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령들의 궐기
1
드림맥스 본사 게임 관리실.
시계바늘이 새벽을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경욱과 손석진은 여전히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군. 캐릭터가 바뀌고 플레이 스타일이 변한 주제에 아직도 예전 캐릭터의 움직임을 기억하고 있다니."
"기억하고 이쓴ㄴ게 아니라 남아 있었을 겁니다."
"흐음, 내면에 말인가?"
그러나 손석진은 그것보다 다른 데 무게를 두고 있었다.
현재 지그인 유한이 과거의 바츠를 이겼다.
캐릭터 성향과 데이터를 분석해서 재현한 몬스터일 뿐이라지만, 기본적인 능력 차이가 월등이 남에도 불구하고 이겼다는 것은 큰의미를 가진다.
'보통은 흥분해서 날뛰다 자멸하기 마련인데,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건가?'
이 점이 중요했다.
정경욱이나 다른 직원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유한의 플레이는 바로 여기에 정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과 다른 과거를 외면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과거를 발판으로 앞으로 나가는 사람도 존재한다.
화려하든 어둡든, 그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현재에 정체될 뿐이다. 과거를 외면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난 일을 돌아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좋건 나쁘건 과거를 어떤 형식으로든 발판으로 삼아 오르는 사람이 성공하는 법이지.'
대장장이 지그는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지도않고 계속 모험을 즐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번에 청동 바츠와의 싸움에서도 이긴 것은 당연한다. 과거를 발판으로 삼은 사람이 옛날의 자신에게 질 이유가 없으니까.
손석진이 지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녀석은 계속 앞으로 나가면서 길을 만들고, 미래를 열어 간다. 남들과 다른, 깜짝 놀랄 만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흐뭇하게 스크린을 보고 있던 손석진은 정경욱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사장님, 이번에 TV 토론회에 나갈 유저는 뽑았습니까?"
"그거? 아직 안 뽑았는데."
얼마전 한강 둔치에서 학생 100여 명이 영켜 싸운 집단 현피 사건이 터졌다. 게임 내의 길드전 때문이었다.
이문제로 티쳐스 이후에 잠잠했던 언론이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고, 시민 단체들은 현재의 게임 문화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며 떠들어 댔다.
그들은 드림맥스에서 올바른 게임 문화 정착을 위해 진지하게 토론을 해 보자며 TV 토론회 참석을 요구했다. 그리고 사장은 참석을 수락했다.
"끄응. 이 자식들은 왜 하필이면 우리 회사에....."
"그야 우리가 업계 1위니까요."
아무튼 드림맥스는 이번 TV 토론회에 부사장 정경욱과 개발자 손석진, 그리고 유저 한명을 뽑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럼 유한군을 참석자로 넣도록 하지요."
"저녀석을? 오려고 할까?"
지난번 리셉션 파티 때 초청되고도 튕겼던 녀석이다. 결국 참석은 했지만, 토론회 같은 함품나고 닥딱한 자리에 오려 할지 의문이다.
"참석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이길 수 있으니까요."
"이 친구도 참. 누굴 이기려고 토론하는 건 아니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경욱도 나가서 밀리고 싶은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손석진이 추천한 유한을 뽑기로 했다.
2
블랙을 수리한 유한 일행은 서둘러 미케니아 일당을 쫓아갔다.
이바니우스 3세가 간 길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반결할 수 있었다.
"크하하하! 바람의 무녀여! 드디어 나타났구나."
이바니우스 3세의 광소에 일행은 깜짝 놀랐다.
다급히 달려가 보니, 정말 미케니아 일당의 앞에 아르네스가 서 있었다.
정령들이 계속 희생되자, 보다 못한 그녀는 하이엘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바니우스 3세의 앞에 모습을 내민 것이다.
"원하는 게 무엇인가요, 대왕. 바람의 날개가 하나로는 모자란가요?"
"크크크, 바람의 날개라...."
이바니우스 3세는 품속에서 바람의 날개를 꺼냈다. 예전에 채린이 가져다주었던 바람의 날개를, 이바니우스 3세는 주저 없이 아르네스의 발치에 던졌다.
"짐은 이제 이따위 돌멩이가 필요 없도다."
"그럼 뭘 원하지요? 설마 돌려주려 오신 건 아니겠지요?"
그녀의 물음에 음흄하게 웃은 이바니우스 3세는 아르네스에게 다가가며 마기를 뿜어 댔다.
"짐은 그대의 영혼을 원한다. 정령계와 동화된 그대의 영혼을 나의 마기로 물들여 정령계 전체를 지배할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정령계 전체를 죽일 셈입니까!"
아르네스와 하이엘프들의 안색은 새파랗게 변했다.
정령계는 지상 세계의 뿌리와 같은곳.
