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실전 격투 (105/143)

실전 격투

1

엘프의 숲에 도착한 유한 일행은 장로를 만나 미케니아 국왕이 죽었음을 알렸다.

장로는 무척 기뻐했고, 소문을 들은 다른 엘프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세계수와 정령계 사건 이후로 시무룩하던 엘프 마을이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들썩거렸다.

"수고했네, 우리 형제 자매들은 자네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야."

"잊어도 좋으니 좋은 보상이나주세요."

유한의 바람이 그렇거나 말거나 연계 퀘스트의 보상이 주어졌다. 같이 퀘스트를 수행한 채린과 에이린, 오펜 역시 보상을 받았다.

- 명성이 2,500 올랐습니다.

- 경험치 6,000 을 얻었습니다.

- [엘프의 친구]칭호를 얻었습니다.

- 정령의 반지를 얻었습니다.

유한은 슬쩍 정령의 반지를 살펴보았다. 민첩성을 20 올려주고 마법방어력을 30% 증가시켜 주는 기능이 있었다.

친구들은 유한과 다른 아이템을 받았다. 나름 괜찮아 보이지만, 눈앞에서 산더미 같은 보물을 날려 버린 충격때문인지 모두들 표정이 밝지 못했다.

"표정들이 안 좋군. 혹시 보상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아뇨, 좀 피곤해서요."

보상을 받은 유한 일행은 철공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엘프들이 놀다가라고 청했지만, 그들은 지금 그럴기분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보물은 너무 아깝단 말이야."

"지그 넌 아까워할 필요없어. 그래도 넌 유니크 아이템 하나 건졌잖아."

"뇌제의 홀? 이거 그리 좋은 거 아니야."

잘못 다루면 오히려 큰 낭패를 볼 물건이다. 더구나 이것을 이용해서 쓰러트린 상대에게선 경험치도 얻을수 없다.

"4위 랭커를 꺾었는데 경험치 하나도 못 얻었어."

"네가 생각을 잘 했어야지. 안 죽을만큼만 패고 변신 해제해서 죽였으면 경험치 땄을꺼 아냐."

"그 와중에 일일이 그런걸 어떻게 생각하냐?"

유한은 그리 말하자 블랙이 충고라도 하듯이 말문을 열었다.

"잘 생각하고 써야 한다. 나도 옛날에 뇌제의 홀을 잘못 다루어 몸을 크게 해쳤다."

"근데 그거 정말이야?"

"무엇말이냐?"

"뇌제의 홀로 호두를 까먹었다는 거."

잠시 머뭇거리던 블랙은 진실을 내뱉었다.

"그런 용도로도 썼다."

"스스로 쪽팔리는 물건으로 만든 거로구먼."

"내가 그렇게 한 게 아니라, 뇌제의 홀은 쪽팔리는 물건이 맞다. 그안에 있는 힘은 내것이 아니야. 대륙통일의 대업이 아니면 뇌제의 홀의 힘을 빌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말한 블랙은 진지한 눈빛으로 유한을 보며 말을 이었다.

"왠만하면 뇌제의 홀은 쓰지 마라, 아니 아예 폐기해 버려라. 이제 암흑의 무리들도 모두 소탕했지 않나."

"뭘 모르시는군. 미케니아 말고 암흑의 무리는 또 있거든요."

"또 있다고!"

"세계는 넓고 악당은 많은 법이지."

"휴우, 난세로군.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된건지. 이것도 그 드림맥스라는 놈들 때문인가?"

미케니아는 사라졌지만, 유한에겐 또 다른 큰 적이 남아 있었다. 예전부터 여기저기에서 충돌했었던 철십자 길드. 

이번에 그들은 길드장과 베히모스가 죽는 참패를 맛봤다.

분명히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 놓아야 했다.

"일단은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까지."

"그래요, 에이린도 이제 자러 갈래요."

