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헤븐즈 게이트 (91/143)

chapter 05 헤븐즈 게이트

헤븐즈 게이트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채린은 짜증이 확 치밀었다.

동굴에 있다는 귓속말을 받고 근방에 있는 동굴들을 죄다 뒤졌지만, 유한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그야, 어디 있는 거야? 대답 좀 해!

채린은 계속 귓속말을 보냈지만 일절 응답이 없었다.

유한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한창 데보라와 논쟁을 벌이느라 채린이 보내 온 귓속말을 보지 못했는데, 이 같은 사정을 채린과 다른 동료들이 알 길은 없었다.

"누나, 그냥 포기하는 게 어때?"

얀이 그만두자고 했다. 형 찾는다고 아까운 시간 다날기리보단 섬부터 둘러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그가 죽으면 어떡해?"

"그럼 부활 포인트에서 만나면 되지, 뭐."

오히려 그 편이 덜 번거롭고 좋을 것 같았다.

"혹시 캡슐 안에서 디비자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 밤이잖아."

옌스의 말에 얀은 고개를 저었다.

캡슐 안에서 수면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아무 이상 없는데 꼼짝도 안 하는 캐릭터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러나 얀은 형을 잟 안다. 유한은 게임을 하다 졸 인간이 절대 아니다. 할 거 다 하고 나중에 졸면 졸았지.

하지만 정말 졸고 있다면?

일단 확인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제가 다시 한 번 가 보고 올게요."

얀이 로그아웃을 하려 들 때였다.

앞쪽 수풀 속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자 모두 무기를 뽑아 들었다. 몬스터라고 생각했지만, 튀어나온 것은 갑옷을 입은 남자였다.

"도와주십쇼, 지금 저쪽에서 제 일행이 몬스터들에게 공격을 받고있습니다."

유저인가 했는데 NPC였다. 최가장 섬을 장악하니 NPC들이 하나 둘 유저를 따라 들어온 모양이다.

"일행이라고요?"

"급합니다. 얼른요."

NPC 남자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잠시 머뭇거리던 일행은 채린을 필두로 NPC의 뒤를 쫓아갔다.

"언니, 브라더는 포기한 거예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일단 위험한 사람부터 도와야 하지 않겠어?"

"하지만 브라더가 더 위험하면 어쩌죠?"

생각해 보면, 귓속말에 응답할 수 없을 정도로 다급한 상황일 수도 있었다. 뭔가에 쫓기는 중이라거나, 아님 전투 중이라거나.

"그땐 팔자려니 해야지, 뭐."

그래도 쉽게 죽거나 당하진 않을 것이다.

채린이 아는 유한, 아니 지그는 바퀴벌레와 같은 생명력을 자랑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플레이를 하는 녀석이니까.

"여깁니다. 이 넝쿨에 가려진 동굴 속이예요."

NPC 남자가 넝쿨을 헤집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뭐 하러 이런 동굴 속으로 들어간 걸까?

혹시 NPC 모험가? 아님 탐험대?

동굴 안쪽에서는 기괴한 소음과 함께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고 있었다. 뭔가 크게 부서지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도대체 뭐랑 싸우기에……."

채린은 말을 하려다 말았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안내해 온 NPC 남자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꺄악! 유, 유령?"

"설마요!"

"이미 죽었는데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거나……."

"참 감동적인 스토리네. 대단한 NPC고."

주위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옌스는 인상을 쓴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전에 사라진 NPC의 이름이 왠지 걸렸기 때문이다.

'카웬이라……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낯이 익었지만,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그보다 지금 시급한 것은 안쪽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다. 다들 무기를 고쳐 잡고 동굴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제 끝장이다. 카웬의 후인!"

날카롭게 회전하는 바람의 칼날.

어째 데보라는 리치가 되더니 마법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이크!'

장작 패기와 벌목으로 목인병들을 박살내고 있던 유한은 황급히 바닥을 굴렀다. 근처에 있던 수십 기의 목인병들이 거대한 윈드 커터에 맞아 두 동강이 났다.

"고맙군, 부하들을 없애 줘서."

"캬악! 건방을 떠는 것도 거기까지다!"

데보라가 발악을 하자 이공간이 열리며 다시 목인병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도대체 얼마나 만들어 놓았으면 끝도 없이 나오는 걸까?

그러나 절반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스톤 골렘의 잔해가 날아와 아공간의 입구를 틀어막았다.

스톤 골렘을 박살 내서 집어던진 이는 다름이 아닌 블랙이었다.

