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 탄생
1
이바니우스 3세와 무덤 입구에서 만난 베히모스와 철십자 길드원들은 서둘러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내려가자 지하 광장이 나왔고, 광장 너머의 문이 열려 있었다.
열려진 문을 통해 계속 전진한 그들은 이바니우스 3세의 제지에 멈춰섰다.
"조심해라, 이곳은 환상 마법진이 설치 되어있다."
그러나 환상 마법진은 발동되지 않았다. 유한 일행이 앞서가며 환상 마법진을 해체 했기 때문이다.
"큭! 짐이 역적 놈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다니."
예전에는 이곳을 뚫지 못해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었는데.
이바니우스 3세와 철십자 길드원들은 계속해서 전진해 갔다. 두 번째 문을 열고 다음 통로로 들어서자 뭔가 큼지막한 짐승이 누워있는게 보였다.
"확인해 봐."
베히모스의 명령에 도적 유저 몇명이 조심스럽게 짐승에게로 다가갔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접근했던 그들은 짐승의 상태를 보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재빨리 돌아와 자신들이 본것을 보고 했다.
"켈베로스입니다만, 이미 죽었습니다."
"역시 놈들 짓인가?"
그들 말고는 이곳에 들어온 자가 없으니 분명했다.
"사체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걸 봐선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합니다."
한 유저의 말에 이바니우스 3세는 곧장 테라칸 황제의 묘실로 들어갔다. 주저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고 베히모스는 깜짝 놀랐다.
적에게는 블랙이라 불리는 거대 강철 병기가 있다. 나름 대비해도 시원찮을 판에 적들이 있는 묘실로 막무가내로 들어가다니.
"제길, 거대 목인병은?"
베히모스의 물음에 노벨이 다급히 말했다.
"이 근처로 이동시켜 놨는데 이 안으로 소환하려면 시간이 걸려, 전송 마법진 구축이 상당히 까다로운 거라……."
"쳇, 망할 NPC 같으니라고!"
욕심 많은 NPC 떄문에 일을 망치게 생겼다. 괜히 놈들을 건드려 도망치거나 방비할 시간을 주게되면 고생하는것은 자신들일 테니까.
베히모스는 부하들을 이끌고 묘실 안으로 들어갔따.
이렇게 된 이상 이바니우스 3세가 지그 패거리와 싸우는 틈을 타서 뇌제의 홀을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음하하하핫! 드디어 손에 들어왔도다! 황제 테라칸의 보물, 뇌제의 홀이!"
안으로 들어간 베히모스가 본것은 대전 단상의 옥좌를 차지한 이바니우스 3세와 지그 패거리들이 황당하다는듯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거 뭐야? 안 싸운 건가?"
싸우지도 않고 뇌제의 홀을 넘겨줬단 말인가.
지그패거리들은 다 멍청이들이란 말인가.
눈앞에 보물이 많다지만, 이곳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뇌제의 홀이 아니었던가.
아무튼,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일이 잘 풀리자 베히모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바니우스 3세에게서 보상을 받은 후 그동안 딴죽을 걸어온 앙갚음을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뇌제의 홀? 그게 뭐지?"
"저 번개 모양의 작대기를 말하는건가?"
유한과 옌스가 지껄이는 이야기를 듣고 베히모스는 어이가 없었다.
이 바보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테라칸의 무덤에 찾아왔단 말인가.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뇌제의 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것 같았다.
"어머, 분위기가 왜 이래?"
"꺄악 ! 언니 저것봐요. 이바니우스 3세예요."
"앗! 저건 철십자 길드잖아!"
의상실에서 신나게 이것저것 입어 보던 여자애들은 밖으로 나오다가 입구에 가득 몰려 있는 유저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보물과 화려한 의상에 눈이 어두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건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철십자 길드?"
"아니, 이 자식들이 언제?"
유한과 옌스는 뒤늦게 베히모스 패거리들이 대전에 들어온 것을 보고 놀랐다. 로키가 미리 알고 경계하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그들은 기습을 당햇을지도 모른다.
"네놈들이 내 수하들을 모두 죽여 준 바람에 짐은 새로운 수하들을 받아들였지, 새로 짐의 검이된 베히모스와 철십자 길드니라."
이바니우스 3세의 말에 유한 일행은 놀랐지만, 베히모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은 이바니우스 3세와 조건부로 동맹을 맺은 것뿐이다. 그런데도 저 건방진 NPC는 자신과 길드원들을 수하 운운하고 있었다.
"천하의 베히모스가 NPC 쫄따구가 되다니."
"그러게, 그것도 우리한테 진 상대에게 말이야."
일부러 도발하려 한 것은 아니지만, 리지스와 채린의 발언은 베히모스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
'계집애들, 기억해 두겠다. 니들도 지그랑 같이 끝장내 주마!"
그렇게 다짐한 그는 이바니우스 3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폐하, 뇌제의 홀을 얻었으면 보상을……."
"짐의 일이 다 끝나면 어련히 알아서 줄까? 기다리거라."
그렇게 베히모스의 입을 막아버린 이바니우스 3세는 유한 일행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참 어리석구나. 역적들이여, 너희들은 여기서 무엇을 찾으려 한 것이냐?"
"그야 당연히 보물이지."
유한은 주변에 널린 금은 보화들을 가리켰다.
"쯧쯧쯧, 진짜 보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보물을 찾겠다니. 너희들 눈은 정말 쓸데 없는 것이로구나, 하긴 돼지가 진주목걸이를 알아볼 리는 만무한 일."
