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제철소를 짓다 (133/143)

제철소를 짓다

바츠가 카세라스를 쓰러트렸다! 이 소식이 곧장 전해지자 아르페디아 온라인 공식 홈페이지가 또 한번 시끄럽게 들썩였다.

예전에 카세라스를 쓰러트린 바츠가 또다시 카세라스를 쓰러트린 것도 홍미로운 사실이지만, 그 바츠가 예전과 달리 여러 사람과 힘을 합쳐 싸웠다는 소식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나상실여사 : 바츠 외톨이 생활 끝?

-복면철호 : 내 친구가 봤는데 바츠 좀 변한 것 같대요.

-라일레 : 캐릭터 새로 키우면서 뭔가를 느낀 모양이죠.

얼마 후, 전투 동영상이 공식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되었다.

이번에 남바린이 초토화되면서 거덜난 소울리버 길드원이 올린 동영상이었는데, 이 동영상은 유저들을 또 한 번 충격에 몰아넣었다.

-만주대장수 : 아니 이게 뭐임! 바츠가 변신?

-포스트맨 : 어, 저거 뇌제 변신인데.

-맥스♥마야 : 뇌제는 지그님만 변신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폭풍의기사 : 그러게요. 듣기로 뇌제는 유니크라던데.

-나디아 :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바츠가 뇌제로 변신한 사건은 그날 하루 종일 유저들의 논란대상이 되었다.

뇌제로 변신 가능케 하는 뇌제의 홀이란 아이템에 대해서 정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지그가 바츠와 동일 인물이라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바츠 님, 뭐 좀 물어봐도 되나요?"

카세라스가 쓰러진 직후, 채린은 바츠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그녀는 모두를 대표해서 그의 앞에 섰다.

분명히 알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츠가 뇌제로 변신한 사연도 집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코앞에 똑똑히 보이는 바츠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그들이 아는 누군가와 많이 닮아 있었다.

"뭐든지 물어봐도 돼.”

상당히 친근하게 응답하는 바츠의 태도에서 채린은 이 미 묻고 싶은 물음의 답을 얻었다.

그래도 확실히 넘어가고자, 그녀는 질문을 던졌다.

“너 강유한이지?"

채린의 물음에 동료들의 시선이 바츠에게 쏠렸다.

정말 바츠가 유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그일까.

모두의 앞에서 유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숨겨 왔던 사실을 고백했다.

"맞아. 나 강유한이야. 내가 바로 바츠고, 또 지그지.”

유한의 순순한 고백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특히 마지막까지 아닐 거라 여기고 있던 리지스의 표정은 정말 가관이었다. 마치 순진한 옆방 총각이 조폭 두목 이었다는 사실을 안 하숙집 아주머니와 같은 얼굴.

"어찐지 초보 때부터 게임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더라 했어" 

"싸움도 잘하고 말이지."

"뇌제의 홀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던 것도 그 때문 이었나?"

모두들 지금까지 지그에 대해서 궁금해 하던 것을 죄다 알 수 있었다.

얀도 형이 바츠였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랐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곧 그럴 만하다는 투로 변했다.

"하긴 퇴학당하고 하루 종일 캡술에 처박혀 살았으니까"

모두들 바츠가 유한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을 때, 차가운 냉소를 짓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엔스였다.

"흥, 보라고. 지그가 바츠였잖아. 내가 예전부터 그랬는데도 내 말은 아무도 안 믿어 주고 말이지."

어디 믿어 주지 않기만 했던가? 거의 미친 놈 취급을 했었다.

그런 걸 생각하니 슬쩍 울화가 치미는 엔스였다. 

"바츠! 넌 진짜 나쁜 놈이야! 진작에 모두에게 말했으면 내가 미친놈 취급을 안 당했을 거 아냐!" 

"그때는 말해도 안 믿어 줄 것 같아서 그랬지. 증거도 없고.”

캐릭터가 사라졌는데, 무슨 근거로 바츠라고 주장한단 말인가. 오히려 미친놈이나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혔을 터

“그런데 대체 캐릭터를 어떻게 새로 키운 거예요?"

"맞아, 지그를 하면서 또 따로 시간이 있었어?"

