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도청 (107/143)

도청

1

다음날오후4시.

손석진은 시간에 딱 맞춰 허진태를 면회하러 왔다.

"잘 왔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게 오래 간만이지?"

"확실히."

반갑게 말을 거는 허진태와 달리 손석진의 태도는 씨늘 했다.

하긴, 원가를 얻어 낼 것이 있는 허진태와 달리 손석진 은 마지 듯해이 곳에나왔으니.

"정보기관에서 볶아 댄다는 말 진짜더군. 난 네가 펜히 오버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곳에 오기 전, 손석진은 허진태의 그간 정황에 대해 알아봤다.

정말 정보기관에서는 허진태의 범죄와 행적을 조사하 고 있었다. 그의 수척한 얼굴만 봐도 수사가 얼마나 강도 있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물론 그렇다고 조커가 누군지 쉽게 입을 열 허진태가 아니라는 건 손석진도 잘 안다.

"후후후, 꽤 졸았나 보군. 그사이 내 뒷조사를 한 건 가?"

"주의하는 것뿐이다. 넌 일단 위험 인물이니까."

"확실히 너에게는 그렇겠지. 그런데 그 조사는 맨발로 뛴 건가, 아님 옛날 실력을 발휘한 건가?"

여기서 옛날 실력이란 해킹을 말한다.

손석진은 이 말에 응답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는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나랑 만나서 하려는 이야기가 뭐냐?"

"좀 억을해서 말이야. 그 고딩 녀석이 쫓는 해커는 너인데 엉뚱하게 내가 덜미를 잡혔으니까."

"바츠 해킹 건을 말하는 건가? 그건 이미 말했다시피 내가 한 게 아니다."

손석진은 당당하게 말했지만, 허진태는 비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럼 왜 박차고 나갔던 회사에 다시 돌아온 거지? 이보다 나은 게임을 만들 수 없다고 했던 놈이 말이야."

"그것은…."

"처리할 게 있어서가 아닌가? 아마도 회사에 원가 발목잡힐 게 남아 있다든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든가."

허진태는 자신을 노려보는 친구를 바라보며 즐겁게 말을 이어 갔다.

"넌 옛날부터 그랬어. 사람을 장기짝처럼 조종하면서 상황을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곤 했지. 진승호 패거리의 일만해도 그랬다."

허진태는 중학교 때의 일을 떠을렸다.

2학넌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같은 반에 진승호란 녀석과 놈을 따르는 패거리들이 있 었다. 놈들은 무척 불량하고 난폭해서 학생들 모두가 겁먹고 무서워했다.

그건 허진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손석진은 좀 달랐다.

그는 진승호 패거리를 두려워하면서도 어떻게든 반 분 위기를 위해 그들을 눌러 버리려고 했다. 싸우자며 아이 들을 설득하기도 하고. 물래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찾아가 놈들의 행실을 일러바치기도 했다.

그러나 동의하는 학생들은 없었고, 학주에게 혼쭐이 나도 녀석들의 행패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석진이 흠씬 두들겨 맞은 모습으로 교실에 들어왔다. 진승호 패거리에게 당한 게 분명해 보였지만 누구도 복수해 줄 엄두조차 내지 못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진승호 패거리가 거들먹거리며 교실로 들어왔다.

진승호는 손석진의 멱살을 잡고 혼들면서 윽박질렀다.

"너 한 번만 더 깝치면 그때 진짜 뒈진다. 알겠냐?"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벌떡 일어나 언성을 높였다.

"그만해! 너 언제까지 그런 한심한 짓거리를 할 거야?"

소리 친 것은 소희라는 여학생이었다.

토끼처럼 예쁘고 순한 아이라 이렇게 진승호에게 대들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가장 기가 막혔던 진승호는 소희에게 건들거리며 다가갔다.

"이넌이 쳐 맞고 싶어 환장했나? 여자라고 내가 못 때릴 줄 알아?"

"때, 때려 봐! 때린다고 누가 겁먹을 줄 알고?"

소희는 파르르 떨면서도 진승호를 똑바로 노려보는 걸 그만두지 않았다. 꺼릴 것 없었던 진승호는 바로 소희의 따귀를 날렸다. 짝!

뺨을 경쾌하게 을리는 소리와 함께 소희가 교실 바닥에 쓰러졌다.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을리는 가운데, 허진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자식 죽여 버리겠어!"