철공소에 도착하지 못했지만 허탈감도 적지 않고 몹시 졸리기도 한 일행은 가도에서 로그아웃을 했다.

2

늦게까지 게임을 한 유한은 임시 학원에서 반쯤 졸면서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수업을 파했을 때 블라덱에게서 전화가 왔다.

"손석진의 과거 행적을 알아냈다고?"

"그래, 내가 그 때문에 발품 좀 팔았어."

바츠를 해킹한 해커를 잡고 싶은 것은 블라덱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고수라 자부하는 자신을 상대는 아주 간단하게 농락했기 때문이다.

바츠 아이템을 구입했을 때 당했던 치욕을 생각하면 반드시 정체를 알아내서 면상을 보고 싶었다.

"확실히 네 말대로 수상하긴 하더라고, 자세한 건 네가 오면 말해 줄게."

유한은 부리나케 블라덱의 아지트로 달려갔다.

블라덱은 정말 며칠 동안 날밤을 새웠는지 두 눈에 다크 서클이 짙게 끼어 있었다.

"내가 정부서버를 해킹해 봤는데, 손석진은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개발한 후에 외국으로 나갔어."

그건 유한도 게임 잡지를 통해 알고 잇었다.

천재 개발자 손석진이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개발한 후 '이보다 나은 게임을 만들수 없다'며 출국한 사건으로 한때 게임계에 소문이 파다했었다.

"그런데, 네 바츠가 해킹당한 작년 삼월 중순경 한국에 잠깐 입국한 기록이 있더라고, 그것도 드림맥스 본사옆의 프린스 호텔에 며칠동안 머물렀지."

대외적으로는 손석진은 그동안 해외여행을 하다 드림맥스가 대규모 업데이트를 하기 직전에 귀국한 걸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전에 한국에 잠깐 들렀다니.

"그게 정말이야?"

유한의 물음에 블라덱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프린스 호텔 홈페이지를 해킹해서 투숙객 기록을 알아봤어."

"크음,"

손석진은 왜 아무도 모르게 한국에 잠깐 들른 걸까? 그것도 하필이면 바츠가 해킹되던 시점에?

물론 그정도로 손석진을 해킹범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정말 그는 다른 급한 용무가 있어 한국에 들렀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상당히 미심쩍은 것만은 분명했다.

"수고했어. 앞으로도 부탁해."

블라덱의 어깨를 두드려 준 유한은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해가 떨어졌는지 가로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도장에 나가 볼까?'

저번에 채린이 문제로 송태수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이후로 유한은 한동안 도장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가다가 안 가니 몸이 둔해지고 뱃살에 기름이 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몸 좀 풀자 생각했지만. 도장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분명 그 곰탱이 아저씨 내가 무서워서 안 온다고 생각하고 있을거야.'

송태수의 득의의 찬 얼굴을 생각하자니 더욱 안갈수 없었다. '나는 겁쟁이가 아닙니다!' 라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따.

그리고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정현일이 그 자식, 나라는 걸 알았으니 가만있지 않겠지.'

게임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그놈은 충분히 현실에서도 앙갚음을 해 올 녀석이다.

유한은 혼자고 그놈은 졸개가 많다. 물론 양아치들과의 싸움은 저번에 김필중 패거리와 싸워 봐서 그리 두렵진 않았다. 하지만 정현일은 김필중과 다르다.

둘다 패거리가 없으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놈들이지만, 정현일에겐 김필중과 다른 리더쉽이라는 게 있었다.

놈은 일진의 짱일 뿐만 아니라 게임상에서 철십자 길드라는 거대 길드를 움직이는 간부 중의 한 명이다.

테라칸의 무덤에서 싸웠을 때도 놈의 성격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눈앞에 상대를 두고도 자기 패거리의 상황을 분석하고 타계해 보려고 애썼다.

그런 능력이 있는 녀석과의 싸움은 김필중 때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일단 현실에서 해야 하는건 더 강해지는 거다.'