실체화되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물질계에서도 정령들은 그 힘을 미치고 있다. 태양이 빛나고 물이 순환되고 꽃과 나무가 자라는 이유가 다 정령들의 활동 때문이다.
만약 아르네스의 영혼이 이바니우스 3세에게 빼앗겨 정령계가 오염되면 그 영향은 물질계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게 된다.
원인 모를 지진과 폭풍이 세상을 파괴시킬 것이고, 순환이 멈춘 땅은 삭막하게 메말라 갈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모든 생물이 사멸하고 말 터.
"그런짓은 세상의 멸망을 불러올 뿐입니다."
"후후후. 멸망이라..... 불탄 자리에 싹이 돋는 것은 그대도 잘 알것이다."
아르네스의 곁을 지키고 있던 하이엘프들은 치를 떨었다. 이바니우스 3세가 무슨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만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법. 짐은 기존의 세계를 멸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 것이다."
거기까지 말한 이바니우스 3세는 사방으로 마기를 뻗치며 광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핫! 알겠느냐? 짐은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되려는 것이니라!"
"흥! 누가 되게 내버려 둘둘알고!"
앙칼진 대꾸에 이바니우스 3세는 흠칫 놀랐다.
그와 미케니아의 마도사들은 뒤를 돌아 보았다. 좀전에 청동 바츠에게 맡겼던 역적들이 어느새 당도해 있었다.
"니놈들이 어떻게?"
분명히 청동 바츠에게 결박된 채로 끌려올거라는 생각햇는데 그게 아니었다.
"짐의 검은, 바츠는 어찌되었느냐?"
"어찌 되긴? 이렇게 되었지."
유한은 청동 바츠의 잔해를 이바니우스 3세에게 집어던졋다.
처참히 부서진 청동 바츠의 얼굴을 본 국왕은 믿어지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가로젓다가 허한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정말 네놈은 짐을 놀라게 하는구나. 설마 드래곤을 죽인 전사의 화신을 쓰러트릴 줄이야."
허탈하게 웃고 있던 이바니우스 3세는 와락 인상을 이그러트렸다. 필발 선 두 눈을 부라리는 그의 입에선 인간의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괘씸한 놈! 감히 천한 대장장이 주제에 짐을 능멸해?"
이바니우스 3세가 유한을 향해 손을 펼쳤다. 손에서 뻗어 나간 검은 마기가 화살처럼 변하더니, 일행에거 소나기 처럼 쏟아졌다.
'이건!'
상당히 낯익은 공격이라 생각했는데, 헬리오스 신전의 봉인에서 풀려난 마물이 썼던 다크 애로우였다.
쏟아지는 화살의 비 앞으로 블랙이 나서더니, 거대한 황금빛 방패를 만들어 냈다.
"카이저 실드!"
"크으윽! 이 빌어먹을망령이!"
자신이 쏜 다크 에로우가 블랙의 방패에 막혀 소멸되자 이바니우스 3세는 펄쩍 뛰었다. 그는 좌우에 있는 신하들에게 고개를 돌려 윽박질렀다.
"뭣들 하느냐! 당장 저 역적들을 찢어 죽여라!"
국왕의 명이 떨어지자 마도사들이 주문을 외우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자랑스런 마법들을 쓸 기회가 없었다.
"파이어....커억!"
"아이스 랜스.....끄아악!"
갑자기 뒤에서 날아온 화살들이 마도사들에게 박혀 들었다. 이바니우스 3세에게도 화살이 날와았는데 라이칸의 검에 모두 가로막혔다.
"우리가 있다는걸 잊지 마시오!"
공격을 한 것은 키르케를 비롯한 하이엘프들이었다. 그들은 미케니아의 마도사들과 키메라들을 향해 계속 시위들 당겼다.
"이, 이! 뭣들 하느냐! 모조리 죽여 없애라!"
"캬오오오!
"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국왕의 명령에 키메라들이 유한일행과 하이엘프들에게 덤벼들었다. 원래 근접전용으로 만들어진 키메라들인지라 화살 한두 방 맞았다고 쓰러지지 않았다.
"바람이여, 나의 적을 날려 버려라!"
채린이 바람의 날개를 쥐고 외치자, 달려들던 키메라들이 뒤로 날아갔다. 동시에 오펜이 스태프를 땅에 내리 꽂으며 공격 마법을 전개했다.
"스톤 엣지(Stone Edge)!"
바닥에서 뾰족한 바위들이 튀어나와 키메라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방어력이 강한 키메라들은 피가 닳을지언정 죽거나 물러나지 않았다. 놈들은 어느 정도 다격은 감당할 수 있다는듯 사납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펜릴 소드를 꺼내든 유한이 블랙과 함께 일행의 앞에서 키메라들의 공격을 막았다.
