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7 폭탄마와 유술가
폭탄마와 유술가
밸런타인데이가 지나고 아르페디아 온라인이 들썩이고 있었다.
얼마 전에 나타난 빛의 기둥 때문은 아니다.
한때 빛의 기둥에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긴 했지만, 곧 시들해졌다. 빛의 기둥에 대해 알려진 게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아르페디아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것은 해외 랭커 들이었다.
1달 전부터 아르페디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해외 랭커들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그 선두에 웨스턴의 테러리스트 프로인과 후소 대륙에서 온 유술가 카즈마가 있었다.
이 둘은 아르페디아 각지를 들쑤시고 다녔다. 프로인은 가는 곳마다 폭탄 테러를 일삼았고, 카즈마는 상위 랭커들을 차례대로 쓰러트리고 있었다.
"누가 이놈들을 처리해 주지 않나?"
"이것들 때문에 외국 녀석들이 멋대로 날뛰고 있는데 말이야."
"카즈마란 녀석은 그렇다 쳐도, 프로인이란 놈은 누가 확실히 작살내 줬으면 좋겠어."
잠시 일손을 놓은 유저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잡담의 주제는 '침략자', 특히 테러리스트 프로인이었다.
"프로인 이놈은 진짜 악질이야. 좀 유명한 대장장이가 있다고 하면 타짜고짜 찾아가서 폭탄을 던진대."
"카잔 왕국의 아론도 이놈 손에 당했다지."
"이러다가 우리한테도 불똥이 튀는 거 아니야? 우리 사장만 해도……."
이들은 모두 대장장이 유저들이었다.
다들 명성이 낮은 평범한 대장장이였지만, 프로인에게 테러를 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의 일터는 바로 브로딘 왕국에 소재한 발리안철공소.
이곳은 아르페디아 대륙에서 귀련 다음으로 인정받고 있는 명장의 작업장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않듯, 프로인도 이곳을 그냥 두지 않을 게 틀림없다.
그렇게 대장장이들이 불안에 수군거리고 있을 때였다.
화려한 복장을 한 대장장이 유저가 무구 공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다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잡담이나 하라고 고용한줄 아십니까? 당장 무구 생산에 집중하십시오!"
그는 바로 발리안이었다.
사장의 강림에 놀란 대장장이들은 재빨리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재료 수급이나 시설 여건이 좋은 철공소는 스킬 랭크를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는 좋은 장소.
사장에게 밉보여 쫓겨나면 자신만 손해다.
모두들 부지런히 망치질을 하고, 제련 작업에 열중했다.
발리안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유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골렘 공방으로 발걸음을 옳겼다.
그곳에도 많은 일꾼들이 일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NPC들이었지만, 유저도 적지 않았다. 철공소 소장을 맡고 있는 이도 꽤 유명한 유저였다.
"제작 공정은 어떻습니까?"
"90%까지 완성했습니다. 닷새 후면 '레기온(Legion)' 을 스타더스트 길드에 납품할 수 있습니다."
소장의 말에 발리안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레기온은 발리안 철공소에서 생산하는 거대 인형 병기.
지금 발리안 철공소는 얼마 전에 선보인 거대 병기의 주문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공장을 크게 확장하고, 일꾼들도 새로 많이 영입했다.
"스타더스트 길드가 길드전을 준비 중이라지요? 그때 우리 레기온의 활약을 찍어 두었다가 광고 동영상을 만듭시다."
"지그 철공소의 블랙 아이언처럼 말입니까?"
"뭐 꼭 그치들처럼 과장 광고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요."
내색은 하지 않지만, 발리안은 광고 속의 블랙 아이언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설마 특급 아이돌을 광고에 동원했을 줄이야.
"우리도 연예인에 연줄 닿은 유저들을 찾아보세요. 아니, 연예인 급 미모를 갖춘 아가씨들이라도 좋습니다. 그리고이건 좀 별개의 문제인데……."
발리안은 잠시 말을 끊었다. 소장에게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끝내 말문을 이어 나갔다.
"내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입니다."
"말씁하십시오."
