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크리스마스 이벤트 (73/143)

8.크리스마스 이벤트

한동안 기쁨에 날뛰던 유한 일행은 네시가 떨어트린 아이템들을 회수하면 감정에 들어갔다.

[네시의 비늘]

설명: 네시의 아가미를 덮고 있던 비늘 , 잠수할 때 이것을 입에 물면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아가미 비늘이었다. 물속에서도 마음대로 숨 쉴 수 있게 하는 레어 아이템

'이걸 입수한 다음에 운석을 건지는 게 정서적인 순서였나?'

유한은 어쩐지 그랬을 것 같다고 생각되었지만 ,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방법이야 달랐지만 어쨋든 운석을 손에 넣는 것에 성공했으니까.

"이상하네 , 네시가 스나이퍼의 활도 주던가?"

"우와! 이것 보세요 . 성령의 묵주에요."

"이건 저주받은 기사의 갑옷 같은데?"

네시가 뱉은 아이템 중에는 엉뚱한 것들도 끼여 있었다.

접누 네시가 준다고 알려지지 않았던 아이템과 무구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섬광의 레이피어의 검면에

'발리안' 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건 아까 우리를 공격했던 사람들 거란 말인데...."

"네시한테 당했나 보군요."

일행의 대박은 발리안 일당 덕분이었다. 그들이 네시의 피를 깍아 먹지 않았다면 유한 일행은 네시를 잡지 못했을 수도.

그러나 누구도 그들을 위해 애도하거나 고마워하지는 않았다.

"일단 일을 다 끝마쳤으니 돌아가자고."

모두들 아이템을 분배해서 인벤에 집어 넣었다. 넉넉하게 채워진 인벤을 보자니 먹지도 않았는데 포만감이 느껴졌다.

유한 일행은 요트를 타고 무인도를 떠났다. 그들이 휴양지로 부두로 돌아오자 요트 주인은 펄펄 뛰었다. 멀쩡히 대여해 준 배의 돗대가 부러졌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유한이 득템한 아이템 중 비싸 보이는 것을 하나 찔러 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 공손한 태도로 돌아갔다.

"돗대 부러진 건 미안하게 됐습니다. 네시가 덤벼서요."

"네 , 네시를 만났단 말입니까!"

필드 보스를 만났다고 하니 주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행히 놈을 쓰러트릴 수 있었습니다."

"네시를 물 위에서 죽였다고요!"

유한이 둘러댄 말에 살이 붙어 만들어진 소문은 순식간에 휴양지 거리에 퍼져 나갔다.

배 타고 놀러갔던 사람들이 네시를 때려잡았다고 하니 , 유저들의 놀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뭐? 물 위에서 네시를 잡은 사람이 있어?"

"그것도 딸랑 여섯 명이서 조각배 타고 잡았단다."

"헐!그 님들 대체 레벨이 얼마임?"

수많은 유저들이 진실을 모르고 떠들어 대는 사이, 논란의 주인공인 유한 일행은 귀련의 벌장으로 돌아갔다. 운석을 다른 사람ㄷ르의 눈에 띄지 않게 옮긴 것은 물론이다.

도착하자마자 파우린은 본캐인 명장 귀련으로 되돌아 갔다.

이제부터 시작해야 할 작업이 있기 때문이다.

"자, 동생. 이제 방띵할 시간이야."

"그러지요."

유한은 운석에 정을 대고 망치로 때렸다.

망치로 몇 번 두들기자 운석은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혹시 모르니까......,'

유한은 퀘스트창을 떠올려 보았다. 자칫 운석을 쪼갠 것 때문에 구센도르프의 퀘스트 조건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흐흐,그럼 이거 조금만 가져다줘도 되는 건가?'

생각해 보면,구센도르프는 광물을 갖고 오라고 했지,'얼마큼' 가지고 오라고는 안했다. 사악한 유한은 구센도르프에게는 자갈만큼만 떼 주고,나머지는 자신이 몽땅 챙기기로 마음 먹었다.

'이제 누님도 약속을 지키셔야죠?"

"그래, 신의 광물을 제련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귀련은 예전에 드워프의 지하 도시 유적에서 얻은 비전서를 꺼냈다. 그것을 유한에게 보여 준 그녀는 직접 운석의 일부를 떼 내서 제련 작업을 했다.

