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찰스턴 공방전 (82/143)

6.찰스턴 공방전

갈리의 가세로 거대 골렘 제작은 순풍을 받은 듯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새롭게 제작된 설계도를 본 대장장이들은 충격을 금치못했다.

드워프가 비효율적이라고 호통 칠 때는 몰랐는데 그가 제작한 설계도를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모든 장치들은 간단하면서도 연동해 정교한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배치되어 있었고, 골렘의 형태도 안정적이고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설계도만 봐도 전혀 문제없이 움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참, 우린 왜 이렇게 못했지?"

"어찌 보면 당연한 겁니다. 드워프가 달리 대장장이 종족이라 불리는 게 아니니까요."

이곳에 모여 있는 대장장이들의 생산 스킬이 낮은 것은 아니다. 나름 대장장이 유저들에서 날고 긴다는 자들만 초빙한 것이니까.

이건 게임 설정의 차이다.

바닥부터 갈고닦아야 하는 유저들과 달리 드워프들은 최소 1랭크 이상의 생산 스킬을 부여 받는다. 아무리 실력 없는 드워프라도 인간 세상에 나오면 명장 소리를 듣는 것이다.

"자자, 일합시다 시간이 얼마 없어요."

발리안의 외침에 대장장이들은 자신이 맡은 파트로 흩어졌다.

전쟁 상황이 베레타 공화국 쪽에 유리했다면 좀 쉬어가며 작업을 하겠지만 연이은 패배로 여유가 없었다.

이대로 공화국이 망하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퀘스트는 실패하게 된다.

찰스턴 근방에 마노스 제국군이 나타났을 쯤, NPC관료가 찾아와 서신 하나를 전달했다.

"의장 각하께서 여러분에게 보내는 친서입니다."

친서의 내용은 간략했다.

의장은 서둘러 거대 골렘을 완성시키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군사들의 사기가 달려 있다며 거대 골렘을 완성시켜 제국군을 무찌르라는 것이다.

처음에 유한과 대장장이들은 이 서신이 단순히 재촉을 위한 것이라 여겼다. 지금까지도 이런 서신이 여러 번 왔으니까.

그러나 다음과 같은 안내창이 떠오르자, 이게 단순한 재촉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의장의 독촉]

-현재 베레타 공화국군의 사기는 몹시 좋지 못한 상태다. 서둘러 거대 골렘을 완성시켜 사기를 올리지 않으면 전쟁의 향방이 어찌될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사흘안에 거대 골렘을 완성시켜 적을 섬멸하도록 하자.

*게임 시간으로 3일 안에 거대 골렘을 완성시키면 추가 보상으로 명성 1000과 경험치 5000이 올라갑니다.

*3일 안에 완성시키지 못하면 명성이 1000하락 합니다.

"안 돼! 명성이 떨어진다니!"

책임자인 발리안은 펄쩍 뛰었다.

발리안 만큼은 아니더라도 유한과 여러 대장장이들도 명성이 하락하는 것은 탐탁지 않았다. 더구나 제법 묵직한 추가 보상을 준다는데 이를 놓치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총사령관 란데르트는 거대 골렘 제작 상황을 보러왓다가 대장장이들의 이 같은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최소 이틀안에 완성하지 못하면 대장장이들의 쿼스트는 물거품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잇었다. 찰스턴이 점령되면 거대 골렘 제작도 물 건너 갈테니까.

"적들이 찰스턴 지척에 와 있소. 아직 탐색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조만간 일거에 들이밀고 올 것이 틀림없소."

"아무리 그래도 적들이 정말 찰스턴을 공격할까요?"

대장장이 유저 하나가 조심스레 반박했다.

"이건 전쟁이요. 최악으 상황까지 대비해야 하는 전쟁이란 말이오. 그리고 철십자 길드의 수뇌들이 NPC인 여제를 완벽히 통제할 거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란데르트의 말에 모두들 할 말이 없어졌다.

철십자 길드의 베히모스가 마노스 제국의 백작이라지만 그는 여제의 신하일 뿐이다. 항상 여제가 그의 말을 따를 거라는 생각하는 건 바보 같은 판단이었다.

