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미케니아의 역습
미케니아의 역습
엘프의 숲에 들어간 유한.
마을에서 그는 동료들을 만났다. 채린과 블랙, 오펜과 에이린이 손을 흔들며 반겨 주었다.
"안녕, 지그 오빠!"
"지그, 안녕!"
"안녕, 에이린! 오펜도 오랜만이야."
간단히 인사를 나눈 유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땅히 왔을 거라 생각한 녀석들이 않았기 때문이다.
"옌스는?"
"레벨 업 한다고 사냥 갔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채린이 대답해 주었다. 쪽지까지 보냈는데, 안 온 것을 보면 꽤 멀리 간 모양이다. 어쩌면 다른 대륙에 가 있는지도.
"얀과 베르디도 안 왔군."
"둘은 무슨 무공 서적을 찾으러 간다던데?"
동생 커플은 아직도 전대의 화산파 고수를 찾지 못한 모양이다.
'짜식! 그냥 게시판에 대고 물어보면 될 것을…….'
혹시 또 아는가? 누가 좋은 정보를 줄지.
"그런데, 블랙. 넌 여길 어떻게 들어왔냐?"
엘프의 숲에 들어오려면 정령과의 친화력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저 쇳덩이 같은 녀석이 어떻게 그걸 통과했을까?
"후후, 내가 눈에 힘을 팍 주고 손을 내미니까 정령 녀석들이 알아서 악수를 하더군."
한마디로 양아치처럼 굴었단 거다.
'저게 정말 황제 맞자?'
어깨를 으쓱대는 게 아무리 봐도 최초로 대륙을 통일했다는 황제의 위엄은 보이지 않았다. 대륙 최초 통일 황제라면 좀 더 근엄할 거라 생각했건만.
"그런데 지그 오빠. 대체 무슨 퀘스트예요?"
채린과 함께 온 에이린이 귀엽게 물었다. 사실 유한이 퀘스트를 도와 달래서 달려오긴 했지만, 무슨 퀘스트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유한도 쪽지를 보내면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곳 엘프의 숲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세계수가 갑자기 마르기 시작했는데……."
유한의 옆에 있던 알세인이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알세인이 세상이 멸망할지 몰른다고 말하자, 다들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얼굴을 본 블랙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웃음이 나오는가!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르는데!"
'정의 모드" 가 발동한 블랙은 일행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퀘스트가 어려우면 보상도 클 것 같아서."
"경험치도 많이 주겠지?"
"이번에 명성 많이 얻으면 하이 프리스트 칭호를 딸 수 있을 것 같아요. 헤헷!"
일행의 이 같은 답변에 블랙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보상에 눈이 멀다니……. 왜 어둠의 세력이 날뛰는지 알겠군. 다 사람들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보야, 그건 드림맥스 때문이야."
유한의 대꾸에 블랙의 눈이 번득였다.
"드림맥스?"
"드림맥스가 퀘스트를 양산해서 대륙을 항상 위기에 몰어넣고 있거든."
덕분에 유저들은 악의 세력과 싸우며 즐기지만, 선량한 NPC의 입장에선 죽을 맛일 터.
"흠, 무슨 말이진 모르지만, 드림맥스라는 놈들이 진정한 악의 배후인가?"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고얀 놈들이군. 언젠가 만나면 요절을 내고 말겠다."
'진짜 GM이라도 불러 주고 싶군.'
이들의 이런 장난스런 대화를 '악의 배후' 드림맥스 일당들은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속칭 '까댐' 을 들은 그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유저는 몰라도 피조물 따위에게 이딴 소릴 듣다니.
"아무튼 사안이 급하니 빨리 가도록 하죠."
알세인의 재촉에 유한은 동료들과 파티를 결성하고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파티의 이름은 '엘프 숲 원정대' 였다.
그런데 미처 마을을 빠져나가기 전에 반가운 인물을 발견했다.
"어, 로키 형 아냐?"
"그러게. 여긴 어쩐 일이지?"
게임에선 참 오랜만에 만나는 로키였다.
그사이 무기와 장비가 다소 바뀌었지만, 그의 과묵한 분위기는 변함이 없었다.
"로키 형!"
일행이 로키를 부르자, 로키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모두들 로키에게 쪼르르 달려가 인사를 건넸따.
