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철십자 길드의 몰락 (123/143)

철십자 길드의 몰락

철십자 길드의 몰락

저녁 시간.

 유한은 동생 유현과 함께 버추얼 에이지 방송올 보고 있었다.

지금 방송에서는 오늘 새벽 아르페디아 서쪽 사막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대승의 동영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와! 대단합니다. 이정민 씨, 이것이야말로 한국 유저의 저력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단합한 유저들의 용기도 놀랍지만 아르페디아 대륙을 수호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리저드맨들의 모습도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누가 이들을 몬스터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유저들이 유한을 둘러싸고 환호성을 지르는 것으로 동영상이 끝났다. 이정민과 미루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전투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논했다.

[이번에 골드윙 길드의 대군이 침입한 건 예상외의 사건 이었는데요, 원래 그들은 대규모 침공을 부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습니다만, 기만 술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골드윙 길드뿐만 아니라 철십자 길드와 비밀 동맹을 맺은 흑룡방과 이즈모 번도 기습적으로 아르페디아에 대군을 파견했으니까요]

[하지마 모두 물러나지 임았습니까?]

[에, 흑룡방과 이즈모 번의 경우는 갑자기 현지의 사정이 달라졌기 때문인데.]

이정민의 말과 함께 화면에는 흑룡방의 선단이 비춰졌다. 그들은 최가장 길드의 소규모 선단과 대치하다가 미련없이 뱃머리를 돌렸다.

그 광경을 보던 유한은 동생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얼마만큼 성과를 거뒀냐?"

“이쪽에서 미리 일러 줘서 백천맹 내에서 문파들간 협력이 빨랐어. 덕분에 사흑련이 점거하고 있던 지역의 삼 할을 빼앗는 데 성공했지. 지금 흑룡방주하고 사흑련주 하고 펼펄 뛰고 있을 거야.”

흑룡방의 본거지를 빼앗는 데는 실패했지만, 상당한 타격을 주었단다. 거기다 사흑련 소속의 소규모 사파 길드 여러 곳을 무너트리는데 성공했고, 분타들을 점령해 알짜배기 지역들을 먹어치웠다.

덕분에 유현, 아니 얀의 쪽지함은 미어터질 지경이 되었다. 미리 정보를 알려 줘서 고맙다고 백천맹 쪽의 북미 유저들이 산더미 같은 쪽지를 보낸 것이다.

"일본,아니 후소 쪽도 사정이 비슷하겠지?"

"오다 아저씨가 메일 보냈는데, 이즈모 번 망했다더라.”

"헉! 그정도야?"

후소 대륙의 5대 대영주들 중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던 것이 이즈모 번이었다. 그런 이즈모 번이 원정 한 번 잘못했다 완전히 막장의 길을 걸었다.

이즈모 번을 치기 위해, 오와리 번의 대영주 오다는 예전의 숙적이었던 최가장을 끌어들였다. 이미 유한에게 해외 거대 길드의 침입을 막아 달라는 요청을 받은 최가장 길드였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보유한 선단은 회군하던 이즈모 번 선단을 해상 에서 격파했고, 이후 최가장의 길드장 최강현과 후소의 4 대 영주들은 거대한 이즈모 번의 영지를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

“이즈모 번 영주 피토하겠네.”

"크크크, 배 째고 계시단다.”

미즈히데는 후소 제일의 영주였을 뿐만 아니라 800만 일본 유저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랭커였다.

그런 그가 허망하게 영지를 잃었고, 그 결과 휘하에 두고 있던 유저들과 수많은 NPC 영민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데 큰 충격을 받은 미즈히데는 계속 할복 플레이만 하고 있다고 한다.

[아,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철십자 길드와 동맹을 맺고 얼음의 바다를 넘어 아르페디아 대륙에 발을 딛은 이모탈 길드가 안듀라스의 공격을 받고 패퇴했다 합니다.]

방송에선 또 다른 동영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노스아크에 있던 유저가 직접 찍은 동영상에는 수천 명

의 중국 유저를 동태로 만든 안듀라스의 무시무시한 모습이 찍혀있었다.

그가 토해 낸 아이스 브레스에 한 번에 수십 명의 유저들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고, 용언으로 전개한 블리자드 마법에 수백 명이 얼음 조각으로 변했다.

그 정도라면 어떻게든 중국 유저들이 극복해 냈을 것이다. 그들은 쪽수도 만만찮거니와 레벨이나 스킬 랭크도 높았으니까.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안듀라스가 혼자서 공격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수많은 얼음의 정령들을 소환하고, 프로스트 자이언트, 아이스 나이트라는 고레벨 몬스터들까지 끌고 나왔다.

 안 그래도 극강을 자랑하는 드래곤이 강력한 수천의 군세까지 동원하니 중국 유저는 당할 길이 없었다. 결국 그들은 얼음 바다 너머의 헬라드 대륙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안듀라스 저 자식 카세라스보다 더 센 거 아니야?'

 이미 안듀라스에게 처리하라 언질을 준 유한이지만, 동영상을 보고는 기가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카세라스는 바츠로 혼자 잡을 수 있었고, 다른 유저들도 길드 단위로 덤벼서 쓰러트리기도 했다.

그러나 저 안듀라스는 타의 추종올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부하들을 떼거지로 불러내 싸우게 만드는 걸 보면 전투에 대해서 무척 해박해 보였다.

대체 갈리는 무슨 깡으로 저 안듀라스를 쓰러트리겠다고 운운하는 것인지. 유한은 갈리를 뜯어말리길 정말 잘했다 싶었다.

"수고했어, 형. 형 덕분에 이제 아르페디아는 평온하겠네.”

"인마, 아직 전쟁 안 끝났어. 철십자 길드를 박살 내야 끝나는거야.”

"그래서 또 접속하려고?"

“물론이지 넌접속안할거니?"

 "난 내일 세라랑 데이트 갈 거라서 일찍 잘 거야.”