안이 하게 판단했다가는 지금 까지 힘들게 쌓아 올린 탑이 모두 허물어지는 수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대장장이들은 서둘러 작업에 임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마노스 제국이 찰스턴을 공격할까 하는 논란이 일고 있었지만, 유한과 대장장이들은 자신의 할 일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앗! 맥스 님, 마야 님은 어디로 갔어요?"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갔다 온다며 로그아웃 했는데요."

"크앗! 이 바쁜 상황에!"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하지만 접속하고 있는 상태에서만 그랬따.

직장일이나 신변의 일 때문에 몇몇 사람이 접속을 못할 때는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몫까지 해야 했다.

드워프 갈리의 도움이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어휴, 이럴 땐 정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걸."

"그녀한테 부탁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발리안의 말에 유한은 파우린을 떠올렸다.

파우린의 본캐는 아르페디아 최고의 명장 귀련.

그녀가 나서 준다면 지금보다 더 빨리 작업할 수 있을것이 틀림없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유한은 찰스턴 성벽 동쪽 망루에 있다는 파우린을 찾아가 애원했다.

"귀련 누님, 좀 도와 주시면 안 되나요?"

"난 지금 파우린인걸?"

"귀련으로 접속해서 도와주세요. 이대로 베레타 공화국이 망하는 걸 지켜보실 건가요?"

"지그 넘 망하는 걸 지켜 볼까 하는데?"

'크악! 정말 이러시깁니까!"

"응, 정말 이럴거야."

결국 귀련의 협조는 없었다.

남은 대장장이들은 최선을 대했다. 유한도 입시 학원을 빼먹고 작업에 전념했다.

-형 지금 캡슐방에서 하고 있지? 학원 빠진 거 엄마가 알면 화내 실텐데.

작업 중 동생 녀석에게서 귓말이 날아왔다.

얀은 유한의 캐릭터인 지그를 자신의 메신저에 추가했다. 약점을 잡아 형에게서 용돈을 우려낼 목적에서다.

'이자식! 저도 공부하러 독서실 간다고 했으면서!'

유한은 발끈해서 얀에게 귓말을 보내려다가 멈칫했다.

모두가 애써 만든 부품을 맛있게 먹어 치우구 있는 괴생명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놔! 이 뚱떙이 도마뱀 너 오늘 제삿날이다!"

어느 틈엔지 창고로 들어와 부품을 훔쳐 먹는 포포였다.

"삐이잇!"

포포는 유한이 던진 망치를 피하고 뚫어놓은 지붕을 통해 달아났다.

"어휴! 하나같이 도와줄 생각은 않고서!"

그렇게 윻나이 속을 태우고 있을 때였다. 창고 안으로 NPC전령이 달려와 다급하게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마노스 제국군이 공격을 개시햇습니다!"

찰스턴 영지 근교에 진을 친 마노스 제국군은 3천의 선발대를 보내 공격을 시작했다.

선발대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햇다.

그러나 설마 이곳을 공격할까 싶었던 찰스턴의 유저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상대는 '진심'이었던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전투 소식을 들은 이들은 철십자 기사단에 대한 비난을 게시파에 가득 남겼다.

-캐고딩:학생의 성지를 더럽히다니! 천벌 받을 거라능!

-패시브맛스타:땅따먹기에 미친ㅅㅂㄹㅁ들!

-테란의 주인:NPC여제의 딸랑이가 되니 좋아?

-우리는 한국인:지금 한국 유저들끼리 싸울 땝니까!

-키★라:철십자 길드 개허접ㅋㅋㅋ.

그러나 이런 비난에 불구하고 철십자 길드이ㅡ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거대 목인병의 상태를 점검하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호야, 찰스턴 영지의 상황은?"

티쳐스와 학림고 출신의 철십자 길드원들이 모여 잇는 곳에서 정 교감이 물었다.

"성을 빠져나가거나 로그아웃을 하는 유저들이 늘고 있습니다."

본명은 조문호, 캐릭터 명 카르산인 유저가 그렇게 답했다. 직업이 도둑인 그는 길드에서 정탐활동을 도맡아 하고 잇었다.

"크하핫! 그것 보라지. 다 말뿐이야. 정작 전투가 시작되면 더 많은 놈들이 도망칠걸?"

괜히 이길수 없는 싸움에 끼어들어 경험치와 아이템을 헌납할 유저는 없었다.

"하지만 길드 내의 학생들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카르산이 조사한 것은 찰스턴 영지의 분위기만이 아니었다. 그는 길드 내부의 동향도 살펴보았다.