블랙이 소환을 방해하자 리치 데보라는 펄쩍 뛰었다.

"이런 괘씸한 것! 내 손에 설계된 주제에 감히 나를 거역해?"

"닥쳐라, 마녀. 뇌제 데라칸의 이름으로 너와 네 졸개들을 멸하여 주겠다!"

블랙은 남은 골렘의 잔해를 데보라에게 집어 던졌다.

미처 피하지 못했는지 잔해에 맞은 데보라의 해골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해골들은 이내 되돌아와 원래의 형상으로 뭉쳤다.

재생되는 데보라를 보며 블랙은 분통을 터트렸다.

"에잇! 이래서 리치란 것들은 성가시다니깐!"

블랙은 재차 공격을 하려 했지만, 자신과 똑같은 녀석들의 방해를 받았다. 바로 데보라의 블랙 아이언들이었다.

"이놈들! 저리 꺼지지 못하겠느냐?"

지능이나 힘, 스피드 모든 면에서 블랙이 우월했지만, 한 손이 여러 손을 당해 내지 못하는 법이다. 뿌리쳐도 엉겨 붙고 매달리는 통에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블랙이 동족(?)들에게 잡힌 사이, 그를 상대하던 스톤 골렘이 유한에게 달려들었다.

커다란 스톤 골렘들이 돌주먹을 내리치고, 발로 밟아 대는 통에 유한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레인 스킬로 보고 반격이라도 할라 치면 때 맞춰 데보라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매직 미사일!"

"아낙! 들겠네!"

매직 미사일은 간단한 공격 마법이었지만, 데보라 같은 거물이 사용하자 양상이 또 틀렸다.

일격에 바위를 박살내는 위력도 위력이지만, 수십 개씩 쏟아지는 매직 미사일은 그야말로 융단폭격 수준.

유한은 스톤 골렘들의 다리 시이로 열심히 피해 도망 다녔지만, 끈질기게 추적하는 매직 미사일들을 모두 뿌리 칠수는 없었다.

그가 잠시 스톤 골렘에 신경을 쓰는 사이 데보라가 날린 매직 미사일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젠장, 끝인가?'

절망이 엄습해 온 그 순간, 둥 뒤에서 돌과 화살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애로우 레인!"

"석(石)! 산(散)!"

꽈꽈꽈꽝!

무섭게 쏟아진 화살과 돌들이 매직 미사일들과 부딪쳐 깡그리 없애 버렸다.

방해자들의 출현에 데보라의 눈빛이 회번득거렸다.

"어떤 놈들이냐? 여길 어떻게 알고?"

그러나 방해자들의 시선은 데보라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간신히 살아난 유한을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나, 너였어? 안에서 씨운다는 일행이?"

"채린이 너 어떻게 알고 여길……."

그러나 제대로 대화를 나눌 틈은 없었다. 스톤 골렘들이 무섭게 유한과 채린 일행에게로 다가왔다.

"자세한 이야기는 깡그리 쓸어버린 뒤에 하자고!"

"동감."

옌스가 대쉬 스킬을 쓰며 튀어나갔다. 얀도 지지 않고 고속발검 스킬로 스톤 골렘과 목인병 무리들을 베어 버렸다.

"이이…… 나선 것을 후회하게 해 주마!"

이공간에서 수백 대의 목인병과 리빙아머, 스켈렉톤들이 쏟아져 나왔다. 레벨이 낮은 놈들이라도 쪽수로 밀어 붙여 덤벼드니 이만저만 성가신 게 아니었다.

거기다 데보라가 엄청난 위력의 공격 마법을 연방 떨어 트려 대기까지.

기세 좋게 나섰던 채린 일행도 상대의 엄청난 공세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만 물어볼게! 저 해골딱지는 뭐야?"

채린의 물음에 유한과 블랙이 동시에 대답했다.

"리치 데보라!"

"이 섬에 있는 악의 세력이다!"

얀과 베르디는 몰랐지만, 채린과 옌스는 곧장 반응을 보였다. 데보라와 관련된 던전을 탐험해 봤고, 그녀가 만든 몬스터들과 싸워봤으니까.

옛 기억을 떠올리던 채린은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서,설마 그게 나타나진 않겠지?'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 법.

소환된 인형 군단이 절반 정도 쓰러지자, 데보라가 다시 스태프를 휘두르며 몬스터를 소환하려 했다.

"나와라, 메두…… 컥!"

막 주문을 끝내려는 순간, 데보라의 턱뼈가 날아갔다. 유한이 다급하게 망치를 던진 덕분이었다.