"뭐라고?"
"우리가 돼지란 말이예욧!"
일행이 발끈하는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이바니우스 3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어리석은 역적들이여, 테라칸 황제의 보물 중에 가장 진귀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바로 뇌제의 홀이다. 바로 짐의 손에 들린 이것이지."
이바니우스 3세가 능묘에서 손에 넣으려 한 것은 뇌제의 홀뿐이다.
그래서 유한 일행이 먼저 능묘를 열었다고 생각하자 앞 뒤 안가리고 뛰어 들어간 것이다. 뇌제의 홀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벌써 놈들이 손아귀에 넣었다면 빼앗기 위해서.
그런데 다른 쓸데 없는 보물에 눈이먼 유한일행은 옥좌의 시신이 쥐고있는 뇌제의 홀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뇌제의 홀은 천둥 번개를 부리는 힘을 가진 패왕의 상징. 짐에게 걸맞은 신물이라 할 수 있다."
"그게 천둥 번개를 부리는 힘이 있다고?"
"물론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짐이 기를 쓰고 이것을 손에 넣으려 할리가 없지 않겠느냐."
유한은 믿을수 없엇다. 그저 좀 괴상하게 생긴 막대기라 생각했을 뿐인데, 그런힘이 있다니.
'아놔, 미리 좀 살펴볼걸.'
블랙의 눈앞에서 녀석의 시신을 건드리기 미안해서 놔둔 건데 엉뚱한 녀석이 득템하고 말았다.
"천한 것들은 테라칸의 무위를 꾸며 댄것이라 운운하지만, 실제 테라칸에겐 천둥 번개를 부리는 힘이 있었따.
바로 그힘을 바탕으로 그는 대륙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지."
뇌제라 불렸던 진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유한은 슬쩍 블랙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심각한 걸로 봐서 미케니아 국왕의 말에는 전혀 거짓이 없는 모양이다.
"이제 그 힘은 짐의 것이다. 과거 테라칸이 가진 힘으로 짐은 이제 아르페디아는 물론 다른 대륙도 정벌하여 진정한 세계의 지존이 될 것이다!"
광오하기 짝이 없는 야망이었다.
그러나 이바니우스 3세가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있었다. 바로 그가 역적이라 지칭하는 유한 일행이었다.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둘것 같으냐!"
블랙이 눈을 번뜩이며 이바니우스 3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강철 육신은 마기를 분쇄하는 황금빛의 카이저 소울로 휘감겨 있었다.
달려드는 블랙을 보고 이바니우스 3세는 비웃음을 띠며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발밑에 본 적이 있는 마법진이 그려지자 블랙은 황급히 옆으로 물러섰다.
"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할 것 같으냐!"
고속으로 발동시킨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상대를 날려 버리는 얍삽한 술책.
그러나 이것은 이바니우스 3세가 던져놓은 떡밥일뿐이었다. 블랙이 몸을 피한 자리엔 이미 그가 더블 캐스팅으로 발동시킨 마법진이 하나 더있었다.
"커어억! 이건!"
이바니우스 3세가 만든 마법진에 갇힌 블랙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는 악당의 앞에선 무릎 꿇을 수 없다는 듯, 끝까지 마법진의 마력에 대항했다.
"고강도의 마그네트 마법진이니라, 네놈 같은 망령이든 쇳덩이를 붙잡아 두는 덴 그만한 게 없지."
'그렇군, 마법진에 자력(藉力)이……."
왜 블랙이 꿈쩍도 못할까 어리둥절해 하던 유한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자석 수법은 자신이 그로지아의 배틀 폴로 대회에서 가우리 길드를 상대로 써먹은 적이 있었따.
'흥 역시 교활한 NPC란 말이야.'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베히모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따. 이바니우스 3세 덕분에 껄끄러운 강철 병기를 상대하지 않아도 될것 같았다.
"자, 이제 역적들을 처단해 볼까? 부하들의 원혼이 저세상에서 울고 있을 테니……."
"저놈들의 처리는 우리한테 맡겨 주시죠."
베히모스가 패거리들을 끌고 앞으로 나왔다.
그러자 이바니우스 3세가 뇌제의 홀을 겨누며 경고했다.
"역적들은 짐이 처리할 것이다. 그러니 나서지말라."
"우리도 저놈들에게 갚을것이 있소!"
"나서지 말라 했다!"
이바니우스 3세는 자신의 말을 거스르면 정말 공격이라도 할 기세였다.
베히모스는 이바니우스 3세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뒤로 물러섰다. 뇌제의 홀을 가진 미케니아의 왕을 상대하기도 껄끄럽지만, 이대로 동맹이 깨지면 퀘스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좋다. 이번엔 양보한다.'
유저는 NPC와 다르다. 몇 번이고 되살아나니 지그는 나중에 게임을 접고 싶을 때까지 괴롭히면 된다.
베히모스는 그런일에는 재주가 있었다. 게임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말이다. 자신의 맘에 안드는 놈들, 어른들이 아니꼽게 여기는 놈들은 학교에서 제발로 나가도록 만들었다.
그런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헤아리는 것도 포기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저 지그란 자식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예전에 봤을 때부터 어딘가 낯이 익은 인상이었다.
대체 어디서 보았을까?