 염장을 지르는 동생이 조금 얄미웠지만, 유한은 딱히 뭐라지않았다. 유현이는충분히 해 줄 만큼 해줬다.그 점에 대해서 유한은 만족하고 또 고마워했다.

쾅!

어찌나 강하게 내리쳤는지 탁자가 두 동강이 나서 부서 졌다.

그 정도로 분이 풀리지 않은 베히모스는 부서진 탁자를 발로 차고 짓밟았다.

“제기랄,그 망할자식!”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입에서 식식 거친 숨이 튀어 나왔다.

그가 그렇게 분을 참지 못하는 건 계획하던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해외의 거대 길드들이 아르페디아를 침공하면 그 기회를 틈타 적들을 확 다 밀어 버리고, 대륙 통일을 이룰 셈 이었는데, 제대로 방해를 받고 말았다.

“이자식!감히 날 가지고놀아?"

 베히모스는 이번 일의 실패가 다 강유한,대장장이 지그 때문이라 알고 있었다.

녀석이 휘하의 대장장이들을 이끌고 다이노스 왕국에 가서 리저드맨들을 무장시켰다. 그리고 웨스턴에서 오는 골드윙의 본대를 박살냈다.

'이모탈 길드 건도 놈의 수작이겠지?'

게임 방송에는 골드윙을 무찌른 유한이 막판에 안듀라스와 만나는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 지는 알려진 바 없으나 북쪽에서 오다 패퇴한 이모탈 길드와관련 있는듯했다.

어쩌면 흑룡방이나 이즈모 번이 회군한 것도 그놈이 벌인 수작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 자세히는 몰라도 그놈의 수작이 분명할 것이다.

거기다 놈은 참전 호소문이라는 것을 뿌려 자신들의 비밀 동맹을 공개해 버리고 유저들의 참전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도대체 이 자식이 우리 비밀 동맹은 어떻게 안 거지?'

가장 궁금한 점은 그것이었다.

혹시 길드 내부에 그놓과 내통히는 녀석이 있는 건 아닐까? 단순히 의심한 거라면 동맹 길드에서 보내온 본대를 모두 저지해 냈을 리 없다.

“노벨 이 자식 어디 갔어?"

베히모스는 가까이에 있던 길드원에게 윽박질렀다.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길드원은 대충 대꾸하고 말았다.

“아직 접속 안했나 보죠.”

"제길! 전쟁 중에 길드장이 접속 안 하면 어쩌겠다는 거야!”

지금 베히모스가 이끄는 마노스 제국 1군은 베레타-브로인 연합군과 상대하고 있었다

초반의 대승 이후, 당황한 베레타 공화국은 브로인 왕국에 원병을 요청했고, 베히모스의 대륙 통일 야욕을 경계한 브로인 왕국이 전격적으로 파병을 결정하면서 그렇게 되었다.

베히모스가 NPC라고 얕보고 있던 게임 내 국가의 위정자들은 그의 판단보다 훨씬 기민하고 똑똑하게 음직이고 있었다. 덕분에 그로지아를 침공한 2군은 그로지아-바르카스 연합군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다.

특히 2군의 진군은 시원찮기 짝이 없었다. 그로지아와 바르카스 두 왕국은 왕가가 사돈지간이라 이전부터 관계가 돈독하고, 군사 동맹을 발 빠르게 결성했기 때문이다

 그 2군의 책임자는 길드장인 노벨이었다. 그런데 지금 노벨에게 쪽지나 귓속말을 보내도 전혀 답신이 없었다 정말 접속을 안 한 모양인데, 이 상황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설마이자식…'

 이전부터 이 전쟁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노벨이다. 혹시 상황이 급변해 버린것을 보고 모든걸 포기해버린 것은 아닐까?

"베히모스 있나?"

  하얀 정장을 입은 유저가 베히모스가 머무는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바로 골드윙의 길드장 골드맨이었다-

 웨스턴 최고의 갑부답게 항상 얼굴에 여유가 넘치는 인사였는데 하루 사이에 완전히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요?"

“길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난 이만 여기서 발을 빼 겠네.”

“뭐라고?"

 베히모스의 언성이 높아졌다. 다시 지원을 못해 줄 망정, 완전히 발을 빼겠다니. 그럼 선발대로 온 머스켓티어들, 골드윙에서 ‘총사단'이라 부르는 골드맨의 친위 유저 들까지 모두 데려간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제길!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 그래야 맞지만… 아무래도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왜? 본대가 패퇴당한 것 때문에? 까짓 거 필요 없어! 우리 전력으로도 아르페디아를 통일할 수 있으니까!”

계획은 뒤틀렸지만, 대륙 통일에 대한 베히모스의 야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해외 길드의 지원을 못 받으면 거대 키메라를 더 생산하고, 제국에서 전비를 뽑아 용병 유저를 고용하면 그만이다.

세금 내는 NPC들이 불만을 토하긴 하겠지만 대륙 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수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미안하네.”

“어디 당신 멋대로 해 봐! 나중에 딴 소리해도 안 들어 줄테니까 맘대로 해보라고!”

 베히모스의 외침에 골드맨은 아무런 말없이 막사를 나가 버렸다. 얼마 후 골드맨과 골드윙의 총사단이 군단을 이탈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다른 해외 길드의 선발대는?"

 베히모스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마주친 길드원은 고개를 숙이며 보고를 올렸다.

"흑룡방 쪽은 찬드라 대륙에서 연락을 받고 다소 소요가 있습니다. 아즈모 번은 번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유저들이 개별 행동을 하려는 중입니다.”

“이즈모 놈들은 돈이라도 쥐어 줘서 이탈을 막아. 그리고 2군의 이모탈길드는 어때?"

 "그쪽은 별 동요는 없지만, 지금 길드장님이 부재라"

 "미치겠군.”

답답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지만. 베히모스는 일단 눈앞에 있는 성을 공략하기로 했다.

베레타-브로인 연합군이 지키고 있긴 했지만,별로 많은 숫자도 아니라 점령이 그다지 어렵진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승리가 필요해.’

