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황금 기계 도시 (129/143)

황금 기계 도시

유한이 글로리아 길드와 계약한 지 3일이 지났다. 그동안 발리안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틀 전 에 황금 기계 도시가 숨겨진 땅 녹색 죽음의 밀림에 도착했지만, 이후론 어찌 된 상황인지 진척이 더뎠다.

"휴우, 앞으로 나아가는 게 힘들어졌다고 느낀 건 저 뿐일까요? 용안 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발리안은 함께 모닥불을 쬐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나이답지 않은 건장한 체격과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엄청난 칭호를 가진 소년은 한참 후에 한 마디를 내뱉었다.

"힘드네요."

드래곤 슬레이어 용안.

그는 아르페디아 랭킹 17위의 전사였다. 예전에 다크나이트 길드에 몸담고 있을 때 광룡 카세라스를 물리쳐 드래곤 슬레이어칭호를 얻었다.

물론 그 칭호는 길드원들과 함께 카세라스를 잡던 중 가장 많은 타격을 입히면서 얻게 된 전과였다. 혼자서 카세라스를 때려잡은 바츠와는 달랐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용안은 드래곤을 잡았다는 과거의 전과 덕분에 발리안에게 고용되었다. 지금 가는 황금 기계 도시라는 유적에서 드래곤의 레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드래곤을 잡을 때와 비교해서 어떻습니까?"

"지금이 더 힘듭니다."

그때는 눈앞에 울부짖는 괴물에게만 집중하고 있으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방이 위험 투성이였다. 원주민에게 구입한 식량과 포션은 독이 들어 있었다. 밀림에는 과거 월남전 다큐멘터리에서나 보았던 부비트랩이 깔린 상태였고,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원주민 NPC들은 베트콩처럼 기습해 왔다. 독침을 날리고, 화살을 쏘고, 투창을 던지고. 심지어 아나콘다라든지, 재규어 같은 고렙 몬스터를 몰아오기도 했다.

발리안이 고용한 용병들은 하나하나 쓰러져 갔다.

부활 포인트에서 되살아난다 해도 그들은 안전을 보장 받지 못했다. 부활 포인트가 있는 마을의 npc들이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틀동안 발리안은 이렇다 할 전진올 하지 못했다.

"휴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안다.

습격한 원주민 NPC를 사로잡아 캐물으니 성역을 더럽힐 무리들이기에 공격했다고 한다.

처음엔 황금 기계 도시가 원주민들의 성역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황금 기계 도시에 대해 설명해 주니 그곳은 ‘금역’ 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성역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누군가 우리 발을 잡으려고 작당을 한 것 같은데 용안 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지그님이 손을 쓴 게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죠."

"하지만 나도 없는 레뮤다 대륙의 인맥이 그에게 있을 리는 없는데.... 뭐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네요."

발리안은 툭툭 말을 던지는 용안과 이야기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별로 생각하는 타입이 아닌 사람을 상대로 대화를 해봤자 입만 아프고 얻는 것도 없을 것 같았기에. 

"발리안 님! 큰일 났습니다."

근방에 수색을 나갔던 용병 유저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뭡니까? 또 원주민들의 습격입니까?"

"그게 아니라 독수리 바위 고원에서 지그 일행을 봤습니다."

발리안은 돌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독수리 바위 고원은 황금 기계 도시 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그런데 지그가 자신보다 앞서 독수리 바위 고원에 올라 가다니.

이건 믿을 수 없는 사태였다. 분명 먼저 출발한 것은 자신이고, 거액을 들여 발목을 잡아 둘 세력도 고용했다.

그런데 지그는 어느 틈엔지 자신보다 먼저 고원에 올라 갔다.

이러다 잘못하면 지그에게 뒤진다.

발리안은 레뮤다 대륙으로 떠나기 전, 지그의 동태틀 알아봐 달라고 정보 길드에 의뢰했다. 그 결과 그가 제철소 부지를 매입하고, 노스아크에 들렀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그가 제철소를 지으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발리안은 한 발 먼저 가면서 방해 세력올 고용했다. 지그가 발목이 잡힌 사이 자신은 황금 기계 도시에 유유히 입성할 수 있을거라 판단했다. 그러나 상황은 거짓말처럼 역전되었다.

"쳇, 역시 지그 님은 깔봐선 안 될 사람이군요"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용병이 물었다. 

"휴대용 기구를 쓰겠습니다."