골몰히 생각하는 베히모스의 귀에 이바니우스 3세의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천둥은 나의 소리요, 번개는 나의 검이다! 사라져라, 역적들아! 짐의 분노가 서린 번개를 받아라!"
2
이바니우스 3세가 뇌제의 홀을 내리치자 유한일행은 눈을 질끈 감았다. 금방이라도 거대한 번개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없었다.
벼락같은 고함소리만 대전 안을 쩌렁쩌렁 울렸을 뿐이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당황한 이바니우스 3세는 몇번이고 뇌제의 홀을 허공에 내리쳤다. 그러나 번개는 커녕 정전기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 저러는 거야?"
밖에서 동태를 살피고 있던 노벨이 묘실 안으로 들어와서 물었다.
베히모스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 따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
"푸하하하핫!"
바로 그때 마그네트 마법진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잇던 블랙이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당황하는 이바니우스 3세에게 비웃음의 눈길을 보냈다.
"멍청한 악당 녀석. 짐의 시신이 들고 있엇다고 해서 그게 뇌제의 홀이라 믿었느냐?"
"무, 무슨 소리냐?"
이바니우스 3세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놀랐다.
첫째는 저 쇳덩이가 자신을 테라칸이라 지칭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번개 모양의 지팡이가 뇌제의 홀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같은 멍청이를 위해서 짐의 충성스런 신하들이 약간 장난을 쳐 놨지. 그럴듯한 물건을 만들어 짐의 시신에 쥐어 준 것이다."
"뭐, 뭐라고!"
테라칸의 손에 들려 있고, 모양도 번개모양이라서 뇌제의 홀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런 사정을 몰랐던 이바니우세 3세는 제대로 속은셈 이었다. 유한일행이나 베히모스 일당 입장에선 자기네 손에 없으니 확인할수 없어 속았던 것이고.
"이 망할 고철 놈. 진짜, 진짜는 어디있느냐! 당장 말을 하라!"
악당의 말에 응답할 블랙이 아니었다.
그가 비웃음만 보내고 있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이바니우스 3세는 펄쩍 뛰었다.
"말해라! 당장 말하지 않으면 저 역적 놈들을 모조리 키메라 재료로 쓰겠다!"
협박에도 불구하고 블랙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원래 유한 일행을 이곳에 데려오지 않으려 했던 것도 단순히 보물 때문이 아니라 뇌제의 홀 때문이다. 뇌제의 홀이 자칫 악인의 손에 들어가면 대륙은 도탄에 빠질것 이기 때문에.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놈들은 뇌제의 홀을 찾을 것이다.'
이 능묘 안에 있는 보물을 모조리 뒤져서라도 끝내 손에 넣고 말겠지.
착잡한 기분을 느끼던 블랙은 갑자기 눈을 번쩍 떳다.
유한의 손에 들려 있던 장도리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쪽팔리는 물건, 호두 껍질이나 까는 물건이라 해서 유한에게 내버려 두라고 했는데, 아직 유한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하하핫, 차라리 잘되었군."
"이놈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바니우스 3세가 뭐라고 하자 블랙은 유한을 바라보고 외쳤다.
"파일런의 후손이여! 너를 믿겠다! 네손에 들린것을 치켜들고 외쳐라! 천둥은 나의 소리요, 번개는 나의 검이다!"
"뭐라고?"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유한은 영문을 몰라했다.
눈치가 빠른것은 베히모스 였다, 그는 유한의 손에 들린 볼품없는 장도리가 진짜 뇌제의 홀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뺏어! 지그 놈의 손에 있는게 진짜다!"
그 말과 동시에 베히모스는 검을 뽑아 들고 유한일행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베히모스와 철십자 길드원들을 막기위해 로키와 옌스가 앞으로 나섰다.
"플라잉 롤링 대쉬!"
"디펜더."
옌스가 철십자 길드원들을 치는 사이, 로키는 베히모스를 막았다. 랭킹은 한참 뒤졌지만 로키는 탱커로서 방어력을 우선으로 키워 놓았기에 베히모스의 공격을 밀리지 않고 막을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나 더 베히모스를 막아설수 있을지 그도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얼른 블랙이 시킨 대로 해!"
어찌나 다급했는지, 로키는 평소 답지 않게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여전히 유한은 주춤하고 있었다. 해보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지만, 철십자 길드장인 노벨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크크크, 그건 우리 거……."
유한에게 득의 만만하게 접근했던 노벨은 측면에서 날아온 파이어 볼을 맞고 나가 떨어졌다.
"제길, 누구야?"
"킥 롤링 파이어!"
상대는 노벨에게 응답하지 않고 계속 마법을 퍼부었다.
유한을 구한 것은 바로 오펜 이었다. 진귀한 마법서가 있는 서고에 있던 그는 바깥 상황이 심각해 지는것을 보고 조용히 숨을 죽였다. 숨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기회를 보아 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고맙다, 오펜."
"인사는 나중에 ! 얼른 뇌제의 홀을 발동시켜."
오펠은 말을 마치고 서둘러 유한의 앞으로 가 날아드는 다크 에로우를 막았다. 이번에 공격한 것은 이바니우스 3세였다.
"뇌제의 홀은 짐의 것이다!"
"마나 실드!"
오펜은 소나기 처럼 쏟아지는 다크 애로우를 막아냈다. 힘겹게 이바니우스 3세의 공격을 막는 가운데 그는 왼손을 블랙에게로 뻗었다.
"매직 브레이크(Magic Break)!"