흔들리는 길드를 바로잡고, 마노스 제국군의 사기를 드높이려면 승리를 거두는 수밖에 없다. 작은 승리부터 시작해 몇 차례 승전을 계속 거두면 오늘의 비보로 인한 영향을 깨끗이 씻어버릴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일단 전투를 속개하고 유저들을 몰아치는 것도 중요하다. 가만히 있으면 별별 생각이 다 날 것이기에 딴 생각 못하도록 계속 싸우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베히모스의 이런 계획은 성에서 빨간 십자가 깃발을 올리면서 틀어지고 말았다. 

"저건 뭐야?"

"앗! 저 사람은……"

베히모스의 부관이 성문을 열고 나오는 이를 보고 놀랐다.

“누군데? 누구기에 그렇게 놀라?"

 "김요셉입니다! 아르페디아 온라인 지존인!” “지존? 1위가 저작자란 말이야?" 

이름을 들어 보긴 했지만, 실제로 대면히는 건 처음. 얼마 후 김요셉이 베히모스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비무장이었고, 복장도 웬만한 레벨의 성직지자들은 입지도 않는 평범한 사제복이었다. 

 "무슨 일이요?^

“아, 님이 베히모스군요. 그럼 이야기가 좀 빠르겠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요?" 

베히모스의 말투는 다소 퉁명스러웠다 그의 적대감을 느졌는지 김요셉의 눈빛도 조금 싸늘해졌다.

"저 성엔 지난번 전투에 실려 온 부상자들이 많아요 현재 내가 소속된 '성군 동맹’ 길드에서 그들을 치료하고 있지요.”

성군 동맹 길드는 규모는 크지 않지 않은 길드였다 그러나 길드원이 전원 성직자로 구성되어 있고, 게임 내에 서 봉사와 구제 활동에 전념해 유저는 물론 NPC들로 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군대를물려 주면 안될까요?뭐 이런 성하나 점령 못 한다고 대륙 통일에 방해는 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는 못하겠는데요"

김요셉의 말이 그다지 틀리진 않았다. 그러나 베히모스는 위신을 생각해서라도 그리할 수 없었다.

저 조그만 성에서 항복을 받아 낸 것도 아니고, 그냥 군대를 물려 우회하면 과연 유저들은 뭐라고 생각하겠는 ? npc 병사들은 황제를 어떻게 보겠는가?

"이봐요, 베히모스 님. 그러지 말고 양보하시죠. 저기 적십자 깃발 안 보여요? 관습상 적십자 깃발이 꽂힌 곳은 공격하는게 아니잖아요.”

"난 그런 거 몰라. 공격 받기 싫으면 항복 문서 갖고 오던가.”

"하하, 난 일개 성직자라서 성주한테 그걸 요구할 자격은안되는데.”

"개수작 말고 꺼져. 지존이라고 뻐기면 통할 줄 알아?"

 두 번이나 거절당하자 김요셉도 마음이 무척 상했다 아니 그런 점들을 떠나서.

"근데 너 왜 그리 말이 짧냐?  나보다 낫살도 어려 보이는 애새끼가.”

"새끼? 누구더러 새끼래? 이거 순 저질이구먼.”

"그래, 나 좀 저질이긴 한데, 너처럼 개짓거리는 안하거든. 코쟁이랑 쪽발이랑 짱깨들 불러서 전쟁놀이 하면 좋나?"

“이게 진짜!”

베히모스는 검을 뽑아 들고 김요셉을 내리쳤다. 단박에 목을 날릴 셈이었는데, 김요셉은 그의 검을 성경책으로 간단히 막아 냈다. 아니, 책을 펼쳐 검을 받아 내고 닫아 버리자 검은 꿈쩍도 하지않았다.

"이, 이게!”

"너 뭐 착각하는 모양인데 레벨만 높다고 랭커 아니다.”

김요셉은 비웃듯이 베히모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봐. 너 다른 톱 10 랭커들 본 적 있냐? 없지. 없을 수밖에. 나랑 걔들은 너같이 레벨만 튀긴 놈은 랭커 취급도 안 하거든, 이 쓰레기 자식아.”

"이이이!"

 베히모스는 분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김요셉의 말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자신은 보통 유저는 잡기 힘든 고 레벨 몬스터를 잡아 본 적도 없고, 상대하기 힘든 벅찬 상대에게서 승리를 거둔 적도 없다.

그저 길드전에 묻어서, 만만한 몹들을 잡으며 레벨을 올렸고, 기사 캐릭터 중에 최고가 되었다.

“고마워해라. 니가 불장난한거 끈다고 엉덩이 무거운 톱랭커들이 납셨으니까."

김요셉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서 외마디 비명이 연달아 울렸다.

돌아보니 거대 키메라를 조종하는 마법사 유저들이 화살에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척 봐도 머리와 심장 등 급소에 맞아 일격에 죽은 듯했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겠지? 이게 아르패디아 최고의 궁수라는 '아르샤' 누님의 실력이다. 너보다 높은 랭커 3위의 유저지.”

일명 스텔스 애로우(Stealth Arrow).날아오는 궤적이 보이지도 않는 화살이다.

화살은 계속 날아왔다.

그때마다 마법사나 지휘관 등, 중요한 유저들이 죽임을 당했다. 연달아 죽어 가는 이들을 보고 유저들은 우왕좌왕했고, NPC들은 두려움에 빠졌다. 그런 그들을 보고 베히모스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뭐하는 거야,멍청이들아! 빨리 공격해! 이놈들이 수작부리는 건 저 성을 공격 못하게 만들려는 거야!”

 "어쭈,눈치는 제법빠르네,” 

베히모스의 일갈에 아직 살아 있는 마법사들은 서들러 거대 키메라를 성으로 돌진시켰다.그런데 성으로 다가가던 거대 키메라 움찔거리며 멈춰 섰다. 아니 멈춰선 것뿐만 아니라 귀를 막고서 괴로운 듯 몸부림을 쳤다. 원인은 성벽 위에서 만돌린을 튕기는 청년 때문이었다. 그의 연주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초음파를 발생시켜 몬스터를 제압하는 음유시인의 히든 스킬 '울 트라소닉 웨이브(Ultrasonic Wave)'였다.