"혹시 근래에 로그인을 하니, 천사가 나타났던 적이 있습니까?"
"천사요? 예, 있었습니다. 빨리 자격을 갖춰야 토르의 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다른 말은 없고요?"
"예, 그뿐이었습니다만."
발리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며칠 전 로그인을 했을 때, 천사가 나타났다. 천사는 나타나서 이런 말을 하고 사라졌다.
"그대 마지막 자격을 갖추고 별빛을 찾으시오. 그리고 하늘의 문을 열어 토르 님의 시험을 받으시오."
처음엔 왜 천사가 나타났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천사의 강림이 그 이전에 나타났던 빛의 기둥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노스아크에서 헤븐즈 게이트의 정보가 들어온 덕분이었다.
'헤븐즈 게이트. 말 그대로 그게 하늘의 문임에 틀림없어. 누군가가 헤븐즈 게이트를 열었고…….'
그 영향으로 천사가 강림해 뭔가를 일러 주었다.
그러나 개나 소나 다 나타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소장에게 묻기 전에 다른 유저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저렙이나 중렙의 경우엔 그런 일이 없었다고, 고렙 유저들부터 슬슬 언급이 되었는데, 그들도 소장처럼 자격을 갖추란 소리만 들었단다.
다른 것은 언급된 신의 이름뿐이다.
대장장이 유저는 토르, 상인은 디요른, 전사는 전쟁의 신 아레스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유저들의 직업에 따라 시험을 주관하는 신들이 다른 모양.
'아무튼 난 자격을 거의 갖췄다 이거지?'
그렇기에 천사가 별빛을 찾으라는 둥, 하늘의 문을 열라는 둥의 남들과 다른 조언을 해 줬을 것이다.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손꼽히는 대장장이였기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튼 토르의 시험을 받으러 가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그럼 귀련 님을 능가할 수 있을지도!'
마년 2인자의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핮디만 분명 귀련에게도 천사가 강림했을 터. 천사가 그녀에게도 남다른 조언을 해 줬을 게 틀림없다.
'서둘러야겠군. 일단 도적 길드에 요청해 정보부터…….'
발리안의 부산하게 설치고 있을 때였다.
철공소 밖에서 손님을 대접하던 NPC 직원들이 들어왔다.
"사장님, 웬 손님이 오셔서 사장님을 찾습니다."
"그래요?"
보나마나 레기온을 구입하러 온 유저일 터.
발리안은 거만한 눈으로 일꾼들을 쓰윽 둘러보다 응접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중년의 외국인 유저가 기다리고 있었다.
'훗, 내 레기온의 명성이 벌써 해외에까지 퍼진 건가?'
발리안은 내심 어깨가 으쓱했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살펴보던 외국인 유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발리안인가?"
"그렇습니다만."
발리안은 상대가 원한다면 레기온의 가격을 최대 10%까지 깎아 줄 의향이 있었다. 첫 해외 수출이니까.
그런데 상대가 원하는 건 레기온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당신이 아르페디아에서 손꼽히는 대장장리나느 소리를 들었다. 나와 한번 실력을 겨루어 보자!"
외국인 유저가 발리안을 향해 도전젃인 눈빛을 보냈다.
발리안의 표정이 변했다. 실망하던 그의 눈빛은 상대의 이름을 보고 날카롭게 빛났다.
'프로인? 테러리스트 프로인!'
발리안도 소문을 들었다.
아르페디아에 와서 엄청난 만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폭탄마.
이름 있는 대장장이들을 찾아다니며 행패를 부린다더니, 결국 이곳에 당도하고 만 것인가.
'꽤 많인 분탕 쳤다고 들었는데…… 머더러 상태는 아니군.'
죽인 사람이 적은 건지, 아님 머더러 카운터가 풀릴 때까지 어디 숨어 있었던 건지.
곰곰이 생각하는 발리안에게 프로인이 다시 물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나? 나와 실력을 겨루자."
프로인이 아르페디아 대륙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이곳의 대장장이들을 꺾고 자신이 최고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싫습니다."
