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성직자
"NPC들을 살릴 방법이있어.”
모험을 떠나기 직전,유한은 친구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다. 자신이 철공소를 비우는 것은 죽은 숙련공 NPC들올 살리기 위함이라고. “정말방법이있는거야?"
유한의 말에 채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알기로 NPC를 살릴 방법 같은 건 전무하기 때문이다.
“설마 허풍치고 어디 놀러가려는 건 아니겠지?"
리지스가 째려보자, 유한은 곧장 맞받아쳤다.
"내가 미쳤냐? 이 와중에 놀러가게. 분명히 되살릴 방 법이 있어.”
유한은 에이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이번 일은 에이린과 관련이 있었다.
예전에 그녀가 했던 퀘스트 때문이다.
"에이린, 너 저번에 성지 로므나에서 성수를 길어 온 적이 있었지?"
"네, 공중 요새를 부활시킨다며 미케니아의 국왕이 시켰어요.”
"로므나의 성수가 가진 위력을 너도 봤지?"
그건 에이린만 본 것이 아니다. 그때 공중 요새에 갔던 5인방이모두 목격했었다.
단 한 방울의 성수로 죽어서 망령만 남았던 존재들을 다시 되살렸다. 이바니우스 3세를 비롯해, 그의 호위대장인 라이칸, 그밖의 졸개 마도사들과 공중 요새의 주민들 까지.
"자, 여기서 문제. 미케니아 패거리는 NPC였올까? 아님 NPC가아니었을까?"
"우와!그러고보니!”
생각해 보니 자신들이 겪은 모험에 답이 있지 않는가 기존의 통념에 얽매인 나머지 직접 경험해 놓고도 비책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당사자인 에이린까지도.
"하지만 성수만으로 살릴 수 있는지 모르잖아요.”
로므나의 성수를 뿌려서 살아났긴 하지만, 성수만으로 NPC를 살릴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퀘스트 진행상 성수를 뿌리면 살아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바니우스 3세가 성수에 주문이나 비전의 처리를 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로므나의 성수가 죽은 NPC들올 살릴 수 있는 것은 맞잖아. 그래서 성지 로므나로 가겠다는 거야.”
수긍할 만한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더 이상 유한올 말리지 않았다. 물론 당시 공중 요새 퀘스트의 맴버가 아니었던 이들은 정말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에이린, 너 성지 로므나가 어딘지 알고 있지?"
“어디 보자, 정보 길드에 의뢰해서 받았던 지도가 있는데..."
에이린은 인벤토리를 한참 뒤지더니 몇 달 동안 구석에 방치한 성지 로므나의 지도를 찾아 유한에게 건네주었다.
먼저 전해 들은 대로 성지 로므나는 엘프의 숲보다 남 쪽에 있는 원시림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제가 안내해 드리고 싶지만,요새 옌스 오빠랑 퀘스트 를 수행하고 있어서요.헤헤!" “괜찮아. 이것만으로도 고마워."
유한은 서둘러 성지에 다녀오기 위해 기구를 이용하기로 했다. 리지스가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는 휴대용 기구를 넘겨받은 유한은 '성지순례자' 파티를 결성했다
파티원은 파티장인 유한과 얀, 베르디 그리고 채린으로 하기로 했다. 다들 할 일이 있었고, 여럿이 몰려가면 철십자 길드의 주목을 받을 것 같아 그렇게 결정했다
"내가 가도돼?"
"응,같이 가자 시아야"
유한의 동행 제의에 채린은 스스럼없이 파티에 들어왔다
원래 채린은 안 가도 되었지만, 유한이 일부러 집어넣었다. 한 쌍의 자석처럼 떨어질 줄 모르는 얀과 베르디 탓 이 컸다.
'가는 내내 저것들의 염장질에 당할 순 없음이야.’
사실 염장질이 보기 싫으면 동생 커플을 제외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동생 커플은 한동안 놀기만 해서 부려먹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에정 행각을 보고 배울 필요성도 느꼇다. 분하지만 이 동생 녀석은 연애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고렙이니까.
휴대용 기구를 가동시킨 유한은 출발하기 전에 갈리와 송코, 그리고 리지스에게 따로 부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스승님은 보안을 지켜 주시고요, 송코 형은 교수님께 철공소 수리 좀 의뢰해 주세요. 리지스 넌 내가 말한 대로 소문율 퍼트려 주고.”
"알았어. 걱정 말고다녀와.” 얼마 후 기낭에 헬륨이 가득 차오르자, 기구가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유한과 성지 순례자 파티원들은 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남동쪽으로 떠났다.
"자, 그럼 우리도 슬슬 음직여 볼까?"
유한에게 부탁을 받은 세 사람은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갈리는 대장장이들을 인솔해 어디론가 떠나고, 송코는 대목 칭호를 가진 목수 아비지에게 쪽지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리지스는 휘하 길드원들을 모아 근처에 소문을 퍼 트렸다.
얼마 후, 지그 철공소가 전면 수리로 인해 한동안 작업 을 중단하고, 사장인 지그는 노스아크로 공작 기계를 사 러 떠났다는 소문이 남바린 명지에서 시작해 사방으로 퍼 져 나가기 시작했다.
“야,너 그소문 들었냐?"
아바란왕국의 개미굴던전.
사냥을 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서던 기사 유저가 옆의 마법사를 향해 물었다.
