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해커 대면 (125/143)

대장장이 지그13권

해커 대면

블라덱이 보내준 음성 파일을 들은 다음 날 아침. 학원 갈 준비를 마친 유한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더러 나오라고?"

블라덱이 물었다. 

"그래, 해커가 누군지 알아냈어."

블라덱도 문제의 파일을 들었지만, 음성만으로는 상대가 누군지 짐작할 수 없었다. 

“오늘 오후 네 시쯤이 좋겠군. 학원 마치는 대로 바로 쳐들어갈 테니까 준비해.”

"하지만 나까지 굳이 갈이유가……."

"벌써 잊어버렸냐? 그 자식 때문에 누명을 덮어썼잖아.”

블라덱은 유한과 처음 만났을 때 엄청 두들겨 맞았다.때린 것은 유한이지만, 얻어맞은 것은 바츠를 해킹한 그 자식 덕분이다.너 따위는 날 찾을 수 없노라고 자랑하던 그놈 때문에.

"끙! 알았어. 오후 네 시에 어디로 나가면 돼?”

"장소는…….”

유한은 블라덱에게 만날 장소를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유한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혼자 쳐들어가려 했었다. 자신의 바츠를 해킹한 녀석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잡는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었다. 상대가 증거를 숨기거나 인멸할 수 있었기에 놈의 컴퓨터를 뒤질 전문가가 한 사람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블라덱에게 연락을 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완벽하게 상대를 붙잡을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

'잠시만 기다려라! 곧 쳐들어가 줄 테니까!’

집을 나서는 유한은 누군가를 향해 이를 갈더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학원을 마친 유한은 곧장 약속 장소로 나갔다. 블라덱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학원에서 멀지 않은 지하철역이었다. 유한이 나타나자 그를 발견한 블라덱이 손을 흔들었다. 

"왜 이제 와? 한참 기다렸잖아.” 

"누가 일찍 나오래?"

유한이 늦은 것은 아니다. 블라덱이 30분 일찍 나와서 기다렸을 뿐. 블라덱은 유한 못지 않게 해커가 누군지 궁금했고, 또 예전의 굴욕을 갚아 주고 싶었다.

"아침에 듣기론 분명 쳐들어간다고 했는데…… 어디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거야?" 

"물론이지. 여기서 가까워.” 

유한은 앞장서서 블라덱을 안내했다. 지하철역을 나온 그들은 작은 거리를 지나 시끄럽고 복잡한 대학가 앞에 당도했다. 

"얼래, 여기는?"

"신라 대학교야. 아르폐디아 온라인 개발자 손석진의 모교지.”

“그럼…… 역시 범인은 손석진?"

블라덱의 말에 유한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두고보면알아.”

두 사람은 대학 캠퍼스 안으로 들어갔다.

축제 중이었는지 신라 대학교의 교정은 떠들썩했고, 여기저기 학생들이 연 노천카페와 음식점, 박물 시장이 펼쳐졌다. 대학생들이나 방문객들을 상대로 한 이벤트도 진행중이었다.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5시 창작학과 에서 김현우 작가님의 사인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관심 있 으신 분들은…….〉

구내방송을 들은 유한이 귀를 쫑긋하더니 발걸음을 멈추었다. 

"왜?사인이라도 받으려고?” 

블라덱의 물음에 유한은 도리어 반문했다. 

"너 모르겠냐?

"뭘?"

"저 목소리를 모르겠냐고."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블라덱의 답답한 태도에 유한은 가슴을 두드렸다. 

"어이구, 등신! 네 친구가 분석해서 보낸 음성 파일이랑 목소리가 똑같잖아.”

해커와의 통화 중 깃든 잡음은 바로 신라 대학교의 구내방송이었다. 처음엔 간혹 말이 끊기고 음질이 떨어져서

못 알아들었지만, 음성을 증폭하고 노이즈를 제거하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음성 파일의 내용은 이랬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68회 신라대 천마(天馬) 대동제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각 학과와 동아리는 내일까지 부스 운용 계획서 제출을 마쳐 주시기 바랍니다.>

음성 파일 덕분에 유한은 해커가 어디서 전화를 걸었는지 알 수 있었고, 덕분에 범인이 누군지 확신했다.

