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마노스 제국의 변란 (108/143)

마노스 제국의 변란

마노스 제국의 변란

방송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은 유한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얼굴이 팔린 베히모스는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아르페디아 온라인 최강의 기사인 그가 랭커에도 끼지 못한 대장장이에게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비록 그 대장장이가 꽤 유명한 지그이고, 그가 이긴 건 뇌제의 홀 덕분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정까지 생각해 주지 않았다.

핑소 베히모스와 철십자 길드에 불만을 가진 이들은 이 것을 기회로 삼고 공식 홈페이지와 아르페디아 관련 사이트들에 글을 을려 베히모스를 잘근잘근 씹어 댔다.

반대급부로, 베히모스를 쓰러트린 지그의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크아악! 대체 어떤 새끼가 동영상을 넘긴 거야!"

현실에서도 일진 똘마니들에게 화풀이를 했던 베히모 스는 게임에 접속해서도 성질을 죽이지 못했다.

버추얼 에이지에 방송된 동영상의 화면의 구도나 각도를 보건데, 영상을 캡쳐한 것은 그때 같이 있던 철십자 길드원들 중의 한 명이 분명했다.

"지. 진정을……."

"이 판국에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당장 노벨을 불러 와! 그때 나랑 같이 간 새끼들 죄다 불러와! 찾아내서 아주 작살내……."

베히모스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집무실 문이 열리 더니 NPC 근위 기사가 들어와 보고를 했다.

"베히모스 단장님, 단장님을 뵙겠다며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저 평범한 보고였지만 심기가 매우 불편했던 베히모스는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NPC가 무척이나 거슬렸다.

"이 머저리 같은 새끼! 내가 지금 사람 만날 기분인 줄 알아!"

베히모스는 탁자에서 잉크병을 들어 NPC 근위 기사에게 집어 던졌다.

"당장 꺼져 버려. 가서 나 없다고 해!"

그러나 이 눈치 없는 NPC는 간곡히 설득하고 나섰다.

"백작님께 큰 도움이 되겠다며 찾아왔다고 합니다. 미케니라고 하면 알 거라면서……."

"뭐? 미케니아?"

미케니아라면 이미 죽어 버린 이바니우스 3세가 다스렸던 고대 마도 왕국이 아닌가. 이바니우스 3세가 죽였는 데 왜 다시 그 이름이 언급되는 건지?

"만나보시겠습니까?"

"큭! 알았다. 둘여보내도록."

만약 별것 아니라면, 자신을 우롱한 것이라면, 상대가 누구든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였다.

잠시 후, 근위 기사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온 것은 검은색의 로브를 걸친 마법사 NPC였다.

베히모스는 여느 NPC답지 않게 풍부한 표정과 오만한 눈빛을 한 그를 보고 미간을 확 찌푸렸다.

"날 만나자고 한 게 너 인가?"

"예, 전 미케니아의 마도사 아벨이라고 합니다."

"미케니아의 마도사라고?"

NPC의 자기소개에 베히모스는 미심찍은 눈빛을 했다. 그가 알기로 미케니아 일당은 전멸했다. 부하들은 다 죽었다고 이바니우스 3세가 직접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 아직 살아 있는 놈이 있다?

'국왕 녀석미 거짓말을 한 건가?'

그 간교한 NPC라면 그랬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어쩌면 국왕 모르게 생존한 부하인지도.

"제가 베히모스 님을 찾아온 것은 선물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

"선물이라고?"

베히모스의 심드렁한 울음에 아벨은 품속에 간직하고있던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폐하께서 베히모스 님께 드리기로 했던 거대 키메라의 제조법입니다."

"뭐라?"

베히모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받아 얼른 확인을 해 보았다.

[거대키메라제조법]

설명 : 고대 미케니아의 마도 공학으로 만든 거대 괴수 키메라의 재조 방법. 생명을 경시하는 비륜른적이며 잔인한 방법이 지만 이 비법으로 탄생한 키메라는 신화 시대의 거인 종족 타이탄과 맞먹는 힘을 지닌다고 알려져 있다.

내용을 확인한 베히모스는 탐욕스런 표정으로 군침을 삼켰다. 이바니우스 3세가 죽는 바람에 보상이 물 건너 간 줄 알았는데 다시 자신의 손에 들어오다니.

그는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걸 나한테 주는 이유는? 사실 딱 까놓고 말하면 난 이걸 받을 자격이 안 되는데 말이야."

뇌제의 홀을 획득하기는커녕 중간에 죽어 버렸으니 [이바니우스 3세와의 동맹] 퀘스트는 실패한 거나 다름없다. 아니, 실패했었다.

"원래는 이걸 드릴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국왕 폐하의 복수를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혼자서는 대장장이 지그와 그 일당들에게 복수하기 힘드니 자신의 힘을 빌리겠다는 말이다. 거대 키메라의 제조법은 그 대가로 주는 것이고.

