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손석진의 꿈과 이상 (126/143)

손석진의 꿈과 이상

유한이 손석진이 오기를 기다리는동안, 레볼루션 동아리방 앞은 좀 전의 소란을 보고 달려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몰려온 사람들은 출입문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았다. 시퍼렇게 묵사발이 난 김정균이 구석에 무릎 끓고 앉아 있고, 웬 녀석이 그를 무섭게 쏘아보는 중이었다. 

"뭐야? 저기 왜 저래?“

"아까 슬쩍 들었는데, 정균이가 누굴 해킹했다나 봐." 

"어이구,쳐맞을 짓을 하셨구먼."

소문올 듣고 달려온 레볼루션 동아리 회원들은 김정균을 구해줄 생각을 하지 않고 슬그머니 피해버렸다.엄하게 휘말리면 자신들도 곤란해질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게임과 인터넷 산업이 발전하며 계정 도용이나 해킹은 중범죄로 간주되었다. 

'의리 없는새끼들....'

김정균은 슬쩍 동정만 살피고 가는 동아리 회원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들은 바츠 해킹에 관여하기는커녕, 거기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오직 손석진과 김정균 두 사람이 작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장인 자신이 두들겨 맞는 꼴을 보고도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자니 무척 괘씸하게 여겨졌다. 하다못해 중재나 변호를 해주면 오죽 좋은가. 

"지금 딴 데 눈 팔 때가 아닐 텐데." 

"아니. 난그저……."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한이 이를 갈자 김정균은 진땀올 뻘뻘 흘렸다.

"대가리 처박고 반성해도 시원찮을 판에 눈을 돌려? 당장 대가리 박아." 

"응? 뭐라고?"

"대가리 박으라고! 귓구멍 막혔냐?"

유한이 주먹을 치켜들자, 김정균이 재빨리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런 처량한 꼬락서니를 보고 유한은 고개를 저었다. 바츠를 지운 해킹범을 잡아 굴복시켰는데.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공허했다.

며칠 전만 해도 수화기 너머에서 자신을 농락하던 상대가 지금은 흠씬 터진 상태에서 머리를 박고 있었다. 

'시시해.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었다니.' 

사실 김정균은 하수인에 불과하다. 진짜 범인은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개발자 손석진이다. 그래도 그런, 거물의 하수인이니 나름 무게감이 있을 줄 알았다.

전화로 이런저런 수작을 부리며 자신올 놀려 먹기까지 하지 않았나.

하지만 이놈은 해킹 실력을 떠나서, 모든 것은 손석진 책임이라고 떠넘기는 소인배 녀석이었다. 조금이라도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면 나름 조금은 대접해 줬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공허한 마음을 느끼지도 않았을 터. 

'뭐 진짜 대마왕과 상대하면 달라지겠지.' 

손석진은 분명 다를 것이다. 유한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동안 몇 차례 그와 대면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확한 즐거를 획득한 지금도 그를 상대한다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다. 

끼이익.

동아리 방문이 열렸다.

손석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표정엔 미안한 기색이 깃들어 있었지만, 태도나 눈빛은 당당했다.

예전 같았다면 유한은 바로 달려들어 주먹부터 날렸을 것이다.

그러나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손석진이 어떤 말을 할까. 어떤 말을 해 줄까 생각하면서. 

"서, 선배왔습니까?"

손석진이 오자 머리를 박고 있던 김정균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김정균을 내려다보며 손석진이 물었다. 

"정균아, 어떻게 된 거냐?"

"그, 그게 해킹이 선배와 무관하다는 걸 유도하려고 며칠 전에 전화를 했다가....." 

"내가 그대로 놔두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그렇게 놔두면...."

"네가 내 결정을 거스를 만한 위치니?" 

그렇게 언성이 높지도 않고, 말투도 평이했다. 그런데 유한이나 블라덱이 듣고 움찔할 정도로, 손석진의 말엔 박력이 있었다.

김정균은 따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김정균에게서 고개를 돌린 손석진은 유한올 바라보았다. 무척 화가 나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눈빛이 잔잔했다.

하지만 손석진은 그런 유한의 태도가 더 신경 쓰였다. 

"콧대가 뭉개질 것은 각오하고 왔습니다만...."

"뭉갤 필요가 있습니까? 이미 뭉개졌을 텐데요." 

"그것도 그렇군요." 

손석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유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수인인 김정균이 잡혀 정체가 드러나면서 그의 위신은 무너져 버렸다.

지금까지 그가 했던 모든 말은 거짓이 되었고, 그의 목적의 순수성이 퇴색했다.

"그런데 콧대만 뭉개질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다른 곳도 박살이 날 거라고 생각해 보진 않았습니까?"

유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는 극기도를 일 년 가까이 수련한 주먹에서 뼈와 근육이 꿈틀거리는 소리가 살벌하게 들려왔다. 이대로 졸개와 세트가 되도록 묵사발 내 버릴까. 유한은 크게 한 걸음 내딛으며 손석진의 얼굴로 주먹올 날렸다. 번개같이 날린 유한의 주먹은 손석진의 얼굴에 닿기 직전에 멈추었다.

'눈빛 하나요동치지 않다니!’

맞는 것을 각오했는지, 아님 유한이 때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손석진의 표정과 눈빛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주먹을 날린 유한이 질린 얼굴이 되었다.

유한은 자신의 살벌한 기세에도 밀리지 않는 뻔뻔한 상대를 바라보며.다시 입을 열었다.

"도대체 목적이 됩니까?"

"바츠를 해킹한 목적 말입니까?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요. 날 변화시키기 위해서겠죠? 그런데, 날 변화 시키는 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이루려 했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전에는 그저 바츠를 해킹한 범인이 사이코 같은 놈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허진태에게서 손석진이 어떤 인물인지 듣고 나자 그에게 뭔가 의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어느 정도 추측은 하고 있었다. 지난번 TV 토론회 때 손석진의 발언에서 그가 어떤 이상을 가지고 있는지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변화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명확히 모른다. 그래서 오늘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바츠 해킹 사건의 주범인 손석진에게. 

"좋습니다. 모두 다 말해 드리죠.”

유한과 손석진은 레볼루션 동아리방에서 나왔다. 동아리방은 밖에서 힐끔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 에 적당치 않았기 때문이다.

천마 대동제로 신라 대학교 전체가 들썩였지만, 그래도 조용하고 한적한 장소가 있었다. 바로 컴퓨터 공학과 건물 옥상.

손석진은 옥상 난간에 손을 얹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유한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그의 퇴로를 차단했다. 가능성은 적었지만, 손석진이 도주를 시도할지도 모르기에.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손석진은 그저 시끌벅적한 대학 축제 광경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끄럽지요? 내가 어릴 땐 나라 전체가 저렇게 축제를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밤마다 사람들이 광장에 모두 모여 촛불을 밝히곤 했었죠. 축제가 아닌 투쟁올 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난 그저 축제인 정도가 좋았죠."

손석진은 시선을 돌려 유한을 바라보았다. 

"내 친구 진태에게서 어느 정도 들은 것이 있을 겁니다. 나는 보육원 출신이고, 이 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극심한 진통기 때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손석진이 본 21세기 초의 대한민국은 혼란의 세계 그 자체였다.

불안정한 경제와 정치, 국제 정세 등으로 인해 사람들의 눈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빛을 가져다 줄 초인이나 영웅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웅후보’들이 여럿 등장했다. 다양한 이상을 가진 영웅 후보들은 무대에 올라와 낡은 가치관과 대립하고, 사상이 다른 후보들과 겨뤄 가며 나라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사람들은 그런 영웅 후보들의 등장과 활약에 열광했다. 어린 손석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후의 승자가 세상을 바꿀 영웅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세상을 바꿀 영웅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를 만나게 해 주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했어요. 모두 홀륭한 투사들이었지만 상대를 포용할 줄도, 타협올 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과 정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믿었지만, 그런 독단은 20세기 개발 도상국에나 통할 방식이었지요."