게임과 달리 현실에서 레벨을 올리는 방법은 수련밖에 없다. 송건달 정도의 괴물은 아니더라도 상대가 함부로 볼수 없을 만큼은 강해져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여, 유한이 왔냐?"

유한이 도장 안에 들어서자 여러 수련생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가장 기운차게 맞아 준 것은 사범인 곽대발이었다. 그는 유한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척 팔을 올리다가 목을 조였다.

"짜식, 얼굴 좀 내밀고 살지 뭐가 그리바빠?"

"켁! 수험생은 바쁘다고요!"

"바쁜거 좋아하네 , 게임하고 연애질할 시간은 있고?"

저번에 송태수와의 충돌 덕분에 유한이 채린이랑 사귄다는 소문이 수련생들에게 좍 퍼졌다. 이미 게임에서 붙어 다니는 두 사람을 보긴 했지만 현실에서도 그럴 줄은 몰랐다.

"얼른 옷 갈아입고 튀어나와."

유한은 냉큼 도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막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있는데, 도장 문이 드륵 열리며 관장인 송태수가 들어왔다. 그리고 곧장 따라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송태수는 자신을 따라 들어온 청년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가라니까!"

"싫습니다. 가르침 주십시오!"

청년의 억양과 말투는 이상했다.

외국에서 왔는지, 귀에 통역기를 꽂은 청년은 송태수가 싫다는데도 자꾸 매달리고 애원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유한은 곽대발에게 물었다.

"사범님, 무슨 일이죠?"

"아, 저 일본친구. 너 없는 동안 나타난 녀석인데 관장님께 한수 가르쳐 달라고 조르고 있어. 관장님이 아무리 거절해도 계속 나타나더라고."

"그래요?"

드문 케이스가 아닌지라 유한은 상대에 관심을 끄고 계속 몸을 풀었다.

송태수는 아무에게나  무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가 거절하는 사람은 아무리 졸라도 소용이 없었다.

"이봐, 자넨 이미 고무술로 근골이 다져진 상태야. 나한테 배우는 건 시간 낭비야. 하던거나 계속 수련 하도록해."

"저 강한사람 되려 합니다. 관장님도 젊을 때 여러 무술 배웠지 않습니까?"

송태수는 이 일본 녀석 때문에 머리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도대체가 아무리 충고하고 윽박질러도 소용이 없었다.

닷새 동안 오리 새끼처럼 계속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었다.

'끄응, 이럴줄 알았으면 적당히 손봐 주는 건데.'

실명이 카즈마 마사요시라는 이 일본 청년은 바로 게임에서 길포드에 도전했던 유술가 카즈마 였다.

카즈마는 그때 신나게 두들겨 맞은 뒤 상대의 드 높은 실력에 반해 버렸다. 그래서…….

'대체 누구십니까? 존명을 알려주십시오.'

'후후후, 난 송태수라 하네.'

'송태수! 설마 극기도 창시자인?'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덜렁 물 건너와서 가르침을 달라고 졸라 댈 줄은. 상대의 공손한 태도에 넘어가 실명을 알려준 것이 화근 이었다.

"내밑에서 한 수 배우려다간 죽을 수도 있어."

"괜찮습니다. 죽어도 좋습니다."

'으이구, 이 고래심줄 같은 자식!'

그냥 확 안 죽을 만큼만 패서 쫓아 버릴까.

그리 생각하던 송태수의 눈에 유한의 모습이 띄었다.

순간 그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뀌었다.

"좋아, 그렇다면 하나 조건이 있다!"

"조건입니까?"

"나에게 배울 만한 그릇인지 시험해 보고 싶군. 저기 저 녀석을 이기고 오면 가르침을 주지."

카즈마는 송태수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몸을 풀고 있었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ㅏ

"저 강합니다. 저 학생 간단히 이깁니다."

