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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만큼 갚아 준 일행은 시계의 마왕을 완전히 쓰러 트렸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마왕이 쓰러지자, 괘종시계들도 고물이 되어 부서지고, 마왕의 마력으로 생성된 던전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만세!퀘스트가 끝났다!”
퀘스트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뜨자 김요셉은 만세를 불렀다. 무척이나 성가신 퀘스트였기에 완료의 기쁨은 무엇보다도 컸다.
"고맙습니다. 다 지그 님 덕분입니다.”
"아뇨, 뭐 전 별로 한 것도 없는걸요.”
김요셉은 고개를 저었다. 유한이 시계 마왕의 술수를 간파하지 못했다면 이 퀘스트를 완수하기는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로므나의 성수를 구하러 오셨다고 했지요? 절 따라오십쇼. 안내해 주겠습니다.”
김요셉의 호의 덕분에 일행은 로므나의 성수가 있는 버려진 신전을 금방 찾을수 있었다.
성수는 덩굴로 휘감긴 지고신의 신상에서 흘러내렸다. 신상의 손에서 흘러나온 성수는 대리석으로 만든 작은 석조를 가득 채우고도 넘쳐 아무렇게나 흘러가고 있었다. "정말 이것만 있으면 죽은 NPC를 살릴 수 있는. 거야?"
"왠지 이미지가 너무 흔해 보여요, 브라더.”
유한도 동생 커플의 말에 동감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뒷산 약수터의 물이지 고대의 망령조차 살려 내는 기적의 성수처럼 보이지 않았다.
"NPC를살리려고 로므나의 성수를 구하려 했습니까?"
“예, 다소사정이 있어서..…”
유한은 산불로 인해 NPC 일꾼들이 희생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김요셉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거, 지그 님 이름을 보고 낯익다 생각했는데, 그 유명한 지그 철공소의 사장님이셨군요. 몰라 봐서 미안합니
"아뇨, 김요셉 님이 알고 계신다니 오히려 제가 영광이지요.”
성격이야 어떻든 상대는 아르페디아의 지존. 유한은 김 요셉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싶었다. 지금 철공소에 눌러 살고 있는 아크 위저드 아스탄처럼.
“사장님이 직접 이 오지까지 와서 자신들을 살리려는 걸 알면 사원들이 무척 기뻐하겠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그님.”
김요셉은 좀 전과 달리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하려는 일이 질서를 역행하는 일이라는 건 알 고계십니까?"
“질서를 역행해요?"
"자연적이든 피치 못한 사고든, 생명이란 결국 죽음올 맞게 됩니다. 윤회를 하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든 NPC 는 일단 죽으면 되살릴 수 없다는 게 이 게임 세계의 질서 지요. 유저의 경우는 그 질서 밖에 있습니다만"
욕설을 내뱉을 때는 깡패 같더니. 성직자다운 이야기를 할 때는 본래 직업이 목사나 신부가 아닐까 생각되는 김 요셉이었다.
그는 유한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질서를 깨트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번처럼 죽은 마왕이 되살아난다거나 사자의 영혼을 사사로운 목적으로 이용한다거나. 주로 네크로맨서 계열의 마법사 들이 그런 일을 벌이죠. 마법도 나름 체계는 있지만 '혼돈’ 올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학문이니까요.”
김요셉의 말대로라면 유한이 만드는 블랙아이언도 질서에 역행하는 혼돈의 존재다. 영혼을 빙의시켰기 때문이다
"마족을 인정하는 것처럼 지고신께선 혼돈 역시 인정 했습니다. 그러나 그 혼돈을 다스리고 현재 세계의 질서를 잡은 이가 바로 지고신. 그의 힘은 질서 쪽에 치우쳐 있을 수밖에 없지요.”
"저기 죄송한데…뭘 이야기 하려는 겁니까?”
유한은 당최 김요셉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임인데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써야 하나? 그냥 성수를 떠다 NPC들올 살리면 안 되나?