"일단은 가루가 될 정도로 빻아서....,"

귀련은 운석을 곱게 가루로 만들고, 그 가루를 미리 준비해 둔 광천수(鑛泉水)에 넣었다. 불순물은 광천수 밑바닥에 가라앉았고, 운석의 주성분들은 광천수와 반응하여 하얀 결정을 이루기 시작했다.

"오!이것이 신의 광물인가?"

"우와, 예쁘다!"

유한은 물론이고 일행 모두가 귀련이 제련하는  광물에 시선을 집중했다.

귀련은 완성된 결정을 꺼내 다시 고로에 녹였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가 뻘건 쇳물이 흘러내렸다. 귀련이 그 쇳물을 틀에 받아 식히자 은빛의 반투명한 금속이 만들어 졌다.

유한은 제련된 금속에 손을 대어 확인해 보았다.

[스타레이]

설명:신의 광물을 제련해 얻을 숭 있는 천상의 금속. 지상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희귀 자원이다. 

"근데 이걸 어디에 쓰나요?"

에이린의 물음에 유한은 물론이고 귀련도 응답하지 못했다.

이 금속을 제련하는 것은 드워프 비전이고 , 드워프가 뭔가 만들 때 이 금속을 사용한다는 것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지 자세한 쓰임새는 그들도 몰랐다.

"그 , 글쎄 무구 만든느데 쓰지 않을까?"

"드워프가 환장하며 찾는 거니까 고급 무기를 만들 때 쓰이겠지."

적당히 둘러댄 두 사람이었다.

귀련은 재빨리 유한에게 궛속말을 보냈다.

-구센도르프인지 , 굳센돌이이인지한테 가거든 어드 쓰나 물어봐.

그리고 알아내면 나에게도 알려 줘.

-알겠습니다 , 누님 . 알아내면 곧장 알려 드리죠.

안 그래도 유한도 그러려고 마음먹고 있던 중이었다.

아무리 유니크 아이템이라도 쓸모가 없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법이까.

유한은 곧장 떠날 준비를 했다. 동료들이 올 때 타고 온 기구가 있기에 그것을 타고 노스아크로 가면 되었다.

"덕분에 재미나게 놀았어. 언제 다시 기회가 되면 또 만나서 모험을 즐겨 보자."

"예 , 조만간 다시 만났으면 좋겠네요."

유한은 귀련과 악수를 나누고 기구에 올랐다. 뜨거운 공기를 머금은 기구가 하늘로 오르자 귀련은 손을 흔들어 환송했다.

"잘 가. 먼 길 조심하고."

"안녕히 계세요."

유한 일행은 귀련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기구는 순풍을 타고 북쪽으로 떠났다. 시끌벅적했던 율리아 계곡을 뒤로하고서.

노스아크의 수도 베르겐에 도착한 유한은 곧장 구센도르프를 찾아갔다.

그를 기억하고 있는지 구센도르프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때? 고생은 실컷 했나?"

말해는 투로 봐서 구센도르프는 유한이 실패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유한이 자갈만한 운석 조각을 꺼내 들자 영 딴판으로 변했다.

"그 , 그 , 그건 신의 광물!"

"말씀하신 대로 고생 실컷 했습니다. 그래도 요만한 놈을 하나 건질 수 있었죠."

구센도르프는 유한이 던진 운석 조각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그의 손에 신의 광물이 들어가자 곧장 유한의 눈앞에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안내창이 떠올랐다.

-구센도르프의 의뢰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경험치 2,000을 얻었습니다.

-명성 500 올랐습니다.

-수동 선반 , 용접기 , 절단기 , 풍력 드릴 , 증기 프레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고했네 , 정말 해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네."

"약속대로 공작기계들은 공짜로 주시는 거지요?"

"암! 주지! 주지말고!"

이렇게 좋아하는 구센도르프를 보자니 , 유한은 새삼 신의 광물이 무엇에 쓰이는지 궁금해졌다.

신의 광물을 제련해 얻는 스타레이. 과연 드워프들은 그것을 어디에 사용하는 것일까?

"여기 주소를 적어 주게 . 그럼 내가 기계들을 그쪽으로 바로 배송해 주지 . 아차 , 이런! 사용법이 적힌 책자를 잊을 뻔했군."

-공작 기계 사용 설명서를 얻었습니다. 책을 다 읽으면 사용법을 터득할 수 있고 , 익숙해지면 해당 공작기계를 다루는 스킬들을 습득하게 됩니다.

"설명은 물론 그림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배우는데 크게 문제는 없을 걸세."

