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죽음의 상인 (75/143)

10.죽음의 상인

해커를 잡은지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유한은 게임도 접은 채 이제나저제나 드림맥스에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해커를 잡아갔으니 사건의 당사자인 자신에게 결과를 통보해 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연락도 없었다.

"제길, 뭐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명색이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인질극에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중 하나인 드림맥스의 본사가 해킹당한 사건이다.

그런데 눈을 씻고 뉴스를 살펴도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오냐, 내가 전화한다. 전화해!"

기다리다 지친 유한이 전화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을 때였다.

갑자기 신호음이 울더니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강유한 군, 드림맥스의 개발실장 손석진입니다."

'쳇, 이 사람도 양반은 못 되는군.'

속으로 투덜거리는 유한에게 손석진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다까?"

"잘 못 지냈습니다."

유한의 목소리에 심통이 가득하자 손석진은 허허 웃었다.

"이런, 우리의 영웅께서 왜 화가 나셨을까요?"

"화가 안나게 생겼습니까? 댁들한테 이용당했다는데요!"

조폭들에게 납치되었을 때 드림맥스 경비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들이닥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감시하고 있었따는 이야기다. 그리고 메모리가 자신에게 있는 줄 알면서도 손을 쓰지 않았다.

해커 일당을 잡기위해 자신을 낚싯밥으로 써먹었던 것이다.

"아, 그거 말입니까? 하지만, 유한 군도 우리 회사의 데이터가 담긴 메모리를 슬쩍하지 않았습니까?"

'컥!'

손석진이 지적하자 유한도 할 말이 없어졌다.

사실, 드림맥스의 데이터가 든 메모리를 무단으로 가져간 것만으로도 유한은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알았어요.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따지지 않죠."

"후후, 잘 생각했씁니다."

유한은 그 이야긴 그정도까지 하기로 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바츠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바츠라니요?"

손석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

"해커를 잡았으니, 바츠 캐릭을 다시 살려 주셔야죠."

해킹당한데 자신의 잘못이 없다. 회사에 문제가 있다.

그것이 유한의 주장이었지만, 지금까지는 증거가 없었다.

그러나 해커가 잡혔으니 모두 다 밝혀지지 않았겠는가.

유한은 드림맥스의 보안에 허점이 드러나 바츠가 해킹당한 것이니, 이제 이를 만회해 주는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에 대한 보상은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번에 잡은 해커는 바츠를 해킹한 해커가 아닙니다."

"에에?"

이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란 말인가.

황당해 하는 유한의 귀에 손석진의 말이 계속 들려왔다.

"조사해 보니, 그자는 중국 모 기업으로부터 우리 회사가 개발 중인 시스템을 훔쳐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더군요. 아지트를 수색해 봤지만 바츠를 해킹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크아아악! 그럼?"

"바츠를 해킹한 것은 다른 해커라는 소리지요."

그놈을 잡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칼에 찔릴 뻔하기도 하고, 조폭들의 추적을 받았으며, 심지어 납치까지 당했다.

그런데 그놈이 아니라니!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럼 경찰에 문의해 보십시오.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게 될 테니까요."

유한은 당장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사이버 수사대의 담당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의 말도 손석진과 같았다.

"이번에 잡힌 해커는 전문적으로 회사의 기밀을 빼내는 산업스파이입니다. 조사 결과 강유한 군이 당했던 해킹 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허, 허허!'

유한은 허탈하다 못해 허무할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소린데....

'제길, 제길, 제에에에에길!'

유한은 가슴 속으로 고함을 질렀따.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속의 울분이 풀릴 것 같았다.

그렇게 그가 마음을 다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을 때였다.

채린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깃들어 있었다.

"근일 났어, 유한아!"

"왜, 무슨 일인데?"

"그게..... 자세한 것은 지수가 설명한다고 빨리 게임에 접속하래."

"알았어."

유한은 전화를 끊자마자 캡슐에 접속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유한이 게임에 접속하자 리지스와 송코, 채린이 심각한 얼굴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 났어?"

"당연히 일 났지."

리지스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도대체 너 뭐 하느라 계속 접속 안 한거야?"

"그게, 사정이 있어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산업스파이에게 고용된 조폭한테 납치당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영화 같은 상황을 과연 그대로 믿어 주기나 할까.