"뭔데?"
“지그 철공소가 한 달 동안 수리로 문 닫는댄다”
"뭐? 저번에 불났다고 하더니 피해가 컸던 모양이지?"
"일꾼들도 많이 죽고, 건물도 홀라당 타 버렸데”
"흐미! 나 지그 철공소에 가서 무구 수리 받으려고 했는데,안되겠네.”
“뭐 다른 데 가면 되지. 그런데 지그 참 안됐다. 한동안잘나가더니만…”
.“그러게말이야.”
이런 속삭임은 그로지아 왕국을 넘어 마노스 제국의 철십자 길드원들에게까지 흘러 들어갔다.
기구는 텔레포트 마법 다음으로 이동 시간올 줄여 주지만, 다소 지루한운송 수단이었다. 중간 중간에 덤벼드는 몬스터도 없고, 하늘 아래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따분하 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한은 성지 로므나로 가는 내내 동생 커폴의 애정 행각을 구경해야 할 거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채린을 데려왔지만, 의외로 동생 커플의 염장질을 불 여유가 없었다.
"언니! 11시 방향에 왕잠자리 편대예요!"
"또? 이거 쉴틈이 없네"
"형, 정확히 보고 와이어를 쏘라고!”
."인마! 넌 구경만 하기냐? 무림 고수면 검기라도 날려 봐!”
지루하고 한가한 기구 여행은 옛날이야기였다.
드림맥스가 기구 여행을 좀 더 스릴 넘치게 만들어 주려고 작정했는지, 공중에서 공격해 오는 몬스터들이 늘어 났다.
저번에 플레임 마운트에 갈 때만 해도 까마귀 무리나 독수리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지금은 데빌플라이나 스트 라이크 호크, 와이번 같은 고레벨 몬스터들이 꾸역꾸역 덤벼들었다.
“풍(風) 뢰(重)!”
“애로우 레인!”
"매화섬!”
몬스터들이 기구 주변으로 몰려들 때마다 약 맞은 모기 때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베르디의 술법과 채린의 화살 세례가 그들올 가로막았고, 화살과 술법을 뚫고 들어온 몬스터들에게는 얀의 검기가쏟아졌다.
때로 감당하기 어려올 만큼 많은 몬스터들이 나타난 적도 있었다. 자이언트 호넷이라는 거대 벌떼 군단이었다.
"이 자식들! 끝내 비장의 수단을 꺼내게 만드는군!” 뇌제의 홀을 꺼낸 유한은 뇌제로 변신해서 벌떼 군단을 한 방에 쓸어버렸다. 쏟아지는 선더 스피어에 화들짝 놀란 벌떼 무리들은도망쳐버렸다
"아깝다. 저거 다 경험치 덩어린데.”
“그럼 경험치 챙기려다 죽을래?"
뇌제로 잡은 몬스터는 경험치를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얀이 아쉬워했지만, 유한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 죽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 그 고생을 하며 다시 오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성지에 거의 다온 것 같기도 한데.”
"어!저게뭐지?"
잠시 지도를 보던 유한은 베르디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래쪽 밀림에서 뭔가가 빠르게 날아올라 접근해 오고 있었다.
날개 달린 악마의 형상을 한 커다란 석상의 손에 는 쇠로 된 활이들려져있었다
"가고일이다!"
가고일은 던전에서 곧잘 나타나는 지킴이형 몬스터다
그런데 어째서 필드에 나타난 것인지? 그것도 이런 허공에?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저놈이 공격올 해 온다는 사실이다.
"시아야!”
"오케이! 파워 샷!”
유한이 외치기 전에 이미 채린은 대응에 나선 상태였다. 그녀가 쓴 화살이 가고일의 몸통에 명중했다.
그러나 유한은 좋아할 수 없었다. 채린이가 화살을 쏜 것과 동시에 가고일도 화살을 쏘았으니까.
"형, 엎드려”
얀이 다급히 검을 휘두르며 가고일이 쏜 화살을 후려쳤다.
유한의 정면으로 날아오던 화살은 얀이 휘두른 검을 맞고 튕겨 나갔다.
멋진 방어였지만, 좁은 기구 안에서 얀의 검을 맞고 튕겨난 화살이 그만 기냥을 쪽 찢어 버렸다.
“이, 이런! 추락한다!”
기낭이 찢어진 곳으로 다량의 헬륨이 빠져나갔다. 유한은 어떻게든 수습하려 했지만, 기냥은 빠르게 쭈그러들었고, 기구도 그에 비례해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까아아악!”
“모두 꽉 잡아!"
유한은 마지막까지 방향타를 잡고 기구를 안정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구는 심하게 요동치며 밀림 한가운데로 떨어져 내렸다. 쿠웅 콰직!
우드드드득!
"크옥!모두무사한거야?"
“아, 아마도.”
유한의 말에 모두들 질끈 감았련 눈을 떴다.
다행히 기구는지상에 추락하지 않았다. 기낭이 우거진 나뭇가지에 걸렸던 것이다. 덕분에 일행이 타고 있던 기구의 곤돌라는 공중에서 시계추처럼 대롱대롱 혼들렸다. "다행이 운이좋았어.”
“그러게요.”
