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5 다시 게임 속으로
1
정현일을 맘껏 손봐 준 다음 날 오후.
마침 공휴일이라 채린과 유한은 간만에 데이트를 즐겼다. 영화를 보고 거리를 걷는 등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을 했는지라 꼭 잡은 손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것이 생각난 유한이 채린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학림 아카데미는 어땠어?"
"어땠냐니?"
채린이 영문을(영문으로→영문을 by. 곰) 모르겠다는 얼굴로 묻자 유한이 은근슬쩍 말했다.
"학원이 좀 이상하지 않았냐는 거지. 별로 공부도 안 하는데 성적이 부쩍 오른 학생이 있다거나. 학원에 수상 한사람들이 출입한다거나‥‥‥."
"글쎄. 내가 알기에 수업은 평범했고 특별히 이상한 사람이 드나든 적도 없는 거 같아."
"그래?"
내심 뭔가를 기대했던 유한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채린아. 학림 아카데미는 성적 잘 올려 주기로 유명하지?"
"그래서 나도 거길 끊은 거야."
"그런데도 수업이 평범해? 다른 학원들처럼?"
학림 데미의 강사진이 우수한 것도 아니고. 강의 내용도 비숫하단다. 그런데도 거기 다니는 학생들의 성적이 다른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보다 부쩍 잘 오른다니.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게 있어."
"뭔데?"
"성적이 엄청 오른 애가 있어서 그 비결이 원지 물어 봤거든. 그런데 대꾸도 안 해 주더라. 그냥 친하지 않으니까 그런 줄 알았지만‥‥‥."
학원의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적 향상의 비결에 대해 물으면 딴청을 피거나. '강의 듣고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는 원론적인 말만 늘어놓았다.
"좀 있으면 기말고사니까, 그냥 기다려 보면 알아."
이렇게나마 가르쳐 준 사람은 일현, 아니 정현일뿐이었다.
호감을 사기 위해 말을 한 듯했지만. 그도 역시 자세한 것은 말해 주지 않았다.
"그 자식이 그렇게 말했다고?"
"응. 그래서 시험을 앞두고 특별한 족집게 강의가 있지 않dmf까생각했어."
뭔가 이상하다.
그런 수업이 있다면 평소에는 왜 안 하는가? 단순히 힘들어서?
유한이 고개를 갸웃할 때. 채린이 누구를 발견했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 우리 선생님이다."
"너희 선생님?"
"저기, 저분. 우리 반 담임 이태호 선생님이셔."
그러고 보니 채린이 가리킨 곳에 이태호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와 함께 가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유한이 잘 아는 사람이었다.
"어라? 저 인간 정석재잖아?"
"누군데?"
"학림고 교감."
유한과 채린이 바라보는 것도 모르고, 두 사람은 근처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이태호와 정 교감의 만남.
유한은 두 사람의 만남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척이나 아는 사이라고 보기에도 정 교감을 대하는 이태호의 태도가 너무 딱딱했다. 그냥 학교 일 때문에 만나는 것일까?
하지만 학림고와 강서고는 거리도 멀고 재단도 달라 특별히 만날 일이 없을 텐데?
"왜 우리 선생님이 학림고 교감이랑 만나는 거지?"
"나도 그게 무척 궁금해. 우리 따라 들어가자."
유한은 채린과 함께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두 사람의 눈에 뜨지 않게 구석진 자리로 간 그들은 대충 아무거나 시킨 뒤, 정 교감과 이태호 쪽올 유심히 지켜보았다.
"절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뭡니까?"
이태호는 정석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사실 오늘 나오고 싶지 않았다. 만나 봐야 좋은 이야기가 오고 갈 것 같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한 번쯤은 정리할 필요성이 있기에 약속 장소로 나왔다.
"하하하. 뭘 그리 성급하게. 일단 시원한 차부터 마십시다."
넉살좋게 웃은 정 교감은 종업원을 불러 주문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정 교감이 본론을 꺼냈다.