'내가 바보지. 진작 좀 더 생각을 했으면…….’

유한이 그렇게 이를 갈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게 누구야?”

“유한오빠다!”

유한이 고개를 돌리자 엔스와 에이린, 아니 고경덕과 소유하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다가오는 두 사람을 향해 유 한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희들이 여긴 웬일이야?"

“경덕오빠랑 놀러 온 거예요?!"

"놀러?”

“훗,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공주님과 데이트를 즐기러 온거지.”

고경덕의 말에 유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둘이 사귀고 있었어?" 

"헤헷, 얼마 안 됐어요.” 

고경덕이 소유하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착하고 예쁜 유하가 고릴라같은 고경덕의 꾐에 넘어갈 줄은 몰랐다.

더욱이 둘 다 교복 차림인걸 보면 학교를 땡땡이 치고 놀러 온 것이 분명했다. 생각보다 고경덕과 소유하 커플의 진도가 빠른 듯.

"후후후, 의외로군, 바츠. 시아 누님은 어딜 두고 저 음침한 형씨랑 놀러 온 거냐?” 

고경덕의 물음에 유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놀러온 거 아니다. 볼일이 있어서 온 거다.” 

“볼일?”

대답하기가 귀찮았던 유한은 대충 인사를 건넸다. 

"그럼 난 먼저 간다. 재있게 놀아라.” 

"무슨 일이지?"

고경덕은 유한을 약 올릴 생각으로 질문을 던진 것이었는데 전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한은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놀려댄 경덕이 다 무안할 지경.

"따라가볼까?"

고경덕은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유한과 블라덱을 바라보다 옆에서 쿡쿡 찌르는 소유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오빠, 나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요.”

"그래. 앙하고 깨물어도 좋으니까 뭐든 물어 봐.”

고경덕은 유한을 금세 잊어버렸다. 그러나 소유하가 다시 그를 거론하는 것이 아닌가.

"오빠는 왜 유한 오빠한테 매번 바츠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야놈이 바츠니까.”

고경덕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소유하는 못믿겠던지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이요? 지수 언니 말로는 오빠가 착각하는 거라고 하던데요?”

“아냐, 리지스 누님이 잘못 아는 거야. 생각해봐 유하야. 어째서 지그가 대장장이인데 전투에 그리 능한지를. 다 바츠 때 싸워본 가락이 있어서 그런 거야."

“에이, 지그 오빠 정도는 아니지만 싸움 질하는 대장장이도 있잖아요.”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싸움 잘하는 대장장이가 유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는 적지만 유한 못지않게 전투를 즐기고 싸움에 능한 대장장이들이 있었다.

"그건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지그처럼 상식을 파괴할 정도로 강하진 않지. 넌 지그가 왜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대단한 대장장이가 될 수 있었는가 생각해 봤어?” 

"음......”

"다른 게 없어. 바츠라는 캐릭터를 전에 키워봤기 때문에 지그라는 캐릭터를 그렇게 빨리 키울 수 있었던 거야. 그놈이 던전이나 필드에 대해서 잘 알고, 히든 피스를 잘 찾아내는 것도 다 그 때문이라고.”

"하지만 바츠는 성격이 까칠하다던데요.” 

유하는 저번에 정령계에서 만났던 청동 바츠를 떠올렸다. 오리지널을 똑같이 재현한 청동 바츠와 달리, 지그는 동료들올 잘 살펴주는 상냥한 오빠였다. 

"예전엔 그랬지. 하지만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야.” 

고경덕도 처음엔 유한이 왜 그리 변했는지 몰랐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 있다 보니 자연히 알 것 같았다, 사람과 함께하고 즐겁게 어울리다 보니 성격이나 생활패턴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이 오빠도 유하를 만나기 전에는 길거리에서 씨움만 하는 못된 놈이었어. 공부도 안 하고 부모님 속만 썩였지.”