제 아무리 막강한 전투력을 가진 거대 키메라라 해도 고막이 쇠로 되어 있지 않는 이상 이 공격에 당할 재간이 없었다.

"저놈이 랭킹 7위 카셀이다. 음유 시인이라고 물로 보는 멍청이들이 많은데, 저놈이 맘만 먹으면 내 자릴 빼앗고도 남지.”

"너도 들어 본 적은 있겠지. 저놈이 사운드 블라스트 (Sound Blast)라는 스킬로 길드 하나를 전멸시킨 적이 있다는 거 말이야.”

그 이야기는 베히모스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요셉이 카셀이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흠칫 놀란 것이다.

"자, 여기서 다 죽을래? 아님 개망신 조금만 당하고 물러날래?"

 베히모스는 아무리 톱 10의 랭커라지만, 겨우 셋이서 자신이 이끄는 대군을 상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절의 말을 내뱉으려고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1위 랭커의 기세가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조금만 말을 잘못해도 아주 잡아먹을 기세.

“야, 이 새꺄. 대가리 굴리지 말고 빨리 결정해. 난 인내심이 별로 없어.”

김요셉이 검을 끼운 성경책을 비틀자 검에서 구슬픈 파열음이 울리며 칼날이 똑부러졌다.

"할 수 없군. 절대 언령으로 죄다 가루로 만드는 수밖에.”

"무, 물러나겠다!”

"이 애새끼가 진짜.... 내가 니 친구냐? 앙?"

"물러나겠습니다!”

절대 언령 스킬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 베히모스는 철군올 결정했다. 꾸물거리다간 저 괴수나 다름없는 성직자에게 거대 키메라고 병사들이고 모조리 흙이 되어 버릴 것이다. 

'제길! 두고 보자 이 자식들!’

대륙 통일만 완수하면 새로 레벨 업에 도전할 것이다. 실력도 더 기르고, 하늘의 문인지 별빛인지도 찾아 지금 보다 훨씬 더 강해지리라 다짐했다. 그때 오늘 받은 수모를 돌려주리라. 베히모스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골드윙과 전투 이후, 정상 조업을 선언한 지그 철공소는 고급 무구와 블랙 아이언, 제련강과 에르젠 합금을 생산한다고 여념이 없었다.

제련강은 지그 철강 조합원들에게 넘겨져 무구로 만들 어졌고, 이것은 리지스가 여러 나라에 비싼 값으로 판매했다.

블랙 아이언의 경우는.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저번에 거대 키메라에게 패배했다지만 그나마 거대 키메라에 맞설 수 있는 병기는 블랙 아이언 뿐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공식 홈페이지에 이런 게시물까지 올라올 정도.

 내가 요새 아르폐디아 온라인을 하면서 생각한 건데

우리 길드도 블랙이이언이 없으면 안될것같아.

근데 우리 길드는 돈이 없잖아ㅠㅠ

우린 안될거야 아마...

아무튼 지그 철공소는 각 길드와 국가에서 들어오는 주문을 맞춘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조업을 하고 있었다.

“후후후, 베히모스에게 고마워해야겠는걸. 이러다가 금방갑부되겠어.”

리지스가 기득 쌓인 돈 자루를 보며 키득거렸다.

베히모스의 대륙 모든 국가에 대한 선전 포고와 전쟁 초반의 선전은 여러 나라긴장시켰고, 군사력 증강올 유도했다.

그 덕분에 지그 철공소와 지그 철강 조합, 그리고 그들과 동업하는 리지스는 사상 유래 없는 호황올 누리고 있었다.

"지금 많이 벌어 둬. 곧 있으면 철십자 길드는 끝장 날 테니까”

“으으윽.”

유한의 말에 리지스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실제 초반의 맹렬한 기세와 달리 마노스 제국군온 대륙 통일을 향한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철십자 길드의 내부 사정 때문이었다.

해외 거대 길드들의 원정 실패와 선발대의 귀국은 마노스 제국군의 전력 약화로 이어졌다.

거기다 지존 김요셉과 충돌했을 때 베히모스가 보인 행동은 여러 사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톱 랭커들이라지만, 고작 세 명에게 밀려서 철군하다니.”

"기싸음에서 밀린 거야. 차라리 깨지더라도 악을 쓰며 달려들어야 하는데, 베히모스는 손해 보려는 성격이 아니거든.”

"깡이 없어, 깡이!”

좋게 말해 안전제일주의지만, 베히모스의 그런 성격은 번번이 중요한 순간에 일을 그르쳤다.

아무튼 덕분에 철십자 길드의 대륙 통일의 가능성은 낮아졌다. 초반에 기대하고 재결집했던 길드원들도 다시 길드 일에 발을 뺐고, 이는 마노스 제국군의 약화에 지대한 공헌올했다.

현재 전쟁은 교착 상태에 놓여 있었다.

베히모스가 이끄는 마노스 제1군은 베레타 영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마노스 제2군은 이미 그로지아 영토에서 물러나 국경 방어에만 전념하고 있는 상태였다.

상황이 이리되자 초반 승리에 고무되어 있던 마노스의 백성들도 전쟁에 흥을 잃었다. 거기다 제국군의 전과도 시원찮고, 공역과 세금이 늘어나자 백성들의 불만도 무척 높아졌다.

‘이제 조금만 상태가 더 나빠지면 빈집 털이 작전을 시작할 수 있겠군.’

“지그야, 손님.”

채린의 외침에 유한은 응접실로 갔다.

그런데, 응접실에 와 있는 손님을 보고 유한은 얼굴올 확 구기고말았다.

"여, 안녕.”