베히모스는 내심 반색했다. 현재 철십자 길드는 거대 병기가 간절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흐음, 이왕이면 선물을 하나 더 줄 순 없을까?"

"원하는 게 있으십니까?"

"너의 주군은 나에게 왕관을 씌워 준다고 했었지. 내가 마노스 제국의 황제가 되면 네 복수를 더 빨리 이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사실 복수는 황제가 되지 않아도 해 줄 수 있다. 다만 거대 키메라 제조법이 손에 들어오자 황위에도 욕심이 나 밀했을 뿐.

"제 마법은 국왕 폐하에 미치지 못해 여제를 세뇌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뭐 어절 수 없지."

아쉽지만 거대 키메라 제조법을 안 것에만 만족해야 할 듯싶었다. 그런데 아벨의 다음 행동이 베히모스를 놀라게 만들었다.

아벨은 베히모스 앞에 무릎을 끓었다.

"그러나 저를 참모로 삼아 주신다면, 열홀 안으로 황위 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베히모스는 충성을 서약하는 듯한 아벨의 언행이 마음에 들었다.

능력 있는 마법사를 부하로 거느리는 것도 괜찮은 일 아니겠는가. 더구나 길드장이라고 거들먹대는 노벨 녀석은 전투고 생산이고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었다.

"좋다. 널 참모로 받아들이지. 일단은 거대 키메라 제조를 시작하도록."

"감사합니다. 앞으로 당신을 새로운 주군으로 모시겠 습니다!"

베히모스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자신에게 고개를 숙인 아벨의 두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는 것을.

2

"뭐야? 왜 갑자기 길드 운영 회의를 소집한 거야?"

"그러게. 베히모스 이 자식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테라칸 황제의 무덤에서의 싸움이 방송을 탄 뒤로 베히모스에 대한 길드원들의 지지가 예전만 못했다. 베히모스가 망신당한 만큼, 철십자 길드의 명성도 떨어진 탓이다.

그래서 베히모스의 비상소집 요구를 받고 은 길드 고위 간부들의 반옹이 썩 좋지 않았다.

베레타-마노스 전쟁 이후 철십자 길드의 연이은 실패와 베히모스의 추태는 평소 학림고 인맥의 독주에 불만을 품은 간부들의 마음을 혼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간부 중에 몇 명은 은근히 자기네 세력을 이끌고 길드를 탈퇴하려는 마음까지 품고 있었다.

"모두 다 모였나?"

베히모스는 길드장인 노벨보다도 늦게 도착했다. 그는 간부들의 반웅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회의를 시작했다.

"오늘 내가 여러분들을 부른 이유는 한 가지 중요한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다."

"그게 뭔데?"

"이번엔 여신의 효자손이라도 찾자는 건가?"

간부 하나가 빈정대면서 말했다. 베히모스가 뇌제의 홀을 구한답시고 길드 전력을 말아먹은 것을 풍자한 것이다.

간부들은 베히모스가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면 다 같이 견제하기로 마음먹었다.

"훗! 저번괴는 달라. 내가 지금 말하려고 히는 것은 우리 철십자 길드가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제패하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일, 바로 마노스 제국을 장악하는 것이다."

"마노스 제국을 장악해?"

"설마 네가 황제가 되겠다는 거냐?"

설마가 아니라 바로 그거였다.

베히모스는 철십자 길드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굳건히 하고, 지지부진한 대륙 제패의 야망을 앞당기기 위해 큰 사고를 치려 하고 있었다.

아니, 그건 사고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에겐 그럴 만한 충분한 힘이 있었고, 계획도 확실하다고 믿고 있으니까.

"지금 네가 제위에 오르는 건 무리야!"

"맞아. 아직 대공 자리도 얻지 못했는데 무슨!"

대부분의 간부들이 반대했다.

철십자 길드원들이 마노스 제국의 요직을 두루 장악하고 있다지만, 수천만에 이르는 제국민들의 반발을 사지 않으려면 합법적으로 황위를 찬탈해야 한다.

그래서 우선 베히모스를 여제의 남편으로 만들고 난 뒤, 은근슬적 여제를 암살하기로 했지 않은가.

"후후, 물론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당장 황위를 차지할 가능성은 낮아. 하지만 새로운 계획을 들으면 생각이 바뀌게 될 거다"

"새로운 계획?"

"내 참모인 아벨이 설명할 것이다."

베히모스의 손짓에 미케니아의 마도사 아벨이 들어왔 다.

"뭐야? npc잖아?"

"처음 보는 녀석인데?"

"왜 저 녀석이 회의에 참석하는 거야?"

아벨은 웅성거리는 간부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베히모스 님의 새로운 참모인 아벨입니다. 지금부터 작전명 '여우사냥 에 대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벨은 자신이 철십자 길드에 계공한 무기와 자신이 세 운 계획을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심적어 하던 간부들도 그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관심을 보였고, 나중에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설명이 끝나자 만장일치로 '여우사냥' 작전을 승인했다.

