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블랙 아이언 (84/143)

8. 블랙 아이언

전쟁이 끝난 지 며칠이 지났다.

오랜만에 도장에 가서 땀을 뺀 유한은 집에 돌아오자 마자 캡슐에 들어가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접속했다.

화면이 밝아지자 눈에 들어오는 지그 철공소.

어제 잠들기 전 가스톤과 의논할 것이 있어 광산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로그아웃 한 것이 생각났다.

"지그야! 왜 이제 온 거야?"

"왜요, 무슨 일 생겼어요?"

송코가 다가와 호들갑을 떨자 유한은 눈이 동그라져 물었다.

"네가 데려온 갈리라는 드워프NPC말이야, 터무니 없는 걸 만들고 있어!"

"엥? 터무니없는 거라뇨?"

"아무튼 저기 산에 있는 동굴에 가 봐."

유한은 송코가 가리킨 뒷산으로 달려갔다.

뒷산에는 예전에 없던 동굴이 생겼고, 동굴 주변에는 안에서 파낸 듯한 바위와 암석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동굴에 들어간 유한은 예사롭지 않은 규모에 적잖게 놀랐다.

"나참, 이 난쟁이 양반 어느 틈에 이런 대공사를 한 거지?"

그러나 유한은 좀 전의 놀람은 아주 사소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동굴 안쪼겡 널따란 광장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고로를 비슷한 각종 대장간 설비들이 들어서 잇었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광장 한편에 자리 잡은 눈에 익숙한 구조물에 비하면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삐이! 삐이!"

"아니, 이 뚱땡이 도마뱀은 왜 또 와서 시비야? 저리 안가? 앗! 이놈! 그건 먹으면 안돼!"

동굴을 파서 자신만의 비밀 작업장을 만든 드워프 갈리.

그는 이곳에서 제2의 메카 드래곤을 제작하고 있었다.

광장 한편에 자리 잡은 강철의 구조물은 바로 새로 제작되는 메카 드래곤의 뼈대 였던 것이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겁니까?"

유한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지그 왔냐?"

"예! 왔지요. 근데 뭐 하고 있냐고요!"

"뭘 하긴. 다시 성스러운 대업을 시작하려는 거지."

갈리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대래곤을 쓰러트리겠다는 야망을 버리지 않았다.

베르겐에서의 실패를 발판으로 보다 완벽한 메카 드래곤을 만들고자 했다.

"이봐요, 드워프 아저씨. 노스아크의 족장들이 눈 시뻘겋게 뜨고 댁을 찾고 있다고요. 그런데 이런걸 또 만들고 있어요?"

"뭐 어때, 그래서 숨어서 만들고 있는 거 아니야."

숨어서 만든다고 해결될 일인가.

유한은 머리가 아파 옴을 느꼈다. 이러다가 또 갈리가 드래곤 하트를 찾으라는 퀘스트를 줄지도 모르는 일. 잘 못하다가는 제2의 베르겐 참사가 터질지도 모른다.

당장 쫓아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참았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에 갈리의 능력이 필요했기에 어떻게는 잘 구슬려야 한다.

"스승님, 자신의 기술로 드래곤을 꺾기를 바라시죠?'

"그렇다! 그래야 우리 드워프들이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맞이할 거 아니냐.'

"근데 대 드래곤 병기가 꼭 드래곤의 형사이어야 합니까? 사람처럼 생겨도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 어째서?"

갈리는 터무니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유한은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은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존재니까요. 드래곤이 세 봤자 신보다 세겠습니까?"

"흠, 그야 그렇지만 사람이 신을 닮은 건 껍데기 뿐이잖아."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신과 인간을 어찌 비교하겠는가.

물론 그렇지만, 유한은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드워프의 위대한 기술로 신의 능력을 심어 주면 되잖아요."

유한의 말이 갈리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드워프의 기술로 신의 능력을 심는다?"

"뭐 하늘을 날아다니고, 철권을 쏘며, 가슴에서 성스러운 빛을 뿜는다던가요."

유한은 어릴 때 봤던 로봇 만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설득한다고 그냥 해 본 말인데 갈리는 흥미가 생긴 모양이다.

"하늘을 날고, 철권을 쏘며, 가슴에서 성스런 빛을 뿜는다? 그래, 그것 괜찮겠군."

"인형 병기를 ㅂ발전시키는 건 별로 힘들지 않을 겁니다. 옛날부처 그런 것들에 대한 자료는 많으니까요."

자료뿐만이 아니다. 최근에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거대 목인병과 거대 골렘이 바로 그들이다.

"그래, 그 점에서도 유리하군. 그쪽으로 나가는게 더 일이 빠르겠어.

갈리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유한은 그에게 블랙 아이언의 설계도를 보여 주었다.

"안 그래도 제가 옛날 자료를 하나 갖고 있습니다."