그는 소희를 은근히 짝사랑하고 있었다.

소희가 맞는 것을 보고 눈이 뒤집힌 허진태는 무작정 진승호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허진태는 진승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두들겨 맞으면서도 악을 쓰고 계속 달려드는 것을 보고 주변에서 남학생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이것들이단체로미쳤나?"

애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자 진승호는 당황했다.

패거리가 있었지만, 여자애들까지 빗자루와 밀대 자루를 들고 나서자 그들 일당은 평소처럼 으스대지 못했다.

그날 진승호 패거리는 아이들에게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맞았다.

이후로 기가 꺾인 녀석들은 졸업할 때까지 조용히 숨죽어 지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난 그때 감동했었다. 내가 두들겨 맞으면서도 용감히 싸웠기 때문에 다른 애들이 힘을 낸 거라 생각했었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 진실은 다르더군."

일이 터지기 전날, 손석진은 소희를 계속 설득했다.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그녀가 용감히 나서 준다면 봉기가 손쉬워질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겁이 많았던 그녀는 거절했었다."

손석진의 말을 허진태가 바로 받았다.

"그래서 넌 일부러 진승호 패거리에 덤벼들어 두들겨 맞은 거잖아. 소희가 널 좋아하는 걸 알고 그걸 이용한 거지."

손석진이 엉망진창으로 두들겨 맞은 것을 보고, 소희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소희를 움직인 손석진은 그녀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허진태와 여러 남학생들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의도한 대로 진승호 일당을 완전히 꺾어 버렸다.

"전부 네가 꾸미고 조장한 거야. 반 아이들 모두 네 손에 놀아났던 거였지. 진실을 파니 진실은 없었던 셈이야."

물론 결과는 좋았다. 학급에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으니까.

그러나 허진태는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무리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과정이 짜증나고 화가 났다.

무엇보다 소희를 이용했던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넌 계속 그런 식이었어. 방식은 달라졌지만 기본적인 면에선 달라진 게 없었지. 좋은 일을 한답시고 사람들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조작하려 했어."

"……부정하진 않겠다."

손석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어쩌면 친구가 삐뚤어지게 된 것은 자신의 탓일지도 모른다.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원하는, 모두가 좋아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면 된다고 여겼는데,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네가 조커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세상을 위한 일을 한다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지. 그러나 넌 그리 오래 활동하진 않았어. 해커로서는 세상을 바꾸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지. 현실이 네가 생각한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번에도 손석진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허진태는 그것이 긍정의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쯤 엿듣고 있을 녀석도 그걸 알아야 할 텐데.'

아니면 애써 이 자리를 만든 보람이 없었다.

허진태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2

"해킹 세계를 떠난 넌 게임 업계에 투신했지. 뭐 넌 대학 다닐 때부터 그쪽에 눈길은 두고 있었어. 남들을 즐겁게 해 주기보다는 네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기 쉬웠기 때문이야."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손석진은 졸업 후 드림맥스의 창립 맴버로 입사했다. 그리고 여러 명작 게임들을 만들어 냈다.

"너에겐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넌 개발자로 서 만족할 수가 없었지. 넌 옛날부터 지켜보기보다 개입 해서 조정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었으니까. 자신이 손쓸 수 있는 영역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지."

"……."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내가 드림맥스를 털 수 있었던데는 내부에 협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난 그 협력자에게서 많은 정보를 입수했지. 인스펙터와 관련해서 손석진 네 이야기도 들었다."

그 내부 협력자는 손석진의 귀환을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다.

개발실 직원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대규모 업그레이드 때문이라지만, 게임계를 떠나겠다고 했던 사람이 언제 떠났느냐는 듯이 복귀한 게 이상하게 보였단다.

"거기엔 이유가 있겠지. 네가 떠날 땐 만족할 만한 뭔가가 없었겠지만 돌아왔을 팬 상황이 달라졌을 거야."

"잘도 아는군."

손석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만족했다면 떠날 이유가 없다. 떠났던 것은 한계를 느낀 탓이었다. 뭔가 이루고자 하는 바는 있었지만, 그게 마 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상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말이다.

"넌 돌아온 뒤로 해킹당한 바츠 유저와 계속 접촉했어. 네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들을 생각하면, 그가 단순히 잘나가는 유저라서가 아니야. 넌 녀석에게 바라는 목적이 있었고 그놈이 그것을 성취해 주었기 때문이다."