"하하하, 제가 너무 추상적으로 이야기 한 모양입니다. 쉽게 풀이하자면, 지고신의 은혜가 깃든 로므나의 성수에 는 강한 힘이 있지만 그 힘은 혼돈보다 질서에 더 치우쳐 있습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런 효험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 로므나의 성수만르로는 죽은 NPC들을 살릴 수 없다는 소리다. 역시 뭔가 다른 과정을 거쳐야 성수가 부활의 힘을 가질 수 있는 모양.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유한의 물음에 김요셉이 되물었다.
"제가 그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알고 있으니까 말한 거겠죠. 안 그렇습니까?"
가르쳐 줄 뜻이 없었다면 이렇게 줄줄 내밸지도 않았을 터.
유한의 대꾸에 김요셉은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 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어떤 하이 프리스트 유저가 있었습니다. 그 바보 녀석은 게임 속에서만 존재하는 아가씨에게 홀딱 빠져있었죠.”
NPC를 좋아하는 유저들이 종종 있고, 커플을 이루는 이도 있었다. 남들은 그걸 막장’이라 비웃었지만, 당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NPC 아가씨는 마을을 습격한 몬스터에게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 바보 성직자가 접속을 하지 않았을 때 일어난 일이었죠. 바보 성직자는 사방팔방으로 쫓아다니다 교단에서 힘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고대의 기록을 보게 되었고, 그 안에서 아가씨를 살릴 방법을 찾았습니다.”
“로므나의 성수를 이용하는 방법인가요?"
“예, 성수 안에 있는 혼돈의 힘올 강하게 만들면 사자를 부활시킬 수 있다고 적혀 있었죠.”
바보 성직자는 친구와 함께 성지 로므나를 찾아 성수를 구했고 성수를 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죽어서 사라졌던 NPC 아가씨를 되살려 놓았다.
그래서 바보라는 분은 그녀와 잘됐어요?"
여자애들이라 그런지, 채린과 베르디가 사랑 이야기에 관심올보였다.
“잘안됐습니다.”
“왜요?"
"바보 성직자는 NPC 아가씨를 살리고 바로 군대를 갔거든요.”
군대.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신성한 병역의 의무. 그것은 죽은 이를 되살린 기적의 성직자도 피할 수 없었다.
"어머나, 불쌍해라.”
"내 친굽니다. 현재 강원도 인제 12사단에 있습니다.”
김요셉의 말을 듣고 이번엔 유한과 얀이 딱한 표정을 지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라는 그 동네로군.”
"NPC 아가씨는 면회도 못 가니 안습이네.”
현실은 냉정하다. 그리고 게임은 역시 게임. 그러나 그 바보 성직자의 고귀한 순정은 전설로 남아 유한에게 도움올 주고있었다.
"성수를 변환시키는 데는 막대한 마력이 필요하지요. 그때 제 친구의 성수를 변환시켜 준 사람은 아르패디아 온라인 최고의 마법사였습니다.”
"혹시 아크위저드아스란?"
"맞아요. 그 꼬맹이죠. 요샌 어디에서 월 하는지…"
김요셉은 마치 아스란을 못 찾으면 성수를 변환시키지도 못할 것처럼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스란이 어디 있는지 잘 아는 유한 일행 입장 에선 그 점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뭐요? 아스란이 지그 철공소에 있다고요?"
"우리 철공소 일을 도와주고 있지요.”
"하하! 이거 b.o.b 길드 녀석들이 듣는다면 깜짝 놀라 겠는걸.”
일선에서 은퇴한 뒤 길드에는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던 녀석이 지그 철공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생난리를 칠 것이다.
아무튼 더 이상 문제될 것은 없었다.
유한은 준비해 온 물통에 로므나의 성수를 채웠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지만, 일단 그것은 내일로 미루 기로 했다. 시간이 너무 늦었고, 목적을 달성하면서 피로 가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파티원들과는 저녁 9시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김요셉 과는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지요.”
“언제 철공소로 놀러 가겠습니다.”
생각보다 성수를 구하는 일은 어려웠지만, 소득이 있던 모험이었다. 바츠 시절까지 통틀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아르패디아 온라인 지존 김요셉과 안면을 렀으니까.
김요셉은 랭킹 1위가 부끄럽지 않게 강했다. 하지만 단 순하고 성격이 급한 것이 다소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러나 그와 원만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은 득이 되면 되었지 손해가 되지않을 것이다.