"형, 안녕하세요?"
"너희들이구나."
로키도 일행을 반겨 주었다.
"그런데 형. 여긴 어쩐 일이세요? 사냥이나 던전?"
"그것도 아니면 예쁜 엘프 언니라도 꼬시러 왔나요?"
에이린의 장난스런 말에, 로키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퀘스트 떄문이다."
"퀘스트요?"
"예전에 어떤 신관에게 퀘스트를 받았어.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만만치 않더군."
'아! 그거…….'
유한은 문제의 신관이 신종 퀘스트 때 만났던 마론이라는 걸 알았다.
신종 퀘스트가 끝나고 마론 신관이 그에게 입이 무거운 기사를 한 사람 소개시켜 달라고 했었다. 프라테우스 신종을 훼손한 세력을 추적하고 마물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 그런 모양인데.
'그게 아직 안 끝났나?'
꽤 어려운 퀘스트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다면 그때 로키를 추천하지 않을 것을 그랬다.
"그럼 나중에 보자. 시아도 수고하고."
"네, 나중에 봐요!"
"즐겜하세요, 로키 오빠."
그렇게 로키는 일행과 헤어져 숲 속으로 사라졌다.
로키가 사라지자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블랙이 다가와 물었다.
"후손, 저자는 강한가?"
"강하지. 실제론 더 강해."
현실에서 표재훈의 실력을 말한 거지만, 블랙은 엉뚱하게 해석했다.
"흐음, 겉보기보다 더 강하단 말인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붙어 보고 싶군."
'이 자식 지금 뭔 소릴 하는 거야?'
한동안 옌스와 붙어 다니더니 몹쓸 병에 걸린 건 아닌지.
"자, 빨리 세계수로 갑시다!"
일행은 다시 알세인의 안내를 받아 세계수로 향했다.
빽빽한 삼림 가운데 우뚝 선 세계수.
많은 가지와 나뭇잎으로 우거져야 할 세계수가 생기를 잃고 비쩍 말라 있었다. 거기다 색색의 수를 놓던 나비와 빛의ㅏ 정령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저거 세계수 맞아?"
"그러게, 그냥 한 그루 고목나무라 해도 믿겠어."
일전에 봤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수가 맞는가 싶었다.
세계수 앞에는 장로를 비롯해 수많은 엘프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안 하나같이 얼굴이 어두웠다. 세계수가 죽으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예언을 진실로 믿고 있는 듯.
알세인이 나타나자 장로가 다가와서 물었다.
"왔는가. 드워프는?"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알세인의 말에 장로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하긴, 우릴 싫어하는 자들이니 올 리가 없겠지."
"드워프를 데려오지 못했지만, 여기 이분이 쇠기둥을 제거해 주실 겁니다."
알세인은 유한을 가리켰다.
장로를 비롯해 몇몇 엘프들이 그를 알아보았다.
"아, 자네는?"
"일전에 사이를 따라 바람의 무녀님을 뵈었던 지그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장로님?"
채린이 유한과 함께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군, 시아 양. 그런데 자네, 대장장이였나?"
"드워프보다 실력은 모자라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부탁하네."
장로에게서 물러난 유한은 우선 문제의 쇠기둥을 유심히 살펴봤다.
쇠기둥은 파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는데, 꿈틀꿈틀 땅으로부터 무언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알세인이 말했던 대로 세계수에 갈 양분과 마나를 가로채는 모양.
"쇠기둥은처음 목격되었을 때보다 세 배 이상 커졌습니다."
"자세히 보면 지금도 조금씩 커지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옆에 있던 엘프들의 말에 유한은 정말 이런 어처구니 없는 물건은 처음이었다.
'무슨 놈의 쇠기둥이!'
일단은 쇠기둥의 성분 분석부터 하기로 했다.
유한은 인벤토리에서 끝이 날카로운 정과 망치를 꺼내 쇠기둥의 밑동을 내리쳤다. 조금 떼 내서 살펴보자는 심산이었지만,
"앗, 조심……."
"크에엑!"
미처 옆의 엘프가 경고하기도 전에 유한은 감전이 되어 뒤로 벌렁 튕겨 나갔다. 머리털은 솟구치고 전신이 검게 그을렸다.
-HP가 200 떨어졌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이런 망할!'