허진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결에 있는 교도관이 보건 말건 유리창 너머의 손석진을 노려보며 목청을 높였다.

"내 말이 틀렸나? 그게 아니면 저번에 네가 어둠만 보던 사람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며 자랑할 리가 없지. 모든 게 네놈이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까! 네가 바츠를 해킹하고, 그 결과 네가 원하던 것을 얻어 냈으니까!"

고막을 쩌렁 을리는 고함 소리에도 불구하고, 손석진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을 짓다 입을 열었다.

"나름 아귀를 잘 맞추는군. 뭐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그 때문에 유저의 캐릭터를 해킹 할 정도로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아."

"그럼 왜 바츠가 해킹될 쯤 몰래 국내에 들어와 있었지?"

허진태가 비밀 입국을 언급한 순간, 손석진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표정엔 변함이 없었지만 낯빛이 살짝 변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후후후, 역시 그 일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군."

"무슨 일 말이냐?"

"흥, 아직도 발뺌을 할 셈인가? 이봐, 석진이. 나에겐 네가 바츠 해킹에 개입했다는 유력한 증거가 있어. 그 증거를 말해 줄까?"

어제 변호사 국선명이 그 중거를 발굴해 왔다.

그는 허진태에게 협력한 내부 협력자를 찾아갔다. 내부 협력자는 드림맥스의 보안 직원이었는데, 내통 행위가 발각된 후로 구속된 상태였다.

변호사는 그를 찾아가 바츠가 해킹될 쯤에 드림맥스에 무슨 일이 있지 않았는가 물어보았다. 한동안 기억을 더 듬던 그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고 보니 그 무렵에 인스펙터 업데이트를 맡은 보안실 팀원들이 버전 2.0을 내놓았습니다. 예상 이상으로 성능이 향상된 놈이었죠."

문제는 이 팀원들의 능력이 고만고만하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기는커녕 매일 저녁 본사 옆에 있는 프린스 호텔 나이트로 달려가더란다.

"오죽하면 그들이 놀 때 누가 대신 일을 해 줬을 거란 소문이 돌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인스펙터 2.0은 패치가 되자마자 드림맥스의 기대를 저버렸다. 바츠 해킹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보안실에선 외부 침입이 전혀 없었다고 보고했지만 실은 그게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 했다.

"업데이트 된 인스팩터가 성능이 획기적으로 좋긴 했지만, 예상 밖의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해커가 그 빈틈을 노려서 바츠 유저의 계정 정보를 빼냈을 가능성이 언급되었죠."

당시 드림맥스 내부에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무성했다고 한다. 보안실에서 그와 관련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었다는 둥, 책임은 유저에게 떠넘기기로 작정했다는 둥.

그러나 소문만 무성할 뿐,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회사 이미지를 고려한 드림맥스의 수뇌부가 일을 적당한 선에서 덮어 버리고 사원들이 쓸데없는 루머를 언급하는 것을 엄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후 새로운 인스펙터가 슬그머니 깔렸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내 변호시는 보안실 팀원들을 의심 했고, 그때 그 녀석들이 프린스 호텔 나이트에서 누구를 만났을까 조사해 보았지."

"……."

"변호사가 나이트 기도에게 네 사진을 보여 줬어. 얼굴을 알고 있더군. 바츠가 해킹되었을 쯤에 네가 호텔에 투숙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아냈어."

허진태는 유리창에 얼굴을 더욱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래야 자신의 말소리가 보다 똑똑히 전달될 것이다. 손석진이 앉아 있는 의자 밑에 붙은 도청 장치를 통해서.

"넌 그때 보안실 팀원들과 접촉했을 거야. 그리고 놈들에게 인스펙터 2.0 파일을 줬겠지."

실력 좋은 원개발자가 건네준 것이니 보안실 팀원들은 그 성능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설마 손석진이 이것을 이용해 해킹을 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터.

"그렇게 손쓰기 편하게 만들어 놓고 넌 드림맥스 서버에 침입해서 바츠를 해킹했어. 그렇지 않나?"

손석진은 계속 침묵을 유지했다. 낯빛이 살짝 변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다.

'흥, 끝까지 발뺌을 하겠다 이건가?'

그래도 내심 크게 동요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손석진을 완벽히 격침시키기 위해 허진태는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로 했다.