"그래도 남이 나타나서 뭔가 해 주길 기다리는 사람들 보다는 나아보이는데요."

유한의 빈정거림에 손석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영웅을 갈망한 만큼 실망도 컸던 저였기에 한때 제 스스로 영웅이 되어 볼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죠." 

"그래서 조커가 된 거로군요." 

해킹이라는 특기를 세상을 위해서 사용한 영웅 조커. 손석진의 그런 열망 때문에 조커가 등장했다. 유한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당사자에게 들은 진실은 조금 달랐다.

"조커가 된 게 아니라 조커에 합류한 겁니다." 

"합류하다니요?"

"조커는 한 개인을 지칭하는 게 아님니다. 조커는 해커 조직의 이름입니다." 

"예?”

허진태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게, 조커는 손석진 혼자가 아니었다.

예전에 정부에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은밀히 해커 부대를 만들었다. 적국의 해킹 시도를 차단하는 한편, 국내외의 기밀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서였다. 그ㅍ부대의 이름이 조커였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것이 저였고, 대외적으로 조커란 이름으로 활동을 했던 것도 접니다."

손석진이 그렇게 외부의 시선올 유도하는 동안, 그의 동료들은 은밀히 해킹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단다.

"난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고,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영웅이 될 수 있다고도... 그런 착각이 깨진 것은 오래지 않았다. 아무리 침략군의 작전을 떼내 알려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분쟁 당사자국들의 증오만을 깊게 해 줬을 뿐이다.

독재 정권의 비자금을 뜯어내 봤자, 그 나라 국민들이 수탈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비리를 공개해도 문제의 정치인은 철면피를 쓰고 정계에 다시 등장하곤 했다,

무엇보다 시선 유도용이라 해도 정부에서 손석진의 활동을 곱게 보지 않았다. 자칫 정체가 드러날 경우, 감수해야 할 일들이 이만저만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선 나에게 자제를 요구했죠. 하긴 제가 건드린 해외의 독재 정권 중에는 한국에 중요 자원을 수출하는 나라도 있었으니까요."

이리저리 회의가 생길 무렵, 조커 부대는 해산되었다. 쓸 만한 정보들을 충분히 끌어모았으니, 꼬리가 잡히기 전에 깨끗이 정리하자는 게 정부의 생각이었다.

"결국 난 국가와 정권에 졸렬한 이익만 안겨 주었올 뿐 이었습니다. 덕분에 아직도 국가 정보부의 비호와 감시를 받고 있지요.”

'허진태의 행적을 꿰뚫고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인가?'

유한은 모르고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경찰이나 정보기관에서도 조커에 대해 조사하지 않은 것이었다. 감방에 있는 허진태로선 분통 터질 일이겠지만.

"내가 가진 해킹 능력과 의지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 개인이 했던 일들은 세상을 변화 시키는데 별 도음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죠.”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배운 것도 많았다. 무엇 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혼자의 힘으로 안 된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뭔가 바꾸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도요."

사실 그 점은 이미 손석진이 본 바 있던 것이었다. 거리로 뛰어나와 미래를 향해 촛불을 밝힌 사람들, 진승호 일당에게 분연히 대항한 학급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보잘 것 없으나 모두가 한 뜻 으로 뭉친 힘은 강했다. 그 힘이 미래로 나가는 밝은 등불 이 되었고. 급기야 평화와 번영을 쟁취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작지만 분명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내 눈앞에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더군요. 거대한 권력과 폭압. 재앙에 맞서는 그들이야말로 영웅이라 칭할만 했습니다.”

그것은 손석진이 자라면서 보았고,이 나라에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역사가 증명했다. 

"하지만 그 거대한 힘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제라고요?"

"누가 선두에서 그들을 일깨우고 이끄는가 하는 점이죠. 기수(旗手)가 옳지 못한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면 그 힘은 또 다른 폭압으로 변하고, 사회를 퇴보시킵니다. 히틀러와 나치스가 그 대표적인 사례죠.”

1차 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한국을 비롯해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런 훌륭한 법제를 만든 독일도 파시스트 국가로 전락해 2차 세계대전의 원흉이 되었다.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한답시고 나치당과 히를러가 정권을 잡고. 국민들이 이를 묵인했기 때문이다. 손석진은 자신이 중학교 시절 행한 일을 떠올렸다. 학급을 어지럽히는 녀석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꾸민 계략이었지만. 그것은 자칫하면 누군가를 음해하거나 따돌림시키는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새 시대의 영웅이 되도록 변화시키되 그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경험하고 보여주자." 

"그래서 그 수단으로 택한 것이 게임입니까?" 

"게임, 즉 놀이는 룰이 정해져 있습니다. 어떤 간단한 게임이든 룰이 정해져 있습니다. 룰이 없으면 게임 자체 가 성립되지 않으니까요."

룰을 따라 승리하면 보상이 따르고, 룰을 어기면 패널티를 받게된다. 그것은 법과 질서가 있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손석진은 놀이의 원초적인 원리를 이용해 게임을 만들면 사회적으로 정체되고 외톨이가 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이 원활한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게임 내에서 유도하자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개혁이나 혁명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전부터 꾸준히 노력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마침내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사회 활동에 올바르게 참여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진보하게 될 것이고, 그가 원하는 이상향이 될 것이다.

그렇게 믿은 손석진은 해킹에서 손을 떼고 그 재주를 게임 개발에 쏟아부었다. 대학 졸업 작품으로 게임을 만들고. 이후 드림맥스에 입사해 세상에 좋은 영향을 가져다줄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 가지 종류의 게임이 있었지만,저는 온라인, 특히 가상현실 게임에 해법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가상현실에선 사람의 본성이 쉽게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현실에선 사람들은 자신의 본성을 잘 내비치지 않는다. 스스로 자제하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법규와 질서가 그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상의 공간에서 사람은 달라진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게임 속의 환경에서 아바타라는 가면을 쓴 사람들은 억눌려 있던 본성을 해방시키게 된다.

잘못을 하거나 아는 사람에게 들켜도 '게임이니까 뭐 어때’ 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가 버린다. 키보드 워리어란 말이 달리 생긴 게 아니다.

"유한군의 연인인 채린 양을 예로 들어 보지요. 채린 양은 평소에 선머슴처럼 보이지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녀의 내면은 부드럽다는 이야기지요."

'이 인간, 그래도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는군.' 

유한은 손석진이 채린과의 사이를 연인이라 칭해준 데 대해서 무척 만족했다.

생각해 보면 손석진의 말이 맞았다. 단지 게임 스토리 인데도 불구하고 채린은 쉽게 기뻐하고. 슬퍼하고 고민하곤 했다. 어둡거나 귀신 같은 걸 무서워하기도 했고.

"하지만 현실이나 게임에서나 행동이 같은 사람도 있던데요?"

저돌적인 성격의 엔스가 그렇고, 돈에 환장한 리지스가 그러했으며, 로키와 길포드 역시 그랬다.

"성격이 단순하거나 자기 개성이나 신조가 굳은 사람이 그렇지요. 아무튼 전 본성이 드러나는 환경이 현실보다도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가상의 공간에선 여러 가지 시험과 변화를 주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쉬웠다. 그리고 게임 속의 퀘스트와 모험이리는 미명하에 사람들이 부담 없이 받아들이게 할 수 도있었다.

"하지만 게임을 통한 변화도 쉽지 않았습니다." 

본성이 드러나는 것과 별개로, 사람들에게 한계가 있었다.

환경에 쉽게 적응해 버림으로서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 것이다. 일탈과 도전과 발전에 대한 보상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험한 길을 개척하려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들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다채로운 환경과 콘텐츠를 마련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한 플레이와 즐길 거리들만 찾더군요.”

'당연하지, 이 양반아. 누가 게임에서까지 빡빡하게 살려고 할까 봐. 사람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고달프다고.'

