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화 자원 대란 (109/143)

자원 대란

자원 대란

1

아버지의 엄포로 유한은 사흘 후에야 간신히 게임에 접속할 수 있었다.

<아트페디아 대륙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게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유한의 눈앞에 한적한 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번에 엘프의 숲에 들렀다가 지그 철공소로 돌아가던 중 종료해서 그리되었다.

퀘스트를 같이 했던 동료들은 제각기 플레이를 하기 위해 흩어진 모양이고, 블랙은 귓속말로 연락을 해 보니 먼저 철공소에 당도해 있었다.

"이런, 의리 없는 자식 같으니라고!"

유한은 짐마차를 타고 철공소로 향했다.

그런데 게임 내의 분위기가 묘했다. 마치 무슨 큰 사건 이 벌어진 듯 유저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웅성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나중에 리지스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그가 케이트 산맥에 도착하자 철공소 주변에 모여 있던 유저들이 파도같이 몰려들었다.

"우아, 지그 님이다!"

"지그 님! 뇌제로 변신해 봐요!"

"버츄얼 에이지의 리포터 미루입니다. 뇌제가 되면 어떤 능력이 생기죠?"

보통 때보다 몇 배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유한에게 달려들어 뇌제의 홀을 보여 달라거나 뇌계로 변신해 보라고 난리였다.

사이버 캐릭터 미루는 유한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인터뷰를 요구하기도 했다. 저번처럼 유한이 나타나기를 진을 치고 기다렸던 모양.

그러나 유한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가 일언반구 없이 인파의 물결을 뚫고 철공소로 다가 오자 입구에 서 있던 블랙이 점잖게 타일렀다.

"다들 오래 기다렸는데 한 번 보여 주지 그래?"

"냉정하군, 후손."

"냉정해야지. 저 많은 사람 중에 뇌제의 홀을 노리는 암흑의 무리가 있으면 어떻게 해?"

"음, 확실히 그건 그렇군."

유한이 대충 꾸며댄 변명이 수긍이 갔던 모양인지, 블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철공소로 들어오려는 사람은 네가 막아줘"

"알았다. 그건 염려하지 마라."

그렇게 군중들을 블랙에게 말겨 버린 유한은 철공소 안으로 들어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의 고난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인기 많네, 뇌제 양반. 뭐하느라 이제 나타나는 거야?"

철공소 안에 기다리고 있던 리지스가 삐딱한 자세로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하긴, 이런저런 일로 5일 동안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으니 화가 날 만도 할 것이다. 가뜩이나 퀘스트니 뭐니 해서 작업에 손을 놓고 있지 않았던가.

"미안, 사정이 좀 있었어."

"미안한 거 알면 당장 가서 작업을 해. 네가 농땡이 치는 동안 생산 물량이 절반으로 똑 떨어졌으니까."

리지스는 유한을 블랙 아이언 생산 공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선 알세인을 비롯한 NPC 대장장이들이 부지런히 부품을 생산하는 중이었고, 한쪽 구석에선 갈리가 블랙 아이언을 조립하고 있었다.

예전과 달리 갈리가 농땡이를 부리지 않았지만, 유한이 만들어야 할 몫의 블랙 아이언 부품은 창고 한쪽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저기 쌓인 부품들의 몇 배나 되는 고객들의 항의가 내 가슴에 쌓여 있지."

"앵? 항의가 들어왔단 말이야?"

지금까지 납품이 늦어진다고 투덜대긴 해도 정식으로 항의가 들어오지는 않았다.

거대 강칠 병기라는 게 워낙에 많은 재료와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라,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렇게 수긍하던 고객들은 게임 방송에 나온 지그를 보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지그가 뇌제가 되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그러나 지그가 모험을 하는 동안 주문한 블랙 아이언의 생산이 늦어진다고 생각하니 슬그머니 짜증이 치민 것이다.

"얼른 납품을 해 달라고 보채는 사람들이 늘었어."

"알았어. 이제부터 열심히 만들 테니까 걱정 마."

그러나 작업장에 복귀한 유한에게 고객들의 또 다른 요구도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블랙 아이언과 구분이 되게 자신이 원하는 색으로 도장을 해 달라는 사람도 있어. 뿔이나 장식 같은 걸 달아 달라는 사람들도 있고."