"호호호, 우릴 기억하려나 모르겠네.”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손님이라고 찾아온 것은 유나와 리트만. 이들과는 예전에 플레임 마운트에서 맺은 악연이 있었다.

대체 이 군상들이 이곳에는 왜왔을까.

"댁들이 여긴 웬일이야? 설마 칠십자 길드에서 블랙 아이언을 사러 온건 아닐 테고.” 

"호호, 우린 이제 철십자 길드원이 아니야.” 

"맞아. 베히모스가 멋대로 굴어서 짜증이 나서 말이지 ”

힘들게 해외 거대 길드와 협상을 했는데 제대로 못했다고 구박만 들었던 그들이었다. 앙심을 갖고 있던 둘은 결국 길드원들이 하나들 발올 뺄 때 철십자 길드에서 탈퇴 했다.

"아, 그러세요? 근데 여긴 왜 왔수? 날 잡아다 끓는 쇳 물에 발가락부터 하나하나 집어넣으시려고?"

 유한의 빈정댐에 유나가 움찔했다. 그녀는 예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로지아에서 배틀 폴로 대회를 했던 때 였던가?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그런 말을 했었다. 그런데 지그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나, 난 그저 이쪽에 좋은 정보를 주려고 찾아왔을 뿐 이야.”

“그래,우린 옛날의 악연을씻고싶어.”

 “좋은정보?"

유한이 흉미 있는 눈빛을 보이자, 유나는 은근히 제안을했다.

"아주 좋은 정보니까 블랙 아이언 한 대 정도의 가치는 있다고 보는데."

"맘에 들면 두 대도 줄 수있으니 어디이야기 해 봐"

 귀가 솔깃해진 유나는 곧장 유한에게 철십자 길드의 중요 정보를 떠벌렸다.

“요새 길드장인 노벨이 통 게임에 접속올 안 해 일설 에는 발덴에서 초보 전사로 새로 시작한다는 소문도 있지만, 아무튼 요새 길드 일에 신경올 쓰지 않고 있어!”

"베히모스는 노벨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그런거 라고 길드원들을 속이고 있지만..." 

유한의 눈빛이 번득였다. 유나의 말대로 이건 좋은 정보였다. 길드장의 부재가 길다는 것은 그만큼 철십자 길드의 관리가 안 된다는 뜻이고, 길드의 중요한 전력이 사라졌다는 걸 의미했다.

‘빈집 털이 작전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는군.

“어때? 정말 팬찮은 정보지? 네가 철십자 길드에 안 좋은 감정이 있다는 걸 알고 일부러 찾아와서 가르쳐 주는 거야.”

안 좋은 감정이 있지 않다면, 지그 쪽에서 철십자 길드의 대륙 통일 계획을 방해하지 않았올 것이다. 

"그럼 블랙 아이언을주는 거지?"

 유나는잔똑 기대어린 눈빛을했다. 옛 악연을 종식하고 새로운 시작올 위해 지그와 거래를했다. 지그에게 블랙 아이언을 받게 되면 직접 길드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가능할 터.

 "따라와”

유한이 응접실을 나서자 유나와 리트만도 조르르 따라 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철공소 근처에 있는 공터였다. 그곳에는 빙의 작업까지 마친 블랙 아이언들이 블랙의 지도하에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주변의 유저와 NPC들은 그것을 재미있게 구경했다. 유한은 그렇게 구경하는 NPC들 중에 한 사람에게 공손히.말을건넸다.

"폐하, 혹시 폐하께서 아시는 이들이 아닌가 싶어서 소개하려고 데려왔습니다." "응? 누구말이냐?"

 유한이 말을 건넨 건 바로 미네르바 여제였다. 멋도 모르고 따라왔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유나와 리 트만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미네르바 여제가 이곳에 있었다니! 

"저 녀석들이지요. 예전에 철십자 길드였다는데. 혹시 폐하께서 잘 아시지 않는지?"

 미네르바는 유한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돌처럼 굳어버린 유나와리트만이 서있었다.여제의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알다마다.내 이 역적놈을 어찌 모를까!” 

“저,저희는 그냥 베히모스가 시켜서...... 히익!"

 유나와 리트만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발을 빼려 했다 그러나 뭔가 낌새를 챈 블랙이 둘의 퇴로를 막아섰다 

 "어떻게할까,후손?"

 유한은 대답하는 대신 미네르바 여제를 바라보았다. 마치 여제의 원대로 해주겠다는듯. 미네르바는 아주 매몰차게 말했다.

 "다져라. 절대 쉽게 죽게 해서는안되느니라"

"들었지?잘근 잘근 다지랍신다.”

 "오케이!” "까아악!”

 날아드는 블랙의 발길질이 그들의 비명을 집어삼켰다. 길드를 배신하고 일신의 이득을 위해 유한을 찾아왔던 두 사람은 아무런 소득도 거두지 못했다

어두운 밤.

마노스 제국의 황도 으슥한 곳에서 빛이 번득였다

아크 위저드 아스란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온 이들은 유한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마노스 제국의 원래 주인인 미네르바 여제였다. 

"정말 짐의 충신들을 살릴 수 있느냐?"

 "하기에 따라서요.”

 유한은 가스톤의 옆에 있는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가스톤과 친분이 있는 네크로맨서로 지난번에 철공소 NPC들의 영혼을 봉인해 줬던 인물이었다.

그는 이미 이곳에 오기 전 언질을 받았기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잘 알고 있었다. 

"오라! 모여라, 원혼들이여!”

 그가 네크로맨서 특유의 스킬을 발동시키자 주변에서 검은 연기들이 스르르 모여들었다.

 바로 지난번 베히모스의 반란 사건 때 죽음을 당한 NPC들의 원혼이었다. 당시에 죽은 원혼들이 어찌나 많은지, 주변에 검은 안개가 낀 것처럼 자욱할 지경이었다. 

'이만하면 모일 만큼 모인 것 같군.’ 그리 판단한 유한은 인벤토리에 넣어 두고 있던 로므나의 성수를 원혼들에게 뿌렸다. 저번에 NPC들을 살리고 적잖게 남았던 로므나의 성수는 이번에 죽은 마노스의 NPC 들을되살렸다. 