유한에게 책을 건네준 구센도르프는 곧장 돌아섰다.

신의 광물을 얻었으니 전해져 온 비전을 한번 시험해보려는 모양이다. 그런 그를 유한이 붙들었다.

"왜 그러는가? 나랑 볼일은 다 끝났을 텐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서요. 신의 광물이란 거 대체 어디에 쓰는 겁니까?"

"알아서 뭘 하겠나? 자네에겐 인연이 없는 물건인데."

구센도르프의 얼굴엔 얕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유한이 더 큰 운석 덩어리를 갖고 있고 , 제련법까지 익히고 있는 것을 알면 그런 표정을 짖지 못할 것이다.

"인연은 없겠지만 궁금해서요. 그걸 제련해서 합금에 쓰는 겁니까? 검이나 방어구에 섞어 넣나요?"

"후후후, 이래서 인간은 안 된다는 거지. 어떻게든 치고 받고 싸우는 용도로밖에 만드려고 하지 않으니."

"무구를 만드는 게 아닙니까?"

구센도르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그런 데 쓰는 게 아니야. 이건 보다 건설적인 데 사용하는 거란 말이야. 우리 드워프들의 한을 풀고 열망을 이루어 줄....."

"그게 대체 뭡니까?"

유한이 계속 꼬치꼬치 물어보자 , 구센도르프는 인상을 쓰면서 그를 가게 밖으로 몰아냈다.

"더 이상 말해 줄 수 없어! 나도 잘 모르는 데다가 연구중이야! 알고 있는 것도 남에게 알려 줄 순 없다고!"

순식간에 내몰린 유한은 가게 문을 두들기며 구센도르프를 불러 봤지만 , 그는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채린이 유한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왜 그래? 기계를 그냥 떼먹힌 거야?"

"아니 , 그건 아니고 다른 거야."

아무래도 스타레이의 비밀을 푸는 건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았다. 구센도르프의 태도로 보건대 , 다른 드워프들도 쉽게 가르쳐 줄 것 같지 않고.

'갈리라면 가르쳐 줬을까?'

자신을 조수로 삼아 이것저것 가르쳐 줬던 드워프 갈리. 인간에게 기술을 공개하고 , 동일한 조건에서 서로 경쟁을 펼쳐야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그라면 스트라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줬을지 모른다.

그러나 갈리는 메카 드래곤 사건 이후로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갔는지 종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살짝 의심나는 곳이 한 군데 있긴 하지만.....

"뭘 생각해?"

"아니 , 별거 아냐."

유한의 의심나는 곳에 대한 약간의 미련을 버렸다. 그곳에 갈리가 있다 해도 자신은 그와 만날 수 없다. 다른 계기가 생기지 않는 이상은.

구센도르프의 의뢰를 끝낸 유한은 곧장 케이트 산맥의 대장간으로 돌아왔다.

대장간 주변에는 목재라든가 , 벽돌 같은 자재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송코에게 증축할 준비를 해 놓으라고 했는데 , 착실히 잘 준비해 놓은 모양이다.

"잘 갔다 왔어?"

"예 , 그런데 이분은?"

유한은 송코 옆에 있는 안경 쓴 노신사를 바라보았다.

이미 송코에게 들은 것이 있어 누군지 추측은 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 교수님이셔."

"아비지라고 하네 , 여기 흥수...아니 , 송코에게 지그군 이야길 많이 들었어. 꽤 실력 있는 대장장이라며?"

유한은 아비지가 건네는 손을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 , 아버지 님 .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핫 , 아버지가 아니라 아비지일세 삼국시대 때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은 백제의 목수 이름을 땃지."

송코의 말로는 현실에서도 건축학을 가르치는 교수라고 하는데 , 게임 세계에서도 목수로 제법 한 실력 발휘하고 있는 모양이다.

유한은 아비지의 이름 앞에 있는 '대목' 이란 칭호에 계속 눈길이 갔다.

"철공소를 짓는다지? 그래 , 기계들은 사 두었나?"

"배송해 준다던데.....아 , 저기 오고 있네요."

때맞춰 NPC 운송업자가 유한의 기계들을 가지고 왔다. 커다란 5개의 나무 상자에는 노스아크의 구센도르프가 보냈다는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흠 , 그래 . 이제 기계도 도착했으니 철공소를 한번 지어 볼까?"