"후! 네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알아? 바로 다이노스 왕국하고 키예프 공국이 휴전을 맺었어."

"난 또 뭐라고."

유한은 공작기계를 포포가 먹어치웠다거나, 도둑이 들어 만들어 놓은 무구를 죄다 쓸어 간 줄만 알았다.

"다이노스 왕국이 키예프 공국과 휴전 협정을 맺었으면 더 좋은 거 아냐? 지금까지 전쟁 지역으로 선포된 서쪽 지역으로의 여행이 쉬워질 거니까."

"이런 한심한 남자를 봤나. 두 나라 때문에 우리가 전쟁 특수를 누려 왔단 말이야. 그런데 두 나라가 이제 싸움을 그치면 무구 값이 가만있을까? 당연히 폭락할 게 뻔하잖아!"

두 나라의 전쟁으로 대륙 서쪽 지역의 무구 가격이 껑충 뛰었다.

키예프 공국의 사절들이 무구를 싹 쓸어 가기도 했지만, 용벙으로 참전하는 길드와 유저들이 수요를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쟁이 그치면 당연히 키예프 공국은 무기 구입을 중단할 것이고, 용병 우져들도 제각기 게임을 즐기기 위해 흩어져 버릴 것이다.

"아..... 그렇군!"

그제야 유한은 상황이 파악되었다.

"내가 아는 상인들을 통해 정보를 모아 봤는데, 이달만 해도 무구 가격이 적게는 30%, 많게는 50%가 떨어질 거야. 특히 우리가 주력으로 팔고 있는 값싸고 저렴한 무구는 더 떨어질 거고."

값싸고 저렴한 무구는 주로 아바란 왕국과 키예프 공국에 납품하고 있었는데, 한 군데서라도 수요가 끊긴다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우리 창고에는 재고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 상황이라고."

철공소를 짓고 이에 대한 스킬을 모두 습득한 유한은 야심 찬 계획을 세웠따.

그것은 아바란 왕국뿐만 아니라 아르페디아 대륙의 무기 상권을 자신이 장악해 버리겠다는 것.

그래서 그는 일꾼들을 독려하며 부지런히 무구를 만들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시장(?)이 하나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값은 둘째 치고, 그 무구들의 처리가 애매해졌다.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야 해."

세 사람은 제고 처리와 앞으로 닥칠 엄청난 불황을 이겨 낼 방법을 모색했다.

"다른 왕국에 가져가 팔면 안될까?"

"한두 개도 아니고 한꺼번에 많은 무구들을 사들이는 나라는 별로 없어. 그리고 그런 나라가 있다 쳐도 이미 계약해서 물건을 납품하는 길드나 상단이 있을 거야."

"그럼, 길드에 납품하는 것은?"

"갑자기 판로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아. 그리고 휀만한 대형 길드들은 자체 대장장이들을 보유하고 소모성 무구들은 직접 생산하고 있어."

"골드 러시 상인 연합이라면 좀 더 사 주지 않을까?"

"내가 벌써 발덴 지부장 아저씨에게 이야기해 봤어. 그쪽도 이번 일 때문에 더 받기는 곤란하대."

"그냥 일반 유저들에게 팔아 볼까?"

"하지만 유저들은 보통 고급 장비들을 선호하니까 일반 무기는 사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

철공소 창고에는 유한이 손수 제작한 고급품도 있지만, 상당수가 값싸고 쓸 만한 무구들이었다.

주로 초보자나 왕국의 병사 NPC들이 사용하기에 편한.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어쩌자는 거야?"

"난들 알아? 계속해서 생각해 보는 수밖에."

유한은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 묵직한 표정을 지었따.

'결국 그 수밖에 없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일어나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유한에게는 마침 좋은 수가 있었다.

"나 잠시 볼일이 있어 나갔다 올게."

"야, 어디 가는데?"

"갔다 와서 이야기해 줄게."

유한은 그렇게 궁금해 하는 세 사람을 남겨 두고 밖으로 나왔다.

짐마차를 소환한 그는 서쪽으로 말을 몰았다.

2

리저드맨들이 세운 왕국, 다이노스.

짐마차를 달려 다이노스의 왕성에 도착한 유한은 이제 리자드 킹과의 면회를 신청했다.

"인간 대장장이. 반갑다."

왕이 되었다지만, 족장은 변함없이 유한을 반겼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왔나?"