"저리 꺼져!"
"죽어라, 이 더러운 미물들아!"
정령계에 유래가 없었던 큰 싸움이 벌어졌다.
정령들은 이바니우스 3세가 뿜어내는 마기와 양측이 뿜어내는 살기에 꼭꼭 숨어 버렸고, 개중에 호기심 많은 몇몇은 구경하러 나왔다가 화들짝 놀라 도망쳐 버렸다.
"에잇! 성가신 놈들 같으니!"
블랙은 달려들던 키메라의 발목을 잡고, 녀석을 무기삼아 키메라들을 두들겼다. 무기(?)의 상태가 좋지 않아 지자, 블랙은 곧장 그것을 던져 버리고 딴 놈을 집었다. 블랙의 손을 떠난 키메라는 주인인 이바니우스 3세의 품으로 날아갔다. 야박하게도 국왕은 녀석을 받아주는 대신 마기로 갈가리 찌어 버렸다.
예상보다 싸움이 지루하게 전개되었다.
무능한 졸개들에 보다 못한 이바니우스 3세는 결국 직접 나섰다.
"멍청한 것들 같으니! 모두 물러서라! 짐이 처리할 것이다!"
그가 양팔을 벌리자, 주변을 옅은 마기가 감쌌다.
동시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키메라의 사체나 무기 파편들이 기털처럼 떠올랏다.
"헉! 제로 그라비티다. 모두 피해!"
유한의 경고에 동료들은 서둘러 마기의 영향권 밖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한번도 이런 마법을 겪어 보지 못한 하이엘프들은 피하지 못했다.
"허억!"
"아니, 이건 대체?"
그드른 허공에 둥실 뜬 상태에서 어쩔줄을 몰라 했다.
당황하는 하이엘프들을 보며, 이바니우스 3세는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죽어라!"
국왕의 손에서 펼쳐지자, 하이엘프들을 향해 다크 애로우와 다크 블레이드가 날아갔다.
"크아악!"
허공에 몸이 뜨는 바람에 중심을 잡지못한 하이엘프들은 제대로 방어하지도 못한 채 마기의 화살과 칼날에 맞았다. 개중 몇이 피하긴 했지만,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
"저러다 전멸하고 말겠군."
"바보야, 가지마!"
유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블랙은 하이엘프들을 구하러 달려갔다. 마기에 대항하는 황금빛 기운을 몸에 휘감은 블랙은 제로 그라비티의 영향권 안에서도 성큼성큼 이바니우스 3세에게 다가갔다.
"각오해라, 악당! 네놈의 머리통을 날려주마."
"크크, 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해봐라."
마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블랙을 앞에 두고도, 이바니우스 3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나지막하게 주문을 외우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블랙의 발밑에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환한 빛을 뿜어냈다.
"아, 아니 이건!"
당황하던 블랙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약간은 방심했던터라 피하지 못한 것이다.
"텔레포트 게이트!"
"맙소사, 저걸 저렇게 빨리 만들다니!"
경악하는 유한 일행을 보며 이바니우스 3세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귀찮은 놈까지 일일이 상대할 필요는 없지."
암흑의 심장을 취한 이바니우스 3세였지만, 마기를 소멸 시키는 능력이 있는 블랙은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래서 텔레포트 마법을 써서 정령계 밖으로 내보내 버린 것이다.
"너무 걱정 마라. 단거리 텔레포트라 멀리 가진 않았다. 아마 엘프의 숲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겠지."
"크윽...."
빈정거리는 국왕을 보며 유한 일행은 침음을 흘렸다.
이동 마법을 저런식으로 악용할 줄은 몰랐다.
어쨋거나 유한 일행에게 최강의 전력인 블랙이 사라지자, 미케니아 일당들이 득달같이 몰려들었다.
"곧 죽이진 않으마. 너희 역전들은 편히 죽기에는 그 과오가 너무나 크다."
이바니우스 3세는 먼저 하이엘프를 처리할 요량인지 아직 살아 있는 하이엘프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만! 이제 그만 하세요!"
아르네스는 더 이상 동족들의 죽음을 볼 수 없었던지,,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녀의 가냘픈외침은 사악한 마왕의 흉심을 자극할 뿐이다.
"크하핫, 싸움이 벌어진 이상 끝은 봐야 하지 않겠는가, 바람의 무녀여."
"당신에게 제 영혼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남은 이들의 목숨만은..... 정령계는 살려 주십시오."
"건방지구나. 감히 짐을 상대로 거래를 할 셈이냐?"
이바니우스 3세는 남아 있는 하이엘프들을 한 번에 처치할 속셈인지 더 많은 다크 애로우와 다크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아, 안돼요! 제발!"