사실 아비지는 서둘러 건물을 지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기계 설비에 맞는 공간을 생각하고 짓기 위함이고 , 작업 라인에 맞춰 철공소의 구조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직접 기계를 보지 못한 그로서 섣불리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이게 수동 선반인가?"

"증기 프레스. 이제 이걸로 무구를 막 찍어 만들 수 있겠네."

언제 접속했는지 , 리지스가 찾아봐 공작기계들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돈을 벌어 줄 복덩이들이 아닌가.

"좋아 , 공작 기계는 이런 순서로 배치해서 작업 라인을 구축하면 된다 생각하는데 , 지그 군은 어찌 보나?"

"예 , 그러면 저도 편할 것 같네요."

"최종 결정이 되자 아비지는 철공소의 설계도를 작성하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최종 결정이 되자 아비지는 철공소의 설계도를 작성하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철공소는 원래 대장간 건물과 이어지게 짓기로 했고, 기존의 건물도 이왕에 싹 탈바꿈하기로 했다. 제법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지만, 유한은 즐겁게 투자할 수 있었다.

공작기계를 사려고 모았던 돈이 굳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어이, 거기! 기둥 똑바로 박아! 비스듬하잖아!"

"누가 거기 벽돌을 쌓으랬나! 거긴 창문 자리야!"

"그쪽에 마감이 소홀하잖나!"

며칠 동안 아비지의 호통 소리가 대장간 주변에 울려 퍼졌다.

그의 휘하 목수 NPX들은 연방 구슬땀을 흘렸고, 송코도 교수님 눈살에 부지런히 오가며 벽돌을 쌓고, 회칠을 했다.

그사이 유한은 공작기계 사용법을 익혔다. 공작기계 사용 설명서를 펼쳐 들자 빛과 함께 책장들이 파라락 넘어갔다.

-수동 선반 사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용접기 사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절단기 사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풍력 드릴 사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기 프레스의 사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용법을 숙지한 유한은 공작기계들을 하나하나 조작해 보았다.

'오오! 홈을  파는 게 이리 쉽다니!'

유한은 한 번에 매끈하게 깎인 쇳덩이를 보며 연방 감탄했다.

예전엔 홈을 파고 깎다 보면 다소 빗나가거나 깊게 파여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었는데, 선반을 비롯해 여러 공작기계들을 가지고 작업을 하니 오차와 실패가 훨씬 줄어들었자.

예전엔 낑깅대며 철판에 구멍을 뚫던 일도 풍력 드릴 한 방에 간단히 해결되었다. 두꺼운 철판도 증기 프레스를 사용하니 보다 다양한 모양을 찍어 내고 자를 수 있었다.

그렇게 유한이 시험적으로 몇 차례 기계를 만져 보는 사이 시간이 흘러 철공소가 완공되었다.

"오! 대단한데!"

"정말 번듯해 보여."

"이건 공방이 아니라 공장이야, 공장!"

지그 대장간의 단골 유저들은 철공소의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통나무로 얼기설기 지었던 대장간은 온데간데없고, 하얗게 회를 바른 청색 지붕의 커다란 건물들이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아아, 진짜 공장 사장이 된 기분이다.'

유한은 뭐라 자세히 말하기 어려운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커다란 철공소 입구에 걸린 '지그 철공소'라는 청동현판이 그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철공소 입구에 색종이 테이프들이 가로로 걸려 있었다.

아비지는 유한에게 가위를 건네주었다. 유한은 TV에서 봤던 대로 가위로 테이프를 자르며 지그 철공소의 개업을 알렸다.

펑! 퍼퍼펑!

"축하합니다, 지그 님."

"지그 오빠, 축하요!"

폭죽이 터지고, 주변에서 단골들과 동료들의 축하 인사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게임 시스템도 팡파르를 울리며 유한을 축하해 주었다.

-축하합니다, 지그 님. [사장] 칭호를 얻으셨습니다.

입이 함지막만하게 벌어졌던 유한은 포포가 철공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삐이! 삐이!"

티쳐스 사건 이후로 곰만 한 덩치가 된 포포는 이전보다 먹성이 더 좋아진 상태였다. 녀석은 신기하게 생긴 쇳덩이를 보고 연방 침을 흘렸다.

"야, 인마. 스토오오-옵!"

기겁한 유한이 포포에게 달려가는 장면은 그날 공식 홈페이지에서 최고의 코믹 스크린샷으로 선정되었다.

하마터면 개업과 동시에 폐업을 맞을 뻔한 지그 철공소는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생산 작업에 들어갔다.