새벽까지 성지 로므나에서 모험을 즐긴 유한은 얼마 간의수면을 취한 뒤 입시학원에갔다. 잠이 모자라서 머리가 조금 지끈거렸지만, 학원 강의를 빠트릴 수는 없었다. 퇴학은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재수만 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휴우, 장난이 아니군.’
원래 입시 학원의 강의 분위기는 이전에 검정고시학원을 다닐 때보다 엄숙했지만, 요즘은 더 진지해졌다. 대입 수능까지 이제 몇 개월 안 남았기 때문이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청취 태도도 진지해졌고, 강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로는 안돼요. 이 정도 강의는 게임내의 학원에서도 한단 말입니다.”
"그러게, 학생들을 모으는 데 뭔가 결정적인게 필요한 데말이야.”
강사들의 열띤 태도는 단지 수능을 앞두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가상 공간, 그것도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속에서 그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NPC 강사 따위에 질 수는 없지!"
"나도 투잡으로 게임 속에서 강의나 해 볼까? 게임에서 작은 강습소를 차리는 사람들도 많다며?"
“게임 속에서 불법 과외를 하는 놈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강의를 마치고 강사 휴게실을 지나가던 유한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저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위협이 되고 있었다. 이쯤 되면 가상 공간이라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
'손석진 그 사람은 뭘 생각하고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면서 유한은 손석진이 무슨 뜻으로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만들고, 또 현재의 상태로 운영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함이라는데 그것은 저번에 그가 이야기 한 소통과 관련이 있을까? 그가 정말 해킹을 했다면, 또 무슨 목적에서 였을까.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유한의 발걸음은 집 대문 앞에 와 있었다. 문을 열고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연 유한은 낯선 사람의 구두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구?'
집 안을 두리번거리던 유한은 거실 소파에 앉아 부모님 과 대화 중인 30대 후반의 남지를 발견했다. 차림새나 생김새가 전형적인 샐러리맨인 그는 유한을 알아보고 자리 에서 일어넜다.
"지그님,아니 강유한님이시죠?"
"그런데, 누구십니까?"
"게임 내에서 네 고객이시라는구나”
아버지가 별로 탐탁찮은 표정을 지었다 집에 손님이 왔다고 해서 부랴부랴 와 보니 유한이 때문에, 그것도 게임 내의 일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승권이라고 합니다 혹시 제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석궁쓰시는월토르님?"
"하하하! 기억하시는군요.”
알고 보니 지그 철공소로 매번 수리하러 오는 단골이었다. 대장간 시절부터 들락날락한 덕분에 얼굴과 이름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와는 단골 이상의 관계는 아니다. 같이 모험을 한 적도 없고, 그저 석궁과 투구를 꼬박꼬박 수리해 줬을뿐.
"그런데 제 이름과 주소는 누구에게 들으신 거죠?"
유한 자신이 말한 바 없다. 바츠가 해킹당한 뒤 개인 정보관리를 철저히했기때문에.
그래서 이승권이 이렇게 떡하니 찾아온 것에 의문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하,시실은 말이죠.….”
이승권은 유한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드림맥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자세한 사정을 들은 드림맥스는 지그 유저의 이름과 주소를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래요? 근데 대체 전 왜찾으셨습니까?"
유한의 물음에 이승권은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대규모 업데이트 이후 게임 내에서 기업의 광고와 상품 관련 아이템 판매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승권의 회사에 서도 게임으로 진출했는데’ 예상했던 것만큼의 성과를 이뤄내지는못했다. 자사의 홍보 효과가 미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결정한게 광고 협력입니다. 게임 내 에서 잘나가는 단체와 손을 잡는다는 건데, 제가 지그 철공소를 추천했습니다.”
블랙 아이언을 생산하고 있는 지그 철공소가 지금 게임 내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나가는 업체였다. 그의 추천에 회시는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검토해 본 결과, 지그 철공 소의 이미지와 현 회사의 이미지가 제법 어울렸기 때문이
"우리 회사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 업체입니다. 미래모터스라고 하시면아실 겁니다"
"미래 모터스라면 국내 자동차 부문 1위라는?"
"하하하, 자동차뿐만 아니라 산업용 로봇,군사 무기까지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유한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입도 찍 벌어졌다. 매일 게임만 파고 있는 못난 자식에게 대기업에서 광고 협력을 하자며 찾아오다니!