"그만 실토하시지. 네가 그때 프린스 호텔에 투숙한 기록을 내 변호사가 입수했어. 그리고 네가 보안실 녀석들과 나이트에서 어울리는 것이 찍힌 CCTV 영상까지 손에 넣었다."

허진태의 말은 절반은 거짓말이었다.

국선명이 투숙객 기록을 보긴 했지만, 나이트 CCTV 영상은 입수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부 협력자의 말과 당시 투숙객 기록, 나이트 기도의 목격담을 생각하면 손석진이 보안실 팀원들을 이용했을 가농성은 충분하고도 넘쳤다.

CCTV 영상에 대해 언급한 것은 손석진이 백기(白旗)를 들게할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자, 이제 실토해. 네가 바츠를 해킹했다고 말이야.'

허진태는 손석진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한참 동안 무게를 잡고 있던 손석진이 웃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허탈한 미소는 아니었다. 그것은 어이없을 때 짓는 미소였다.

"이봐, 진태. 공갈이 너무 심하군."

"뭐? 공갈이라니!"

허진태가 발끈해서 달려들었다.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지만 그의 의지와 행동은 둘 사이를 갈라놓은 유리벽에 가로막혔다.

콧둥에서 조금 미끄러진 안경을 고쳐 쓴 손석진은 너무나 당당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때 보안실 친구들은 날 만난 적이 없어."

3

'젠장, 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거이?'

승용차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유한은 답답한 나머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좀 전에 허진태가 열변을 토할 때까지만 해도 손석진이 정말 바츠를 해킹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손석진의 과거와 그의 성향은 충분히 의심을 살 만했고, 허진태가 말한 증거는 무척 근거가 있어 보였으니까.

그런데 손석진은 매우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 의혹 하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한 말투였다.

직접 얼굴을 보면 어떨까?

아무래도 말투와 마찬가지일 듯싶었다. 예전에 자신에게 보여 줬을 때처럼 당당한 표정이리라.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유한은 허진태의 고함 소리에 정신을차렸다.

"만난 적이 없다고?"

"그때 몰래 입국한 것은 사실이다. 본사 옆의 호텔에 머물렀고, 나이트에 간 적도 있었지. 보안실의 농땡이들이 놀러 오는 것을 보기도 했어. 하지만 그 녀석들은 날 알아보지 못했고, 나도 그 친구들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

쾅!

허진태는 움켜진 주먹을 탁자에 내리쳤다.

당황해서 버벅대기라도 했으면 이렇게 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 얄미운 자식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반론을 펴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은 네가 했다. 정말 내가 보안실 팀원들과 어울리는 것이 찍힌 CCTV 영상을 갖고 있나?"

"그. 그것은……."

"그저 떠보려는 속셈이었지? 하지만 난 꺼릴 것이 없으니 그런 뻔한 수작에 넘어가지 않아."

이번엔 허진태가 말문이 막혔다. 그가 진땀을 훌리는 사이 손석진의 반격이 계속 이어졌다.

"너도 보육원장님 생신이 언제인지 기억하고 있겠지? 내가 회사 물래 입국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원장님 육순 잔치가 프린스 호텔 실버 홀에서 열렸거든. 오랜만에 보육원 친구들도 만나서 나이트에서 뒤풀이도 했지."

"……!"

"내가 그때 보안실 친구들에게 들켰다면 곧장 붙들려서 회사로 잡혀갔을 거다. 사장님이나 부사장님이 내 소식을 알아 오거나 날 붙들어 오는 사람에겐 특별 보너스를 준다고 했을 정도니까."

드림맥스에선 홀연히 은퇴를 선언하고 떠나 버린 손석진을 찾는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정말 보안실 팀원들이 손석진을 봤다면 업데이트 파일을 받은 것에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네 말대로 내가 바츠를 해킹했다고 치자. 하지만 뭐하러 그런 번거로운 방법을 쓰나? 인스펙터를 만든 건 나다. 업데이트 몇 번 되어 있어 봤자 뚫고 빼내는 건 일도 아니야."

과거에 조커였던 손석진이다.

보안실 팀원들을 이용하다가는 오히려 의심만 살 뿐이다.

"그, 그럼 그때 인스펙터 2.0은 뭐야?"