고무술 유단자인 카즈마도 자존심이 있었다. 저런 애송이를 밟고 올라서기는 싫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송태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녀석도 강하다. 그러니 네가 강한걸 증명해봐. 난 입으로 강하다는 놈들은 믿지 않는다."

송태수의 빈정거림에 카즈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3

'아놔, 왜 날 걸고 넘어지는 거야!'

유한은 몸을 풀면서 송태수와 카즈마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송태수가 슬쩍 봤을 때부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진다고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될 줄이야. 

투덜거리는 유한에게로 카즈마와 송태수가 다가왔다.

"나랑 대련해 줘야 하겠슴니다."

"유한이 네가 이 친구에게 가르침 좀 줘라."

"내가 무슨 재주로요?"

유한은 불가능 하다 여겼다.

자신이 극기도를 수련을 한 것은 1년 남짓이다. 중간에 농땡이 좀 부린걸 생각하면 그리 오래 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상대방이다.

카즈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체격도 송태수처럼 우락부락하진 않지만, 어느 곳 하나 허술해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레벨이 높아 보이는데…….'

가르침을 주긴 커녕, 되려 가르침을 받아야할 판이다.

그럼에도 송태수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

"만약 진다면 유한이 넌 내일부터 지옥 훈련이다."

"켁! 그런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지."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이다. 분명 채린이랑 가까이 지내는 것이 맘에 들지 않으니 심술을 부리는 것이다.

'확 때려 치우고 나가 버릴까 보다.'

도장 그만둔다고 채린이랑 못 사귀는 건 아니라 생각되었다. 사실 채린이는 자신이 아버지 도장에 다니는걸 아직 모르고 있으니까.

'그래도 물러나긴 싫어!'

송태수는 마치 '니가 별수 있겠냐'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유한은 그런 그의 눈빛이 싫었다.

'분명 내가 왕창 얻어터지는 걸 감상하고 굴리실 참인 모양인데, 그렇겐 안된다고요.'

오기가 생긴 유한은 글러브와 호구를 착용하고 링 위로 올라갔다. 그사이 카즈마도 탈의실에서 도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검도복과 비슷하게 생긴 도복을 입은 카즈마의 모습에 유한은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얼래, 저사람 설마?'

게임 방송에서 보았던 일본인 유술가랑 비슷했다. 아니, 완벽히 갖춰진 폼을 보자니 당사자임을 확신할수 있었다.

카즈마는 호구에 손가락이 노출된 글러브를 끼고 링 위로 올라왔다.

땡ㅡ!

카즈마가 올라가자 곧장 공이 울렸다.

유한은 거리를 두고 돌면서 상대를 탐색했다.

하지만 카즈마는 고딩을 상대로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단숨에 자신의 주특기로 상대를 꺾어 버리곤 송태수에게 인정을 받고싶었다.

나는 당신에게 배울 만한 그릇이라고. 

'그리고 다음엔 또 한번 당신과 자웅을…….'

딴생각을 하던 카즈마에게 유한의 발차기가 날아왔다. 예상보다 예리한 발차기는 카즈마의 옆구리에 아릿하게 작렬했다.

"크윽!"

다른 수련생들에 비하면 수련 정도가 일천한 유한이지만 그래도 그동안 쌓은 실력이 있었다. 덕분에 카즈마가 보인 빈틈을 놓치지 않고 한 방 날려 주었다.

'해, 생각보단 대단하지 않잖아.'

초반의 일격에 기가오른 유한은 그만 상대를 얕보고 말았다. 그런 방심은 곧장 호된 대가로 이어졌다.ㅏ

체면을 구긴 카즈마가 번개같이 달려들더니 유한을 패쳐 버린 것이다.

쿵!

"크억!"

유한은 낙법도 못하고 제대로 내동댕이 쳐졌다.

숨이 막혀서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에게 카즈마가 또 한번 마수를 뻗어 왔다.

"제길, 또 당할까 봐!"

유한은 연달아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며 카즈마를 공격했다.