“우리 회사가 바라는 건 두 가지입니다. 지그 철공소에 우리 회사의 이름과 로고를 박아 넣는 것. 그리고 생산되는 제품에도 똑같이 해달라는 것.”
"그럼 철공소 이름을 바꾸라는 건가요?"
"아뇨,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협력입니다, 협력. 그저 지그 철공소를 상징하는 Z자 옆에 우리 회사 로고와 이름을 같이 달아주시면 됩니다.”
유한에겐 별로 어렵지 않는 일이다. 이름을 완전히 바꾸라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미래 모터스 쪽에선 상당히 득을 볼 수 있는 일이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회사를 알릴 수 있고, 이것은 회사의 매출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매년 우리 회사에서 생산 되는 신차를 공짜로 대여해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모델은 뭐든 골라서 일 년간 타고 다니실 수 있고, 수리나 점 검도 저희 서비스 업체에서 다 알아서 해 드릴 겁니다.”
이말에 부모님의 귀가솔깃했다. 그들은 이승권인지 월토르인지가 돈으로 유한이를 꾀려 들면 반대하려고 했다. 자식 놈이 너무 이른 나이에 게임으로 돈맛올 알게 되면 장차 인생에 득이 되지 않올 거라 여겼기 때문. 그라나 차량 대여는 괜찮을 듯싶었다. 마음에 드는 건 뭐든지 탈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질리면 바꿔도 되고.
유한이 덕에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 면허증이 없는데요.”
“부모님께 들으니 내년에 대학생이 될 거라면서요? 수능 치고 따십시요. 그동안은 부모님께 차를 맡겨 두어도 괜찮지 않습니까?"
부모님도 동의한다는 둣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에 탐탁지 않아 하던 때와는 정 반대였다.
'그래, 연애엔 차가필수지.’
유한은 멋진 스포츠카에 채린을 태우고 질주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단순히 꿈이 아니라 내년이면 실현시킬 수도 있다. 이 제의만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냉큼 수락해 버리자.
그리 생각하던 유한은 갑자기 협상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저기, 조건이 하나 더 있는데 괜찮을까요?" "너무 지나칠 정도만 아니라면.”
"그럼 저랑 제 여자 친구,그리고 동생들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 주세요.”
마지막에 요구한 것은 학비지원. 대학에서 공부하다 보면 아무래도 등록금이 부담된다.
그래서 유한은 자신뿐만 아니라 채린과 유현이, 그리고 세라의 대학 학비 지원까지 요구했다.
이 조건에 이승권은 곧장 응답하지 않았다. 잠시 머리를 두들기며 생각하던 그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단순한 학비 지원은 곤란하고 장학금 형식은 어떻습니까? 그럼 우리 회사 산하의 재단에서 흔쾌히 지원해 드릴 겁니다. 물론 중상위권 이상의 대학에 진학하고, B이 상의 학점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한은 월토르의 제안을 수락했다.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하 기로했다.
부모님도 유한의 추가 요구에 크게 만족했다. 단순히 자식들의 학비 걱정을 덜었기 때문이 아니라, 유한이 돈이 아닌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이야 쓰면 금방 없어지지만, 배움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럼 이번에 철공소를 복구하면 곧바로 미래 모터스의 로고와 이름을 달겠습니다" "앞으로잘 부탁드립니다.”
계약 서류에 사인한 유한은 정식으로 미래 모터스와 광고 협력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것은 유한에게, 그리고 캐릭터 지그에게 있어서도 또 다른 전기를 마련한 일 이었다
저녁에 다시 게임에 접속한 유한은 곧장 철공소로 귀환 했다.
돌아가는 길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채린이 보낸 쪽지를 받고 리지스가 기구를 타고 성지 로므나 근처까지 찾아 온것이다.
리지스는 채린의 요청에 아크 위저드 아스탄과 동행했고, 아스란은 텔레포트 마법으로 유한 일행을 순식간에 철공소로 옮겨다 주었다.
철공소에 도착하자 유한은 성지 로므나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에게 이야기 했다.
"김요셉님을 만났다고요?"