"그런 건 염려 하지 않아도 돼. 점령 후에도 찰스턴을 학생들의 자유도시로 유지한다고 해 주면 별로 반발하지 않을걸?"

"물론 자유되시의 수뇌는 우리 철십자 길드. 아니 학림고 애들이 되는 것이겠죠?"

슬쩍 베히모스가 끼어들었다.

"하하핫! 현일이 넌 역시 똑똑하다니깐."

정교감은 찰스턴을 점령한 뒤 그곳을 자신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괴뢰도시로 만들 속셈이었다.

티쳐스 붕괴이후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낸 정 교감은 찰스턴에서 구상한 사엽을 시작해 보고자 했다. 꼭 찰스턴이 아니더라도 상관 없지만 개인적으로 티쳐스 시절 다스렸던 곳에서 시작해 보고 싶었다.

물론 겸사겸사 복수도 하고.

"찰스턴을 점령하면 광장의 기념물을 철거해라. NPC들을 시키면 불똥이 튀지 않을 게다."

"후후, 미리 생각해 놓았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때 그들이 있는 군막으로 길드장인 노벨이 들어왔다. 흥분한 기색이 완연한 그에게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야?"

베히모스가 물었다.

"그 망할 놈의 드워프를 찾았는데, 지금 찰스턴에 있다고 해."

노벨은 조금 전 회수대 유저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했다.

신대륙에서 온 유저들과 함께 사라진 갈리가 지금 찰스턴에 있고, 그곳의 대장장이 유저드로가 함께 거대 골ㄹ렘을 만들고 있다는 것.

"하하핫! 그거 잘됐군."

"잘되다니! 그 난쟁이 똥자루가 적들의 결전 병기를 만들어 주고 있단 말이야."

"상관 없어. 한꺼번에 싹 쓸어버리면 돼."

따로 손쓸 필요가 줄었다는 게 베히모스의 생각이었다.

찰스턴을 공략하면서 NPC드워프도 도로 잡아 올 수있다.

그야말로 일석삼조(一石三鳥).

정교감을 향해 슬쩍 시선을 준 그는 노벨을 향해 말했다.

"길드 전체에 전투 준비령을 내려. 지금 바로 찰스턴을 공격한다."

베히모스는 기회가 왔을 때 단행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명에 마노스 제국의 수만 대군이 일제히 찰스턴성을 공격햇따. 그들의 선두에는 이번전쟁의 최고의 이슈인 거대 목인병이 있었다.

"적군이 공격해온다!"

감시병의 외침에 베레타 공화국군이 서둘러 움직였다. 성벽위로 올라간 그들은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 활을 재고 방어 무기들을 점검했따.

그때 성벽위에 빛과 함께 일련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전장에 어울리는 갑옷을 입고 있엇지만, 그드르이 손에는 검대신 마이크와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그들은 바로 버추얼 에이지 팀이었다.

이번 전쟁을 보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소에 모습으 ㄹ보인 것이다.

[전국의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 십니까,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국민요정 미루입니다.]

[보도 만렙의 이정민입니다.]

미루가 개미 때처럼 몰려오는 마노스 제국군을 가리키자 카메라 멘은 재빨리 그들을 배경으로 미루와 이정민의 모습을 담았다.

[현재 저희는 마노스 제국군이 공격해 오는 찰스턴 영지으 성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찰스턴 영지를 공격하는 마노스 제국군은 약 오만, 이에 비해 현재 찰스턴에 주둔한 베레타 공화국은 칠천을 조금 넘을 뿐입니다.]

[마노스 제국구닝 일곱배나 많은데, 너무 불리한 거 아닌가요, 이정민 씨?]

[성벽이 있다지만 매우 불리합니다. 더구나 마노스 제국군은 철십자 길드가 보유한 거대 목인병까지 투입했습니다.]

카메라는 재빨리 진격해 오고 있는 거대 목인병을 찍었다. 생방송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은 찰스턴 영지의 운명을 직감했다.

[그래도 찰스턴은 학생 유저들의 성지인데요, 예전에 학생 유저들이 수호하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요?]

[그랬습니다만...그때 다짐했던 유저들이 지금 보이지 않고잇습니다.]

지금 성벽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NPC들이었다. 간간히 유저들이 끼여 있긴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았다.