비록 큰 부상은 아니지만, 엘프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그만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자네 괜찮은가?"
장로와 달려와 걱정된 얼굴로 물었다.
유한이 툭툭 털고 일어서자, 안도항 장로는 쇠기둥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저 쇠기둥에 어떤 조치가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는 능력이 있더군. 이를 막으려면 마법으로 미리 보호를 해야 하네."
'캬악! 그런 건 좀 일찍 가르쳐 달라고요!'
속으로 분통을 터트린 유한은 오펜을 바라보았다. 유한의 뜻을 알았는지, 오펜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문을 읊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마나여. 나의 친구 지그를 보호해 다오. 프로텍션(Protection)!"
순간 우유빛 마나가 유한의 몸을 둘러싸며 보호막을 만들었다.
보호막이 갖춰지자, 유한은 다시 쇠기둥에 정을 대고 망치를 내리쳤다.
파지직!
이번에도 강력한 전기가 흘렀지만, 보호막에 가로막혀 유한의 몸을 지질 수는 없었다. 유한이 연거푸 정을 두둘기자 마침내 쇠기둥의 일부가 떨어져 나왔다.
"와! 떼 냈다!"
엘프들이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까지 손도 몼쓰고 있던 터라 기쁨은 더욱 더 컸다.
기뻐하는 엘프들과 달리 유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날카로운 정의 끝이 뭉특해진 것이다.
'헐! 이거 꽤 단단한 건데.'
텅스텐 합금을 섞어 굉장힌 튼튼하게 만든 정이다. 주로 단단한 암석과 금속을 쪼갤 때 사용하는 것인데, 단 한번의 작업으로 못쓰게 되었다.
"도대체 이 쇠기둥 강도가 어느 정도인 거야?"
그런데, 더웃기는 것은 쇠기둥이 자라 잘라 놓은 부위를 슬그머니 메워 놓았다는 것이다. 얼마쯤 지나자 떼어낸 흔적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헐, 재생도 된다니……"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 같네요."
"설마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 T-1000?"
뒤에서 보고 있던 동료들이 한 마디씩 했다.
"일단 한번 살펴볼까?"
유한은 인벤토리에서 돋보기를 꺼내 잘라낸 금속을 살펴보았다.
그가 가진 돋보기는 얼마 전 블랙 아이언을 사 갔던 랭커 마법사가 선물로 준 것이다. 확대 마법이 인챈트된 돋보기는 최대 50배율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으음, 이건 당최……."
요리저리 뜯어보던 유한은 연방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그가 알고 있는 그 어떤 금속과도 닮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갈리를 불러와서 물어볼까?'
일단은 좀 더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데 자꾸 들여다보니 이런 걸 어디서 본 듯한 기억이 났다.
'가만있자…… 이걸 내가 어디서 보았더라?'
곰곰이 생각하던 유한은 딱 머리를 쳤다.
'그래! 남바린의 고대 드워프의 유적에서!'
예전에 남바린 영지 지하 유적의 신전을 지키던 3마리의키메라를 물리치고 얻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키메라의 생체 합금.
관련 지식도 없고, 용도도 모르고, 자세히 연구할 시간도 없어 그냥 인벤토리에 내내 처박아 두고 있었다.
유한은 당장 키메라의 생체 합금을 꺼내 돋보기로 살펴보았다. 색상에선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쇠기둥의 것과 똑같은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뭔지 정체를 알아냈나?"
유한의 얼굴이 밝아지자 장로가 기대를 품고 물었다.
"이건 키메라의 생체 합금입니다."
"키메라? 그건 저 쇠기둥이 사실은 키메라란 말인가?"
"믿기진 않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쇠기둥 주제에 세계수의 마나와 양분을 가로채 빨아먹는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 쇠기둥 키메라를 박았냐는 것이다. 일단 용의자는 누군지 파악할 수 있었다.
"키메라 생체 합금을 제조할 수 있는 자들은 제가 알기로 고대 미케니아의 마도사들뿐입니다."
"미, 미케니아!"
미케니아란 말이 나오자 모여 있던 엘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따. 유한과 일행의 눈이 의아해졌다.
"왜요, 짚이는 거라도 있습니까?"
"미케니아라면 고대 세상을 어지럽힌 마도사들의 나라가 아닙니까?"