아스란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예. 성수를 바꾸는 데 아스란 님을 추천하더라고요.”
유한은 그렇게 말하며 슬찍 아스란에게 로므나의 성수를 내밀었다.
“쳇’ 그 양반 정말 귀찮은 존재라니까.”
임으로 투덜대긴 했으나 아스란은 성수를 받이들더니 넓은 공터 한가운데 놓았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며 지팡이로 복잡한 마법진올 그리고 수정 가루를 뿌렸다.
마법진이 완성되자 아스탄란은 더욱 긴 주문올 영창했고, 마법진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더니 로므나의 성수가 담긴 병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기운들이 성수로 스며드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아스란은 마력이 딸릴 때마다 엘릭서를 들이켜더니 어느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제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성수의 변환 작업이 끝나자 유한은 곧바로 죽은 NPC 들을 살리러갔다.
지난번 화재로 희생당한 NPC들의 영혼은 가스톤이 불러 온 네크로맨서에 의해 그들의 시신이 안치된 관 안에 봉인되어 있었다.
유한이 관을 열고 로므나의 성수를 한 방울씩 떨어트리 자, 죽은 NPC들이 거짓말처럼 되살아났다. 큰 화상을 입은 그들의 몸도 성수의 힘에 깔끔하게 치유되었다.
"오오! 내가 다시살아나다니!”
"정말 고맙습니다,사장님!”
되살아나 가족과 눈물의 상봉올 한 NPC들은 몇 번이 고 유한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특히 철공소 소속의 NPC들은 충성도가 궁극에 다다른 것이 눈에 뚜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너무들 고마워하지 말라고. 난 여러분들을 부려 먹으려고 살려놓은 거란말이야.” "하하하, 뼈가 부서질 때까지 일하겠습니다!” "힘들어도 이승이 좋습니다!”
유한은 그들을 데리고 갈리가 있는 비밀 동굴로 데리고 갔다.
그 비밀 동굴은 저번에 갈리가 메카 드래곤을 만든답시고 파놓은곳이다. 내부공간이꽤넓은이곳은철공소에서 은밀히 옮긴 공작 기계들을 설치해 놓고 생산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지그 철공소가 한 달간 생산을 멈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차곡차곡 블랙 아이언을 생산하고, 지그 철강 조합원들에게넘겨줄 제련강 생산도 은밀히 진행중이었다.
"이야!완전히 지하공장이네.” 유한은 동굴 안의 작업장올 둘러보며 연방 탄성을 내뱉 었다. 제2의 지그 철공소라 해도 무방할 수준이 었다.
"조수왔느냐? 일은 잘되었고?"
유한올 보고 블랙 아이언을 조립하고 있던 갈리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유한은 그에게 부활시킨 NPC들을 보여주었다.
"보시다시피 잘됐습니다.”
"하하하! 다행이구나! 이제 조금은 여유를 부릴 수 있 겠는걸!”
그동안 초열탄을 만든다, 동굴을 확장한다, 살아남은 대장장이들을 지휘한다 해서 이리저리 바빴던 갈리였다.
"그래도 제가 없는 사이 생각보다 빨리일을 진행시키셨는데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 혼자 한 건 아니고…....”
“어이,갈리! 그 녀석이 사장이란 녀석이야?"
갈리의 말을 자르며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한은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몇 명의 드워프들이 블랙 아이언을 조립하고,또 설계도를 보면서 연방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예상치 않았던 방문자에 유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사람들은 뭡니까!”
"네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왔는데 말이다....."
. "반갑네, 난 붉은 수염 일족의 비탈리라고 하네.”
방금 전에 외쳤던 드워프가 다가와 갈리를 냉큼 밀쳐 버리고 유한에게 악수를 청했다. 유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의 악수를 받았다.
“근데 이곳은 어쩐 일이십니까?".
메카 드래곤 사건 이후, 노스아크에서는 계속 갈리를 추적하고 있었다. 혹시 그 때문에 갈리를 잡으러 온 것은 아닌지? 지금 갈리를 잡아가면 무척이나 곤란해지는데.
그러나 유한의 걱정과 달리비탈리는 그 이유 때문에 찾아온 것이아니었다.