[나름 사정이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요?]

[하지만 지금이 방학 기간인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버추얼 에이지 방송팀뿐만 아니라 드림맥스 직원들도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찰스턴에 유저들이 적은 것은 전쟁의 위협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대륙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모든 이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수만, 아니 적어도 수천의 학생 유저는 이곳에 모여서 장렬하게 싸워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찰스턴 서앤에 있는 학생 유즈들은 많이 쳐 줘도 수백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은 말뿐이었나."

손석진은 아쉬워하면서도 계속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 용감한 여학생이 있습니다. 잠시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시아님, 또래의 유저들이 도와주러 오지 않은 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신들 뭐예요! 카메라 치워요!]

대군을 앞두고 긴장한 채린은 미루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투를 앞두고 있는데 인터뷰를 해 오다니, 대체 개념이 있는 건지?

물론 진짜 전쟁이 아니니까 이럴 수 있을 것이다.

[네, 무척 다급해 보입니다. 이 아리따운 소녀가 전사할 것을 생각하면 저는 가슴이 아픕니다.]

[누가 쉽게 죽는데요!]

채린은 정말 이 국민 요정의 이마에 화살을 박아 주고 싶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도 모르고, 미루는 계속 마이크를 들이댔다.

[죽지 않을 거라는 자신이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지금 지그랑 여러 대장장이 분들이 찰스턴에서 거대 골렘을 만들고 있어요. 그게 완성되면 거대 목인병같은 건 박살이 날 거라고요!]

미루와 이정민의 눈이 번쩍였다. 

이건 엄청난 정보였다. 베레타 공화국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다는 정보는 입수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제조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게임사에 문의해도 가르쳐 주지않앗다.

[그러니까 모두들 얼른 와서 싸워 줘요! 우린 절대 지지 않을 거예요! 지금 방송 보고 있는 사람들! 구경만 하고 있지 말라고요!]

채린의 외침 덕분인지, 찰스턴에 학생유저들의 숫자가 약간 증가했다. 방금 접속한 전사들도 있고, 다른 필드에서 다급사게 이동해 온 마법사들도 있었다.

그러나 약간 많아졌을 뿐, 전투의 향방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쏴라! 공격하라!'

총사령관 란데르트의 명령이 본격적인 전투의 막을 올렸다.

성벽위에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고, 마법사들은 마법을 날렸다.

선두에 섰던 마노스 제국 병사들이 짚단 처럼 쓰러졌다.

그러나 그들의 숫자는 여전히 많았고, 그 정도 피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반격을 해 왔다. 후위에 있던 제국군 궁병들이 일제히 화살을 재어 날렸다.

"모두 방패를 들어 올려!"

화살들이 폭우같이 쏟아졌다. 성벽 위에 있던 이들은 모두 방패를 들어 올리거나, 성벽에 바싹 붙어 화살을 피했다. 피하는 것이 늦은 병사들과 유저들은 고슴도치가 되어 몸을 뉘었다.

[아, 무섭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쟁이로 군요.]

[과연 아르페디아 남동부를 제패한 제국다운 물량입니다]

화살비 속에서도 버추얼 에이지 팀은 멀쩡햇따.

이곳으로 오기 전, 드림맥스에 부탁해 '무적' 혜택을 받은 덕분이다. 화살이 그들에게 날아오긴 했지만 닿기도 전에 튕겨 나 버렸다.

화살비가 그치자, 이번엔 성벽에 가까이 당도한 제국 병사들이 사다리를 올리며 기어 올랐다.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베레타 공화국축은 화살을 쏘고, 돌을 던지고 끓는 물을 부었다.

본격적인 공성전이 시작된 것이다.

"올라가라! 빨리 올라가!"

"적들이 성벽 위로 올라 오지 못하도록 막아라!"

일진 일퇴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숫자는 마노스 제국군이 압도적이었지만 성벽이라는 이점을 안고 잇는 베레타 공화국군도 만만찮았다.

예상보다 NPC병사들은 무척 용감히 싸웠고, 곳곳에서 파우린과 자탈 같은 유저들도 훌륭히 적을 저지했따.

그러나 그들로서 어쩔 수 없는 존재가 성문으로 맹렬히 돌진해왓다.

"거대 목인병이다!"

거대 목인병 1기가 성문에 몸을 부딪쳤다.