알세인의 말에 유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바람의 무녀 아르네스 님이 그들에게 바람의 날개를 주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아르네스 본인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그녀의 후손인 알세인도 알고 있는지, 유한의 말에 곧장 답했다.
"그들이 바람의 날개를 어떤 용도로 악용하려 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기후를 조정하는 목적이라 들었습니다."
유한은 그것도 본인, 이바니우스 3세게에 직접 들었다.
놈은 자신을 졸개로 사목 기후 조절 장치를 만들어 세계를 정복하려 했다. 물론 유한이 공중 요새를 침콜시키면서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렇습니다. 그런 자들입니다. 힘에 취해 악에 물들게된 불쌍한 인간들이죠."
알세인은 미케니아의 엘프 종족이 얽힌 과거사를 이야기해 주었다.
1만 년 전 마도 문명을 이룩한 미케니아 왕국.
처음엔 그들도 여느 인간 국가들과 다를 것이 없었단다. 그저 다른 나라보다 마법이 발전했다는 것 외엔.
그러나 발전한 마법은 갈수록 그들에게 막대한 힘을 안겨 주었다. 강력한 힘을 다슬리 만큼 사상이 발전하지 않은 미케니아는 이후 폭주를 하게 되었고, 키메라 제조라는 금단의 영역에까지 손을 대었다.
"당시 많은 인간 국가들과 이종족들이 그들에게 정복되고 멸망당했습니다. 우리 엘프족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요."
처음에 미케니아의 마도사들은 엘프들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단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의 무녀 아르네스에게서 얻어 낼 것이 있었기 때문.
바람의 날개를 얻고 나자 미케니아의 태도는 돌변했다. 그들의 진심을 알게 된 아르네스는 바람의 날개를 가지고 정령계로 가버렸다.
"아르네스 님이 사라지고, 우리 엘프들의 수난은 더욱 심패졌습니다. 그런데 바람의 날개를 얻을 수 없게 되자, 미케니아인들은 다른 힘을 얻으려 들었습니다."
알세인의 이야기는 대부분 모험을 하다 보면 접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진지한 자세로 듣는 블랙을 제외하고, 유한 일행은 다소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알세인이 말한 '다른 힘' 이라는 말에 모두들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세계수를 건드리려 했습니다. 세계수는 무한한 생명력과 마나를 품고 있는 세계의 분신이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세계수에 손을 대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미케니아인들은 악행과 오만으로 신의 노여움을 사고 있었다. 그들이 세계수까지 건드리자, 분노가 극에 달한 신은 드래곤들을 동원하여 미케니아를 멸망시켜 버렸다.
문제는 드래곤들이 너무 화끈하게 멸망시키다 보니, 애꿎은 이종족들과 인간들의 피해가 극심했다는 것.
당대 미케니아의 멸망은 문명 쇠락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 엘프들은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세계수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일이 벌어졌고, 그게 미케니아의 관련이 있다고 하니……."
우려와 분노의 웅성임이 엘프들에게서 흘러나왔다. 또 다시 미케니아에 천벌이 내려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이번엔 천벌 안 내릴걸.'
유저들이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가 드림맥스의 신조니까.
아무튼 이번 사태는 미케니아가 배후에 있음이 명확해 졌다.
유한은 공중 요새 추락 이후로 한동안 그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화이트 드래곤 안듀라스가 마무리가 시원찮았던 것을 탓하며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했었는데다 그 이유가 있었다.
'한동안 조용하다 했더니. 이 자식들, 이런 식으로 마각을 드러내는구나.'
사실 이후에도 미케니아 일당은 부지런히 활동했지만, 유한이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세계수를 고사시키고 있는 쇠기둥 키메라를 제거하는 것.
"그런데, 이걸 어떻게 제거하지?"
쇠기둥의 성분은 밝혀 냈으나 제거할 방법이 마땅찮았다.
워낙 큰 덩치라 뽑아 내기도 뭐 했고, 웬만한 칼날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 자를 수도 없었다.
"일단 두들겨 패 보자. 용가리 통뼈가 아닌 이상 제 놈도 견뎌 내지는 못할 테니까."
유한이 곡괭이를 들고 쇠기둥을 후려치자, 다른 동료들도 나름 효과 있을 공격을 퍼부어 댔다.