“무척 힘들었을 텐데...”

뒷사정을 모르니, 모두들 드림맥스의 발표대로 유한이 캐릭터를 새로 키웠을 거라 생각했다.

유한의 표정은 어두웠다. 겨우 모두에게 진실올 이야기 해 줬는데 아직 숨겨야 할 사실이 있다니.

물론 진실을 이야기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그러면 드림맥스는 물론 손석진에게 커다란 해 가 미칠 것이다. 그럼 게임을 통해 사람들을 바꾸고 세상 을 바꿔 가겠다는 그의 꿈도 물거품이 될 터.

유한은 그가 한 일은 괘씸했지만, 그가 꿈꾸는 것을 막고 싶지는 않았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렇게 작살 내고 싶었던 해커를 오히려 감싸주는 판 이니.

"어떻게 다시 바츠를 키웠는지는 뻔하지 뭐. 분명 형이라면 학원 땡땡이 치고 그 시간에 캡슐방에서 놀았을 거야."

"아니거든!” 

"맞으면서 뭘.”

"어휴, 이게 진짜...... 너 내가 바츠일 때는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도 얼마나 지랄 같은지는 알지." 

"어이구 이걸 그냥 확!” 

하마터면 형제간의 결투가 벌어질 뻔했다. 채린과 베르디의 만류로 둘은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아무튼 유한의 사정이 밝혀졌지만, 채린은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지그. 아니 바츠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너 앞으로 어쩔거야?” 

"어쩔 거냐니?"

"지그로 플레이할 거야? 아님 다시 바츠를 플레이할 거야? 그게 아니면 둘 다?" 

그 물음에 유한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당연히 지그지. 지그를 플레이하면서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으니까.” 

"그래도 간혹 바츠도 플레이할 거죠?" 

에이린의 물음에 유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지만 옛날 바츠처럼 독불장군식 플레이는 하지 않을 거야.

함께 플레이 하는 게 즐겁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렇게 모든게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잊고 넘어간 것이 있었다. 

"헉! 그러고 보니 경험치가!’ 

뇌제로 몬스터를 잡으면 경험치를 얻지 못한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유한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둥장한 최강의 필드 보스를 어렵게, 정말 힘들게 잡았는데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다니.

뇌제로 잡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거지 같은 카세라스는 아이템도 주고 가지 않았다.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유한은 곧 털어 냈다. 

'뭐, 괜찮아.’

꼭 경험치나 아이템을 챙겨야 할 필요는 없다.이렇게 철공소를 지킨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카세라스를 처리한 다음날.

유한은 다시 지그로 접속해 철공소로 돌아왔다.

철공소는 변함없이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평소보다 더 많았다. 얼마나 많았으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사람들 속에는 뭔 일이 터졌다고 하면 찾아오는 버추얼 에이지의 사이버 MC 미루도 있었다.

그녀는 유한에게 몰려드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가장 먼 저 질문을 던졌다.

"지그 님, 바츠 님이 뇌제로 변신해서 카세라스를 잡았는데, 이는 어떻게 된 겁니까?" 

"노 코멘트.”

유한은 점잖게 응답을 거절하며 철공소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미루는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질문을 던졌다.

“에이린이란 제보자의 말론 지그 님이 바츠 님이라던 데요. 그 말이 사실입니까?" 

'아놔, 에이린 이 녀석이!’

에이린이 어제 들었던 것을 버추얼 에이지 팀에 제보한 모양이다. 어쩌면 이미 아르페디아 공식 홈페이지에 알려 졌을지도.

유한은 몰랐지만. 지금 공식 홈페이지는 지그가 바츠일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게시판이 폭주하는 상태였다.

-나상실여사 : 바츠가 지그래요.

-복면달호 : 엑? 그게 사실?

-폭풍의기사 : 에이린이란 사람이 밝혔답니다.

-포스트맨 : 오! 그럼 보러 가야지.

"험험, 거기에 대해서도 별로 할 말이 없군요.” 

“명확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천삼백만 아르페디아 유저분들이 진실을 알고 싶어 하십니다.” 

3,300만 중 2,000만은 해외 유저다. 