"호오! 이거 대단한걸?"

거대 골렘의 설계도를 보고 콧방귀를 뀌었던 갈리가 블랙 아이언의 설계도를 보고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확실히 그 마녀 데보라의 능력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건 거대 목인병과 비슷한 것 같군. 상당히 특이해 보이지만, 기본적인 체계나 구조는 흡사해."

"이걸 만들고 개량해 간다면 스승님이 원하는 대드래곤 병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나 어디 만들고 개량만 하겟는가.

생산된 제품을 팔면 쏠쏠한 수입이 들어올 것이다. 하나만 팔아도 무구를 몇백 개 팔아야 얻을 수 잇는 이드깅 나올 것이다.

유한의 새로운 사업은 바로 블랙 아인언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제작에 갈리를 꼬드겨 가담 시킬 계쇡이어까.

이미 자신은 블랙 아이언을 생산할 랭크는 되었다. 그러나 대량 제작하고 제품을 개량하는 데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유리할 게 틀림없다.

"좋다. 어대 해 보자!"

"지금 당장 제조해 보도록 하지요."

갈리가 흥미를 보이자 유한은 블랙 아이언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동력부 등의 핵심 장치의 제조를 그에게 맡겼다.

나머지 구동장치나 관절 부분은 유한이 만들기로 했다.

"이것들은 선반으로 깎아 만들면 되겠군."

철공소로 돌아온 유한은 공작 기계를 이용해서 즐랙 아이언의 부품을 하나씩 제조해 냈다.

마녀 데보라가 남긴 가디언인 블랙 아이언.

블랙 아이언은 키가 약 4m에 총 중량이 12톤인 인형 병기였다.

-블랙 아이언의 나선축을 만들었습니다.

 스킬 경험치 150을 얻었습니다.

-블랙 아이언의 베어리응ㄹ 만들었습니다.

 스킬 경험치 130을 얻었습니다.

착착 완성되는 부품에 스킬 경험치도 늘어났다.

부품들이 모아지자 유한은 곧장 조립 단계로 넘어갔다.

쉽지는 않았지만, 이미 거대 골렘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기에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블랙 아이언의 각 파트를 만들엇다.

이렇게 완성된 파트 부위를 갈리가 만든 부분과 합쳐 1호기를 제작했다.

"드디어 만들었다!'

검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육중한 블랙 아이언을 보자니, 유한은 감도으이 눈물을 질금 흘렀다.

-블랙아이언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이라서 그런지 미비한 부분이 있스빈다. 이를 개량하면 좀 더 나은 성능을 이끌어 낼 것입니다.

-7랭크의 소환마법으로 영혼을 빙의시키면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대장장이 초보 시절에 데보라 던전에 가서 설계도 일부를 입수한 뒤로 온갖 역경 끝에 지금에야 간신히 완성품을 보았다.

"아니지, 아직 완성이라고 할수 없지."

완성을 알리는 안내창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조건을 하나 맞추지 못했기 땜누.

바로 소환마법 7랭크 이상 마법사의 협조가 필요한데 블랙 아이언을 만들기에 급급해 깜박 잊은 것이다.

"으음, 이거 곤란한데."

다 만들고도 걱정거리가 생겼다.

설계도에는 블랙 아이언이 자율 전투 병기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조종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 골렘류와 달리, 스스로 인지하고 판단하여 전투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법사의 소환마법을 통해 고등 생물의 혼을 빙의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라 적혀잇었다.

유한이 아는 이들 중 소한 마법을 익힌 유저는 없었다.

마법사 유저중 나름 친하게 지내는 것은 오펜뿐인데,

오펜은 비행 마법과 공격 마법 스킬을 주로 올린 지극히 평범한 마법사엿다.

"미리 오펜에게 소환마법을 좀 올리라 당부할 걸 그랬군."

지금이라도 연락해서 소환마법을 올리게 하면 되겠지만, 그러자니 너무 시간이 걸릴 듯했다.

더구나  자신의 목적 때문에 오펜의 플레이에 간섭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어디서 소환마법사를 구하지?"

게임에서 마법사란 직업은 흔하다.

찾아보면 소환마법을 익힌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게시판에 고액의 급료로 소환마법을 익힌 마법사 유저를 영입한 다고 적어 놓으면 달려올 사람이 적지 않을 터.

그러나 낯선 사람을 영입하는 것은 좀 망설여졌다.

자칫 블랙 아이언에 대한 기술과 정보가 새어 나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형, 여기 있어?"

유한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작업실 문이 열리며 얀이 들어왔다.

"나 바쁘다. 다른데 가서 놀아."

"베르디가 뭐 좀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아, 바쁘다니까!"

유한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소환마법을 익힌 마법사를 어디서 구하느냐로 고민 중인데 귀찮게 하다니.

