능열쇠.
현재 웬만한 금고는 전자적 장금 장치를 사용하는 데, 이를 교란시킬 수만 있으면 간단히 열 수 있었다.
유한은 서둘러 만능열쇠를 금고에 연결하고 동작 버튼을 눌렀다.
삑삑삑!
몇 번 전자음이 울리더니. 금고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됐다! 역시 세계적인 해커는 달라도 뭐가 달라."
기쁨의 을성을 토한 유한은 서둘러 안에 든 것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몇 개의 자질구레한 서류들이 나오고 드디어 유한이 찾던 것이 모습을 드리냈다.
학림 아카데미 고객 명단.
평범한 학원생들 명단이었으면 이렇게 보관하고 있을 리 없을 터. 유한은 서둘러 명부를 읽어 내려갔다.
"역시!"
명부에는 누구누구에게 언제 얼마를 받고 문제지를 유출했는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학림 아카데미가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그들이 문제지를 판 대상은 어림잡아 수백 명이 넘었다.
대부분 학부형들의 이름과 계좌 번호, 거래 금액이 적혀 있었다.
"이러니 학림 아카데미가 성직 잘 올려 준다고 소문이 날 수밖에."
혀를 끌끌 찬 유한은 다시 금고 안을 뒤졌다. 그리고 각 학교에서 빼 온 듯한 문제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유한도 익히 들어 본 강북의 명문 고등학교를 비롯한 십여 개 고등학교의 1학기 기말 문재지들이 들어있었다.
국어, 영어, 수학 등등 없는 과목이 없었다.
아마 이번에 팔아먹을 생각으로 고이 모셔 놓은 듯.
'오냐. 너희들 이번에 콩밥 좀 제대로 먹어 봐라.'
내심 이를 간 유한은 발견한 문제지와 장부를 근처에 있던 서류 가방에 담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챙길 것도 챙겼으니 무사히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유한이 돌아섰을 때였다.
갑자기 문이 삐걱 열리더니 낯익은 낯짝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유한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너는!"
2
'이크! 그걸 놔두고 나왔구나.'
정 교감은 화재 경보를 듣고 교사들과 본관 밖으로 빠져나오다 금고 안에 든 장부와 문제지들에 생각이 미쳤다.
만약 화재 경보가 사실이라면 혹시 그것들이 타 버리기 전에 꺼내 와야 한다. 그래야 하던 사업을 계속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 교감은 다시 본관을 올라 3층 교무실 안쪽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내가 안 닫고 나왔나?"
경황이 없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한 그는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보고 놀랐다.
"아니, 너는!"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급식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학교 명성에 먹칠을 하더니, 끈질기게 자퇴하지 않고 버티던 녀석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게임에서 학생 유저들을 선동해 티쳐스를 박살 내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정현일이 몸담고 있던 철십자 길드까지 해체시킨 놈도 이놈이다.
그런 놈이 자신의 방에 있었으니 정 교감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네놈이 여기 왜 있어!"
"아하하. 그게 말이죠‥‥‥."
유한이 뭐라 변명을 하려다가 냅다 서류 가방을 휘둘렀다.
"커억!"
머리에 묵직한 충격이 가해지자 정 교감은 비명을 질렀다. 그가 자리에 주저앉자 유한은 이때다 싶어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잡아! 저새끼를 잡으란 말이야!"
정 교감이 새된 고함을 질러 보지만 지금 교무실에 사람이라고는 유한과 둘뿐, 그의 고함을 듣고 달려올 사람은 없었다.
'근데 저놈이 왜 학교에 들어왔지?'
뒤늦게 이 사실을 인지한 정 교감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 한쪽의 비밑 금고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 있던 시험지와 장부는 사라지고 없었다.
안색이 하양게 변한 정 교감은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헉헉! 제기랄, 마지막에 가서‥‥‥."
죽어라고 복도와 계단을 뛰어 내려온 유한은 업굴이 벌개져 욕지거리를 밸어 냈다. 어쩐지 처음부터 일이 잘 풀린다 싶더니 마지막에 가서 꼬여 버렸다.
유한은 본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운동장에 모여 있는 학림고 학생들과 선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그들을 빙 둘러 교문으로 뛰어갔다. 뛰면 의심을 살까봐 잰걸음으로 걸었다.
"어이. 너 어디 가는 거냐!"
유한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으로 향하자 선생 하나가 고함을 질렀다.
유한이 힐끔 바라보니 체육 선생이었다. 과거 그가 학교에서 쫒겨날 때 정현일 일당의 편만 들어주던.
