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재회 (81/143)

5.재회

"물러서지 마라! 아군이 후퇴할 시간을 벌어라!"

우렁찬 호령에 유저들은 더욱 힘차게 검을 휘둘렀따.

그런 그들을 믿고 베레타 공화국의 NPC병사들은 서둘러 찰스턴 영지로 후퇴했다.

"란데르트 님! 왜 우리가 NPC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합니까?"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지만....."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보다 많은 NPC병사가 살아야 한다."

흑기사 란데르트는 막 자신을 향해 창을 찌르는 마노스 제국의 병사를 칼로 내리쳤다. 방금그의 곁에서 불평하던 신관 청년도 열심히 메이스를 휘둘렀다.

죽었다 살아날 순 있지만, 죽었다 잃는 아이템과 경험치는 돌려 받을 수 없다. 당연히 필사적일 수밖에.

"물러서지 마라!"

"등을 돌리는 그때가 끝장이다!"

지금 이곳에 남은 베레타 공화국 측 전력은 대부분이 유저들이었다. 용병혹은 베레타 공화국에 터전을 둔 전투 계열들.

그런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베레타 공화국군의 총사령관 란데르트였다.

얼마전 베레타 공화국군은 찰스턴 남쪽 야산의 전투에서 패했다. 마침 란데르트가 접속하지 않는 사이에 마노스 제국군이 밀고 들어온 것이다.

그의 대리를 맡기로 한 유저가 있었지만 그는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패배는 란데르트의 예상보다 심각했고, 남은 병사들은 개미떼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그들을 쫓아 마노스 제국군도 몇개로 나뉘었다.

란데르트는 자신의 책임을 통감했다.

직장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만회해야만 했다. 그래서 총사령관임에도 불구하고 전선에 남아 유저들을 독려하며 남은 병력을 수습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어렵고 불리했다.

현재 그들의 숫자는 적었고 마노스 제국군의 수는 배에 달했다. 더구나 마노스 제국군에는 NPC만 있는게 아니었다.

"트리플샷!"

"흥! 이까짓 공격쯤이야."

상대편 궁수가 날린 스킬을 가볍게 튕겨 낸 철십자 길드원은 득달같이 달려들며 휘둘렀다.

방금 전까지 활을 쏘았던 채린은 다급하게 허리 뒤에 차고 있던 그라디우스를 들어 검을 막았다.

그러나 막았을 뿐, 그녀는 상대의 힘에 밀려 주저앉고 말았다.

"궁수 주제에 제법이군. 근데 칼질할 스킬은 있냐?"

"윽!"

"오빠한테 뽀뽀해 주면 한 번은 봐줄게."

그러나 그는 너무 여유를 부렸다. 그라디우스를 살짝 기울여 검을 빗겨 낸 채린은 번개같이 달려들어 상대의 목에 그라디우스를 찔러 넣었다.

"컥!"

"칼질 스킬 없어도 되거는요."

자신만만하게 웃은 채린은 상대를 밀쳐 쓰러트렸다.

즉사한 상대의 등 뒤로 NPC병사 십 수 명이 창을 들이밀며 달려왔다. 그것을 본 채린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검술 스킬 하나쯤 있으면 좋겠는걸."

그녀가 막 물려나려던 그때 클레이모어가 풍차처럼 날아와 병사들의 창날을 잘라 버렸다.

그리고 채린의 앞에 장창을 손에 든 여기사가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왔다.

명장 귀련의 전투 캐릭터 파우린 이었다.

"시아야, 괜찮니?"

"꺄악! 파우린 언니! 뒤요! 뒤!"

"응?"

귀련의 뒤에 서 있던 철십자 길드의 전사는 손에 든 도끼를 주저없이 날렸다. 도끼가 귀련의 등에 꽂힌다 싶던 순간, 거짓말같이 멈춰 섰다.

"이녀석, 감히 파우린 씨를 해치려 들어/"

날아오던 도끼를 잡은 것은 자칼이었다. 그는 자신이 잡은 도끼를 주인에게 돌려 보냈다.

"네놈은 사형이다!"

"크악!"

도끼 전사를 처리한 자칼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 멋진 미소를 지으며 파우린에게 다가갔다.