"그 친구들이 부킹을 한답시고 나이트에 들락거린 건 나름 믿을 구석이 있었겠지. 달리 도외줄 사람이 있었거나 아님 운이 좋았을 수도. 나도 나중에 그 버전의 업데이트 파일을 보았다. 획기적으로 성능을 향상시켜 놓긴 했더군. 치명적인 문제점이 남아 있긴 했지만 말이다

"믿을 수 없어!"

허진태는 손석진의 반론을 부정했다.

그의 말대로 원장님 생일이 그쯤이고, 작넌이 예순이라는 것도 맞았다.

하지만 분명하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어긋날 수 있나!

이렇게 되면 자신의 입장이 어떻게 되는가? 그 고딩 녀석에게 큰소리를 뻥뻥 쳐 놨는데 말이다.

"국선명이라 했나? 자네 변호사에게 원장님과 보육원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지. 그 친구들에게 물어봐. 그때 입국했던 기간 내내 난 그 친구들과 어울렸으니까."

"크아악! 너, 너야! 네가 바츠를 해킹한 거야!"

허진태가 울부짖든 말든 손석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가 끝났군. 난 이만 가겠다."

"빌어먹을! 거기 서지 못해!"

손석진은 악을 쓰는 허진태를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4

대화가 끝나자 유한은 헤드셋을 벗었다. 쿵광거리던 심장이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유감입니다."

다른 헤드셋으로 듣고 있던 국선명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설마 사건이 이렇게 진행될 줄은 몰랐다.

'정말 밝혀지는 줄 알았는데.'

유한은 차에서 내리며 입맛을 다셨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장기짝으로 다루는것도 서슴지 않는 사람.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그저 천재 게임 개발자로만 알고 있는 손석진의 본모습이었다.

충분히 바츠를 해킹한 자로 여길 만했다.

허진태는 과거의 사례와 변호사가 입수한 정보돌을 근거로 손석진을 벼랑 끝까지 밀어불였다. 그는 분명 손석진이 자백하도록 유도할 속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계획은 실패했다.

완벽한 중거가 없었던 탓이다.

오히려 알리바이가 있는 손석진에게 반박만 당했고, 단숨에 기세가 역전되었다.

'호텔에 가서 물어볼까?'

손석진의 말이 정말 맞나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손석진의 말이 허세 같지 않았다. 만약 빈틈이 있었다면 허진태가 먼저 꼬투리를 잡고 재반격을 했을 터.

'하지만 해커는 손석진임이 틀림없어.'

손석진은 부정했지만 허진태의 추론도 나름 설득력은 있었다. 손석진이 수많은 유저와 랭커들을 놔두고 TV 토론회에 유한을 데려간 이유도 있을 테고.

그렇게 유한이 손석진을 의심하고 있을 때였다.

"남의 이야기를 엿들은 소감이 어떻던가요?"

"헉!"

유한은 등 뒤에서 들려은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고개를 돌리니 손석진이 서 있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그는 흠칫 굳어 버린 유한에게 다가왔다.

'당황해 할 필요 없어.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잖아!'

유한은 안색을 편 뒤 다가오는 손석진을 똑바로 바라보 았다.

자신은 그저 헤드셋을 주기에 들은 것밖에 없다. 도청기를 설치한 사람은 국선명이란 변호사이지 그가 아니다.

오히려 해킹을 했을 손석진이 범죄자라 할 수 있었다.

아직은 명확한 중거가 없어 의심만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소감이라? 글쌔요. 좀 아깝다고 할까요?"

유한의 비꼼에 손석진이 담담히 말했다.

"그렇습니까? 실망했겠군요."

"그래도 나름 소득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청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허진태 그 친구가 바츠 해킹에 관련해 계속 추궁하더군요. 당연히 유한 군과 관련이 있고. 어떤 방식이든지 대화를 엿듣고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상대는 천재라는 칭호를 달고 사는 게임 개발자다.

복잡한 알고리즘을 짜는 데 능통할 테니 상대의 의도나 행동을 간파해 내는 능력도 뛰어날 터. 지금 이렇게 만나는 것도 그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제 충고를 무시했군요. 허진태와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그거야 내 맘이죠. 그리고 별로 친한 것은 아닌데요."

유한은 상관 말라는 투로 강조했다.

"제가 개발자님 부하 직원도 아니고 빚을 진 것도 없는데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안 그래요?"

"뭐,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허진태 그 친구는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 점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얼래? 충고는 그뿐인 거야?'