'저 인간도 교감의 졸개갰지?'
유한이 대꾸도 안 하고 발걸음을 빨리하자 체육 선생이 다시 고함을 질렸다.
"당장 이리 안 와!"
안 되겠다 싶은 유한이 뛰려고 할 때였다. 본관의 문이 열리더니 손으로 머리 한쪽을 감싸쥐 정 교감이 나놔 외쳤다.
"저 새끼 잡아!"
"예?"
어리둥절한 체육 선생이 물었다.
"저 새끼 도둑놈이니까 잡으라고!"
채육 선생은 영문을 알 길이 없었지만. 일단 정 교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는 유한을 향해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왔다.
그러자 유한도 교문을 향해 뛰었다.
졸지에 추격전이 벌어졌다. 제일 앞에는 유한이 섰고, 그 뒤를 체육 선생과 다른 선생들이 따랐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교문이 코앞까지 다가으자 유한의 얼굴이 밝아졌다. 저 교문만 통과하면 자신은 자유였다.
그러나 그 환한 표정은 얼마 가지 않아 절망으로 변하고 말았다. 얼굴이 험악한 경비들이 교문 앞에 모여 있었다. 대충 세어 봐도 열은 넘을 듯.
"허억! 헉! 이 도독놈의 새끼. 내가 널 이대로 보낼 줄 아느나?"
언제 도착했는지 정 교감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교문의 경비들은 좀 전에 그가 전화를 해서 불러 모은 사람들이었다. 원래는 교내에 이렇게 숫자가 많지 않지만, 사건이 사건인 만큼 근처 재단 사무실에 있던 이들까지 모두 불러냈다.
"어라, 넌?"
경비들 중에 유한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정현일의 개인 운전기사이자 보디가드였던 대철이었다.
"하아, 여기서 또 만나는군요."
"그건 전부 네 탓이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으니까."
대철이 이를 뽀드득 갈며 말했다.
지난번 사건에 대해 정현일과 대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홍영순은 얻어터져 공처럼 얼굴이 부은 정현일을 보고 대철을 쫓아내 버렸다."
그 결과 대철은 학림 재단 정씨 일가의 운전기사 밑 보디가드에서 재단 사무실의 경비원으로 전락했다.
"제길 완전 엎친 데 덮친 격이군."
유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철만 해도 벅찬데. 한눈에도 조폭스러운 경비들이 눈앞에 쫙 깔렸기 때문이다.
"뭐하는 거야? 얼은 저 녀석을 잡아!"
정 교감의 고함에 대철과 경비들이 유한을 향해 다가왔다. 선생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흥미진진한 얼굴로 구경했다.
졸지에 앞뒤로 포위당한 유한.
그는 주먹을 쥐고 달려 나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뒤로 돌아 선생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어. 어?"
유한이 갑자기 자신을 향해 달려들자 체육 선생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유한은 그런 그의 복부에 묵직한 주먹을 선물로 안겨 주었다.
"크억!"
배를 움켜쥐고 무너지는 체육 선생 뒤로 빈틈이 보였다.
그러나 유한이 그곳으로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둘 대철이 아니었다.
그는 몇 걸음 도약하더니 그대로 유한의 들을 걷어찼다. 바닥을 굴러 타격을 줄인 유한은 별수 없이 대철과 싸우기 시작했다.
"제길! 비리 재단의 사낭개 노릇을 하니까 좋습니까?"
"닥쳐!"
대철은 숙련된 싸움꾼의 실력으로 유한을 압박해 갔다.
우선 유한의 코와 눈을 때렸다. 코피가 나면 제대로 호흡하기 힘들고, 눈이 부으면 사방을 살피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치를 가볍게 갈겨 주면‥‥‥."
숨이 턱 막히면서 주저앉고 말리라.
그러나 유한을 차례대로 요리해 가던 그는 마지막에 방심을 하고 말았다. 유한에게 허를 찔려 안면 박치기를 당한 것이다.
"커억! 내 얼굴!"
대철에 한 방 먹이긴 했지만, 유한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다른 결비들까지 가세하여 주먹을 휘두르자, 유한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야만 했다.
"어린놈의 자식이 어른을 때려?"
"죽어 봐라, 애새끼."
아무리 유한이 극기도를 수련하고 또래에서는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해도 상대는 경비의 탈을 쓴 조폭. 그것도 대철이란 뛰어난 싸움꾼이 포함된 조폭들이었다.