"연맹의 노인네들이 최근 인간 국가들이 거대 병기들을 보유한 걸 보고 경계심을 느껴서 말일세.”
처음에 노스아크의 드워프들은 인간이 만든 거야 뻔할 거라 생각했단다. 그러나 정교한 움직임을 자랑하는 블랙 아이언을 보고 그런 자만을 깨끗이 씻게 되었다고.
"그래서 수소문하니 이곳에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맹 늙은이들이 나와 내 사촌들을 협상자로 파견했지. 근데 화재 때문에 영 상황이 말이 아니더군. 갈리를 보고 놀라긴 했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그래서 좀 도와주기로한 거야.”
나중에 떨어질 떡고물올 바라기도 했지만, 갈리와 같은 붉은 수염 일족인 이들은 기계와 마법 장치들이 정교하게 짜 맞춰진 블랙 이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그래서 갈리를, 철공소의 일을 돕게 된 것이다.
"그럼 협력을 해 주시는 대가로 블랙 아이언을 사 가시겠다는?”
“어허! 우릴 뭘로. 보나. 드워프 체면에 인간이 만든 걸 쓸수야없지.”
"그럼 기술과 설계도를 달라는 겁니까? 그건 싫은데요.”
드워프들이 블랙 아이언의 제작 기술을 익힌다면 더 좋은 기체를 생산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완성을 시키려면 7랭크 소환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의 협조가 필요하지 만, 한 나라를 이룬 드워프들이 어디 그만한 마법사를 못 구하겠는가.
나중에 가면 지그 철공소의 블랙 아이언은 사라지고, 드워프들이 만든 블랙 아이언이 대륙에 득세할지 모른다.
유한의 걱정을 눈치챘는지 비탈리가 다독이고 나섰다.
"장사 때문에 탐탁찮은 거라면 걱정 말게. 우리가 만드는 건 절대 타국이나 인간들에겐 판매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노스아크에서만 쓰시겠다?"
"그래, 우리 드워프들에게 돈 욕심은 없어요. 약속을 어길 만큼 성격이 비열하지도 않고.”
그렇다면 생각을 다시 해 볼 일이다. 밥 먹듯이 거짓말과 사기를 일삼는 인간과 달리, 드워프 같은 이종족들은 진실하니까.
비탈리는 유한의 마음이 바뀔세라 또 다른 제안을 내밀 었다.
만약 수락하면 자네는 쓸 만한 드워프 일꾼들을 추가 로 얻을 수 있을 거야. 거기다 저기 갈리 놈도 연맹의 늙은이들이 영구 추방 정도로 용서해 줄 거고. 그럼 자네에게 좋지 않겠나?"
“흠,그렇게만해주신다면”…”
평범한 드워프라도 인간의 명장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다
만약 갈리 말고도 다른 드워프들을 영입할 수 있다면 블랙 아이언의 생산은 훨씬 더 빨라질 것이다. 그럼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고, 지그 철공소의 명성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잘하면 드워프들에게 다른 기술을 배울 수 있을지 모르고, 니중에 제철소를 지을 때도 큰 도움 을줄것이다.
"알겠습니다. 그 조건 받아들이지요.”
"잘생각했네.”
유한은 곧장 드워프들과 계약서를 작성했다. 종이는 쉽게 훼손된다는 비탈리의 주장에 따라 계약서는 대리석판에 새겨졌다.
노스아크는 블랙 아이언 설계도를 복사해 가는 대신, 매년 1년간 일해 줄 드워프들을 5명씩 보내 주기로 했고, 갈리 역시 선처해 주기로 했다.
약속을 선행하기 위해 비탈리를 포함한 5명의 드워프 들은 지그 철공소에 남았다. 노스아크에 협상을 통보하러 갈 전령은 한 명이면 족했고, 모두들 남아서 블랙 아이언을 연구해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다들 갈리 같진 않아야 할 텐데…….’
그 점 이 좀 걱정되는 유한이었다. 협상을 마친 유한은 비밀 동굴에서 나와 다시 철공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화재의 잔재가 남아 있는 철공소는 아비지와 송코의 지휘 아래 착착 복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피해가 그리 심하지 않아 며칠 안에 복구 작업이 완전히 끝날걸세. 방화 설비도 만들었으니 이젠 안심해도 좋네.”