더구나 단지 ‘게임’ 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은 진지한 가치를 두지 않았다. 가치라고 해봤자 단순히 금전적인 의미에서 해석하려 들뿐.

자신이 만든 게임이 100%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 실망한 손석진은 게임 개발에서 손을 뗐다.

앞으로 이보다 더 나은 게임을 만들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 이유는 더 나은 게임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만들어 봐야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손올 놓고 나오긴 했지만, 미련은 남았습니다. 그래서 해외에 있으면서도 계속 지켜보았죠.”

손석진은 도전하고 변화하는 극소수의 유저들을 추리고 조사해 보았다.

그들도 대부분은 아르폐디아 온라인에서의 경험을 단순한 게임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중에 몇몇 사람은 게임에서의 경험을 발판으로 현실에서도 변화한 성격을 보이고,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도 했다.

“실망하긴 했지만, 덕분에 의도는 빗나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극소수라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조금씩 세상을 움직여 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러던 손석진은 어느 날 엄청난 광경을 보았다. 게임상에서 거의 무적이라 할 수 있는 레드 드래곤 카세라스를 단신으로 쓰러트린 유저가 나타난 것이다. 그 유저는 바츠라고 하는 악명 높은 외톨이 검사였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저들의 인식을 싹 바꾸어 버렸으니까요.”

카세라스는 개발자인 손석진이나 드림맥스의 운영자들 조차도 파티 플레이가 아니면 쓰러트릴 수 없는 존재라 믿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만들기도 했고.

손석진은 한동안 바츠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유저의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이름은 강유한. 나이는 17세. 예전에 학교의 비리를 밝힌 정의감 넘치는 소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쳇. 고교 중퇴를 했다는 것도 알았겠네요.” 

"뭐 자세한 원인은 모릅니다.” 

그래도 손석진은 어느 정도 알 만하다는 투였다. 하긴 학교 비리를 밝혔던 학생이 퇴학을 당했으니, 뒷 사정을 추리하는 일은 간단하다. 학림고에서는 대외적으로 '교직원 폭행죄’ 로 퇴학시켰다고 떠들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위험하다 생각했습니다. 고교 중퇴자에 하루 평균 열여섯 시간이상 플레이히는 게임 폐인. 거기다 게임상에서도 대인 관계가 전무할 정도로 진독한 외톨이였으니까요.”

유한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땐 정말 그랬으니까.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게임에 매달리고 현실에 등을 돌리고 사람들과 관계를 단절해왔다. 

"그렇게 위험하게 보였습니까?" 

과거에도 그런 상황하에 있던 사람들이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거나, 위험한 망상을 꿈꾸는 일들이 있었으니 손석진은 틀을 깨버린 유한의 잠재된 의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는바츠를. 아니 유한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잠재된 의지를 좋은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칼을 뽑아 들었다.

“그래서 해킹을 했다는 거군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어요.” 

역시 바츠가 해킹된 것은 드림맥스의 책임이 컸다. 외도 중인 개발자가 멋대로 벌인 일이라고는 하지만.

"근데 기가 막힌 시점에 해킹했네요. 하필 내가 일주일 동안 외갓집 가있을 때에.”

“우연이 아닙니다. 허진태와 나의 대화를 엿들었으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 텐데요.” 

“설마…….”

허진태는 손석진더러 진실을 조작하는 인간이라 말했다. 그렇다는 말은 유한이 외갓집에 갔던 것도 그가 손을 썼다는 이야기. 

"우리 부모님올 꼬셨군요!”

"아니요. 유한 군의 외할머님을 설득했습니다. 외손자 성격올 바꿔 주겠다고 하니 순순히 협조하시더군요." 

“대체 어떻게?”

최소한 외갓집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는 말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단 말인가. 그건 게임 계정 정보에도 올라가 있지 않은데.

아니, 충분히 가능했을지 모른다.예전에 손석진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면 말이다. 

"정부 홈페이지를 해킹했군요."

"저에게 그 정도는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보다 쉬웠 습니다."

그렇게 유한의 게임 접속을 일주일 동안 차단한 손석진은 후배인 김정균을 끌어들여 캐릭터 바츠를 없앴다.

"어째서 바츠를 지우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는지 이제 알겠네요.”

말 그대로 그가 지운 것은 아니다. 김정균이 한 일이니, 엄격히 말해 손석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당했는지도. 

"아니요. 바츠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닌 모양이다.

"예?"

“드림맥스 데이터베이스에서 사라졌을 뿐, 바츠의 데이터는 제 품 안에 살아 있습니다.”

손석진은 넥타이핀을 빼내 들었다. 넥타이핀의 끝에는 접속 단자가 붙어 있었다. 내부에 메모리 칩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제가 얼마 전 토론회에서 바츠를 돌려줄 수 있다고 한 이유도 그 때문이지요.” 

"그럼 청동 바츠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 안에 있는 바츠의 데이터를 참고한 겁니다.” 

넥타이핀을 다시 원래대로 꽂은 손석진은 천천히 몸올 숙였다. 이어지는 그의 행동에 유한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털썩.

손석진이 유한의 앞에 무릎을 끓고 고개를 숙인 것이다.

"나는 유한 군이 변하기를 바랐습니다. 내재된 잠재력과 의지를 좋은 쪽으로 사용하기를 희망했지요. 제 희망 대로 유한 군은 훌륭히 변했고, 이전과 다른 모습들올 보여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다. 특유의 감각과 재치로 게임 내의 히든 피스와 숨겨진 스토리들을 파헤쳤고, 게임의 분위기를 바꿔 놓는 데 기여를 했다. 손석진이 원했고 보고팠던 ‘세상의 변화’를보여준 것이다.

'앞으로 사회에서도 훌륭히 활약할 유한 군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게임에서처럼’ 

"의지를 가진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미래로 나가십시오.”

김정균의 뻘짓 탓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손석진은 유한과의 내기에서 졌다. 전화는 김정균이 했지만, 그 내기를 제안한 것은 손석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패자로서 승자의 처분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그는 유한의 앞에 무릎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는 유한 군의 삶과 자유를 침해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사죄할 일이고,유한 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제가 감수하고 존중해야 할 일입니다.” 

유한은 한참 동안 손석진을 노려보았다. 삶과 지유를 침해했다는 손석진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 도 없었다. 바츠 해킹범올 잡으려 한 것은 처음엔 바츠가 아까워서였지만. 이후엔 자신의 삶과 자유를 침해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유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손석진에게 다가갔다. 

"당신정말최악이로군. 최소한 사람이 화풀이를 할 수 있게는 만들어 달란 말이야!"

유한은 손석진의 멱살을 와락 움켜잡았다.

사실 이 상황에서 한 방 날린다 해도 상관은 없었다. 분명 손석진은 유한의 결정을 존중하겠다 했으니까.

그러나 손석진의 눈빛을 보니 주먹을 날릴 수가 없었다. 동요 없이 당당해 보이는 눈빛 속에 어찐지 무척 고된 기색이 느껴졌다.

분명히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상을 지니고 좌절을 맛보고, 다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해킹이라는 범죄까지 감수하고.

유한이 보기에 손석진은 참 엉뚱한 몽상가였다. 게임을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겠다니.

하지만 과연 그것올 비웃거나 나무랄 수 있을까.

세상을 위해 그만큼 고민하고 행동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오히려 그만한 재능을 가지고도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분명히 유한은 손석진에게 삶과 자유를 침해당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을 수 있었다. 친구라든가, 미래라든가 하는 좋은 것들을.

그래서인지 해커를 잡으려는 그의 행동이 서서히 열의를 잃었다.

거기다 유한 자신도 이 부조리한 세상이 바뀌기를 원했다. 자신처럼 재단의 비리를 밝혔다고 퇴학당하는 학생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를 바랐다. 

"일어서세요. 그만하면 됐으니까.” 