사실 고경덕이 변한 건 소유하를 만나고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변했고, 주변에서도 변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경덕이 대학에 갈 거라고 하니. 선생님들이 너 어디 아프냐? 라고 묻긴 했지만. 

“아무튼 지그는 바츠가 맞아. 틀림없어.그럼! 사나이의 이름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는 나라고!”

고경덕은 다소 막무가내에 과장스런 면이 있지만,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다. 유하도 경덕과 사귀어 보면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확실히 고경덕의 말대로였다.

지그는 여느 대장장이들과 달랐다. 방송에 여러번 나올 정도로 화려한 모험을 펼치더니, 어느새 게임의 판세를 뒤바꿀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녔다.

그렇게 영향력 있는 캐릭터를 키우고 랭커들을 상대로 당당한 것을 보면, 과거가 남달랐을 가능성이 있었다.

'경덕 오빠 말대로 지그 오빠가 바츠가 맞다면?'

소유하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오늘 들은 말이 사실이라면, 아르페디아 온라인이 또 한 번 들썩이게 될 것이다. 리저드 히어로의 친구가 누군지 알렸을 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유저들과 방송국의 관심이 쏟아지리라.

고경덕과 소유하 커플과 헤어진 유한은 컴퓨터 공학과 건물로 향했다.

컴퓨터 공학과에서도 건물 안팎에 부스를 마련해 컴퓨터 관련 물품올 팔거나,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들을 소개 하고 있었다.

"이야! 저것 봐! 1980년대 8비트 MSX 컴퓨터야! 데이터 레코더 저장 방식이야! 카세트 테이프로 프로그램을 저장하는 거라고!” 

"구경은 나중에 하고 빨리 따라와.” 

“아, 저건 아버지가 하셨던 고전 패키지 게임 창세기 전! 비닐도 뜯지 않은 상태라니!”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블라덱은 대학생들이 내놓은 초 레어 아이템들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것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유한은 묵묵히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 목적지에 당도했다. 바로 해킹 동아리 레볼루션의 방 앞에.

꽝!

유한은 거칠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에 커튼이 드리워진 어두컴컴한 동아리 방 안에는 다들 축제를 즐기러 나갔는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바로 예전에 왔을 때 보았던 그 더벅머리 대학생.

그는 갑자기 동아리 방문이 열리자 놀랐던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너였냐?"

김정균은 안도의 한숨올 내쉬며 슬쩍 컴퓨터 시스템을 종료시켰다.

"뭘 그리 놀라죠? 수상한 짓이라도 했습니까?" 

"하하, 수상한 짓은... 그냥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려서 깜짝 놀랐을 뿐이야.” 

그렇게 대충 얼버무린 김정균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이냐? 우리 동아리에 가입하려고?”

그는 마치 유한을 여전히 대학 신입생인 줄 알고 있다 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살짝 눈살을 찌푸린 유한은 곧 입을 열었다. 

“사실대로 말하죠. 전 아직 수험생이고, 여기 온 건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 축제 때문이라면 밖에 관련 부스가 따로 있는데.”

"축제하곤 상관없어요. 전 제 계정을 해킹한 범인을 찾으러 온 겁니다." 

유한의 말에 김정균이 고개를 갸웃했다. 

"계정? 해킹?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는 연방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우리 동아리가 네 게임 계정을 해킹했다고 의심 하는 거야? 우리가 비록 해킹 동아리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짓은 안해. 무슨 근거로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난 게임 계정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요.” 

유한의 날카로운 지적에 열변을 토하던 김정균의 몸이 흠칫 굳었다. 그러나 곧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변명을 늘어 놓았다.

"그야 보통 계정하면 게임 계정을 생각하니까…….”

더 이상 김정균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던 유한은 중간에 그의 말을 끊었다.