"응, 키예프 공국과 휴전 협정을 맺었다면서?"

"그렇다."

"왜 휴전 협정을 맺었지?"

아무리 리저드맨들과 친하다지만, 만나자마자 바로 협정을 파기하랄 수 없었기에 유한은 일단 그 이유부터 물어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들과 치열하게 치고받던 리저드맨들이 아닌가.

갑자기 평화 협정을 맺었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간들이 공물 준다고 했다."

"공물?"

"매년 소 오천 마리, 양 일만 마리, 닭 오만 마리 준다고 했다. 그 외에도....."

리저드 족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건 더이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어진 키예프 공국이 뇌물을 바치고 항복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휴전 협정은 그냥 체면치레일 뿐.

"휴전 협정을 파기하고 다시 공격할 수는 없나?"

유한의 물음에 리저드 족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 리저드, 한 번 한 약속 꼭 지킨다."

"그러지 말고....."

"안 된다. 위대한 혼이 화를 낼 거다."

비록 몬스터이긴 하지만, 리저드맨들은 굉장히 정직한 종족이었다.

유한은 몇 번 더 꼬셔 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래, 알았다."

주위에 다른 나라라도 있으면 전쟁을 붙일 텐데 그것도 힘들었다.

키예프 공국 외에는 다이노스화 국경을 접하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

다이노스 왕국의 북쪽은 대륙의 등뼈 네메시스 산맥이 있었고, 남쪽과 서쪽은 인간이 살지 않는 불모지다.

"잘 있어라. 난 이만 간다."

"벌써 가나? 인간 대장장이, 놀다 가라."

"미안하지만 지금은 놀 기분이 아니야."

족장이 붙잡았지만, 유한은 거절하고 왕궁을 나왔다.

황궁을 나오면서 유한은 리저드맨들의 나라를 다시 보았다.

원시 시대 수렵 생활을 했던 리저드맨들은 이제 농사도 짓고, 가축도 키우고, 시장에서 물물교환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런 것을 가르친 것은 유저들이었다.

키예프 공국의 용병으로 리저드맨과 싸운 유저들도 있지만, 리지스처럼 약삭 빠르게 리저드맨들과 거래를 튼 이들도 있었다.

상인이나 농부 같은 생산직 유저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유저들이 단순이 기술만 가르치지 않은 모양이다

"리저드맨과 화평을 주선한 유저가 있다며?"

"응, 그 공로로 키예프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대."

유저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들은 유한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망할! 어떤 자깃이야?'

남의 장사에 훼방을 놓다니!

어떤 놈인지 몰라도 작살을 내놓고 싶었다.

유한이 그렇게 이를 갈고 있을 때였다.

"아니, 이거 지그 님 아니십니까?"

반가운 얼굴로 다가오는 이는 NPC 상인 홉스였다.

"홉스 님이시군요. 여기는 웬일이십니까?"

"마노스 제국으로 가는 중입니다. 리저드맨들이 수확한 밀을 팔러 가는 길이지요."

그러고 보니 홉스의 뒤로 밀을 가득 실은 마차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따.

리저드맨과 거래하는 건 이제 유저만의 아닌 모양이다.

"이번에 그쪽이 흉년이 들었나요?"

"아닙니다. 마노스 제국은 올해 풍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밀을 왜?"

유한이 의아해 하며 쳐다보자 홉스는 주위를 살피더니 귓속말을 했다.

"이거 지그 님이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절대 비밀입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는 것일까?"

"마노스 제국이 조만간 전쟁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전쟁이라뇨?"

"얼마 전부터 마노스 제국이 밀과 철을 끌어 모으로 있습니다. 군량과 무기를 확보하려는 것이지요."

'이거다!'

유한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드디어 위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마노스 제국은 태생부터가 주변의 작은 왕국들을 정복새서 거듭난 정복국가다.

지금은 내부의 몇 가지 문제 때문에 외부로 눈을 돌릴 틈이 없다고 하는데, 만약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더구나 마노스 제국을 다스리는 미네르바 여제는 야심이 큰 여자였다.

분명 주변의 나라를 침공하려고 할 것이다.

아마 그 대상은 인접한 그로지아 왕국이나 베레타 공화국이 될터.

"정보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뭘요,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언제나 이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홉스에게 인사한 유한은 당장 짐마차를 몰아 철공소로 달려갔다.