이제 간부들 얼굴 어디에도 베히모스에 대한 불만은 보이지 않았다.

"후후후, 내가 NPC 하나는 잘 얻었단 말이야."

베히모스는 순식간에 간부들을 휘어잡은 아벨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랫동안 원하던 제국의 황좌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3

현재 마노스 제국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남쪽에서 준동하는 후소 대륙 해적들의 토벌이 시원치 않은데다가, 근래에는 제국 황도에 도적이 들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적도 그냥 도둑 무리가 아니었다. 떼를 지어 다니며 귀족과 부유 상인들의 저택을 습격하고, 수도 거리를 약탈과 방화로 어지럽혔다.

베레타-마노스 전쟁이 별 성과 없이 종전을 맺은 상황에서 이런 일들이 잇달마 터지자 민심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상황이 이리되자 미네르바 여제의 마음도 편할 리 없었다.

그녀는 근위 기사단장인 베히모스를 불렀다.

황도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치안대장 NPC의 몫이지만, 얼마 전 치안대장 NPC는 도적 떼를 토벌하다 죽임을 당했다.

"백작!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것이요! 대마노스 제국의 황도에 도적 떼가 창궐하고 치안대장까지 죽다니!"

"송구하옵니다, 폐하. 실은 그 도적들이 평범한 도적이 아니라 반란 세력과 관련이 있다고 하옵니다."

"반란 세력과 관련이 있다?"

마노스 제국은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하고 세워진 나라다.

그래서 헤레타 해방군을 비롯해, 제국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조직들이 각지에 널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방 영지에서도 반란 세력이 준동한다고 하소연을 하더군."

여제의 말대로 황도의 혼란과 맞물려 지방에서도 레지스탕스들이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지난 전쟁 이후로 반란 세력이 황가를 우습게보고 있고, 제국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사옵니다."

"괘씸한 것들!"

여제는 분통이 터지는지 주먹으로 황죄를 내리쳤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베히모스는 슬그머니 웃었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소신에게 도적 떼의 준동을 막고 토벌할 비책이 있사옵니다."

"비책이라? 그것이 무엇이오?"

여계가 반색을 하며물어왔다.

"이번에 소신과 소신의 친우들이 힘을 합하여 개발한 거대 키메라이옵니다."

"거대 키메라?"

미네르바의 물음에 베히모스는 별것 아니리는 투로 말했다.

"일전에 보셨던 거대 목인병과 비슷한 거라 생각하시면 되옵니다. 그들을 황도의 곳곳에 배치해 놓으면 도적 떼가 감히 날뛰지 못할 것이옵니다. 날뛴다 해도 거대 키메라의 손에 토벌될 것이옵니다. 허나……."

베히모스가 조금 곤란한 문제가 있다는 듯 말을 줄이 자. 답답했던 여제가 그를 보챘다.

"허나 뭐가 문제란 말이요?"

"거대 키메라의 배치에 패하의 윤허가 필요하옵니다. 키메라라는 것에 많은 귀족들이 반감을 보이는지라."

골렘류와 달리 키메라에 대한 NPC들의 인식은 나빴다. 보통 키메라는 사악한 마법의 산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특히 신관들이 입에 거품을 물며 반대했다.

"내 윤허하겠소. 키메라라 한들 좋게 쓰면 괜찮을 것 아니요? 그대에게 황도 치안의 전권을 맡길 것인즉, 서둘러 황도를 안정시키도록 하시오."

'됐다!'

미네르바의 허락이 떨어지와 베히모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번 계획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할 거대 키메라를 합법적으로 황도에 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소신은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계속 수고하시오."

알현을 마치고 대전에서 물러나온 베히모스는 길드 간 부들에게 쪽지를 날렸다.

이제 최종 단계로 넘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쿵쿵쿵!

크기가 족히 10여 미터는 되는 괴 생명체들이 황도 안 으르 들어왔다. 예티의 몸에 악어의 꼬리, 늑대의 머리를 한 괴 생명체의 행진에 NPC들과 유저들이 기겁을 하며 분분히 길을 비켜섰다.

"저건 뭐야?"

"거대 키메라라고 하던데, 여제가 황도의 치안을 위해 투입한 병기래."

"그럼 마노스 제국에서 만든 건가?"

"아냐, 철십자 길드에서 만들었을걸. 옆에 있는 놈들이 모두 철십자 길드원들이잖아."

유저들의 말처럼 거대 키메라들의 어깨에는 철십자 길드의 마법시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거대 키메라들을 통솔하여 황도 곳곳으로 흩어졌다.

거대 키메라들은 황도를 경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은근히 황궁과 황도 치안청, 근위 사령부 둥, 중요 거점부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어서 서둘러 NPC 놈들이 눈치 채기 전에 끝내야 한다!"

"야! 너 뭐히는 거야! 키메라가 엉뚱한 곳으로 가려고 하잖아!"