"내가 이태호 선생님올 보자고 한 것은‥‥‥."
꿀꺽! 이태호가 살짝 긴장할 때, 뒤에서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까악! 바위벌레야. 바퀴벌레!"
"뭐 이런 가게가 다 있어!"
"쯧쯧, 호들갑은."
정 교감은 여대생들을 힐끔 보더니 혀를 찼다.
이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강하게 키운다면 바퀴벌레 한 마리 봤다고 생난리를 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고한 교육자들이 학부모들로부터 돈 좀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휴, 다행이다.'
유한은 옆 자리의 여대생들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정 교감에게 들킬 뻔했다. 그러나 그 전에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린 덕분에 무사히 넘어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다시 정 교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태호 선생님께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군요."
"제안이요."
이태호가 눈이 동그래져 묻자 정 교감은 상체를 가까이했다.
"저희 재단에서 아르페디아 온라인 내에 학림 아카데미를 만든 것은 아십니까?"
"그야 물론."
이태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 교감이 악어를 닮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학림 아카데미가 비싼 수강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를 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건‥‥‥."
"저희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확실히 올려 주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내신을 책임져 주는데 어느 학부모가 수강료가 비싸다고 투정을 부리겠습니까?"
학림 아카데미가 유명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거와 자신을 만나자고 한 이유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래서 저에게 어떤 제안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거기 학원 선생이라도 되어 달라는 것인지?
수락할 의사도 없지만. 그 외에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이대호였다.
정 교감은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착 깔며 말했다.
"강서 고등학교의 시힘 문제를 빼내 주십시오."
"뭐라고요?"
순간 이태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강서 고둥학교의 1학기 기말 문재를 빼내 달라는 말입니다. 물론 사례는 섭섭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서 탁자 위에다 하안 봉투를 올려놓더니 앞으로 쓱 내밀었다. 두툼해 보이는 것이 적지 않은 금액이 들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태호는 봉투를 받을 수 없었다.
아니 받고 말고 하기 전에 정 교감의 얼굴을 한 대 후려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적어서 그럽니까? 그럼 여기 하나 더."
능글맞게 웃으며 봉투를 하나 더 꺼내는 정 교감을 바라보며 이태호는 이를 꽉 깨물었다.
[스캔본 파일이 없어서 두 페이지 건너 뜁니다.]
"그건 왜 궁금하지? 넌 그 사람을 어떻게 아는거야?"
"예전에 유한이가 다니던 학교의 교감 선생님이래요."
유한 대신에 채린이 말해 주었다.
언짢은 유한의 표정에서 이태호는 그와 정석재 간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보니 이 녀석 검정고시를 패스했다고 했지? 학교를 그만둔 게 정 교감이랑 관계가 있나?'
대충 그렇게 이해한 이태호였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해 주지는 않았다. 자첫 괜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사실 그게‥‥‥."
유한은 어쩔 수 없이 손석진과 전화한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다. 상대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비밀도 하나쯤 이야기해 줘야 한다.
"그러니까 드림맥스에서도 학림 아카데미를 유의 주시 하고 있다고?'
"네. 뭔가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학림 재단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이태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 드림맥스에서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학림 아카데미를 주목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선생님, 이야기해 주세요!"
제자인 채린마저 알려 달라고 조르자 이태호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휴,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알려지겠지."
그러면서 그는 어떻게 정석재와 알게 되었는지, 그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했었는지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유한에게 들려주었다.
'하!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지?'
이야기를 들을수록 유한은 학림 재단이 썩어 빠졌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채린과 데이트를 끝낸 후.
유한은 손석진에계 전화를 걸었다. 손석진은 집에서 쉬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잘 있었습니까, 유한 군. 여자 친구와는 화해했습니까?"
"훗. 덕분에요. 그보다 학림 아카데미의 비리를 알아냈습니다."
유한의 말에 손석진이 구미가 당긴다는 듯 곧바로 물어왔다.