휴대용 기구는 비행 몬스터의 공격에 취약해 레뮤다 대륙에서는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얼른 고원에 올라 지그보다 먼저 황금 기계 도시에 입성해야 한다.

"하지만 기구의 탑승 인원수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발리안의 일행은 적지 않았다. 사실 그 때문이라도 기구는 더더욱 사용할 수 없었다.

"레벨 높은 분들만 추려서 가겠습니다. 남은 분들은 돌아가도 좋습니다."

발리안은 서둘러 기구를 준비시킬 것을 지시하는 한편. 함께 가지 못하는 용병 유저들에겐 남은 기간의 일당까지 모두 지급했다.

"그리고.... 인디아나정수 님께도 연락을 해야겠군요."

쉐도우 워커 길드는 황금 기계 도시 유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한 발 앞서 고원에 올라가 있었다.

전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발리안은 그들에게 지그 일행의 전진을 막게 할 생각이었다. 역전 당한 상황에서 다시 역전을 하려면 이판사판으로 나가야만 하니까.

글로리아 길드와 손을 잡은 유한은 발리안보다 한 발 앞서 황금 기계 도시가 있는 독수리 바위 고원에 오를 수 있었다.

유한은 처음에 검투사들의 길드라고 해서 그들의 영향력이 대단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검투사라는 말에 옛날 로마시대 영화에서 보았던, 원형 경기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뮤다 대륙의 검투사들은 콜로세움에서 시합만 하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여러 필드를 돌며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고, 모험을 즐기며 실력을 높였다.

거기다 토착 세력답게 아는 것도 많고 인맥도 넓었다.

유한이 녹색 죽음의 밀림을 수월하게 통과하고, 독수리 바위 고원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인맥 덕분이었다.

글로리아 길드의 검투사와 친분이 있는 원주민 npc가 밀림 속의 길을 안내했고, 고원에 쉽게 오를 수 있는 동굴 통로도 가르쳐 주었다.

거기다 글로리아 길드는 원주민들을 부추겨서 발리안 일행의 발목까지 잡았다.

"여기가 독수리바위 고원인가?"

유한은 군나르가 건네준 지도를 살펴보았다. 드워프들 이 표시한 황금 기계 도시는 독수리가 비상하는 듯한 형상의 바위가 있는 고원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드워프들이 발견한 독수리 바위는 지금 유한의 눈에 보이는 곳에 있었다.

"이제 목적지까지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군요."

"다행이군요. 이만하면 우리들은 계약을 다 지켰다고 생각하는데, 지그 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로이디뉴는 고원 아래 밀림에서 떠오르는 기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기구에 누가 타고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발리안이 뒤쳐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 기구를 동원했을 거라 생각했고 유한도 그리 판단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금괴 삼백 개에 해당하는 에르젠 합금입니다."

유한은 에르젠 합금괴 22개가 든 주머니를 로이디뉴에게 건네주었다.

에르젠의 가치에 대해 이미 들은 바 있었던 로이디뉴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질 정도로 좋아했다. 유한은 몰랐지만. 래뮤다 대륙에서 에르젠 합금은 아르페디아 시세의 3배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글로리아 길드가 일을 끝내고 유한이 대가를 치르자, 효력을 잃은 계약서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찾고자 하는 것을 반드시 손에 넣으시길."

"잘가세요."

글로리아 길드원들은 유한 일행과 헤어져 고원을 내려 가는 동굴 통로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동굴 통로에 거의 되돌아왔을 때였다.

"쯧쯧, 정말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자들이로군. 금역에갈 생각을하다니."

여기까지 길을 안내했던 원주민 NPC가 혀를 차자, 로이디뉴가 피식 웃으며 입올 열었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놈들은 여기 또 있는데."

원주민 NPC는 움찔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 친근한 눈빛을 보내던 로이디뉴의 두 눈은 탐욕으로 가득했다. 그것은 글로리아의 다른 검투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안내해 주실까, 금역으로?"

"이건 약속과 다르잖소!"

원주민들은 금역 언저리에 있는 독수리 바위까지만 안내하기로 했다.

유한 일행이 독수리 바위까지만 안내해 주면 남은 길은 알아서 찾아가겠다고 말했고, 금역까지 가기 꺼려하는 원주민들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는데, 글로리아 길드는 그 약속을 깨려하고 있었다.

"그럼 다시 약속하도록 하지. 금역까지 안내하기로."