황도의 주요 시설 장악 임무를 맡은 노벨은 키메라 조종을 맡은 마법사를 향해 빽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계획대로 거대 키메라를 황도 안으로 반입하는데는 성공했다. 이제 불시에 황궁을 기습해 미네르바 여제와 고위 귀족 NPC들을 잡아 거사를 완수하면 된다.

"계획대로 잘되어야 할 텐데……."

작전명 여우사냥.

베히모스와 그의 참모 아벨이 구상한 작전은 이러했다.

먼저 남쪽의 왜구 토벌을 느슨히 하고 실력 좋은 도적 유저들을 끌어들여 황도를 습격한다. 덤으로 해례타 해방 군을 비롯한 여러 레지스탕스들을 지원하여 제국을 더옥 혼란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당연히 치안이 나빠질 것이고 민심은 바닥까지 떨어진다. 이 상황에서 여제의 실정을 탓하고 역성 혁명을 일으키면 큰 반감 없이 정권을 탈취할 수 있다.

물론 예전에도 이 같은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황도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이 적지 않은데다가 강력하다는 것이다. NPC 주제에 황실을 보위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근위 병사들의 레벨은 150이 넘었고, 기사의 경우 180이 넘는 자가 수두룩했다.

철십자 길드가 전력을 기을이면 처리 못할 세력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숫자를 움직여서는 기습이 불가능하고, 여제나 그녀를따르는 NPC들의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소수 정예의 전력으로 황도를 장악해야 하는데, 기존의 거대 목인병은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하늘의 도우심인지, 하릴없이 베히모스가 미네르바의 남편 되기를 바라고 있던 상황에서 거대 키메라를 제조하는 비법이 손에 들어왔다.

비밀리에 거대 키메라를 제조하고 테스트한 결과, 거대 목인병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것으로 입증되었다. 거기다 재료만 있으면 짧은 시간에 여러 마리를 생산할 수 있다.

여러 가지로 계산해서 판단한 결과, 황도를 장악하고 근위 사령부를 뒤집는 데 필요한 숫자는 50마리.

지난 이를 동안 철십자 길드는 길드의 모든 역량을 투입해서 50기의 거대 키메라를 만들어 냈다. 엄청난 재원과 인력이 소모된 것은 불문가지.

만약 이번 작전이 실패한다면?

"실패할 리 없어. 들인 공이 얼마인데."

노벨은 고개를 저었다. 제국의 장악에 길드의 모든 것을 다 건 상태에서 실패는 절대  있어서도, 생각해서도 안되었다.

4

베히모스는 황궁 근처에 있는 근위 사령부로 향하고 있 었다.

유유히 본부로 걸어가는 그의 뒤로 도적 유저들아 뒤따랐다. 그들은 햇별이 들지 않는 그늘진 곳으로 날렵하게 이동하며 근위 사령부를 눈 깝짝할 사이에 포위했다.

베히모스는 선두에서 경계병을 처리하고 곧바로 변장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도적 유저들의 실력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검은 초승달 길드 놈들, 실력이 더 늘었군.'

어쌔신 키라가 길드장을 맡고 있는 검은 초승달 길드.

베레타-마노스 전쟁 때는 철십자 길드와 적대 관계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금전에 따라 어제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는 일이 흔했고, 어쌔신 키라는 액수만 맞으면 원한과 지조를 잊어주는 대인배였다.

-경계병은 다 처리했다. 사령부 주변도 모조리 포위했고.

키라에게서 귓속말이 오자 베히모스는 곧장 답신을 보냈다.

-좋아, 그럼 내가 신호를 하면 공겨하도록.

그렇게 귓속말을 보내고 나서 베히모스는 부관과 함께 말을 타고 근위 사령부로 다가갔다.

마노스 제국 근위대는 총 5천 명의 병사와 3백 명의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3교대로 번을 서며 황궁을 수호하고, 가까이서 여제를 경호했다.

근위 사령부 건물은 성채와 다름이 없을 정도로 견고한데다가 황궁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횡궁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근위 사령부부터 잽싸게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충! 기사단장님 오셨습니까?"

베히모스가 다가가자 정문의 경비를 보고 있던 병사 NPC들이 경례를 을렸다.

"그래, 수고가 많다."

베히모스는 정문을 통과하다 말고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아참! 지금 정문의 경비 책임자가 누구지?"

"아르핸 남작입니다."

근위 기사단 제 13조를 맡고 있는 NPC 기사였다. 딴에 명문가 출신이라며 베히모스의 명령을 잘 듣지 않는녀석이다.

"당장 불러 오도록. 현재 정문을 지키는 기사들도 모두

그의 명령에 병사는 정문 옆에 마련되어 있는 감시 초소로 달려가 아르헨 남작을 불러왔다.

"무슨 일입니까?"

뚱한 기색의 아르헨 남작이 기사들을 데리고 와 물었다.