"버스트 샷(Burst Shot)!"
"바람의 칼날이여! 나의 명을 들을지다, 윈드 커터!"
"성스런 빛을 받으세요, 홀리 라이트!"
채린의 새로운 스킬이나, 오펜의 마법, 에이린의 신성력도 통하지 않았다.
유한이 오만상을 쓰고 있을 때,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블랙이 나섰다.
"후손, 내가 한번 해 볼까?"
"그러던가."
유한은 별 기대 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블랙의 힘이 강하다지만 저 쇠기둥을 부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앞으로 나선 블랙은 잠시 쇠기둥을 노려보다가, 묵직한 철권을 날렸다. 쇠기둥이 전격을 뿜어냈지만, 블랙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역시 안 되는군.'
블랙이 한참을 두들겨도 소용이 없자, 유한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블랙에게서 황금빛 기운이 터져 나왔다.
"카이저 소울!"
블랙의 몸에서 흘러나온 황금빛이 쇠기둥에 닿자, 지금까지 멀쩡하던 쇠기둥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끼끼끼끼ㅡ!
입이 있으면 소리라도 지르련만, 놈은 쇠 긁는 소리만 냈다.
그러나 반응이 있다는 것은 효과가 있다는 증거!
"블랙! 네 기운으로 저놈을 목사발 내 버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 후손!"
황금빛 기운이 블랙의 오른 주먹으로 모여들었다.
블랙은 태양과 같은 강렬한빛을 머금은 주먹을 거침없이 쇠기둥에 질러 넣었다.
끼아ㅡ아아앙!
비명도 쇠울림도 아닌 괴이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소리에 예민한 엘프들은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들은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지금까지 오만방자하게 우뚝 서 있던 쇠기둥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기 때문.
그냥 봐도 힘이 많이 쇠한 것 같았다.
그레인 스킬을 쓴 유한의 눈에는 보다 확실히 보였다 좀 전에 보이지 않던 균열들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기회다!'
유한은 즉시 앞으로 나서 암 브레이크로 쇠기둥을 두들겼고, 동료들도 공격을 퍼부어 댔다.
마침내 쇠기둥은 큰 소리를 울리며 부러졌다. 남아 있던 아래 부위는 블랙이 두 팔로 감싸 뽑아 버렸다.
"와! 쇠기둥이 뽑혔다."
"만세! 이제 살았다."
엘프들이 기쁜지 서로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쇠기둥이 제거되자 세계수는 기력을 되찾은 듯 축 늘어트렸던 기지를 조금씩 들어 올렸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풍성함을 되찾을 것이다.
엘프들은 아주 축제를 벌일 분위기였다. 하긴, 축제를 할만했다. 그들에게 목숨이나 다름없는 세계수를 구했으니.
[세계수의 위기] 퀘스트를 완수했습니다.
- 명성이 2,000 올랐습니다.
- 경험치 5,500을 얻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엘프 장로로에게 보상을 받으십시오.
유한 일행은 떠오르는 창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었을 퀘스트다. 세계의 운명 운운할 정도면 적어도 B급 이상의 퀘스트. 그러나 막강한 블랙의 존재는 고난이도의 퀘스트를 쉽게 완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정말 만들기 잘했다니깐!'
유한은 엘프들 사이에서 으스대는 블랙을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건방지든, 불량하든 간에 녀석은 정말 최강의 가디언이 틀림없다.
"정말 고맙네. 자네들 덕분에 세계수가 다시 살 수 있었어."
장로는 유한 일행의 공을 치하하며 일행에게 보상 아이템을 건네주었다. 채린은 '성월의 활' 이라는 걸 받았고, 오펜은 '엘더의 자핑이', 에이린은 '천사의 귀걸이' 를 받았다.
다들 만족하는지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유한이 받은 것은 '불새의 코드' 였다.
[불새의 코드]
방어력 105상승
솜씨 30상승
화염계 공격 방어율 30%증가
설명: 전설의 피닉스가 수놓은 호화로운 코드, 이걸 입고 불속에 들어가면 별로 뜨겁지 않을 것 같다.
유한은 바로 불새의 코트로 바꿔 입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동료들의 입에서 곧바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우와, 멎지다."
"지그 오빠, 옷걸이가 좀 되는군요!"