퍽퍽퍽!
순식간에 여러 군데를 두들겨 맞은 유한은 정신이 다 없었다. 그나마 맷집이 좋아졌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바닥에 드러누웠을 것이다.
그렇게 유한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을 때였다. 경비들을 멈춰 세운 정 교감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내놔!"
"뭘요?"
"네가 아까 내 방에서 훔친 거 말이다 그 가방 안에 들었지? 그걸 주면 오늘 일은 너그럽게 용서해 주겠다."
피식!
정 교감의 말에 유한은 웃음이 나왔다.
독사처럼 교활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누가 누굴 용서해준단 말인가. 차라리 이 자리에서 묻어 버린다고 하는 게 더 믿음이 같 것이다.
"싫은데요,"
유한이 거절하자 정 교감이 눈짓을 했고, 대철과 경비들이 다시 나서서 유한을 차고 밟기 시작했다.
유한은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어떻게든 품에 든 가방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에썼다.
"싸움이다!"
"경비들하고 울 학교 학생이 싸우는 것 같은데?"
"싸우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고 있잖아. 그런데 선생들은 왜 가만히 보고만 있지? 말려야 되는 거 아닌가?"
유한과 경비들과의 싸움이 길어지자, 운동장에 피신해 있던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긴 자신들과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이 열이 넘는 경비들에게 험한 꼴을 당하고 있으니 궁금증이 일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가 보자!"
호기심이 강한 학생 몇이 교문 쪽으로 움직이자. 상당수의 학생들이 우르르 따라갔다. 뒤늦게 선생들이 말렸지만,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학생들을 말리기는 역부족이었다.
퍽!
또다시 대철에게 차인 유한은 바닥을 뒹굴고 말았다. 교복이 흙투성이가 되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그의 머리를 대철이 발로 눌러 밟았다.
"죽고 싶냐? 그만 포기하고 가방 얼른 내놔."
"큭! 차라리 죽여라. 이 더러운 놈들아."
"아직 입이 살아 있는 것을 보니 덜 맞았구먼."
대철은 다시 발로 유한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렇게 유한이 엉망진창으로 당하고 있읕 때였다. 갑자기 학생들 쪽에서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3
"그만해, 이 조폭 새끼야! 뭐 때문에 학생을 그렇게 두들겨 패는데? 개가 죽을죄라도 지었냐!"
갑자기 학생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고함.
그 고함은 몰려온 학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저 경비들이 조폭이었나?"
"그러고 보니 인상이 심상치 않았어."
조폭에게 경비 옷을 입혔다지만, 그 근본이 어디 가겠는가.
험악한 인상에 깍두기 머리. 그리고 건들거리는 태도는 누가 봐도 그들이 조폭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들었다.
"누, 누가 조폭이라는 거냐! 저들은 우리 학림고에서 고용한 경비‥‥‥."
정 교감이 반박을 하려 할 때 다시 학생들 사이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경비가 학생을 패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벌을 줄 게 있으면 선생님에게 말하면 되잖습니까! 그리고 선생님들은 왜 뒤에서 팔짱 끼고 구경만 하는 겁니까!"
"맞소!"
"선생님들은그러고도 참 교육자입니까!"
학생들 속에서 호응하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자, 선생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경비들을 제지하자니 정 교감의 눈이 무섭고, 그렇다고 모른 척하자니 학생들에게 올바르지 못한 선생으로 낙인찍힐까 두렵다.
"어떤 놈이 자꾸 선동하는 거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정 교감이 학생들 앞 나서서 호통을 쳤다. 평소 학생들을 발톱에 낀 때만큼도 여기지 않던 그라서 펄펄 뛰며 욕설을 퍼부었다.
"어떤 호래자식인지는 몰라도 잡히면 한 달 정학에 부모님을 학교로 불러오도록 만들겠다!"
"우우우!"
학생들이 야유하자 정 교감이 선생들을 향해 신경질을 냈다.
"박 선생, 김 선생. 뭐 하는 거요? 학생들이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지 않소. 저놈들을 얼른 교실로 돌려보내시오!"
"아, 알겠습니다."
정 교감의 지시를 받은 선생들은 몽둥이를 휘드르며 학생들을 돌려보내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학생들 사이에서 덩치가 좋은 남학생이 뛰어나오더니 선생을 밀치고 경비들에게 다가갔다.
그가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러 대는 사이, 엉망진창으로 밟히고 있던 유한이 경비들의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가방을 열고 그 안에 있던 것 중 일부를 학생들에게 확 뿌렸다.