'아놔, 그 사람들이 전부 진실올 알고 싶어 하는지 아 닌지 니가 어떻게 아냐고'

슬쩍 뿔이 난 유한은 미루의 말에 응답하지 않고 철공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고 송코에게는 출입을 통제하라 말했다. 

"난리도 아니구나. 너 이번에 엄청 뜨겠는걸.” 

송코는 어제 바쁜 일이 있어서 게임에 접속하지 못했지만, 뒷사정은 전해 들었다. 

"대장장이 지그의 정체가 광전사 바츠였다니.” 

"그 이야긴 그만하지요. 그보다 제철소 공사는 어때요?" 

"아, 제철소는...”

철공소에서 멀지 않은 계곡에 자리한 제철소 부지는 이미 아버지가 기본 공사를 마쳐 놓은 상태라고 했다. 막대한 물을 얻기 위해 상류에 댐을 건설했고. 재료와 강재를 쌓아 놓기 위해 거대한 창고를 여러 동 건설했단다. 거기다 제철소에서 일할 일꾼들을 위한 숙소도 마련해 놓았다고.

이제 제철소 건물에 설비를 들여놓고 그에 맞춰 건물을 마무리 지으면 끝이라고 했다. 

"직접 가서 볼까?”

아버지로부터 중간 중간 보고를 받아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도록 해. 교수님도 네가 와서 좀 봤으면 하시더라고."

"근데 밖에 저 많은 사람들을 뚫고 어떻게 가죠?"

"뒷문으로 살짝 나가. 내가 사람들을 유도할게.” 

송코가 사람들올 유인하는 사이, 유한은 제철소가 지어 지고 있는 계곡 강가로 갔다. 

쿵쿵쿵! 똑딱똑딱!

제철소 부지는 마치 거대한 건축장 같았다. 수많은 NPC 일꾼들과 건축가 유저들이 개미 떼처럼 모여 길을 닦고 창틀을 올리고 건물을 완성하고 있었다. 

"자네 왔는가!”

상류의 댐 마무리 공사를 지휘하고 있던 아비지가 유한이 온 것을 알고 한달음에 달려 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허허 나야 뭐 돈 받고 일하는 거니까. 그보다 자네가 고생했네.”

제철소를 짓기 위해 유한이 들인.돈이 설비 값을 제외 하고라도 자그마치 천만 골드다. 웬만한 영지 하나쯤은 사고도 남을 돈이 건축 비용으로 들어간 것이다.

당연히 이 돈올 마련하기 위해 유한이 엄청나게 고생했음올 짐작할 수 있는 아버지였다.

"그런데 설비는 언제 도착하나?"

“글쎄요. 완성하는 대로 보내 준다고 했으니 곧 도착하겠죠.”

마치 유한의 말을 들었을까. 갑자기 커다란 수레 수십 대가 제철소 쪽으로 다가오더니 택배가 왔다고 한다.

저번에 철공소를 지을 때 왔던 그 NPC 택배업자들이 구센도르프가 보낸 물건이라며 야적장에 설비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허! 역시 양이 많구먼.”

"하하, 이게 얼마친데요.”

자그마치 2천만 골드어치의 설비다. 그런데 그 양이 적다면 무척 억울했을 것이다.

"교수님, 마지막까지 부탁드립니다.”

“그래, 우리 멋지게 한번 지어 보세.”

드워프들을 제외하고 아르페디아에서 처음으로 짓는 제철소였다. 당연히 건축가인 아버지로서도 흥분되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반송로를 똑바로 설치해야 할 거 아냐!” 

"마법 동력로는 건물 밖에 발전실을 따로 만들어 설치 해야지!” 

"압연 설비는 압연 공장에 넣어!” 

처음 만드는 만큼 시행착오도 많았다. 하지만 아비지와 건축가 유저들의 열성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건물이 하나 둘 완성되기 시작했다.

-용광로가 설치되었습니다.

-평로가 완성되었습니다.

-압연 공장이 완공되었습니다. 재철소의 모든 시설을 완성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제철소가 완공되었습니다.

[회장] 칭호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많은 발전을 기대합니다.