만약 기구가 지상에 추락했더라면 용빼는 재주가 있더 라도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유한은 로프를 곤돌라에 붙들어 매고 아래로 던졌다 모두들 그 로프를 타고 안전하게 땅으로 내려왔다.
온통 푸르고 진득하고 무더운 밀림이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브라더, 아까 성지에는 다 왔다고 했죠?"
"그랬는데...... 걸어서 가기는 조금 먼 거리지.”
베르디가 조금 불만스런 표정올 지었지 어쩔 수 없었다. 험한 밀림을 걸어서 가는 수밖에.
유한과 얀이 앞장서 걸었다. 방향을 성지로 잡았지만, 제대로 된 길이 없어서 검으 로 나무와 덩굴을 잘라 가며 걸어야 했다.
"성지엔 어떻게든 가더라도 돌아갈 일이 큰일이네"
"리지스한테 쪽지 보내면 돼. 기구 타고 와달라고”
"오다가 몬스터의 습격을 받을 텐데요.”
“아크 위저드랑 동행해서 오라고 하면 괜찮을 거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사이 일행의 눈앞에 거대한 유적이 나타났다.
밀림에 반쯤 삼켜진 폐허는 바로 그들의 목적지인 성지 로므나였다. 사방에 쓰러진 천사들의 석상들과 덩굴에 감긴 부조 조각들이 가득했다.
"어찐지 앙코르와트 사원과 비슷한 걸요.”
"캄보디아에 있다는 고대유적 말이야?"
"네, 예전에 가족들이랑 구경 간 적이 있거든요.”
일행은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며 한 걸음씩 내딛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유한은 발걸음을 똑 멈추었다.
‘예감이 좋지 않은걸?^
바츠 시절의 전투 감각이 경고하고 있었다. 주변에 뭔 가 있다고.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실제 뭔가가 폐허의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유한뿐만 아니라 얀과 베르디, 채린도 발걸음올 멈추고 사방을 경계했다.
“누구냐!숨어있지말고나와라!”
유한의 외침에 폐허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나 기괴한 형상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채린이나 얀, 베르디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유한은 그렇지 않았다.
'저건 데몬 가드(Demon Guard)잖아!’
한 쌍의 뿔과 날개를 단 우람한 체격의 검은 악마. 예전에 바츠 시절 마의 시계탑 던전에서 본 적이 있는 데몬 가드였다. 시계의 마왕을 호위하던 악마형 몬스터로 전투와 마법 둘 다 능해서 성가시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쳇, 망할 추기경 놈을 기다렸는데, 엉뚱한 놈들이 걸렸군.”
'파르비오' 라는 이름의 데몬 가드는 손가락올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그림자 속에서 가고일을 비롯해, 리틀 데몬 같은 악마형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헉!레벨이죄다 180대인 놈들이잖아.’
현재 유한의 레벨은 195.
레벨만 생긱하면 모두 유한의 하수인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레벨을 염두에 두고 상대를 가볍게 보아 선 안 된다. 악마형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보다 인공지능이 뛰어나고 마법과 근접전 모두에 능해 전투력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뇌제로 변신하면 싹쓸이가 가능할 테지만, 이미 좀 전에 하늘에서 써 버린 터라 오늘은 사용이 불가능했다.
“왜 성지라는 곳에 악마처럼 보이는 놈들이 있는 거 지?"
"그러게 말이야. 에이린에게 이런 몬스터가 있다는 이 야기는 못들었는데.”
채린의 말대로 에이린은 로므나에 데몬 가드가 있다는 말은하지 않았다.
뭔가 위험한 것이 있으면 분명 알려 주었을 것인데, 그런 말이 없다는 것은 공중 요새 퀘스트 당시에 이런 놈들이 없었다는 소리. 에이린의 레벨을 생각하면 이놈들을 무찌르고 성수를 획득했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뭔가 그사이에 변화가 일어났나?'
아무튼 중요한 것은 성수를 얻기 위해서는 이놈들올 무찔러야한다는 것이다.
“그분의 부활을 막는 놈들은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 네놈들도 마찬가지다!”
파르비오의 말이 끝나자 일행을 둘러싸고 있던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가고일은 검과 방패를 뽑아 둘고 덤벼들고, 리틀 데몬들은 마법올 쏘아 보냈다.
"방(防)! 갑(甲)!”
베르디의 주술이 발동하자 성지 순례자 파티 주변으로 반투명한 방어막이 생겨났다. 그리고 모두의 눈앞에 다음 과 같은 문구가 떠올랐다
-5분간 방어력이 3배상승합니다.
리틀 데몬들의 마법이 반투명한 방어막에 저지당했다. 증가한 방어력 덕분에 유한 일행은 가고일들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낼 수 있었다.
"채석!”
가고일은 돌로 된 석상에 마법의 힘을 불어넣어 움직이게 만든 몬스터다. 그렇기에 유한은 다른 암석형 몬스터 들처럼 가고일도 채석 스킬에 약한 모습을 보일 거라 생 각했다.
까앙!
'얼래?'
그러나 가고일은 채석 스킬에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레인 스킬로 살펴본 균열 부분에 곡괭이 끝을 정확히 내리쳤지만,손만저려올뿐.
-마법으로 강화된 무척 딱딱한 암석입니다. 쉽게 깨질 것 같지 않습니다.
"제길, 그럼 깨질 때까지 쳐 주마!”