"아뿔사, 이놈이 더블 캐스팅을!"
오펜도 마도사 칭호를 얻으면서 익힌 스킬들이 있었다. 에이린이 하이 프리스트가 되어 레저렉션을 익힌것처럼, 그도 더블캐스팅 스킬을 익혔다.
아직 랭크가 낮아 여러 번 사용하진 못하지만 현재와 같이 긴요한 상황에 써먹을 수는 있었다.
"좋아! 마법진이 깨졌군!"
오펜 덕분에 블랙은 마그네트 마법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두리번 거리다가 막 오펜을 공격하려는 노벨을 보았다.
"어림없다!"
"크아악!"
번개같이 몸을 날린 블랙은 쇠주먹으로 노벨을 후려쳤다.
40위권의 랭커지만, 마법사라 체력이 허약하기 짝이없던 노벨은 단 일격에 사망 판정을 받고 말았다.
'씨이, 난 왜 매번 이모양이냐.'
길포드에게도 그렇고, 키라란 녀석에게도 그렇고.
아무래도 자신은 전투에 소질도 없고 도움도 안되는 것 같았다. 서글픈 마음이 든 노벨은 마법사 그만두고 전사나 해볼까 생각하면서 접속을 종료했다.
"뭐 하는거냐, 후손 ! 얼른 뇌제의 홀을 발동시켜라!"
블랙의 외침과 동시에 유한은 뇌제의 홀을 치켜들었다.
3
"천둥은 나의 소리요, 번개는 나의 검이다."
유한은 블랙이 일러 준 대로 장도리, 아니 뇌제의 홀을 치켜들고 발동 주문을 외웠다.
처음 몇 초 동안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뭐야? 나도 속은거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무시무시한 굉음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따.
콰콰쾅ㅡ!
무덤의 천장을 뚫고 벼락이 떨어졌다.
벼락은 유한이 치켜든 뇌제의 홀에 떨어졌다. 격렬한굉음이 대전을 뒤흔들고, 번개의 섬광이 사방을 환하게 비쳤다.
"무, 무슨일이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유한의 친구들과 철십자 길드원들, 그리고 이바니우스 3세도싸움을 멈추고 벼락이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따.
번개의 섬광이 번득였던 그자리에 유한이 서 있었다.
머리카락이 솟구치고 입고있던 코트의 소매가 갈가리 찢어진것 외에는 그다지 달라진 곳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몸 주변에는 가늘면서도 선명한 스파크가 연달아 튀었고, 얼굴과 팔 등, 피부가 드러난 부위에 검은 문신 같은 자국이 생겨났다. 그 검은 자국은 마치 번갯불을 연상 시켰다.
그리고 뇌제의 홀이 변했다.
유한의 손에들려 있던 볼품없던 장도리가 황금 빛을 뿐는 커다란 해머로 변했다.
이제야 뇌제라 불리는 자에게 걸맞은 무기처럼 보였다.
'이것이 뇌제의 홀이 가진힘?'
유한은 기분이 상당히 고무 되는걸 느꼇다. 얼떨결에 블랙이 알려준 대로 하긴 했지만,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
지금 유한의 상태는 주변 사람들이 겉으로 보는것보다 상당히 달라져 있었따. 눈앞에 어지럽게 떠오른 안내창을 봐도 알수 있었다.
- [뇌제]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 뇌제의홀이 있으면 뇌제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뇌제로 변신하면 5분간 힘과 민첩성, 솜씨가 100 씩 증가하고 방어력이 2배로 상승합니다.
변신 상태에서 범위공격 스킬 '라이트닝 웨이브(Lightning Wave)' , 원거리 공격스킬 '선더 스피어(Thunder Spear)' , 돌격 스킬 '선더 러쉬 (Thunder Rush)' 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게임시간으로 하루에 한번만 뇌제로 변신 할수 있습니다.
● '변신 해제' 를 외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갑니다.
'호오, 꽤 괜찮은데 ?"
유한은 크게 만족했다.
스탯을 올려주고 방어력을 상승시키는 것은 물론, 유용하고 위력있어 보이는 공격스킬을 3개나 주다니. 하루에 한 번, 그것도 5분밖에 변신할수 없다는 점도 게임 밸런스를 생각해 너그럽게 이해하기로 했다.
생산직인 자신이 이만한 능력을 가지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런데 다소 맘에 안드는 문제점도 있었따.
- 변신한 상태에선 경험치를 습득할 수 없습니다.
변신시간 5분을 초과할 경우, HP가 빠르게 하락합니다.
제한시간을 초과하는 만큼 폭주 확률이 증가합니다.
"크악! 이건 뭐야!"
변신한 상태에선 경험치를 못얻고, 시간 초과를 하면 HP가 떨어진다니.
더구나 폭주 확률이 증가한다고 했따. 폭주는 캐릭터가 유저의 의사와 상관없이 날뛰는 것을 의미한다. 제멋대로 날뛰다 어이없이 죽을수도 있고, 같은편을 해칠수도 있다.
아무래도 뇌제의 홀은 주의해서 사용해야 할듯 싶었다.
"뭐 해! 얼른 공격해! 뇌제의 홀을 빼앗으란 말이야!"
베히모스의 명령에 잠시 넋을 잃고 있던 철십자 길드원들이 유한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제길, 오 분이라고 했겠다."
유한은 5분 안에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했다. 철십자 길드와 베히모스, 그리고 이바니우스 3세까지.