아르네스는 급한 마음에 하이엘프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간절한 눈빛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굴복한 모습에 만족했는ㄴ지, 이바니우스 3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크크크, 좋다 그럼 네 영혼을 취하겠노라."
어짜피 그녀의 영혼을 오염시키면 정령계는 알아서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이바니우스 3세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쳤다.
오른손 손바닥에서 촉수처럼 뻗어 나온 마기가 아르네스에게로 슬금슬금 다가가기 시작했다.
3
"에잇! 제기랄!"
유하는 달려드는 키메라들을 검으로 내리쳤다.
용전분투했지만, 상황이 불리했다.
블랙이 빠진 공백은 너무나도 컸다. 궁수인 채린도 활을 접고 검으로 맞서는 지경이었고, 에이린은 파티원들에게 힐을 퍼붓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가장 곤란한 사람은 오펜이었다. 그는 홀로 미케니아 마도사들의 마법을 막아 내고 있었다.
한껏 비웃음을 띤 마도사들이 조롱하듯이 마법을 전개하지 않았다면 이미 훨씬 전에 오펜과 유한 일행은 전멸 했을 것이다.
"하하핫! 벌써 힘이 빠진 거냐, 역적!"
"컥!"
키메라에 맞서고 있던 유한은 이베나우스 3세의 호위 라이칸에게 공격을 당했다.
-크리티컬이 터졌습니다. HP가 1,200 닳았습니다. 즉각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경고창이 뜨자 유한은 서둘러 포션을 마셨다.
라이칸은 유한이 회복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 공격하려는 키메라를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를 배려해서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래, 얼른 일어나라. 네놈이 그렇게 간단히 죽어 버리면 내가 폐하께 꾸중을 듣는단 말이다."
그저 가지고 놀려고 할 뿐.
'개자식들!'
유한은 이를 갈았다.
블랙이 없어진 뒤로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화되려 하고 있었다.
동족들이 죽는것을 보고 아르네스가 정항할 뜻을 접었는지. 무릎까지 꿇어 버렸다.
'젠장, 아무런 방법이 없는 건가?'
이대로 아르페디아는 암흑시대를 맞이하는 것인지.
드림맥스에서는 오히려 그쪽을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유한은 용납할 수 없었다. 암흑시대가 열리는 것을 본 최초의 목격자로 남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유한은 라이칸이 휘두르는 검을 막으며 필사적으로 블랙에게 귓속말을 보내 보았다.
-블랙, 뭐 하는 거야? 당장 이리로 안와!
-미안하다. 후손, 길을 잃은 것 같다. 분명 여긴 엘프의 숲 같긴한데.....
'크악! 미치겠네, 진짜!'
블랙은 금방 돌아올 수 있을것같지 않았다.
타계책이 없다.
자신들은 이렇게 미케니아 일당에게 조롱당하고 있는 판이고, 이바니우스 3세는 아르네스의 영혼을 취하려고 마기를 뻗고 있었다.
정령들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면서 웅크리거나 지켜보고 있을뿐.
그런 정령들의 모습에 유한은 제대로 열 받았다.
"뭐해. 멍청이들아! 구경만 할 생각이야? 나와서 싸워!"
"......"
유한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정령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라이칸은 그런 유한과 정령들을 동시에 비웃었다.
"훗, 저런 겁쟁이들에게 도움을 청해 어쩌려고?"
라이칸이 비웃든 말든 유한은 계속 정령들에게 외쳤다.
"이 바보들아. 그냥 눈뜨고 있다가 다 죽을거냐!"
유한의 외침에 정령들이 조금 동요하긴 했지만, 이렇다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정령들은 조화의 존재.
싸움과는 속성이 맞지 않았다.
낭패 어린 표정을 짓는 유한의 앞으로 안내창이 불쑥 떠올랏다
- 호소력이 부족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흔들려면 그냥 외치는 것으론 되지 않습니다.
'이건?'
뭔가 힌트를 주고 있었다.
그냥 외치는 걸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럼 제대로 외치면 정령들을 싸우게 만들수 있다는말?
찰나의 순간,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던 유한은 그 답을 찾았다.
'그렇군, 선동 스킬!'
이건 게임이다. 게임 속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게임 속의 단서를 찾으면 된다.
유한은 한동안 쓸 일이 없었던 선동 스킬을 쓰면서 정령들에게 다시 한 번 외쳤다.
"싸워! 스스로 너희 세계를 지키라고!"
유한의 호소력 깊은 외침이 조금 전과 사뭇 다르게 울려 퍼졌다.
부르르르! 지키라는 음성을 들은 정령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더이상 떨거나 숨지 않았고, 두려움에 물든 눈빛도 많이 가라 앉았다.