"억! 저것은!"
당황한 정 교감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학생들 중 일부가 유한이 뿌린 종이를 집어 들었다.
"어? 이거 대진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문제?"
"아니, 조금 있으면 기말고사잖아?"
"이건 청솔고 시험지‥‥‥앗! 우리 학교 시험지도 있어!"
"뭐! 진짜?"
학생들의 동요가 커지자. 유한이 고함을 질렀다.
"모두 다 똑똑히 들어! 내가 이걸 어디서 갖고 온 줄 아냐? 바로 교감실에서 꺼내 온 거다. 그걸 안 교감이 조폭을 동원해 날 잡으려 든 거고!"
학생들도 학림고와 재단의 비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재작년의 생쥐 스프 사건도 있었고, 수학 여행비를 비싸게 받아 놓고 식사나 부대시설은 형편없었다든지 하는 이런저런 잡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마 시험 문제지를 빼돌려 학생들의 내신 성적을 조작할 줄은 몰랐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모두 새까만 거짓말이다!"
뒤늦게 정 교감이[정 교감→ 정 교감이 by. 곰] 외쳐 보지만 이미 늦었다. 학생들의 목 소리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거짓말이라고요? 그럼 우리 눈앞에 보이는 이 시힘지는 뭡니까?"
"왜 딴 학교 기말고사 시험지가 우리 학교에 있는 겁니까!"
"게임에서 학림 아카데미에 다니는 애들의 성적이 부쩍오른게 이것 때문인가요?"
"선생님! 어떻게 된 건지 말 좀 해 보시죠!"
학생들의 쏟아지는 항의를 듣자니, 정 교감은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그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옆의 선생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빼앗아 마구잡이로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시험지를 빼앗아 찢어발겼다.
"이놈의 새끼들! 돌아가라면 돌아갈 것이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전부 퇴학당하고 싶어?"
그러나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항의 외의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유한은 이 점이 아쉬웠다.
"이 자식들아, 왜 멍청이 서 있어? 상대가 선생이라고 언제까지 당하기만 할 거야! 이번에도 그냥 뒤에서 투덜거리고 말 거냐? 백날 그래 봐라! 손해 보기 싫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유한이 학생들을 선동하는 것을 본 정 교감은 펄펄 뛰었다.
"뭣들 하는 거야! 저놈의 입을 막아! 얼른!"
정 교감의 말을 들은 대철이 유한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좀 전에 조폭들에게 달려들어 유한을 구했던 덩치 큰 남학생이 그의 발을 붙들었다.
"흥. 그렇게는 못 하지!"
"이런 거머리 같은 놈이!"
덩치 큰 남학생은 대철과 조폭들이 두들겨 패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성난 곰처럼 일어나 경비들을 밀어불였다.
그가 그렇게 시간을 벌어 준 사이. 유한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외침을 울부짖었다.
"싸워! 남의 구원 따위는 바라지 말고. 너희들 스스로 변화와 권리를 쟁취하는 거다!"
유한의 외침은 거대한 폭탄의 뇌관을 건드렸다.
그렇지 않아도 학림고와 재단에 불만이 쌓여 있던 학생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앞으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학생회는 학림 재단의 비리를 감사하라!"
"감사하라!"
"재단 이사장과 교장, 교감은 지금까지 저질러 온 비리를 모두 이실직고 하고 경찰에 자수하라!"
"자수하라!"
정 교감은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눈앞에 벌어지는 이 광경은 예전에 게임 속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바로 티쳐스 사건 때였는데. 그때도 강유한이 애들을 선동했었다.
"막아! 저놈들을 막으라고!"
"우와아아아!"
하지만 성난 파도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학생들의 인해 물결을 대철을 비롯한 조폭들이 막아보려고 나섰지만, 오히려 그들은 학생들의 발에 짓밟히고 말았다.
기가 질려 주춤주춤 물러서던 선생들은 결국 몽둥이를 내버리고 도 망쳤다.
남은 것은 정 교감뿐. 그는 끝까지 몽둥이를 휘둘러 대며 발악했다.
"이, 이놈들! 당장 그만하지 않으면 모두 퇴학이야, 퇴학!"
"흥. 그래! 퇴학시켜라!"
"더러워서 이딴 학교 안 다니련다!"
이미 저질러 버린 학생들은 꺼릴 것이 없었다.
남학생들이 정 교감의 몽둥이를 빼앗아 분질러 버리자. 여학생들은 머리털을 뽑고 팔을 꼬집었다.