이곳까지 오면서 유한 일행은 황금 기계 도시에 대해서 뻥긋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파악한 로이디뉴는 원주민들이 말하는 금역이 지그와 발리안의 최종 목적지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 안에 그들이 찾는 보물이 있을 것이다. 

"자, 가지. 금역으로."

"금역에 가는 것은 내 멋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부족의 일을 결정하는 것은 족장이다. 일개 전사에 불과한 자신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금역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아 자칫하면 부족의 안위가 위협받을 수도 있기에.

"네 멋대로 결정할 텐가, 아님 죽을 텐가?" 

어느새 뽑힌 로이디뉴의 검이 원주민 npc의 목에 닿았다.

한참 동안 로이디뉴를 쏘아보던 원주민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앞장섰다. 

"너희들은 후회하게 될 거다." 

"할지 안 할지는 일단 가 보면 알겠지."

로이디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 그가 유한에게서 황금 기계 도시에 관한 정보, 아니 드래곤 래어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면 그런 미소도 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금역에 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글로리아 길드와 헤어진 유한 일행은 군나르가 준 지도를 보며 황금 기계 도시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커다란 나무들을 쓰러트려 만든 급조한 바리케이드 위에는 쉐도우 워커 길드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발리안의 졸개들인가요?"

"고용인이라는 좋은 단어가 있잖아."

유한의 물음에 기분이 상했는지, 길드장인 인디아나정수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무튼 앞으로 가게 길 좀 열어 줄래요?"

"안 된다. 절대 이 앞에 있는 유적으로 가선 안 돼."

"후, 댁들은 아무래도 매가 고픈가 보군요."

유한은 슬쩍 블랙에게 눈치를 주었다.

유한의 뜻을 읽은 블랙은 커다란 주먹을 불끈 쥐며 앞으로 나섰다. 저깟 엉성한 바리케이드와 허접스러워 보이는 도둑들은 한 방에 날려버릴 자신이 있었다.

"뭐 그렇게 발리안의 충복으로 남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시끄럽다! 너는 물론이고 발리안님도 유적으로 들어 가선 안 돼! 절대로 안 된단 말이다!"

인디아나정수의 외침에 유한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물론 발리안도 안 된다니. 발리안이 그를 고용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도 안 된다니?"

이렇게 물은 것은 유한이 아니었다. 유한 일행의 뒤에 모습을 드러낸 발리안이었다. 용안을 비롯해 소수의 전력만을 추려서 고원에 오른 발리안은 유한 일행이 선발대로 보낸 쉐도우 워커 길드원들과 씨우기 시작하면 곧장 뒤를 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디아나정수의 말에 숨겼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해 보십시오. 나도 안 된다니. 대체 뭐 때문입니까? 혹 드래곤 때문입니까?"

유한 일행은 갑작스런 발리안의 둥장에 당황했지만, 그 와 인디아나정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예, 발리안 님. 저희가 유적에 은밀히 잠입해 놈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놈은 평범한 드래곤이 아닙니다. 그 놈은....."

적잖게 긴장한 인디아나정수를 보며 발리안은 조심스럽게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언데드 드래곤이었습니다." 

"언데드드래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언데드 드래곤이라니, 드래곤 중에 그런 종류도 있었나?

보통 ‘언데드’ 라는 단어가 붙는 몬스터들은 오리지널들보다 훨씬 강하다. 질긴 생명력에 공격력도 높다. 언데드 나이트라든가, 언데드 메두사가 바로 그런 종류다.

그렇다면 지금 황금 기계 도시에 있는 언데드 드래곤도 일반 드래곤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보다 제가 더 놀란 건 그놈의 이름이었습니다."

언데드 드래곤의 이름을 듣게 된다면 깜짝 놀랄 겁니다."

인디아나정수의 입에서 문제의 언데드 드래곤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놈의 이름은 카세라스였습니다.”

광룡 카세라스.

한때 그로지아 왕국 남부에 터를 잡고 아르페디아 대륙을 어지럽히던 최강의 필드보스였다. 유저들에 의해 몇 차례 격퇴되고, 심지어 홀로 싸운 바츠에게마저 패한 뒤로 사라졌던 놈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니.

그것도 업그레이드(?)된 듯한 상태로 말이다.

"광룡 카세라스가 여기 있었다니."

"드림맥스도 재활용을 엄청 좋아하는군요."

"힘들여 만든 보스 몬스터니까 그냥 버리긴 아깝다 싶었겠죠."