"우리랑 같이 정령계를 지키는 거야! 이놈들은 물리치고!"
유한은 여전히 비웃고 있는 라이칸에게 기습적으로 검격을 날렸다. 라이칸은 여유잇게 그의 공격을 피해 냈지만, 유한이 필사의 의지로 들이민 박치기를 회피하지는 못했다.
"크악!"
콧등에 박치기를 제대로 맞은 라이칸은 쌍코피를 흘리며 벌렁 자빠졋다. 방심하고 있다가 수치를 당한 라이칸은 눈을 부라리며 일어섰다.
"이놈이 봐주니까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려고 해?"
라이칸은 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이대로 유한의 몸을 반으로 가를 기세.
그러나 그는 검을 내리치지 못했다.
갑자기 뭔가 그의 손을 붙들었기 때문.
무엇인가 해서 돌아봤더니, 멀리 있던 나무의 정령 하나가 가지를 길게 뻗어서 자신의 손을 휘감고 있었다.
"감히 미물 주제에!"
이를 갈던 라이칸은 뭔가 가슴을 때리자 깜짝 놀랐다.
갑자기 주먹만 한 돌멩이가 그의 눈을 노리고 날아왔다. 돌의 정령은 다시 한 번 몸을 힘차게 날려 라이칸의 눈을 때렸다.
미약한 공격이었지만, 그를 당황하게 만들기 추분했다.
"이, 이것들이!"
"무슨 일이냐?"
막 아르네스의 영혼을 흡수하려던 이바니우스 3세는 고개를 돌렸다. 뒤쪽이 뭔가 부산해졌기 때문이다.
역적들이 또 무슨 작당을 했나 싶었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갓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엄청난 대군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정령들이.
-정령들은 선동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스킬 경험치300을 얻습니다.
-선동스킬이 7랭크로 올랐습니다.
-행운이 2올랐습니다.
'우왓! 성공했다.'
유한은 기쁨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뭐, 뭐냐? 오지마라!"
방금 전까지만해도 벌벌 떨고 있던 정령들이 몰려오자 미케니아 일당들은 당황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한번 들불처럼 일어난 정령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주변에 퍼진 마기에 중독돼 쓰러지면서도 동료들의 시신을 밟고 끈임없이 밀려왔다.
쓰저려간 정령들의 희생덕분인지 마기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키메라들과 마도사들은 마구잡이로 정령들에게 공격들 날렸다.
이에 수많은 정령들이 쓰러졌지만, 그둘은 굴하지 않았다. 정령들은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이용해서 미케니아 일당을 공격했다.
바위의 정령들이 굴러와 미케니아 일당을 깔아뭉개고, 나무의 정령들이 가지와 뿌리를 뻗어 그들의 몸을 결박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어푸! 사람 살려!"
"끼에엑!"
연이어 몰려온 물의 정령들에게 마도사들은 허우적 거려야 했고, 키메라들은 늑대나 곰같이 생긴 동물의 정령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크악! 이놈들! 이 잡스런 놈들이!"
호위대장 라이칸을 상대하는것은 수백개의 크고작은 정령들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달려들어 라이칸의 몸에 부딪쳤다.
라이칸은 검을 휘두르며 악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달려드는 돌멩이만 늘어날뿐. 급기야 서로 몸을 동여맨 풀과 꽃의 정령들에게 걸려 넘어지기까지했다.
"이때다! 놈들을 쓰러트리자!"
정령들이 가세하자 유한 일행의 기세도 되살아났다.
그들은 정령들에게 몰리는 키메라의 숨통을 끊고, 발악하는 마도사들에게 검과 화살을 날렸다.
"아니 어째서.....!"
이바니우스 3세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
겁많은 정령들이 갑자기 들고 일어나다니!
정령들은 졸개들만 공격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바니우스 3세에게도 달려들었다. 이바니우스 3세 주변에 깔린 마기들에 오염되어 숱하게 쓰러지면서도 그들은 아르네스를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안돼. 오지마요, 물러서요."
아르네스가 정령들을 말려봤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지독한 마기를 동료들의 희생으로 지워가며 기어코 이바니우스3세의 코앞까지 당도했다.
"이런 벌레같은 놈들!"
하찮은 것들이 덤벼든다는 사실에 진노한 국왕은 진득한 마기를 흘려 대며 수백개의 다크애로우와 다크 블레이드를 뿌렸다.
"끼이이!"
"까악!"
수십 수백의 정령들이 비명을 흘리며 죽어 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전진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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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신이 될 짐의 앞길을 가로막....커억!"
미친듯이 마기를 뿜어대던 이바니우스 3세가 휘청거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별동별이 그의 머리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별동별은 하나에 그치지 않고 수백개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정령계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던 별의 정령들도 싸움에 가세한것이다.