제철소 완공 메시지가 뜨자 폭죽이 터지고 꽃잎이 날았다. 게임 시스템도 팡파레를 울리며 제철소 완공올 축하 해주었다. 

"축하해, 지그" 

"축하해요, 오빠.” 

"지그 님, 축하드립니다.”

친구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지그 제철소’ 의 완공을 축하해 주었다.

그들 중에는 버추얼 에이지 팀의 미루를 비롯해, 게임 방송 리포터도 있었다. 그들은 유한에게서 제철소를 짓게 된 동기와 과정을 자세히 물어보고 돌아갔다.

그들은 지그와 바츠의 관계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했지만, 유한은 거기에 대해선 끝내 말해 주지 않았다. 

“삐잇, 삐잇!” 

포포도 축하해주었다.

놈은 자신의 먹이(?)가 많아질 것이 만족스러운지 흐뭇한 표정으로 제철소를 바라보았다. 

"너 쓸데없는 짓 하면 가만 안둔다.” 

유한이 그런 포포의 눈치를 읽고 경고를 주었다. 이제 집채만 해진 녀석은 하루에 먹어치우는 철의 양이 엄청났다. 그래서 유한은 녀석이 엉뚱한 짓을 저지르면 바로 치워(?)버리겠다 마음먹고 있었다.

한편 포포의 주인인 리지스는 앞으로의 사업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그야. 제철소 어떻게 운영할 거야?" 

"제철소에서 생산하는 강재 중 일부는 철공소에서 무구로 만들 생각이야. 나머지는 유저들에게 팔 거고.” 

제철소와 철공소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 유한의 말에 리지스가 눈동자를 반짝 빛냈다. 

"강재의 판매는 나한테 맡겨. 비싼 가격에 팔아 줄 테니까.”

제철소에서 하루에 생산해 내는 강재의 양이 어마어마 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그 철공소와 지그 철강 조합원들이 소화하는 양은 생산량의 반에 반도 되지 않을 터.

그렇다면 엄청난 양을 자신이 유통시키게 된다. 거기서 남는 마진을 생각한 리지스는 자신도 모르게 헤벌레 입을 벌렸다.

"무슨 소립니까! 저희 골드러시 상인 연합에 맡겨 주셔 야죠! 옛날부터 거래해 왔던 거래처인데 저희가 맡아야 합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딜론이 자신에게 강재 유통권을 달라고 소리쳤다. 과거 지그 표 무구 판매권을 두고 싸움올 벌였던 이후 2차전인 셈. 현재 리지스코퍼레이션과 골드러시 상인 연합은 아르페디아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 상인 길드로 발돋움한 상태였다.

이 모두 유한이 생산한 무구와 에르젠을 판매하고 유통 하면서 덩치를 키운 덕분.

그래서인지 아르페디아 최고의 상인 길드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뭐예요, 아저씨! 남이 침 발라 놓은 장사에 끼지 마세요!”

"어허, 이 아가씨가!”

두 사람은 정말 이 자리서 머리라도 쥐어뜯고 싸울 것처럼 나왔다. 결국 두고 볼 수 없었던 유한이 그들올 중재하고 나섰다.

"스톱! 자꾸 그러시면 아무에게도 안 줍니다"

유한의 말에 두 사람은 즉시 싸움을 중단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유통권을 달라며 무한 눈빛 공격을 보냈다.

'에휴! 애나 어른이나....."

부담스러운 눈빛 공격에 결국 유한은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한 채 예전처럼 그들에게 반반씩 유통권을 나눠주었다.

"쳇,골드러시 상인 연합을 밟아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후후, 리지스 양이나 나중에 우리한테 밟히고 울지 마"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작은,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다. 유한은 이번에 그 점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제철소 하나 짓는 게 뭐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다.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다수의 생산직이 있고 그중 하나인 대장장이가 제철소를 지은 게 뭐 대단하냐고.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아르폐디아 온라인을 즐기는 유저들 중 쇠와 무관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령술사도 쇠로 만든 장신구 하나쯤은 차고 있으며, 재봉사가 목숨과도 같이 여기는 바늘과 가위도 쇠로 만든다. 옷의 단추나 벨트의 버클도 마찬가지.