예전의 대장간 자리는 '제련방'으로 개칭되었고, 생산과 수리 작업은 공작기계가 들어서 철공소에서 이루어졌다. 유한의 개인 작업실도 고스란히 남았고, 그 옆에 '사장실'과 '사장 숙소'라는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NPC들의 숙소와 자재 창고도 깔끔하게 개조되었고, 그밖에 손님 대기실 같은 공간들도 새로이 생겼다.

더불어 리지스가 만든 가게도 철공소에 걸맞게 '직판장'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바뀌었다.

"근데 생산량은 왜 이 모양이냐고?"

철공소가 완공된 지 사흘. 리지스가 유한을 찾아와 투덜거렸다.

무구를 산더미같이 쏟아 낼 것이라는 그녀의 예상과 달리 철공소의 초기의 생산량은 이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NPC 일꾼들은 공작기계를 '사장님이 다루는 신물'이라 여기고 감히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유한은 부지런히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 익숙해지지는 못한 상태였다.

"곧 나아질 테니 좀 기다리고 있어."

"언제쯤? 경쟁 업체들이 수두룩해졌을 때?"

"으이그, 하여간 성질도....."

공작기계는 단순히 사용할 줄 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기계가 가진 기능들을 숙지하고 응용할 줄 알아야 비로소 익숙해졌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됐다! 이젠 쓰는 법을 제대로 알겠어!"

유한이 몇 가지 기능들을 응용해서 시계 부품들을 만들어 내자 반가운 효과음과 함께 안내창이 떠올랐다.

[엔제니어] 칭호를 얻었습니다.

공작기계를 다루는 스킬들을 습득하게 됩니다.

[선반 가공] 스킬을 익혔습니다. 선반으로 다양한 아이템을 제작 할 수 있게 됩니다.

[용접] 스킬을 익혔습니다. 금속을 보다 쉽고 빠르게 붙일 수 있습니다.

[절단] 스킬을 익혔습니다. 두꺼운 철판을 자를 수 있게 됩니다.

[천공] 스킬을 익혔습니다. 구멍을 뚫거나 팔 수 있습니다.

[압력 가공] 스킬을 익혔습니다. 금속을 손쉽게 누르거나 가공할 수 있게 됩니다.

"호오, 이제 대장장이에서 엔지니어가 된 건가?"

새로운 칭호와 함께 각 공작기계와 관련된 스킬들을 배우자, 어쩐지 신분이 상승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대장장이보다 엔지니어 쪽이 어감이 더 좋지 않은가.

"사장님, 편지가 왔습니다."

일꾼들이 유한을 부르는 호칭도 바뀌었다. 예전엔 그저 지그 님 정도로 불렀는데, 이제 확실히 사장님이라고 불러 주고 있었다.

'음홧홧홧!"

확실히 이런 맛에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한은 흐뭇한 기분으로 일꾼이 가지고 온 편지를 읽어 보았다.

지그 님께,

안녕하십니까, 저 상인 홉스입니다.

편지를 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그 님의 철공소 개업을 축하드림과 동시에 한 가지 상품을 제작 의뢰하기 위함입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제가 모르는 성인(聖人)의 탄생을 기념한다며 나무에 여러 가지 장식을 달아 꾸미고 있습니다.그것을 크리스마스트리라고 부르더군요.

트리 장식을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지라, 제작 의뢰를 요청합니다. 황동으로 된 별과 작은 종을 각각 300개씩 만들어 주십시오. 사례는 톡톡히 하겠습니다.

서둘러 주시기를 청하며 이만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항상 건강히 지내시킬 바랍니다. -홉스가.

"크리스마스라....."

그러고 보면 매년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크리스마스 이벤트가 벌어졌다.

샅나 NPC가 나타나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기도 하고, 선물 배달을 부탁하기도 했다. 구세군 NPC도 등장해서 불우이웃 돕기 성금도 받았다. 그것도 게임 머니가 아닌 ARS 요금으로다가.

-홉스의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까?

유한은 당연히 수락했다.

별로 어려워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주물 스킬이나 새로 입수한 공작기계들을 쓰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퀘스트보다 유한의 신경이 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잖아.'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바츠로 던전을 누비고 있었다.

바깥세상에는 캐롤이 울리고, 커플들이 솔로로 승천한 예수님을 모독하는 행태를 보였지만, 유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크리스마스는 달랐다.

어쩐지 캡슐이나 방 안에 들어앉아 있긴 싫었다.