그런데 저 멀리 사라지는 유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상이 홉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NPC답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생동감.

그는 유한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산업스파이에 대한 빚은 갚은걸로 치겠습니다. 유한 군."

그는 바로 손석진이었다.

회사 게임 관리실에서 유한의 모습을 지켜보다 슬쩍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철공소로 돌아온 유한은 즉각 자신이 알아 온 정보를 동료들에게 들려주었다.

"근데 전쟁이 언제 일어날 줄 알고?"

"예?"

"이야기를 들어 보니 지금은 준비 단계인 모양인데, 개전 대까지 몇달이 걸릴 수 있어."

송코의 지적에 유한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알게 ㅗ디었다.

전쟁이란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준비하는 데만도 몇 달이 걸릴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마노스 제국과 같이 정복 전쟁을 준비하는 경우엔 시간이 오래 걸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전쟁 준비를 하는 중이니까, 마노스 제국에 무기를 가져다 팔면 안 될까요?"

"그건 어려워."

리지스가 마노스 제국에 판매할 수 없는 이유를 ㅇ일러주었다.

"마노스 제국의 상권은 철십자 길드가 독점한 상태나 다름없어. 거기에 다른 길드나 유저들이 장사를 하려면 막대한 세금을 내야해."

"세금? 누구에게 세금을 내?"

"당연히 마노스 제국이지. 근데 철십자 길드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어. 베히모스가 미네르바 여제를 아주 꽉 잡고 있다고 하니까."

그러고 보니 유한도 생각나는 게 있었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와 함께 배틀 폴로 우승상패를 받을 당시, 귀빈석에 베히모스가 미네르바 여제와 같이 있었다.

"그럼 마노스 제국이 인접국에 판매하면 되겠네. 마노스 제국이 전쟁을 준비한다고 알려 주면 되잖아."

채린의 말에 리지스는 고개를 저었다.

"과연 믿으려 할까? 그리고 믿는다 쳐도 당장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닌데 무구를 사려고 할까?"

"그럼?"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허겁지겁 사들이겠지."

리지스의 말을 들은 유한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바닥을 쳤다.

"그럼 발등에 불을 떨어트리면 되겠군."

마노스 제국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은 인접국에서도 접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연히 경계를 철저히 할 것이고, 국경 지방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을 것이다.

"바로 거기에 우리가 폭탄을 터트리는 거지.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을 붙이는 폭탄을!"

"후후후, 그거 괜찮은데?"

리지스는 유한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음침하게 웃었다.

전형적인 악덕 상인의 모습.

유한도 그에 못지않게 음흉한 미소를 지었따.

'무, 무서운 녀석들.'

잠시 식은땀을 흘리던 송코는 슬그머니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폭탄을 터트릴 구체적인 방법은?"

"그게......"

"어떤 식으로 충돌을 일으킬 건지에 대한 구상이 있어?"

우한은 리지스를 바라보았다.

녀석이라면 뭔가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지스도 머리만 긁적이고 있을 따름.

아무리 게임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전쟁까지 일으키게 한다지만, 뭔가 마땅한 방법이 있어야 싸움이든 전쟁이든 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저기, 내가 겪은 일이 있는데 이걸 이용해 보면 어떨까?"

의외로 방법은 채린에게서 나왔다.

그녀는 예전에 엘프의 숲에 가던 중에 겪었던 일을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유한과 리지스의 표정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작전 회의가 계속되었다.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시장 건설에 대한 계획은 한참 동안 계속 논의되었다.

"폐하, 아직 전쟁을 일으키기에는 성급한 면이 있사옵니다."

마노스 제국의 황궁.

황금빛의 갑옷을 걸친 사내가 무릎을 꿇고 간언하고 있었다.

"성급하다니? 우리 마노스 제국에는 삼십만에 달하는 대군과 기사들이 있소. 그들을 동원하면 이웃 나라 하나쯤 정복하는 건 손쉬운 일이 아니오?"

"물론 폐하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하지만, 전쟁이란 병사의 수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전쟁을 치를 보급이 완비되어야 하고, 그다음으로는 적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옵니다."

"그럼 백장의 생각은?"