가세한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산의 정령들도 큰 몸뚱이를 움직여 이쪽으로 다가왔고, 불과바람, 물과 대지, 빛의 상급정령들도 몰려와 이바니우스 3세를 공격했다.
힘이 약한 친구들도 용감히 싸우고 있는데, 그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아르네스와 살아남은 하이엘프들을 구해내고, 이바니우스 3세를 공격했다.
불로 굽고, 바람으로 베고, 물로 얼리고..... 상급 정령들이 가진 파괴적인 힘이 연달아 국왕의 몸을 강타했다.
한순간 지독했던 마기가 사라졌다.
'후아, 정령들도 화나면 장난 아니네.'
정령술사가 정령을 부려 공격을 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령 한둘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때거지로 몰려오니 정말 그 위력이 장난 아니었다.
"크아악! 이놈들! 이 천한 놈들!"
그러나 이바니우스 3세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고 진득한 마기를 뿜어 대며 달려드는 정령들을 족족 쓰러트렷다.
"저, 망할 괴물 같으니라고."
"HP도 도로 회복되었어요. 어떻게 쓰러트릴 방법이 없을까요?
보스 급 몬스터답게 이바니우스 3세는체력이 떨어지면다시 채우고있었다.
유한은 살기등등하게 마기를 내뿜는 이바ㅣ우스 3세를 유심히 노려보았다. 그의 마기는 심장 부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만약 심장을 공격하면 상당한 타격을 받지 않을까?
"에이린, 너 무기에 신성력을 깃들게 할 수 있지?"
"홀리 웨폰(Holly Waepon)말이죠? 당연히 할 수 있죠."
"시아 화살에 그 스킬을 걸어, 그리고 시아는 그걸 국왕 녀석의 심장에 쏘는거야."
채린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생각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잘될까? 정령들이 저렇게 공격하는 데도 끄덕 않는데"
"어짜피 이판사판이야."
유한의 말에 채린은 인벤에서 야껴 두고 있던 에르젠 화살을 꺼냈다.
딱 세 개뿐인 에르젠 화살은 화살촉이 에르젠으로 도금되어 있었고, 두꺼운 합금 강판도 꿰뚫을 정도로 강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홀리 웨폰!"
에이린이 에르젠 화살에 신성력을 담자, 채린은 곧장 이바니우스 3세를 노려 시위를 당겼다.
'빗나가면 안 되는데.....'
궁수의 기습은 한 방에 상대를 제압하는 게 철칙.
빗나가면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게 되고, 두번째, 세 번째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채린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바니우스 3세를 주시하고 있던 그녀의 눈앞에 바람의 날개가 불쑥 나타 났다.
-그대는 바람의 날개를 지닌자.
-바람은 그대에게 머물고 그대를 도우리.
"에?"
갑자기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자, 실프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바람의 정령들이 몰려와 있었다. 순중의 정령 웬투스, 쾌풍의 실피드, 폭풍의 템페스타, 질풍의 칼레, 북풍의 미스트라 등등.
"우와! 이게뭐야?"
"이벤트인가?"
유한과 다른 동료들이 놀라는 사이.
바람의 날개가 환하게 빛났다.
정령들이 바람의 날개로 자신들의 힘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힘이 모일 때마다 바람의 날개는 찬란하게 빛났다.
-바람은 그대의 힘이 되리.
-바람을 지닌 그대여. 정령계를 지켜라!
빛나고 있던 바람의 날개는 채린의 몸에 흡수되듯이 스며들었다. 깜짝 놀란 채린의 눈앞에 안내창이 불쑥 떠올랐다.
-바람의 힘을 받았습니다. 5분간 모든 스탯이 50씩 상승합니다.
채린은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솜씨가 상승되었기 때문인지, 이바니우스 3세의 움직임이 똑똑히 보였다.
좀 전에 주저하던 때와 다리, 채린은 곧장 시위를 당겨 이바니우스 3세의 심장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버스터 샷!"
쒜에에에에엑ㅡ!
신성력이 깃든 에르젠의 화살이 무서운 소리를 울리며 이바니우스 3세에게 날아갔다.
상급 정령들을 상대하던 국왕은 갑작스럽게 화살이 날아들자 깜짝 놀랐다. 그는 다급하게 방어막을 전개했다.
"다크 베리어(Dark Barrier)!"
순식간에 이바니우스 3세의 코앞에 검은 마기의 방어막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바람의 정령들의 인도받은 성스러운 화살은마기의 방어막을 부숴 버리고 이바니우스 3세의 손마저 꿰뚫었다. 그리고 암흑의 심장이 있는 그의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크아아아악!"
성스러운 빛의 폭풍이 이바니우스 3세의 심장을 강타했다.