"그래요? 어떤 거였습니까?"
학림 아카데미를 꾸준히 모니터링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할 만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선생들도 그저 평범한 이야기만 했고. 수업에서도 이상한 것은 없었다.
아마도 게임 내에서는 그 어떤 수상한 짓도 벌이지 않는 모양.
하긴 드림맥스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료 화면을 캡쳐할 수 있는 게임 공간 내에서 일을 벌이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을 것이다.
"바로 각 학교의 시힘지 유출이었습니다."
"시험지 유출이요?"
유한은 이태호 선생에게 들은 것을 손석진에게 모두 알렸다.
"과거 티쳐스 시절에 맺어 놓은 인맥을 이용해 각 학교에서 시험지를 빼돌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빼낸 시험지를 어떤 웅도로 쓰는지는 뻔하다.
학부모들에게 웃돈을 받고 답안을 팔 수도 있고. 해당 학교 학생들에게 시험 전 족집게 문제를 내주는 것도 가능하다.
아마 이런 식으로 학림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학교 내신 성적과 석차를 부찍 올렸을 것이다.
유한의 설명에 손석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그런 비리를 저지르다니!
그것도 자신이 만든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이군요."
"그렇죠? 경찰에 고발해 버리세요."
학림 재단과 정 교감 일당들은 콩밥을 먹어야 정신을 차릴 조속들이니까.
"물론 경찰에 신고해야겠지요.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증거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들을 고발한다 해도 금방 풀려날 것입니다.
'끙, 그렇겠군.'
유한은 좋다가 말았다. 기껏 힘들게 고발해 봤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면 의미가 없다.
그가 입맛을 다실 때 손석진이 다시 말했다.
"정말 귀한 정보를 주어서 고맙습니다, 유한 군. 이제부터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뭔가 더 도와 드릴 일은 없습니까?"
유한은 학림 재단을 작살내는 데 자신도 한몫하고 싶었다.
정현일에겐 앙갚음을 했지만, 학림고나 재단은 아니다. 자신을 퇴학시킨 그 더럽고 사악한 자들을 직접 응징하고 싶었다.
그래야 제2의, 제3의 강유한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유한의 그런 마음을 읽은 손석진은 그가 실망하지 않게 응답했다.
"저희가 유한 군의 도움을 받을 일이 있다면 언제든 전화하겠습니다."
"예, 꼭 좀 전화 주세요."
두 사람의 통화는 거기까지였다.
유한과 전화를 한 다음, 손석진은 곧장 부사장 정경욱에게 전화를 했다.
"부사장님. 꼬리를 잡았습니다."
손석진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정경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신문 1면을 장식하고도 남을 대사건이니까.
"일단 중거 확보가 우선입니다. 일단 우리 보안 직원들을 총동원해서 그 정석재란 사람과 학림고 선생들, 재단 관계자들의 뒤를 추적해 봐야 합니다."
"알겠네. 내 그리 지시하지."
정경욱과 통화를 마친 손석진은 곧장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켰다. 그리고 백업 폴더 한구석에 박아놨던 프로그램들을 가동시켰다.
프로그램들이 차례대로 가동하자, 그의 주변에는 금세 수많은 홀로그램 스크린들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조커 시절로 돌아가 봐야겠군."
뒤져야 할 것은 많았다. 학림고와 학림 재단 중앙 컴퓨터, 그리고 정석재 교감과 그와 접선한 티쳐스 출신의 선생들의 개인 컴퓨터까지.
모조리 이 잡듯이 샅샅히 쓸어 보겠다 다짐하는 손석진이었다.
3
손석진에개 전화를 하고 얼마 뒤, 유한은 아르페이아 온라인에 접속했다.
정현일 때문에 한동안 제철소 운영에서 거의 손을 놓다 시피 했는데. 이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이리 한산하냐?'
지그 제철소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운영과 생산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저번보다 제철소를 드나드는 유저들의 수가 급감한 상태였다.