발리안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프로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난 웨스턴 최고의 대장장이다. 네가 아르페디아 대륙에서 최고라 생각하면 나와 대결을 해야 한다."
"웨스턴 최악의 머더러겠지요. 난 당신 같은 사람과 쓸데없는 데 시간을 할애할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장 나가 주십시오."
발리안의 냉랭한 축객령에 프로인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후회하게 될 텐데?"
"남이야 후회하든 말든 신경 끄십시오. 뭐 합니까? 이야기 끝났습니다. 손님 내보내십시오."
발리안의 외침에 양쪽 벽의 비밀문이 열리며 호위 용병들이 들어왔다.
"서투른 짓 하면 그냥 베어 버리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철공소 호위 용병들은 랭커는 아니지만, 저마다 한가락 한다고 자부하는 실력자들이다. 발리안도 그들의 실력을 믿고 고용했다. 그리고,
'아무리 폭탄마라도 근거리에서 폭탄을 던지진 않겠지.'
자폭은 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주먹만 한 폭탄이 눈앞으로 굴러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사장님을 지켜라!"
당황한 호위 용병들이 방패를 들고 발리안을 둘러쌌다. 심지가 모두 타들어 간 폭탄이 번쩍 빛을 발했다.
펑!
예상과 달리 폭음과 폭발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기는 발리안과 호위 용병들을 한 치 앞다 못 보게 만들었다.
"이놈이 대체 어디 갔지?"
"조심하세요. 연기 속에서 총을 쏠지 모릅니다."
호위 용병들은 방패를 앞세우곤 천천히 프로인을 찾았다. 그러나 놈은 응접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따.
"도망친 건가?"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엄청난 폭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쾅! 콰콰쾅! 콰쾅!
발리안의 안색이 하얗에 변했다. 폭음이 울린 곳은 공방들이 있는 구역이었다. 놀란 발리안은 다급히 그곳으로 달려 나갔다.
"불이야! 불!"
"지붕이 무너진다, 모두 피해라!"
철공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공방 곳곳에서 불길이 솟구쳐 올랐고, 건물 벽면 하나는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그 안에서 일을 하던 대장장이들과 일꾼들은 마치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크하하하! 이 프로인의 도전을 거부한 대가다!"
프로인은 불꽃과 검은 연기 속에서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의 광소에 맞춰 연달아 폭발이 일어나고, 철공소의 기둥과 대들보들이 무너졌다. 미처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일꾼들은 거기에 깔려 죽음을 당했다.
'이럴 수가!'
테러리스트 프로인.
분명 발리안도 그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놈의 테러에 그동안 대장간을 날려 먹은 유저가 한둘이 아니고, 복수를 하려다 당한 유저들도 부지기수라고.
하지만 자신은 피해 갈 거라 믿었다.
제아무리 폭탄마가 설쳐도 물리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자신의 무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공소가 이렇게 무참하게 파괴되다니…….
"이, 이, 개자식! 죽여 버리곘어!"
발리안의 차분하던 얼굴이 귀신같이 일그러졌다.
평소에 화를 내지 않던 사람이 화를 내니 엄청 무서웠다. 주변에 있던 호위 용병들은 놀라서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섰다.
"나와라, 제네시스!"
폭음을 능가하는 발리안의 고함에 레기온 1기가 무너진 철공소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제네시스는 철공소 앞에 전시되고 있던 레기온의 시제품.
시제품이라고 하지만 전투 능력은 충분했다. 그리고 제작자이자 조종수인 발리안의 말에 절대 충성했다.
"이 미친 폭탄마 자식! 네놈의 뼈와 살을 다져 주마!"
얼마나 힘들게 만든 철공소였던가.
들어간 돈만 해도 2백만 골드가 넘는다. 건설비와 설비값, 일꾼들의 영입 자금과 증축 자금까지.
아니, 그것은 돈으로 말할 수 없는 땀가 노력의 결정체였다.
그 결정체가 미친 폭탄마 녀석의 손에 무너지고 있었다.
"제네시스, 당장 저 미친 녀석을……."
탕!
날카로운 총성이 들려오더니 발리안의 몸이 털썩 쓰러졌다.