암울해 하는 유저들과 달리 기운이 넘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최강의 강철 거대 병기 블랙이었다.

"역시 이 대륙엔 암혹의 세력이 있었군. 언데드 드래곤이라, 이 몸이 반드시 처단해 주도록 하지."

"어이구, 처단하려다 네가 처단될 거다."

유한의 핀잔에 블랙이 발끈했다.

"뭐라,후손!나를 못 믿는 거냐?"

"솔직하게 말해 봐. 이길 자신이 있어? 없어?"

나에겐 광룡을 처단하겠다는 의지가 있다!"

"아, 그래. 승산이 있냐고? 싸움에 의지만 있으면 다 이기냐?"

유한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블랙은 반박을 못했다. 그 에겐 분명 악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지만, 드래곤에게 필승을 거둘 자신감은 없었다.

블랙이 시무룩해진 채 주저앉자, 발리안은 함께 온 용안에게 말을 건넸다.

"용안 님. 예전에 용안 님이 한번 싸워 봤던 카세라스 라고 합니다. 한 번 이긴 상대 두 번 못 이길 리는 없을 것 같은데요?"

발리안의 말에 용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카세라스와 싸웠을 덴 다크나이트 길드의 정예 멤버들과 함께 싸웠었습니다. 더구나 간신히 이겼죠"

그 싸움에서 무려 300명의 정예 유저들이 죽었다. 

"제가 추려 온 용병 유저들도 그 정예 멤버에 모자라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 용안 님이 드래곤을 물리쳐주리라 판단하고 고용한 거란 말입니다."

"하지만언데드 드래곤은 좀..."

아무리 그래도 용안은 무모한 싸움을 하기는 싫었다. 언데드 드래곤이라니. 언데드의 특징상,죽이기 까다롭다는 걸 생각하면 자신의 실력으론 어림도 없었다.

먼 산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우는 용안을 바라보며 발리안은 내심 화가 치밀었다.

'크윽! 이럴 줄 알았으면 김요셉 님을 영입해 오는 건데!'

최강의 성직자 김요셉이라면 언데드 드래곤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요셉을 영입하는 것은 어려웠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은둔형 플레이를 히는 김요셉을 찾기가 힘들기에.

그는 저번에 철십자 길드의 대륙 통일 전쟁 때 잠시 얼굴을 보였다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일설에는 후소 대륙으로 헤븐즈 게이트를 찾으러 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무튼 지금은 눈앞에 없는 김요셉을 아쉬워 할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언데드 드래곤으로 업그레이드된 카세라스를 물리치고 황금 기계 도시의 기술을 발굴해야 한다. 그리 판단한 발리안은 유한에게 다가갔다. 

"지그 님, 저는 지금 우리끼리 다투어 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는데, 지그 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러니까,손을 잡자 이겁니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지요. 일단 서로 힘을 합쳐 카세라스부터 처리하고 다시 정정당당히 경쟁합시다"

발리안은 유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단은 서로 협력하자는 그의 제의를 유한은 거부하지 않았다. 바츠를 데려왔다면 모를까, 바츠가 없는 지금 일행만으로는 언데드 드래곤으로 재탄생한 카세라스를 도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한은 발리안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렇게 협력을 약속한 두 사람을 보고 어이가 없었던 인디아나정수는 고개를 저었다.

"제발 터무니없는 생각들은 하지 마십쇼. 잘못하면 벌통을 쑤시는 꼴이 된다는 걸 모르십니까?"

인디아나정수가 유한은 물론이고 발리안까지 황금 기계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막으려 한 이유, 그것은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저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놈은 광룡이라 불리며 아르페디아 대륙을 어지럽혔던 최악의 몬스터였다. 왜 녹색 죽음의 밀림의 원주민 npc들이 이곳올 금역이라 칭했겠는가.

자칫 금역을 건드리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카세라스를 처치하는 데 실패하면 그 불똥은 우리들뿐만 아니라 다른 애꿎은 유저들에게까지 튈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레뮤다 대륙의 주인인 중남미 유저들의 피해가 극심하겠지요."

한국 유저들이 일으킨 문제로 중남미 유저들이 피해를 본다면 이건 국제적인 문제가 된다.

그 점을 우려한 인디아나정수였지만, 유한이나 발리안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연애질하러 게임하는 놈들은 좀 터져도 괜찮아요."

"암요. 사람은 맞으면서 크는 법이지요." 