성문위의 공화국 병사들은 목인병들을 향해 바위를 떨어트리고, 불이 붙은 기름통을 던졌다.

그러나 철판을 덧대어 장갑을 강화하고, 방화(防火) 마법진 까지 새긴 거대 목인병은 쉽게 당하지 않앗다.

4기의 거대 목인병들은 동서남북의 성문 하니씩 맡아 맹렬히 두들겨 댔다.

"흥! 계속 두들겨 봐라, 그게 열리나."

란데르트는 냉소를 지엇다. 미리 예상하고 성문마다 바위와 흙은 담은 자루들을 쌓아 보강해 두었다. 아무리 거대 목인병이라 해도 성문을 쉽게 부수지 못할 것이다.

쾅!

그러나 굉음과 함께 성문이 뚫렸다.

보강된 바위와 흙자루들이 무너지자 란데르트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거대 목인병의 힘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햇따.

당황해 하는 베레타 공화국군과 달리, 후방에서 거대 목인병에게 명령을 내리던 철십자 길드원이 환호성을 지렀다.

자신이 조종하는 거대 목인병이 가장면저 성문을 뚫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좋았어! 계속 진격해라, 거대 목인병!"

그의 명령에 충실히 거대 목인병은 성 안으로 들어섰다.

성 안쪽에 있던 유저들이 거대 목인병에게 화살을 쏘고 마법을 날렸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공격으로는 거대 목인 병을 저지 할수 없었다.

[안타깝습니다. 이대로 있다간.....었!]

성벽위에서 상황을 지켜 보고 있던 이정민의 몸이 옆으로 스르륵 기울어졌다. 채린이 갑자기 손을 잡아 끌어당긴 탓이었다.

챌니은 성벽을 기어 올라온 철십자 길드원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ㅇ이정민을 끌어다 방패로 썼다. 아까 화살비 속에서도 멀쩡했던 그를 봤기 때문이다.

과연 무적의 효과는 대단해서, 이정민은 상대의 그 어떤 공격도 튕겨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장 놔주 십시오!]

[그러지 말고 잠깐 도와 달라고요!]

이정민을 방패로 내새운 채린은 상대방의 심장에 그라디우스를 꽂아 넣었다. 그녀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정민을 계속 붙들고서 다른 철십자 길드원들을 상대했다.

근처에서 주운 방패(?)는 유니크 급의 효과를 발휘했다.

채린에게는 행운이었지만, 버추얼 에이지 팀 입장에서 이건 방송 사고였다.

[으악! 이러지 마십시오!]

[이정민 씨가 활동하기 어려운 관계로 이후 보도는 저 미루가 혼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루와 카메라 맨은 재빨리 성벽을 내려갔다.

안그래도 주변에 자신들을 눈독들이는 유저들이 많았다. 자신들마저 잡혔다간 방송은 완전히 끝장나고 말 터.

성벽을 내려간 미루와 카메라맨은 성안을 휘젓는 거대 목인병을 촬영햇다.

마법을 걸고, 화살을 쏘고, 검기를 날렸다.

유저들이 갖은 방법을 동원해 막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서진 성문으로 마노스 제국군이 들이치자 그나마 미약한 저항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큰일입니다. 이대로 영주관이 점령되면 찰스턴은 함락되는데 막을 방법이 없는 걸까요? 베레타 공화국의 거대 골렘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미루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을 때였다.

갑자기 광장 저편에서 뭔가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고 있엇따.

"아니, 저건!"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광장 저편에서 나타난 것은 사람이었다.

유저, 그것도 커다란 해머를 든 대장장이.

지그라는 이름의 대장장이는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맹렬히 달려와 껑충 뛰었다.

그리고 주저 없이 거대 목인병의 다리를 후려갈겼다.

콰쾅!

"저런 어처구니없는!"

방송을 보던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결과에 경악했다.

방금 그 일격에 거대 목인병이 휘청하며 그자리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그것이 대장장이의 망치질 한 방에 벌어진 결과라는 걸 알자,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서, 설마......!"

성안에 들어왔다가 엄청난 광경을 목격한 거대 목인병의 조종수는 황급히 관련 창을 열어 거대 목인병의 상태를 점검햇다.