어지럽게 날아온 공격을 쳐 낸 카즈마는 유한이 하이킥을 날리자 옆으로 비스듬히 빠지며 유한의 반대편 다리를 후려차서 넘어트렸다.

"크윽! 제길!"

또 한번 엉덩방아를 찧은 유한은 황급히 구석으로 물러났다.

"바보 자식, 계속 움직여야지!"

코너에 몰리면 운신이 더 어려워질 뿐이다. 근접전에 강한 카즈마는 유한을 가둬 놓고 마음껏 기술을 펼칠게 틀림없다.

안타깝게도 곽대발의 충고는 유한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오지 마! 저리 가!"

코너에 들어간 유한은 연방 정권과 발차기를 날리며 카즈마의 접근을 막았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언제까지 통할까.

유한은 연달아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다 지쳐 버렸다.

그틈을 타서 카즈마가 득달같이 달려들더니 관절 기술을 펼쳤다.

순식간에 잡혀 오른팔이 뒤로 꺾인 유한은 카즈마가 조종하는 꼭두각시처럼 한 바퀴 팽그르르 돌았다.

"항복하세요, 버티면 팔 부러집니다."

"크윽 ! 이렇게 질 수는……."

유한은 계속 버텼다. 흡족한 얼굴의 송태수를 보자니 이대로 질 수 없다는 오기가 무럭무럭 솟구쳤다.

그는 발버둥을 치면서 카즈마의 손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러나 카즈마도 놀면서 고무술 유단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이 고딩이 송태수 같은 호랑이는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살쾡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놓아주기는 커녕 더욱 팔을 꺾어 올리는 카즈마 였다.

"아아악!"

"항복하란 말입니다. 당신 크게 다쳐요."

계속 유한이 버티자 카즈마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이대로 상대를 봐주면 시간을 끌게 되고, 그리되면 고무술 유단자로서 자신의 체면이 깎인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장내면 상대의 팔을 완전히 부러진다.

"유한아, 항복해!"

"그래, 처음에 한 방 날린것만으로도 넌 잘한 거야!"

상황이 심각해지자 수련생들이 유한을 설득하고 나섰다.

송태수의 표정도 달라졌다. 그는 유한이 혼쭐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지 크게 다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시합을 중단시키면 자신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진드기같은 카즈마는 다시 들어붙을 것이고, 끝까지 항복하지 않은 유한이 녀석은 콧대가 치솟을 터.

'그래도…….'

유한이 크게 다치는 것보다 자신의 체면이 깎이는 게 낫다.

그리생각한 송태수는 대련을 중지시키려고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런 그를 보고 유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둬요! 난 절대 안진다고요!"

"인마, 엉뚱한 소리 하지 마. 원래 니 상대가 아니었어."

"천만에요! 이길수 있어요!"

대체 무슨 배짱으로 계속 버티는 것인가.

아파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부들부들 떨면서, 진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유한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유한이 계속 고집을 피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솔직히 모두가 설득 했을때 항복하려 했었다.

그런데 포기하려던 바로 그때 유한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채린이었다.

4

약 10분 전.

학교를 파한 채린은 도장 근처 마트에서 음료수를 사고 있었다.

"오늘도 아버지 도장에 가는 거니?"

"네, 오빠들한테 시원한 것좀 갖다 주려고요."

마트 주인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채린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론 바쁘다는 핑계로 도장을 거의 찾지 않던 그녀가 요즘 불티나게 들락거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누가 도장에 오지 않나 확인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누구란 바로 유한이었다.

'그때 유한이 녀석 분명히 극기도 기술을 썼어.'

밸런타인데이 때 유한이 양아치들과 싸웠다.

그 용감한 모습은 예전에 채린이 알고 있던 유한이 아니었다. 아니, 그저 게임에서만 볼수 있는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유한은 수적으로 우세한 양아치들을 오히려 압도하며 싸웠다. 상대의 기를 죽이는 패도적인 공격과 기술은 분명 아버지의 극기도 였다.