"뒤는 제가 봐 드릴 테니 마음껏 싸우시지요."

"네, 고마워요."

파우린의 매력적인 미소에 자칼은 얼굴을 붉혔다.

'역시 이쪽으로 오길 잘했어.'

31살 노총각 인생에서 봄바람이 부는 듯했다. 오래 전 사춘기 소년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 그러나 그황홀한 대가는 컸다. 잠시 멍한 사이에 자칼의 등에 창이 박혀 든 것이다.

"컥! 어떤 놈이?"

"후후, 그로지아에서의 빚을 갚아 드리죠."

자칼을 공격 한것은 철십자 길드의 리트만이었다. 그는 배틀 폴로 대회에 참가해서 자칼과 안면이 있었다.

"자칼 아저씨를 놔줘!"

채린이 재빨리 활로 바꿔 잡고 리트만에게 화살을 날렸다. 급소인 정수리를 노린 것이었지만 리트만은 고개를 슬쩍 돌린 것으로 화살을 피했따.

"안달하지마, 사이좋게 부활 포인트로 보내 줄 테니까."

비릿하게 웃는 리트만의 뒤로 아이언사이드 기사단이 몰려 왔다.

철십자 길드 정예 전투원들인 그들이 공격해 오자 채린과 파우린은 순식간에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자칼을 구하기는 커녕 자신들의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삐이이!"

날카로운 소리를 울리며 커다란 괴물이 날아왔다.

곰같은 덩치를 자랑하는 괴물이 온몸을 던져 부딪치자 아이언 싸이드 기사단원들은 공에 맞은 볼링 핀처럼 튕겨서 날아갔다.

"헉! 이 괴물은 뭐야?"

"포포야!"

놀란 파우린과 달리 채린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지그 철공소에 있어야 할 녀석이 어째서 여기에 나타난 것인지 몰라도 무척 반가웠다.

주춤하는 마노스 제국군을 노려 보던 포포는 리트만의  창에 찔려 쓰러진 자칼을 보았다.

낯이 익은 사람, 대장간에 곧잘 찾아와서 쇳조각을 던져 주곤 한......

그런 맘 좋은 아저씨가 지금 죽어가고(?) 있었따.

인상이 더러운 나쁜 놈의 손에 의해서

"삐잇!"

포포는 버럭 화를 내며 리트만에게 달려 들었다. 당황한 리트만은 자칼을 찔렀던 차을 빼서 포포에게 들이밀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창날은 포포의 몸에 부딪치자마자 깨져 버렸다.

눈을 휘둥그렇게 뜬 리트만은 포포의 몸통 박치기에 맞아 튕겨 날아갔다.

"크억!"

"리트만, 괜찮아?"

리트만은 단짝인 유나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따. 그는 자신의 피통이 절반 넘게 떨어진 것을 알고 분노로 몸을 뻘겋게 태웠다.

정체도 모를 이상한 괴물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이 뚱땡이 도마뱀, 죽여 버리겠다."

"바보같이 나서지마! 네 창이 통하지 않는 걸 봤잖아."

리트만은 흠칫했다. 유나의 말대로 저 괴물에게 자신의 창은 통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마노스 제국 병사들이 용감하게

창칼을 찔러 봤지만, 괴물은 쇳덩이로 되었는지 끄덕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사들의 검이나 갑옷을 빼앗아 씹어 먹기까지 했따.

"저런 괴물은 내 마법으로 처리하면 돼."

유나가 스태프를 들어 올리자, 그녀의 머리 위로 커다란 주먹이 만들어졌다.유나의 주력 공격 마법 중 하나인 자이언트 너클.

마법으로 만들어진 철권은 벼락같이 날아가 포포를 후려갈겼다.

"삐잇!"

"아앗! 포포야!"

병사들과의 싸움에 정신을 팔고 있던 포포는 자이언트 너클에 정통으로 맞고 나뒹굴었다. 다행히 죽진 않았지만 정신을 잃었는지 눈알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따.

"괴물이 쓰러졌다, 모두 일제 공격!"

"우와아아!"

유나의 명령에 마노스 제국군이 다시 힘을 내어 달려들었다.

콰아아!