이마에 정확히 총탄을 적중당한 발리안은 원통하게도 그대로 사망 판정을 받았다.
<헤드샷을 당했습니다. 부활 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사장님이 당했다.!"
"저 망할 놈을 죽여!"
물러서 있던 호위 용병들이 발리안의 죽음에 분기탱천했다.
그들은 앞을 다투어 프로인을 향해 돌격했다. 그런 그들에게 프로인은 아낌없이 폭탄을 뿌리고, 총격을 퍼부었다.
"으하하핫! 덤벼라, 아르페디아의 떨거지들아!"
송태수는 요새 한 가지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채린이 여전히 유한과 어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은 물론, 현실에서도.
오늘만 해도 그렇다. 학교에 갔다 와서 곧장 옷 갈아입고 외출하는 채린을 따라가 봤더니 시내에서 유한을 만나는 게 아닌가.
'크아악! 내 이 자식을!'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 유한을 피떡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채린이 곁에 있으니 손대기가 껄끄러웠다. 제 엄마를 닮아 한번 삐치면 물불을 안 가리는 딸내미였다.
지금은 조용히 물러나는 수밖에.
"에잇, 유한이 놈 내일 도장에 오면 다리몽둥이를 확분질러야지."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송태수는 캡슐에 들어가 로그인했다. 꿀꿀한 기분을 사냥으로 풀어 버리기 위해.
"대장님, 오셨습니까."
송태수, 아니 길포드의 눈에 낯익은 방과 부하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은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사무실이었다.
한동안 엘프의 숲 남서쪽에 새로 나타난 '레뮤다' 대륙을 탐험했던 그는 어제 돌아와 이곳에서 로그아웃했다.
<쪽지가 왔습니다. 확인해 주세요.>
"응? 쪽지?"
쪽지 확인 안내창이 떠오르자, 길포드는 곧장 쪽지함을 열었다. 이름이 한자로 된 녀석의 보낸 쪽지였다.
쪽지를 꺼내 읽던 길포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큭!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군."
쪽지의 내용은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길포드 양반.
그대가 아르페디아 대륙에서 제법 잘나가는 전사라는 소문을 들었소.
지금까지 이곳의 숱한 랭커들과 싸웠지만, 하나같이 변변찮은 실력이었소. 그러니 그대가 나 카즈마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 주었으면 좋겠소.
아래에는 시간과 약속 장소가 적혀 있었다.
한마디로 이 쪽지는 도전장인 셈이다.
길포드는 얼굴을 찌푸린 채로 있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었고, 약속 장소도 용병대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대장님, 어디 가십니까?"
사무실 한쪽에서 손도끼를 닦고 있던 자칼이 물었다.
길포드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잠깐 산보나 좀 하려고."
"그러십니까? 그럼 다녀 오십시오."
그렇게 길포드는 용병대 사무실을 나섰다.
카즈마는 약속 장소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좀 있으면 길포드라는 랭커가 나올 것이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놈을 무찌를 것이다.
'아르페디아에서 나 카즈마의 전설을 만들 것이다.!'
한국 랭커들을 모조리 쓰러트린 최강의 일본 유저가 된다.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후소 대륙을 변경 취급하고 아르페디아를 중심부로 여기는 드림맥스에 한 방 먹여 줄 수 있었다. 그래서 카즈마는 아르페디아에 넘어와 한국 랭커들과 일대일 긍부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저, 카즈마 님?"
열심이 몸을 풀고 있는 카즈마에게 어쎄신 복장을 한 유저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보니 주변에 꽤 많은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오?"
카즈마는 슬쩍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혹시 이들이 떼로 덤벼들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자기네 길드 랭커를 쓰러트렸다고, 감히 쪽바리가 설쳐 댄다고 덤벼들었던 것이다.
물론 카즈마는 그런 녀석들도 모조리 때려눕혔다.
"하하, 전 카즈마 님의 열렬한 팬입니다. 여기 사인좀."
어쎄신 청년은 카즈마에게 펜과 종이를 내밀었다.