개중에는 사범인 곽대발이 따로 개발한 기술도 있었다.

그 말인 즉슨, 유한이가 몰래 극기도를 배우고 있었다는 거다.

'내가 잘못 본 건지도 몰라. 다른 도장에서 배울 수도 있는데…….'

그래도 나름 확인을 하고 싶어도 요 근래엔 계속 도장을 찾았다.

"유한아, 항복해!"

"그래, 처음에 한 방 날린 것만 으로도 넌 잘한거야!"

도장 가까이 오자 안에서 함성과 고함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지르는 지 밖에까지 쩌렁쩌렁 울릴정도다.

'유한이?'

함성 속에 아는 이름이 있자 그녀는 부리나케 도장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함성속에 아는 이름이 있자 그녀는 부리나케 도장 문을 열고 아능로 뛰어 들어갔다.

링에선 차림새가 이상한 무술가가 유한의 팔을 꺾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서서 말리려 했을 때 채린은 유한과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란듯한 유한의 얼굴은 어릴때 몰래 과자를 먹다 들켰을 때와 같았다.

그러나 그 얼굴은 이내 불타오르는 투지에 묻혀 버렸다.

"그만둬요! 난 절대 안진다고요!"

"인마, 엉뚱한 소리 하지 마. 원래 니 상대가 아니었어."

"천만에요! 이길수 있어요!"

채린이 눈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순 없다. 상대가 제 아무리 레벨이 높더라도, 상당한 유단자라도.

유한의 마음가짐은 그랬다.

덕분에 오히려 붙잡고 있는 카즈마가 애원했다.

"이러지 말고 항복해요. 나 나쁜사람 되기 싫습니다."

당황했기 때문인지 유한의 팔을 꺾은 카즈마의 손속이 조금 느슨해졌다. 유한은 그 틈을 눟치지 않았다.

고통으로 흩어진 힘을 모은 유한은 발을 들어 카즈마의 발등을 세게 내리 찍었다.

"헛!"

카즈마가 놀라 피했지만, 그는 여전히 유한의 팔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유한이 뒤로 허리를 재껴 박치기를 날리자 떨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크윽!"

재빨리 물러났지만 카즈마는 유한이 날린 회심의 박치기를 완벽히 피하지 못했다. 콧잔등에 찌릿한 느낌이 들면서, 그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이때다!'

카즈마가 비틀거리자 유한은 한 바퀴 몸을 크게 돌리며 그의 머리로 발차기를 날렸다.

빠악ㅡ!

혼신의 힘을 다한 발차기는 카즈마가 들어올린 팔에 막혔지만, 결국 카즈마의 한쪽 무릎을 링에 꿇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런!"

벌떡 일어선 카즈마는 유한이 여전히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직 오른팔에 고통이 가시지 않았을 텐데도 앞으로 쭉 뻗으며 자신을 견제했다.

두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절대 굴복하지 않을 기세였다.

"후, 좋은 자세!"

"이 자식, 날 갖고 놀았겠다! 용서 못한다!"

두 사람은 다시 치열하게 얽혀 들었다.

유한은 연달아 발차기와 정권을 날리고, 카즈마는 흘려내기와 걸기 기술로 유한의 공격에 맞섰다.

그러나 카즈마는 다시 관절 기술을 쓰지 않았다.

땡땡땡땡ㅡ!

약속된 시간이 지나자 곽대발이 올라가 두 사람을 양쪽으로 떨어트려 놓았다.

"헉헉, 제기랄!"

"내가 졌습니다."

유한이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갑자기 카즈마가 자신의 패배를 선언했다.

사실 실력은 그가 유한보다 한단계이상 높았다.

그러나 상대의 투지에 밀려 시간만 끌고 승부를 내지 못했다.

그건 자신의 패배나 마찬가지.