그런데 그때 하얀 꽃잎의 폭풍이 몰아쳐 그들의 몸을 쓸고 지나갔다.

폭풍의 중심에는 이국적인 차림의 검사가 있었다. 그가 검을 천천히 떨어트리자 하얀 꽃잎은 붉게 변했고, 마노스 병사들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저녀석은!"

유나는 깜짝 놀랐다. 드워프 갈리를 잡으러 갔던 회수대를 전멸 시킨 녀석이 아닌가.직접만난 적은 없어도 회수대가 찍었던 스크린샷을 본 적이 있기에 똑똑히 기억했다.

분명히 신대륙에서 온 놈이라고 했다.

"으악! 괴물이다!"

병사들의 비명이 들리는 쪽에 또 다른 괴물이 날뛰고 있었다.

사자와 비슷했지만 덩치도 더 크고 얼룩덜룩한 녀석.

이마의 뽀족한 뿔로 병사들을 들이바든ㄴ 괴물의 등에는 금발며리의 외국인 여자애가 타고 있었따.

그 얘 역시 회수대가 찍은 스크린 샷에서 봤던 소녀였다.

"뇌(雷)! 풍(風)!"

베르디가 재빨리 종이에 한자를 적어 하늘로 날리자, 마노스 제국군의 머리위로 벼락이 떨어지고 거센 바람이 불었다.

갑작스런 기상 이벼에 제국군의 기세는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돌격! 포포를 구한 사람에겐 천골드의 보너스를 주겠어!"

떄맞춰 달려온 리지스와 상단 호위 용병들이 제국군의 축면을 기습했다. 그틈을 타서 란데르트와 그의 부대는 거센 반격을 전개했다.

양쪽에서 연달아 푹푹 찔러 들어오자, 당황한 제국군 병사들은 창칼을 집어던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리트마과 유나 등 철십자 길드원들은 어떻게든 전선을 수습해 보려 했다. 그러나 한 번 꺾인 기세를 되찾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철십자 길드원들은 등을 돌려 후퇴했다.

"놈들이 도망친다!"

"우와! 우리가 이겼다!"

전혀 예상치 못한 승리에 모두들 신나게 함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란데르트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아직 좋아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서둘러 찰스턴으로 후퇴 한다! 놈들이 곧 중원군을 끌고 올 것이다!"

예상치 못한 도움으로 눈앞의 적을 물리쳤지만 느긋하게 쉴틈은 없었다.

찰스턴으로 진군하는 적들은 수만에 달하는 대군 이엇다. 거기다 거대 목인병 까지 배치되어 있었다.

란테르트의 지휘 아래 유저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들을 수거한다음, 리지스 특송 상회와 합류하여 찰스턴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리지스!"

"어머나, 시아야!"

리지스는 오랜 만에 만난 채린과 반갑게 재회했다."

왜 포포가 갑자기 날아가 버렸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녀석은 채린과 채린 일행의 위기를 감지했던 것이다.

"여긴 어쩐 일이니?"

"어쩐 일이긴, 베레타 공화국에 무기를 운송하러 가는 중이었지. 너 정말 운이 좋았어. 근데 어쩌다 전쟁에 참가 한 거야? 지그는 어딜 갔고?"

볼일이 있다면 유한과 함께 바로크로 갔던 채린이다.

나중에 베레타 에서 급한 퀘스트를 수행 하게 되었다는 유한의 쪽지를 받긴 했다. 그러나 리지스는 그 외의 상황은 모르고 있었다.

채린은 바로크 이후이ㅡ 일을 차근차근 리지스에게 설명 해 주었다. 유한이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도록 자신은 전장에서 싸웠고 그곳에서 파우린과 자칼을 만난 것 등등.

"호오, 아까 그 끝내 주게 멋진 언니가 귀련의 부캐였구나."

리지스도 명장 귀련에 대해서는 들어 본 바가 있기에 군침을 뚝뚝 흘렸따. 귀련의 무기를 독점으로 받아서 팔 수 있다면? 

아마 지금 버는 것의 곱은 벌수 있을 것이다.

"근데 이사람들은 누구야?"

채린은 아까 부테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자신들을 구해 준 낯선 2인조. 캐릭터명이 영어로 적혀 있었는데 둘 중 하나는 금발의 백인이었다.