"헉, 큰일 날 뻔했다."

유한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런 난전 상태에서 메두사가 등장하면 끝장이다. 메두사는 면상으로 유저를 제압하는 몬스터. 메두사의 악명을 전혀 모를 동생 커플이 맞닥뜨리게 되면 뒷 상황은 안 봐도 DVD 다.

"캬악! 이 지겨운 대장장이 놈! 지옥으로 떨어트려 주마!"

어느새 턱뼈가 돌아왔는지. 데보라가 유한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물론 그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다. 욕을 할틈에 마법 주문을 외우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지옥엔 너나 가라, 데보라!"

"크윽, 네놈은 또 뭐냐!"

옌스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데보라의 해골을 부셨다. 연이어 참마도를 휘둘러 스태프를 쥐고 있는 손뼈도 박살냈다.

옌스는 절대 데보라가 주문을 외울 틈을 주지 않았다.

틈을 주게 되면 분명 메두사를 불러낼 테니까.

리치가 되었지만 데보라는 여전히 근접 전투 능력이 약했다. 몬스터들이 데보라의 구원에 나섰지만, 유한과 얀에게 저지당했다. "훗, 이제 조금만 더 공격하면 죽겠군."

옌스는 데보라의 뼈를 부수다 못해 아예 가루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처치했다 싶은 순간, 땅에 떨어진 수정 스태프가 희미하게 번득였다. 그러자 부서진 뼛조각들이 무서운 속도로 복구되기 시작했다.

거의 다 닳은 HP도 100% 회복되었다.

"아악, 이런 게 어딨어! 이건 사기야!"

옌스가 머리를 싸매며 고함을 질렀다.

"이 녀석 아직 리치하곤 안 싸워 봤군.'

유한은 바츠 시절에 리치와 싸워 본 적이 있었다.

브로딘 왕국 서쪽의 던전에서 만난 리치는 레벨도 높고, 마법 공격력도 상당했다. 질리는 건 몇 번이고 되살아 난다는 점이다.

결국 약점을 알아내서 물리치긴 했지만.

'라이프 베슬(Life Vessel)을 찾아야 해.'

라이프 베슬은 리치의 생명력이 담겨진 아이템.

바츠 때도 리치와 전투를 회피하고 라이프 베슬을 찾아 파괴함으로써 놈을 쓰러트렸다.

데보라도 리치가 되었으니 라이프 베슬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보통 리치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신의 라이프 베슬을 숨기는 일이니까.

그러나 데보라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 리치가 되고 나서 곧장 덤벼들기만 했다.

'도대체 라이프 베슬을 어디다 숨겨 놨지?'

"나와라, 메두사!"

"헉, 제길!"

유한이 생각에 빠진 사이, 데보라가 재빨리 소환 마법을 외쳤다. 방해 받을 것이 두려웠던지 주문 외는 속도가 보통 때보다 3배 정도 더 빨랐다.

공간이 갈라지더니. 메두사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런!큰일났다!'

유한의 가슴이 철렁하는 그 순간, 블랙이 갈라진 공간 앞을 가로막아 섰다. 메두사들이 나가려고 악을 썼지만, 블랙은 비켜 주지 않았다.

"내가 사수하겠다! 너희는 어서 저 마녀를 쓰러트리라!"

"장하다. 블랙!"

블랙이 막아 주는 사이, 얀과 옌스가 다시 데보라에게 덤벼들었다. 채린과 베르디는 두 사람이 마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목인병과 골렘들을 견제했다.

그사이 유한은 데보라의 라이프 베슬을 찾았다.

'분명 리치니까 라이프 베슬이 있을 거야. 그것도 이 동굴 안 어딘가에…….’

유한은 데보라가 리치가 된 과정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가 생성된 직후에 이런 말을 했었다. 미케니아 마도사 들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서 리치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그 치명적인 약점이란 무엇일까?

데보라를 자세히 살피던 유한의 눈에 수정 스태프가 들어왔다.

수정 스태프는 연방 붉은 빛이 맴돌고 있었다.

데보라가 살아 있을 때와 상태가 달랐다. 그렇다면?

"그거다! 수정 스태프를 공격해!"

"뭐?"

동료들은 유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리치가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도 드문 몬스터이다 보니 리치와 싸워 본 경험이 전무했던 탓.

그러나 치를 떠는 데보라의 반응을 보고, 수정 스태프가 데보라의 약점이라는 것은 금세 알 수 있었다.

"이 망할 대장장이 녀석이!"