카즈마는 그대로 링에서 내려갔고, 유한은 오른팔을 붙을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처음에 관절기에 상한모양.

"유한아!"

채린이 후다닥 링위로 올라가 그런 유한을 부축했다.

모두가 흐믓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송태수만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유한의 부상은 크지 않았다.

카즈마가 더 심하게 꺾지는 않았기에 인대가 살짝 늘어난 정도에 그쳤다.

채린은 찜질용 팩을 수건에 싸서 유한의 오른팔에 씌워 주었다.

"앗, 뜨거!"

"어이구, 엄살은……."

혀를 차곤 있지만, 유한을 내려다 보는 채린의 눈빛은 따뜻했다.

"뭐 하러 특기도 아닌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그냥 좀 강해지고 싶어서."

유한이 대충 얼버무렸지만, 채린은 그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밸런타인 데이 때 유한은 자신을 뒤에 두고 양아치들과 용감히 싸웠다.

"그럼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 아까처럼 꼴사나운 모습보이지 말고."

"알았어, 다음엔 완벽히 이길게."

유한과 채린이 화기애애하게 웃는 사이 카즈마는 송태수에게 고별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돌아가려는 건가?"

"예, 이미 큰 가르침 얻었습니다."

카즈마는 이번에 자신의 문제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은 강하다. 허나 그 강함은 교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저 으스대고 싶어서 쌓은 힘은 매번 상대를 깔보고 경솔한 판단을 내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선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없다.

교만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다면 오늘 자신과 상대했던 저 소년이 다음에 자신을 넘어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하겠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부끄럽지않겠습니다."

"허허허, 이제 그릇이 되었군. 물을 담으면 꽉 차겠는데?"

송태수는 카즈마의 어개를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성향은 다르지만, 그래도 내밑에서 배우고 싶다면 내 힘껏 자네를 가르쳐주지."

"정말입니까?"

예상치 못했던 말에 카즈마는 깜짝 놀랐다.

나름 마음 한편에 미련이 남아 있었기에 송태수의 말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극기도도 더 발전해야 할 점이 많아. 자네가 그 점에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군."

"제가 말입니까?"

"싫은가?"

"아닙니다! 전력 다 하겠습니다!"

카즈마는 송태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아르페디아를 어지럽히던 고무술 유단자 카즈마도 극기도, 아니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일원이 되었다.

첫 외인 용병이라고 할까.

"쳇, 이랬다가 저랬다가 멋대로라니깐."

투덜거리는 유한에게 송태수의 호통이 떨어졌다.

"뭐 해. 강유한이. 여기가 니 집 안방인줄 알아? 놀지말고 당장 수련시작해."

"저는 부상자라고요!"

"다르 두 짝은 멀쩡하잖아. 오리걸음으로 뺑뺑이 돈다. 실시!"

결국 유한은 남는 시간동안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수련해야 했다. 나중에 집에 돌아갈땐 카즈마에게 다친 오른팔 보다 두 다리가 더 아팠다.

"아우씨, 종아리가 퉁퉁 부었어."

"그러기에 왜 아빠 도장에 와 가지곤 고생이니?"

골목에서 채린이 불쑥 튀어 나왔다. 아버지의 성화에 먼저 돌아가는 척했지만 근처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그녀는 어깆거리는 유한의 손을 붙잡고 나란히 걸어갔다.

작고 따스한 채린의 손에서 온기를 느끼던 유한은 슬쩍 채린의 팔을 끌어당겨 팔짱을 꼈다.

'조심해라, 복부로 무릎차기 날아온다.'

마음속에 있는 바츠가 경고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채린은 유한의 품에 바싹 다가왔다.

"아직 밤날씨는 춥네."

"응, 감기 조심해야해. 우리 옆집에 사는 강찬 아저씨는 감기걸려 고생이더라. 이번에 소설 마감도 그래서 미뤘대."

그렇지만 유한은 계속 날씨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길도 계속 이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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