앞서 납품된 블랙 아이언은 다 블랙과 똑같이 생겼다. 지금까지는 구매자가 손을 써서 외양을 바꾸었지만, 많이 불편했던 모양.

"만들기도 바쁜데 귀찮은 걸 다 요구하네."

"이 바보야, 그게 바로 비즈니스야. 자동차가 한 가지 색깔만 찍어 내는 거 봤어? 자기 게 남 거랑 똑같은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고."

"알았어. 뭐,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공짜는 아니지?"

"크크크, 당연하지!"

외양을 바꿔 주는 대신 추가로 돈을 받기로 했다는 리지스다.

"아참, 그리고 철 생산량을 좀 더 늘리도록 해."

"왜? 나 없는 사이에 조합원이 더 늘었어?"

유한이 의아한듯 물었다.

"그게 아니라 뭔가 심상찮은 일이 터질 것 같아서 말이야."

"심상찮은 일이라니?"

그가 전혀 모르는 듯하자, 리지스는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너 게임은 안 하더라도 정보는 좀 알고 다녀라."

"알았어. 노력할게.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벌어졌지. 그것도 이주 대형 사고가. 마노스 제국에서 변란이 벌어진 모양이더라."

"변란이라고?"

게임 내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했더니, 그 때문이었던 것일까.

"대체 무슨 변란이래?"

"반란이 일어났대. 그거 진압한다고 철십자 길드가 황도를 봉쇄하고 NPC도 막 죽이고 난리도 아니라나 봐."

리지스의 말에 유한은 두 눈을 똥그랗게 떴다.

반란이라니. 철혈의 여제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도대체 누가 반린을 일으켰단 말인가?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봐."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쪽지랑 귓속말로 들려오는 정보에 따르면 제국 내 강경파가 그랬다는 말도 있고, 철십자 길드가 반란을 유도했다는 소문도 있어. 아무른 철십자 길드에서 민심을 수습하고 뒷정리를 한다고 나섰는데 쉽지가 않은가봐."

"그래서? 잘못하면 내전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거야?"

"가능성이 있으니까 준비해 두자는 거야. 너도 알다시 피 전쟁 나면 무구 수요가 폭증하잖아."

그래서 리지스가 지그 철의 생산량을 늘리라고 한 것이 었다. 유한은 무구 생산에서 손을 뗐지만 지그 철강 조합의 길드원들이 대신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만든 무구를 팔아 주는 사람은 다름이 아닌 리지스였다.

"철십자 길드라면 내전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텐데."

누가 뭐래도 철십자 길드는 아르페디아 최고의 거대 길드다.

자신들이 터 잡고 있는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는 걸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알아? 예전의 우리처럼 뒷 공작을 펼치는 사람이 있을지."

그 덕분에 죽음의 상인이란 영광스럽지 않은 칭호를 받은 유한이다.

"야, 리지스. 너 입 조심해. 남들 귀에 들어가면 어떡하려고."

"알았어, 미안."

그녀에게 주의를 준 유한은 곧바로 블랙 아이언 생산을 시작했다. 그동안 게으름 핀 것을 만회해야 하기에 '노력 가' 칭호를 달고 작업에 속도를 높였다.

-블랙 아이언의 마력 콘트롤러를 만들었습니다

 스킬 경협치 200을 얻었습니다.

-블랙 아이언을 조립했습니다. 괜찮은 제품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유한은 블랙 아이언 생산에 몰두하는 한편, 블랙 아이언에 색을 칠하고 장신구를 달 대장장이들을 뽑아서 작업을 맡겼다.

공방에서 완성된 블랙 아이언들은 창고에 보관되거나 영혼이 깃들기 전에 고객이 요구하는 색으로 칠해지고 장식이 달렸다.

이렇게 색다른 블랙 아이언들이 하나둘 납품되자, 고객들의 요구도 보다 다양해졌는데. "

"머리에서 발끝까지 순금으로 도금해 달라고?"

"응, 따로 금괴까지 잔뜩 보내왔어."

"도대체 누가 그런 요구를 한 거야?"

"골드맨이라는 유럽 유저인데, 웨스턴 최고의 갑부래."

"완전 돈 지랄이군."

유한이 돌아오면서 블랙 아이언의 생산과 납품은 빨라 졌고, 수출(?)도 조금씩 늘어났다. 주문 역시 늘어났음은 물론이다. 최근엔 국왕이나 공작 같은 고위 귀족 NPC들 로부터도 주문이 들어오곤 했다.