"죽어라 , 대장장이!"
"어림도 없다!"
유한은 철십자 길드원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 뇌제의 홀을 휘둘렀다. 해머로 변한 뇌제의 홀에 맞은 유저는 타격을 입는것은 물론, 전격의 추가 데미지 까지 입고서 뒤로 날아갔다.
"받아라, 라이트닝 웨이브!"
유한은 크게 망치를 내리치며 뇌제의 스킬을 전개했다.
콰콰쾅!
망치가 바닥을 때리자 격렬한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전격의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그러자 유한에게 달려들던 철십자 길드원들이 살충제를 맞은 파리 떼처럼 우수수 쓰러져 나갔다.
'우와, 이거 대단한데?"
뇌제의 스킬에 감탄한 유한은 입구에서 또 다른 철십자 길드원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따. 범위 공격 스킬을 써봤으니 이번엔 원거리 공격 스킬을 써 보기로 했다.
"가랏! 선더 스피어!"
유한이 스킬을 발동하자 뇌제의 홀에서 번갯불이 튀어 나갔다.
어지럽게 흩어진 번갯불들은 돌격해 오던 철십자 길드원들에게 날아갔따. 선더 스피어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길드원 서너명이 한꺼번에 나가 떨어졌다.
"우와, 저게 뇌제의 홀이 가진 위력인가!"
"지그 오빠가 랭커라도 된 것 같아요."
리지스와 에이린은 유한이 보여주는 무위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체 어떤 유니크 아이템이기에 생산직 대장장이를 저런 괴물로 만든단 말인가.
공격 2번에 고위급 유저 수십명이 사라졌다.
유한의 무위에 정신이 팔린 두사람은 몇몇 철십자 길드원들이 자신들에게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트리플 샷!"
"커억!"
채린이 날린 화살이 두 소녀를 기습 하려던 철십자 길드원들의 가슴에 박혔다. 뒤늦게 정신차린 리지스와 에이린에게 채린의 따끔한 충고가 날아들었다.
"정신차려! 지금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그랬다. 지금은 구경할 떄가 아니라 싸울때였다.
옌스와 오펜은 철십자 길드원들을 상대로 쉴 새 없이 공격을 전개했고, 로키는 베히모스를 상대로 선전을 펼쳤다.
"더러운 악당 놈. 뇌제의 홀을 탐낸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닥쳐라, 쇳조각! 짐의 앞길을 가로막지 마라!"
한쪽에선 한때 아르페디아를 주름잡은 왕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절정의 무위를 가진 블랙을 상대로 이바니우스3세는 자신의 마력을 총 동원하여 대등하게 싸웠다.
"제길, 이게 뭐야! 한줌도 안되는 놈들을 상대로!"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베히모스는 길길이 날뛰었다.
보상은 보상대로 미뤄지고, 그렇다고 뇌제의 홀을 차지한것도 아니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탱커를 죽여 버리고 지그 놈에게 달려들고 싶은데 상대는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공격은 몰라도 방어에 있어선 여느 랭커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로키가 가진 능력에 표재훈의 격투기 지식이 더해진 결과였다.
'그래, 이자식 방어만 할 뿐이군.'
베히모스도 그리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는 로키가 자신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방어 뿐임을 간과해싿.
벽을 상대로 칼질을 한들 소득이 있겠는가.
로키를 슬쩍 부하들에게 떠맡긴 베히모스는 비호 같이 유한에게 달려들었다.
"조심해, 베히모스가 간다!"
로키의 경고를 들은 유한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아르페디아 4위에 랭크된 최강의 기사가 자신에게로 달려들고 있었다.
유한은 피하는 척 몸을 빼다가 한순간 앞으로 달려 들어갔다.
'오냐, 언젠간 너와 한번 붙어보고 싶었다.'
"선더 러쉬!"
뇌제의 돌격스킬이 발동하자, 유한의 앞에 있던 철십자 길드원들이 번개 폭풍에 휘말려 튕겨 나갔다.
튕겨나가지 않은 것은 베히모스 뿐이다. 뇌제의 힘을 가진 유한도 그의 굳건한 디펜스를 완전히 무력화 시키지 못했다.
"과연 4위의 랭커로군!"
"까불지 마라, 대장장이 자식! 뇌제의 홀은 네놈에게 어울리는 물건이 아니야!"
베히모스는 유한이 자신을 아래로 보는 투로 말하자 발끈하여 공격에 속도를 높여갔다.
그러나 눈앞의 황당한 대장장이 자식은 자신의 공격을 막아냄은 물론 오히려 피하고 반격까지 날렸다.
"그럼 너한텐 어울리는 물건일 것 같냐?"
유한은 베히모스의 검을 막고 그의 발을 강하게 밟았다. 주춤하는 베히모스에게 유한은 어깨를 들이 밀어 그의 가슴에 강하게 부딪쳤다.
"커억! 이 자식이!"
'웃긴 놈이네, 4위 랭커가 이런 단순한 공격도 못 피해?'
유한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자신이 뇌제의 홀이라는 사기성 유니크 아이템으로 전투력을 뻥튀겼다지만, 베히모스가 이리 약한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4위 랭커라면 레벨이 족히 250은 넘을 것이다. 어쩌면 300에 다다랐을 수도 있따.
그만하면 아이템 발로 능력을 높인 유한을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을 터. 그러나 오히려 당하고 있는것은 베히모스 쪽이었다.