“그만! 전 댁이 해커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며칠 전에 해커가 나에게 전화했던 통화 기록이죠. 이것 때문에 내가 여기를 찾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는 김정균의 앞에서 플레이어를 작동시켰다. 해커의 통화음과 따로 발췌한 신라 대학의 구내방송이 흘러나오자 김정균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까? 이쪽에서 음향 전문가를 고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군.”

"뭐라고요?"

방금 전까지 안색이 파리하던 김정균은 정색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유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손석진의 모교, 해킹 동아리, 대학구내방송.

그 세 가지 단서의 조합으로 여기 레볼루션에 바츠를 해킹한 범인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좀 전의 굳은 김정균의 얼굴에서 그가 해킹범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상대는 계속 오리발을 내밀고 있었다.

“네 계정을 해킹한 범인이 우리 대학에 있다고 쳐. 하지만 그게 우리 동아리 멤버, 혹은 나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어? 구내방송 스피커는 대학 건물 어디에나 있는 거잖아.”

‘이 자식이!’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는 김정균의 태도에 유한은 분통이 터졌지만, 곧장 달려들지 못했다. 김정균의 반론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애써 확보한 증거물도 소용이 없어질 판.

그러나 유한은 금세 자신감 있는 태도로 돌변했다. 방금 전 김정균의 반론이 그 계기가 되었다.

"그럼 당신은 해커가 아니라 이겁니까? 당신네 동아리멤버들도?”

"당연하지! 말했잖아, 우린 합법적인 일만 한다고.” 

"그래요?”

김정균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유한은 히죽 웃음을 지었다.

"그럼 동아리 방이나 컴퓨터 데이터를 뒤져도 불법적인 장비나 프로그램은 나오지 않겠군요.” 

"그, 그건…….” 

"왜요? 찔리는 게 있습니까?" 김정균의 얼굴에 깔려 있던 자신감이 녹아내렸다. 유한은 자신이 들이닥쳤을 때 허둥거린 그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뒤져보면 증거가나올 것이다. 뭐든지, 어떤 것이든!

유한은 확신했다. 그래서 당당하게 나갔다. 

"동아리 방을 좀 뒤져 봐도 되겠습니까?" 

"안 돼! 뒤지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 넌 경찰도 아니잖아!”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전에 왔을 팬 귀한 자료도 잘만 보여 줬으면서.” 

"그거야 그땐 널……아무튼 안돼!” 

김정균은 악을 쓰며 유한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유한을 동아리 방 밖으로 떠밀어내려던 그는 오히려 유한 의 힘에 떠밀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그쪽이 결백하면 사과드리지요"

유한이 뒤를 향해 손짓하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블라덱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보고 김정균은 또 한 번 안색이 변했다.

블라덱은 김정균을 처음 보지만, 김정균은 아니다.

그는 블라덱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과거 정체를 감추고 게임 아이템을 블라덱에게 팔아먹은 자가 바로 그였으니까.

김정균의 떨리는 눈동자에서 유한은 그가 범인임을, 바츠를 해킹한 해커임을 다시 한 번 확신했다.

그러나 그가 해커라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유한은 동아리 방을 뒤지며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뭐해! 얼른 컴퓨터를 뒤져 봐!”

"아,알았어."

쭈뼛거리던 블라덱은 서둘러 김정균의 자리로 가서 컴퓨터 전원을 켜고, 하드 디스크를 뒤졌다.

수상한 파일과 폴더, 프로그램들을 체크하던 블라덱이 갑자가 품 속에서 넷북을 꺼내 컴퓨터에 연결하더니 키보드를 두들겼다.

"왜?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 

"폴더에 패스워드가 걸려 있어.” 

"패스워드?풀수있어?"

유한이 눈이 초롱초롱해 묻자 블라덱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그동안 레벨업 좀 했거든.” 

본의 아니게 그를 레벨 업하게 만든 원흉은 유한이었다. 유한이 바츠 해킹범을 추적하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볶아 대니 실력을 쌓지 않으려야 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소 시간은 걸렸으나 결국 패스워드를 해제했다. 그러자 컴퓨터 하드 깊숙이 감춰져 있던 은밀한 프로그램이 블라덱과 유한의 눈앞에 드러났다. 