그러나 줄어든 것도 있었다. 뇌제 출현 이후 지그 철공소에 몰려들었던 유저들이다.

"흥을 잃었나 봐. 깜짝 출현한 뇌제가 철공소에 처박혀 잠자코 있기만 하니까."

"그럼 세계 정복이라도 할 줄 알았나?"

채린의 말에 유한은 코웃음을 쳤다. 뇌제의 홀은 그에게 있어 가지고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다. 전투 직업군이라면 모를까 지그는 생산직의 대장장이 캐릭터가 아닌가.

이미 게임에서 대장장이로 출세한 유한이기에 그와 상관없는 쪽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고, 단지 호기심 때문에 몰려온 유저들을 위해 쇼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자신과 함께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뇌제의 홀을 사용할 뜻은 있지만 말이다.

"정말 세계 정복 할 생각 없어? 너한테 깨진 베히모스 는 얼마 전에 마노스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고 하던데?"

"아아, 그거?"

유한이 작업에 몰두하는 사이, 마노스 제국에 변화가 있었다.

리지스가 은근히 원하던 내전은 터지지 않았고, 반란을 진압했다는 철십자 길드가 계국의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리고 베히모스는 황제가 되었다.

유저가 일국의 지배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방송으로부터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베히모스는 버추얼 에이지 팀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바쁘다는 핑계였지만, 저번에 망신살을 뻗친 동영상을 방송한 데 대한 앙갚음이라는 말도 있었다.

대신 재상이자 수석 궁정 마법사가 된 노벨이 대관식 장면을 공식 홈페이지에 을려 대단한 반향을 샀다.

"그런데 지그야, 너 블랙 아이언 만들어야 하지 않아?"

"만들어야지."

"그런데 왜 오늘은 일반 무구를 만들고 있어?"

채린의 말대로 지금 유한은 개인 작업실에서 무구를 만들고 있었다. 리지스가 보면 펄쩍 뛸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만들고 싶어도 이젠 만들 수가 없어."

"왜?"

"가장 중요한 재료가 떨어졌거든. 그거 없으면 블랙 아이언을 생산 못해."

그 때문에 오늘 아침부터 유한도 갈리도 손을 놓고 있었다.

"재료가 떨어져? 재료는 항상 리지스나 골드러시 상인 연합에서 대 줬잖아."

"그랬는데 어쩌다 보니 문제가 생겼어."

'그걸' 구하기 위해서 사장의 칭호를 가진 리지스가 직접 나서야만 했다. 어느 정도 기반이 닦인 뒤로는 늘 NPC 일꾼들이나 휘하의 상인 유저들을 부려 먹던 그녀 였는데.

"대체 그 중요한 재료라는 게 뭐야?"

"그게……."

유한이 막 설명하려는 그때, 개인 작업실 문이 덜컹 열리며 송코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예요?"

"손님이 찾아왔어. 복장을 보아하니 상인 같던걸."

혹시 블랙 아이언을 주문하러 온 것인가.

지금은 재료가 떨어져서 곤란한데.

어쨌거나 찾아온 손님을 의면할 수는 없는 노룻이라 유한은 응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2

응접실에는 상인 복장의 NPC가 유한을 기다리고 있었 다. 혹시 홉스인가 했는데 그가 아니었다. 말상에 째진 눈을 가진, 스톤이란 이름의 처음 보는 NPC였다.

스톤은 유한이 응접실로 들어오자 호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지그 님이십니까?"

"그런데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전 카잔 공국에서 온 스톤이라 하는데, 철이나 금속을 주로 거래하는 광물상입니다. 이번에 지그 님을 찾아 븬 것은 제가 가진 광물을 판매하기 위해서입니다."

"광물이요? 광물이라면 쓰고 남을 정도로 충분히 있는데요."

유한이 일부러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스톤이 철공소 근처에 광산촌을 건설한 뒤로 근방에 대규모 철광산과 구리 광산, 크롬 광산이 들어섰다. 가스톤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근방의 토지들을 더 사들여 납, 주석, 아연 둥의 광산도 개발히는 중이었다.

이런 광산들에서 생산된 광물들은 대부분 지그 철공소에서 소모되고 남은 것들은 리지스가 3번째로 만든 '리지스 종합 상사' 를 통해 판매되었다.