“오오,내가 다시살아났다.”

"여제 폐하!”

"소신들이 어리석어 그만..."

병사들은 되살아난 것에 기뻐 환호성을 질렀고 기사와 귀족들은 미네르바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지금은 이럴 때가아니니라. 역적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되찾아야 하느니라.” 

"소신들이 앞장서겠습니다.”

 황도는 넓다. 그런 황도에 자리 잡은 여러 기관과 관청을 장악하려면 왠만한 수로는 어림도 없는 일

무엇보다 황도나 황궁의 지리를 잘 아는는 이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유한은 마노스 제국의 NPC들을 되살린 것이다.

“엔스 넌 치안청과 황도 성문을 맡아 줘. 블랙 넌 다른 녀석들이랑 같이 황도에 있는 거대 키메라를 처리하고"

 "오케이! 이 몸에게맡겨만 둬.”

 "후손, 고깃덩어리들은 우리가 다져 놓을 테니 염려 마라"

유한은 레드 타이거 용병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채린의 요청으로 이번 작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관장님은 근위 사령부를 장악해 주세요. 가능한 빠른 시간에 처리해야 됩니다."

“흥,걱정말고 너나 잘해라.”

길포드는 코웃음을 치곤 부하들과 함께 곧장 떠났다.

 유한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미네르바 여제를 호위하며 황궁을 장악하기로했다.

그렇게 빈집털이 작전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치안청과 성문의 장악을 맡은 옌스와 블루 라이언스들이었다.

"서둘러! 꼰대들에게 지면안돼!”

옌스는 치안청 문 앞을 지키는 병사들을 단번에 섬멸하고 안으로 난입해 들어갔다. 안에는 NPC가 아닌 철십자 길드원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옌스의 상대는 아니었다.

"침입자다! 경보 울려!”

최단 시간에 치안청을 차지한 엔스와 블루 라이언스들 이었지만, 그만큼 이목을 끌고 말았다.

치안청에 있던 길드원들의 경보를 받고,황도 각지의 분견대에서 병력을 파견했다.

"뭐야? 너희들은 어디소속이냐?"

분견대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다급히 치안청으로 가던 철십자 길드원은 엉뚱한 NPC들을 만났다. 분명히 마노스 제국의 기사와 병사 차림을 하고 있는데,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우린 여제 폐하의 군대다. 반역자 베히모스를 처단하기 위해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

“뭐, 뭐라고?"

"쳐라! 역적섬멸하라!”

 황도 곳곳에서 부활한 마노스 병사들이 전투를 벌였다 그사이 치안청을 정리한 블루 라이언스들은 황도의 성문을 장악하고, 미네르바의 생존 소식올 황도에 퍼트리고 다녔다.

"자네 들었나? 미네르바 폐하께서 살아 계시다네!”

 "베히모스가 음모를 꾸며 황위를 빼앗았다는 게야!” 

“이런 죽일 놈! 그럼 우릴 감쪽같이 속였다는 건가!”

 황도 거리에 소식이 좍 퍼지자, 베히모스의 등극으로 몰락했던 NPC 귀족들도 백성들을 선동하며 다녔다.

시간이 지날수록 황도는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되었고, 점점 통제 불능의 상태로 전락했다.

 "훗, 애송이들이 제대로 일을 벌인 모양이군.”

 그쯤 레드 타이거 용병대는 근위 사령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베히모스가 개편한 근위 사령부는 꽤 강력했지만, 길포드를 비롯해 전투 경험이 능숙한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상대가 되지않았다.

 "대장님, 정리가모두 끝났습니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 최초의 외인부대원인 카즈마가 끝까지 반항하던 철십자 길드원들을 제압하고 보고했다.

"좋아! 그럼 뒷일은 여제의 신하들에게 맡기고 우린 황궁을 공격한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가 황궁을 공격하자, 당황한 철십자 길드원들은 황도에 있는 거대 키메라를 출동시켰다.

그러나 거대 키메라들은 황궁 근처에 오지도 못했다 블랙이 이끄는 블랙 아이언 부대가 거대 키메라를 공격한 것이다.

“죽어라, 이 더러운 고깃덩어리들아!”

 양산형을 훨씬 뛰어넘는 전투력을 가진 블랙은 거대 키메라를 압도했다.

나머지 블랙 아이언들도 거대 키메라를 상대로 훌륭한 실력을 보였다. 그동안 훈련으로 생전에 인간이었을 때만 큼 창과 검을 능숙하게 사용하게 된 그들은, 거대 키메라의 빠르고 사나운 움직임에 위축되지 않고 적절히 대처하며 처리해 나갔다.

무엇보다 지그 철공소에서 그들 전용으로 제작한 거검 과 장창, 도끼들은 블랙 아이언의 전투력을 훨씬 더 중가 시켜 주었다. 거대한 석궁만 해도 베레타 공화국군에서 시용하는 것보다 사용하기가 간편한데다 위력은 더 강했다.

“제기랄, 빨리 베히모스에게 연락해.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겠어!”

거대 키메라까지 당하는 것올 본 황도의 철십자 길드원은 전선에 있는 베히모스에게 쪽지를 보냈다

“제기랄!”

황도가 습견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베히모소는 황급히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전선의 지휘는 부관에게 맡겨 두는 것으로 해결했지만, 문제는 황도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예전엔 탱커 급의 마법사 노벨이 있어서, 그를 부르면 어디든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노벨은 오리무중이다. 게임 접속도 하지 않고, 현실에서 휴대폰 으로 전화를해도 받지않는다.

"망할! 이대로 황도를 빼앗기면 끝장인데!”