"호, 이건!” 

"이게 뭔데?"

"안티 인스펙터 프로그램인 것 같아. 인스펙터를 무력화시키는 용도의.” 

블라덱의 말에 김정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단정 짓지 마!” 

"단정 지은 적 없어. 추측만 한 거지.” 

블라덱은 더미 인스펙터를 만들어 뿌렸던 전적이 있었다. 그래서 문제의 프로그램이 대강 어떤 용도로 쓰이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어디 보자. 데이터를 모아 놓는 폴더는 여긴가?"

"이 자식! 멋대로 만지지 마!”

“아, 좀 봄시다. 본다고 닳는 건 아니잖아!”

김정균이 블라덱과 실랑이를 하는 사이, 유한은 계속 동아리 방을 뒤졌다. 그는 귀퉁이에 있는 작은 캐비넷을 열려고 했지만, 잠겨 있어 그런지 열리지 않았다.

'열쇠를 달라고 해도 주지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유한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쾅!

유한의 강한 발길질에 얇은 양철로 된 캐비넷 문이 찌그러져 버렸다. 블라덱과 다투고 있던 김정균의 얼굴도 비슷한 꼴로 일그러졌다.

“이건 뭐야?”

캐비넷문을 뜯다시피 열어젖히니, 케이스가 벗겨진 상태에서 이상한 장치들이 덕지덕지 붙은 휴대폰이 나왔다.

유한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그것은 추적 방지와 음성 변조 장치가 붙은 휴대폰이었다. 바로 해커, 아니 김정균이 유한에게 전화할 때 썼던 것.

그러나 휴대폰보다 더 결정적인 중거품들이 캐비넷 안에 들어 있었다.

그것은 구겨진 채로 처박혀 있던 종이들이었다. 한 장

은 캐릭터 피규어를 주문 생산해 준다는 어느 완구사의 광고지였고, 또 한 장은 유한과 채린의 게임 내 모습이었다.

궁수 캐릭터 시아의 복장과 소지한 장비는 지난번 유한의 생일날 왔던 피규어와 동일했다. 

"이건 뭡니까?“ 

"그, 그건….”

"뭐냐고요? 결백하다면서? 그러면서 왜 이런 게 나와? 당신 나에 대해서 모르고 있던 거 아니었어?" 

유한의 말투는 완전히 반말로 바뀌었다. 김정균은 필사적으로 변명을 해 보려 했지만, 마땅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충 얼버무리려 하기 전에 다른 곳에서 또 폭탄이 터졌다. 

"어이,이것 좀 봐.”

블라덱은 홀로그램 스크린을 유한의 눈앞에 보여 주었다.

그 화면에는 유한의 바츠 시절 플레이가 찍힌 스크린샷들이 가득했다. 이후 지그로 플레이했을 때 찍은 듯한 스크린샷들도.

어떻게 이런 스크린샷들을 찍을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것은 꾸준히 감시를 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이래도 아니라고 할거냐? 끝까지 들통 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자기 자신올 과신한 거냐고!”

유한은 언성을 높이며 김정균에게 다가갔다.

창백한 안색에 식은땀을 줄줄 홀리던 김정균은 무섭게 자신을 노려보는 유한의 눈올 피해 돌아섰다.

"하하,그러니까 그게.......”

김정균은 딴청을 피며 책장 위의 물건들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번개같이 몸을 돌리며 책상 위에 있던 메모리 박스와 잡지들을 유한에게 집어 던졌다.

유한이 움찔해 몸을 피하는 순간, 김정균은 동아리 방을 뛰쳐나갔다.

“이 자식! 거기 서!”

유한은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는 김정균을 쫓았다.

김정균은 상당히 빨랐다. 부리나케 컴퓨터 공학과 건물을 빠져나간 그는 마침 근처에 와 있던 자장면 배달부를 떠밀어 버리고, 스쿠터를 빼앗아탔다.