어쩐지 채린은 얼굴이 좀 발그레해진 듯.
보상이라지만, 멋진 새 옷에 만족한 유한은 장로에게 연방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하하,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마을에서 보관하고 있던 옛날 물건들일 뿐인데."
겸손하게 답한 장로는 블랙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블랙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쇠 거인님. 쇠 거인님. 쇠 거인님께 마땅히 드릴 것이……."
가장 큰 활약을 한 건 블랙이다. 그 점에서 장로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블랙이야 상관없어 했지만.
"훗, 괜찮소. 난 저거 소인배들과 달리 마음만으로 충분하오."
'아, 자식이 말을 해도 꼭…….'
동료들이 쏘아보거나 말거나 블랙은 계속 거들먹거리며 폼을 잡았다.
유한은 생생하게 살아난 셰계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것은 세계수를 지키던 키르케와 다른 하이엘프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쇠기둥을 뽑았으니 한 번쯤 모습을 보일 만도 한데.
유한이 묻자 장로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세계수에 정신이 팔려 미처 하이엘프들에 신경을 못 쓴 것이다.
"아무래도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네."
"저희도 같이 가죠."
장로가 앞장서자 유한 일행도 뒤를 따랐다.
"크윽!"
왕관을 쓴 검은 인영이 비틀거리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황급히 다가왔다.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신하들이 부축하려 들자 왕은 손을 내저었다.
"짐은 무탈하다. 그저 갑자기 '단절' 을 느꼈을 뿐."
"단절이라 하옵시면?"
"외부에 있던 기생몽(寄生木)이 제압당한 듯하다."
왕의 말에 신하들은 흠칫 놀랐다.
기생목은 자신들이 만든 키메라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이다.
지맥에 그 씨를 뿌려 두면, 삽시간에 자라나 주변 식물들로부터 마나와 양분을 흡수한다. 그렇게 흡수한 마나와 양분은 동종(同種)의 씨앗을 몸에 품고 있는 이에게 전송한다.
기생목은 쉽게 제거할 수 없도록 매우 단단하게 만들어 졌고, 자체 방어 능력도 있다.
하찮은 엘프들이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압당했다니.
신하들은 1만 년 전, 끔찍한 그때를 떠올랐다. 잠자코 있던 신이 분노했고, 드래곤들이 미케니아의 마도 문명을 멸망시켰다.
"그것은 아니다. 벌레 같은 놈들이 방해를 했을 뿐."
비록 세계수가 가진 마나와 양분을 모두 흡수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바니우스 3세는 충분하다 할 만큼의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만큼 예민한 감각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미리 준비를 해야겠다. 꽤 성가신 벌레들이 안으로 들어올 것 같으니 말이다. 더구나 한 놈은 죽었다 살아난 버러지다."
마도사들은 이바니우스 3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준비를 하라는 그의 명예는 충실했다.
"폐하, 그럼 일전에 얻은 그것을 사용할까요?"
"그래, 버러지들에게 과분할지 모르지만 그리하라."
'그것' 을 준비하도록 명을 내린 이바니우스 3세는 호위대장인 라이칸이 돌아오는 것을 보곤 말했다.
"도망간 하이엘프 놈들의 흔적은 찾았느냐?"
"송구하옵니다. 예상보다 흔적을 찾기 힘드옵니다."
흔적을 찾기는커녕 하마터면 길을 잃고 돌아오지 못할 뻔했다.
"그렇겠지. 일 만 년 전에도 그랬으니."
예전에도 이렇게 정령계로 들어와 바람의 무녀를 찾았지만, 찾기는커녕 영영 밖으로 나가지 못할 뻔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그때와 다른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응흉하게 웃은 이바니우스 3세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일렁였다. 그 마기를 본 정령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아니,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피할 수 없었다.
"기다려라, 바람의 무녀여. 이번엔 짐을 박대할 수 없을 것이야."
유한은 장로를 따라 세계수를 아래의 동굴로 들어갔다.
하이엘프들의 흔적이 이 동굴에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세계수에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자, 정령계에 있는 바람의 무녀를 찾아간 모양이다.
"이거 너무 좁은데. 좀 큰 길은 없소?"
"죄송합니다, 쇠 거인님.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이제 곧 정령계의 입구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덩키 큰 블랙은 힘들게 동굴을 기어 내려가야 했다.