리치가 되면서 빠져나간 데보라의 생명력은 마력이 강한 수정 스태프에 모여들었다. 수정 스태프가 바로 라이프 베슬이 된 것.

치명적인 약점이란 바로 그것이었다.

라이프 베슬이 가까이에 생성되는 것.

"이잇, 물러서라! 플래시(Flash)!"

"크웃!"

모두의 공격이 수정 스태프에 집중되자, 당황한 데보라는 섬광 마법을 터트리며 도망쳤다.

분하지만 일단은 도망쳐서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라이프 베슬을 안전한 곳에 숨기기만 하면…….'

자신은 죽을 염려가 없다.

그러나 데보라의 앞길을 유한이 가로막았다. 섬광 마법 범위 밖에 있다가 달려든 것이다.

데보라는 황급히 마법을 쏘려 했지만, 유한이 건틀렛 와이어를 쏜 것이 더 빨랐다.

빠악!

와이어 끝에 달린 추가 수정 스태프를 때렸다.

거미줄 같은 금이 생긴 수정은 이내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그 안에 모여 있던 데보라의 생명력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안 돼ㅡㅡ에!"

처절한 비명과 함께 데보라의 몸이 모래처럼 부서졌다.

그리고 길고 힘들었던 씨움은 거기서 끝났다.

- 리치 데보라를 쓰러트렸습니다.

- 경험치 12,000을 얻었습니다. 

- 데보라의 지도를 얻었습니다.

데보라가 모래로 산화한 뒤, 어김없이 성과를 알리는 안내창이 떠올랐다.

리치 데보라의 경힘치는 마녀 데보라였을 때보다 더 많았다.

덕분에 레벨 업을 알리는 안내창도 연이어 떴다.

_ 레벨 163 이되었습니다. 

  힘이 1 올랐습니다.

  솜씨가 1 올랐습니다.

'그사이 레벨이 많이 올랐군.'

리치 데보라가 불러낸 인형 군단을 쓰러트리면서 경험치를 꽤 얻었던 모양이다. 싸우느라 정신없어서 이를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런데 아이템 드랍은 왜 이리 짠거야?'

유한은 데보라가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데보라 정도의 거물이면 유니크 아이템을 여럿 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준 것이리곤 딸랑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도 하나.

[데보라의지도]

설명 : 마녀 데보라가 제작한 섬의 지도. 지도에 표기된 곳에 가면 뭔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있을지도? 있다는 거냐, 아님 없다는 거냐?'

유한은 불성실한 지도의 설명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사실 데보라는 돈과 아이템을 넉넉히 주고 갔다. 동굴 바닥 곳곳에 떨어진 아이템과 돈들이 바로 그 증거다. 데보라의 부하 몬스터들이 떨어트린 것이긴 하지만, 어차피 피차일반.

유한은 아이템을 쓸어 담고 있는 동료을 바라보다 불쑥 말을 건넸다.

"너희들 내가 여기 있다는 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브라더의 일행이라는 NPC가 가르쳐 줬어요."

"근데 동굴에 들어오자마자 유령처럼 사라졌어. 혹시 전투 중에 NPC 동료가 죽기라도 했어?"

동생 커플의 대답에 유한은 고개를 저었다.

청해도에서의 파티라고는 옌스와 블랙뿐.

무의식의 방에서 깨어났을 때도 혼자였다. 뜬금없는 전사 NPC가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동료들 중에 그 NPC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

"아! NPC가 누군지 이제 생각났다!"

옌스가 손바닥을 탁 치니, 모두들 다가와 물었다.

"누군데?"

"이름이 카웬이었잖아. 이만하면 바츠 너도 알 테지?"

"카웬? 용사 카웬이라고?"

유한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300여 년 전 데보라의 인형 군단을 물리친 용사가 자신을 구해 줬다니!

"이름만 같은 NPC 아닐까?"

"아냐, 누님. 드림맥스가 이름을 중복으로 쓸 정도로 성의 없지는 않아. 분명 이벤트의 하나가 분명해. 카웬의 영혼이 마녀와 씨우는 자의 동료를 불러 주는."

"헤! 어떤지 숙연한 느낌이 드네."

다들 이벤트였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유한은 그렇지 않았다.

조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카웬이 어떻게 동료들을 알이봤을까? 자신이 채린 일행과 파티 설정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메신저에 등록된 이름이었기 때문일까? 아님 다른 시스템적인 설정과 장치가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뭔가 이상해. 그리고 찝찝해.'