“야, 너 뭐야!”

삿대질을 하며 욕하려던 자장면 배달부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저앉은 자신의 머리 위로 뭔가 획 지나갔기 때문이다.

비호처럼 몸을 날린 것은 바로 유한이었다. 그는 스쿠터의 뒤를 쫓아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김정균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리고 그대로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크엑!마,말도 안돼!" 

"안되긴 뭐가 안 돼?"

김정균을 잡겠다는 각오로 미친 듯이 달린 유한이었다. 비록 스쿠터라 하나 최고 속도를 내기 전에 쫓아가 잡는 것은 가능한 일.

벌떡 일어난 김정균은 유한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송태수와 곽대발 등 극기도 유단자들에게 얻어터지며 배워 온 유한에게 김정균의 어설픈 펀치는 솜방망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이자식이 어디다대고 주먹질이야?” 

“컥!”

유한의 야무진 주먹이 김정균의 얼굴로 날아갔다. 날카로운 소리를 울리며 날아간 주먹은 둔중한 타격음을 울리며 우뚝 솟은 콧대를 납작하게 주저앉혔다. 

"크악! 내 코! 사, 사람살려! 경찰불러! 경찰!” 

"그래, 불러라. 도둑놈의 새끼야! 누가 쇠고랑 찰지 내기 한번 해보자!”

김정균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도움올 요청했지만, 유한 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두 번째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크헉! 꺼…… 꺽!”

복부에 정확히 꽂힌 주먹은 김정균의 숨통을 꽉 막아 놓았다. 낯빛이 파리해진 김정균은 그 자리에 그대로 거꾸러졌다. 

"뭐야? 왜 싸우는 거야?" 

"글쎄. 축제 이벤트인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지만, 유한은 김정균의 멱살을 움켜잡아 일으켰다.

단 두 방에 끝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해킹으로 입은 피해와 스트레스를 풀자면 하루 종일 두들겨 패도 충분치 않을 것이다. 

그런 그의 눈빛을 읽은 김정균이 다급하게 외쳤다. 

“자, 잠깐! 난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이 도둑놈의 새끼! 어디서 계속 발뺌하고 있어?"

"난 아냐! 선배가 꾸민 짓이야. 선배가 시켰다고.” 

그의 말에 유한이 세 번째로 날리려던 주먹이 멈첫했다. 

"선배라면 드림맥스의 손석진 씨를 말히는 거야?" 

"그래, 손 선배가 네 캐릭터를 해킹하라며 인스펙터 해킹 프로그램까지 줬어."

증거도 드러나고, 문자 그대로 박살(牌殺)당할 위기에 처한 김정균은 자신이 살기 위해 배후의 인물을 털어놓았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던 것. 유한은 치켜든 주먹을 내렸다. 그러나 김정균의 역살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따라와, 인마.”

자백을 듣긴 했지만, 보다 자세한 것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유한은 김정균을 끌고 레볼루션 동아리방으로 되돌아갔다.

드디어 바츠의 해킹범을 잡았다. 힌트는 해킹범이 건 한 통의 전화였다. 유한은 통화 음성 파일에서 신라 대학교 구내방송을 분리해 들었을 때, 해커가 분명 신라 대학교에,그것도 전에 갔던 해킹 동아리 레볼루션에 있다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바츠의 해킹은 손석진과 관련이 있고, 레볼루션은 그와 깊은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해킹범인 김정균을 잡을 수 있었고, 배후에 손석진이 있다는 것도 밝혀냈다. 이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면.......

"왜 바츠를 해킹했지?"

유한은 레볼루션 동아리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김정균에게 그것을 따져 물었다.

손석진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고, 또 자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는 것은 추측할 수 있었지만, 아직 자세한 사정은 모르기 때문이다.

"난 몰라. 손 선배가 시킨 거니까 선배에게 물어봐.”

김정균은 모든 것을 손석진에게 떠넘겼다.