혹시 소문으로 들은 신대륙의 홰외 유저들인가?

"아, 이쪽은 얀, 그리고 이얘는 베르디."

"얀입니다."

"베르디에요. 친하게 지내요."

말과 다르게 베르디의 눈빛은 띠껍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채린이 못마땅했다.

슬림한 리지스와 달리 채린은 자신보다 글래며에 미모도 수려했다. 거기다 스타일 까지 좋아 보였다.

혹시 얀이 유혹당하지나 않을까 싶어 걱정되는 것이다.

"베르디는 얀의 여자 친구고, 얀은 지그의 동생이래. 지금까지 레전드 오브 프론티어, 그러니까 찬드라 대륙에서 활동했었지."

채린은 얀을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어쩐지 유한과 많이 닮았다 생각했는데 동생이란다. 유한의 동생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동네에서 소문난 말썽꾸러기였던.....

"너 유현이니?"

"어라? 내 본명을 어떻게 알아요?"

얀은 깜짝 놀랐다. 눈앞의 예쁜 누나가 자신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따.

"어떻게 알긴, 너 유한이 동생이라며? 나 몰라? 기억 안나니? 나채린이야 송채린."

얀의 머릿속 기억이 8년 전 쯤으로 돌아갔다.

어릴 적 동네에 쳐자 이름을 한 새까만 얼굴의 삐쩍 마른 깡패가 하나 서식하고 있었다.

꽃가게가 소굴이었던 이 몬스터는 동네의 필드 보스였다. 나이는 레벨과 비례하는 게 아니었던지, 너덧 살 많은 형님들도 이 몬스터에게 두들겨 맞고 다녔다.

포악하기 그지 없는 몬스터 였지만 형이랑은 잘 지냈다.

"그러니까 누님이 꽃가게 송채린이라고요?'

"그래, 나야. 생각나니?"

"예, 생각나요. 아주 '잘'생각나요."

이가 갈릴 정도로 선명하가ㅔ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장난삼아 물총으로 쐈더니 BB타으로 응수했다.

형이랑 야구하다 유리창 깬 거 엄마에게 일렀더니, 꼬불쳐 두었던 산수 10점 시험지를 찾아내서 엄마에게 주었다.

등에 몰레 개미를 넣었다가 바퀴벌레로 앙갚음을 당한 적도 있었고, 화가나서 한대 쳤다가 비오는 날 먼지 날 때 까지 두들겨 맞은 적도 있었다.

"근데 여자셨어요?"

"어머, 넌 몰랐니?"

"선머슴이랑 다름없는데 어떻게 알아봅니까? 잘도 탈태환골 했네요. 도데체 어떤 은거기인의 내공을 갈취한 겁니까?"

"그런 거 없거든 근데 너 되게 까분다?"

"댁한테 시달려서 개념이 도망간 덕분이죠."

"너 맞을래?"

외모는 바뀌었지만 성격까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이제 맞고 살 내가 아니거든요."

"맞는지 않맞는지 시험해 볼까?"

동시에 채린과 얀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악연으로 똘똘 뭉친 두사람은 금방이라도 치고받고 싸울 분위기였다.

리지스는 당황했지만, 베르디는 안도햇따. 이 괄괄한 성격의 미인을 얀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얼마후 일행은 찰스턴에 입성했다.

총사령관인 란데르트는 페르사로 가야 했지만, 눈앞의 적군을 물리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판단해서 이곳에 남기로 했다.

어차피 페르사에는 레드타이거 용병대의 대장 길포드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따. 란데르트는 이번 전쟁에 임시로 군단장 직을 맏은 길포드의 뛰어난 지휘력을 믿었다.

"분위기가 안 좋군요.'

"적군이 코앞에 있으니까."

찰스턴의 NPC들은 잔뜩 긴장해 있었고 유저들도 절반 정도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따.

"정말 철십자 길드가 찰스턴을 공격할까?"

"그야 두고 보면 알겠지. 난 괜히 떠 보는 거라는데 십 골드 건다."

"하긴, 여기가 어떤 곳인데 감히 공격하겠어?"

찰스턴은 학생들의 성지.