"거참 되게 비싸게 구네."

"나 충분히 몸값 비싼 대장장이거든!"

"그러지 말고 좀 만들어 줘. 형제 좋다는게 뭐야?"

그러나 얀은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동생이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 판단한 유한은 일단 용건을 들어 보기로 했다.

"뭘 만들어야 하는데?"

"청동 향로를 만들어 달래. 베르디 말로는 '강신술(降神術)' 스킬 랭크를 올리는 데 필요하다던데."

얀은 유한에게 향로의 모양을 그린 종이 1장을 내밀었다. 제사를 지낼 때 쓰는 향로와 비슷하게 생겼다.

"강신술이 뭐냐?"

"뭐긴, 밀그대로 영혼을 불러내서 부려 먹는 거지."

'영혼을 불러낸다고?'

곰곰이 생각하던 유한은 좀더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몇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야, 베르디의 정확한 직업이 뭐냐?"

"술법사야. 주로 문장을 이용해 다양한 술법을 펼치는 거지."

"그러니까, 아르페디아 대륙의 마법사 비슷한 거란 말이네?"

"뭐 그런 셈이지."

얀도 아르페디아에 와서 마법사 유저를 봤지만 방식만 약간 다를 뿐 찬드라 대륙의 술법사와 딱히 달라 보이지 않았다.

"베르디 강신술 스킬 랭크가  얼만지 알아?"

"다른 스킬보다 뒤쳐졌다고 하던데 한 5랭크쯤 되려나?"

"5랭크면 물건에 영혼을 빙의시키는 것도 가능해?"

"검이나 갑옷에 빙의시키는 건 7랭크 부터 가능하니까, 아마 가능할거야."

'옮거니!'

강신술로도 되지 않을까.

그저 블랙 아이언에 영혼을 빙의 하면 되는 것이니, 그것이 소환마법이든, 강신술이든 상관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시험을 해보고 싶었다. 해서 않되면 어쩔 수 없고.

"베르디 지금 어디 있냐?"

"아직 접속 안 했어. 지금 한국어 어학당 가서 공부하고 있을 테니까. 게임에 접속하려면 한시간 정도 있어야해."

"알았어. 접속하면 곧장 나한테 오라고 해. 청동향로는 내가 만들어 놓을 테니까."

귀찮은 군식구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물론 잘 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지그 있냐?"

"어서 오세요."

유한이 청동 향로를 만들고 있을 때, 갈리가 찾아왔다.

그는 유한의 부탁대로 핵심 장치들을 만들어 준뒤 잠시 무언가를 가지러 어딜 갔다왔는 데 이미 블랙 아이언이 조립돼 있었던 것이다.

"벌써 이걸 다 조립했구나. 꽤나 그럴싸한걸?"

"그렇죠? 하지만 아직 완성된 건 아니에요."

갈리는 블랙 아이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처음에 녀석을 보고 감탄했던 그는 이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블랙 아이언은 정말 인간이 만든 것인가 싶을 정도로 기술 수준이 높고 성능도 좋았다. 영혼을 깃들게 해 가디언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한다는 발상도 좋았다.

그러나 조립이 완료된 블랙 아이언을 살펴보니 몇가지 개선할 여지가 있어 보였다.

"이대로도 나쁘진 않아. 하지만 내가 살짝 손대면 좀저 성능이 향상 될 것 같은데 말이야."

"그래요? 그럼 부탁하지요."

유한은 별 생각 없이 갈리에게 블랙 아이언 을 맡겼다.

개량하면 좀 더 나은 성능이 나온다고 했었던 안내창의 문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솜씨 좋은 드워프가 마무리를 하면 보다 완벽에 가까워지지 않겠는가?

"흠, 이건 이렇게 하면...... 아니! 이런 식으로 바꾸는 게 좋겠근! 그래, 이왕이면 이것도 넣으면 훨씬 나아질테지."

살짝만 손댄다던 갈리는 몇 가지를 대폭 수정하고, 부품 몇개를 더 추가해 넣었다.

유한은 한창 청동 향로를 만드는 중이라 이를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1시간 후, 얀이 유한의 개인 작업실에 베르디를 데리고 왔다.

"안녕하세요, 브라더."

"으응, 잘 왔어."

유한은 환한 얼굴로 그녀를 반겼다.

"얀에게 듣자니 네가 물체에 영혼을 집어넣을 수 있다 던데?"

"강신술 말인가요? 당연히 할 수 있어요.'

그녀는 문장(文狀)으로 술법을 발동시키는 문장 술법사.

하지만 틈틈이 다른 스킬들도 올려놓았다. 그중 하나는 진법 스킬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강신술 스킬이었따.

"강신술은 말그대로 영혼이나 신을 불러내는 술법이에요. 그렇게 불러낸 영혼으로 적을 공격하거나 사물에 깃들게 할수 있죠."