단순한 도적 떼라면 그냥 무시하고 넘길 수 있다. 문제는 이번에 습격한 놈들이 미네르바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쿠데타 이후 사라졌던 미네르바 여제는 블루 라이언스 나 레드 타이거 용병대 같이 만만찮은 놈들을 모아서 나타났다. 거기다 죽었던 여제의 부하 NPC들까지 나타났다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아무튼 미네르바에게 황궁을 빼앗기면 큰일이다. 잘못하면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젠장,서둘러 황도로 갈 방법이…" 

"폐하, 무슨 일이십니까?”

마침 NPC 마도사인 아벨이 베히모스의 막사로 들어왔다 뒤늦게 그의 존재가 생각난 베히모스는 구긴 얼굴을 확 피며 반갑게 맞았다.

 “아벨, 혹시 텔레포트 마법을 쓸 수 있나?"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 번에 백 명올 이동시키는 게 한계입니다. 거대 키메라가 한 마리 낀다면 수송 인원은 삼십 명으로 줄어듭니다.” "괞찬아 그 정도로도 충분해!”

 지금은 서둘러 황궁으로 기는 게 급선무. 베히모스는 서둘러 고레벨의 길드원들과 가장 강력한 거대 키메라를 차출했다. 일단 황궁을 지키며 근방의 지방군을 불러들여 미네르바 일당을 제압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베히모스가 전력을 차출하는 사이, 아벨은 텔레포트 마법진을구축했다.

 "그럼 출발합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그들은 서둘러 황궁으로 이동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황궁은 매우 다급한 상황이었다. 철십자 길드원들과 NPC들이 다급하게 뛰어다니고, 황궁 정문 쪽에서는 문을 부수는 듯한 굉음과 함께 격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정문에서 전투가 벌어진 모양이군 모두 정문의 길드원들올 지원한다!”

베히모스의 명령에 함께 이동한 고레벨 길드원들과 거대 키메라가 정문으로 달려갔다.

그들을 이끌고 가던 베히모스는 아벨이 따라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벨은 도착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베히모스는 길드원들을 먼저 보내고 아밸에게로 다 가갔다.

“왜 우두커니 서 있는 거야? 네 마법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인데!”

"죄송합니다만, 더 이상 당신을 도올수없습니다" 

“그게 뮤슨 소리야?"

베히모스는 영문을 몰라 아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NPC답지 않은 아벨은 지금 너무나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도 조소가 가득 깃든 미소였다.

"제가 당신을 이용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모두 이루었으니까요.”

“뭐라는 거야! 넌 네 주군인 이바니우스 3세의 복수를 한다고 했잖아!”

아직 복수는 이루지 듯했다. 지그 녀석이 다시 기고만 장해설치고 있는 상태니까 말이다

“아, 그 목표 말입니까?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라고?"

베히모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의심받지 않고 당신의 수족이 될 방법이 그뿐이었으니까요. 전 이바니우스 3세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뭐라고? 그럼 넌 뭐야! 정체가 뭐냐고!”

"제 정체라...… 그저 세상에 흔한 나쁜 마도사지요.”

베히모스가 검을 들이밀며 물었지만 아벨은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았다. 바로 그때, 황궁 안쪽에서 폭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폐하의 천하는 끝난 것 같군요. 소인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아벨 너 이 자식!”

아벨이 .달아날 낌새를 보이자, 베히모스는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검은 허공을 베었을 뿐이다. 아벨 은빛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마치 유저가 로그이웃이라도 한 것처럼.

'이게 뭐야. 설마 npc 따위에게 이용만 당한 건가?

어처구니없어 멍하게 서 있던 베히모스에게 비명 같은 고함이 들려왔다.

“습격이다! 황궁 안에서 적들이 나타났다!”

“아쉽지만 할수없지.”

직원들 몰래 로그아웃한 손석진은 입맛을 다셨다 좀 더 놀고(?) 싶었지만 꼬리가 길면 잡힐 수 있었다. 이미 정경욱 부사장이 알고 있지 않는가

“후후후’ 유한군. 전 당신이 얼마나 성장하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입니다. 부디 제 기대를저버리지 마시길 손석진이 NPC 아벨로 분장해 베히모스를 부추긴 이유.그것은 다름 아닌 유한에게 있었다.

"생각 보다 간단한걸?"

입구를 지키는 철십자 길드원들을 해치운 얀은 어깨를 으쓱했다. 마치 이렇게 쉬울 줄은 몰랐다는 듯이.

"그래도 여제가 비밀 통로를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면 이렇게쉽지 않았을 거야."베르디의 말대로였다.

황궁을 장악하기로 한 유한은 미네르바의 도움올 톡톡히 받았다. 미네르바는 자신이 도망쳤을 때 이용한 비밀 통로로 유한 일행을 안내했던 것이다.

이 비밀 통로가 없었다면, 유한 일행은 블랙이나 레드 타이거 용병대처럼 정문을 두들기고 있어야 했을터.

이미 그녀가 도주했을 때 들통난 비밀 통로의 입구에는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베히모스 그놈을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하느니라!”

 미네르는 그날의 굴욕이 떠올랐는지 이를 뻐득 갈았다.

"걱정 마세요. 이 난리가 났으니 그놈도 황궁으로 허겁지겁 달려왔을 겁니다."

유한은 분명 베히모스가 연락을 받고 황궁에 와 있을 거라 판단했다. 안전제일주의 신봉자인 베히모스라면 전선에서의 전투는 접어 두고 황도를 안정 시키려할게뻔 하니까.

“자, 이제 황궁만 남았어요, 힘냅시다.”

 유한 일행이 비밀 통로의 입구를 확보하자, 뒤이어 부활한 여제의 부하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들은 황궁 각지로 흩어져 베히모스의 부하들을 죽이고, 항복하는 이들을 제압했다.

 "베히모스 백작을 찾아라!”

"반역자를 잡아라! 도주하게 둬서는 안 된다!" "저기다! 저기 베히모스가 있다!”

사방에 홀어져 베히모스를 찾던 여제의 부하들으 철십자 길드원들을 이끌고 싸우고 있는 베히모스를 발견했다

"베히모스 이놈! 날 기억하겠나?"