유한은 베히모스가 강하다는 소문을 바츠 시절부터 들었다.
바츠처럼 홀로 드래곤을 잡을 수 있는 강자라고 소문이 자자 했다. 바츠가 사라질 때도 베히모스는 기사 유저중에 최고의 캐릭터 였다.
"크아악! 소닉 블레이드!"
그런데 이건 무엇인가.
분명 스탯은 높은것 같고, 스킬에 맞아보니 나름 위력은 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위력을 가진 스킬에 비해 동작이 너무 평범하기 이를데 없다. 몬스터나 일반 유저라면 몰라도 고단수의 플레이 능력을 가진 고수에게는 통하지 않을 전투력이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도장에서도 그랬지.'
예전에 송태수를 비롯해, 곽대발 등 도장 사람들은 베히모스의 전투 동영상을 보고 4위 랭커 답지 않다며 혀를 찼었다.
그렇게 4위 랭커를 우습게 보는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무술에 관해 지식이 풍부하다는 것이고, 게임플레이에 있어서도 스킬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사인 송태수는 게임에서 유술가를 상대로 노 스킬로 두들겨 준적이 있을 정도다.
어차피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전투 시스템에서 스킬은 그저 강력한 공격력을 갖추고 있을 뿐이고, 평범한 칼질이라도 급소에 맞으면 데미지가 크다.
그 묘미를 잘 아는 사람은 스킬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아니면 옌스처럼 스킬 자체를 다양한 패턴으로 변화 시켜 사용한다.
그런데 4위 랭커에 오를 정도로 게임을 오래한 베히모스가 그런 것도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은 레벨에 비해 경험이 심하게 모자란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도 아니면…….
"너 만만한 상대하고만 싸우면서 레벨 올렸지?"
유한의 지적에 베히모스는 움찔 놀랐다.
"아니면 길드전에 묻어가서 경험치를 뜯어먹었거나."
"이 자식이!"
"하긴 길드 간부쯤 되면 경험치도 더 많이 얻겠군."
유한의 추측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는지 베히모스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그는 들고 있는 칼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화를 냈지만, 그만큼 당황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4위 랭커라는 놈이 고레벨 몬스터를 잡은 동영상이 없어 이상하다 했더니 그 이유를 이제 알겠군.'
베히모스는 소문에 비해 알려진 동영상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있는 것도 길드전이나 평범한 사냥터에서 몬스터를 잡는 것뿐
"뭘 안다고 함부로 주절 거리는 거냐?"
"그야 너하고 똑같은 놈을 하나 아니까!"
그놈도 베히모스처럼 고레벨, 아니 고위층의 자녀다.
학교 이사장의 손자로 학교에선 놈이 왕이었다. 주먹 쓴다는, 힘좀 쓴다는 양아치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약한 학생들을 괴롭히면서 거들먹 거렸다.
그러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던 놈이었다. 애들 때리고 괴롭혔던 범생이가 마지막에 악을 쓰고 덤벼들 떄는 그저 어쩔줄 모르고 밀대자루에 두들겨 맞던 그런녀석이었으니까.
생긴 것도 베히모스 이놈이랑 짜증날 정도로 닮았다.
그 짜증스런 목소리 까지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철십자 기사단에 김필중을 비롯해 학림 고등학교 일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보니 똑같은 놈이 아니라 니가 바로 그놈이구나."
"뭐, 뭐?"
"너 정현일이지?"
유한의 물음에 베히모스는 눈을 둥그렇게 떳다.
아마 게임을 하면서 아는 녀석 말고 다른 놈에게 본명을 불리게 될줄은 몰랐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그란 놈은 자신을 알고 있는 게 당연할지도.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는 녀석이다. 생각이 날 듯 하면서도 떠오르지 않았다.
"너, 너 누구야!"
'이놈도 김필중 그놈이랑 다를게 없군.'
하긴 누군지 분간하지도 못할 정도로 숱한 학생들을 괴롭힌 녀석이니 이렇게 묻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한 가지는 분명 가르쳐 주고 싶었다.
만만하다 여기고 마음껏 짓밟은 상대가 이빨을 들이밀고 물어뜯을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해 주마. 내가 누군지."
묘한 쾌감에 유한은 자신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4
-믿을수가 없군.
-저놈들 대체 누구지?
쓰러진 철십자 길드원들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부활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이 현실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상대는 겨우 다섯, 가디언 까지 합치면 여섯이다.
자신들은 베히모스와 길드장 노벨이 있었고 수적으로도 우위였는데도 오히려 수세에 빠진 상태였다.
길드장은 손도 못 써보고 가디언에게 죽임을 당했고. 베히모스는 뇌제의 홀을 쥔 대장장이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제길, 초반에 피해가 너무 컸다.'
베히모스는 얼마 남지 않은 길드원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무리하게 뇌제의 홀을 빼앗으라 명령한게 화근이었다.
그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얼마만큼의 위력이 있는지는 몰랐다.
초반에 뇌제의 홀을 이용한 대장장이의 공격에 길드원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기세가 팍 꺾여 버렸다. 거기다 옌스와 오펜, 아까 자신을 상대했던 로키라는 놈도 무척 강했다.
'계집애들조차도 쓰러트리지 못하다니…….'
몇몇 길드원들은 여자애들을 공격했지만, 오히려 당하기만 했다. 화살에 맞고 돈주머니에 맞고, 두꺼운 법전에 맞고,
'이게 우리 철십자 길드가 맞는가, 아르페디아 온라인 최고의 길드인 ?'