"누군가 반란을 모의 중이라는 정보가 들어왔다. 근위 사령부부터 공격할 거라고 하더군."

"에? 대체 누가?"

아르헨 남작이 말을 하다 말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베히모스의 말이 놀랍기도 했지만, 지금 그의 칼이 눈앞으로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나다."

친절하게 일러 준 베히모스는 순식간에 아르헨 남작의 목을 베어 버렸다.

-크리티컬이터졌습니다.

아르헨 남작은 레벨 195의 강한 기사였지만,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대로 피하지도 못했고,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무, 무슨!"

아르헨 남작이 쓰러지자 NPC 기사와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 무기를 고쳐 잡았다. 그러나 그들이 제대로 대응하는 것보다 베히모스와 그의 부관의 공격이 더 빨랐다.

"크에엑!"

"카악!"

정문 책임자를 비롯해 NPC 10여 명을 단번에 도륙한 베히모스는 미리 준비한 마법탄을 히늘로 쏘아 올렸다.

휘잉ㅡ펑!

하늘에 녹색의 연기가 퍼지자 거대 키메라가 근위 사령부 정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평범한 차림을 하고 근처에 숨어 있던 철십자 길드원들이 그 뒤를 이었다.

"전원 공격!"

베히모스와 부관이 사령부 안으로 들어가자 키라와 검 은 초승달 길드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사령부 안으로 진입해 가며 맞닥뜨리는 NPC들은 모조리 죽였다. 강력한 전력을 가진 근위대였으나, 갑작스런 기습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거기다 키라와 검은 초승달 길드원들이 본부 안에 연막 탄을 마구잡이로 던져 놓고 활개 치는 덕분에 그들은 더욱 큰 혼란에 빠졌다.

"적이다! 적이 공격해 왔다!"

"어, 어디야?"

"이쪽이다!"

연막탄 속에서 베히모스는 근위대 NPC들을 제멋대로 농락했다. 근위 기사단장이라는 직책 덕분에 그들을 마음 대로 우왕좌왕 혼들어 대고 죽여 버릴 수 있었다.

"됐다, 이제 황궁이다!"

어느 정도 근위대를 제압했다고 판단한 베히모스는 바로 거대 키메라와 철십자 길드원들을 보내 황궁 장악에 나섰다. 제국의 기사로 임명된 아이언사이드 기사단원들 이 내부에서 호응하는 바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물론,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습격이다! 반란이 일어났다!"

"놈들을 막아라!"

곳곳에서 NPC들이 튀어나오며 저항했지만, 이미 한번 기울어진 대세를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크워워워워─!"

간혹 마법사나 기사들이 뭉쳐 강력히 저항하면 거대 키메라가 나서서 쓸어 버렸다.

"하나도 살려 두지 마라! 모두 죽여 버려!"

베히모스는 황궁을 장악하는 데 힘을 보태면서도 황궁 밖의 상황을 살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치안청 장악 완료.

-고위 인사들도 제압했어.

-황도 수비병들도 향복했다.

기습의 효과는 대단했다.

설마 대낮에, 그것도 제국에 충성하고 있던 철십자 길드가 반역을 저지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거기다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거대 키메라의 공격력은 대단해서, NPC들은 제대로 대항할 생각도 못했다. 거기다 수뇌부와 지휘 계통의 인시들을 기습해서 암살하니 나머지는 일까서 와해되었다.

그렇게 1시간을 싸웠을까.

황궁은 물론이고 황도 전체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 철십자 길드원들이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베히모스는 아직 기뻐하지 않았다. 여제를 잡으러 간 녀석들에게서 보고가 을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작전의 성공 여부는 여제 NPC를 확보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다리다 못 한 베히모스는 직접 여제의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5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황궁의 집무실에서 국정에 몰두하고 있던 미네르바는 밖이 소란스럽자 시종장을 내보내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했다.

얼마 후 내보냈던 시종장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폐하, 황궁에 적도(賊徒)들이 침입했사옵니다!"

"뭐라?"

깜짝 놀란 미네르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구냐? 어떤 놈이 감히 도적 떼를 끌고 대(大)마노스 제국의 횡궁을 공격한단 말이냐!"

"그, 그게……."

시종장이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미네르바가 목소리에 힘을 담아 외쳤다.

"당장 사실대로 고하지 못할까!"

한때 아르페디아 대륙을 통일하려 했을 만큼 야심에 찬 그녀다. 일개 시종장으로서는 그녀의 박력을 이길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근위 기사단장인 베히모스 백작이옵니다."

이번에는 미네르바가 할 말을 잃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제일 먼저 황제와 황궁을 지켜야 할 근위 기사단장이 황궁을 공격했다니

"그, 그럴 리가……."