엄청난 충격력으로 뒤로 벌렁 날아간 이바니우스 3세는 땅바닥을 연달아 굴렀따. 그의 HP는 처참할 만한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페, 폐하!"
키메라들은 다 죽었지만, 라이칸과 몇몇 마도사들은 정령들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고도 아직 살아 있었따. 그들은 쓰러진 이바니우스 3세의 곁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따.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에잇! 못난 놈들, 이것 놔라!"
이바니우스 3세는 신하들의 손을 뿌리치고, 심장에 박힌 화살을 뽑아 냈다. 비록 화살은 뽑아 냈지만 심한 타격을 받은 암흑의 심장은 금방 회복되지 않았따.
"크아악! 이 역적놈들! 또다시 짐의 앞길을 가로막다니!"
"그게 우리 일이니끼."
유한은 발악하는 국왕에게로 다가갔따. 이미 동료들과 정령들이 미케니아 일당을 빙 둘러싼 뒤었다.
"모두 앞에서 네놈이 죽인 정령들에게 사과해라."
"흥! 천한 대장장이의 말에 딸을 짐이 아니니라."
막다른 상황에 물리고도 이바니우스 3세의 자존심과 자세는 낮아지지 않았따.
뭐 이렇게 뻔뻔하고 당당한 놈이 있을까.
악당NPC라곤 하지만 정말 짜증나는 녀석이었다.
"짐은 미케니아의 지존! 세계를 다스릴 패왕이다! 결코 천한것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숙이도록 해주지. 니 모가지를 잘라서 말이야."
살벌하게 내뱉은 유한은 성큼성큼 미케니아 일당에게 다가갔다.
이바니우스 3세는 다가오는 유한을 보며 웃었다. 비록 심장을 다쳐 암흑의 마기를 사용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놈에게 당해 줄 마음은 없었다.
그가 재빠르게 주문을 읊조리자 그와 졸개들의 주변으로 마법진이 생성되기 시작했따.
"저건!"
낯익은 마법진.
"좀 전에도 본 적이 있는 텔레포트 마법진이었따.
놈들은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유한은 다급하게 미케니아 일당에게 달려들었다.
"거기 서지 못해?
"후후후! 오늘 이겼다고 좋아하지 마라. 다음번엔 반드시 짐이 너희 역적들을 처지할 것이야."
악을 쓰며 날린 유한의검은 이바니우스 3세의 옷자락밖에 자르지 못햇따.
미케니아 일당은 순식간에 정령계에서 사라졌다. 정령계의 운명을 건 싸움은 그렇게 끝났다.
5
"분명 이 근처 였는데....."
유한 일행이 정령계에서 미케니아 일당과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로키는 마론 신관에게세 받은 퀘스트를 수행 하고 있었다.
오랜 조사와 추적 끝에 신종을 훼손한 자들과 마물을 획들한 무리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거기까진 좋았으나 그다음 그들을 추적하는 일이 문제 였다.
도대체 놈들은 한곳에 가만히 있질 않았다.
뒤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다른 지방으로 이동한 뒤였고, 가까쓰로 쫓아가 잡았다고 생각하면 어딘가로 모습을 감춘 후 였다.
덕분에 그는 4개월이 넘게 놈들의 뒤 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있었다. 엘프의 숲에 온 것도 놈의 흔적이 이곳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흔적을 놓쳐 버린 로키가 엘프의 숲 주변을 맴돌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부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강한 기운이 느껴지자, 그는 황급히 몸을 낮췄다. 상대도 로키의 기운을 감지했는지 경계 태세를 취했다.
"누구냐? 숨지 말고 나와라!"
상대방이 먼저 모습을 보이며 외쳤다.
로키는 그를 보고 경계를 풀었따. 저 육중하고 커다란 녀석은 안면이 있었다. 상대도 로키를 알아봤는지 아는척을 했다.
"아, 넌 아까 보았던 후손의 동지로군."
로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블랙이었다.
이바니우스 3세의 계략에 빠져 정령계 밖으로 쫓겨난 그는 서둘러 세계수로 돌아가려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따.
"애들은 어쩌고 당신만 있는거지?"
"그게..... 일이 곤란하게 되었다."
블랙은 로키에게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동쪽 숲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저 의아하게 여긴 로키와 달리 블랙은 눈을 번쩍였다. 그들은 바로 정령계에서 도망친 이바니우스 3세와 그 부하들이었다.
"저놈들은!"
"알고 있는 자들인가?"
블랙을 따라온 로키가 물었따. 그는 미케니아 일당을 알아보고 흠칫 놀랐다.
"당연하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싸웠으니까."
'이바니우스 3세와 싸웠다고?'