"다 끝나면 저기 간판의 Z자 옆에 미래 모터스라고 적 어 주세요.”
"미래 모터스? 그건 왜?"
"실은제가말이죠…….”
유한은 오늘 낮에 있었던 미래 모터스와의 광고 협력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비지와 송코는 굉장히 놀라워하면서 축하해 주었다.
"게임이라도 일류 유저는 됨가 다르구나.”
"하핫’ 내년에 우리 대학으로 오지 않겠나? 자네 같은 근성이면 최고의 건축가가 될 것 같네만.”
"그, 글쎄요.”
멋찍어 하던 유한은 근처에서 묘목을 심고 있는 엘프를 보았다. 알세인인가 해서 봤더니 알세인이 아니었다.
불이 탄 자리에 묘목을 다 심은 엘프가 노래를 부르자, 묘목이 눈에 될 정도로 부쩍 자라기 시작했다.
"저건……?"
"아, 저거 말이야? 알세인이 고향 숲 엘프들을 불렀어. 엘프의 힘이라면 불타 버린 숲을 빨리 복구할 수 있다면 서.....”
알세인이 보낸 소식을 바람의 정령에게서 전해 들은 엘프들은 한달음에 와서는 불타버린 숲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숲이 누군가의 야욕으로 훼손된 것이 안타 깝기도 했지만, 유한에게 입은 은혜를 갚고자 하는 이유도있었다.
'부지런히 모험한 덕분에 득을 보는 게 꽤 많구나'
모험도 했지만, 유저와 NPC를 통틀어 많은 사람들을 사권 덕분이었다. 아니면 이렇게 빠르게 피해를 복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확실히 사람과 부딪히며 사귀는 건 재밌다. 개중에는 나쁜 놈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지그거기 있니?"
"무슨 일이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유한은 리지스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유한에게 달려온 리지스는 방금 쪽지로 날아온 따끈 따끈한 소식을 알려주었다.
"북쪽에 파견된 우리 길드원이 그러는데, 노스아크에 칠십자 길드원들이 와서 네 행방을 캐고 다녔데.”
"내 행방을 캤다고?"
자신이 노스아크로 공작 기계를 사러 갔다는 헛소문이 퍼지자마자 철십자 길드원들이 음직였다.
그말이 뜻하는 것은 한가지였다.
지난 번 화재 사건의 배후가 철십자 길드가 분명하고, 이후에도 방해를 할 심산으로 자신의 행방을 추적한 것이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이 망할 자식들! 이것들올 어떻게 박살을 내지?"
죽어 버린 일꾼들도 다시 살렸겠다. 불타 버린 철공소 복원도 순조롭겠다, 이제 칠십자 길드 놈들에게 복수하는일 만남았다.
"딜론 아저씨 말로는 마노스 제국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해.”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군대 조직을 개편하고, 훈련에 공을 들이고 있대. 그리고 마법 재료와 동물과 몬스터의 사체를 마구 끌어모으 고있어.”
저번에 딜론이 그랬다. 철십자 길드는 대륙 제패를 노리고 있다고. 현재는 정세가 불리해서 움츠리고 있지만, 준비만 갖춰 지면 곧장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 했다
지금 마노스 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침략 전쟁 계획의 일환일 것이다. 거대 키메라의 양산에도 노력하는 듯했고.
‘좋아, 네놈들의 계획을 역이용해 주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유한은 리지스룰 바라보며 말 했다.
“계속 철십자 길드와 마노스 제국의 동태를 살펴 줘. 조그마한 정보 하나도 놓치지 말고."
“알았어. 철십자 거라면 개미 한 마리도 놓치지 않을 게.”
철십자 길드에 이가 갈리는 것은 리지스도 마찬가지였다 감히 자신의 가장 큰 돈줄을 날려 버리려 하다니!
'더구나 저번에 테라칸 황제의 묘에서 보물을 건지지 못한 것도 다 그놈들 때문이야!’
정확히는 철십자 길드와 손잡은 이바니우스 3세 때문 이지만, 그런 관계는 알 바 없는 리지스였다. 돈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무섭고도 강했다. 아르페디아 최고의 길드를 박살 내겠다고 작정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