유한은 가고일의 공격을 피하며 연거푸 채석 스킬올 날렸다. 그러나 결과는 처음과 마찬가지.
“푸하핫! 어처구니없는 놈이군. 가고일에게 곡괭이질을 하다니!”
데몬 가드의 비웃음에 유한의 일굴이 벌겋게 달이올랐다.
그는 곡괭이를 집어넣고 끝이 뾰족한 장도리와 망치를 꺼내 들었다.
"흥, 이것도 안 먹히는지 두고 보자!”
유한은 가고일의 공격을 피해 장도리를 휘둘렀다. 채석 스킬을 쓰며 날린 장도리였지만, 돌 부스러기만 조금 흘러내릴뿐.
그러나 유한은 당황하지 않고 반대편 손에 든 망치를 휘둘렀다.
“채석 스킬 한 번 더!”
묵직한 망치가 장도리를 후려쳤다. 이중으로 충격을 받자 끄덕하지 않던 가고일에 금이 가더니 적 갈라졌다.
- 경험치 850올 얻었습니다-
-가고일의심장올얻었습니다.
-레벨196이되었습니다
-힘이2 올랐습니다.
"오오, 됐다!"
떠오르는 안내창을 보며 유한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아쉽게도 레벨 업에 기뻐할 틈은 없었다. 유한은 옆에서 검을 휘두르는 가고일의 공격을 피하며 또 한번 장도리와 망치를휘둘렀다.
"매화만개!”
유한이 가고일과 싸울 때 이미 제 몫의 가고일을 쓸어 버린 얀은 리틀 데몬들에게 달려들어 화려하게 검을 휘둘렀다.
허공에 핏빛 매화가 그려지는 순간, 리틀 데몬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흥, 네깟 놈들이 내 검술을 막을 리가...... ”
득의양양해하던 얀의 안색이 확 변했다.
방금 전 죽였다 생각한 리틀 데몬들이 잔영을 그리며 돌진해 왔던 것이다. 놈들은 손등에서 튀어나온 갈색의 갈고리를 휘둘렀다. 얀은 황급히 검을 휘두르며 뒤로 물 러났다.
“조심해. 저놈들은 환각 마법을 쓰면서 죽은 척하다 덤 벼들기로유명해"
"형, 그런 건 좀 일찍 가르쳐 줘!”
얀은 눈앞에 날아오는 리틀 데몬의 갈고리를 막았다. 리틀 데몬은 반대편 손의 갈고리로 얀의 목을 할퀴려 했지만, 얀의 좌수가 녀석의 명치를 후려갈기는 것이 더 빨 랐다.
"복호장(伏虎韋)!”
강력한 장법에 얻어맞은 리틀 데몬이 비틀거리며 검은 피를 울컥 토했다. 그러나 쓰러질 거라 생각했던 녀석은 발악하며 얀의 허리를붙잡았다.
그사이 다른 리틀 데몬들이 얀에게 덤벼들었다.
"트리플샷!”
채린이 날린 화살이 얀을 구했다. 리를 데몬들이 눈과 목에 화살을 맞고 주춤하는 사이, 얀은 허리를 붙잡은 녀석을 끝장내고, 나머지 녀석들의 몸에도 검을 찔러 넣었다.
"크크, 제법 실력이 있는놈들이구나.”
팔짱올 끼고 구경하던 데몬 가드 파르비오가 전투에 가 담했다.
"비켜라!저놈들은 내가 처리한다!”
파르비오의 명령에 살아남은 가고일과 리를데몬들은 한쪽으로물러섰다
파르비오가 먼저 노린 것은 일행 중 가장 강해 보이는 얀이었다. 녀석은 소환해 낸 기형의 검을 얀에게 휘둘렀다. 엄청난 속도의 쾌검이었지만, 얀은 이를 가볍게 막았
다. 그러나 악마형 몬스터, 그것도 상위 마족의 공격은 그리 평범하지 않았다.
“조심해!”
이미 데몬 가드의 전투 방식을. 알고 있던 유한이 경고 했지만,얀은 피하지 못했다. 설마 누가 생각했겠는가.
뒤에 있는 자신의 그림자가 자신을 찌를 거라고ㅣ
“컥!”
"꺄악! 얀!”
얀이 복부를 잡고 주저앉자, 베르디는 곧장 치유 술법을 써주려했다.
그러나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실수가 아니라 그녀의 그림자가 빼앗은 것이었다.
"그, 그림자가공격을?"
"후후홋, 하찮은 인간은 할 수 없는 우리 마족의 비기다.”
채린은 활올 쏘려다 회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그림자가 날린 화살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그녀는 파르비오에게 등을 보이고 말았다.
"또 한놈..."
파르비오가 막 채린에게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유한이 달려들어 파르비오의 옆구리에 팬릴 소드를 박아 넣었다.
"크옥!네놈은 어째서?"
“어째서 당하지 않았냐고? 그 같잖은 비술을 나도 알고 있거든.”
유한은 자신이 곡괭이를 박아 놓은 곳을 가리켰다. 거기엔 시커먼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실제로 그림자가 공격한 것은 아니다. 그 시커먼 것은 바로 데몬가드가 흘린 피였다.
데몬 가드는 자신이 흘려 놓은 피를 조종하는 능력이 있었다. 미리 흘려 놓은 피가 슬그머니 상대의 그림자에 침투해 있다가 때 맞춰 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게 유저들이 보기에는 그림자가 공격히는 듯했다.