유한은 손석진을 일으켜 세웠다.한대 후려갈겨 주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여기서 이해해 주기로 했다. 물론 그냥 용서해 줄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도 게임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당신의 계획을 계속 진행해 나갈 거지요?" 

"물론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손석진의 눈빛은 맑았다.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조금씩 조금씩 끌어모을 것이다. 언젠가 그 불씨들이 모이고 모여서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테니까.

"뭐 시원시원해서 좋군요.그래요,앞으로도 쭉 해나가세요. 이번 일은 제가 덮어 줄 테니까 세상올 변화시키든 말아먹든 당신 소신대로 하세요.” 

"유한군…….”

"대신 지켜볼 겁니다. 당신 말대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당신이 만들어 낸 작은 영웅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지를" 

이것이 유한이 손석진이 벌인 일을 용서하는 조건이었다. 물론 그 조건에 한 가지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그래도 앞으로 해킹은 절대 하면 안 됩니다. 누구를 사주해서도 안 되고요.”

"글쎄요, 그건 좀 약속할 자신이 없군요.” 

"뭐라고요?"

막판에 손석진이 뻔뻔하게 응답하자 유한은 살짝 기분이 상했다. 좋게 가다가 왜 또 삐딱하게 빠지는 건지.

“필요하다면 해킹을 불사할 겁니다. 유한 군 같은 외톨이 소년이 또 나타날지 모르니까.” 

"하지 말라면 하지 말란 말입니다!” 

유한은 폈던 주먹을 쥐고 손석진의 얼굴로 날렸다. 발끈하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유한의 주먹은 손석진의 얼굴에 가기도 전에 막혔다.

어느 틈에 날아들었는지, 손석진의 손이 그의 주먹을 가로막고 있었다. 

"극기도는 더 단련하는 게 좋겠군요.” 

손석진은 유한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인텔리답지 않게 크고 거친 그의 손은 강철 집게처럼 강하고 억셌다.

"싸움 실력도 때론 필요합니다. 영웅에겐 힘을 써야 할 때가 있으니까요.” 

“크윽!”

유한은 손석진의 손올 뿌리치거나 반격을 날리고 싶었지만. 전혀 대응할 수 없었다. 손석진의 분위기가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거대한 거인을 보는 듯한 느낌. 이런 기분은 송태수에게서만 느낄 수 있던 것이었다. 그 강한 느낌은 손석진이 주먹을 놔주면서 사라졌다. 마치 언제 그런 압박을 주었냐는 듯 깨끗이.

"나와 내기가 끝났다고 모든 것이 다 끝났다 생각하진 마세요. 유한 군에겐 아직 풀어야 할 시련이 하나 남았으니까요.” 

시련이 하나 더 남았다고? 그건 무슨 뜻일까? 또 손석진이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일까? 

‘그냥푸짐하게 갈겨줄걸그랬네.’

좀 전에 그냥 놔준 것이 아깝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쉽게 용서해 버린 것일까. 지금 와서 보니 싸움을 건다 해도 만만찮아 보이는 작자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다시 물리자고 할 수도 없는 노룻. 

"쳇, 가겠습니다. 어차피 볼일은 다 끝났으니까.” 

유한은 퉁명스럽게 내뱉으며 등을 돌렸다. 그러나 손석진의 말이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게임을 계속할 겁니까?"

손석진은 이번 일로 유한이 게임에 완전히 흥을 잃어버릴까 걱정되었다.

언젠가는 가상의 세계를 박차고 현실로 나가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 유한이 게임 속에서 해내야 할 것이 있었고, 손석진은 그것을 지켜보고 싶었다.

만약 지금 유한이 모든 것을 그만두고 가 버린다면... 그건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하든 말든 내 맘입니다. 앞으로 나한텐 신경 꺼 주시죠.”

유한은 퉁명스럽게 답하고 옥상에서 내려가 버렸다. 그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던 손석진은 다시 난간 앞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축제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 환한 축제의 불빛을 바라보며 손석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 정말 그 녀석을 이대로 놔둘 거예요?" 

철십자 길드가 망한 후 정현일은 유한에 대한 복수심이 원한으로까지 발전했다.

할머니 홍순영 여사에게 평소 부리지 않던 애교까지 부려 가며 부탁을 했지만, 그녀는 난처한 표정을 지을 뿐.

“지금은 때가 아니다, 현일아. 네가 부탁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그 녀석을 혼찌검내줄테니 그만 가서 공부하거라." 

‘챗,만날 공부,공부.’

흑곰이 그의 부탁만 들어줬어도, 아니 일진 녀석들이 술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피하지만 않았어도 할머니에게 부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흑곰은 여전히 송태수가 두렵다고 할 뿐이고, 일진 녀석들에 대한 영향력은 철십자 길드가 망한 후로 예전 같지 않았다.

정현일의 입이 댓발은 튀어나오자 홍순영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사진 속에는 낯익은 궁수 차림을 한 몸매가 늘씬한 여자애가 서 있었다. 

"이건?”

"네가 그토록 이를 가는 강유한 그놈의 여자 친구지. 마침 우리 학림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더구나.” 

"그래서요?"

할머니가 자신에게 사진을 보여 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 정현일이 눈알을 굴리며 물었다. 홍순영은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현재 우리 학림고가 벌여 놓은 사업 때문에 놈에게 직접적으로 린치를 가하는 것은 힘들단다. 놈이 게임에서 워낙 유명한 존재가 되는 바람에 정부나 사회단체의 시선을 끌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녀석의 여자 친구를 이용하는 것은 괜찮겠지.” 

"여자 친구를 이용하다니요?" 

"이참에 네가 놈의 여자 친구를 빼앗아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홍순영이 의심장한 얼굴로 물었다.

어차피 마노스 제국을 빼앗기고 철십자 길드가 조각조각 찢어진 뒤로 정현일의 캐릭터 베히모스는 갈 곳이 없었다. 그런 차에 할머니의 학림 아카데미에 머무는 것도 괜찮을 듯.

“그럼 부캐를 키워야겠군요.”

베히모스는 너무나 잘 알려져있어 안 된다. 하지만 부캐라면 그녀의 의심을 사지 않고 접근하는 게 가능할 터.

눈이야 선글라스나 안경 같은 걸로 가리면 된다.

외모와 말빨에 자신이 있는 정현일이다. 그리고 돈도 많다. 여자 하나 꼬시는 것은 여반장이라 생각했다.

"크크크! 여친을 빼앗긴 놈의 표정이 눈에 선한걸?"

정현일은 분통이 터져 펄쩍 뛰는 유한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악어가 악어새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웃는 것과 같았다.

손자가 이사장실을 나가자 홍순영은 학림 아카데미를 책임지고 있는 정교감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이사님.”

“이번에 현일이와 몇몇 친구들이 학림 카데미에 들어갈 겁니다. 잘보살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업은 착착 잘 진행되고 있겠죠?"

홍순영의 물음에 정 교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받고 진행함에 있어 만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결코 외부에서 우리 계획을 눈치 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한 번 더 조심하세요. 만에 하나 우리가 벌인 일이 새어 나간다면 당신과 나 둘 다 파멸을 면치 못할 테니까.”

"제가 몇 번이고 더 다짐을 받겠습니다.”

"호호호, 그럼 정 교감만 믿어요.”

이번 사업은 대박이었다.

예전의 사업들도 손해가 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막대한 이익을 벌어다 주지 못했다. 더욱이 이번 사업은 학부모들의 사교육열올 더욱 부추기는 한편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기는 장점이 있었기에 학생을 모집하는 게 훨씬 쉬웠다.

손석진과 결판을 짓고 돌아온 유한은 3일 동안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았다.

바츠 해킹과 관련된 모든 일을 끝냈지만, 마음은 여전히 심란했다. 거기다 손석진은 자신에게 시련이 하나 더 남았다고 말했다. 아직 모든게 끝난게 아니라고.