중간에 좁은 곳에 덜컥 걸려 버린 블랙을 보고 유한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니까 남아 있으라고 했잖아. 왜 따라와서 이 고생이야?"
"암흑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어찌 남아 있겠나!"
블랙은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뭔가 사이한 기운이 동굴 아래로 내려간 것을 엘프 장로도 감지하고 일러 주었다. 유한 일행은 그 사이한 기운이 미케니아 놈들의 것이라 확신했다.
"다 왓……헉!"
정령계 입구에 도착한 장로는 깜짝 놀랐다.
입구를 막고 있는 석문이 부서져 있었다. 아니, 그 정도라면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부서진 석문 너머에 정령계가 보였는데, 문제는 그곳에 있는 정령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던 정령계가 마치 정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멈춰 있었다.
강물은 멈추고, 꽃은 시들고, 나무들은 힘없이 쓰러졌다.
도화지에 검은색의 굵은 사인펜이 그어진 것처럼, 직선으로 쭉 그어진 길 위에는 아무 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그 위에 쓰러진 정령들은자신이 가진 빛을 잃었다. 살라맨더는 불꽃을, 운디네는 물빛을, 실프는 바람을, 주변의 정령들은 그 회색의 길을 밟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빛을 잃고 쓰러진 친구들을 보며 슬퍼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크으윽"
회색의 길위에 발을 내딛었던 장로는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그는 전율했다.
밖에서 느껴 보지 못했던 강한 마기가 회색의 길 위에 뿌려져 있었다.
"괜찮습니까?"
유한 일행은 장로를 재빨리 길 밖으로 끌어냈다. 간신히 숨을 돌린 장로는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네. 난 더 이상 안내해 줄 수 없을 것 같군."
"괜찮습니다. 이제부턴 우리들이 알아서 가겠습니다."
회색의 길만 따라가면 이번 사건을 일으킨 놈들을 만날수 있을 것이다.
유한 일행은 장로를 그 자리에 두고 회색의 길을 따라 걸어갔다. 엘프들만큼 정령에 가까운 존재가 아니라 유한 일행은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길을 따라 쭉 쓰러진 정령들을 보자니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이 자식들,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 놓고 말겠어!"
다행히 적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회색의 길이 끝나는 곳에 검은 로브를 걸친 마도사들과 그들의 왕인 이바니우스 3세가 있었다.
유한은 예전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이바니우스 3세를 보았다. 그는 전신에서 줄기줄기 검은 마기를 뿌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검은 마기에 닿은 땅은 회색으로 빛을 잃었다.
'역시 저놈이 그랬군!'
이바니우스 3세가 마기를 뿌리고 다녔기에 정령들이 죽었던 것이다.
미케니아 일당은 바람의 무녀와 하이엘프들이 정령계 어디에 숨었는지 알지 못했다. 이바니우스 3세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계속 이렇게 걸어가면서 정령들을 살육하면, 바람의 무녀가 튀어나올 테니까. 지금 그에겐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아르네스보다 먼저 나타난 것은 대장장이 지그였다.
"야! 이바니우스 3세!"
유한은 고함을 지르며 미케니아의 국왕에게 달려갔다.
이바니우스 3세는 마기를 뿌리며 근업하게 돌아섰다. 건방진 대장장이 놈이 악을 쓰며 달려오고 있었다.
마도사들이 나서서 처리하려 하자, 그는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저 고약한 대장장이 녀석은 자신이 직접 처리할 생각이었다.
"크크크, 무모하기 짝이 없구나."
이바니우스 3세는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대장장이는 그저 검을 들고 무모하게 달려올 뿐이었다.
그는 유한의 정성을 봐서 바로 코앞에서 헤치우기로 했다. 근업하게 손을 들어 올렸던 이바니우스 3세는 펄럭이는 한 벌의 옷을 보았다.
'기술관의 관복?'
그것은 일전에 자신이 대장장이에게 하사했던 관복이다.
신하가 되라고 관복을 내려 주었건만, 대장장이 녀석은 자신을 배신하고, 이제는 관복까지 집어 던졌다.
"관복을 던져서 짐에게 뭘 어쩌려는……."