"아직 좀 더 준비가 필요합니다. 식량과 철을 지금보다 더 많이 모아 전쟁을 준비하고, 병사들을 훈련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 나라에 첩자들을 파견해 정보를 캐 와야 합니다. 그런 다음 개전하면 우리 마노스 제국을 막을 나라는 없을 것이옵니다."

여제는 사내의 말이 합당하다 여겨졌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말이 맞는 듯하다. 고로 좀 전에 내렸던 짐의 출전 명령을 거두도록 하겠다"(본문에는 "그대의 말에 맞는듯하다." 라고 적혀있는데 '에'가 아니고 '이'가 맞는듯요ㅎ)

"황공하옵니다, 폐하!"

황금빛 갑옷의 기사, 베히모스는 어전 회의를 마치고 나오며 내심 여제에 대한 욕설을 퍼부었다.

'망할 NPC 년. 감히 내 야망을 박살 낼 뻔했잖아.'

그가 마노스 제국의 출정을 막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베히모스의 야망은 당연히 아르페디아 세계의 제패.

그러기 위해서는 정복국가인 마노스 제국의 힘이 필요했다.

그런데 성질급한 미네르바가 아직 전쟁 준비가 갖춰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출전을 서두르려고 했다.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베히모스지만 병참과 물자가 부실한 나라가 전쟁에서 이길 리 만무하다는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게임에 접속하기 무섭게 서둘러 달려와 명을 거둬 달라고 여제에게 거듭 간청한 것이다.

대전을 나가는 베히모스의 뒤를 철십자 길드원 하나가 따라붙었다.

부관 역할을 맡은 유저였다.

"대장. 뭐 하러 NPC 따위의 비위를 맞추는 거야."

그는 불만이 많은 듯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하긴 게임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저가 노예나 다름없는 NPC의 비위나 맞추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훗, 넌 아르페디아 온라인이 얼마나 넓은지 알아?"

"글쎄."

"가입자 수만 천오백만이다. 여기에 NPC 숫자까지 합치면 엄청날걸? 아무리 우리 길드가 강하고 세다지만, 혼자서는 결코 왕국 하나도 정복하지 못해."

베히모스는 길드의 힘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1만이라는 숫자.

유저들 입장에서는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본 인구가 수백만에 달하는 왕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아르페디아 세상을 정복하려면 왕국의 힘이 필요해. 기왕이면 강한 나라의."

베히모스의 계획은 미네르바를 꼬서서 그녀와 결혼하는 것이다.

인간과 NPC가 어떻게 결혼하냐고?

당연히 가능하다.

거의 인간과 똑같은 사고를 하는 NPC들과 호감도를 극도로 높이면 결혼도 가능했다/

공력 게시판에는 몇몇 NPC들과 결혼에 성공한 유저들의 사례담이 올라올 정도다.

여제라고 하지만 역시 NPC인데 못할 리는 만무하다.

만약 미네르바와 결혼에 성공하면 베히모스는 마노스 제국의 대공이 된다/

대공(大公).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그리고 미네르바가 불의의 사고로 사라져 주기만 한다면.......

'흐흐흐. 이 나라는 내 것이 되는 것이지."

그랬기에 마노스 제국이 성급한 출정으로 국력을 갉아 먹는 것을 피해야만 한다.

"그런데 길드장한테서 연락 온 거 없어?"

철십자 길드의 길드장이라면 랭커 마법사 노벨이었다.

노벨과 베히모스는 다니는 학교는 다르지만 친구였고, 마노스 제국을 삼키겠다는 음모를 함께 짠 당사자였다.

"회수대를 전멸시킨 놈들의 정체를 알아냈다고 해."

"그래? 누구지?"

베히모스는 철십자 길드의 정예 중 하나인 회수대를 전멸시켰을 정도면 거대 길드의 공격대거나 랭커 급 유저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멋지게 빗나갔다.

"미케니아의 왕과 그 졸개들이래."

"미케니아? 그 공중 요새와 관련된?"

마노스 제국에서 기반을 다지느라 북쪽으로는 별로 신경을 못 썻지만, 소문으로 들은 것이 있었다.

"큭! 겨우 NPC 따위에게 당했다 이 말이야?"

NPC라고 다 약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저가, 그것도 대(大)철십자 길드의 유저가 NPC에게 당했다는 것은 수치였다.