덕분에 철공소에 광물은 충분히 있었고, 그 밖의 것들은 동업자인 리지스와 골드러시 상인 연합에서 구해다 주었다.

그렇기에 유한은 다른 광물 상인으로부터 핑물을 구입 할 이유가 없었다. 간혹 팔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지만, 리지스나 골드러시 상인 연합과의 관계를 생각해 거절했다.

"저도 지그 철공소가 어떤 곳인지 잘 압니다. 리지스 종합 상사와 골드러시 상인 연합, 그리고 광산왕 가스톤 씨와 동업읕 하고 있지요. 하지만!"

여기서 말을 끊은 스톤은 주머니 속에서 네모난 금속괴 룔 하나 꺼내서 유한에게 보여 주었다. 심드렁하던 유한의 눈빛이 단숨에 진지하게 바뀌었다.

"에르젠 합금은 쉽게 구할 수 없을 텐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스톤이 꺼낸 것은 에르젠 합금괴였다.

안 그래도 현재 철공소에서 뚝 떨어진 재료가 에르젠이다.

에르젠은 마법을 영구적으로 유지시키는 금속.

블랙 아이언의 심장과 마력 컨트를러, 동력 전달 장치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재료로, 그동안 리지스와 골드러시 상인 연합에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납품해 주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에르젠 가격이 슬슬 오른다 싶더니 납품이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리지스와 골드러시 상인 연합이 입수되는 에르젠을 최우선적으로 유한에게 보내는 데도 그렇게 되었다.

"요즘 해의 무역이 빈번하다는 것은 아시지요? 덕분에 에르젠도 가격이 많이 을랐습니다."

관련한 이야기는 유한도 들었다. 다른 대륙의 외국 유저들이 아르페디아의 마법 무구나 아티펙트들을 탐내면서 수출이 늘어났디는 이야기.

수요가 더 늘었는데, 공급이 한정적이면 값은 당연히 오르기 마련. 그리고 자금이 모자라는 이의 손에는 들어 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수도 있다.

다행히 유한에겐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이 많았다. 리지스 신용 금고에 맡겨 놓은 돈과 철공소 집무실의 금고, 인벤토리에 있는 돈을 모두 합치면 천만 골드는 족히 되었으니까.

지금 에르젠이 떨어져 작업이 일시 중단 되었다고 하지만 그리 걱정하지는 않았다. 돈은 충분히 있으니 오르면 오른 만큼 값을 주고 사면 되는 일이니까.

"듣자니 요즘 지그 철공소가 에르젠 수급에 애로 사항 이 많다고 합니다만?"

"뭐 애로라고 할 정도는 아닌데요."

말은 그리했지만, 유한은 속으로 상계의 정보력에 혀를 내둘렀다. 하긴 물품의 이동과 납품 수량, 가격 둥을 파악하면 상단이나 공방의 운영 상태를 가늠하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다.

"어떻습니까? 저랑 거래하시겠습니까?"

스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유한에게 거래와 관련한 창이 떠올랐다.

[상인 스톤의 거래】

판매 상품 : 에르젠 합금괴

가격 : 합금괴 하나당 10만 골드

'헉, 10만골드이라고?'

10만 골드라면 유한이 알기로 에르젠 현 시세의 2배다. 에르젠이 희귀해서 비싸다고 하지만 완성된 마법 무구나 아티펙트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그저 재료인 합금괴가 10만 골드씩 하는 경우는 없었다.

"열 개 이상 구입하시면, 구만오천 골드까지 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이게 누구한테 바가지를 씌우려고!'

유한은 버럭 화를 내려다가 참았다.

NPC 에게 회를 내 봐야 뭐하겠는가. 자신의 입만 아플 뿐이지.

"됐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 보세요."

"허허, 그러지 마시고.……."

스톤이 계속 거래를 요청했지만, 유한은 모두 거절했다.

다급한 상황은 아니니, 좀 더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럼 리지스와 골드러시 상인 연합에서 에르젠을 다시 공급해 줄테니까.

유한의 거듭된 거절에 실망했는지, 스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나중에 생각이 바뀌시면 저희 '미네랄 상회'로 찾아와 주시기 바랍니다. 남바린 영지에 지점이 있으니 그쪽을 이용하십시오."

NPC 스톤이 나가자 유한은 블랙 아이언 공방으로 향했다.