현재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베히모스였다. 아니, 자신이 두들겨 맞고 있는것 자체가 꿈같았다.
"이 와중에 딴 데 신경 쓸 틈이 있어?"
"커억!"
유한의 발길질에 차인 베히모스는 뒤로 벌렁 자빠졌다.
굴욕감을 느낀 베히모스는 벌떡 일어나서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스킬은 사용하지 않았다. 어찌 된게 저 대장장이 놈은 공격스킬은 매우 높은 확률로 피해버렸다.
"죽어!"
베히모스가 평범한 칼질로 전환하자 유한도 위험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과연 4위 랭커 답게 스탯 수치가 높은지, 빠르고 사나운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만약 베히모스가 좀 더 경험이 있었으면 벌써 유한을 궁지에 몰아 붙였을지도 모른다.
푸윽!
"크윽!"
정신없이 검을 피하던 유한은 베히모스의 칼에 왼쪽 허벅다리를 찔렸다.
'잡았다!'
히죽웃던 베히모스의 머리 가운데로 뇌제의 홀이 떨어 졌다.
"라이트닝 웨이브!"
콰콰쾅!
굉음과 함께 격렬한 전격이 베히모스의 몸을 뒤흔들었다. 강렬한 일격을 맞은 베히모스의 바람에 휘날리는 가랑잎처럼 비틀거렸다.
-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쇼크가 10초간 유지됩니다.
방금전 그 공격에 HP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그리고 캐릭터의 제어도 되지않았다. 베히모스의 의사와 달리 몸은 멋대로 비틀거렸다.
'제길, 뭐야! 움직여! 움직이라고!'
다리에서 칼을뺀 대장장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야수처럼 으르렁 대면서.
"아직도 기억 안 나냐!"
커다란 망치를 손에 들고 달려드는 대장장이를 보고 순간, 베히모스는 녀석이 누군가 생각해 냈다.
교장이 쫓아내라 했었던 1학년 범생이
예전에도 이모습과 똑같았다. 밀대 자루를 손에 들고 악을 쓰며 달려들었었다.
'그래, 그놈이군!'
기억이 났다, 분명 그 범생이 이름이……."
"강유한!"
그것이 베히모스가 쓰러지기 직전에 내뱉은 말이었다.
상대의 정체를 파악한 순간 유한이 내리쳐 뇌제의 홀이 베히모스의 정수리를 후려갈겼다.
- 안보여요 ㅠ.ㅠ 죗송합니다 여기만 넘어갈게요
- 여기도 PASS 죄송 ..
"헉 ! 베히모스가 죽었어!"
"도, 도망가자!"
유한이 안내창들을 보고 있는 사이 철십자 길드원들이 기겁하고 도주했다. 사기가 내려간 길드원들은 숫자가 많아도 오합지졸일 뿐이었다.
"쫒을까?"
옌스의 말에 유한은 고개를 저었다.
"놔둬 정작 해치워야 할놈은 따로 있다고"
유한은 이바니우스 3세 쪽을 바라보았다. 싸움의 쉽게 끝나지 않고 사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쉽게 승부가 날것 같지가 않았다. 블랙은 ??????(죄송합니다 이건 도저히 안보이네요 ;;) 하며 ?????, 이바니우스 3세는 ?? ????????? 를 뿌리며 그를 떨어내려 애썻다.
팽팽한 상황이었지만 그건 우리 일행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츠, 저 영창 번개로 멋지게 해치워 버리지 그래?"
"그렇게 하고 싶긴 하지만……."
이미 뇌제 제한 시간을 초과했다. HP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무리를 해서라도 쓸쑤는 있었지만 폭주라도 하게 되면 상황을 장담할수 없었다.
"젠장! 해제!"
유한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 왔다. 그러자 멍해지던 이상현상도 사라지고, 뇌제의 홀도 원래의 초라한 장도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바니우스 3세의 소원을 들어줄까?"
"무슨 생각인거야?"
어리둥절해 하던 옌스를 내버려 두고. 유한은 이바니우스 3세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봐, 국왕! 당신이 갖고 싶어했던 뇌제의 홀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이바니우스 3세가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유한을 돌아보았다.
"부슨 간교한 수작을 부릴셈이냐!"
인상을 찌푸리던 이바니우스 3세는 유한이 정말 자신에게 뇌제의 홀을 던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돌발 상황이어씨에 동료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짓을 한건가? 지그가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걸까?
"오오! 뇌제의 홀 !"
이바니우스 3세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뇌제의 홀을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바로 그때, 유한이 날카롭게 외쳤다.
"지금이다. 블랙!"
블랙 역시 처음엔 유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했다. 뇌제의 홀에 정신이 팔린 이바니우스 3세가 깜빡 블랙의 존재를 잊어버린것이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공격을 피한다고 이리저리 도망치기 바빳는데,
"아뿔사!"
이바니우스 3세는 뒤늦게 유한의 계략을 눈치챘다. 그는 재빨리 뇌제의 홀을 잡으며 블랙을 상대하려 했지만, 어이 없게도 날아오던 뇌제의 홀은 다시 유한에게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유한은 뇌제의 홀을 그냥 던진게 아니었다. 건틀렛의 와이어에 감아서 던졌던 것이다.
"잘 가시오, 마도사의 왕!"