혹시 엄청난 타격을 받은 건 아닐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무릎관절에 일시적으로 강한 충격이 전해져 중심을 잃은 것이었다. 손상된 게 잇다면 철판을 덧댄 단단한 목재 장갑이 살짝 찌그러졌을 뿐.

"젠장! 사람 놀라게 하고있어!"

화가 난 거대 목인병 조종수는 당장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저 대장장이 녀석을 납작하게 밟아 버려!"

조종수의 명에 다시 벌떡 일어선 거대 목인병은 유한을 노리고 한쪽 발을 들었다.

그러나 순순히 밟혀 줄 유한이 아니엇따.

그는 재빨리 거대 목인병의 반대편 발을 넘어 달아났다.

유한을 뒤쫗던 발을 놀리던 거대 목인병은 도리어 자신의 발등을 찍어 버렸다. 제 발을 제가 밟은 개대 복인 병은 비틀거리다가 이번엔 완전히 자빠지고 말았다.

콰앙!

거대 목인병이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베레타 측 유저들이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

공성 병기를 써야 간신히 쓰러트릴 수 있는 거대 목인병을 유저 한명이, 그것도 대장장이가 쓰러트렸다.

간단하지만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엇따.

"버추얼 에이지 팀 어디 갔어?"

주변을 둘러 보던 유한은 한쪽 구석에서 자신을 찍고 있는 미루와 카메라맨을 발견했다. 단숨에 그들 앞으로 달려간 유한은 미루가 들고 있는 마이크를 냉큼 빼앗아 들고 말했다.

[지금 방송을 보고 있는 학생 유저 분들 똑똑히 들으시기 바랍니다.]

무시하지 못할 진중한 분위기.

베레타 측 유저들은 물론, 철십자 길드원들까지 굳은채로 유한을 바라보았다. NPC인 마노스 제국 병사들은 홀로 거대 목인병을 쓰러트린 괴물에게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저는 조금 전에 로그 아웃을 했습니다. 갑작스런 강행군에 많이 피곤했었고, 할 일을 다 끝냈으니 뒷일은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해 줄 거란 생각 때문이엇습니다.]

그러나  유한은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골렘을 만든다고 여념이 없어 몰랐는데, 로그아웃 하고 나와서 게임 방송을 보니 찰스턴의 상황이 영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전 참 틀려먹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딴 사람들이 알아서해 주겠지...... 이 얼마나 무책임한 생각입니까?]

순간 방송을 보고 있던 많은 청소년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의 캐릭터가 찰스턴에서 멀리 있다거나, 전쟁에 져서 경험치와 아이템을 잃기 두렵다는 핑계는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남들이 다 알아서 하겠지.

나 말고도 딴 사람들이 찰스턴을 지켜 주겠지.

나 하나쯤 빠진 것쯤이야.

모두들 그리 생각하여 구경만 하며 게시판에서 철십자 길드에 대한 비난만 퍼부었다.

찰스턴이 함락 직전까지 몰린 것은 단지 거대 목인병 때문만이 아니다. 약속하고도 행동하지 않은, 남들이 해줄 거라 믿고 방관한 자신들 때문이었다.

[저같이 생각했던 분들이 많을 겁니다. 늦었지만 저는 지금이라도 다시 싸울 생각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꼐 싸웁시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희망은 이미 만들어 졌으니까요.]

"와아아!"

유한이 가리킨 곳을 바라본 유저들은 저마다 탄성을 지렀다.

거대 목인병보다 훨씬 크고 더욱 단단하고 강해 보이는 거대 골렘이 지축을 울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 베레타 공화국의 결전 병기가.

[싸웁시다, 여러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유한은 마이크를 미루에게 돌려주었다.

할말은 다했고, 이젠 검을 들고 싸울 때였다.

자신의 외침을 듣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 알 수 없지만, 최후 까지 싸울 생각이었다.

사실 퀘스트를 끝내기 전 유한은 남들이 알아서 막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자신은 퀘스트를 하고 있으니까, 결전 병기를 만든다고 바쁘니까 하고 팽계를 댔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못한 행도이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만회해야 한다. 만회할 기회는 충분하니까.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 법."

그렇게 중얼거린 손석진은 화면에 비치는 아름다운 광경을 감상했다. 보이는 것은 치고받는 싸움일지 몰라도, 저 싸움에는 강한 결의가 있었다.