유한과 갈리가 손을 놓았다고 하지만 공방은 여전히 돌아가는 중이다. 에르젠이 필요한 부품들은 만들지 못하지만 뼈대라든가 장갑 같은 부품들을 생산히는 데는 차질이 없었다.

유한은 알세인을 비롯한 대장장이들의 작업을 지도하고 있는 갈리에게 다가갔다.

"스승님,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지요."

"뭘 말이냐? 뭐든지 물어보거라."

"혹시 에르젠 합금 만드는 법을 아세요?"

유한의 물음에 갈리는 움찔했다. 방금 전까지 해도 자신만만하던 그의 태도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제가 듣기로 실력 좋은 대장장이들은 에르젠 합금 기술을 알고 있다고 하던데, 드워프인 스승님도 알고 계시지 않나 해서요."

"어흠, 그게……."

"메카 드래곤도 만드는 실력을 가진 스승님이시니 에르젠 합금 기술도 알고 계시겠지요?"

그 때문에 유한은 갈리에게 달려온 것이다.

드워프는 인간보다 기술이 뛰어나니까 에르젠 합금 기술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만약 갈리가 에르젠 합금 기술을 알고 있다면. 현 상황을 타계할 수 있다.

"그, 그게 난 제조 방면 특기라서 말이다. 소재 방면은 아무래도 조금 뒤쳐진다고나 할까?"

"그래도 에르젠 합금 기술 정도는 알고 계시겠죠?"

"이놈아, 그거 알면 내가 이렇게 손 놓고 있겠냐?"

유한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를렸다.

드워프라고 다 에르젠 합금 기술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 었다. 갈리는 에르젠 합금 기술을 모르고 있었다.

"그건 합금술 중에서도 상당히 고급 기술이야. 드워프 중에 그걸 알고 있는 자들은 부족의 고위층 인사 정도지."

"그래요?"

유저의 경우는 합금 3랭크가 되면 퀘스트를 통해 에르젠 합금 기술을 익힐 수 있다. 그러나 그 퀘스트라는 게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공략 사이트의 정보에 따르면, 진행 상황이나 친밀도에 따라 수행 과제가 들쑥날쑥하게 변한다고 한다.

거기다 워낙에 어렵고 까다롭다 보니 열에 다섯은 하기도 전에 포기해 버린다 하고, 퀘스트 진행 중에 그만두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덕분에 현재 아르페디아에서 에르젠 합금 기술을 알고 있는 유저는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소문에 따르면 제작에 들어가는 재료도 구하기 만만찮은 모양..

그래서 거래되는 에르젠들도 대부분 몬스터가 드랍한 것들이다.

"아무튼 드워프들도 제조법은 알고 있다 이거네요."

"그렇지."

"그럼 어떻게 노스아크에서 에르젠을 구입할 방법이 없을까요?"

"무리야. 에르젠은 중요 물자라서 철저하게 관리되고있다. 대의 판매는 엄금인데다가 밀수하다 들키면 그냥!"

갈리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 유한은 드워프들에게서 에르젠 을 구입할 생각을 접었다. 간신히 드워프들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바했는데 에르젠 좀 얻겠다고 다시 악연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일단은 리지스 녀석을 기다려 봐야겠군.'

그렇게 결정했지만 유한은 마냥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공식 홈페이지와 공략 사이트의 게시판마다 지그 철공소에서 에르젠을 매입한다고 광고 글을 을렸다. 그러는 사이 리지스가 돌아왔다. 유한은 한달음에 달려 나가 그녀를 맞아들였다.

"수고했어. 에르젠은?"

"구해 가지고 왔어."

리지스가 작은 나무 상자에 고이 담겨 있는 에르젠 괴들을 보여 주었다. 저 정도면 블랙 아이언 5대 분의 심장과 마나 콘트를러를 만들 수 있을 듯했다.

"가격은 개당 십이 만 골드야."

"뭐어!"

유한은 그 자리서 펄적 뛰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리지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하루가 다르게 에르젠 시세가 오르고 있으니까."

"수출 때문인 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데."

수출로 인해 에르젠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한다 해도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리지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배후 세력이 있는 것 같아.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군소 상단들이 한꺼번에 움직여 에르젠을 사들였거든. 누군가 사재기를 부추긴 세력이 있는 모양이야."