카즈마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사인을 해 줬다. 후소 대륙에서도 이런 자들이 꽤 많았다.
'후후, 이제 보니 여기 모인 이들도 다 내 싸움을 구경하러 온 거로군.'
구경꾼들에게 적의는 없었다. 한 20명쯤의 랭커들을 거꾸러뜨린 후부터 그를 알아보는 한국 유저들이 꽤 많아졌고, 싸움을 구경하러 졸졸 따라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국적을 떠나 나름 통쾌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들먹거리는 랭커들이 처참하게 박살 나 쓰러지는 모습이 고소하게 느껴졌기에.
카즈마는 멋지게 사인한 종이를 어쌔신 청년에게 건네 주었따.
청년은 기쁜 얼굴로 굽실거리더니, 품속에서 드링크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고맙소."
카즈마는 별 생각 없이 병뚜껑을 따고 드렁크를 마셨다.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데,
-쿠쿵! 카므나의 저주에 중독되었습니다. HP와 MP, 스테미나는 물론 전 스텟이 절반으로 떨어집니다.
'컥! 이것은!’
카즈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설마 팬의 호의 정도로 생각한 드링크가 독이었을 줄이야!
그는 드링크를 건네준 어쌔신 청년을 노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청년은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후후후, 아무나 주는 걸 넙죽 받아먹으면 안 되지."
"너 이놈!"
"그건 카므나의 저주라는 극독이다. 로그아웃해도 소용없지."
하이 프리스트 칭호를 가진 성직자의 퓨리파이에 치료가 되지만, 어쌔신 청년은 그런 걸 알려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는 곧장 카즈마에게 달려들어 자마다르를 휘둘렀다.
카즈마는 황급히 피했지만, 스탯이 떨어진 만큼 몸놀림도 둔해져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서둘러 치료를 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이미 반으로 줄어든 HP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카즈마는 황급히 어쌔신에게서 물러났다. 그는 여유 있게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어쌔신에게 소리쳤다.
"어떤 놈들이냐! 누가 널 고용했나?"
그는 이 암습에는 배후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안 그래도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길드와 유저들이 많으니까.
"내가 날 고용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성질나서 너한테 덤비는 거라고, 이 쪽발이 자식아! 니가 감히 이 키라 님을 무시해?"
어쌔신 청년은 바로 검은 초승달 길드의 키라였다.
요새 랭크 순위 변동이 있어서 조금 밀렸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는 100위권 안의 랭커였다.
그런데 저 일본 녀석은 처음부터 자신을 깨끗이 무시했다.
키라는 그것이 참을 수 없었다. 마법사라지만 얼마 전엔 랭크 40위대의 철십자 길드장 노벨까지 쓰러트린 자신이 아닌가!
"날 무시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해 주마!"
키라는 카즈마에게 달려들어 자마다르를 휘두르고 발차기를 날렸다. 이미 상태가 일반 고렙 수준으로 전락한 카즈마는 필사적으로 키라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카즈마의 HP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떨어졌다. 사실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키라였지만, 최대한 상대에게 굴욕감을 주기 위해 조금씩 HP를 깎아 나갔다.
결국 HP와 스테미나가 바닥에 떨어진 카즈마가 땅바닥에 몸을 뉘었다.
"캬캬캬! 이 키라 님이 카즈마를 잡았다!"
키라는 카즈마의 가슴에 발을 올려놓고 승리의 V를 펼쳐 보였다. 스크린 샷도 몇 장 찍었다. 나중에 공식 홈페이지에 올려 자랑할 속셈이었다.
아르페디아를 어지럽힌 일본인 초고수를 자신이 쓰러트렸다면서.
"우우, 비겁하다!"
"치사 빤스다!"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유저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아무리 상대가 일본 유저고, 한국 랭커들을 상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던 자라 해도 이렇게 비겁한 방법을 쓰다니.
알려지면 이건 국가 망신이다.
"시꺼! 이게 내 방식이야! 어쌔신이 이런 거 몰라?"
빽 소리를 지른 키라는 자마다르를 치켜들고 카즈마의 숨통을 끊으려 했다.
캉!