'이 작자가 또 뭔가를 꾸미는 건가?'

그런 불안감 때문에 게임에 접속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한동안 게임은 쉬고 공부에 열중하기로 마음먹 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채린이와 데이트를 즐기리라.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공부가 게임을 할 때보다 집중이 안 되었고. 채린이는 아르페디아 온라인상의 학원에서 공부하느라 바빴다. 거기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내가 불안감 때문에 하던 걸 안 하 던 놈이었나?"

그렇지 않았다.

위기가 오면 오히려 뛰어들어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던 것이 바로 자신이다.

거기다 군나르에게서 받은 퀘스트도 있었다. 그 퀘스트에는 시간 제한이 있는데, 시간 내에 완수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받게 된다. 또 라이벌인 발리안이 먼저 제철소를 지어 버릴 거라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일단 하고자 한 것은 끝내 놓기로 마음먹었다.

옛말에도 그러지 않는가. 하다 중간에 그만두면 아니한 것만 못하다고.

그렇게 캡슐에 들어가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접속한 유한은 캐릭터 대기실에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캐릭터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어랍쇼? 이게 왜?"

해킹을 당한 뒤 레벨 1의 초보 캐릭터로 전락한 바츠가 사라지고, 레드 본 플레이트 메일과 플레임 소드를 장착한 바츠가 서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설마…….” 

저번에 손석진은 바츠를 지우지 않았다고 했었다. 그 말이 떠오른 유한은 캐릭터 대기실 한편에 있던 우체통을 뒤져 보았다. 그 우체통에는 각 캐릭터에게서 날아온 쪽지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유한은 그 쪽지들 중에서 가장 최근에 온 것을 집 었다. 

유한이 수락하자, 쪽지가 펼쳐지며 안에 적힌 글이 눈 앞에 나타났다.

친애하는 유한 군에게.

비록 유한군이나를 용서해주었지만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어 바츠를 되돌려 드립니다. 레벨과 능력치는 시간의 흐름을 감안해 조금씩 조정했으니 오해 없길 바랍니다.

유한군이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그만두지 않기를 바라는 손석진이.

“크윽! 이 아저씨가!”

해킹당해 사라진 바츠를 되찾게 되어 한편으로 기쁘긴 했지만, 또 자신의 의시를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분명 저번에 바츠는 더 이상 필요 없노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되돌려 보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 모른다. 저번에 시련 어쩌고 저쩌고, 아직 끝나지 않았느니 했던 걸 생각해 보면 그럴 가능성이 더욱 높았다.

‘쳇, 변화도 좋지만 이런 식으로 강요하진 말라고.’

사실 이건 강요라고 할 순 없다.

바츠가 해킹되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지그가 건재했다.

지그든, 바츠든, 플레이하는 유한의 마음에 따라 어느 것이든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바츠가 싫으면 안 하면 된다. 

"이걸 그냥 지워 버려?"

지그로 즐겁게 플레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츠는 더 이상 끌리지 않았다. 더구나 오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손 석진이 주물럭거렸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거리감도 느껴졌다.

그러나 유한은 끝내 바츠를 삭제하지 못했다. 한때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바츠로 변신해 보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일단 한번 해보고나서 결정하자.” 

<바츠 님께서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접속하셨습니다. 즐거운 게임이 되길 바랍니다.> 

잠시 어지러운 기분을 느낀 유한은 천천히 눈을 떴다. 뿜어지는 환한 빛 사이로 주변 풍경이 보였다. 하늘에 떠 있는 듯, 발아래로 까마득한 지상의 모습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반투명한 하늘색 유리로 된 벽과 계단들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풍경의 던전.

하지만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자 더 이상 낯선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맞아. 여긴 천공의 탑이었어.” 

예전에 바츠로 플레이했던 마지막 장소. 100층을 돌파한 다음날 외갓집에 갔고. 며칠 후 바츠는 사라졌다.

거의 1년 만에 되찾은 바츠로 유한은 다시 그 천공의 탑에 우뚝 섰다. 감개무량보다 손석진이 바츠를 얼마만큼 손을 대놓았는지가 더 궁금했다. 

"상태창확인!”

칭호 : 데보라 던전 발견자. 외로운 전사. 오우거 헌터. 베기의 달인. 찌르기의 달인. 몬스터 학살자. 시계탑 정복자. 소울 브레이커, 랭커 불꽃의 검사, 드래곤 술래이어. 천공의 탑 발견자. 부활한 용사 

직업 : 전사 

레벨 : 300

체력(HP) : 5,000/5,000 

스태미나: 4,800/4,800 

마나(MP) : 1,000/1,000 

힘:420 + 250(드래곤건틀렛) 

민첩성 : 280 + 150(이카루스 윙 부츠)

인내심:250 

지식:97

공격력 : 430 + 250(플레임 소드) 

방어력 : 300 + 400(레드 본 플레이트 메일) 

경험치 : 1500/63000 

돈 : 1,500,000골드

플라잉소드 스킬1랭크 

마나 블레이드 스킬 1랭크 

소울 크래쉬 스킬 1랭크 

렘페지 어택 스킬 2랭크

도발 스킬 2랭크

[히든스킬】

무빙 카운터 스킬 2랭크

블레이즈 블레이드 스킬 3랭크

버서커 스킬 9랭크

"참나, 부활한 용사? 지 멋대로 죽이고 살려 놓곤 무슨."

유한은 새롭게 추가된 칭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활한 용사 칭호는 몇 달 동안.접속올 안 하다 한 사람 에게 생기는 칭호였다. 본의 아니게 플레이를 못한 자신이 받을 칭호가 아닌 것이다.

추가된 건 칭호뿐만 아니었다. 스탯도 예전보다 을라 있었는데, 쪽지에 적힌 대로 손석진이 그동안 시간이 흐른 걸 감안해 조금씩 상향해 놓은 듯했다.

스킬도 히든 스킬에 유한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응? 버서커(Berserker) 스킬? 이게 뭐지?

유한이 바츠 시절에 광전사라 불리긴 했지만, 그건 그의 물러설 줄 모르는 투지와 불굴의 용기를 높이 사서 유저들이 그렇게 불러 준 것이지, 정말 광전사로 변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르폐디아 온라인에 광전사라는 직업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뭐 사용해보면 알겠지.’

처음 듣는 스킬에 고개를 갸웃한 유한은 근처에 어슬렁거리는 몬스터를 찾아보았다. 몬스터를 상대로 스킬이 어떤 성능과 효과가 있는지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마침 장비도 예전에 사용하던 것들 그대로 장비하고 있 었다.

물론 그것은 예전에 사용하던 숙련된 것들이 아니다, 예전에 바츠가 사용하던 아이템은 이미 회수해서 철공소에 고이 모셔 놓았다.

지금 걸치고 있는 아이템들은 손석진이 만들어 준 것이다. 그 증거로 아이템에는 바츠의 소유라는 표식이 없었고, 인벤토리에는 돈과 지도, 포션과 몇 가지 응급 아이템들만 있었다. 

"이쯤이면 몬스터가 튀어나올 텐데.” 

이곳 천공의 탑은 강력한 몹들이 득시글대는 곳. 천공의 탑은 먼 옛날 오만한 마도사들이 천계에 오르려고 허공에 쌓은 것이란 사연이 있었다. 그 마도사들은 외부로부터 탑을 보호하려고 가디언들을 잔뜩 풀어 놓았다는데, 그런 이유로 탑 안에는 키메라형의 강력한 몬스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쳇. 이제 보니 이놈의 탑도 미케니아 놈들이 쌓은 거였군.”

당시에는 미케니아 문명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 몰랐다.

미케니아의 잔당들은 그들을 부활시킨 지그의 손에 전멸했지만, 아직 이렇게 유적은 남아 있었다.

“어쩌면 이바니우스 3세 말고 다른 잔당이 나타나 아르페디아 대륙을 어지럽힐 수도 있겠군. 아니, 그런 놈은 벌써 나타났나?"