하수인에 불과한 그의 입장에선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유한은 김정균의 그런 비겁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의 소중했던 캐릭터를 지웠단 말이냐?”

"나는 선배가시켜서…….”

끝까지 변명하던 김정균의 복부로 유한의 주먹이 날아 들었다. 김정균의 몸이 기역 자로 꺾어지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커억!”

"넌 선배가 시키면 사람도 죽일 거냐?"

“끄으윽! 그건 그냥 캐릭터니까….”

변명을 내뱉던 김정균은 황급히 말문을 닫았다. 유한이 캐릭터 바츠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시 주먹이 날아들 걸 생각하니 눈 앞이 깜깜해졌다. 그러나 유한은 그저 김정균을 노려볼 뿐이다. 

"바츠는 소중했어, 지금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귀한 게 있다는 걸 안다. 

"네가 바츠를 없애 버려서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덕분에 변할수 있었지. 그리고 잊어버렸던 걸 다시 알게 되었다.”

하나보단 여럿이 재미있다는 걸 알았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짓밟혀 막장이 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예전보다 훨씬 즐겁게 생활할 수 있게 됐고, 미래도 생각하게 되었어.” 

"그,그럼 오히려 잘된 거네?" 

김정균은 유한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유한은 김정균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우곤 말했다.

"그래, 오히려 잘됐지. 고마워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바츠를 지워 버린 건 용서할 수 있어 그런데!” 

유한은 갑자기 언성을 드높였다. 깜짝 놀란 김정균의 눈앞에 이글거리는 유한의 눈빛이 보였다.

“계속 사람을 노리개 취급했어. 그리고 지그를 지우겠다고 협박했지.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바츠는 몰라도 지그는 절대 지워져선 안 된다.

자신을 변화시킨 계기가 된 캐릭터였고. 채린올 비롯해 여러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존재였다.

그 지그에 손대려 했던 것은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봐. 난그저…"

“입 닥쳐. 너한테 듣고 싶은 말은 더 이상 없으니까.”

불끈 쥔 유한의 주먹이 김정균의 얼굴로 날아갔다.

하수인에 불과한 이놈은 바츠를 해킹한 이유를 모른다. 고로 김정균에게 더 이상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최소한 김정균이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 한 마디 라도 했으면 이렇게 때리고 또 때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놈은 끝까지 발뺌한 것도 모자라 도망을 치고,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만 하는 비겁한 녀석이었다.

그렇기에 유한은 연달아 날아가는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컥! 살려 줘! 다시는 안그럴..... 크악!"

"입 닥치라고 했지!”

"크어억!”

블라덱은 박살이 나는 김정균을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원래 그도 바츠 해킹범과 대면하면 두들겨 팰 생각이었다. 놈 때문에 유한에게 맞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러나 지금 김정균을 보자니 불쌍해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예전에 유한을 처음 만났을 때 진탕 두들겨 맞던 자신의 모습이랑 지금 녀석의 모습이 겹쳐 보인 탓이다. 

'그래도 말리고 싶진 않아.’ 

어쨋든 터져도 싼 녀석이었다. 블라덱은 김정균에게 손대는 대신, 보다 이득이 될 것들을 챙겼다. 김정균의 컴퓨터에는 그런 게 가득 들어 있었다. 해킹 프로그램을 비롯해, 희귀하고 중요해 보이는 데이터들까지.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순 없잖아, 히히힛!’ 

블라덱은 김정균의 컴퓨터에 들어있는 프로그램과 데이터들을 갖고 온 노트북에 죄다 복사해 넣었다.

그렇게 조커가 후배를 위해 남긴 희귀 아이템들은 유한의 동료 블라덱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드림맥스 고객상담실.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던 여직원은 전화벨이 울리자 잽싸게 수화기를 들었다.

"네, 고객을 위해 항상 봉사히는 주식회사 드림맥스입 니다.무엇을도와드릴...."

"입 닥치시고 손석진 씨나 바꿔 주시죠.” 전화를 건 고객은 다짜고짜 개발실장인 손석진을 찾았다.