평소 제왕처럼 학생들 위에 군림하던 정 교감은 거지꼴이 되어 달아났다.
"흥, 꼴 좋~ 다!"
정 교감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코웃음 치던 유한은 찢어지고 흩어진 시힘지들을 주워 모았다. 좀 전에 뛰어나왔던 명치 큰 남학생이 그런 그를 도와주었다.
"고마‥‥‥ 어, 넌?"
고마움을 표하다 말고 유한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좀 전엔 경황이 없어 못 알아봤는데, 이제 보니 자신을 도와 준 인물이 상당히 낯익었다.
그는 유한에게 말하지 말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댔다가 말을 했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간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학림고 학생들의 시위를 틈타 교문을 빠져나온 유한. 그는 자신을 구해 준 덩치 큰 남학생을 향해 물었다.
"성덕이 네가 어떻게?"
유한의 말대로 그는 바로 고경덕이었다. 북성공고의 주먹대장인 녀석이 왜 학림고에 있는 건지? 그것도 학림교 교복을 입고.
"아르페디아 온라인 개발자 씨가 나에게 전화를 했더군. 네가 위험에 처할지 모르는데 도와주지 않겠냐고."
손석진은 유한과 작전을 짠 뒤에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유한이 잠입했다가 잡히게 되면 그뿐만 아니라 드림맥스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불량아를 선동해 도둑질을 시켰다고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손석진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유한을 도울 사람을 들여보내기로 했고, 그 결과 뽑힌 인물이 고경덕이었다.
고경덕은 손석진이 마련해 준 학림고 교복을 입고. 유한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학림고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재경보기가 울렸을 때 학생들 틈에 섞여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너 왜 하필이면 내가 실컷 두들겨 맞은 뒤에 나선 거냐?"
유한이 원망스러운 얼굴로 묻자, 경덕은 어깨를 으스대며 말했다.
"훗, 구원자는 위기의 순간에 등장해야 멋지니까."
"으이그! 이걸 그냥!"
유한은 하마터면 고경덕의 얼굴을 후려갈길 뻔했다. 그러나 이리저리 두들겨 맞고 진이 빠지 있었던 그는 움켜 쥐었던 주먹을 내려놓았다.
"그만 가자. 손석진 씨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학림고를 나온 유한과 고경덕은 택시를 잡아타고 손석진과 사전에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4
학림고에서 초유의 학생 시위사태가 벌어진 다음 날.
재단 이사장의 부인인 홍순영 간사장은 교무실에서 길길이 날뛰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사태가 이렇게 번지도록 도대체 선생님들은 뭘 한 겁니까?"
그녀가 늦잠을 자다 말고 학림고로 달려온 이유는 지역 신문 1면에 난 기사 때문이었다.
'학림고.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란 제목의 기사는 어제 학림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소요가 언급되어 있었다.
비록 자세한 내용은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교감 선생님은 어딜 간 겁니까?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 출근을 하지 않은 겁니까? 당장 전화해 보세요!"
그녀의 지시에 체육 선생이 정 교감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이 양반이 사고는 자기가 다 쳐놓고 잠적한거야 뭐 야?'
일단 신문에 어제의 일이 기사로 나간 이상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고. 그러면 그날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학생들의 입을 죄다 막지 않는 이상 시험지 유출 건도 숨길 수 없게 된다.
홍순영이 속을 태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교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선생 하나가 들어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사모님!"
"왜요? 경찰들이 쳐들어오기라도 했습니까?"
홍순영의 말에 선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에?"
홍순영은 자신이 그저 해본 말이 현실이 되었다 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경찰들이 교문을 통과 했다고 합니다.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겁니다."
'아, 안돼!'
경찰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는 뻔했다. 바로 문제지와 장부에 대해 추궁하러 오는 것일 것이다.
가방을 맨 홍순영은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경찰들이 그녀의 앞으로 들이닥치는 게 더 빨랐다.
"홍순영 씨죠?"
"그, 그런데요?"
"당신을 시힘 문제지 유출과 부정 횡령 혐의로 체포합니다."
"내, 내가 안 그랬어. 이 모든 것은 정석재가 그랬단 말이야!"
홍순영이 발악하는 모습을 보고. 담당 형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군요. 정석재 교감은 홍순영 씨가 시켜서 한 일 이라고 하던데요."
"그럴 리가! 정석재 어디 있어? 그 작자 어디 있냐고!"
"걱정 마십시오. 곧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공항에서 출국하려다 체포 되었거든요."