전처럼 만나지 말라는 둥, 마음이 흐려진다는 둥의 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려진 상태에서 예전과 같은 충고를 되풀이하면 상대의 의심을 더 불거지게 만드니까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생각하던 유한은 손석진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유감이지만, 전 개발자님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습니다. 전보다 더 심하게 말이죠."

"예, 압니다. 제 행실이 좋지 못한 덕분이니 의심하고 조사하신다 해도 제가 간섭할 수는 없겠지요."

손석진도 고단수였다. 유한의 파고들기에 흔들리지 않고, 곧장 맞받아쳤다.

'역시 만만치 않은작자야.'

서로 웃고 있긴 하지만 두 사람의 눈빛만은 날카롭게 번득이고 있었다. 유한은 이 정도까지 몰아붙인 것에 만족했다.

확실한 증도 없는데 상대를 계속 자극할 수는 없었다.

섣부른 행동을 하다간 자신만 손해를 보게 된다. 예전에 교감과 정현일의 수작을 듣고 눈이 뒤집어지는 바람에 '교직원 폭행죄' 로 학교에서 퇴학당했던 일을 잊지 않았다.

어설프게 두들겨 패는 것보다 완전히 주저앉힐 결정적인 펀치를 날려야 한다.

복수는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은 얼마든지 접어 주고 숙여 주리라!

"저 때문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유한은 인사를 하고 먼저 그 자리를 떠났고, 손석진은 멀어지는 유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 손석진의 뒤로 누군가 천천히 다가왔다.

차림새가 후줄근한 더벅머리 청넌이었다. 그는 이미 멀 리가 버린 유한을 바라보다 손석진에게 말을 건넸다.

"저 녀석이 바츠 유저였던 겁니까?"

"왜? 정균이 너랑 안면이 있나?"

손석진의 물음에 김정균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번에 동아리방에 찾아왔었거든요."

"하긴, 진태에게 듣고 가 봤다고 하더군."

김정균은 저번에 유한이 신라 대학의 해킹 동아리 레볼루션에 찾아갔을 때 만났던 대학생이었다.

"신입생이라더니…… 생긴 것보다 엉큼한 녀석이네요."

"뭐 그래야 재밌는 거 아닌가?"

손석진은 피식 웃었지만, 김정균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저대로 둘 겁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손석진이 돌아서서 묻자 김정균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처리를 해야죠. 아예 선배님 사람으로 만들든 가, 아님 모든 걸 알기전에 손을 보든지."

"둘 다 맘에 들지 않는군."

고개를 가로저은 손석진이 입을 열었다.

"정균아, 난 저 애를 그대로 놔두고 싶다."

"그러다가 나중에 뒤통수를 맞던가, 콩밥을 먹어야 할 지도 모르는데요?"

"하하, 그럼 별수 없고."

손석진은 상관없다는 투로 말했지만 김정균은 그렇지 않았다.

저 고딩 녀석은 레볼루션 동아리방까지 찾아왔었다. 관련 정보를 준 것은 감방에 있는 허진태라지만, 이리저리 알아보고 쫓아다니는 걸 보면 꽤 집요한 녀석 같았다.

"난 내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을 움직여 왔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세상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어."

"그랬습니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먼저 사람들이 변해야 해. 누군가에게 조종받거나,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은 변하기가 어렵지."

"쳇, 난 변하는 케이스는 아니겠군요."

김정균은 섭섭하다는 듯 투덜거렸지만 별로 기분 나빠 하지는 않았다. 그는 현재의 환경에 만족하고 있었으니까.

"주류에서 벗어났지만, 그 때문에 세상의 다른 면을 보게 된 사람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 중에 뚜렷한 소신을 갖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은 세상을 크게 바꿔 놓곤 하지."

"그래서? 저 고딩 녀석도 그렇게 된다는 이야깁니까?"

"좀 더 경험을 쌓으면 그럴지도. 저 애는 이제 겨우 앞으로 나가는 중이니까."

손석진을 바라보던 김정균은 어절 수 없는 사람이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배, 그러다가 판타지의 대마왕 꼴 납니다."

"여유를 부리다가 용사에게 처단된단 말인가?"

"그러니까 옛날부터 선조들이 삭초제근(削革除根)하라 말한 겁니다."

"뭐 그런 사자성어가 있는 걸 보면 동양의 위정자들은 지배에 탁월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을 끊은 손석진은 불만 어린 얼굴의 김정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은 변화하는데 실패했어."