결과가 좋게 끝났지만, 어찐지 자꾸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경욱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데보라가 리치가 되어 부활했을 때만 해도 나름 기대를 했었는데, 저 영악한 지그 놈은 리치 데보라마저 쓰러트리고 말았다.

'데보라의 재림' 시나리오가 영영 사라진 것이다.

이 시나리오를 만든다고 애썼던 개발진의 노고와 시간 자금이 허무하게 증발해 버렸다.

'크윽, 밉다! 지그 저 녀석이 너무 미워!'

사사건건 자신이 미는 스토리에 개입해 초를 치는 녀석이 정말 얄미웠다. 바츠가 해킹당했을 때 무시했다고, 이런 방식으로 복수를 한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끝났군요."

좌절하는 부사장과 달리 손석진은 싱글벙글했다.

정경욱은 손석진을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좀 전에 데보라가 리치로 부활하기 직전, 손석진은 화장실에 간다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 중간에 황당한 NPC가 나타나 지그의 동료들을 불러왔고, 그들 덕분에 지그는 리치 데보라를 쓰러트릴수 있었다.

"석진이 자네 짓인가?"

"뭘 말입니까?"

"NPC 카웬 말이야! 자네가 맞지? 자네가 지그 패거리를 불러온 거지?"

손석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침묵은 바로 긍정.

얼굴이 벌겋게 변한 정경욱은 손석진을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자네 날더러 게임에 개입하는 걸 자제하라더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정경욱은 아까 유한이 데보라와 말싸움을 할 때 게임에 개입하려 했었다. 데보라의 재림 시나리오를 살리기 위해서.

그래서 데보라를 살짝 컨트롤해서 지그 녀석을 죽여 버리려고 했었다. 그러나 게임사가 게임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손석진의 만류에 그만두었다.

그랬던 인사가 오히려 개입했으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진정하십시오. 아까운 시나리오가 날아가긴 했지만, 그 덕분에 새로운 시나리오가 나타나게 되었으니까요."

"뭐? 다른 시나리오가 있다고?"

"운명이란 하나만 결정된 게 아니니까요."

데보라가 죽음으로서 '데보라의 재림’ 시나리오는 사라졌지만, 또 다른 시나리오가 발동하게 되었다.

정경욱은 그 또 다른 시나리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게임에 준비된 수많은 시나리오와 컨텐츠들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손석진과 몇몇 개발팀 직원들뿐이다.

과연 또 다른 시나리오는 뭘까?

아니 그것보다, '또 다른’ 시나리오가 과연 사라진 시나리오만큼 유저들의 흥미를 불러올 수 있을까?

그러나 개발자인 손석진은 그에 대해서 장담했다.

"이제 새로운 문이 열릴 겁니다.그리고……"

"그리고?"

손석진은 기대 어린 미소를 머금고서 말을 이었다.

"무료한 초인들이 다시 일어날 겁니다."

정경욱은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손석진도 자세한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어차피 조만간에 벌어질 일일 테니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동굴에서 나온 유한 일행은 북쪽에 있는 산 정상으로 향했다.

데보라를 쓰러트리고 획득한 '데보라의 지도’ 에는 청해도가 상세히 그려져 있었다.

그 정도에 그쳤다면 대단하지 않은 물건이 되었을 테지만, 뭔가 심상찮은 기호가 찍혀 있다는 게 문제였다.

뭔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도의 설명이 애매하기에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

'허탕이기만 해 봐라, 드림맥스 가만두지 않겠어!'

유한은 굳게 다짐하며 정상으로 한 발짝, 한 발짝 올라 갔다.

"조심해, 조심. 발 헛디디면 큰일 나."

"이거 완전 난코스로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깍아지는는 암벽에 겨우 발 디딜 공간이 있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은 원숭이처럼 날렵하게 잘 따라왔다. 자신이 발 디딜 곳이 없으면 바위를 부숴서 길을 만들기도했다.

"됐다, 정상이다!" 산정상은 평평한분지였다. 일행은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분지를 돌아다니며 눈에 될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유적은 커녕 벽돌 조각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아무것도 없잖아."

"데보라, 아니 드림맥스가 우릴 낚은 거 아닐까?"

"설마 그럴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한도 내심 불안과 실망을 느끼 고 있었다. 그만 내려갈까 생각하던 그때, 베르디가 힌트를 찾아냈다.

"모두 이리 좀 와 봐요!"

베르디가 찾은 것은 어느 커다란 나무였다.

다들 던전이나 유적 같은 것만 신경을 쓰느라, 산에 어떤 나무가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았다.