"유저들의 접속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찰스턴으로 이동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사태에 주변의 직원들은 당황했지만, 손석진은 그저 부드러운 미소만 지을 따름이었다.

성문이 뚫리며 절대 외기를 맞았던 찰스턴.

그러나 자유도시를 주창했던 대장장이 지그가 나타나면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제기랄! 저 대장장이 녀석부터 죽여 없애!"

뭔가 심상찮음을 눈치 챈 철십자 길드원들은 한꺼번에 유한에게 달려들었다.

상대가 허약한 생산직 캐릭터라는 생각은 이미 내던졌다.

거대 목인병도 농략했지만, 저놈은 존재만으로 철십자 길드에 해를 끼칠 녀석이었다.

"어딜 감히!"

유한에게 달려들던 철십자 길드원들이 매화꽃 폭풍에 둘러싸였다. 하얀 매화가 핏빛으로 물드는 순간, 그들의 HP칸이 거짓말같이 0을 가리켰다.

"형, 아무 데나 나서지마. 내가 귀찮아진다고."

"자식......."

유한의 앞에 가로막고 나선 것은 얀이었다.

그느 연방 검을 휘두르며 철십자 길드원들을 베어 나갔다.

하지만 철십자 길드원들의 숫자는 많았고, 그들과 함께한 마노스 제국군의 수도 만만찮았다.

유한과 얀이 감당하기 힘들다 싶던 그 때,

광장에 환하게 빛무리가 터지더니 수십 명의 유저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지그 오빠, 늦어서 미안해요!"

에이린과 오펜, 그리고 예전에 함께 결의했던 학생 유저들.

나타나는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안면이 없는 이들도 접속해서 싸워 주었고, 학생이 안닌 유저들도 와서 힘이 되어 주었다.

개중에는 전혀 의외의 사람들도 있었다.

"어머나, 선생님!"

"이 녀석아! 궁수면 궁수답게 활이나 쏴야지 앞에서 칼질하면 쓰나!"

성벽위로 올라온 아레스는 채린을 찌르려던 NPC병사를 베어 넘겼다.

그는 한때 티쳐스 일원으로 활동했었지만, 현재는 그일을 반성하고 다른 방향으로 제자들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방학이라고 놀지만 마라! 넌 이제 고3 수험생이야!"

"그런 잔소리는 전투가 끝난 다음에 하시라고요!"

점점 찰스턴에 접속하고 이동해 오는 유저들이 많아졌다.

개중에는 멀리 신대륙에서 이동해 왔던지, 복장이나 무기가 이상한 이들도 있었다.물론 찰스턴을 함께 지켜 내겠다는 마음만은 한결같았다.

"에잇! 거대 목인병, 언제까지 자빠져 있을거야! 일어나, 일어나서 공격하라고!"

거대 목인병의 조종수가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쓰러져 있던 거대 목인병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유저들의 싸움판에 끼어들었다. 번쩍 손을 치켜든 모양새가 한꺼번에 유저들을 왕창 쓸어버릴 기세였다.

그러나 거대 목인병의 손은 공중에서 멈췄다.

유한과 대장장이들이 만든 거대 골렘이 거대 목인병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좋습니다! 아예 팔을 뽑아  버리세요."

발리안이 멀리서 명령을 내리자 거대 골렘은 거대 목인병의 팔을 잡아당겼다.

콰드득!

나무와 쇠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리며, 거대 목인병의 가다란 팔이 뽑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잘했습니다, 거대 골렘! 그 다음엔 니킥을 날린 다음, 트라이앵글 초코를 먹이십시오!"

"이봐, 그리 이야기해선 못 알아들을걸."

옆에서 갈리가 나무랐지만, 거대 골렘은 나름대로 거대 목인병을 잘 제압하고 있었다. 이정도 위력이면 거대 골렘하나로도 나머지 목인병들을 몽땅 제압하고도 남을 듯 했다.

베히모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령관답게 후방에서 전쟁을 관람하던 그는 갑작스레 전세가 역전된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쿠쿵! [철혈여제의 특명] 퀘스트를 실패햐셨습니다.

 명서이 1800 감소합니다.

안내창이 알려주듯, 적의 결전 병기가 완성되었다.

베레타 공화국이 완성한 순 강철제 거대 골렘은 거대목인병보다 더 크고 강력했다.

그러나 전세의 역전은 이 거대 골렘은 제임무를 다 했다는 듯, 행동을 멈췄다.