미네르바의 중얼거림에 시종장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베히모스 백작이 황도에 들인 괴물이 황궁에 난입했 사옵니다. 궁정 마법사 노벨 역시 선두에서 반란군을 지휘하고 있고, 백작과 친한 기사들이 사방에서 살육을 저지르고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베히모스가 반란을 일으킨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네르바는 현재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근래에 나라가 혼란했다지만 반란이 일어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것도 근위 기사단장이 중심이 되었다니.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이럴 리가 없어!"

미네르바가 현실을 부정하는 사이 밖은 더 시끄러워졌고,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약삭 빠른 신하와 시종들은 슬그머니 그녀의 곁을 떠났다.

남은 것은 시종장과 충성스런 호위 기사들뿐.

"폐하! 당장 안전한 곳으로 피하시옵소서! 한시라도 빨리이곳을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피하다니, 그 무슨 말이냐? 짐은 이 나라의 황제다. 반란 도당들에게 굴복할 것 같으냐? 근위대를 불러라! 당장 베히모스 백작을 짐의 앞으로 잡아와라!"

"폐하, 근위대는 이미 우리에게 제압당했습니다."

방금 말을 한 것은 흐느끼고 있는 시종장이 아니었다.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리트만이었다. 단짝인 유나와 다른 철십자 길드원들과 함께 온 그는 베히모스로 부터 여제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냉소를 띤 리트만을 보고, 호위 기사들은 검을 빼들고 앞으로 나섰다.

여제를 호위하는 기사들의 레벨이 만만찮았지만. 리트만은 단짝인 유나와 함께 온 길드원들을 믿었다. 숫자도 자신들 쪽이 더 많으니 처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폐하, 순순히 항복하시죠. 가는 길은 편히 보내 드리겠습니다."

"닥쳐라! 네놈이 어찌 이럴 수 있느냐! 짐에게 충성을 다한다 맹세했던 네놈이 어찌……."

"내가 미쳤냐. NPC 따위에게 충성하게."

리트만은 들고 있던 창끝을 미네르바 쪽으로 향하며 비릿하게 웃었다.

"여제를 죽이면 경험치를 얼마나 주는지 한번 알아볼까?"

"폐하, 어서 피하소서!"

선두의 호위 기사들이 검을 휘두르며 리트만과 철십자 길드원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벽이 된 틈에, 후방에 있던 호위 기사들과 시종장이 미네르바를 부축하고 뒤로 물러났다.

"이놈들, 이것 놔라! 짐은가지않겠다!"

"폐하, 마노스 황가의 칠백 년 역사를 여기서 끝내실 것이옵니까?"

시종장의 피 토하는 외침에 미네르바의 마음이 바뀌었다.

눈빛이 싹 달라진 그녀는 근처에 있던 조각의 손을 비 틀었다. 그러자 미네르바 일행의 둥 뒤에 있던 벽이 스륵 열리며 비밀 통로가 나타났다.

"앗! 저, 저거!"

철십자 길드원들은 여제 일행이 도주하는 것을 보고 발을 동동 굴렀다.

서들러 미네르바를 잡으려 했지만, 뒤에 남은 호위 기사들의 저항이 너무 완강했다. 그들은 HP가 바닥에 이른 순간에도 철십자 길드원들의 창칼을 맨몸으로 막아 내며 여제의 도주를 도왔다.

"뿌드득! 베히모스 백작, 내 오늘의 원한을 잊지 않겠다!"

비밀 통로로 들어가며 미네르바가 이를 갈았다.

그녀가 등을 돌리자 벽이 다시 닫혔다. 뒤늦게 철십자 길드원들이 달려들었지만, 한 번 닫혀 버린 벽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런 멍청한 자식들!"

여제의 집무실에 온 베히모스는 미네르바가 도주한 것을 알고 펄펄 뛰었다.

면목이 없어 보고를 못 올린 리트만은 베히모스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여제를 잡는 데 실패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길드원들에게 퍼져 나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승리감에 달아올라 있던 고위 간부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이거 큰일이군. 미네르바가 가만있지 않을 덴데."

"황도 밖으로 탈출해서 지방군이라도 끌고 오면 큰일이잖아."

그팬 마노스 제국이 내전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그리고 철십자 길드는 마노스 제국군 전체와 싸워야 한다.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소모전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간부들의 시선이 베히모스에게 향했다. 그러나 대답은 그의 참모인 NPC 아벨에게서 나왔다.

"여우사냥이 실패했으니 발키리 작전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발키리 작전은 또 뭐야?"

"예, 발키리 작전이라 함은……."

일단 황도를 완전무결하게 제압하고 출입을 통제한다.

황도의 주요 귀족들을 처단 혹은 구금하고,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황도의 상황을 외부로 알리지 않는다.

"다행히 미네르바가 옥새는 갖고 가지 못했습니다. 옥새가 있으면 지방에 황명을 조작해 보낼 수 있습니다."

"조작해서 뭘 어쩔 건데?"

길드 간부라 해도 국가의 운영과 체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미네르바에 충성하는 영주와 지방군 사령관들을 갈아 치워야 합니다. 황명으로 그들을 황도로 불러 모은 다음……."