기사나 전사는 말할 것도 없고 마법사와 궁수도, 이제는 건축가와 조선공까지 쇠 없이는 성장할 수 없게 되었 다.

즉 쇠를 장악하는 사람이 아르폐디아 온라인을 장악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점에 주목한 유한은 광산왕 가스론의 신규 광산 개발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제철소를 본격적으로 가동해, 물량을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중에 값싼 철이 많이 풀리자, 철강 자재와 무구 값이 폭락했다. 갑작스런 이런 가격의 변동은 게임 내 경제를 뒤흔들기 충분했다. 

"오오, 이제 풀 플레이트 메일 세트를 살수 있겠다.” 

“휴, 이빈 공사에 철근 자재 공급 때문에 걱정했었는데" 

소비자인 대다수 유저들은 좋아했다. 철 값이 떨어지는 것만큼 무구와 기타 여러 가지 철 제품의 가격이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산자인 대장장이들은 제철소의 물량 공세를 우려하고 유한을 원망했다. 

"아놔, 철 값이 왜 이래?"

"제철소 하나 문 열더니 미친 듯이 폭락하는구나." 

“영세한 중소 대장간들은 죽으라는 거야, 뭐야?" 

"살려면 지그 철강 조합에 가입해야 하나?" 

시간이 갈수록 지그 제철소와 경쟁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대장간과 금속 상인들이 늘어났다.

유한과 리지스는 그렇게 파산한 대장장이와 상인들을 흡수했고, 철에 대한 지배를 더욱 공고히 했다.

"지그 님, 제가 잘 아는 대장장이 유저 분인데 우리 제철소에서 일하겠다며 왔습니다.”

"카프 님이 대충 자리 마련해 주세요.” 

유한은 제철소로 새로 영입되는 대장장이들의 배치를 카프에게 맡겼다.

"지그. 키예프 공국의 철강 상인 연합에서 우리랑 협력 관계를 맺자고 하는데?" 

리지스의 물음에 유한은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이나 시장의 영향력에서 키예프 공국의 철강 상인 연합은 자신들과 협력 관계를 제안할 만한 세력이 되지 못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해. 우리 밑으로 들어오든가 아님 폭삭 망하던가.” 

"훗! 역시 그렇지?”

리지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건네왔다.

"그리고 마노스 제국에서 풀 플레이트 메일 삼천 점과 타워 실드 오천 개, 그리고 장창 삼만 개를 팔 수 있냐고 문의해 왔는데?" 

“누가? 미네르바가?"

"응. 직접 사신을 파견해 물었어. 어떻게 할까?" 

제철소 건설로 지그의 명성과 영향력이 대륙 전체로 확대되어 유저건 NPC건 너도 나도 지그 표 무구를 사겠다며 주문을 넣고 있었다. 

“그 주문 물량은 우리 지그 철강 조합원들에게 줘.” 

"나도 말은 했지만, 꼭 지그 표 무구를 사겠다고 하던 걸.” 

"같은 강철로 만든 거니까 믿고 사도 괜찮다고 해. 이 쪽에서 책임진다고 하고. 조합원들에게도 단단히 일러 둬. 불량품 나오는 만큼 제련강 배급을 줄인다고.”

"알았어. 그리고 레뮤다 대륙의 쿠스코 왕국에서 블랙 아이언 열 기를 주문해 왔어. 대금은 금괴로 지불한데. 다음 달까지 납품해 주면 두 배로 치러 주겠대.” 

"헐! 두배라고?”

블랙 아이언에 대한 주문은 끊일 줄을 몰랐다. 지금 지그 철공소는 24시간 3교대로 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이 주문량올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송코 형, 며칠 전에 새로 배치된 대장장이들 어떻게 됐어요?"

유한은 송코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바람과 달리 송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교육이 아직 덜 끝났어. 비탈리 님 말로는 블랙 아이언 생산에 써먹으려면 얼마 동안 더 가르쳐야 한대." 

“끙! 할 수 없지. 어떻게든 생산량을 늘리라고 해요.” 

일꾼도 더 늘이고, 숙련공도 더 확보하고.

여기에 계획 중인 제2철공소의 건립이 완성되면 어느 정도 숨통을 트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그 제련강이 다 떨어졌다고 조합원들이 더 달라고 하는데?”