처음에는 미약한 짐승이나 작은 요물의 영혼을 불러내 지만 어느 정도 스킬이 높아지면 인간과 같은 고등생물의 영혼을 불러내는 것도 가능하단다.

"스킬을 최대로 올리면 신을 강림시키는 것도 가능하대요. 뭐, 아직 신의 영혼을 불러낼 정도로 수련을 쌓은 유저는 없지만요."

"저거에 영혼을 빙의시켜야하는 데 가능하겠냐?"

유한은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블랙 아이언을 가리켰다.

블랙 아이언을 본 베르디는 눈을 반짝였다. 아르페디아에 와서 가장 신기하게 여긴것이 저런 인형 병기였는데, 직접 그 제조에 동참할 수 있다니.

"맡겨만 주세요! 제가 이래 뵈도 찬드라 대륙의 술법사 부분 8위 거든요."

"헉! 너 랭커였나?"

"당연하죠. 그렇지 않으면 강자들이 득시글한 아르페디아 대륙을 돌아다닐 수 있었을 리 없잖아요."

"하긴, 그렇군."

아직 타 대륙에서 온 많은 외국인 유저들이 아르페디아의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동생에게 들은 말로는 갈리 떄문에 철십자 길드와도 몇 번 싸웠다고 한다. 실력이 않되면 어찌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겠는가.

유한은 새삼 동생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해졌다.

"얀도 랭커야? 그러니까 미국 서버에서 말이야."

"어머 모르셨어요? 무사들 중 열다섯 번째로 강해요."

찬드라 대륙에서 무사는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전사 혹은 기사와 비슷한 존재였다.

'허거걱! 징한 놈, 게임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더니 언제 이렇게 올려놓은 거람?"

요령을 알면 고렙이 되기 수월하겠지만, 대체 어떻게 랭커까지 된 것읹지?

'이 녀석들 아르페디아 대륙 기준으로도 랭커일까?'

물론 그것은 확인 해 봐야 아는 일이다. 이번에 외국 유저들이 건너오면서 랭커 순위에 변동이 있었다니까.

아무튼 묻고 싶은 것을 다 물은 유한은 곧장 마지막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베르디가 고개를 저었다.

"여긴 좁아서 강신술을 할 수 없어요. 근처에 기가 충만한 넓은 공터가 있으니 거기서 해요,"

그래서 유한은 블랙 아이언을 베르디가 정한 숲속의 공터로 옮기기로 했다.

그는 옮기기 전에 블랙 아이언을 최종 점검했다.

슬쩍 볼 땐 몰랐는데, 뭔가 좀 달라져 있었다. 아까 갈리가 개량해 준다고 손을 댔기 때문일 것이다.

"동력원인 심장과 마력 컨트롤러를 개량했지. 아무래도 나중에 생각한 방식이 더 성능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심장과 마력 컨트롤러는 블랙 아이언의 부품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부분이다.

유한은 자신이 만들 경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성능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아 갈리에게 제작을 부탁했었다.

그런 섬세한 부품을 다시 주물럭거렸다?

아무리 그걸 만든 게 갈리라 하지만 어쩐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폭주 하는 건 아니 겠죠?"

"그런 일 생기면 날 더 이상 드워프로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종족의 이름까지 걸고 다짐하자, 유한도 그를 믿기로 했다. 신장 4m에 무게 12톤에 달아는 블랙 아이언은 옮기기가 무척 힘들었다. 유한은 철공소에서 작업중인 NPC일꾼들을 불러와 공터로 옮기게끔 했다.

"사장님, 정말 멋진데요?"

"언제 이런 걸 만드셨습니까?"

NPC대장장이들은 블랙 아이언을 보고 한마디씩 했다.

블랙 아이언을 보고 반응을 보인 것은 NPC들뿐만이 아니었다. 블랙 아이언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본 포포는 날개를 퍼덕이며 달려왔다.

"삐이! 삐이!"

"이놈의 곰탱이 저리 안 가!"

유한은 행여나 포포가 블랙 아이언에 기스라도 낼까 싶어 그녀석을 쫓아 버렸다.

"우와! 지그야, 이거 팔 거야?'

돈냄새를 맡고 온 리지스가 블랙 아이언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물론이지, 지그 철공소의 새로운 제품으로 내놓을 거야."

"이거 만드는 데 돈 꽤나 들었겠네."

"훗, 비싼 재료들이 많이 들었지."

드워프의 철을 몇번이나 제련하고 단련한 특제 강철과 크롬 합금, 거기다 수정이라든가, 금, 은 등 마법과 관련된 값비싼 재료들도 투입되었다.

그러나 재료보다 배싸게 든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블랙 아이언을 만들기 위해 들인 노력과 시간, 그걸 생각하면 고철로 만들어졌다 해도 천금이나 마찬 가지 였다.