"추적에 능한 길드원들을 보내 놈들의 뒤를 계속 쫓고 있는 중이야. 이유는 몰라도 그놈들이 아직 뇌제의 홀을 손에 넣진 못한 것 같대."

"훗, 다행이군. 아직 기회가 있어서."

뇌제의 홀은 반드시 철십자 길드에서 차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놈들이 훔쳐 갔던 반크의 열쇠를 빼앗아야 한다.

"그런데 대장, 김필중이는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이대로 병원에 둘 거야?"

열흘 전 김필중과 부하 녀석들이 엉망진창으로 당해서 병원에 실려 갔다. 다른 녀석들은 치료받고 바로 퇴원했지만ㅡ 김필중은 아직도 입원해 있었다.

완쾌가 덜된 것도 아니고 이미 완쾌되었다.

하지만 병원비를 내지 못해 못나오고 있었다.

지금도 하루에 몇 번이나 전화가 와서 병원비 좀 내 달라고 조르고 있지만 무시하고 있는 베히모스였다.

"흥. 그딴 병신은 내버려 뒤. 어떻게 한 놈에게 스무 명이 두들겨 맞을 수 있어?"

베히모스는 감히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부하들을 데리고나간 김필중을 용서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그러게. 도데체 일진 망신은 혼자 다 시키고 있다니까."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없는 김필중을 마구 씹으며 황궁을 빠져나갔다.

마노스 제국의 변경에 위피한 헤레타 지역.

과거 헤레타 왕국이 있던 곳으로 이곳에 유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쓱한 뒷골목을 전전하던 그는 어느 허름한 술집에 들어갔다.

"무엇을 마실 거유?"

꾀죄죄한 몰골의 주인이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유한은 썰렁한 주점 안을 쓱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따.

"이곳에 피보다 더 진한 '진홍의 눈물'이 있다고 하던데....."

그의 입에서 진홍의 눈물이란 단어가 나오자 주인장은 흠칫했다.

그러나 곧 태연한 안색으로 물었다.

"도둑 길드에서 보낸 자가 당신이유?"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그들을 통해 연락을 넣은 당사자입니다."

"따라오시우."

유한이 주인장을 따라간 곳은 술집 뒤에 있는 낡은 집이었다.

그곳은 마치 피난민들이 임시로 살기 위해 지은것처럼 허름한 판자집이었는데, 그 안에 눈빛이 맑은 NPC 둘이 있었다.

"그럼 이야기들 나누시우."

주인장이 나가자 둘 중 나이가 많아 보이는 NPC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댁이 우리 헤레타 해방군에 편지를 보낸 사람이오?"

헤레타 해방군.

유한은 채린에게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따.

채린은 예전에 바람의 날개를 구하기 위해 엘프의 숲으로 가던 중, 한 무리의 유민 NPC를 만났다.

그녀는 마노스 제국에 나라를 잃은 헤레타 왕국의 유민들로부터 한 가지 퀘스트를 받았다.

그들이 어렵게 모은 군자금을 해방군에 은밀히 전달해 달라는 것이다.

헤레타 해방군은 망국의 기사들이 조직해 활동하고 있는 단체였다.

언젠가 왕국을 되찾기를 소원하면서.

유한은 도둑 길드를 통해 헤레타 해방군에 편지를 1통 보냈다.

아까 뒷골목의 술집은 해방군들의 접선 장소였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냐고 묻지 않소?"

"예, 제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유한이 시인하자 젊어 보이는 NPC가 다소 흥분해 물었다.

"우리에게 무기를 무상으로 제공해 준다는 게 사실이오?"

"물론입니다. 다만 편지에도 나와 있다시피 이쪽에서 원하는 일을 하나 처리해 주어야 합니다."

유한의 말에 방 안은 잠시 침묵에 싸였다.

대장 NPC가 가타부타 말을 않고 있자 옆의 부관 NPC가 입을 열었다.

"각하.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헤레타 왕국은 영원히 마노스 제국에 합병될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번에 반드시 봉기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자가 무엇을 요구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잖습니까?"

부관의 종용에 대장 NPC는 결정을 내렸다.

"좋소. 당신의 요구를 받아들이겠소."

"그럼 일차 분으로 가져온 칼과 창 백 점을 넘기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물건은......"

유한은 그 뒤로도 해방군 NPC들과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레타 공화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마노스 제국의 초소.