"거기다 레뮤다 대륙에 용을 잡을 용사가 없겠어요?"

"그럼요.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현재 남의 대륙 사정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싶은 두 사람이었다. 게다가 게임인데 뭐 어쩌랴 싶기도 했다.

죽이 착착 맞는 그들의 사악한 태도에 인디아나정수도 두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제발 엄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인디아나정수는 최소한 악의 봉인을 뜯은 것이 자신들이란 게 소문나지 않기를 바랐다.

언데드 드래곤 카세라스를 물리치지 않으면 퀘스트 완수가 어렵기에 유한과 발리안은 임시로 동맹을 맺었다. 

"그런데 카세라스를 어떻게 무찌르죠?"

발리안의 물음에 유한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글쎄요. 지금 우리 전력으로는 싸워서 이길 확률이......."

뇌제로 변신한다고 해도 언데드 드래곤 카세라스를 물리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더구나 그런 모험을 위해 이주 쓸 만한 머슴(?)인 블랙을 희생시킬 수 없었다. 거기다 뇌제는 하루에 한 번 밖에 사용하지 못하잖는가.

처음에 실패하면 그디음부터는 하루 종일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오펜이 전교 일등답게 한 가지 작전을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어떻게?"

"꼭 쓰러트릴 필요는 없으니까, 카세라스를 다른 곳으로 유인해 내는 거야."

오펜은 일부가 드래곤 레어로 접근 후 카세라스를 어 내 최대한 멀리 유인해 내자고 했다. 그렇게 카세라스가 없는 틈을 타 도시에 진입해 기술을 발굴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카세라스를 유인해 내지?"

유한의 물음에 발리안이 당연하다는듯 말했다.

"일당백의 실력을 자랑하는 그쪽이 하시지요."

"숫자가 많은 발리안 님 쪽이 더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어허, 우린 숫자만 많지 개별적으로 보면..."

그렇게 누가 미끼를 할지 서로 미루고 있을 때였다.

황금 기계 도시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쉐도우 워커 길드원이 그들에게 달려와 다급하게 보고했다.

"지금 황금 기계 도시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뭐어?"

혹시 제3의 도전자가 있었단 말인가.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르페디아에서 철공소를 운영하는 건 유한과 발리안뿐이지만, 다른 대륙은 모른다.

타 대륙에서 철공소나 그에 준하는 시설을 운영하는 이가 두 사람과 같은 퀘스트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유한과 발리안은 서둘러 쉐도우 워커 길드원이 망보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황금 기계 도시 유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였다. 유한과 발리안은 밀림을 헤치고 도시로 향하는 일련의 무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저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차림새는 얼추 알아볼 수 있었다.

좀 전에 헤어졌던 검투 동맹 글로리아 길드원들이었다. 그들은 원주민 NPC를 앞세우고 계속 수풀을 헤치며 도시로 나아갔다.

"저기가 바로 금역이오. 난 여기까지만 안내하겠소." 

더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지 원주민 NPC는 황금 기계 도시 유적을 가리키고는 돌아섰다.

"그래, 수고 했다."

말을 끝냄과 동시에 로이디뉴는 허리에 차고 있던 손도끼를 원주민 npc에게 날렸다. 뒤통수를 정확하게 맞은 NPC는 찍소리도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후후후, 녹색 죽음의 밀림 속에 이런 유적이 숨겨져 있다니."

잠시 황금 기계 도시를 바라보고 있던 로이디뉴는 길드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때? 이만하면 큰 건수를 올린 것 같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지만, 에스텔라만이 부정했다. 

"아직 얻은 게 없잖습니까." 

"깐깐하긴. 이만한 유적을 발견했다는 것만 해도 크게 횡재를 한거야."

글로리아 길드원들은 유적 안으로 진입했다. 로이디뉴는 유적 입구에 세워진 돌기둥에 새겨진 글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 유적은 발리안 선발대 파티가 최초 발견했습니다. -쿠스코왕립학술원-]

"쳇, 최초 발견자가 되는 건 실패했군." 

발리안 쪽에서 보낸 선발대가 이미 들렀던 모양.

그러나 로이디뉴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선발대라면 인원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만나면 해치워 버리고 보물을 독차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직접 들어와 보니 엄청난 유적이로군."

"그러게요."

황금 기계 도시는 녹슬고 부서진 기계 부품들로 가득했다.