부활한 NPC 기사 중 한 명이 베히모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베히모스의 손에 처음으로 죽임을 당했던 황궁 정문의 책임자 아르핸 남작이었다.

"빌어먹을! 이것들이 대체 어떻게 되살아났지?"

죽은 여제의 부하들이 되살아났다는 소식은 이미 쪽지 로 접했지만, 정말 그렇게 되었을 줄은몰랐다.

베히모스는 사납게 검을 휘둘러 여제의 부하들을 베어 버리고 횡궁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왠지 안으로 들어가면 이 사단이 일어난 원인 제공자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계속 달려드는 여제의 부하들을 베고 가다 보니 무척이나 낯익고 열받는 얼굴이 보였다.

바로 대장장이 지그,강유한이었다 

"이 자식! 또 너냐!”

베히모스는 악귀처럼 유한에게 달려들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것으로 모자라 화산처럼 폭발해버린 듯했다 어지간히 화가난것이 아닌모양.

"형, 위험해.”

얀이 검을 빼 들고 베히모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베히모스의 분노 어린 일격은 얀올 날려 버리고 유한에게 곧장 날아왔다.

"크헉!”

유한은 가까스로 그 일격을 피했다. 중간에 얀이 막아 주지 않았다면 그냥 두 동강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제기랄,그래도 4위 랭커라 이거지?'

유한은 인벤토리에서 뇌제의 홀을 꺼내 들었다. 막 뇌제로 변신하려는 찰나, 섬전같이 날아온 베히모스의 검격 이 뇌제의홀을 날려버렸다.

"변신하게 놔둘것같나!”

"헉!”

뇌제의 홀은 복도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유한은 황급히 베히모스에게 떨어지며 뇌제의 홀을 주으러 갔다. 그러나 분노로 평소보다 2~3배는 강해진 듯한 베히모스 는 귀신처럼 유한을 쫓아왔다.

"버스터 샷!”

"쌍! 이빌어먹을 계집애가!”

채린이 날린 화살이 간발의 차이로 유한을 살렸다. 베히모스가 주춤하는 사이 유한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뇌제의 홀을 희수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지금 베히모스에게 반격을 날리는 게 나을까

어찌할까 갈팡질팡하던 유한은 제3의 답올 찾아

"죽어라, 강유한!”

검을 내리치려던 베히모스는 유한이 뭔가 꺼내 던지는 것을 보았다. 네모난 상자. 별것 아닌 걸로 발악을 한다 생각한 베히모스는 곧장 그 상자를 베어 버렸다. 그런데 쪼개진 상자에서 끔찍할 정도로 흉한 얼굴이 하나 튀어나오는게 아닌가.

'헉, 저건!’

메두사, 메두사의 얼굴이었다. 유한은 저번에 얀이 건네줬던 언데드 메두사의 머리를 담은 상자를 집어 던진 것이다.

얼핏 그 흉물의 정체를 안 베히모스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저 망할 흉물과 눈이 마주치면 석화고 뭐고 그냥 놀라 로그아웃올 당해버릴 터.

그런데 고개를 돌린 베히모스의 눈앞에 다른 것이 보였다.

방금전 날려버렸던 찬드라대륙의 무사였다.얀이란 이름의 그녀석은 자신을 향해검을 길게 내밀고 있었다

“빙고!”

씩 미소 짓는 얀의 얼굴이 베히모스의 눈에 가득들어왔다.

어딘가 강유한과 닮은 쌍판.

구겨진 베히모스의 목으로 얀이 찌른 매화검이 박혀 들었다. 

“커어억!”

검이 급소에 박혀 들며 베히모스의 HP가 쭉 내려갔다 간신히 절명은 면했다. 그러나 이미 베히모스의 몸은 통제를 잃었다. 목을 움켜잡고 비틀거리는 베히모스에게 망치를 손에 든 유한이 다가왔다. 

“잘가라.”

 유한은 주저하지 않고 망치로 베히모스의 머리를 내리쳤다. 거의 바닥에 떨어져 있던 베히모스의 HP 칸이 완전히 바닥올 드러냈다. 그리고 베히모스는 죽었다.

[미네르바 여재의 요청] 퀘스트를 성공했습니다. 여제에게 찾아가 보상올 받으십시오.

 -경험치 7,000올 얻었습니다. 

 -레벨 200이되었습니다.

레벨 200이 되자 팡파르와 함께 축하의 메시지가 떴다.

 - 드디어 아르패디아 대륙에서 고수 대접을 받는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랭커 칭호에 도전해 보십시오. 모든 스탯이 3씩 올랐습니다.

'앗싸!,

레벨 200이 되었다는 것보다 베히모스를 쓰러트렸다는 것이 더 기쁜 유한이었다.이제 베히모스도 죽었고, 미네르바도 다시 황위를 되찾을 것이니 마노스 제국에서 철십자 길드의 기반은 완전히 날아갈 것이다. 그것은 이미 길드장의 부재로 흔들리고 있는 철십자 길드를 붕괴시키고 말터.

유한의 예상대로 얼마 후 철십자 길드는 무너지고 말았다.

미네르바가 마노스 제국의 황위를 되찾자, 대륙 통일 전쟁은 중단되었고, 제국은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예전의 철십자 길드라면 내전을 각오할 만한 저력이 있었지만,모든 것을 탕진하고, 모래처럼 홀어진 길드에는 그런 저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미네르바는 빠르게 세력을 되찾아 갔고, 철십자 길드에 속한 유저들을 축출했다

이어 고위 간부들이 자기 세력을 거두어 독립하거나 다른 길드에 투신하면서 철십자 길드는 중소 길드 수준으로 전락했다

 몇몇 길드원들은 노벨의 복귀와 베히모스의 재기를 기다렸지만, 그들 스스로도 가능성을 높게 보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철십자 길드에 대해서 거론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번 전란으로 새로이 영웅 칭호를 받은 이의 이름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침략자의 야욕을 분쇄한 명장 지그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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