"이거 잘하면 돈 꽤나 벌어 주겠는걸?"

현재 아르페디아 온라인에는 골렘 열풍이 불었다.

마노스-베레타 전쟁 후 몇몇 길드와 대장장이들이 강철이나 석재로 된 거대 골렘들을 하나씩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골렘의 위력은 이미 전쟁터에서 입즈잉 되었다.

그래서 많은 유저들은 자신들의 성장과 야망을 위해 골렘을 소유하고 싶어 했지만 거대 골렘 중 아직 시중에 나온 물건은 없었다.

길드들에서 꼭꼭 감춰 두고 있거나 아직 팔 수 있을 만큼 양산화가 이루어지지않은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블랙 아잉언을 만들어 팔 수만 있다면 떼돈을 벌어들일 것이 틀림없다.

'호호호, 이번에도 우리 회사가 판매 대행을 할 수 있겠지?'

리지스는 시커먼 동체를 황홀한 듯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블랙 아이언의 매끈한 동체가 누런 황금 같이 보였다.

블랙 아이언이 숲속의 공터로 옮겨지자 베르디는 강신술을 펼칠 준비를 했다.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주섬주섬 늘어 놓았다. 유한이 만들어준 청동향로와 각종 법기, 부적, 그리고.......

"헉, 이 오크 대가리는 뭐야?"

"강신술을 하기 위해선 제물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유한과 NPC들이 블랙 아이언을 옮기는 동안, 베르디는 숲에서 제물로 쓸 짐승을 잡고 열매를 채취했다.

'그렇다고 돼지 머리 대신에 오크 머리라니!'

아무튼 준비를 마치자 베르디는 영혼을 불러오기 위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오오, 이제 시작한다!"

"저게 신대륙의 스킬인가?"

"시끄러요! 부정 탈지 모르니 조용하라고요!"

유한이 뭔가 대단한 병기를 만들거라는 소문에 가스톤을 비롯해 송코와 오펜, 옌스 등 친분이 있는 동료들이 죄다 몰려와 구경했다.

그들은 난생 처음 보는 신가한 모습에 웅성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휘이이잉---!

숲속에 음산한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제물근처에 꽂아 놓은 법기들이 마치 폭풍이라도 만난듯 펄럭이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베르디의 주문이 끝났다.

환한 기운이 블랙 아이언에 모인다 싶더니, 한수간 눈부신 섬광이 번득였다.

"됐어요! 영혼이 빙의했어요!"

베르디의 말에 유저들은 기대가 깃든 눈으로 블랙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하얀 빛이 사라지면서 블랙 아이언이 조금씩 움직였다.

천천히 몸을 굽히던 블랙 아이언은 자신을 바라보는 유저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멍!"

유한은 블랙 아이언이 처음 내뱉는 소리에 쓰러져 기절해 버릴 뻔했다.

블랙 아이언은 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쪼그려 앉아 헥헥거리다가 돌처럼 굳어 버린 베르디의 손에 자신의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영혼이 빙의 된다 했는데 하필이면 강아지의 영혼이 깃들 줄이야.

"푸하하핫! 최곤데!"

"낄낄낄낄! 유저를 웃겨서 죽이는 병기인가?"

유한의 동료들은 배꼽이 빠져라 웃어 댔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하긴 덩치가 산 만한 놈이 강아지 흉내를 내고 있으니 웃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다, 다시 할게요."

얼굴이 벌게진 베르디는 블랙 아이언에서 강아지 영혼을 날려 보냈다. 영혼이 사라지자 블랙 아이언은 곧장 움직임을 멈추더니 그대로 굳었다.

베르디는 다시 집중해서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얼마 후, 새로운 영혼이 블랙 아이언에 강림했다.

웅크리고 있던 블랙 아이언의 몸이 꼿꼿하게 펴졌다. 그리고 천천히 글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취익! 배고프다, 인간. 밥 다오."

이번엔 오크의 영혼이 들어간 모양이다. 잘된다 싶었는데 이리 되자 모두들 또 한 번 박장대소했다.

유한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강신술은 안 되나? 소환마법으로 해야 되는 건가?'

정석이 아니라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유한은 베르디를 말릴까 했지만, 그녀는 이미 오크의 영혼을 날려 보내고 세번째로 주문을 왜고 있었따.

자존심을 왕창 구긴 덕분인지 주문을 외는 베르디의 표정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어, 이거 왜 이래?"

"아까하곤 차원이 다른데요?"

다들 웃음을 뚝그쳤다.

이번에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음산한 주문이 이어질수록 사방이 컴컴해졌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따. 머리가 곤두서고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오, 이번에는 뭔가 제대로 되는 모양이군!'

유한은 제발 성공하기를 빌었다.

펄럭!펄럭!