처음엔 영문을 알지 못했던 유한도 나무와 그 근저에 자라난 똑같은 수목들을 보고 무릎을 탁쳤다.

"그렇군! 이 침엽수들이 힌트였나?"

열대지방에 어올리지 않은 커다란 침엽수들.

유한도 데보라에게 잡혀 가기 전에 청해도의 식생이 좀 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동물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식물군은 약간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긴 다른 데와 달리 묘한 기운이 느껴져요. 사실 여기보다 저 안쪽이 그런 기운이 더 짙은 것 같지만요."

베르디가 가리키는 곳에 침엽수가 더 많았다. 아니, 아주 숲을 이룬 상태였다.

데보라도 이곳에 와서 뭔가 이상한 기운, 아니 마나를 느꼈을지 모른다. 어쩌면 여기서 흘러나온 마나가 청해도 전체에 영향을 끼쳤는지도.

"저 안에 뭔가 있다!'

침엽수림을 뒤지던 유한의 발에 무언가가 밝혔다. 자연 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반질반질하게 손질된 돌이었다.

그 돌을 유심히 살펴보던 유한은 동료들을 근처로 불러 모았다.

"이 밑에 뭔가 있는 것 같아."

유한의 말에 모두들 풀을 뽑고, 이끼와 흙을 걷어 냈다.

그러자 대리석으로된 커다란 원형 석판이 나왔다.

밖에서 안으로 3개로 나뉜 석판에는 복잡한 도형들이 가득했고, 정중앙에는 굵직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빛을 부른 자여, 혼돈을 끝내라……. 이게 무슨 뜻이?"

"글쎄. 형, 일단 빛을 부른 자는 우리를 말히는 것 같은데."

얀이 자신한 데는 자신들이 풀을 뽑고 홁을 걷어 내 이 석판을 밖으로 드러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그 해석에 동의했다.

문제는 혼돈을 끝내라는 말인데, 이건 무슨 뜻인지?

그때 석판을 유심히 살펴보던 채린이 입을 열었다.

"이 석판 돌려야 하는 거 아닐까?"

"돌리다니?"

"석판이 셋으로 나뉘어 있잖아. 여기 도형도 제멋대로 야. 세 개의 석판을 돌리면서 도형의 모양을 맞춰 보면……."

"아하, 그렇군!"

석판의 도형은 제멋대로 그려진 것 같아도 실은 일정한 간격과 형태가 있었다. 3개로 나뉜 석판이 제각각 돌아가면서 복잡하고 무질서하게 보인 것이다.

혼들을 끝내라는 말은, 석판의 도형을 올바르게 맞추라는 뜻이었던 것.

답을 알게 된 유한은 바같쪽 석판부터 돌려 보았다. 석판의 홈을 잡고 한껏 용을 써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거 안 되는데. 아예 안 돌아가는 거 아냐?"

"혼자서 하니까 그렇지. 내가 도와줄게."

얀이 힘을 보탰고, 나중에는 옌스와 블랙도 가세했따.

그러자 석판은 무서운 소리를 울리며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얼마쯤 돌아가던 석판은 뭔가 모양을 맞췄다 싶은 순간, 덜컥 소리가 나며 멈춰 섰다.

바같쪽과 가운데 있는 석판이 한 덩어리가 도니 것처럼 딱 들어붙었다.

"됐어. 이제 안쪽의 석판을 맞춰 봐."

"아니, 그쪽 말고요. 석판을 맞춰봐."

넷은 채린과 베르디의 지시에 따라 다시 석판을 돌렸다.

얼마쯤 돌리자, 역시 맞춰지는 소리가 울리며 석판이 멈춰 섰다.

"됐다!"

모두 환호성을 터트린 순간, 석판이 아래로 덜컹 내려 앉았다.

그리고 지진이 난 것처럼 주변이 흔들리더니 땅이 갈라지고 나무들이 쓰러졌다.

"이, 이거 왜 이러지?"

"마왕이라도 봉인되어 있는 거 아닐까?"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갈라진 땅 속에서 고인돌 같은 바위들이 솟구치고, 석판을 중심으로 기단석들이 나타났다.

잠시 후, 숨겨져 있던 유적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이게 뭐야?"

"모양이 꼭 스톤헨지 같아."

모두들 탄성을 내뱉고 있을 때, 아름다운 효과음과 함께 안내창이 불쑥 떠올랐다.

[지그 탐험대 파티]가 헤븐즈 게이브(Heavens Gate)를 발견했습니다.

[지그 탐험대 파티] 전원에게 명성치 3,500과 '헤븐즈 게이트의 발견자' 라는 칭호가 주어집니다.