방문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철소 직원으로 받아달라는 둥, 무구 좀 팔라는 둥. 인터뷰 좀 하자는 둥, 시끌벅적할 때와 천양지차었다.
그러나 유한은 그 점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재철소가 둥장한 초창기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리지스 있냐?"
유한은 제철소 한편에 있는 거래소를 찾아갔다. 거기 책임자는 리지스였고. 그곳엔 그녀의 전용 사무실도 있었다.
"어서 와. 시아랑 사이가 원래대로 돌아갔다며?"
"엥? 알고 있었냐?"
"시아한테 쪽지 받았거든. 학원도 그만둔다고 하던데. 내일 남은 수강료 환불 받으러 간댔어."
"그랬구나."
직접 이야기 해 줄 수고를 덜었다.
흐뭇한 미소를 짓는 유한에게 리지스가 여러 장의 서류들을 내밀었다. 거래 납품 계약서인가 싶어 살펴봤던 유한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거래 파기 통보서? 이게 뭐야?"
"뭐긴. 거기 적힌 대로지. 몇몇 상단에서 우리랑 거래를 취소했어. 위약금까지 지불했고.
"아니, 왜?"
언제는 거래를 못해 난리더니. 왜 잘하던 거래를 파기 하자는 것인지?
"이유가 뭐인지는 모르고?"
"글쎄, 제철소 회장이 연애 때문에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서가 아닐까?"
리지스가 최근 유한의 행적을 빗대어 말하자, 유한은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에서 손올 놓은 지 계약을 파기하는 건 너무하잖아."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제철소를 지은 뒤론 바빠서 네가 직접 일을 한 적은 드물잖아."
그건 맞는 말이다.
커다란 제철소를 소유하고 나서 유한은 더 이상 대장장이가 아닌 경영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제철소의 많은 일꾼들과 휘하의 길드원들을 관리하고, 지그 제철소라는 거대 기업을 유지하는 데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유한이 직접 책임졌던 블랙 아이언 부품이나. 초열탄과 경매장에 갈 수제 무구의 생산, 그리고 고객들을 위한 몇 시간간의 수리 서비스를 게을리했다.
"우리가 이만큼 클 수 있었던 건 지그 네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잖아. 하지만 현재 네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시장에선 지그 제철소의 제품이 예전과 같겠냐고 의심 하는 모양이야."
"그게 뭐 나만 그런가? 웬만큼 큰 대장장이들은 다 그럴텐데?"
유한의 말대로, 최근 철공소를 지으며 한 단계 성장한 몇몇 대장장이들은 실력으로 쌓은 자기 이름값을 내세우며 생산보다는 운영에 더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유한보다 한발 앞서 나갔던 발리안도 마찬가지 더구나 그는 스스로 '경영자 타입의 대장장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운영과 거래에 몰두해왔다.
"남들이 다 그렇다고 나도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으론 치고 나갈 수 없어. 난 그걸 직접 겪어 보고 깨달았어."
이제는 리지스 코퍼레이션이라는 거대 길드의 길드장이며, 아르페디아 대륙의 상계에 영향을 끼칠 만한 존재가 된 리지스.
그녀도 길드와 휘하 상단. 제철소의 운영과 일 때문에 바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틈만 나면 행상을 나가곤 했다.
사무실에 박혀 서류만 보는 건 적성에 맞지 않기 때문도 있지만. 길드장이 직접 행상을 하면 휘하 길드원들과 상단 직원들을 독려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활동성을 남들에게 인정받는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니까 나도 틈나면 일을 하라 이거지?"
"그래. 조금 더 노력하면 그만큼 좋은 소문이 나고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니까."
'하긴, 게임에서 입소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지그가 대장장이로써 명성을 떨친 것도 유저들의 입소을 통해서였다.
리지스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 그는 시간을 짜내서 제철소를 순시하여 직원들을 격려했고, 갈리를 위시한 드워프 장인들과 어올려 직접 블랙 아이언을 생산하기도 했다.