바람에 법기가 찢어진다 싶은 순간, 블랙 아이언에 뿌연 금빛의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뿌연 금빛은 환하게 사방으로 퍼져 갔다.

"끄, 끝났나?"

섬광에 눈을 감았다 뜬 유한은 자신의 앞에 떠오른 안내창을 보았다.

-최강의 블랙 아이언을 완성했습니다. 신도 악마도 될수 있을 듯합니다.

 스킬 경험치 300을 얻었습니다.

'엥?최강의 블랙 아이언이라고?'

유한은 블랙 아이언을 바라보았다.

금빛기운이 거의 다 사라졌다. 그러나 시커먼 블랙 아이언의 몸에는 아직 남아있는 금빛의 기운이 햇볕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리고 시커멓게 닫혀 있던 블랙 아이언의 눈이 번쩍 떠졌다.

"헉!"

"허거덕!"

귀신이 피를 흘리는 듯한 시뻘건 눈동자.

좀 전과 비교 할 수 없는 섬뜩하고 육중한 분위기에 유저들은 신음을 흘렸다.

"휴우, 성공했어요. 브라더."

베르디는 술력의 고갈이 심했는지 비틀거리며 말했다. 얀이 급히 다가가 그녀의 입아 인삼 뿌리를 넣어 주었다.

처음 베르디는 적당히 인간의 영혼을 넣어 주려고 했다. 그러나 두번에 걸쳐 실패하자 자존심에 금이 가고 말았다.

명색이 찬드라 대륙엣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술법사 중 한 사람이 강신술 하나 제대로 못 펼친 다면 그게 말이 되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세번째에는 전력을 다해 정신을 집중해서 영혼을 빙의 시켰다.

"누가 나의 잠을 깨웠느냐?"

마침내 블랙 아이언의 입이 열리더니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한은 즉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가 바로 너의 주인이다."

"뭐라고?"

블랙 아이언의 입술이 살짝 말려 올라간다고 느낀것은 유한의 착각 이었을까?

아니, 착가이 아니 었던 모양이다.

블랙 아이언은 벌떡 일어나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었다.

"다시 한 번 말해 봐라. 방금 뭐라 했느냐?"

"그러니까, 내가 너..... 님의 주인이라고요."

유한의 말이 끝나자 블랙 아이언이 핏빛 눈동자를 부라리며 버럭 소리를 질럿ㅆ다.

"발칙한 놈! 감히 짐을 능멸하려는 게냐!"

'크악! 도대체 이번에는 어떤 영혼이 들어간 거야?'

유한은 즉시 베르디를 돌아보았다. 우물쭈물 하더 그녀는 힘들게 말문을 열었다.

"좀 전에 제가 강신술을 펼치고 나서 안내창이 떴는데, '영웅의 혼을 부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라면서 스킬 경험치를 많이 줬어요. 아무래도 강신 시키기 힘든 영혼이 불려 온거 같아요."

'그렇담, 저 영혼이 범상치 않다는 소리?'

이걸 좋아해야 한느 건지, 좋아하지 말아야 하는 건지.

유한이 계속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블랙 아잉언이 다가와 유한의 머리를 움켜쥐고 번쩍 들었다.

"켁! 왜 이래... 요!"

"네놈은 감히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짐의 영원한 숙면을 방해했다. 그 대죄는 죽음으로 갚아야 할 터!"

블랙 아이언은 당장 유한의 머리를 터트려 죽일 기세 였다. 놀란 유한의 동료들이 무기를 빼어 들고 블랙 아이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블랙 아이언이 그들을 향해 크게 발을 내딛었다.

쿵!

"크윽!"

"컥!"

숲속이 들썩인다 싶을 정도의 큰 진동이 울리며 모두들 그자리 에서 멈칫했다. 그들의 눈앞에는 스턴 효과를 알리는 안내창이 떠올랐다.

"이놈들! 물러나지 못할까!"

'자, 장난이 아니잖아!'

이거 엄청난 실수를 해 버린 건 아닌지.

아무튼 유한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있다간 피조물에게 죽임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자, 잠깐! 혹시 테라칸 황제님 아니십니까?"

순간, 블랙 아이언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대륙을 최초로 통일했다는 솔에 짚어 본 것인데 맞는 모양이다.

"네놈이 짐을 아느냐?"

'그야 공식 홈페이지에 소캐된 간략한 연표를 봤으니까.'

배경 설정과 함꼐 소개된 연표에는 먼 옛날 테라칸이란 황제가 아르페디아 대륙을 최초로 통일 했다고 적혀 있었따.

"네놈은 대체 누구냐?"

"그게, 저는 지그라는 대장장이입니다만......."

"대장장이?"

미심쩍은 눈길로 유한을 쓸어 보던 불랙 아이언, 아니테라칸은 갑자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것은 투사의 슈즈!"