평소에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나라여서 긴장감이 감도는 이곳에 짙은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단의 인물들이 은밀히 접근하고 있어서였다.

"흐아암, 잠 온다."

"어이, 졸다 기사님께 들키면 혼나. 그러니 정신 차리라고."

2명의 병사들이 잠을 쫓으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러나 은밀히 접근하는 인물들은 이들의 이목을 속인채 거의 다 가왔고, 곧 석궁을 꺼내 발사했다.

쉬익!

"윽!"

"억!"

2명의 초병이 쓰러지자 일단의 인물들은 목책을 타 넘어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경계를 서는 보초들을 제거하고 식량 창고와 막사에 불을 질렀다.

"불이야!"

처음에는 화재가 난 줄로만 알고 화들짝 놀라 뛰쳐나온 병사들은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베레타 공화국의 병사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적이다!"

"적이 침입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베레타 공화국의 병사들이었지만, 설마 자신들을 공격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나 그래도 대륙 최강이라 자부하는 제국의 병사들.

그들은 혼란을 수습한 뒤 초소 안으로 난입한 적들을 격퇴했다.

"놈들을 쫓아라!"

화가 잔뜩 난 기사 NPC가 퇴각하는 베레타 공화국 병사들의 뒤를 쫗기 시작했다.

그러자 병사 NPC들도 이들의 뒤를 쫓았다.

드림맥스에서 평소에 국경 초소를 지키는 병사들에게 부여한 임무는 간단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상단과 행인들을 감시하고, 적의 도발이 있을 시 이를 격퇴하고 응징하라는 것이다.

기사와 병사들은 프로그램된 임무에 아주 충실했다.

그러나 국경선을 넘자 어찌 된 영문인지 베레타 공화국 병사들 모습이 싹 사라지고 없었따.

"이만 돌아가심이....."

고참 병사 NPC 하나가 적진 깊숙이 들어왔음을 상기시켰다.

"닥쳐라! 놈들은 야간에 침투해 나의 부하들을 죽였다. 그런데 어찌 이대로 돌아간단 말이냐!"

머리 끝까지 화가 난 기사 NPC는 돌아가기는 커녕 가까운 곳에 위치한 베레타 공화국의 초소로 병사들을 이끌고 갔다.

당연히 그곳을 공격할 심산이었다.

격퇴하고 응징하라는 프로그램은 기사 NPC의 행동을 그렇게 유도했다.

스스슥!

스슥!

미노스 제국의 병사들이 사라지자 숲 속에서 베레타 공화국의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마치 유령처럼 땅을 뚫고 나타났는데, 사전에 파 놓은 비트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후후후, 바보 같은 녀석들."

선두에 선 두 NPC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그들은 바로 유한과 허름한 판잦비에서 대화를 나우었던 레지스탕스 NPC들이었다.

유한이 그들에게 건네준 무구는 베레타 공화국의 무구를 복제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의 요구 조건은 베레타 공화국 병사로 위장해 마노스 제국과 베레타 공화국 간에 싸움을 붙이라는 것.

"이제 두 나라가 전쟁에 돌입하겠지요?"

"아마도 그렇겠지."

대장 NPC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헤레타 왕국이 독립할 수 있을까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회를 엿볼 수는 있겠지.:

대화를 나눈 두 NPC는 부하들과 함께 자신들의 거점으로 사라졌다.

쾅!

자신의 집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던 베히모스는 뜻밖의 보고에 책상을 부서져라 내려쳤다.

"이게 정말 사실이야?"

"그, 그래. 방금 국경 지바으이 사령관으로부터 전령이 왔는데 몇 번이고 확인한 내용이야."

전령이 가져온 소식이란 다름이 아니었다.

바로 베히모스가 반대했던 전쟁이 터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전력이 만만찮은 베레타 공화국과.

"북쪽 국겨의 사령관이 NPC였지?

"응."

부관을 맡은 유저의 대답에 그는 뿌드득 이를 갈았따.

"내 그토록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건만....."

멍청한 NPC들이 자신의 야망을 망친다고 생각되었따.

그러나 NPC들이 이 소리를 들었다면 무척 억울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프로그램대로 행동할 뿐이니까.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NPC들은 그들 나름의 프로그램된 성격과 임무가 있었고, 어떤 일이 발생하면 프로글매 된 대로 움직이고 대응한다.