카즈마에게 절체절명의 순간, 누군가 달려와 휘두른 검에 키라의 자마다르가 날아갔다.
활들짝 놀란 키라는 자신에게 진득한 살기를 뿌리는 사내를 보았다.
"당신은……."
"그 발 떼고 물러나지 않으면 죽는다."
폭풍의 길포드.
결투장으로 나온 그는 처음부터 전부 다 지켜보았다.
길포드의 등장에 유저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그와 반대로 키라의 마음은 철렁했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사무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가 나타잘 줄은 몰랐다.
'설마, 이 쪽발이 녀석 상대가 길포드?'
그럼 자신은 호랑이의 먹이를 가로챈 승냥이인 셈이다.
안 그래도 문제의 호랑이가 살벌하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키라는 곱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이 아저씨에게도 갚아야 할 빚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 무역로 개척 퀘스트 때의.
"흥, 그리는 못하겠습니다만."
"너 죽고 싶냐?"
"내가 당신을 죽여 드리죠!"
키라는 자신만만한 말을 내뱉은 동시에 스텔즈 어택을 날렸다.
보이지 않는 공격을 가볍게 후려친 길포드는 번개 같이 간격을 좁히더니 검을 내리그었다. 재빨리 자마다르를 회수한 키라는 그 공격을 막아 냈다.
'어라, 검격이 가볍다?'
키라는 놀랐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길포드의 진짜 일격은 반대편 손에 들린 검집에 실려 있었다. 그 검집은 키라의 덕을 그대로 후려갈겼다.
빠각!
"크업!"
HP가 좍 떨어지고 안내창에 뭐라고 떠오른 것 같은데, 키라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번갯불이 번쩍인순간, 몸이 붕 떠올랐고 머리부터 바닥에 거꾸로 처박혔다.
"안 그래도 깐죽대는 네놈을 한번 손봐 줄 생각이었다."
길포드는 키라를 향해 폭풍같이 손발을 뻗었다.
퍽퍽! 퍼퍼퍽!
당황한 키라는 은신술을 펼쳐 도망치려 했지만, 길포드는 주먹에 레이더라도 달렸는지 숨는 족족 찾아내 쥐어박았다.
"커억! 하, 항복! 그만 때리세요!"
"어허, 젊은이가 이리 약해서야. 아까 날 죽이겠따는 기백은 어디로 갔누?"
딱 죽지 않을 정도로 맞은 키라는 그 자리에 대자로 쓰러졌다.
"쯧쯧, 젊은 놈이 얍삽해 빠져 가지곤."
키라가 무의식의 방을 헤매고 있는 동안, 길포드는 키라의 주머니를 뒤져 카므나의 저주 해독약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해독약은 나오지 않았다. 나온 거라곤 카브나의 저주를 비롯한 여러 가지 독약과 암기들뿐.
"이런, 이거 곤란한걸."
길포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키라를 깨워서 물어보려 했는데, 이놈이 로그아웃을 했는지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흥, 비겁한 조센징 같으니."
그사이 포션을 마셨는지, 카즈마가 부스스 일어났다.
그는 길포드를 한번 노려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카므나의 저주에 중독된 이상, 대결은 무산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잠깐!"
카즈마가 돌아보자 길포드가 씨익 웃었다.
"나에게 도전장을 보냈으면 승부를 내야 하지 않겠나?"
"큭, 이 지경이 된 나를 이기시겠다?"
"물론 이대로 널 이겨 봐야 의미가 없지. 하지만 이렇게 하면 어떨까?"
길포드는 키라의 주머니에서 꺼낸 카므나의 저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뜨악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즈마를 향해 물었다.
"이러면 공평하겠지?"
그는 이대로 카즈마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채린이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싶기도 하지만, 언젠가 이놈을 손봐 줄 생각이었기 때문.
게다가 그는 자신에게 도전한 자를 한 번도 고이 보내준 적이 없었다.
"당신도 참 별종이군요."
옅게 웃던 카즈마는 곧장 전투 자세를 잡았다.