"헤븐즈 게이트?"

"그런데 이 유적은 최초 발견자 표시를 안 해 주나?"

유적이나 미개척지를 발견하면 표지판에 금박으로 이름을 새겨 주었다. 다들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유한은 천천히 유적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드러난 기단석에 적힌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별빛이 빛나면 하늘의 문이 열린다.

'별빛이 빛난다고? 스타레이를 말하는 건가?'

데보라가 찾아낸 유적 헤븐즈 게이트.

그 유적을 가동하기 위한 열쇠가 스타레이였던 모양이다.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낀 유한은 ㄷ게보라가 제련한 스타레이를 꺼내서 유적가운데 갖다 놓았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던 유한의 눈앞에서 스타레이가 환하게 빛났다.

네모난 형태로 제련된 스타레이는 빛 속에서 천천히 별의 모양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빛은 훨씬 더 밝아졌다.

"이, 이 빛은 뭐지?"

일행이 뭔가 낌새를 눈치 챘을 때, 이미 스타레이의 환한 별빛은 높고 푸른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하늘에 닿은 별빛은 푸른 하늘을 하얗게 열었다.

지상에서 천상에 닿은 장엄한 빛의 기둥.

눈앞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에 모두들 입을 쩍 벌렸다.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오래 했지만, 이런 괴사가 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들은 유한이 사라진 것조차 알지 못했다.

빛의 기둥을 본 것은 유한 일행만이 아니었다.

청해도에 있는 모든 유저들이 빛의 기둥과 하얗게 열린 하늘을 보았다.

목격자는 청해도 유저들뿐만 아니었다.

하늘에 닿은 빛의 기둥은 후소 대륙과 찬드라 대륙, 아르페디아 서쪽의 웨스턴 지방에서도 목격되었다.

전 세계의 모든 유저들이 빛의 기둥을 목격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빛의 기둥에 대한 최초의 정보는 아르페디아 북부 노스아크에서 흘러나왔다.

"헤븐즈 게이트? 대체 누가 찾아서 연 거지?"

전설에나 언급된 광경이 실제로 벌어지자, 몇몇 드워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저들은 그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헤븐즈 게이트라는 단어는 빠르게 퍼져 나갔고, 그것에 대한 정보를 찾는 사람들이 폭주했다.

-황[: 혹시 헤븐즈 게이트가 뭔지 아는 사람?

-초딩무적: 네이놈 지식인에 물어보삼.

-예쁜분홍이: 드림맥스에 물어봐도 안 가르쳐 주던데, 낚시 아닐까요?

-내일부터마왕: 낚시 100골드.

-벚꽃선녀: 그럼 난 낚시가 아니라는데 200골드ㅋㅋ.

게임 세상이 난리가 났다는 것도 모른 채, 유한은 멍하니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천상의 세계에 도착하셨습니다.

-명성이 2,000 올랐습니다.

'천상의 세계라고, 여기가?'

그름 위에 찬란하게 빛나는 신전들이 보였다.

유한은 그 신전에서 쭉 내려온 계단에 서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온 세상이 한눈에 보였다. 아르페디아대륙과 청해도, 그 아래의 후소 대륙, 그리고 그 밖에 다른 대륙들.

까마득하게 먼 지상을 한눈에 보자니, 유한은 자신이 하늘 위에 있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아찔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동안이었다.

미지의 땅에 다다랐다 생각하니 탐험 정신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헤븐즈 게이트…… 천상의 세계로 올 수 있는 문이었구나!"

천상의 세계.

아르페디아의 설정상 그곳은 신들의 영역이다.

유한이 알기로 지금까지 이곳에 다다른 사람은 없다. 아니, 그곳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 자체를 안 했다.

그런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영역에 자신이 올랐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이곳에선 과연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또 무엇을 배우고 해낼 수 있을까.

유한은 일단 스크린샷을 찍고 모험 일지를 기록했다.

흥분과 긴장을 다소 죽여 놓기 위함이었다. 너무 흥분하면 상황 대처를 하기 힘들어진다.

어느 정도 숨을 고른 다음에, 유한은 구름 위의 신전을 향해 걸어갔다. 오르면 오를수록 아름다운 음악과 노랫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그렇게 올라가 신전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이다.

"거기 오는 자여, 당장 걸음을 멈추시오."

유한의 눈앞에 빛을 휘감고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

번쩍이는 방패와 긴 창을 든 천사였다. 유한보다 머리가 2개는 더 큰 천사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빛으로 하늘의 문을 연 이였구려. 놀랍소. 오랜 세월 동안 헤븐즈 게이트는 굳게 닫혀 있었건만."