그 결과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세상이 바로 아르페디아 대륙이었따.

[꿈의 대륙 아르페디아! 무한의 자유를 누리십시오!]

드림맥스의 광고 문구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으.......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빨리 전쟁을 끈내눈 수밖에.'

바보같은 국경 사령관이 전쟁을 일으켰지만, 한번 벌어진 전쟁을 되물릴 수는 없었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조기에 전력을 집중해 한시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는 것이 나았다.

"여제를 만나러 가야겠다."

"전쟁을 하는 거야?"

"이왕 벌어진 일. 이번 전쟁을 기회로 삼아 제국 내에서 나와 길드의 입지를 굳혀야지."

베히모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 서서 집무실을 나갔다.

드디어 전쟁이 터졌다.

유한이 부린 수작으로 마노스 제국과 베레타 공화국이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그하하핫! 이걸로 됐다!"

유한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이것이 만약 현실이었으면 유한은 정말 손가락질 받아도 마땅한 놈이었다.

그러나 이건 가상현실이다.

그것도 게임.

게임 속에서 유저가 전쟁을 일으키던, 평화의 사도가 되던 그건 맘대로 였던 것디ㅏ.

벌써부터 내렸던 무기의 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원래의 가격에 미치지 못하지만, 조금 잇으면 이마저도 돌파할 기세.

그때를 노려 유한은 창고에 재어 놓았던 무구들을 방출할 셈이었다.

"그런데, 베레타 공화국과 그로지아 왕국과의 협상은 잘 되고 있더?"

유한의 물음에 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지스가 협상 중인데 조만간 계약을 따 낼 수 있을 것 같데."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참 전, 리지스는 무기 카탈로그를 챙겨 들고 그로지아 왕국과 베레타 공화국을 방문했다.

무기를 팔기 위해서다.

평상시라면 당연히 이들 왕국에 납품하는 상단이나 길드가 있어 납품이 불가능했겠지만, 전쟁이 터져 상황이 바뀌었다.

평화시에 준해서 무기를 준비했던 상단들은 절대 단시간에 전군을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렇다면 계약은 따 놓은 당상.

지금 베레타 공화국은 서둘러 무기를 사려 했고, 전쟁 당사자가 아닌 그로지아 왕국도 매입을 서두르고 있었따.

베레타 공화국 다음에 자신들이 될 수 있었고, 또 베레타 공화국에서 원병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흐흐흐, 리지스에게 최대한 비싼 가격에 팔라고 해. 지금이 아니면 바가지 씌울 기회가 별로 없을 테니까."

유한이 그렇게 웃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메시지 창이 하나 떴다.

- 쿠궁! [죽음의 상인] 칭호를 받으셨습니다.

-명성이 2,000 하락합니다.

'컥! 이건 또 뭐야?'

기껏 힘드렉 올려 놓았던 명성이 대폭 깎였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런 거란 말인가.

유한은 얼른 정보창을 열어 죽음의 상인에 대해 알아보았다.

[죽음의 상인]

설명 : 무기를 팔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덕 상인.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의 목숨으로 초개처럼 여기고, 전쟁까지 일으키길 불사한다.

생산직이라면 조건을 충족시켰을 시 누구나 받을 수 있다.

효과 : 죽음의 상인 칭호를 달면 생산이나 판매를 20% 높이는 것이 가능하지만, 전쟁 지역 주민 NPC들과의 친밀도는 최악이 된다.

'뭐 이런 칭호도 다 있어?'

유한이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3년 가까이 해왔지만, 이런 칭호가 있다는 소린 금시초문이었따.

하지만, 이를 어쩌랴.

이미 받아 버린 칭호인 것을.

'혹 리지스도?'

자신이 받았다면 이번 작전에 두 팔 걷고 나선 리지스도 받았을 것 같다.

그래서 귓말을 보냈다.

-야, 리지스

-바쁜데 왜 자꾸 부르는 거야?

-너 혹시 죽음의 상인이란 칭호 받지 않았따냐?

-아니.

아무래도 주동자만 받는 칭호인 모양이다.

자신에게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채린이도 멀쩡하니까.

아무튼 불명예 칭호를 받았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다

"왜? 무슨 일이야? 그 칭호는 대체 뭐니?"

유한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서 있자 채린이 물었다.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자랑도 아닌데 죽음의 상인 칭호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