손석진이 철십자 길드를 배후 조종한 것을 알 리 없는 유한은 거대 키메라의 제작자가 미케니아의 잔당일 것이라 추측했다.

"크르르르르!”

“키키키키키!”

몬스터를 찾아 헤매고 있던 유한의 앞에 두 마리 몬스터가 나타났다.

‘체퍼 솔져’ 

라고 이름 붙은 이 키메라들은 풍뎅이 같이 생겼고, 4개의 손에는 투박한 검을 들고 있었다.

놈들은 딱딱한 외골격을 갖고 있어 방어력이 높고, 공격력도 강했다.거기다 레벨 230대에 선공성향, 협공능력까지 있기 때문에 왠만한 고렙이 아니고는 건드릴 수 없는 놈들이었다.

하늘올 날아다니던 체퍼 솔져들이 괴성을 토하며 공격해 왔다. 유한은 빠르게 검을 놀리며 녀석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다소 감이 떨어져 있었지만, 월등히 높은 레벨과 스탯을 가지고 있어 그런지 당할 염려는 없었다. 

"자, 그럼 끝장을 내 볼까? 암 브레이크!” 

공격 스킬을 사용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뭐가 잘못되었나 잠시 생각해 보던 유한은 자신의 머리를 두들기며 피식 웃었다. 

"멍청하긴, 바츠의 공격 스킬을 써야지.” 

몸은 바츠인데 지그의 스킬을 썼으니 발동될 리 만무했다. 오랫동안 지그로 플레이하다 보니 너무 익숙해져버린 모양.

유한은 곧장 카운터 스킬을 사용했다. 체퍼 솔져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검을 휘두르자, 카운터 스킬 특유의 반동을 이용한 강력한 공격이 칼끝에서 터져 나왔다. 

"끼엑?"

비명과 함께 체퍼 솔져가 두동강 났다. 유한은 곧장 몸을 돌리며 또 다른 체퍼 솔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나블레이드!"

칼끝에서 터져 나은 V자의 검풍이 체퍼 솔져의 머리를 싹둑 동강냈다.

-경험치 10을 얻었습니다.

-약한 상대와 싸워선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어울리는 상대를 찾아 겨뤄 보십시오.

레벨 차이가 있다 보니 아이템은커녕 경험치도 제대로 챙기기 힘들었다. 오히려 군소리하는 안내창만 보았을 뿐. 

"쩝, 추가된 히든 스킬은 사용도 못해 봤네.” 

유한은 검을 거두고 앞쪽에 보이는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아무래도 부활한 바츠를 상대할 만한 몬스터는 더 높은 충에 있을 것 같았다.

코다인은 레벨 250대의 전사로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나름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유저였다.

한때 바츠를 동경한 그는 직업도 같은 전사로 선택했고, 바츠가 사라진 뒤로는 제2의 바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닮고 싶은 것은 전투력일뿐, 성격이나 플레이 방식은 아니었다.

"꺄아악" 

"앗! 티나!”

눈앞의 몬스터를 상대하던 코다인은 커플인 정령술사 티나가 위기에 처한 것을 보았다.

당장 등을 돌리고 티나에게 달려간 코다인은 그녀를 공격하는 체퍼 솔져를 일격에 베어 없앴다. 

"괜찮아, 티나?"

"꺄악! 조심해 코다인!”

티나의 상태를 살피던 코다인은 등을 후려치는 묵직한 일격에 몸올 휘청거렸다.

방금 전까지 코다인을 상대하던 레벨 253의 체퍼 나이트가 그를 쫓아와 철퇴를 휘두른 것이다. 그 일격으로 코다인은 hp 2,000 포인트를 한 번에 잃었고, 스턴 효과까지 덤으로 얻었다. 

"이런,오늘은 좀 재수가 없네.” 

"그, 그러게."

두 사람 앞으로 키메라들이 꾸역꾸역 몰려왔다. 얼른 랭커에 오르고자 하는 욕심에 천공의 탑 상층부로 올라왔는데. 아직은 이른 도전이었던 듯. 결국 두 사람은 사이좋게 키메라들에게 맞아 죽고 말았다.

-힝! 코다인 나 신목의 목걸이를 떨어트렸어.

-걱정마. 티나. 내가 새로 사줄게.

-하지만 코다인도 폭염의 할버드를 떨어뜨렸잖아.

-괘,괜찮아. 아깝긴해도 무기는 또 있으니까.

-우리 그냥 로그아웃하지 말고 좀 기다려 보자. 누가 와서 부활시켜 줄지도 모르잖아.

-누가 오긴 할까?

천공의 탑은 난이도 때문에 찾아오는 유저가 적었다. 죽은 자신들을 본다 해도 구해주리란 보장도 없다. 오히려 떨어트린 아이템을 얌체같이 주워 가지 않으면 다행이다.

"크윽! 무기가 아깝긴 하지만 부활 포인트에서 새로 시작하는게....."

여친을 설득하려던 코다인은 순간 놀랄 만한 광경을 보았다. 

"끼에에엑!”

뒤에서 찢어질 듯할 비명이 올리더니 키메라들의 사체가 공중에 흩날리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키메라들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계단 쪽에서 방금 전 참살의 주인공인 듯한 유저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오, 여긴 몹이 꽤 많은걸?"

즐거운 듯 중얼거리는 그를 보고서 키메라들은 순간 긴장했다. 상대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은 월등히 높은 상대의 레벨에 반응한 시스템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레벨 230~250대인 키메라들은 여느 잡몹들과 달리 상대가 강하다고 도망치지는 않았다. 침입자는 무조건 제거하라고 설정된 그들은 협공 모드로 전환해 상대를 하늘과 땅에서 포위했다. 

"좋아. 이 정도 숫자라면 한번 써 봐도 되겠군" 

지금 나타난 유저는 바로 유한이었다. 그는 곧장 추가된 히든 스킬 버서커를 시용했다. 그러자 불길한 효과음과 함께 전신에 붉은 기운이 스멀 스멀 치밀어 올랐다.

-버서커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제한 시간은 5분입니다. 방어력이 소폭 하락합니다. 스태미나 소모가 2배 많아지며……

‘뭐야, 나쁜 것뿐이잖아.’

인상을 찌푸리던 유한은 다음에 이어지는 안내창의 문구에 눈을 번쩍 떴다.

-데미지 딜레이가 사라집니다. 상대의 공격을 허용할 때마다 공격 속도와 공격력, 스킬 사용 시 마나 회복 속도가 상승합니다.

‘호, 양날의 검과 같은 스킬인가?'

안내창을 보고 있던 유한에게 키메라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유한은 일부러 체퍼 나이트의 공격을 맞아 보았다. 살벌하게 날아온 철퇴에 hp가 단숨에 1.000 포인트 넘게 깎여 나갔다. 그런데 이후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보통 강력한 공격을 허용하면 그 영향으로 떠밀려 주춤 하거나 스턴 상태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곧바로 스킬을 사용하거나 공격을 전개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은 타격을 무시하고 곧바로 공격을. 그것도 스킬을 시전할 수 있었다. 그것도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꿰엑!”

방금 전 철퇴를 날렸던 체퍼 나이트의 목이 날아갔다. 연이어 소울 크래쉬 스킬을 사용한 유한은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베고 후려갈겼다. 

"크하핫! 모두 덤벼라!”

대장장이 지그라면 절대 펼칠 수 없는 위용. 간만에 접한 통쾌함에 유한은 연방 스킬들을 뿌려 가며 키메라들올 베어 갔다. 일부러 공격을 피하지 않고 맞기도 했다 hp가 떨어지는 만큼 공격이 더 빠르고 강해지기 때문이었다.

-뭐,뭐지 저 자람은?

-랭커, 그것도 상급랭커인가 봐. 엄청 강한데?

죽은 코다인과 티나는 유한의 활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코다인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붉은 기운을 뿌리며 폭주하는 전사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된 덕분이다.