[- 블랙 아이언을 만들었습니다.
상당한 파워를 자랑할 것 같습니다.
*작동을 위해선 영혼을 빙의시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좀 더 노력하자, 리지스의 말대로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
[- 정밀 조립 스킬이 1랭크가 되었습니다.
지식이 2 올랐습니다.
솜씨가 2 올랐습니다.]
[[신의 손] 칭호를 받았습니다.]
"나이스!"
실력이 오른다는 건 항상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쭉 둘러보는 일 역시.
유한은 오랜 만에 대장장이 지그의 상태창올 살며보았다.
[ [상태창]
이름 : 지그
칭호 : 오우거 헌터, 드워프외 조수, 공중 요새의 발견자, 리저드 의 친구, 고대 드워프 유적의 발견자, 미케니아의 은인, 신종 제작자, 사장, 엔지니어, 죽음의 상인, 노력가, 해븐즈 게이트의 발견자, 명장, 뇌제, 엘프의 친구, 재련의 달인, 영웅, 강철의 맹우, 회장, 신의 손
직업 : 대장장이
레벨 : 220
채력(HP) : 4.200/4.200
스태미나 : 3,700/3.700
마나(MP) : 200/200
힘 : 215
민첩성 : 172+25(펜립 소드)
인내심 : 180+10(투사의 슈즈)
지식 : 142+20(명장 칭호)
행운 : 140
솜씨 : 300+60(불새의 코트+명장 칭호)
명성 : 43.000
공격력 : 245+236(펜릴 소드+와이어 건틀렛+투사의 슈즈)
방어력 : 180+143(투사의 슈즈+불새의 코트+와이어 건틀렛+동지의 목걸이)
경험치 : 3,000/55,000
돈 : 25,000,000골드
[습득 스킬]
장작 패기 스킬 2랭크
벌목 스킬 2랭크
채굴 스킬 2랭크
채석 스킬 1랭크
제련 스킬 1랭크
합금 스킬 1랭크
정밀 조립 스킬 1랭크
수리 스킬 1랭크
주물 스킬 1랭크
도발 스킬 7랭크
쇼크 웨이브 4랭크
선동 스킬 7랭크
수리 성공률 85%
[히든 스킬]
그레인 스킬 1랭크
암 브레이크 스킬 2랭크
[공작 기계 스킬]
선반 가공 스킬 3랭크
용접 스킬 4랭크
정단 스킬 4랭크
천공 스킬 4랭크
압력 가공 스킬 4랭크 ]
그 동안 경영에 치중하느라 그리 많이 오르진 않았다.
그래도 이만하면 대장장이치고는 괴물 수준. 이만한 대장장이는 아르페디아. 아니 해외 서버를 뒤져도 열 명이 채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흐뭇해 하는 유한의 눈앞에 안내창이 하나 떠올랐다.
[- 보다 고급 기습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륙, 아니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기에 도전해 보십시오.]
유한은 그 안내창을 호의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세계를 누비라는 문구에서 드림맥스의 장삿속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단 대륙을 건너려면 통역 프로그램부터 사야 했고, 낯선 대륙에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려면 필요한 아이템이 한둘이 아니다. 이 모두 현금으로 질러야 할 터.
'그래도 가 볼 곳은 있나?'
정밀 조립 스킬을 1랭크로 올리면 다시 만나기로 결심한 사람이 있었다.
유한은 다시 북쪽의 노스아크로 떠났다, 조건을 맞투면 새로운 스킬을 가르쳐 주기로 약속한 드워프 NPC 구센도르프를 만나기 위해서.
4
"하하핫, 어서 오게."
"잘 지냈습니까?"
구센도르프는 유한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유한을 찬찬히 훑어본 그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새 실력이 더 올라간 모양이군. 이젠 정밀 조립 제품올 눈감고도 만들 수 있게 된 건가?"