"이놈! 이 대장장이 놈이 짐을 끝까지!"
유한의 인사가 끝난 바로 그때,
황금빛의 카이저 소울로 휘감긴 블랙의 주먹이 이바니우스 3세의 심장을 꿰뚫었다.
"커흑!"
미케니아의 왕은 입에서 검은 피를 왈칵 토했다.
그의 심장을 꿰뚫은 블랙의 손에는 일전에 헬리오스 신전에서 사라진 마물, 암흑의 심장이 쥐어져 있었다. 카이저 소울의 빛에 마기가 소멸된 암흑의 심장은 블랙이 움켜쥐자 완전히 가루가 되고말았다.
"크으윽, 짐이…… 미케니아의 지존인 짐이…… 세계의 패왕인……."
이바니우스 3세는 비틀거리며 블랙에게서 떨어졌다.
그는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가슴에 구멍이 난 상태로 살수는 없었다. 거기다 힘의 원천인 암흑의 심장도 소멸되었다.
"천한 놈들…… 끝까지 짐을 농락하다니……."
죽음을 눈앞에 둔 이바니우스 3세의 눈이 붉게 번득였다.
그는 식어가는 몸에서 마지막 마력을 짜내어 마법을 발동시켰다.
"크하하핫! 짐 혼자 지옥으로 가기엔 따분하구나! 너희 천민들이 길동무가 되어야겠다!"
"안 돼! 저걸 막아!"
뭔가를 느낀 오펜이 다급하게 나섰지만, 이미 이바니우스 3세의 발치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전개된 다음이었다.
"땅이여 울어라! 불이여 춤춰라! 바이올런트 볼케이노(Violent Volcano)!"
마법진이 붉은빛으로 빛났다.
대전의 바닥이 과자처럼 부서지고 기둥과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갑작스런 사태에 유한 일행은 어쩔줄을 몰라했다.
"얼른 빠져나가야해! 화산이 터질거야!"
"화산이라고?"
"그치만 이 많은 보물들은……."
"지금 보물이 문제야?"
화산이 터져서 용암목욕이라도 하는날엔 갖고있던 아이템이 죄다 증발한다. 그 점을 모르지 않는 일행은 서둘러 입구로 달려갔다.
"아이고, 아까운 내 보물들!"
"보물 타령 그만 하고 얼른 뛰기나 해!"
리지스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죽기는 싫은지 열심히 뛰고 또 뛰었다.
묘실로 통하는 통로도 점점 무너져 내렸고, 일행의 뒤로 텁텁한 화산가스와 뜨근한 마그마가 쫓아오기 시작 했다.
"출구다!"
모두들 서둘러 무덤 밖으로 뛰쳐 나갔따.
불룩 솟았던 무덤이 무너져 내리고 지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능묘 중앙이 터지며 돌과 화염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일행은 열심히 달렸지만, 아무래도 화산 폭발의 영향에서 벗어날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여기서 죽는 건가?'
모두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을때,
하얀 설풍이 일행에게 쏟아지는 화산탄을 날려버렸다.
갑자기 설풍이라니?
어리둥절해 하는 일행 앞에 희고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존재는 바로 아르페디아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이었다.
모두가 멍하니 드래곤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유한이 화이트드래곤의 이름을 불렀다.
"안듀라스?"
노스아크 북동부 산맥의 터줏대감.
유한이 자신을 알아보자 안듀라스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여기는 웬일로?"
"후후, 우리 드래곤들이 신에게 부여 받은 임무가 바로 미케니아의 소멸. 그런데 내가할일을 그대들이 다 해버리더군."
다시말해 안듀라스는 계속 미케니아 일당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드래곤이 나서면 유저가 재미없음 으로 시스템상 그의 간섭은 차단되었을테지만.
"미케니아의 왕은 죽였는가?"
"이번엔 확실히 죽였습니다."
"수고했다.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도록 하자. 모두 내등 위로 올라타거라."
일행이 등에 오르자 안듀라스는 서둘러 땅을 박차고 타사르 평원을 벗어났다.
안듀라스의 등 위에서 화염과 검은 연기가 솟구치는 테라칸의 무덤을 바라보는 일행의 얼굴은 허탈함 그 자체였다. 그토록 고생하며 찾은 던전인데.
"구경만 하지말고 보물 좀 인벤에 쑤셔 넣을걸 그랬어요."
"망할 국왕자식. 죽으려면 곱게 죽던가."
"후후후, 모든게 신의 뜻이다."
"드림맥스의 수작이지, 무슨……."
블랙의 말에 불만스럽게 답하던 유한은 눈앞에 떠오르는 안내창을 보았다.
[미케니아 잔당의 섬멸] 퀘스트를 완수했습니다.
- 엘프의 장로를 찾아가 보상을 받으십시오.
'오잉?'
생각해보니 엘프 장로에게 받은 연계 퀘스트가 있었다.
그 퀘스트를 못 얻은 옌스와 리지스는 이번 여행에서 건진게 하나도 없었다. 워낙에 대박을 놓쳤기 때문인지 모험을 했다는 즐거움보다 허탈감이 더 큰듯 했다.
"어디 갈 곳이라도 있는가? 세상 끝이라도 좋으니 내가 태워다 주지."
안듀라스의 말에 일행의 의견은 한곳으로 모였다.
"멀리 말고 엘프의 숲으로 가주세요."
"알았다."
안듀라스는 곧장 남쪽으로 방향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