이런 경우는 혼하지 않아서 여직원은 당황했지만. 여전히 상냥한 말투로 응답했다. 

"고객님, 무슨 일이신지 말씀하시면 저희가 알아서…….”

"고객 말씀 씹는 게 고객을 위해 항상 봉사히는 드림맥스의 자세인가요? 닥치고 손석진 씨나 바꿔 줘요.” 

"고객님, 죄송하지만 상담은 저희 쪽 업무입니다.” 

"빨리 바꿔! 계속 내 말을 씹으면 게임 업계에서 드림맥스 간판 내려가는 수가 있어!” 

여직원은 기가 막혀 대꾸할 수가 없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별별 사람들에게 전화가 다 온다. 

온갖 욕설과 협박이 날아들지만, 이렇게 강경하게 희사 망하게 만든다 말하는 사람의 전화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자신으른 감당이 안 된 여직원은 상담실장인 양호식을 바라보았다.

심상찮은 예감을 받은 양호식은 여직원 앞으로 온 상담 전화를 자신이 돌려받았다.

“고객 상담실의 실장 양호식입니다. 고객님, 어떤 문제 때문에 그러십니까?"

"하! 이거 아르페디아온라인이 아예 거덜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구먼.” 

"고객님, 대체 무슨말씀인지.." 

“상담실 전화랑 공식 홈페이지를 폭주하게 만들 수도 있는 사안이니까 잘 생각하고 결정하시지. 한 번만 더 씹으면 정말 터트려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뭐야, 이건?'

장난 같긴 한데, 왠지 무시하기 힘들었다. 아르패디아 온라인을 거덜나게 만들겠다느니, 상담실과 공식 홈패이지를 폭주하게 만들겠다느니 하는 것을 보면... 

'설마해커?'

드림맥스는 아직 당한 바가 없지만, 몇몇 다른 게임사들은 전례가 있었다.

해커가 게임사 데이터베이스를 공격하겠다는 뉘앙스의 협박 전화를 하고, 공격을 무마하는 대가로 거액의 현찰을 요구하는.

아무래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양호식은 상대에게 장시 기다려 달라 양해를 구하고 개발실장인 손석진에게 화상통신을 연락했다. 

"무슨 일입니까?"

"손 실장님. 해커로 추정되는 인물이 손 실장님과 통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해커로추정된다고요?"

양호식은 상대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손석진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손석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에게 연결하십시오. 제가 타이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양호식은 인스펙터를 만든 손석진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손석진이 건방진 해커 녀석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줄 것을 기대하며 상담 전화를 손석진 앞으로 연결했다.

"드림맥스 개발실장 손석진입니다." 

"오호, 정말 연결해 줬네. 이참에 아예 떠벌릴까 싶었 는데 말이야."

전화기를 든 손석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귀에 익은 것이다. 

"유한군입니까?"

"그래요, 접니다. 휴대폰은 안 받으시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전화를 한 겁니다."

"미안합니다. 차기 업데이트 작업에 몰두하느라 전화가 온 줄 몰랐어요." 

수신음을 진동으로 해 둔 원인도 있었다.

하지만 손석진은 이러한 점들을 떠나 유한이 자신을 찾고, 또 드림맥스 간판을 내리겠다고 옥박지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게 있으니 신라 대학교 레볼루션 동아리방으로 좀 와주시겠습니까? 저도 여기 있거든요."

불길한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는 유한이 지금 신라 대학교에 있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는 게 어떤 의미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참에 떠벌리겠다는 대목에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 

"알겠습니다.곧 나가도록 하죠."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부사장 정경욱이 손석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차기 업데이트 개발을 진두지휘하던 손석진이 갑자기 자리를 뜨려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어딜가는건가?" 

"결판을 지으러 갑니다.” 

"결판이라니?"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면 했지만. 분명히 정리해야 할 일이지요."

손석진은 그렇게 응답하고 개발실을 나갔다. 어깨에 힘이 빠져 있었던 손석진은 길게 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당당히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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