자동차처럼 탈 것으로 보이는 4륜 수레도 있었고, 전성기 때는 동력을 얻는 데 사용되었을 풍차가 날개 뼈대만 앙상한 채로 뻐걱거렸다.

정체불명의 기계부품들이 나뒹굴고 있는걸 빼면 황금 기계 도시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마야나 잉카의 도시와 비슷했다. 그래서 상당히 퇴락해 있었지만, 웅장함과 신비함이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로이디뉴와 글로리아 길드원들의 입은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이대로 도시 중앙으로 가 보자." 

유적 가장자리와 달리 중앙부는 멀쩡했다. 외벽에 횡금이라도 발랐는지, 중앙부의 건축물들은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유흑의 광채는 로이디뉴와 글로리아 길드원들의 발걸음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은 것은 에스텔라뿐이었다.

"무턱대고 들어가선 곤란해요. 중앙에 어떤 위험한 것들이 있는지 모르잖아요."

여기서 죽어 버리면 원주민 마을의 부활 포인트에서 다시 와야 한다. 밀림의 온갖 몬스터와 해충, 그리고 이제는 적대적으로 변한 부족의 공격을 다시 겪어야 한다는 소리.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에스텔라는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었다.

"훗, 이 안에 가디언 같은 게 있으면 입구에서 벌써 우릴 가로막았겠지. 그리고 좀 있으면 어때? 쳐 없애면 그만이야. 그리고 한국 놈들에게 보물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해."

결국 로이디뉴의 주장대로 도시 중앙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모두들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행군했으나, 별 다른 이상이 없자 경계를 풀었다. 나중에는 아예 관광이라도 온 것처럼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댔다.

"우와, 저기 공중목욕탕 좀 봐."

"저쪽은 광장인가?"

글로리아 길드원들이 떠들며 앞으로 나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앞에서 일행을 이끌던 로이디뉴가 손을 들어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왜 그래요? 몬스터라도 있나요?" 

에스텔라의 물음에 로이디뉴는 고개를 내저었다.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띤 그는 저 앞에 보이는 피라미드를 가리켰다. 

"저, 저것은?"

황금 피라미드.

좀 전에 햇빛에 반짝이고 있던 건축물은 바로 그것이었다.

온통 황금으로 된 피라미드는 큼지막한 보석과 거대한 옥을 깎아 만든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맙소사! 황금으로 된 건물이라니!"

"빨리가보자!"

모두들 앞을 다투며 황금 피라미드로 뛰어갔다. 황금 피라미드 주변은 금은보화들로 가득했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창고에는 보석들로 채워져 있었고, 길바닥에 는 금화와 은화가 두껍게 깔려 있었다.

글로리아 길드원들의 눈빛은 횡금빛의 욕망으로 타올랐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그들은 보물 더미에 몸을 던지고 보석과 금붙이들을 끌어안았다.

"으하하하! 난 이제 부자다!"

"이게 왠 떡이냐! 모두 쓸어 담아!" 

글로리아 길드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보물을 주워 담았다.

보석만 줍는 이가 있는가 하면, 보석으로 치장된 조각품을 챙기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도끼로 내리쳐 피라미드의 계단석과 황금 문짝을 뜯어내기도 했다.

"로이디뉴 님. 일단은 좀 진정시켜야하지 않올까요?" 

그나마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에스텔라의 말은 주먹만 한 보석을 들고 웃고 있는 로이디뉴의 외침에 묻혀 버렸다.

"에스텔라, 이것 봐! 이렇게 큰 보석은 처음 봐! 우리 길드는 이제 레뮤다 대륙 최고의 갑부가 되는 거야!"

보석에 눈이 뒤집어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비록 그것이 게임속의 물건일지라도 마찬가지. 

"뭐 해, 에스텔라! 멍청히 있지 말고보물을 쓸어 담으라고."

"아, 알겠습니다."

말리는 걸 포기한 에스텔라는 로이디뉴가 준 자루에 보석과 황금을 집어 넣었다.

그렇게 열심히 보물을 챙기던 그녀는 갑자기 사방이 어두컴컴해지자 고개를 들었다.

"응? 왜 갑자기 깜깜해진 거지?" 

"신경 꺼. 원래 정글엔 소나기가 잠깐씩 내리잖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글로리아 길드원들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들었다. 

"꺄아아아악!"

그건 에스텔라의 비명소리였다. 깜짝 놀란 그들은 에스텔라가 가리키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세상을 온통 어돕게 가린 존재를 본 순간, 그들의 입에서도 비명이 절로 튀어나왔다.