그 때문에 근대의 동양 사회는 오랫동안 외부의 침입과 간섭을 받았다. 문화의 주도권도 서구 사회에 빼앗긴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변화와 진보를 위해선 반드시 누군가를 밟고 가야 하지. 대마왕 을 쓰러트려야 비로소 용사라고 불리는 것처럼 말이야."

손석진은 마치 초탈한 사람처럼 말하며 돌아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김정균은 여전히 불만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5

손석진과 헤어진 유한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따라 웬일인지 아버지는 물론이고, 늦은 귀가를 일삼던 유현도 일찍 들어와 있었다. 유현의 옆에 찰싹 불어 있던 세라가 유한을 보곤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인사했다.

"Hi. 브라더! 세라 저녁 얻으러 왔다!"

"얻으러가 아니라 얻어먹으려겠지."

"헤헤, 실수. 실수."

여전히 한국말에 서툰 세라였다.

하지만 그런 세라가 유한에겐 귀엽게 느껴질 뿐이다. 어쩌다 이런 귀여운 녀석이 유현과 사귀게 된 건지.

"늦었잖아, 형. 기다리다 등가죽하고 뱃가죽이 랑데부하는 줄 알았어."

"아예 도킹이라도 하지 그랬냐, 자식아."

유한이 씻고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내려오자 온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를 들었다. 식사 후에는 거실에 둘러앉아 디저트로 사과를 깎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자, 자연스래 TV가 켜졌다.

뉴스를 보던 아버지가 잠깐 자리를 비키자 세라가 슬쩍 리모콘을 들어 채널을 돌렸다.

마침 사이버 캐릭터 미루와 이정민이 진행하는 버츄얼 에이지가 나왔고, 모두의 눈과 귀는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고정되었다.

[이정민 씨. 은거한 랭커들이 속속 복귀 중이라지요?]

[그렇습니다. 천사의 강림을 경험한 랭커들이 신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아르페디아 대륙은 물론 타 대륙까지 돌아다니며 '하늘의 문'과 '별빛'울 찾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방송에서는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랭킹 7위의 랭커 '카 셀' 을 보여 주었다. 음유 시인으로서 톱 10에 낀 카셀은 수많은 유저들 앞에서 만돌린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늘의 문이 해븐즈 게이트라는 실은 이미 알려져 있는데요, 아직 이것의 위치가 파익되지 인았다고 하죠?]

[유저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청해도에 있었다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드림맥스에서도 이게 이동히는 유적이라 밝혔는 데…….]

방송을 보고 있던 세라는 유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현, 현도 천사 왔어?"

"응. 자격을 갖췄으니까 얼른 하늘의 문과 별빛을 찾으래."

세라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아마도 헤븐즈 게이트를 여는 것은 한국 유저들만 해당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유한이 청해도에서 헤본즈 게이트를 열었을 때 같이 있었던 그들은 자연히 관심의 시선을 유한에게로 돌렸다.

"형, 그때 헤븐즈 게이트 연 거 맞지?"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하늘로 빛이 솟구쳤을 때 잠깐 사라졌다가 나타났잖아! 도대체 뭔 수로 열었어? 별빛이랑 관련 있어?"

"당최 뭔 소린지……."

"정말 이럴 거야!"

"브라더, 너무해!"

톱 10의 랭커들이 나타났든, 동생 커플이 펄펄 뛰든, 유한은 관련 정보를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신의 시험을 통과히는 사람은 자신이 최초이고 싶었으니까.

물론 자신 말고도 스타레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긴하다.

아르페디아 온라인 최고의 대장장이 귀련. 그러나 그녀는 스타레이와 관련해 아무런 정보를 흘리지 않은 듯했다. 귀련이 철공소나 제철소를 짓는다는 이야기도 없으니, 그녀는 아직 자세한 사정을 모르거나 신의 시험이라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녀는 대장장이 캐릭터 귀련이 아닌 기사 캐릭터인 파우린으로 신의 시험에 도전하고 싶은 걸지도.

[다음 소식입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뇌제가 탄생했습니다. 드림맥스에서 적어도 6개월 정도는 기다려야 가능하다는 히어로 뇌제가 탄생한 겁니다. 저희가 입수한 자료 화면을 보시죠.]

유한은 그만 눈이 튀어나을 뻔했다.

미루가 갑자기 뇌제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새 얼마나 되었다고 관련 동영상이 방송되는 건지!