<두 사람의 결투가 성립되었습니다. 상대방을 죽여도 PK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뭐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카즈마의 이번 결투 상대가 길포드였던 거야?"
"정말 그런 것 같은데?"
소문을 듣고 더 많은 관중들이 모여들었다.
카즈마는 관중들에 신경 쓰지 않고 눈앞의 길포드를 주시했다. 그는 길포드가 검을 손에서 놓는 것을 보고 놀랐다.
"무슨 짓이오? 당장 검을 드시오."
"후후, 너도 빈손인데 내가 무기를 쓸 수 있나."
어깨를 으쓱하며 내뱉은 길포드의 말은 광오하기 짝이 없었다. 나름 자신의 명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카즈마의 얼굴이 구겨졌다.
"감히! 후회하지나 마시오!"
카즈마는 곧장 길포드를 향해 달려갔다.
'멍청한 작자. 내가 일반 유저로 보였나?'
카므나의 독에 중독되어 모든 능력치가 반감되었지만, 카즈마는 일본 고무술(古武術)의 유단자였다.
레전드 오브 프론티어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되는 그가 일본 서버의 최강자에 손꼽힐 수 있었던 데는 고무술이 한몫 단단히 했다.
고무술을 익히면서 쌓았던 공수 패턴과 전투에 대한 여러 기술과 지식들은 게임에서도 큰 도움이 된 것이다.
덕분에 카즈마는 자신보다 빨리 게임을 시작한 유저들 보다 더 빨리 스킬을 익히고 스텟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팔짱을 낀 채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길포드는 정말 가소로워 보였다.
"죽어랏!"
게임의 유술가 스킬은 필요도없다.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고무술의 기술을 먹여 줄 생각이다.
눈을 수도로 찌르는 척하면 상대는 움찔하기 마련.
그렇게 당황한 틈에 섬전과 같은 바르기로 달려들어 팔을 비틀고, 다리를 꺾고, 목을 돌릴 것이다. 상대는 자신이 어떻게 당한지도 모르고 사망하게 될 터.
'아니, 왜 피하지 않지?'
손끝이 눈을 찌를지도 모르는데 길포드는 피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눈을 찔리겠다는 것인가.
"헉!"
외마디 비명을 내빝은 카즈마는 그 자리에 휘청했다. 팔짱을 끼고 있던 길포드가 자신의 수도를 낚아채 옆으로 길게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넘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길포드가 다리를 살짝 걸어준 덕분에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크읏!"
카즈마는 몸을 굴리며 길포드에게서 떨어졌다.
재빨리 손을 뿌리쳤으니 망정이지, 잘못하면 잡혀서 제2, 2제3의 공격을 허용할 뻔했다.
"오오, 길포드가 선빵을 먹였다!"
구경하던 유저들이 함성을 질렀다.
조금 전 키라 녀석이 엉뚱한 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분위기가 침체되긴 했지만, 모두들 길포드가 승승장구하는 일본 유저를 꺽어 주기를 바랐다.
'실수다. 너무 얕잡아 봤어.'
카즈마는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었다.
상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반격을 펼쳤다.
만약 상대가 다리를 거느 대신 반대편 손으로 목을 움켜잡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카즈마는 허리를 튕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하얗게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길포드를 향해 물었다.
"당신도 무술가입니까?"
좀 전 길포드는 걸고 당기는 간단한 동작으로 자신을 제압했다.
간단한 동작이지만, 그 속에 무리(武理)가 담겨 있었다. 무작정 스킬부터 남발하고 보는 사람은 모르는 지식이다.
분명 상대는 현실에서 경험이 있어 보였다.
"알고 싶으면 더 덤벼 보던가."
길포드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카즈마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만만찮은 상대라는 건 인정하지만, 오만하게 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얕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오."
카즈마는 다시 길포드를 향해 달려갔다.
무술 좀 하나다고 뻐기는 모양인데, 이번에야말로 콧대는 납작하게 해 주겠다 다짐했다.
자신은 일본 고무술의 당대 전승자에게서 직접 배운 몸이다. 진심으로 상대하면 그저 동네 도장에서 수련했을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
카즈마는 재빠르게 몸을 날리며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
자신의 허초에 길포드가 반응하자, 그는 재빨리 길포드의 팔을 잡아 메쳤다.