대체 유한 일행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로키는 중앙에 있는 이바니우스 3세에게서 흘러나오는 검은 마기를 보았다. 그는 품속에서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이 나침반은 마론 신관이 건네준 것인데, 마물의 파동을 감지하면 비늘이 빙글빙글 회전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나침반의 바늘은 굉장히 빠르게 돌고 있었다. 넉 달 동안 이렇게 강한 반응이 나온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바니우스 3세가 마물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이런!"
한숨을 돌리던 이바니우스 3세가 갑자기 펄쩍 뛰었다.
신하들은 영문을 몰라 사색이 된 왕의 얼굴을 바라보았따.
"열쇠, 열쇠가 없어졌느리라."
"열쇠라 하읍시면?"
"그래, 바로 그 열쇠다!"
분명히 품속에 단단히 넣어두었는데 이게 어디로 갔딴 말인가.
몸을 뒤적이던 이바니우스 3세는 자신의 베여진 옷자락을 보았다. 좀전에 아슬아슬 하게 정령계를 떠나면서 대장장이 놈의 칼에 베였던 자국인데.
'설마 그때.....'
품속에 갈무리해 두었던 열쇠가 떨어진 게 아닐지?
이바니우스 3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이, 이 대장장이 놈! 끝까지 짐을 화나게 만드는구나!"
"이 몸이 더 화나게 만들어 줄까?"
낯익은 목소리에 미케니아 일당은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돌리자, 그들의 눈에 살기등등한 블랙의 모습이 보였다.
"네,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어떻게 여기에 있낀! 네가 나를 내쫓았잖아!"
그건 사실이다. 싸움을 피하고자 텔레포트 마법으로 정령계 밖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하필 이렇게 마주칠 것은 무엇인가.
'아뿔사! 다급하게 주문을 외다보니 좌표가 비슷하게 나왔구나.'
낭패 어린 표정을 짓는 이바니우스 3세의 눈앞으로 블랙의 쇠주먹이 날아들었다. 그의 철권은 사악한 기운을 죽이는 황금빛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잔머리를 굴린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폐하, 피하십시오!"
마도사들이 블랙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들이 전력을 다해 전개한 마나 실드가 잠시 블랙을 막는 사이, 라이칸이 이바니우스 3세를 부축해서 허둥지둥 달아났따.
그러나 그들은 멀리가지 못했다. 바로 앞길을 로키가 뛰어나와 막아섰기 때문이다.
"헉! 여기에도 역적놈이....."
"이제 보니 당시닝 원흉이었군."
당황한 라이칸은 질풍같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공격은 로키의 커다란 방패에 막혔다. 한수앞서 여유롭게 공격을 막응ㄴ 로키는 반대편 손에 쥔 모닝스타로 ㄹ이칸의 머리를 내리쳤다.
"크악!"
"약하군. 좀 더 강할거라 생각했는데."
로키는 이들을 쫓아다니는 동안 실력과 레벨이 많이올랐따. 랭킹 120권까지 올라서, 랭커 칭호를 얻는 것도 이제 꿈은 아니었따.
그만큼 로키가 강하긴 했지만 라이칸도 약한것은 아니었다. 정령계에서 달려드는 정령들을 상대로 악전고투를 하다 보니 힘이 빠졌을뿐.
단숨에 라이칸을 척살한 로키는 천천히 이바니우스 3세에게 다가갔따.
"망할 역적 놈들! 사방에서 짐의 행보를 막아서는구나!"
이를 갈며 통탄한 이바니우스 3세는 마지막남은 마기를 쥐어짜 또 한 번 텔레포트 주문을 외웠다.
빛과 함께 그가 사라져 버리자 로키는 당황했다.
국왕이 그리 잽싸게 도망을 칠 줄은 몰랐다. 튀더라도 마법을 날리거나 마물을 이용한 특이한 공격을 펼칠 거라 생각해 경계하고 있엇는데.
그러나 정령계에서 심한 타격을 입은 이바니우스 3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여기서 싸우기에는 상태가 너무 좋지않았따.
"이런, 또 놓치고 말았군."
소득이라곤 마물을 훔쳐 간 자가 미케니아의 국왕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뿐이다. 이젠 또 어디서부터 추적을 시작해야 할지.....
"뭐야! 놓친건가!"
마도사들을 모조리 처리한 블랙이 허둥대며 다가왔다.
"미안하다. 내 실수다."
"끄응!"
로키가 사내답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자, 블랙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했다.
"이젠, 어떻게 하지?"
"일단 엘프 마을로 가지."
로키의 말에 블랙이 반색해 물었다.
"길을 알고 있나?"
"물론이다."
블랙은 로키의 뒤를 따랐다. 일단 일행의 상황은 모르지만, 엘프 마을로 가서 그들과 합류할 길을 모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