"으아아악!"

"저게 뭐야!"

그들의 눈동자는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피라미드보다 더 큰 붉은 드래곤은 온몸에 상처가 나 있었고, 검은 진물이 흘러내렸다. 뼈만 남은 앙상한 날개에서 사악한 검은 기운이 일렁였고, 빛을 잃은 탁한 두 눈은 분노와 욕망으로 가득했다. 언데드 드래곤 카세라스.

거대한 덩치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그들의 발걸음을 땅에 들어붙게 만들었다. 

"크아아! 감히 나의 보물에 손을 대다니!"

카세라스는 입을 크게 벌리며 거세게 포효했다. 장내의 보물들이 흩날리고. 땅과 대기가 떨어 울렸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드래곤 피어에 글로리아 길드원들은 전율에 감싸였다. 공포로 저도 모르게 무기를 떨어트린 사람도 있었고, 그대로 로그아웃이 된 이도 있었다.

"이 더러운 버러지들! 날 이 꼴로 만든 것도 모자라 내 잠을 방해하고 보물까지 빼앗아?"

카세라스는 자신이 언데드 드래곤이 된 것을 인간들의 탓으로 여기고 있있다.

아르페디아 대륙에서 깽판을 부리다 심한 상처를 입고 패퇴한 카세라스는 황금 기계 도시에서 숨올 거두었다. 그러나 생에 대한 집착과 인간들에 대한 분노는 그를 죽지도, 살지도 않은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물론 진실은 유저를 즐겁게(?) 하려는 드림맥스의 수작이었지만.

아무튼 언데드 드래곤이 되어서도 보물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카세라스는 쥐새끼 같은 인간들이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고 보물올 홈치려 한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모두 죽여 버리겠다!"

카세라스는 입과 코로 주위의 공기를 무섭게 빨아들이더니 지상의 인간을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비록 레드 드래곤일 때의 화염 브레스는 아니지만. 독 과 사기(邪氣)로 이루어진 산성 브레스는 닿는 것은 족족 녹여 버리는 힘이 있었다. 

"히이익! 모두 도망쳐라!"

"사람살려!"

레뮤다 대록에도 드래곤이 몇몇 있긴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어떤 길드도 사냥에 성공하지 못했다. 드래곤이란 몬스터는 아직 그들에게 넘어설 수 없는 벽이었다. 

"크아악!"

"케엑!"

절반 이상의 글로리아 길드원들이 산성 브레스에 휘말렸다.

마치 녹아내리듯 순식간에 소멸한 그들의 처절한 죽음에 기겁한 유저들은 철 만난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이 버러지들아, 어딜 도망가느냐! 모두 나에게 목숨을 바쳐라!"

언데드 드래곤 카세라스는 흩어져 달아나는 유저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브레스로 녹여 버리거나 발로 밟고 꼬리로 후려쳐 죽였다.

그렇게 글로리아 길드가 전멸했음에도, 카세라스는 분을 풀지 못했는지 연방 드래곤 피어를 터트렸다. 그것은 분노의 외침만이 아닌 고통스런 외침이기도 했다.

엄청난 위세를 보였지만, 언데드인 몸올 움직이기 위해선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 고통은 그가 버러지로 여기는 인간들이 준 것이었다.

언데드답게 살아 있는 것을 증오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카세라스는 분노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렸다.

"크아아아! 망할 인간들! 모두 없애 버리겠다! 모두 쓸어버리겠다! 세상에서 모조리 멸종시켜 버리리라!"

그렇게 울부짖은 카세라스는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앙상한 날개를 퍼덕이며 동쪽으로 날아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카세라스가 무섭게 날뛴 걸로 봐선...." 

유적 안으로 들어간 글로리아 길드가 무엇때문인지 카세라스의 비위를 건드렸고, 그래서 전멸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누가 미끼 역할올 할지 논의할 필요는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카세라스가 외출한 틈을 타서 도시로...." 

몸을 일으키던 유한에게 갑자기 발리안이 달려들었다.

발리안이 다리를 붙들어 넘어트리려 하자 유한은 다급히 그를 발로 차버리고 중심을 잡았다.

"무슨 짓이야!"

"이런 짓입니다."

씩 웃은 발리안은 열쇠 하나를 내보이더니 정글 속으로 집어 던졌다.