어떤 이들이든 이곳을 공격하면 모두가 힘을 합쳐 응징 하지고 했다. 하지만 약속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만약 쳐들어오다는 가정하에 생각하면 우리들이 이길 수 있을까?"

"저쪽에서 거대 목인병이 없다면 가능하겠지."

"지금 끌고 오고 있다던데?"

"지,진짜?"

10만 단위의 대전투에서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것이 거대 목인병이다. 총사령관 란데르트가 여러가지 전술로 저지하긴 했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물론 없앤 이는 한 사람 있다.

검은 초승달 길드의 어쌔진 키라. 그는 공식 홈페이지에 적진에 침투하여 거대 목인병 2기를 불태우고 보너스로 철십자 길드장 노벨에 부상을 입힌 일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따.

그러나 이후에 철십자 길드에서 보안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에 같은 전과는 재현되지 않아싿.

아무튼 거대 목인병의 존재는 유저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기다려 봐, 베레타 공화국에서도 거대 병기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까."

"그건 나도 들었는데 잘 안 된 다고 하던데?"

"이런! 그럼 큰일이잖아!"

일행은 찰스턴에 들어와서 유저들의 대화를 들었다. 란데르트는 그런 반응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째 저리 패기가 없는지! 싸움이 나건 안 나건 이곳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품어야 할 게 아닌가."

"뭔가 걸린게 없으니까요. 티쳐스 때는 아이템 뺐는 선생들이 싫어서라도 같이 싸우긴 했죠. 하지만 이후론 티쳐스도 사라졌고, 이곳을 절실하게 지킬 마땅한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자칼은 그리 답하며 찰스턴 광장 가운데 세워진 혁명 기념탑을 보았다. 지그가 자유도시의 구심점을 잡기 위해 이것을 만들었다고 듣기는 했지만 제 역할을 할지 의문이었다.

도시를 지켜서 얻는 것은 명분뿐이다.

실질적으로 유저들에겐 아무런 혜택이 없다. 대신 도시를 사수하려다 전투에 패하면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피 같은 아이템과 경험치를 내놔야 하는 것이다.

과연 도시를 지키려는 학생 유저는 얼마나 될까?

"어어엇! 괴물이다, 괴물!"

갑자기 거리 저편이 시끄러웠다. 왜 저리 소란스러운가 했더니, 사람의 형상을 한 커다란 기계가 시장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거데 목인병인가 해서 봤지만 목인병하고는 달랐다. 생김새도 그렇지만, 이놈은 통째로 쇠로 된 놈이었다.

"으악, 사람 살려!"

"아이고! 내 포장마차가!"

녀석은 마치 불에 덴 원숭이 처럼 날뛰었다.

그리고 갈지(之) 자로 내달리며 팔을 마구 내젖는 녀석을 대장장이 유저들이 뒤쫓고 있었다.

"누굽니까! 발리안 님이 동력원엔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요!"

"내가 안 그랬어요! 지그 님이 손댔다고요!"

"전 아론 님이 준 수정을 넣었을 뿐이거든요!"

거리에서 난동을 피우고 잇는 것은 축소8호였다.

이전 축소 시리즈들보다 성능을 대폭 개량한 녀석인데 동력원을 탑재햐면서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폭주하더니 창고 벽을 뚫고 거리로 달려가 버린 것이다.

거리를 해집던 축소 8호는 방향을 틀어 채린 일행 쪽으로 달려왔따.

모두 전투 준비를 했지만 축소 8호는 그들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 다른 곳으로 달려가 버렸다.

"저게 대체 뭐죠?"

"아니, 그것보다 방금 지나간 사람봤어?"

괴물의 뒤를 뒤쫓던 사람.

사실 사람들이라고 호칭함이 맞았지만 일행의 눈에 번쩍 들어오는 사람은 단 1명뿐이었다.

바로 대장장이 지그, 유한이었다.

"지그 녀석 여기 있었어?"

"페르사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더니 여기였나 봐요."

"후후, 번거롭지 않아 좋네요."

아바란 왕국까지 갔다가 형을 못 찾은 얀의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었다. 예상한 것보다 쉽게 형으 ㄹ찾았으니까.