"흥, 재미있군. 평범한 대장장이는 아니겠지?"
"그런 소리는 많이 돌어서 이제 질렸다.”
“그래?"
파르비오가 웃으며 슬쩍 손올 휘둘렀다 손짓의 의미를 잘아는 유한은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허공에서 커다란 검은 칼날이 떨어지더니 땅에 깊숙이 박혔다.
'찌르기 다음엔 베기.’
공격 순서를 알고 있는 유한은 곧장 몸을 숙였다. 옆에서 나타난 검은 칼날이 그의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그대로 서 있었다간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유한은 계속 움직이거나 몸을 숙이고 또 펄찍 뛰어오르며 허공에서 날아드는 칼날을 피했다.
마지막에는 약이 오른 파르비오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직접 검을 찔렀지만, 이마저도 피해 버렸다.
“이 수법도 알고 있다."
"크옥, 이놈이!”
얼굴을 찌푸린 파르비오의 손끝에서 거대한 검은 화염이 피어오르더니 곧장 유한에게로 날아갔다.
그러나 유한은 어쩐 생각인지 거대한 화염이 다가오는 데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릿하게 웃었다
“처음은 페이크.” ?
검은 화염이 유한과 부딪치는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유한의 뒤쪽에서 파르비오의 모습이 나타났다.
"두 번째도 가짜.”
유한은 뒤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좌측 1미터 앞의 풍경이 살짝 일그러지자 그는 두말 않고 검을 휘둘렀다.
키一 앙!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 순간, 당혹해 하는 파 르비오의 모습이 유한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공격이 모두 간파당한 데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미안하지만,네 공격은 나한테 하나도 안 통해.”
“크크,정말 그럴까?"
파르비오의 안구에서 빛이 댐돌았다.
데몬 플래시 (Demon Flash)!'
섬광으로 눈을 멀게 한 다음, 주춤거리는 상대를 공격 하는 데몬가드의 치졸한 술법.
이 역시 알고 있던 유한은 곧장 눈을 감고 물러섰다.
섬광은 한순간이다. 눈을 떴을 때는 달려드는 파르비오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때 반격올 가하면…….
'어?'
그런데 파르비오가 보이지 않았다.
파르비오뿐만 아니라 놈의 졸개인 가고일과 리틀 데몬들, 그리고 파티원인 채린과 얀, 베르디도 안 보였다.
마치 자신 혼자만 동떨어진 세상에 있는 듯한 느낌. 유한이 혹시 결계에 빠진 것은 아닌가 의심할 때 뒤에 서 파르비오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죽어라, 이놈!”
공간올 가르고 나타난 파르비오가 검을 치켜들었다. 황급히 피하려던 유한은 파르비오 뒤에서 검을 쪽 내밀 며달려오는 얀을보았다.
'가세하려는건가?'
유한은 피하는 대신 파르비오의 검을 막았다. 그러면 동생이 파르비오를 일격에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막았...….’
파르비오의 검을 막은 순간, 유한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얀의 검이 자신의 복부를 찌른 것이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유한의 눈앞에 경고창이 떠올랐다.
-크리리컬 일격올 당했습니다. HP가 2,500 떨어졌습니다.
"아뿔싸!”
유한은 눈앞이 함을 느꼈다
단지 검에 찔렸다거나 HP가 뚝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검을 내리쳤던 파르비오는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없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올 찌른 동생뿐. 그 동생의 모습이 비릿하게 웃는 파르비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주변의 풍경도 녹아내린다 싶더니 원래대로 돌아갔다. 사라졌던 가고일과 리를 데몬들의 모습도 보이고, 채린과 얀, 베르디도 보였다.
"앗! 저기 브라더가 나타났어요!”
"꺄악!지그가 악마에게당했에"
말하는 것을 보니 그들도 자신올 보지 못한 모양이다. 분명히 눈앞의 데몬 가드 파르비오의 술수 때문일 터.
“이자식!날 속였구나!”
"크크크, 다 피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건 누구였더라?"
데몬 플래시를 터트린 직후, 파르비오는 일루전 마법으로 유한의 주변 풍경을 왜곡시켰다. 그리고 얀으로 변신 해 유한을 기만한것.
'제길, 방심했어. 바츠 시절의 전투 데이터를 너무 믿 는 것이아닌데…….’
바츠 때는 이런 패턴의 공격을 겪어 보지 못했다. 당시엔 유한에게 동료가 없었기에그때 그와 싸웠던 데몬 가드는 이 기만 술책을 쓸 수 없었다
"잘 가라, 건방진 대장장이야!”
"안 돼!”
파르비오가 검을 치켜들자, 채린과 얀, 베르디가 달려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앞을 가고일과 리를 데몬들이 막아섰다.
‘제기랄, 이대로 죽을 수는....’
여기서 죽으면 지그 철공소에서 다시 와야 한다. 유한은 어떻게든 공격을 막으려 애썼다. 그러나 심각한 타격을 입어서인지 몸이 제대로 음직이지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떨어지는 칼날을 멍하니 바라 보고 있을 수밖에.
퍼억一!
가죽 북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파르비오의 몸이 벌렁 나자빠졌다. 뒤에서 무엇인가가 날아와 파르비오의 뒤통 수를 찍어 버린 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마족들은 물론이고, 유한과 그의 동료 들도 깜짝놀랐다
'저게날 살렸나?'