'엥?'

유한은 테라칸이 자신의 신발을 보고 놀라자 당황했다. 혹시 이 신발이 테라칸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던 사항은 테라칸이 스스로 내뱉으면서 듣게 되었다.

"오오! 넌 투사 파일런의 후예였구나!"

과거 테라칸 황제에게는 3명의 가신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투사 파일런이었다.

'신발 신었다고 신발 주인의 후에가되나?'

유한은 황당하기만 했지만, 칠단 테라칸을 안정시킬 필요성이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폐하 글니 제발 전정을......."

"음, 신하의 후예를 해칠 수는 없지. 좋다! 짐이 너를 용서할 테니 다시는 허튼 소리를 하지 말거라."

"예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유한은 내심 우스꽝스러웠지만 블랙 아이언을 향해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진정되자 유한 일행은 한데 모여 대책을 강구했다.

"도대체 어떻게 할 거야?"

"뭐가?"

리지스의 물음에 유한은 고개를 들었다.

"저걸 어떻게 할 거냐고!"

블랙 아이언을 만들었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려운 영혼이 깃들고 말았다.

바로 고대 아르페디아 대륙을 통일한 초대 황제 테라칸. 문제는 테라칸이 유저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거만하고, 고집불통의 가디언을 비싼 값에 사 줄 유저는 어디에도 없었다.

"휴, 그래서 나도 걱정이다. 다시 해체할 수도 없고."

"강아지나 오크에게 그랬던 것처럼 영혼을 도로 돌려 보내 면 되지 않을까요?"

"불러 온 것만으로도 벼락같이 화내는데 도로 가란다고 가겠냐?"

모두들 베르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절래 절래 고개를 저었다. 불러오긴 했지만 그녀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냥 내버려 둘까?"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고?"

"일단 잘 구슬려 보자고."

유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블랙 아이언에게 다가갔다.

테라칸은 팔짱을 낀 잔뜩 거만한 포즈로 유한의 철공소를 바라보고 있던 중이었다.

"저기, 폐하."

"왜 그러느냐?"

"제가 잠시 폐하의 옥체를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행여잔고자이라도 있을까 걱정됩니다."

"알았다. 어디 한번 살펴보거라."

테라칸은 유한이 살펴보기 쉽도록 풀밭에 벌렁 누웠다.

그러자 유한은 블랙 아이언의 내장갑을 들어내고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흉갑을 들어냈을 때였다.

심장과 몇몇 부품들이 설계도와 달랐다. 은은한 붉은색을 띠는 심장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오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스승님!"

유한은 갈리가 있는 철공소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 부분은 아까 갈리가 개량한다며 손댔던 곳이었다.

혹시 블랙 아이언에 테라칸 황제의 영혼이 깃든것도 그의 짓거리가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 아닌지?

바깥일을 외면하고 작업에 열중하던 갈리의 몸이 움찔 했다.

"그 부품들은 도대체 뭡니까? 그리고 심장은요?"

"아하하! 그게, 저..... 난 더 좋게 만들고 싶어서......."

한참 말을 돌리던 갈리는 유한의 눈초리가 매서워지자 할 수 없이 진실을 털어놓고 말았다.

"그거 드래곤 하트야."

"드래곤 하트라뇨, 드래곤 하트는 메카 드래곤을 만들때......."

"그랬지. 근데 다 쓴 건 아니 거든. 일부를 때 내서 좀 남겨 두었어. 나중에 쓸 일이 없을까하고."

갈리는 바로 모처에 숨겨놓은 드래곤 하트를 가지러 가기위해 블랙 아이언을 만들때 자리를 비웠던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유한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왜 베르겐 참사 당시 메카 드래곤이 자신을 능멸했다며 화를 냈던지 알 것 같았다. 영면을 깨운 이유도 있지만 갈리가 드래곤 하트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래곤 하트의 일부는 테리칸의 영혼이 깃든 블랙 아이언에 탑재되었다.

그리고 드래곤 하트의 일부는 테라칸의 영혼이 깃든 블랙 아이언에 탑재되었다.

결국 테라칸 황제의 영혼이 깃든 것은 드래곤 하트 때문이 아닐까? 드래곤 하트가 베르디의 강신술에 간섭하게 되면서 뜻밖의 결과를 불러온 게 아닌지?

'크아악! 이 웬수 덩어리!'

당장 확 목을 졸라 버렸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지만 이미 일은 저질렀고 저 면상을 쫓아 버리면 자신만 손해다. 아직 갈리에게서 도움받을 것이 남았으니까.

"스승님은 이제 드워프가 아닙니다!"

"뭔소리! 성능은 끝내 주는 수준 아니냐?"

"그게 잘못이라니까요!"

제어할 수 있는 힘이라야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 그런의미에서 저 블랙 아이언은 실패작이나 다름이 없었다.