그렇게 말한 담당 형사는 홍영순에게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지금부터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당인이 하는 말을 당신에게 불리하계‥‥‥."
홍영순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 오직 차가운 수갑의 감촉이 그녀를 어두운 내리막길로 이끌고 있었을 뿐.
시험지 유출을 주도했던 두 사람이 체포당한 그날 저녁.
얼굴에 이리저리 반창고를 불인 유한은 9시 뉴스 시간이 다가오자 냉큼 거실로 와서 TV를 틀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BC 9시 뉴스 아나운서 전주일입니다. 오늘의 첫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교육계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아나운서의 장탄성과 함께 학림 재단의 시힘지 유출 범죄가 낱낱이 보도되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유한은 뉴스의 내용보다 경찰에 체포된 정 교감과 선생들을 보며 쾌재를 불렀다.
오늘 그는 우거지상을 하고 잡혀 가는 선생들을 직접 보기 위해서 다시 학림고를 찾아갔다. 그러나 이미 경찰이 먼저 와서 다 잡아가 버린 뒤였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뉴스를 보며 달래고 있었다.
뉴스의 생생한 화면은 그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 주고도 남았다.
'크크크, 나중에 면회 가서 약 올려 줘야지!'
구치장에 있으면 먹을 것도 시원찮을 터. 통락 한 마리 싸 들고 가서 눈앞에서 보란 듯이 쩝쩝 먹어 주리라.
유한이 통쾌한 상상을 하는 사이 뉴스는 계속되었다.
"‥‥‥이들의 행각을 고발한 것은, 게임 내의 학원 시스템을 지원하는 D사로. D사는 이들의 수상한 행적을 보고 조사한 끝에 증거를 입수해 경찰에 고발하였다고 합니다."
"서 기자. 이들이 예전에 게임 내에서 학생들의 아이템을 갈취해 유흥비로 탕진했던 적이 있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예. 이번에 체포된 정씨는 일명 티쳐스라 불리던 교사 집단의 수장으로, 이번 일은 과거 티쳐스에 가담했던 몇몇 교사들과 모의하여 일으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면서 기자는 이번 사건이 매우 조심스럽고 치밀하게 진행되었다는 둥. 정석재가 시험지 유출을 거부한 교사에게 협박과 린치를 가한 적도 있다는 둥. 학림고의 뒤에 국내 유명 폭력 조직이 있다는 둥 줄줄이 옮어 댔다.
"공모자도 많고, 이들과 거래한 학생과 학부모도 굉장히 많으니 이들이 부정하게 거둔 수익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거래 금액은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아나운서의 물음에 기자가 대답했다.
"일단 장부상에 나타난 금액만 해도 엄청난 액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거둔 수익이 장부에 언급된 계좌에서 깨끗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학림 재단이 은행에 보유하던 자산도 어제 함께 사라졌습니다.
"서 기자. 그것은 뭐라고 보아야 합니까?"
"경찰은 정씨가 해의 도피를 시도했던 점으로 미루어 이들이 범죄 사실이 알려지자 먼저 자산을 해외로 밀반출한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허나 이 점을 학림 재단 측에서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했다. 오히려 그들은 재산을 누군가에게 도둑맞았다며 하소연하고 있다고.
"다음 소식입니다. 앞에 전해 드린 것과 반대로 상당히 흐뭇한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느 독지가가, 전국의 고아원과 요양원들에 수십 억대의 기부를 했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에 유한은 피식 웃었다.
그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독지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독지가가 어디서 그런 돈을 가져왔는지도.
"뉴스 방영 전 저의 방송사로 이 독지가 분이 보낸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바로 제가 들고 있는 이 편지인데요. 이분은 앞으로도 불우 이웃과 소년 소녀 가장, 독거노인들을 상대로 기부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아나운서가 들고 있는 편지 뒷면에는 광대, 즉 조커의 그림과 큼지막한 망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아는 유한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TV를 껐다.
'다 끝났군.'
가슴이 후련하고. 통쾌했다.
일전에 정현일을 목사발로 만들어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미진했는데. 오늘 그 미진한 것을 다 풀었다.
그의 인생 최대의 오점을 만들어 준 정 교감과 학림고.
하지만 그는 오점에 굴하지 않고 성장했고 그 성장을 발판으로 시원한 복수까지 했다.
'이제 앞만 보고 달리는 거야!'
천장을 향해 두 팔을 볼끈 치켜든 유한은 오늘 학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기 위해 방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