항상 그렇게 자기네 이득만 보겠다고 시장에 깽판을 놓 는 세력들이 있다. 리지스는 물론 골드러시 상인 연합에 서도 배후 세력을 캐는 중이지만, 아직 알아낸 것은 없다고.

"아무튼 그나마 싼 곳을 찾던 중에 발리안한테서 에르젠을 매입했어."

"뭐? 그 인간한테서?"

유한의 눈이 둥그레졌다.

"발리안은 에르젠을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

'그 작자가 에르젠 합금 기술을?'

사실 발리안이 익히고 있다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는 귀련과 더불어 아트페디아 최고의 대장장아 아닌가. 피 토하는 퀘스트를 돈질로 해결했는지, 아님 실력으로 돌파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현재 발리안의 철공소는 재건되었고, 그가 만드 는 거대 병기인 레기온도 차질 없이 생산되고 있단다. 거기다 부수적으로 에르젠 판매에 나서 고수입을 을리고 있다고.

"지그 너도 이참에 에르젠 합금 기술을 익혀. 조건은 충분히 되지 않아?"

"조건이야 충분히 되지. 하지만 익히는 게 쉽지 않다고."

에르젠 합금 기술을 익히기 위해선 힘든 퀘스트를 수행 해야 한다.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럼 자연히 블랙 아이언 생산에 소홀해지게 된다.

'하지만 계속 중요 재료를 외부로부터 도입만 해선 안 돼.'

그것이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상황으로 알았다. 어떻게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어떻게든지 말이다.

3

며칠 후, 유한은 오랜만에 남바린 영지에 나왔다. 리지스가 준 에르젠이 다 떨어져 미네랄 상회에서 구입하기 위해서 였다.

리지스에게 에르젠을 넘겨받고 나서 그는 여러 곳을 돌 아보며 에르젠 시세를 알아보았다.

어느 순간 껑충 뛰어오른 에르젠의 시세는 12∼15만 골드 사이.

어디를 봐도 미네랄 상회가 제시한 가격보다 비쌌다. 골드러시 상인 연합조차도 12만 골드 이하로는 넘겨주기 어렵다고 할 정도다.

"여기가 미네랄 상회의 남바린 지점인가."

유한은 미네랄 상회의 지점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건물의 외양은 화려하긴 하지만 천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히려 유한의 철공소 쪽이 더 품위가 있어 보일 정도였다.

"실례합니다."

유한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점원으로 보이는 NPC가 넘죽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슨 일이십니까?"

"에르젠을 좀 구입하려고 하는데요."

"그러십니까? 그럼 여기 앉아서 기다려 주십시오. 지점장님을 불러 오겠습니다."

점원은 유한이 꽤 큰 거래를 하러 온 고객임을 확인하곤, 즉각 지점장을 찾으러 사라졌다.

잠시 후 지점장이 나왔다.

'코렐' 이라는 이름의 지점장은 NPC가 아닌 유저였다. NPC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유한도 초보 시절엔 NPC 대장장이 파부치 밑에서 일했으니까.

코렐은 인상이 너무 안 좋았다. 매부리코에 압삽한 눈빛을 한 것이 상인이라기보다 사기꾼처럼 보였다.

"에르젠을 사러 오셨다고요?"

"케이트 산맥에서 철공소를 하고 있는 지그라고 합니다."

유한의 소개에 지점장 코렐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마치 맛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그것과도 같이.

"저희가 가진 에르젠 합금괴가 삼십 개 정도입니다만"

"모두 파십시오."

"그럼 가격이…… 육백만 골드로군요."

"뭐라고요?"

유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톤이 말한 10만 골드거나 그것보다 조금 더 비쌀 거라 생각했기에 그 2배나 되는 가격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번에 스톤이란 NPC가 왔을 땐 개당 십만에 팔겠다고 했다고요!"

"그거야 저번엔 그랬겠지만…… 최근에 여러 곳에서 매입을 원하고 있어 괴 한 개당 이십만 골드에 팔기로 방침을 바꾸었습니다."

저번이라고 하지만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사이에 2배나 더 올리다니

더구나 20만 골드면 블랙 아이언 1기 가격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였다.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었다.

"이거 너무한 것 아닙니까!"

유한이 항의하자 코렐은 매몰차게 말했다.