그렇게 말하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유한을 쓸어 보았다.

"이곳까지 온 그대의 노력은 대단하오. 하지만, 그대는 자격 미달이오. 지금 그대의 능력으로 그분과 자웅을 겨루기 어렵소."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웅을 겨루다니. 신의 세계에 와서 누군가와 다투어야할 거라곤 전혀 상상도 못했다.

'헤븐즈 게이트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가?'

구센도르프는 스타레이로 뒤집을 힘을 얻을 거라 말했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한 가지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

"돌아가시오. 그대의 능력이 극한에 이루었을 때,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 때 다시 이곳을 찾아오시오."

"뭐라고요? 그냥 가라고요?"

아직 구경을 시작도 못했는데 쫓아내려 한다.

태도는 정중했지만, 펄쩍 뛸 일이었다. 여기까지 온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냥 가라니!

"가시오. 다시 와서 그분에게 도전하여 인정받으면 그대는 '아이언 마스터' 가 될 수 있을 것이오."

'아이언 마스터!'

유한의 두 눈이 놀람으로 부릅떠졌다.

대장장이들에게 전설로 여겨지는 존재.

천상의 세계에 와서 시험을 치르고, 인정을 받아야 전설의 아이언 마스터가 될 수 있는 모이양이다. 스킬 랭크를 올리고 철공소와 제철소를 건설하는 건 그저 과정에 불과 했던 것.

"돌아가시오. 다음번엔 자격을 갖추고 헤븐즈 게이트를 찾아 여시오."

천사의 몸에서 환한 빛이 뿜어 나왔다.

그 환한 빛은 유한을 천상의 세계에서 밀어냈다.

"아, 안돼!"

유한은 몸부림을 쳤지만 도저히 그 빛을 이겨 낼 수 없었다. 까마득하게 멀어지는 천상의 세계를 보며 유한은 아쉬움을 달래지 못했다.

'그래도 소중한 정보는 얻었어.'

소득이 없진 않았다.

아이언 마스터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거기에 도전하기 위해선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아 있지만.

"지그야!"

채린의 외침에 유한은 번쩍 눈을 떴다.

천상의 세계에서 쫓겨났다 싶었는데, 눈을 떠 보니 지상이었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너 어딜 갔었던 거야?"

"가면 간다고 말을 해야지."

"그게 말이야……."

"유, 유적은? 헤븐즈 게이트는?"

장소는 방금 전의 침엽수림이 맞았다.

그러나 주변엔 둥그런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돌조각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뭐가 어찌 된 것인지?

"좀 전에 빛의 기둥이 없어지면서 함께 사라졌어."

"사라졌다고?"

잠시 당황했던 유한은 천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쫓아내기 전에 천사는 말했따. 자격을 갖추고 헤븐즈 게이트를 '찾아' 열라고.

'이런! 한 번 쓰면 다른 필드로 이동되는 유적인가?'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고대 신전이나 유적들 중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이동하는 유적이 있다고.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르페디아 대륙으로 갔을까 아님 찬드라나 후소 대륙으로 갔을까?

아무튼 새로 헤븐즈 게이트를 찾아야 한다.

조만간엔 닷 ㅣ찾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유저들이 쉽게 천상에 오르기를 원치 않는 드림맥스의 수작일 터.

"너, 내 말을 듣고 있긴 한 거야?"

"응? 뭐가?"

"어디에 갔었냐고. 벌써 세 번쨰 묻고 있잖아."

채린은 물론이고, 동료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헤븐즈 게이트가 사라진 원인이 유한 때문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그가 서 있던 곳에서 빛이 솟구쳤고, 갑자기 사라졌다가 또 이렇게 나타났다.

'이거 말해 줘야 하나?'

이야기해 주는 게 옳다. 혼자서 헤븐즈 게이트를 찾은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헤븐즈 게이트가 사라진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모두의 반응이 어떨지는 안 봐도 뻔한 일.

그래서 유한은 슬그머니 발을 뺏다가, 번개같이 몸을 돌려 달아났다.

"앗, 강유한! 너 어딜 도망가!"

"바츠 이 자식, 안 서면 죽는다!"

"로그아웃하기만 해 봐. 곧장 방으로 쳐들어갈 거야!"

그 어떤 협박에도 불구하고 유한은 멈추지 않았다.

하늘의 문을 염으로써 자신이 게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그는 뛰고 또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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