비웃음을 띠던 이바니우스 3세는 기술관의 관복을 뚫고 날아드는 차가운 칼날을 보았다.
검은 관복을 뚫고, 이바니우스 3세의 머리를 찔렀다.
땅!
"폐하!"
마도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처구니없게도 국왕이 대장장이의 기습에 당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바니우스 3세는 아직 죽지 않았다.
유한으로선 불행이었지만.
"후후후! 간교하구나, 대장장이여."
"쳇!"
유한은 바로 뒤로 물러섰다.
한 번의 기습을 성공시켜 일격에 머리를 꿰뚫을 생각이었는데, 검 끝이 왕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훌륭하게 국왕을 지킨 왕관은 쩍 갈라져 떨어졌다. 나름 검에 여력이 남았던지, 이바니우스 3세의 이마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역한 마기를 풍기는 진득한 검은 피가.
'제길, 끝낼 수 있었는데.'
"지그야, 괜찮아?"
안타까워하는 유한에게로 동료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갑자기 유한이 검을 뽑고 달려가서 깜짝 놀랐다.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시, 그들은 서둘러 전투 준비를 해야 했다. 이바니우스 3세를 비롯해 마도사들이 포위하고 나선 데다, 키메라들까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허허허, 이게 누군가. 침을 배신한 역적들이 아닌가."
여기서 역적들이란 유한의 동료들을 가리켜서 한 말이었다.
"닥쳐라! 난 네놈 따위 섬긴 적 없다!"
블랙의 일갈에 정령계가 쩌렁쩌렁 울렸다.
예상보다 쇳덩이에 들어앉은 망령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냥 죽었다 살아난 버러지라 생각했는데 잠들었다 깬 호랑이였다.
그냥 싸워서는 만만하게 쓰러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역시, 그걸 준비해 두길 잘했군."
'뭐라는 거야?'
유한 일행이 어리둥절해 하건 말건, 이바니우스 3세는 마도사들을 돌아보며 신호를 보냈다.
국왕의 명령을 받은 마도사들은 허공에 재빠르게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마법진이 완성되고 검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대장장이여, 짐은 네 덕분에 공중 요새를 잃었고, 세상 구경을 원 없이 했도다."
"꽤나 재미이었겠군. 여행이란 즐거운 거니까."
유한의 대꾸에 이바니우스 3세는 이를 갈며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즐거운 여행이었지, 짐과 신하들은 신전에 들어가 고물 같은 종을 부셔 보기도 했고, 그로지아 왕실에서 도둑질도 했느니라. 그리고 철심자 길드라던가? 하여간 귀찮게 구는 천민들도 잡아 죽였다."
자신이 모르고 있던 미케니아 일당의 행보가 언급되자, 유한의 얼굴은 멍해졌다. 설마 헬리오스 신전에서 종을 부셨던 놈들이 이 녀석들이었던 것인가.
"나름 돌아다니면서 구한 것도 많았지. 개중에는 홀로 드래곤을 잡았다는 광전사의 갑옷도 있느니라."
"뭐!"
유한의 언성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곁에 있던 동료들이 다 놀랄 정도로.
그러나 그는 동료들의 반응은 관심이 없었다. 지금 눈앞의 미케니아 국왕이 분명 바츠의 것이라 여겨지는 갑옷, 레드 본 플레이트 메일을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
"만 년 만에 세상에 나오니 별 녀석이 다 있더구나. 대단하지 않느냐? 천한 인간의 몸으로 광룡이라 불리는 드래곤을 홀로 잡다니."
"지, 지그야, 왜 그래?"
채린은 평소와 다른 유한의 모습에 당황했다. 부들부들 떨면서 흥분하는 그의 모습은 굉장히 낯설었다.
'어째서? 어째서 저놈이 그걸 갖고 있지?'
유한의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가 혼란에 빠진상태에서도 이바니우스 3세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 광전사는 꽤 고독한 자라 들었다. 갑옷데고 어두운 사념이 많이 남아 있더구나. 그래서 아주 쉽게 이용할 방법을 찾았지."
순간 마기가 일렁이는 마법진에서 뭔가가 나타났다. 한손에 검을 들고 붉은 갑옷을 입은 인영.
이바니우스 3세는 서서히 마법진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인영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그를 소개했다.
"소개하마! 짐의 검이 된 광전사 바츠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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