미리 예고하는 것보다 깜짝 등장하는 것이 더 재밌을 것이다.

얀이 가장 먼저 유한의 뒤를 쫓았다.

스킬 '천리무영(千里無影)'으로 순식간에 대장장이 일행을 따라잡은 얀은 그들보다 앞서 달려가 축소 8호를 제압했다.

천리무영에 이어진 고속 발검은 축소 8호의 허리를 깔끔하게 베어 버렸다.

쿠당탕!

"으악! 내 축소 8호가!"

유한과 대장장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누군가 비호같이 나서기에 잡아 줄 거라 기대를 했더니 축소 8호를 아예 절단 내고 말았다.

"이 자식아, 대체 무슨 짓이야!"

유한은 검을 도로 칼집에 넣는 얀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댔다.

얀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댁이야말로 뭐 하는 짓입니까?"

"뭐 하긴, 자식아! 니가 한 짓을 생각해봐!"

"글쎼, 난 곤경에 처한 형을 도운 것뿐이고, 어쩔 수 없이 저 쇳덩일르 벤 것 뿐이고, 그러다 보니 저리된 것 뿐인데요."

"인마, 누가 니형....."

유한은 말을 하다 말았다. 피식 웃고 잇는 상대가 누군가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당돌한 눈빛과 갸름한 얼굴선. 거기다 익숙한 목소리에 얄미운 대꾸.

눈을 동그랗게 뜬 유한을 보며 얀은 씨익 웃었다.

이만하면 적잖게 놀래킨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나야, 형님의 하나뿐인 동생 강유현."

"너...... 어떻게?"

어처구니없어 하는 유한에게 얀은 언제나처럼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한번 해 보라면서?"

사실, 예전에 유한이 한번 해 보라고 권했을때, 이미 레전드 오브 프론티어를 하고 잇었다. 물론 그땐 같은 게임인 줄은 몰랐다.

아무튼 얀은 만족해따.

예상햇던 것보다 형은 훨씬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잇었다.

"그래서 지그 님의 동생  분 덕분에 축소 8호가 동강 났다 이겁니까?"

발리안은 처참한 ㅅ아태로 돌아온 축소 8호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유한 일행이 축소 8호를 잡으러 간 사이, 발리안은 축소 8호가 폭주한 이유를 알아냈다.

폭주사유는 마법사가 수정에 마력을 불안정하게 주입했기 때문이었다. 불안정하게 깃든 마력은 골렘이 기동하면서 폭주해따고, 이것은 골렘의 난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큰일이군요. NPC관료들은 빨리 거대 골렘을 만들어 내라고 난리를 치고 ㅇㅆ는데, 축소품마저 저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빨리 거대 골렘을 만들면 되잫아요."

"무슨 수로 말입니까? 성능 미달품을 내보내서 적의 사기를  올려주면 어쩔 겁니까?"

"다 방법이 있습니다."

유한은 옆으로 슬쩍 물러섰다.

그러자 그에게 가려져 있던 작달막한 존재가 발리안의 눈앞에 나타났다.

"드워프?"

"갈리라고 하네."

"드워프 갈리라면... 예전에 메카 드래곤을 만들었던?"

발리안의 눈이 휘둥그레 지자 유한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까지 말해 주었다.

"거기다 던전 속에 잠자고 잇떤 거대 목인명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것도 이분이시죠."

발리안의 안색이 환해졌다. 초조함과 짜증스러움이 단번에 싹 날아갔다. 그는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눈빛을 반짝였다.

거대 목인병을 만든 드워프 명장이면 거대 골렘도 우습게 만들 것이 아닌가.

"오오! 이분을 대체 어디서?"

"동생이 대리고 있더군요."

유한은 좀 전에 갈리와 재회 했을때를 떠올렸다.

동생이 하고 있던 게임이 레전도 오브 프론티어였고 저번의 업데이트로 아르페디아에 엄어와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녀석이 갈리까지 데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 짤막한 괴짜 드워프를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오랜만이다, 지그야. 너 안 본사이 꽤 출세했더구나."

"데체 어떻게...."

유한의 목소리가 격정으로 떨려 나왔다.

'이놈이 날 그렇게 좋아했나?'