스킬이 1랭크가 되었냐는 물음이다.
유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르쳐 주시기로 약속한 기술을 배우러 왔습니다.
"가르쳐 주지. 가르쳐 주고말고."
구센도르프는 품속에 고이 보관하고 있던 낡은 책자를 유한에게 건네주었다. 꺼풀에는 '기관 제작과 그 응용' 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관 제작과 그 응용
설명 : 선진 공업 기술을 가진 드워프들의 기계 설비 제작 노하 우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책이다. 읽으면 [기판 제작 스킬]을 익힐 수 있다.]
받은 책의 정보를 살펴본 유한은 페이지를 파라락 넘겼다. 책에 적힌 내용과 그림. 설계도들을 모두 보고 나자 책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와 유한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기관 제작 스킬]을 익히섰습니다.
공작 기계를 비롯해. 다양한 기계와 설비들을 제작할 수 있습니
.]
'좋았어! 이걸로 제철소의 설비를 좀 더 효율적이고 다양하게만들 수 있겠군!'
제철소의 설비를 도입하는 데만 2천만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유한이 쾌재를 부를 때 구센도르프가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이제 자네도 우리 드워프 못지않은 장인일세. 앞으로 실력을 더욱 높여서 세상을 놀라게 해 보게,
구센도르프의 격려를 들은 유한은 기분 좋게 제철소로 돌아왔다. 새로 익힌 스킬을 써 볼 겸. 설비를 개량할 겸, 새로운 작업 기계들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런데 돌아왔을 때 제철소의 분위기는 떠날 때보다 더 좋지 않았다.
무슨 일 때문인지 직원들은 서너 명씩 모여서 심각하게 수군거렸고. 거래소는 폭탄을 맞은 것처럼 시끄러웠다.
"뭐야, 이 사람들!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디 있어!"
"무슨 일이야, 리지스?"
유한은 흥분해 고함을 지르는 리지스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유한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현재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키예프 공국의 철강 상인 연합 있잖아, 그들이 우리와 관계를 일방적으로 청산해 버렸어"
"뭐라고?"
키예프의 철강 상인 연합은 제철소 설립 초기에 협력을 제안했다가. 결국 자금과 생산력, 시장 장악 능력 등 모든면에서 지그 철공소를 당해 내지 못하고 굴복한 세력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탈을 선언했단다.
그들의 영향력은 키예프 공국 일대에 불과하다지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그 철공소 산하로 들어온 대장장이와 상인들이 그들을 본따 연쇄 이탈을 할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그런 이탈은 일어나고 있는 중이란다. 대장간 열 곳이 지그 제철소에서 이탈을 선언했고, 몇몇 길드들은 블랙 아이언의 구입을 취소했다.
"갑자기 그런 식으로 나가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혹시 들은 거 없어?"
"지그 제철소에 견줄 만한 세력이 나타난 것 같아. 아직 명확히 드러난 건 없지만‥‥‥."
어느 정도 예상할 수는 있었다.
아르페디아 대륙에서 지그 제철소에 대항할 만한 세력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브로인에 있는 발리안 철공소
자금력도 꽤 되는데다가, 유한에게 시장을 뺏겼다고 하지만 아직 대륙 북동부 일대는 발리안의 영향력이 강하다.
철공소도 새로 증설하면서 생산력을 더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관련 퀘스트를 아직 완성하지 못해인지, 발리안은 제철소를 짓지 못했다. 건물만 먼저 덩그러니 만들어 놓았을 뿐. 안에 시설은 하나도 없다.[없다고→없다.]
이렇게 보유 자금은 몰라도 설비와 생산력에서 뒤지는 발리안을 믿고 대장장이들과 철 상인들이 이탈을 했을 리 없다.
분명 뭔가 다른 게 있을 것이다.
유한과 리지스는 좀 더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고, 이탈하는 대장장이와 상인들을 막으며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대항 세력의 실체가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