"뭐 싫으시면 말고요. 저희도 팔곳은 많으니까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왜 그리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군요. 지그 님이 손해 볼 일도 아니잖습니까? 다른 대장장이들처럼 지그 님도 생산한 마법 무구나 골렘을 더 비싸게 팔면 되는 일 아닙니까?"

사실 코렐의 말대로 해도 유한이 손해 볼 것은 없다.

기존에 50만 골드에 판매하던 블랙 아이언을 에르젠이 오른 만큼 을려 받으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격을 을리면 금전적인 손해는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신뢰도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갑자기 가격이 오르면 고객은 불만을 쏟아 낼 것이다. 이리저리 흉을 잡는 사람도 나을 것이고, 그리되면 블랙 아이언과 지그 철공소의 평판이 떨어진다.

거기다 에르젠 합금 기술을 가진 발리안에게 뒤지게 될 것은 뻔한 일.

"어쩌겠습니까? 사시겠습니까?"

"그만두겠습니다."

유한은 곧바로 미네랄 상회의 지부틀 박차고 나가 버렸다.

거래가 깨지자 점원 NPC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지부장인 코텔은 코웃음을 칠 따름이었다.

"딴 데도 마찬가지다, 멍청아. 어디 실컷 고생을 해 보시지."

미네랄 상회 지부를 나온 유한은 다른 상회들로부터 에르젠을 매입하려 했다. 그러나 시중에 깔린 에르젠의 물량은 적었고 다들 턱없는 가격에 거래하려고 들었다.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

"아니. 저 사람한테는 십오만 골드에 팔았으면서 난 왜 이십만 골드를 받겠다는 겁니까?"

"그거야 지그 님은 부자니까 그렇죠."

노골적으로 유한에게만 가격을 높여 부르는 상인들도 있었다.

심지어 그간 유한이 잘나가는 것을 보고 배가 아파서인지. 이렇게 빈정거리는 치들도 있었다.

"님 뇌제라면서요. 필드 나가서 광랩하며 에르젠 구해 보세요."

"맞아, 그럼 돈 안 들고 좋겠네."

유한은 번갯불로 볶아 주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그는 별다른 소득 없이 철공소로 들아와야 했다. 그런 데 그가 나간 사이 철공소에 반가운 손님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지그. 그동안 잘 지냈니?"

유한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중무장의 여기사를 보고 반색했다.

"귀련 누나!"

"바보녀석.지금은파우린이야."

귀련이든 파우린이든 상관이 없었다. 어쨌거나 '그녀'가 왔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동안 뭐하셨어요?"

"자칼 씨랑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유적을 발견하고 레벨을 올렸어."

파우린의 뒤에 서 있던 자칼이 씨익 웃어 주었다.

한동안 게임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파우린과 같이 플레이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동안의 플레이가 행복했던지 그의 인상은 무척 밝았다.

"저 녀석은 중간에 만났어. 예전부터 안면이 있었는데, 요새 해본즈 게이트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라."

귀련은 자칼의 결에 서 있는 마법사를 가리켰다.

유한은 시커먼 로브를 덮어쓰고 커다란 수정 구술을 던졌다 받았다 하며 노는 마법사의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스란? 아르페디아 랭커 5위 아스란?"

아크 위저드 아스란.

아르페디아 온라인 최강의 마법사다.

항상 로브를 덮어 쓰고 다니고 말수도 적어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이는 얼마나 되는지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유저였다.

한때 B.O.B길드의 창설 멤버였지만, 톱 10 랭커 안에 들어간 뒤론 활동이 줄어들었다가 아크 위저드 칭호를 얻은 뒤로는 유저들 앞에서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파우린과 함께 유한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인마, 사람을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자칼이 아스란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러자 아스란은 유한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스란입니다."

"반갑습니다. 지그라고합니다."

'여자야? 아니면 어린애야?'

키도 작았고. 목소리도 어중간하게 엣되어서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자칼이 쥐어박는 걸 보면 나이가 어린 남자일 가능성이 있었다. 자칼은 여자의 머리를 쥐어박는 만행을 저지를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중요한 건 랭커 5위를 만났다는 게 아니다. 현재 유한은 아크 위저드보다 파우린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안 그래도 귀련 누나를 찾아갈까 생각했었어요."

"나를? 왜?"

유한은 에르젠 가격 상승으로 생긴 문제들을 파우린에게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파우린은 알 만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나, 아니 귀련이라면 에르젠 합금 기술을 알 고 있다고 생각한 거구나?"