저런 광경을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생각하던 코다인은 유한의 머리 위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 바츠?’

5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장내에 있던 몬스터들은 완전히 씨가 말랐고, 바닥에는 동강난 키메라들의 몸뚱이들이 굴러다녔다. 

"후! 이거 대단한데?"

경험치와 아이템은 거의 얻지 못했지만, 유한은 버서커 스킬의 효과를 확인한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아니, 만족한데 그치지 않고 스킬에 매료되었다.

특히 hp가 떨어질수록 오히려 전투력이 상승하는 효 과는 아슬아슬하고 짜릿한 맛올 느끼게 해 주었다 

"쳇. 아주 사람 꼬드기려 작정하고 만든 스킬이로군." 

자신을 보고 있을 누군가를 향해 가볍게 빈정거린 유한은 몬스터에게 당해 쓰러진 코다인과 티나에게로 시선올 옮겼다.

그들의 옆에는 그들이 떨어트린 무기와 아이템이 놓여 있었다. 유한은 코다인이 떨어트린 폭염의 할버드를 보고 씩 웃었다.

'저건 내 핸드메이드 제품이잖아.' 

폭염의 할버드 도끼날에는 대장장이 지그가 손수 만든 것임을 알리는 'Z' 자 마크와 Handmade 란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다시 말해, 이 무기의 주인은 지그의 고객이란 이야기.

'후후후, 내 고객이라면 당연히 살려 드려야지.’ 

사실 그런 것을 떠나서도 두 사람을 살려 주려고 했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손맛을 본 터라 기분이 좋은 상태였고, 마침 인벤토리에 응급 아이템인 부활의 성수가 있었다.

유한은 부활의 성수를 뿌려 두 사람을 살려 주었다.

"와아, 고맙습니다!" 

“이 은혜 절대 안 잊을 게요.”

“뭘요. 조심해서 플레이하세요.” 

등돌려 떠나던 유한을 코다인의 외침이 붙들었다. 

"잠깐만요. 정말 바츠님이 맞습니까?" 

유한은 그 말을 듣고 움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코다인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계속 물어보았다.

"예전의 그 바츠 님이 맞으십니까? 해킹되서 캐릭터가 지워졌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다시 나타나신 겁니까?" 

"하하, 그게…….” 

확 다 까발려 버릴까.

아마 바츠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손석진의 독단일 것이다. 바츠가 돌아오건 말건 이번 일의 전말이 알려지게 되면 드림맥스의 위신은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그런 것을 생각해서 배려해줄 의리는 유한과 드림맥스 사이에 없었다.

유한이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코다인의 옆에 있던 티나가 입을 열었다. 

"아냐, 이분은 예전의 그 바츠 님이 아닐 거야.” 

"무슨 소리야? 티나 너도 방금 전의 활약을 봤잖아 " 

"그거랑 상관없어.나 예전에 광전사 바츠님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님은 이렇게 다른 사람을 살려 주는 친절한 행동은 안한다고.”

그때도 이번과 같이 죽어서 쓰러져 있던 티나였다. 바츠는 죽은 자신과 동료들을 무시하고 그냥 제 갈 길올 가버렸다.

'확실히 옛날엔 그랬지.’

예전을 생각하던 유한은 갑자기 얼굴올 굳혔다. 부활의 성수는 오직 타인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 해킹당하기 전에는 부활의 성수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사람과 어울리지 않았을 때이므로, 남을 구해 주겠다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기 때문.

하지만 되돌아온 바츠의 인벤토리에는 부활의 성수가 들어 있었다.

단순히 구색 맞추기로 손석진이 넣어 둔 것일까? 아니, 뭔가를 시험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모른다. 정말 유한이 달라졌는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서. 한편, 코다인은 적잖게 긴장하고 있었다. 유한의 표정이 굳은 이유를 방금 전 여친의 말 때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괜히 비위를 거슬렀다가 pk당하는 건 아닌지. 여긴 지나다니는 유저도 얼마 없고, 독불장군 바츠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티나, 너 왜 쓸데없는 소릴 하고 그래.

-내가 뭐를!! 틀린 말했어?

-얼굴 좀 봐! 본인이 아니라면 저렇게 인상을 쓰겠냐?

-하지만 바츠는 없어졌잖아! 다른 사람이 바츠라는 아이디를 새로 만든 걸 수도 있고.

-으이구, 이 바보야! 본인이 캐릭터를 새로 키웠다는 생각을 왜 안해?

-그,그런가? 하지만 1년사이에 어떻게..

-한번 키운 거 두번 못 키우겠어? 사람 성격이야 살다 보면 변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귓속말로 수군거리던 그들은 슬그머니 유한의 곁을 떠났다.

유한은 그들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고. 훨씬 강화되어 돌아온 자신의 캐릭터를 살펴보았다. 

"결국 목적이 있어 돌려준 거라 이건가?" 

분명히 신경 끄라고 말했는데, 손석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쾌했지만, 그 대담한 배짱과 의지는 가상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뭐 그쪽이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다 있지." 

그렇게 히죽거린 유한은 천공의 탑에서 내려갔다.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아예 확 저질러 버릴 생각이었다.

천공의 탑을 내려온 유한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도시로 이동했다. 유저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바츠의 존재는 천공의 탑에서 만난 커플에게 공개 되었기에 다시 노출된다 해서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사실 처음에는 되도록 바츠를 숨길 생각이었다. 딱히 바츠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지그로 플레이하는 것이 더 재밌고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석진이 자신을 여전히 간섭한다고 오해한 그는 손석진을 골탕 먹일 속셈으로 바츠의 부활을 만천하에 알리기로 했다. 

"우왓! 바츠다. 드래곤 슬레이어 바츠야!” 

"오, 광전사 바츠!” 

"저거 짝퉁 아냐?"

“아냐, 내가 전에 본 적이 있는데 진짜라고!” 

군중 속에서 유저들의 감탄과 찬사가 이어졌다. 거기엔 놀라움도 뒤섞여 있었다. 바츠가 어떻게 되었다는 건 그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킹당했다더니 어떻게 된 거야?"

"드림맥스에서 되살려 준 건가" 

"아니,무덤까지만들어놓곤무슨..." 

유한은 수군거리는 유저들을 뒤로하고 도시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있는 장소를 골라 가면서 돌아다녔다. 덕분에 모두들 '바츠의 재림'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크크크. 똑똑하신 개발자님. 댁이 얼마나 이 사태를 잘 수습할지 두고 보겠습니다.'

알릴 만큼 충분히 알렸다 생각한 유한은 잠시 게임을 로그아웃하고 컴퓨터로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예상대로 아르페디아 온라인 공식 홈페이지는 난리가 났다.

바츠를 목격했다는 유저들의 신고글과 그들이 올린 바츠의 스크린샷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천공의 탑에서 봤던 코다인이란 유저는 어느 틈에 찍었는지, 바츠의 전투 동영상까지 업데이트해 놓았다.

-신궁전설 :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임?

-최강현 : 전투 스타일로 보면 바츠가 맞는데...

-라칸 : 바츠 해킹됬다면서요?

-마도과학자 : 그건 둘째 치고 저 붉은 기운을 뿌리는 스킬은 뭔가요?

- 오르도스 : 새로 획득한 히든스킬이 아닐는지?

유저들의 문의가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 계속 올라왔다.

다들 바츠 유저가 캐릭터를 다시 키웠을 거라는 둥. 동영상의 이상한 스킬을 보면 그럴 거라는 둥, 그게 아니라 드림맥스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거라는 둥 제멋대로 떠들어 댔다.

물론 단순히 떠들지만 않고 드림맥스에 어떻게 된 일인 캐묻는 유저들도 생겨났다.

그리고 마침내,드림맥스의 공식 답변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확인해 본 결과. 현재 출현한 바츠 캐릭터는 이번에 바츠님이 새로 키우고 있는 캐릭터로 밝혀졌습니다. 유저 여러분들은 착오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어쭈? 이것들 봐라?"