유한은 근처에 이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쇳덩이를 보았다
npc 대장간에 가면 파는 싸구려 메이스였다. 초보 시절이 지나면 아무도 안 쓸 물건이 데몬 가드의 공격을 저지시킨 것도 모자라 자빠지게 만들었다고 믿어지지가 않 았다.
“어,어떤놈이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파르비오가 화가나 소리쳤다.
"놈? 이 새끼가 지금 나더러 놈이라고 했냐?"
걸쭉한 욕설과 함께 수풀 속에서 누군가가 뚜벽뚜벅 걸어나왔다.
동그란 금테 안경을 쓰고 평범한 사제복을 걸친 남자의 한 손에는 크고 두꺼운 성경이 들려 있었다.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성직자의 모습.
유한은 그 성직자의 차림새보다 칭호와 이름에 주목했다.
추기경 김요셉.
머리 위의 칭호와 이름을 몇번이고 확인한 유한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야,이 똥통에 처박아 죽일 마족 색히들아. 느그들 지금 누구 붙들고 싸우는 거냐? 이것들이 오냐오냐 해 줬더니 개념을 밥 비벼 처먹었나.”
성직자답지 않게 김요셉이 구시렁구시렁 욕설을 내뱉 으며 다가오자, 마족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기경이다! 김요셉이 나타났다!” "모두 응전 태세를 갖춰라!”
파르비오의 명령이 떨어지자 가고일과 리틀 데몬들은 지금까지 싸우던 유한 일행은 내버려 둔 채 김요셉을 향해 전투 준비를 갖췄다
'뭐, 뭐냐? 우린 이제 상관없다는 거냐?'
순식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유한이었다.
꾸역 꾸역 나타나는 마족들.
마족들의 수는 유한 일행을 상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였다. 개중에는 가고일이나 리틀 데몬보다 더 센 몹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만한 병력을 보고도 김요셉은 눈 하나 까딱하지않았다. "왔구나, 김요셉! 오늘에야말로 네놈을 끝장내 주마!”
“지럴 염병하고 자빠졌네. 할 수 있으면 어디 해 봐라.”
말이 끝나자 선두에 선 가고일부터 우르르 몰려갔다. 김요셉은 부지런히 눈동자를 굴리며 땅과 히늘을 까맣 게 메운 가고일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가고일 군단과 충돌하기 직전, 그는 성경을 앞으로 내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돌 쪼가리 새끼들, 당장 흙으로 돌아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요셉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고일들부터 가루가 되어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파도에 밀린 모래성처럼. 가고일들은 차례대로 가루가 되었다
"뭐, 뭐야 저건!”
“사기다! 저런게 어딨어!”
채린과 동생 커플은 직접 보고도 못 믿겠던지 고함을 질렀다.
하긴, 세상에 유저가 말 한마디로 수십 마리의 가고일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걸 듣도 보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한은 달랐다.
말은 좀 거칠게 했지만. 그는 김요셉이 방금 무슨 스킬을 썼는지 알고 있었다.
김요셉이 발동한 스킬은 '절대 언령’이었다.
상대를 지목해 ‘흙으로. 돌아가라’ 고 외치는 것으로 존재를 말살시킬 수 있는 성직자의 극강 히든 스킬,'절대 언령'.
이 절대 언령 스킬을 배우기는 에르젠 합금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설사 배운다 한들 스킬 성공률이 무척 낮기 때문에 사용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익히려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김요셉은 절대 언령을 익히고 있고,한번에 수 십 마리의 가고일을 쓸어버릴 정도로 스킬의 위력과 성공률도 높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추기경라는 칭호가 알려 주듯 그는 하이 프리스트 유저보다 훨씬 높은 실력자였다. 아르페디아 온라인 최고의 성직자인 것이다.
최고의 성직자인 그에겐 또 다른 명함이 있었다.
아르페디아 지존.
존스럽고 성의 없어 보이는 캐릭터 명과 달리 그는 아르페디아 온라인 랭킹 1위의 유저였다.
그러나 유한은 김요셉이 이런 욕설 잘하고 껄렁한 캐릭터일 줄은몰랐다.
“크윽, 역시 명불허전이로군.”
"이런 시뱅이....... 형이 바쁘니까 똥 폼 그만 잡고 빨리 덤벼라"
양손에 하얀 장갑을 낀 김요셉은 마족들을 보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카아악!”
"죽여 주마, 인간!”
리틀 데몬을 비롯해 마족들이 김요셉에게 공격을 퍼부 었다.
김요셉은 티를 안 냈지만 분명 도발 스킬을 쓴 것 같았다. 아님 방금 전까지 당황해 하던 몸들이 저렇게 발끈할 리가 없었다.
"올마이티 프로텍션(Almighty Protection)."
씩 썩소를 지은 김요셉은 최강의 방어 스킬을 가동했다.
홀리 실드 스킬을 1랭크 찍고 극악의 퀘스트를 얻어서 배운 올마이티 프로텍션은 마족들의 강력한 마법 공격올 무위로 만들었다.
"퀴클리! 스크랭스! 홀리 웨폰!"