"귀련 누나는 아르페디아 최고의 대장장이잖아요."

"그래, 알고 있지. 나도 관련 퀘스트를 수행했었으니까."

유한의 얼굴이 환해졌다. 귀련이 협조만 해 준다면 현 상황을 타계할 수 있을 터.

"도와주실 거죠?"

"미안하지만 곤란해. 난 요새 일이 바빠서 접속 시간도 많지 않은데다가 그 시간도 전부 파우린을 키우는 데 투자하고 있어서 말이야."

즉 에르젠 합금을 만들어 줄 수 없다는 소리다.

"그럼 에르젠 합금 기술이라도 좀……."

"안됐지만, 그건 단지 알려 준다고 해서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야. 퀘스트를 완수해야 에르젠 제작이 가능한 능력이 생기는 거니까."

하긴 남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기술이었다면, 좀 더 많은 대장장이 유저들이 에르젠을 제조했을 것이다. 힘든 웨스 트를 수행할 필요 없이 말이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돈 주고 에르젠을 사거나 네가 에르젠 합금 기술을 익 히는 방법밖에 없지 뭐."

이미 시장에서 쓴맛을 보고 온 유한은 더 이상 돈을 주고 사고 싶지 않았다. 악덕 상인 놈들의 배를 채워 주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유한은 좀 힘들더라도 제조법을 익히기로 마음먹었다.

"퀘스트가 굉장히 어렵다고 하던데, 어땠어요?"

"말도 마. 지금도 그거 생각하면 구역질이 나올 정도야."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던지 파우린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 정도로 어렵단말인가.

지금까지 몇몇의 대장장이들이 퀘스트를 완수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수행한 정보를 올리지 않았다.

천하의 귀련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상상 이상일 게 틀림없다.

"아무튼 해 봐. 어려워도 지그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 야. 넌 보통 대장장이가 아니니까."

"물론이죠."

파우린이, 명장 귀련을 키워 낸 사람이 이렇게 말하자 유한도 자신감이 생겼다.

까짓 거해 보는것이다.

무척 어렵다고 하지만 이미 해낸 사람도 존재하는 완수 가능한 퀘스트가아닌가.

할 수 있다. 절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4

"지그 녀석이 에르젠 합금술을 배우려 한다?"

직원의 보고에 부사장 정경욱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TV 토론회에서 도음을 받긴 했지만 여전히 지그가 잘 나가는 꼴은 배 아파서 못 봐주는 그였다.

"이 자식 뇌제까지 된 주제에 뭐가 그리 아쉬운 게 있 다고. 돈도 허벌나게 많은 자식이 말이야."

"가진 놈이 더하다고 하잖습니까."

정경욱과 직원들은 공식적으로 '드림맥스 사원'의 칭호를 갖고 있었다. 아르페디아 세계를 감시하고 관리하는 절대자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집에 가서 개인 아이디로 접속하면 평범 한 유저다. 드림맥스 사원이라고 게임상에서 주어지는 혜택은 전혀 없다. 게임에 있는 수많은 유저들 중에 한 사람일 뿐인 것이다.

"난 세상의 평범한 유저들을 위해서 이 녀석을 갈구고 싶은데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저는 찬성입니다."

"저 역시 찬성입니다. 지그 녀석 인생, 아니 게임의 쓴 맛 좀 봐야합니다."

이렇게 쑥덕이는 이들을 보고 옆에 있던 이가 슬쩍 한 마디 날렸다.

"사적인 감정으로 게임에 개입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만."

손석진의 말에 정경욱과 여러 직원들은 움찔했다.

확실히 자신들의 행동은 옳지 못한 짓이다. 외부에 자 신들의 작당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분명히 비난을 받을 터. 자칫 드림맥스의 평판이 나빠질 수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를 얼어붙게 민들었던 손석진이 해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유저의 성장을 위해 좀 더 어려운 시련을 던져 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석진의 의견에 누구도 반대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그거 좋군. 유저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뭐……."

"후후후. 보리는 밟을수록 성장하는 법이지요."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하지 않습니까!"

모두들 사심(?)을 버리고 유저의 성장을 위해 모든 것 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한마음으로 뭉친 그들의 결정으로, 그날 '일부' 퀘스트 의 알고리즘과 조건에 약간의 변동이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