유한은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발리안이 붙들었던 다리에는 커다란 철구가 달린 족쇄가 매달려 있었다.

발리안은 다리를 붙잡아 넘어트리려 한 게 아니라, 바로 이 족쇄를 채우려 한 것이다.

"하하핫! 제가 특수 제작한 무겁고 튼튼한 텅스텐 족쇄입니다. 뛰려고 하면 애로 사항이 꽃필 겁니다."

"이런 비겁한 새끼!"

"푹 쉬고 계십시오! 내가 제철소를 지을 때까지! 하하"

발리안은 곧장 언덕을 내려가 횡금 기계 도시로 향했다. 그는 품속에서 신호탄을 꺼내 하늘로 쏘았다. 탄두가 매섭게 하늘 위로 날아오르며 붉은 불빛을 터트렸다.

"집결 신호다!"

"발리안 님이 부르고 있어!"

"유적이 있는 방향인데?"

블랙과 오펜, 송코 등과 함께 뒤에 남아 있던 발리안의

용병들은 하늘에 솟구친 불꽃을 보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발리안이 배신했다! 모두 유적으로 달려!

잠시 멍하게 있던 블랙 등은 유한의 귓속말을 받고 뒤늦게 황금 기계 도시로 달려갔다. 그들은 중간에 유한과 합류했는데. 발리안의 바람과 달리 유한은 그의 정성 어린 족쇄를 암 브레이크로 박살 내버렸다.

"크악! 발리안 이 시박시키 잡히면 땅에 파묻어 버릴 겨!"

유한은 괴성을 지르며 발리안 일행의 뒤를 무섭게 쫓아갔다.

발리안이 황금 기계 도시의 기술을 먼저 손에 넣으면 큰일이다. 두 사람 중 먼저 기술을 가져오는 사람만이 제철소 설비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발 뒤쳐진 유한은 그것을 염려했지만, 도시 중앙에 와서는 그런 걱정을 털어낼 수 있었다.

황금 피라미드 앞에서 발리안 일행이 두 패로 갈려서 다투고 있었다. 다투는 이유는 산더미처럼 쌓인 보물 때문이었다.

돈 많은 발리안과 랭커인 용안은 보물보단 임무가 우선 이었고, 선발대로 먼저 와 본 쉐도우 워커 길드원들도 이 보물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 손대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용병 유저들은 그렇지 않았다. 다들 조금 전의 글로리아 길드원들처럼 황금과 보석에 눈이 뒤집어져 있었다.

"아,조금만 가져가자니깐요!"

"저건 카세라스의 보물입니다! 그 미친 드래곤의 분노를 사고 싶습니까? 놔두고 횡금 기계 도시의 기술이나 찾으세요!"

발리안은 좀 전에 카세라스가 날뛴 것은 이 보물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글로리아 길드원들은 이 보물에 손을 댔다가 전멸당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용병들은 그의 마음을 몰라 주고 계속 졸라 댔다. 

"좀 가져간다고 티가 나겠습니까?"

"챙기는 사이에 카세라스가 돌아오면 어쩔 겁니까?" 

발리안의 반박에 용병 유저들은 그를 흘겨보았다.

"돌아오기 전에 잽싸게 튀면 되지요."

"맞습니다. 이렇게 말다툼할 시간이 없다고요."

"이 사람들이 정말...."

용병들에게 언성을 높이려던 발리안은 뒤를 쫓아온 유한 일행을 보고 움찔 놀랐다. 이렇게 빨리 쫓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한은 지은 죄 때문에 당황하는 발리안을 보며 히죽 웃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땅에 파묻어 버리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패거리 수습이나 잘하셔!"

"앗!"

유한 일행이 황금 피라미드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발리안은 펄쩍 뛰었다. 드워프 족장이 준 지도에는 피라미드 안에 황금 기계 도시의 기술이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서 지그 님을 잡아, 아니 죽이십시오!" 

발리안이 명령을 내리자, 용안을 비롯해 쉐도우 워커 길드원들이 유한 일행을 쫓아갔다. 

"흥! 채석!"

유한은 옥돌로 만든 신상을 부숴 계단에 굴렸다. 

드르르르!

추적자들이 돌덩이를 피해 주춤하는 사이, 피라미드 중턱에 오른 유한은 문짝이 뜯어진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제길, 절대 놓쳐선 안됩니다!" 

발리안과 쉐도우 워커들은 악을 쓰며 유한 일행의 뒤를 쫓아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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