자신에게 연달아 버프를 건 김요셉은 섬전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가 휘두른 성경에 맞은 리틀 데몬이 히늘의 별이 되 어 사라졌고, 그가 뻗은 발차기에 여러 마리의 마족이 도미노처럼 땅바닥에 쓰러졌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김요셉은 마족들을 연달아 계속 두들겨 팼다. 어찌나 번개같이 후려치는지, 마족들은 마법도 제대로 날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기만 했다.
"거짓말…….”
"뭐 저런 괴물이 다있어?"
얀과 베르디는 연방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사이 포션을 마시고 HP를 회복한 유한은 어째서 김 요셉이 나타난 것인지 상황 파악을 해 보았다.
‘그리고 보니 이놈들, 처음부터 추기경을 기다린다고 했었어.’
에이린에게 들은 바 없었던 강력한 몸의 존재는 김요셉 때문이 아닐는지? 자세한 건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야 파르비오. 이젠 너 하나 남았다”
어느새 졸개 마족들올 다 해치운 김요셉이 데몬 가드 파르비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검을 고쳐 잡은 파르비오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김요셉을 노려보던 그는 눈을 부릅뜨고 안광을 번득였다.
"데몬플래시!”
일행의 눈앞에서 김요셉과 파르비오의 모습이 사라졌다
유한은 파르비오가 자신에게 쓴 기만술을 김요셉을 상대로 썼음을 눈치했다.
아마도 파르비오는 자기 일행으로 변신해서 기습을 하 려는 모양. 과연 최강 성직자의 대응은 어떠할 것인가?
"아이 오브 트루스(Eye Of Truth)."
김요셉의 말소리가 짧게 들린다 싶더니 이내 둘의 모습 이 유한 일행에게 다시 보였다.
자신의 술법이 깨지자 파르비오는 당황하는 투가 역력했다. 그런 그의 얼굴에 김요셉이 던진 성경이 날아갔다
"이런 쓰벌넘이 누굴 상대로 사기 치려고! 마왕 졸다구 주제에 감히 나하고 맞먹으려 들어?"
"커억!"
파르비오는 콧대가 성경에 뭉개진 상태에서 김요셉이 날린 주먹을 맞았다. 파르비오의 얼굴이 납작해졌지만, 김요셉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때리고 또 때려 눈, 코, 입 올 아예 안으로 집어넣었다.
"크억! 지옥의 불…… 쿠엑! 일루…… 크어억!"
파르비오는 어떻게든 공격을 해 보려 애썼지만, 김요셉은 전혀 틈을 주지 않았다.신성력이 깃든 김요셉의 주먹 에 맞을 때마다 파르비오의 HP가 쪽쪽 내려갔다.
“크으옥! 내가 인간 따위에게 죽다니!”
결국 파르비오는 성불(?)했다. 강력한 마족 몬스터를 때려잡고도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경험치를 받았는지, 김 요셉은 코웃음을 칠 뿐이다.
"하여간, 드림맥스 인간들은 매번 날 번거롭게 한다니깐.”
위를 보며 누군가를 씹어 대던 김요셉은 유한 일행 쪽 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 팬찮아요? 다친 데 있으면 제가 치료해 드리죠.”
"아뇨, 이미 저희가 다 알아서 치료했습니다.”
"관심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벌하게 몬스터를 두들겨 패던 양반이 상냥하게 말을 건네자, 유한 일행은 당최 적옹이 되지않았다.
대체 어느 것이 추기경 김요셉의 본모습인가?
"여길 찾는 건 퀘스트를 하는는 성직자들뿐인데, 여러분들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김요셉이 관심올 가진 것은 유한 일행에 성직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 유저로 보이는 소녀가 하나 있긴 했지만,성직자 같진않아 보였고.
"로므나의 성수를 좀 구하려고요. 그런데 김요셉 님은 왜?"
"아, 저요? 전 우라질 놈의 퀘스트?????? 아, 죄송합니다.
번거로운 퀘스트가 하나 생겨서 말이지요.”
"번거로운 퀘스트요?"
"교황님께 하늘의 문과 별빛에 대한 정보를 여쭈었는 데 엉뚱한 퀘스트를 주지 뭡니까?"
'헤븐즈 게이트와 관계된 퀘스트였나?'
유한의 눈동자가 빛났다.
추기경이란 칭호가 알려 주듯, 김요셉은 헬리오스 교단의 최고위 사제였다.
1위 랭커로서 랭킹 관리만 하고 부캐를 키우며 빈둥거 리던 그는 저번에 접속했을 때 천사의 전언을 들었다 이후, 그는 다른 랭커들처럼 하늘의 문을 찾기 시작했다
"그 정보는 교단의 수장인 교황님만 알고 있다고 하더군요. 원만한 성직자 유저들은 접견도 못하지만, 전 추기경이란 칭호가 있어서 말이지요.”
"그래서 정보를 듣기 위해 퀘스트률 수행하게 된 겁니까?"
"그런 거죠. 뭐 마족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하던가?"
그래서 가고일이나 데몬 가드 같은 악마형 몬스터들이 날뛰었던 모양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퀘스트를 수행하다 보니 마족들 이 뭔 지럴을…… 흠흠, 죄송합니다. 뭔 음모를 꾸미는지 알겠더군요.”
"무슨 음모인데요?"
베르디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묻자, 김요셉은 냉큼 대답해 주었다. 역시 남자라는 동물은 미소녀에 약 한모양이다.