"아. 그건 송코 형이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유한은 제철소를 지은 뒤 하루가 3일같이 바쁘게 지냈다.

정말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빴다. 각 파트별로 책임자를 정했지만 마지막 결재는 그가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개인 작업실에서 따로 수련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회의실과 회장 집무실에서 보냈다.

대장장이였던 유한은 이제 완전히 경영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아는 요즘 통 모습올 보이지 않네. 몸이 세 개라도 바쁜 시기에 좀 도와주면 어디가 덧나나?"

유한은 요즘 얼굴 보기 힘든 채린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번에 제철소 완공 때 축하하러 온 뒤로, 그녀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낮은 성적을 만회하려 학원에 다니느라 그렇다지만,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었다. 가뜩이나 현실에서도 잘 보지 못하는데.

“호호호 혹시 요새 시아가 바람올 피우는 건 아닌지 몰라.”

리지스의 말에 유한은 얼굴을 확 찌푸렸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시아는 그럴 애가 아니야” 

“글쎄, 그 학림 아카데미에 꽤 난다 긴다 하는 애들이 많아서 말이야.” 

"날고 긴다고?"

"듣자니 재벌 2세에 아이돌 연예인도 있고, 정치인 아들네미들도 있다던가?"

현재 게임 내 학원들 중에 학림 아카데미가 발군이었다. 학생들의 성적 향상도 다른 학원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고, 학원 내에 여러 가지 여가 시설들도 타의 추종을 불가했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 학림 아카데미에는 목에 제법 힘 주고 다닌다는 사람들의 자식이 많이 들어왔단다.

"그런 애들 속에 있다 보면 자연히 평범한 남친은 잊히기 마련이라고.” 

"너 님 기준에서 말하지 마시지요r?" 

유한은 무척 기분이 상했다. 돈에 환장한 리지스라면 모를까 채린은 그런 애가 아니다. 오래전에 헤어졌던 친구도 기억해 주고, 그를 감싸주고, 항상 곁에 있어 주고 자신의 마음을 받아 준 좋은 녀석이다.

뭔가 사정이 있는 게 틀림없다. 리지스가 말하는 그런 사태는 절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채린이 보고 학원을 옮기라고 해야겠지? 바람피울까 봐 걱정되는 것도 있지만, 학림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원에는 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 지그 너 어디가?" 

유한이 밖으로 나가자 리지스가 물었다. 

"로그아웃 한다. 뒷일은 세상을 잘 이는 너에게 맡길게.” 

"너 삐졌니?"

삐졌다.

그래서 유한은 리지스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로그이웃올 하고 캡슐에서 나온 유한은 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한참 신호가 갔음에도 채린이는 전화 받지 않았다. 

"쩝,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런 거겠지.” 

새벽 1시가 넘었다. 사실 이 시간에 전화를 한 것 자체가 실례다. 

"메일이라도 좀 써야지.”

그렇게 마음먹은 유한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인터넷 이메일 사이트에 들어가 아이디와 비번을 쳤다 곧장 새 편지 쓰기 버튼을 누르려던 유한은 메일함에 깜빡이는 신호를 발견했다. 

<새 편지가 왔습니다. 확인하겠습니까?> 

혹시 채린이가 보낸 메일이 있는 건 아닐까. 유한은 그렇게 기대하고 메일함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채린이 보낸 편지는 없었다. 대신 이상한 놈들 이 보낸 편지들만 가득 들어 있었다. 

“이건 뭐야?"

최근에 온 듯 메일함 상단에 떡하니 자리한 메일. 'Jhi2693' 이라는 녀석에게 온 메일의 제목은 다소 도발적이었다. 

"강유한은 봐라? 날 아는 놈인가?" 

유한은 메일을 열어 보았다. 안에는 별 내용이 없었다. 그러나 함께 동봉된 파일들이 유한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놀람은 곧 분노로 이어졌다. 

"이게 대체 뭐야!”

동봉된 파일, 그 속에는 채린이 또래의 소년과 친근하게 서 있는 모습들이 찍혀 있었다.

(대장장이 지그 14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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