갈리는 유한의 목소리가 떨린 것이 자신을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라 멋대로 해석했다. 그래서인지 어깨까지 으쓱대며 말했다.

"나쁜 인간들에게 잡혀 있다 탈출하던 중에 얀을 만났지.'

그러나 유한의 목소리가 떨렸던 것은 격정이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도 어떻게 그 뻔뻔히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겁니까!"

벌컥 화가 났던 유한은 갈리위 멱살을 쥐고 들어 올렸다.

이 드워프가 한 짓 덕분에 자신이 얼마나 곤경에 처했던가.

도망치듯 노스아크를 빠져나왔고 이후에 찾아갔을 땐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나중에 사면장을 받았다지만 여전히 그때일이 알려지면 자신은 유저들 사이에서 매장이었다.

"이놈아! 화가나는 건 나다! 날 두고 너 혼자 도망을 쳐?"

"누가 먼저 도망쳤는데요!"

"아니, 이놈이!"

그렇게 두 사람은 재회의 주먹다짐을 벌였다. 옆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둘 중의 하나는 그 자리서 죽었을 것이다.

회상을 끝낸 유한은 불만 어린 눈빛으로 갈리를 째려 보고 았다. 갈리역시 유한을 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다.

"지그님과 어떤 관계이신 겁니까? 일설에 듣자니 지그님이 드워프의 조수였다는데 혹시......"

발리아은 소문으로 들은 이야기가 있었따. 대장장이 지그에게 '드워프 조수'라는 칭호가 있다고.

유한은 진땀을 흘렸다. 이대로 갈리가 사실을 털어놓으면 자신이 메카 드래곤 제작에 협력한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흥, 이놈이 내 조수라니 말도 안 돼지."

"아닙니까?"

"이놈은 그냥 아는 놈일 뿐이야. 내 보수였던 인간은 착하고 싹싹한 놈이었어. 내가 이런 배은망던하고 예의도 모르는 놈을 조수로 삼았을까 봐?"

갈리가 의외의 대답을 하자 유한은 놀랐다.

분명히 삐져서 이런저런 이야기 다 털어놓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삐졌기 떄문에 그렇게 말하는 지도 몰라.'

드워프 자존심이 있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한 인간을 조수로 부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유한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어쨌든 잘 오셧습니다. 저희는 이번 전쟁에 거대 목인병에 맞설 결전 병기를 만드는 중입니다. 아무 쪼록 갈리님께서 그위대한 솜씨를 빌려 주셨으면 합니다."

"흠, 누구와 달리 아주 예의 바른 인간이로구먼. 난 예의 바른 사람을 좋아하지."

만족한 미소를 띤 갈리였지만 승낙하기 전에 조건을 붙였다.

"대신 하나는 약속해 줘야 해. 이놈은 거대 목인병과 싸울때만 사용해야해. 그렇지 않으면 이후로 자네들에게 협력하지 않을 게야. 내가 철십자인지 하는 놈들에게서 떠난 이유도 그놈들이 나와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니까."

"걱정 마십시오. 이 발리안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베레타의 거대골렘은 반드시 거대 목인병과 싸우는 용도에만 사용될 것입니다."

'발리안 녀석, 제법이네.'

유한이 감탄한 것은 발리안의 멋진 다짐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다짐에는 교묘히 변명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아무튼 호쾌한 발리안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갈리는 쾌히 승낙하며 설계도를 가져올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거대 골렘의 설계도를 본 갈리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게 뭐야! 죄다 엉터리잖아!"

"예? 엉터리요?"

"이런 비효율적인 기계 덩어리를 만들었다니! 자네들, 어디 가서 장인이란 소리 하지마. 같은 장인으로서 쪽팔리니까."

갈리가 이죽거리자 발리안과 여러 대장장이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들은 그 정도로 엉망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나름 수차례 수정과 개량을 거쳤는데 드워프의 눈에 많이 모자라 보였던 모양이다.

"종이랑 펜을 가져와. 당장 설계도부터 새로 그려야 겠어!"

"알겠습니다. 얼른 종이랑 펜 가져오십시오!"

적이 코앞까지 온 상황이지만, 베레타 공화국의 결전 병기 제작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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