"시계의 마왕을 되살리려 한답니다.”
'음, 시계의 마왕을?'
시계의 마왕은 마의 시계탑 던전의 보스였다
마의 시계탑이 본 서버에 적용되었을 때, 누가 먼저 던전을 클리어하는가를 두고 시합이 벌어졌었다. 그 결과 시계추 검법을 만들어 낸 바츠가 가장 먼저 시계의 마왕 올 잡았고, 이후 그의 플레이를 따라 한 몇몇 유저들도 던전을 클리어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시계의 마왕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의 시계탑도 붕괴하여 던전 이름도 '폐허의 시계탑' 으로 바뀌었다. 보스 자리도 다른 마족 몬스터가 차지 했다.
게임 내 NPC들은 시계의 마왕이 용자들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죽었노라 떠들어 댔다. 한때를 풍미했던 광룡 카세라스처럼, 시계의 마왕도 유저들에게 유희를 만끽하게 해주고 물러난 것이다. 그런데 그 시계의 마왕을 다시 부활시킨다니.
"설마 로므나의 성수로요?"
"아니, 성수로 어떻게 마족을 부활시켜요?"
채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올 지었다. 그것은 얀이나 베르디, 심지어 유한도 마찬가지였다. 마왕의 부활을 위해 수백 명의 인신 공양을 바친다고 하면 모를까 성수로 마족을 살린다니?
그러나 김요셉은 그들에게 납득이 갈 만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보통 생각하기론 그렇죠. 하지만 이 로므나 유적은 태고 신화시대의 유적입니다. 이곳의 신전에 모시던 신은 오직 한 분으로 우주 만물의 창조주지요.”
"창조주라면, 천계의 신들이 신으로 섬긴다는 지고신 (侄高神) 엘 라하드 말입니까?"
주신 제논조차도 신으로 섬긴다는 엘 라하드.
유한도 게임을 적게 한 건 아니라서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어허, 하찮은 인간이 지고신의 이름올 망령되게 불러 선 곤란하지요.”
"뭐 어때요? 게임인데.”
“게임이라도 지그님이 신관이었다면 분명 패널티를 받았을 겁니다. 한동안 스텟이 떨어지고, 명성치 깎이고.....”
잠시 이야기가 샜지만, 이내 김요셉은 원래 이야기로 돌아갔다.
“아무튼 이 로므나의 유적은 지고신율 숭배하던 도시 였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지고신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 마족들에게도 어버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곳 성 지 로므나는 다른 곳과 달리 마족들도 출입을 할 수 있는 곳이지요.”
"그러니까 지고신의 성수로 마족들도 살릴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지고신의 은총은 무한하고 차별이 없으 니까요. 그의 은총은 태양과 같고, 바람과 같고, 물과 같은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는 김요셉은 정말 성직자다워 보였다. 유한 일행도 이제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늑대가 양을 잡아먹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늑대를 나쁜 짐승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늑대 입장에선 먹고 살자고 한 짓에 불과하다. 오히려 늑대는 인간들이 목축지를 넓힌다고 자기네 영역을 침범한 것을 나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시계의 마왕도 마찬가지로, 인간들 입장에선 '죽일 놈’ 이지만 미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훌륭한 지배자’ 였다. 그리고 지고신의 입장에서는 미워할 수 없는 자식이고.
"왠지 이 성지가 버려져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지고신은 전지전능하지만 대신 철저한 중립이었다. 옹졸하고 이기적인 존재들은 자기네를 돌봐 주고 편들 어 줄 존재를 갈망하게 되어 있다.
그 결과 인간은 인간의 신을, 마족은 마족의 신을 추앙 하게 된 것이다.
대범하고 관대한 지고신은 피조물들이 자신을 버리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삐져서 재앙올 일으키 거나 신탁을 내리는 일도 없었을 터
"그래서 헬리오스 교단올 비롯한 여러 교단이 이 성지의 존재를 함구해 왔습니다. 기존의 종교 질서를 무너트 릴 수 있다면서.”
"쪼잔하구먼.”
설정일 뿐이지만, 쪼잔하단 느낌이 들었다.
“쪼잔해야 게임을 하지요. 몬스터가 불쌍하다고 내버려 두면 경험치는 어떻게 올립니까? 저도 마족들에게 별 감정은 없습니다만,일단 퀘스트를 완수해야 정보를 얻을 수있기에..."
그래서 김요셉은 마족들의 훌륭한 지배자인 시계 마왕의부활을 막으려 하고 있었다.
유한 일행은 본의 아니게 휘말리게 된 것이고.
“휘말려도 제대로 휘말린 것 같은데?"
“그러게.”
유한 일행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김요셉의 이야기를 듣느라 신경 써서 몰랐는데, 어느 틈엔지 주변 광경이 달라져 있었다.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혔고, 벽면에는 어지럽게 돌아가는 톱니바퀴들과 쨰깍거리는 시계들로 가득했다. 천장에서 늘어진 쇠사슬 사이로는 좌우 왕복 중인 시계추와 진자들이 보였다.
“꼭 마의 시계탑 던전에 들어온 것 같네"
"이런 우라질!"
유한의 독백과 김요셉의 욕설이 무엇을 알려 주는지는 뻔했다.
마족들이 부활시키려 한 존재, 시계의 마왕이 부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