유한의 눈썹이 꿈틀했다. 당사자가 눈올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드림맥스에서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대체 손석진은 관계자들을 어떻게 구워삶은 것인지? 아니면 드림맥스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건지?

'그냥 확 까발려 버릴까보다.' 

그러나 유한은 그런 마음을 접었다. 손석진은 물론 드림맥스 사람들은 그리 멍청하지 않다. 금세 탄로날 주장을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마무리 지은 상황에서 괜히 분란을 일으켜 유한이 득 될 것은 없었다. 

"훗!좋아. 이쯤에서 너그럽게 넘어가주도록 하지." 

작은 복수를 한 데 만족한 유한은 다시 캡술로 들어가 이번엔 지그로 게임에 접속했다. 환한 빛과 함께 유한은 아르페디아의 세계로 되돌아 왔다.

장소는 지난번에 접속을 종료했던 노스아크. 바츠의 재등장은 어느새 이곳에까지 알려져 있었다. 삼삼오오 모인 유저들은 그 이야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

"동영상을 보니까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던데 대체 어디서 그렇게 캐릭터를 키운 걸까?"

"혼자만 알고 있던 굉장한 던전이 있었겠지. 몇몇 고렙들은 그런 자기만의 영역이 있다고 하더라." 

"다음 달 랭킹 순위가 요동치겠구나." 

유한은 유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짐마차를 소환한 후 철공소로 출발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리지스가 얼굴을 찡그리며 다가 왔다. 제철소 견학 간다며 노스아크로 떠난 지가 제법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야? 견학하기가 그렇게 힘들었어?"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어. 그보다 다들 좀 불러 줄래?"

"왜?퀘스트라도받았어?"

"그래,다 모이면 이야기할게." 

리지스는 친구들에게 호출 쪽지를 보냈다. 채린이는 아직 학림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송코는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도 각자 사냥이나 퀘스트를 하고 있어 모이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유한이 시간도 아낄 겸 제철소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멘스였다. 

"여, 이제 오..." 

"죽어랏!"

엔스가 다짜고짜 검기를 뿌리자 유한은 기겁해서 몸을 날렸다. 정통으로 맞았으면 사망을 면치 어려웠을 정도로 강한 공격이었다. 

"인마, 뭐 하는 짓이야!" 

"뭐 하긴! 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내가 뭘?"

유한의 물음에 엔스는 억울한 표정올 지었다. 

"동영상 봤다! 바츠를 새로 키웠더군! 섭섭하게 어떻게 그동안 한 마디도 안 할 수 있냐? 나와 너의 우정이 그것 밖에 안 되었나? 비록 적으로 만났지만 이젠 널 친구라 생각했거늘." 

"야, 그건..."

나도 얼마 전에 돌려받았노라고 이야기하려던 유한은 이 단순한 녀석을 그냥 다독이기로 했다. 

"나중에 화끈하게 붙어 줄 테니 화 풀어라, 응?" 

"정말이냐?"

"그래, 예전의 바츠보다 더 강해졌으니까 기대해라. 대신 내가 바츠라는 사실을 잠시 좀 비밀로 해 주고."

"비밀? 혹시 바츠로 시아 누님 말고 다른 여자랑 사귀려고?"

"그런 거 아니거든! 소문나면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와서 귀찮단 말이다. 그럼 너도 나랑 대결하기 힘들어져." 

"음. 그런가?"

싸우기 좋아하는 엔스의 심리를 파고든 유한은 녀석을 구워삶는데 성공했다.

연락을 받은 친구들이 철공소의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 다들 바츠를 소재로 잡담을 나누었다. 엔스를 제외하곤 모두 유한이 바츠라는 걸 모르는 듯했다. 아니, 한 사람은 좀 다른 듯.

"리지스 언니. 바츠 말인데 지그 오빠랑 닮은 것 같지?"

"어이구, 지그가 바츠면 난 골드맨이게."

리지스는 믿지 않았지만. 에이린의 갑작스런 말에 유한은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린은 유한을 바라보며 새침하게 웃었다. 뭔가를 아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당황한 유한은 서둘러 본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자, 모두 지방 방송 꺼 주시고. 내가 너희를 부른 이유는...."

그는 노스아크에 가서 겪은 일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녹색 수염 드워프 족장 군나르에게 퀘스트를 받은 것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끝맺자, 리지스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같이 갈 동료가 필요하다?"

"응, 나랑 같이 레유다 대륙에 갈 사람?" 

유한의 물음에 대부분 난색 어린 표정을 지었다. 동행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한을 따라가면 희귀한 퀘스트를 경험할 수 있고, 보상도 괜찮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거절해야 하는 데는 사정이 있었다.

"난 아빠가 도장을 도와 달라고 해서."

"저는 다음 주 모의고사 때문에 곤란해요."

"모레 브로딘 왕국과 아주 중요한 계약이 있는데 어쩌나."

채린과 에이린, 리지스는 사정이 있어 못 간다고 했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오펜이었다. 

"나는 갈래. 전부터 레뮤다 대륙에 가고 싶있으니까." 

"오오, 고마워."

아크 위저드 아스란 정도는 아니지만, 오펜도 꽤 고랩 마법사가되어 있었다. 충분히 든든한 전력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마법사만으로는 부족했다. 선두에서 근접전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유한은 엔스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답지 않게 왜 그러냐?"

"게임 시간줄이고 공부하기로 했다. 그래서 장거리원정은 어려워."

"어이구, 알았다."

요즘 에이린 때문에 부쩍 공부에 열을 올리는 엔스였다. 덕분에 유한은 고개를 돌려 다른 동행자를 찾았다. 곤란하다는 표정들 틈에 유달리 반짝이는 눈빛이 있었다.

그는 바로 송코였다.

그의 눈빛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기, 내가 같이 가도 될까? 난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데 말이야.”

"송코 형은 그냥 철공소를 봐 주면 좋겠는데...."

"그래? 난 평생 집만 뵈야 할 팔자인지도."

송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암울한 표정에 유한의 마음이 바뀌었다. 생각해 보면 송코가 불쌍했다. 그는 어느 때부턴가 집 보는 사람 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래도 지그 철공소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인데, 한 번쯤은 그의 소원올 들어주고 싶었다.

“이번엔 형도 함께 가죠. 바람도 쐴 겸.”

“그럴까?"

단숨에 표정이 밝아지는 송코.

"그런데 레뮤다 대륙에는 왜 가려는 거예요?"

유한의 물음에 송코가 입이 헤벌죽 벌어졌다. 입가에 침도 맺혔다.

"호,거기에는 미녀가 많다는 소문이 있어서 말이야. 이참에 하나 꼬셔야지.”

유한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올 때 채린과 리지스, 에이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응징했다.

"모두 송코오빠 밟앗!"

"크아악!뭐하는거야?" 

"오빠는 여자의 적이에요!"

"이런 짐승!"

그렇게 송코는 저 히늘의 별이 되었다. 또 한 명의 동행자는 유저가 아닌 NPC로 채우기로 했다. 그것도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npc로. 

"뭐? 미지의 대륙에 가자고?"

"그래, 신기한볼거리가 가득할 거야."

그러나 블랙은 그리 탐탁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미안하지만 나는 아르페디아 대륙의 안위가 우선이다. 방금 전에 사람들에게 듣자니 바츠라는 악명 높은 광전사 놈이 부활했다는데, 그놈을 무찔러야 할 필요성이 더 느껴진다."

"그놈은 전혀 문제가 안 되니 그냥 같이 가시지요. 더구나 미지의 대륙에도 아르페디아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 이 있을지 모르고."

그의 말에 솔깃한 블랙은 결국 동행을 결정했다. 그렇게 레뮤다 대륙의 횡금 기계 도시로 떠날 멤버의 구성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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