"처리해 버리자 이건가?"

"예, 그리고 우리 쪽 사람들로 그 공백을 메우는 거지요. 행정권과 군사권을 장악하면 미네르바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마노스 제국은 군사 국가다.

상명하복의 체제가 굳어진 국가이기에, 우두머리들을 제압할 수 있다면 쉽게 장악할 수 있다.

"하지만 미노스 제국은 넓어. 철십자 길드원들만으로 NPC들의 공백을 채우기엔 부족할 수도 있어."

누군가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자 아벨이 곧장 방안을 제시했다.

"레지스탕스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면 됩니다."

"NPC 해방군들을?"

"그들에게 원래의 나라를 되찾아 주겠다 약속하고 우리에게 협력해 달라 요구하는 것입니다."

"뭐? 그럼 기껏 얻은 나라가 쪼개지잖아."

철십자 길드가 원한 것은 거대한 제국이지, 분열된 국가는 아니다.

"줄어들지 않습니다. 각 왕국들의 자치톨 인정하는 대신, 마노스의 새 황제를 통수권자로 인정해 달라고 하면 그들도 수락할 겁니다. 독립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으음……."

"그리고 그들에게 지방을 장악하게 하면 미네르바가 황도를 빠져나가더라도 꽤 곤란해질 겁니다."

이 녀석이 정말 NPC일까.

베히모스는 아벨의 정체에 대해 살짝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전에 봤던 이바니우스 3세도 충분히 간 교한 NPC였던 걸 생각하니 의심은 사그라들었다.

아무튼 머리 좋은 참모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현실에서도 이런 놈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황도의 백성들은 어떻게 설득하지?"

"맞아, 우리가 하는 걸 다 봤잖아."

"NPC라고 해도 다 죽일 순 없는 일이라고."

"유저들도 있고 말이야."

간부들의 또 다른 걱정거리에 아벨은 염려 말리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건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황도의 완전 제압과 통제에 신경을 써 주십시오."

6

철십자 길드원들은 아벨이 말한 대로 황도의 성문을 닫고 출입을 제한했다. 그리고 미네르바에 충성한 NPC 관료와 귀족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처단하고 일부는 구금했다.

그사이 아벨은 바람잡이들을 동원해 황도에 소문을 퍼트렸다.

"황도에서 반란이 일어날 뻔했다더군."

"빈란군이 도적 떼와 결탁해 황도를 어지럽혔다는 거야."

"반란군은 지난 전쟁의 강경파들이라는데, 베레타 공화국과의 휴전에 앙심을 품고……."

"반란군에 매수당한 자들아 하나둘이 아니래. 황도 치안청은 물론, 근위 사령부, 심지어 황궁에도 반란 세력이 있었대."

"베히모스 백작이 먼저 알고 거대 키메라를 동원해서 제입한 거래. 그런데 대응이 좀 늦어서 폐하는 중상을 입으셨다고……."

"폐하께서 생명이 위태로우시다는데?"

아벨은 철십자 길드원들이 일으킨 반란 사건을 이번에 잡혀서 처형된 귀족과 관료둘, 그리고 반란에 희생된 기 사들에게 덮어씌웠다.

죽은 NPC는 말이 없고, 제법 아귀도 맞아서 NPC는 물론, 유저들도 '그런가 보다' 라는 식으로 넘어갔다.

아벨이 열심히 헛소문을 퍼트리는 사이, 황궁에선 철십자 길드 간부들이 가짜 칙서를 만들어 지방으로 보냈다. 그리고 가까운 지역부터 영주와 군 사령관들을 하나하나 갈아 치웠다.

그러면서 그들은 미네르바의 행방을 계속 추적했다. 그러나 비밀 통로로 빠져나간 미네르바는 증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행방이 묘연했다.

"아무래도 손을 써 두는 게 좋겠습니다."

아벨의 의견에 따라 다음과 같은 공고가 마노스 제국 각지에 붙여졌다.

왕도의 변란을틈타 제국을 어지럽히는 무리들이 있다. 짐을 사칭하고 다니는 자들은 이번 반란과 관계된 역적의 무리 들이니 지체 없이 신고하기 바란다.

-황제미네르바

진짜를 가짜로 몰아붙이는 걸로 미네르바가 지방에서 준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쯤이면 제법 수습이 된 것 같은데?"

발키리 작전은 성공했다. 반대 세력을 쓸어버린 황도는 조용했다. 몇몇 지방군이 술렁이기는 했지만 반란군 딱지를 붙여 곧장 제압해 버렸다.

"이젠 황위를 넘겨받아도 될 것 같아."

"뭐 넘겨줄 사람은 없지만."

하지만 제위 찬탈은 신중하게 해야 할 일이다. 자첫하면 캐릭터의 명성은 물론 길드 전체에 큰 패널티가 붙게 되니까.