'됐다!'
그러나 길포드가 넘어간단 싶던 그 순간, 번개같이 발을 빼 지탱한 길포드는 역으로 카즈마의 팔을 잡고 휘둘렀다.
단순한 완력이 아닌 몸의 탄력을 유효 적절히 이용한 반격이었다.
"크악!"
카즈마는 이번에도 땅바닥을 굴렀다. 완전히 중심을 잃고 내다 꽂혔기에, 조금 전보다 피해가 더 컸다. HP 포인트가 한 마디 정도로 뚝 떨어진 것이다.
'크으윽! 이런 수모가!'
무정할 정도로 리얼한 게임 덕분에 카즈마는 더욱 심한 굴욕을 느껴야 했다. 얼굴에 흙먼지를 뒤집어 썼고, 입 속에도 텁텁하고 바삭거리는 흙 맛이 느껴졌다.
길포드는 그런 카즈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입가에 띠운 미소를 아직 지우지 않았다.
"이번에도 날 얕본 거 아닌가?"
"크아아!"
발끈한 카즈마는 성난 황소처럼 길포드를 향해 연속으로 살수를 펼쳤다. 자랑스런 고무술의 유단자인 자신이 정체도 알 수 없는 한국 무술가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뭐야? 왜 스킬은 하나도 안 쓰는 거지?"
"그래도 굉장한 몸놀림인데?"
카므나의 독에 중독되었지만, 두 사람의 움직임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발걸음이나 동작 하나하나에 안배가 있었고, 유저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꺽기나 메치기 등의 기술이 펼쳐졌다.
'쳇! 도댗페 뭐야, 이 괴물은?'
카즈마는 자신이 아는 고무술의 공격디들은 모두 펼쳤다. 그러나 상대는 번번이 자신의 공격을 무위로 만들고 여유 있게 반격을 날리곤 했다.
"에잇! 벽라수(碧羅手)!"
밑천이 드러난 그는 익혀 놓은 게임 스킬까지 사용했지만, 결국 또 한 번 바닥에 뒹굴고 말았다.
'이럴 수가!'
카즈마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고무술은 후소 대륙에서도 막을 자가 없었고, 아르페디아의 랭커들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했다. 그런데 눈앞의 이자는 마치 자신을 가지고 놀 듯하지 않는가.
'고수다. 일반 무술가는 아니야.'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꿰어 보는 것 같은 능력.
카즈마는 멍청한 자신을 자책했다. 얕보지 않겠다 운운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상대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꼴이 된 건 어쩌면 당연했다. 항복을 해야 할지도.
"이제 공격은 원 없이 했겠지?"
카즈마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싶어 길포드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공격을 해야겠구먼. 난 자네와 달리 타격기 전문이니 조심해야 할 거야."
최근 유한과 채린의 문제로 속을 썩였던 길포드였다.
그래서 어느 놈이든 한 놈만 걸리라고 생각하던 차에 카즈마가 도전장을 보내왔다.
"단단히 각오하라고. 내가 요새 기분이 안 좋으니까."
"자, 잠깐. 당신은 대체?"
길포드의 정체가 궁금했던 카즈마였다.
대체 어디에서 수도를 하시는 은거기인인지?
그러나 그 물음에 답하지 않은 길포드는 자신의 별명처럼 폭풍같이 카즈마에게 주먹과 발차기를 퍼부었다. 카므나의 저주에 중독되었을 텐데 움직임이 장난이 아니었다.
"크억! 컥! 크아악!"
카즈마는 살벌하게 매섭게 날아와 꽂히는 공격에 전율했다.
게임이라 실제 같은 통증은 느껴지지 않지만, 급소에 사나운 공격이 날아들 때마다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몸이 아닌 눈과 두뇌가 통증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
"뭐해? 반격 안 하나? 고무술 배운 거 다 어디 팽개쳤어?"
한동안 아르페디아에서 승승장구하던 유술가 카즈마.
그는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