식식거리며 공장에서 나온 유한은 나머지 부분을 마저 살피고는 내장갑을 닫았다. 다행히 다른 부분들은 정삭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래, 이상은 없느냐?"

점검하는 동안 잠시 수면 상태에 빠져들었던 테라칸 황제가 물었다.

"옥체에 이상은 없사옵니다만, 한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무슨?"

'니가 너무 말을 안듣습니다.........'라고 하려던 유한은 침묵을 지켰다.

그런 유한의 모습이 테라칸의 눈에는 무척 깊은 걱정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영혼이 이상한 기계에 깃들어 불안한 중이었다.

"어서 말하라. 대체 무슨 걱정 때문이냐?"

지구본 처럼 돌아가던 유한의 두뇌에 번쩍 빛이 들어왔다.

유한은 매우 조심스럽고 공손한 태도로 말문을 열었다.

"소인이 불경하게 쇳덩이에다 폐하의 영혼을 담은 이유가 무엇이라 보십니까?"

"뭔가 부득이할 만한 사정이라도?"

"그렇사옵니다. 바로 이 세상을 정복하려는 악의 무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뭣이!"

유한은 테라칸 황제를 구슬리기 위해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마구 지어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지에 봉인된 마물을 깨우고, 신성한 성물을 파괴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묘하게 사람들을 이간하여 전란을 일으키기까지 했습니다."

유한의 말을 들은 테라칸의 얼굴에서 분노한 표정이 떠올랐다.

"거런 죽일 놈들이 있나! 대체 어떤 놈들이냐?"

"어둠에 몸을 두고 있는 자들이라 아직 자세한 정체는 모릅니다. 그러나 옛날 폐하께서 통일하신 이 대륙은 지금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잇사옵니다."

"으음, 큰일이구나. 적의 정체도 잘 모른다니."

유한은 내심 아도의 한숨을 쉬었다.

연표의 간략한 내용외에는 테라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혹시 테라칸이 미케니아의 국왕 이바니우스 3세처럼 사악한 건 아닌지 걱정했었다.

그러나 테라칸은 정의로 똘똘 뭉친 영웅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세상을 평안케 하려 짐을 다시 깨운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그런데 나에게 주인 운운했던 것은 무엇이냐/"

테라칸이 처음에 있었던 일을 거론하자 유한은 움찔했지만 아닌 척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암흑의 무리들은 어디든 눈을 두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곳이 산중이라 하나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만약 그들이 고대의 영웅이셨던 폐하께서 부활하신 것을 안다면......."

"으음! 그렇구나. 짐의 정체를 숨길 필요가 있었겠구나."

테라칸이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유한은 한숨을 돌렸다. 정말 말이 통하는 존재라 다행이다.

"오래전 짐은 세상의 평화를위해 대륙을 통일시켰다.

그러나 그 대륙이 다시 혼란에 휩싸였다니 슬푼일이구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면 진짜 울었을 듯한 테라칸이었다.

"대륙의 평화를 위해 다시 한번 폐하의 힘이 필요하옵니다."

"오냐, 내 너에게 협력해 주마, 아르페디아 만백성의 평화를 위한 일인데 짐이 너의 수하 노릇을 못하겠느냐."

"수하 노릇뿐만 아니라 저의 통제를 받으셔야 하는데도 그리 하시겠사옵니까?"

"대륙의 평화를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감수하겠노라. 황제 테라칸의 일므을 걸 것인즉!"

테라칸은 믿어 보라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겼다.

그 모습에 만족한 유한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다짐을 받아 냈으니 적당히 부려 먹을 순 있을 것이다.

"알았습니다. 그럼 이 시간 부터 재륙이 안정될 때까지 폐하는 저의 가디언으로 행동하셔야 하옵니다. 편의와 보안을 위해서 존댓말도 않겠습니다."

허락을 얻어 내자 유한은 지금까지의 공손한 태도 대신 얼굴에 거만함을 가득 채우고서 반말을 내뱉었다.

"좋았어. 이제부터 네 이름은 검둥이다."

"검둥이라고!"

약조까지 다한 테라칸이 버럭 화를 내었다.

하긴 화가 날 만할 것이다. 대륙을 통일한 영웅을 뉘 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이 불렀으니까.

"아, 알았어. 그럼 블랙."

"블랙? 블랙이라......."

테라칸 황제는 그 이름이 맘에 드는지 씨익 웃었다.

그러나 검둥이나 블랙이나 똑같이 '검다'는 뜻 임을 생각하면 코웃음이 나오는 일이었다.

"블랙, 이제 날 그렇게 부르도록 해라. 주인이여."

'이런 신발..... 말버릇 하곤.'

아무리 고대 영웅의 영혼이 들어갔다지만 유한에게는 그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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