전세가 뒤집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베레타 축의 지원군으로 나타난 유저들이었다. 갑자기 접속하고 이동해 온 유저들의 수는 어림잡아도 수천, 아니 수만은 되어 보였다,

"이런 망할!"

베히모스는 보고있던 마법 수정을 내리쳤다.

산산조각 난 수정 조각에 일그러진 그의 얼굴과 정 교감, 제르달의 실망한 표정이 비췄다.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구나."

"......."

"학생 놈들에게 진따 리더(Leader)나타날 줄이야."

리더라고 칭할 만한 사람을 본것은 제르달도 처음이었다.

그것은 지금의 자신과 다른, 정의 감이 넘치고 부당한 세상에 맞서 싸우던 젊은 시절에도 보지 못한 존재였다.

멋진 연설로 사람을 선동하는 건 웬만큼 배운 사람이면 누구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이끌고 제일 앞에 서서 용감히 싸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정 교감의 젊은 시절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아니, 만나지 못했던 것인지 모른다.

아무튼 그는 진짜 리더를 보지 못했다. 맨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다가 어느 틈엔지 뒤로 물러서 버리는 비겁자들만 보아왔다.

세상엔 그런 놈들뿐인 줄만 알았다.

'흥, 어차피 게임에서일 뿐인 것을'

그는 좀 전에 수정에서 보았던 용감한 대장장이의 모습을 애써 지워 버렸다.

아니, 지운다고 생각했는데 지워지지 않았다.

잘 생각해 보니 어딘가 낯이 익은 녀석이다. 이놈을 대체 어디서 보았을까?

뭐 일단은 지금 중오한 건 그것이 아니다.

역전된 전세를 되돌려 놓아야햇따. 이미 성문이 뚫렸ㄷ으니 어떻게든 영주관만 차지한다면......."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야?"

다급하게 군막으로 뛰어 들어온 길드원의 어깨는 붉은 피로 물들어 잇었다.

"전지 후방에서 적군이 나타났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베히모스는 당장 군막을 뛰쳐나갓다.

진지 뒤족에서 검은 연기와 붉은 불꽃이 솟구치고, 함성과 비명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후방에 남아 있던 마노스 제국군을 공격한 것은  푸른 갑옷을 걸친 소년들이엇다. 그들의 선두에는 참마도를 손에든 큰 체구의 전사가 잇엇다.

"이 자식들아! 기합넣고 싸워! 바츠 놈이 비웃는다!"

뒤통수를 친 것은 옌스와 블루 라이언스였다.

블루 라이언스들의 숫자는 배틀 폴로대회 때 보았던 것보다 훨씬더 많았다.

대강 해아려 봐도 300명은 넘어 보였다.

그동안 길드원을 더 모집했던 모양.

그하나하나가 고렙인듯 그들의 공격에 마노스 제국군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어쩔거냐? 계속 싸울테냐?"

제르달이 베히모스에게 물었다.

전세가 좋지 않았다. 돌연 후방에 나타난 적도 문제지만 증원군으로 나타난 유젇르도 성벽 밖까지 밀고나온 상황이었다.

이러다 자칫 후퇴도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전멸했다가는 본전도 찾기 어렵다.

"퇴각합니다. 이 이상 피해가 커지면 곤란하니까요."

"그래, 그러려 무나.'

말은 그렇게 햇지만, 제르달은 내심 불만이었다.

돌발 변수가 나타났다고 하지만 랭크 4위나 되는 녀석이 구경만 하다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습이라니. 그것도 제일 먼저.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베히모스의 진짜 모습이었다.

이길수 있을 때만 나서서 승리를 쟁취하고 질 것 같은 싸움엔 일찌감치 물러나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공을 극대화하는 재주는 실속 있지만 '기적'을 연출하지는 못한다. 기적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도 의지도 없기에.

"적군이 물러난다!"

마노스 제국군이 물러나자 공화국 병사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총사령관 란데르트는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직 적군에게는 충분한 여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뭐 아무려면 어때.'

유저들의 갑작스런 증원과 거대 골렘의 등자잉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승리의 원인에는 한 명의 대장장이가 있엇따.

거대 골렘이라는 희망을 만들고, 자유도시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준 대장장이 지그.

그는 지금 유저들의 헹가래를 받으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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