손해가 안 가게 하려면 '명분'을 쥐어야 한다. 그리고 민심을 이반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야, 게임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해?"

철십자 길드원들은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아벨이 시키는 대로 변란 당시 반란군에게 피습당한 미네르바의 상태가 악화되어 조만간에 죽을지 모른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리고 나중엔 정말 죽었다고 소문을 냈고 미네르바가 죽기 전에 베히모스에게 황위를 양위했다며 제국 각지에 파발을 보냈다.

얼마 후, 베히모스는 정식으로(?) 마노스 제국의 황위 에올랐다.

거창하게 대관식을 치르고 황좌에 앉은 베히모스에게 팡파레가 터지며 안내창들이 떠을랐다.

-황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노스 제국외 황제] 칭호를 얻었습니다.

-국가 운영 창을 열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국가 상황과 평가를 보고 통치에 반영하십시오.

여기까지는 좋았다. 아르페디아 온라인 최초로 '황제'가 되었으니까.

-당신은 쿠데타로 황위를 찬탈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교묘히 덮어 버렸습니다.【뻔뻔한 반역자] 칭호를 추가로 드립니다. 당신의 명성이 20,000 하락했습니다.

안내창을 본 베히모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표정이 굳어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국을 먹었다 고 좋아하던 철십자 길드원들에게도 날벼락이 떨어졌다.

-반란에 참가한 철십자 길드원들에개 [쿠데타 가담자] 칭호가 주어집니다. 1달간 전 스탯이 20% 하락합니다.

NPC들을 속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게임 시 스템까지 속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거대한 제국을 장악한 걸 생각하면 이 정도 패널티는 감당할 만한 것이었다. 다만 문제라 할 적이 있다 면…….

[현재국가상황]

*100점 만점 기준

민심 : 20

귀족들의 충성도 : 10

재정 수치 : 27

치안 수치 : 21

대외 관계 : 9

문화 수준 : 63

기술력 : 55

군사력 : 87

경제력 : 18

"크아악!"

국가 운영창을 띄어 본 베히모스는 비명을 질렀다. 이놈의 나라가 상황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점수 아래로 자세한 설명이 나왔다.

[현재 국가 평가]

-갑작 스런 양위로 인해 백성들이 새로운 황제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반란 후유증과 양위로 귀족과 관료의 충성심이 최하로 떨어졌으며. 제정이 빈약하며 치안과 경제가 극히 불안합니다. 주변국과 관계도 최악으로…….

베히모스는 차마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그가 좌절한 모습에 의아했던 노벨이 말을 건넸다.

"왜? 무슨 일이야?"

"이놈의 나라 망하기 일보직전이다."

길드 간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껏 차지한 마노스 제국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다니.

미네르바 통치 시절부터 군사력 중강에만 신경을 써서 경제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존망까지 염려해야 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말 상황이 안 좋은 거야?"

"경제도 개판에 백성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아. 우릴 의심하고 있어."

등극 축하 파티는 물 건너갔다.

베히모스는 노벨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길드에 운영 자금이 얼마 남았지?"

"거대 키메라를 제조하고 이천만 골드 정도 남았어. 여우사냥에 참가한 길드원들에게 우선적으로 보상을 줄 예정이야."

스텟이 한 달 동안 20% 하락하는 패널티를 받은 자들 이다. 그 정도의 보상은 해 줘야 한다.

하지만 발등의 불은 그게 아니었다.

"그건 일단 뒷전으로 미뤄. 이대로 두면 반란이나 민란이 일어날지 몰라! 당장 돈을 풀어서라도 백성들의 호감을 사야 해."

"하지만 그럼 길드원들이 반발할 텐데……."

"그들에게는 나중에 배로 보상해 주면 돼."

그렇게 결정하고 돈을 풀었지만 결괴는 신통치 않았다. 민심이 겨우 3점 을랐다. 2,000만 골드가 적은 돈은 아니지만, 제국의 규모로 볼 때는 턱없이 모자란 돈이었다.

그리고 민심 외에도 다른 영역을 회복시키는 데도 돈은 필요했다. 치안을 확립하고, 경제를 살리고, 기술을 발전 시키는 데도 돈이 들었다.

한 나라의 운영이라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아아! 어디 돈 나오는 구멍 없나?"

베히모스가 이마를 싸매고 있을 때였다.

잠자코 베히모스의 통치를 지켜보던 아벨이 입을 열었다.

"폐하, 돈이 필요하십니까? 소신에게 돈을 갈퀴로 끌어 모읕 수 있는 방법이 있사온데."

"뭐냐? 당장 말해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베히모스가 고힘을 질렀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리.

아벨은 눈동자를 굴리며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했고, 그의 말이 계속될수록 베히모스와 철십자 길드원들은 감탄사를 터트리게 되었다.

"좋아! 당장 시행하도록!"

베히모스의 명령에 아벨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을랐다. NPC라고 하기 힘든 싸늘한 그 미소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