TV 화면에선 유한이 뇌제의 홀을 들고 철십자 길드원 들과 베히모스를 박살 내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유저 하나가 캡처한 동영상을 방송국에 보낸 모양.

아무튼 랭킹 4위의 베히모스도 쓰러트리는 뇌제의 힘에 경악했던지, 방송 화면 아래 자막으로 시청자들이 보낸 리플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키라☆ : 개사기다!

-역습의 달호 : 몰라. 뭐야 저거 무서워. ㅠㅠ

-1서클 대마법사 : 획득하인 님은 정말 땡잡은 듯.

-갑부초딩 : 님들아, 저거 헌질하면 살 수 있나요?

-이계군바리 : 소 팔고 개 팔면 가능할 듯.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미루의 질문에 옆에 있던 이정민이 자료를 보며 설명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나흘 전에 벌어졌습니다. 그로지아 왕국 남쪽의 타사르 평원에 있는 고대 무덤에서 '보물 탐험대' 파티와 NPC 이바니우스 3세와 철십자 길드원들의 연합 간에…….]

이정민은 두 집단이 어떻게 무덤에 들어갔으며, 묘실에서 어떤 싸움을 벌였는지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뇌제가 정확히 뭐죠? 드림맥스에서 준비한 히든 클래스인가요?]

히든 클래스라면 다른 유저들도 될 수 있다는 말. 조건만 충족시키면 누구나 뇌제가 될 수 있다.

TV를 시청히는 유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타깝게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게임 속에 하나뿐인 유니크 아이템의 효과 같은데, 자세한 것은 좀 더 조사를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일단 뇌제란 칭호에 대해 정의 내리자면, 게임 설정상, 고대 아르페디아 대륙을 통일한 초대 황제 테라칸의 별호라고 나옵니다.]

[아! 손짓 하나로 번개를 부르고, 적병들을 모조리 태워 죽였다는…….]

미루의 말에 이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르페디아 온리인의 설정집을 보면 테라칸 황제의 무위를 두려워한 고대인들이 뇌제란 칭호를 불인 걸로 나옵니다. 하지만 자료 화면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실제 번개를 다루는 권능이 테라칸에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저기 유저의 손에 들린 밍치가 테라칸의 권능 이라는 건가요?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빛과 함께 번개가 튀어나오고 있는데 말이죠.]

[말씀하신 대롭니다.]

자료 화면에는 망치를 휘두르고 땅을 내리치는 유한의 모습이 반복되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뇌제 칭호틀 획득한 유저의 모습이 매우 낯익 데요?]

미루의 물음에 이정민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제가 일아본 바에 의하면 저 유저는 바로 저희 방송에서도 몇 번 나왔던 대장장이 지그…….]

픽─!

TV가꺼졌다.

어느 새 슬쩍 리모콘을 집어 든 유한의 짓이었다.

그렇게 해야 했던 이유는 회장실에 다녀온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치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게임 속 캐릭터라 용모가 다소 다르다지만 자기 자식을 못 알아볼 부모는 없다. 그리고 유한의 부모님은 TV에 출연할 정도로 게임 잘하는 자식을 대견하게 여길 분이 아니었다.

특히 게임으로 날린 젊음을 후회하시는 아버지는 더더욱.

"이놈의 자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아, 아니에요. 저건 제가 아니라고요. 저 닮은 사람 있어요. 그러니까…… 곽윤환이라고 우리 도장 사범님 동생의 친구의 친구인데 저랑 진짜 똑같이 생겼어요."

유한의 필사적인 변명은통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믿을 미음이 1%도 없었고, 동생 커플은 좀 전의 일을 보복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유한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형 왜 그래? 저거 형 맞잖아."

"브라더,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프라이드를 가져요."

'크악! 이것들이!'

아버지는 유한을 더 꾸짖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유한의 방으로 을라가서 캡슐의 콘센트와 통신 케이블을 빼가지고 내려왔다. 코드와 케이블 없는 캡슐은 그저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된 관일 뿐이다.

"유한이 너 삼 일간 게임 금지야."

"아버지!"

"어기면 그놈의 캡술을 두들겨 부술 테니까 그리 알아!"

그래도 아예 하지 말라고는 않는 아버지였다.

예전과 달리 유한이 달라진 덕분이었다. 하지만 입시생인 만큼 엄포를 놓을 필요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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