예전과는 좀 달라지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은 바츠가 아니니 말이다.

유한은 잠시 게임을 종료하고 캡슐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와서 달력을 본 그는 지갑을 살짝 살펴봤다가 책상 위에 한 자리 차지한 돼지 저금통으로 고개를 돌렸다. 잔돈뿐이었지만, 그래도 중학교 때부터 조금씩 모아서 제법 묵직한 무게를 자랑하고 있었다.

"흐음, 돼지를 잡으면 되겠군."

누구를 위해 잡아야 할지는 이미 결정해 두었다.

"어머, 눈이 오네."

채린은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없을 것이라고 웃음 짓던 기상 캐스터의 말과는 전혀 달랐다. 이브 저녁부터 함박눈이 내리는 걸 봐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 틀림없다.

"밖에 나가니?"

외출 준비를 하는 채린을 보고 어머니가 상냥하게 물었다. 이어지는 채린의 말에 신문을 보던 송태수의 귀가 쫑긋했다.

"네, 친구가 영화 보여 준댔어요."

"그래? 잘 다녀오려무나."

"잠깐!"

나가려는 채린을 송태수가 불러 세웠다. 그는 채린의 손에 손바닥만 한 길이의 금속봉을 쥐어 주었다.

"이게 뭐예요, 아빠? 크리스마스 선물?"

"어흠, 만약에 누가 너에게 치근덕대면 그 삼단봉을 늘여서 그냥 머리통을 후려갈.....커억!"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호신용 삼단봉은 채린의 손에서 어머니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삼단봉을 펴서 남편의 옆구리를 질러 버린 그녀의 동작은 그야말로 전광석화 그 자체.

극기도 창시자를 잡고 사는 채린의 어머니 황 여사는 세상이 모르는 은거고수였다.

"다녀오렴, 너무 늦지 말고."

"갔다 올게요."

집 밖을 나선 채린은 버스를 타고 시내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답게 시내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사방에 캐롤송이 울려 퍼졌다.

채린은 약속한 장소로 갔다. 커다란 트리가 세워진 중심부로 가니 까만 코트를 걸친 유한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쭈, 강유한, 제법 모양이 나는걸?'

저번에 드림맥스 리셉션 때도 생각했지만, 유한은 다시 만났을 때 보다 더 듬직해져있었다.

7년 만에 대면했을 땐 바람에라도 날아갈 것같이 비리비리했는데, 그사이 키도 제법 큰 것 같고 등이나 어깨도 넓어진 것 같았다. 근육도 탄탄해진 듯.

'일 년도 안 됐는데..... 운동이라도 하는 건가?'

채린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유한이 아버지의 도장에 나와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유한은 최근 극기도 도장에 하루도 빠짐없이 나가고 있었다. 김필중 일당을 박살 내고 나서 자신의 레벨 업을 실감하자, 더욱 실력을 높이는 일에 치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상대인 정현일에 대한 준비도 준비지만, 현실에서의 레벨 업을 즐기고 있다고나 할까.

"왔어?"

"응, 조금 늦었지?"

"괜찮아. 영화 시간까진 아직 남았으니까."

두 사람은 나란히 극장으로 걸어갔다. 극장 앞에 도착한 채린은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극장 외벽에 붙은 신작 간판을 보았기 때문이다.

'28년 후' 라는 제목의 영화 간판은 음침하고 핏빛 어린 분위기였고, 반쯤 썩은 좀비가 누런 이빨을 씨익 내밀고 있었다.

유한을 바라보는 채린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야, 걍유한. 설마 저건 아니겠지?"

"걱정 마. 우리가 볼 건 '골든 메이지' 니까."

옛날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국산 판타지 영화.

영화표까지 보여 준 뒤에야 채린은 안심하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녀석, 아직도 저런 거 무서워하네.'

피식 웃은 유한은 채린을 따라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좀 떨어진 곳에서 두 남자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유한은 그들의 감시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은 프로였다.

"여친이랑 데이트라.....팔자 좋구만. 지금 자기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두 남자 중에 키가 좀 작은 남자가 투덜거렸다.

"어떻게 할까요? 따라 들어갑니까?"

"걱정 마. 극장 안에서는 놈들도 손을 쓰지 못할 테니까."

상부의 지시 때문이라지만, 마음 같아선 유한이 확 당해 버렸으면 싶은 것이 두 사람의 진심이었다.

날도 날이었고, 날씨도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망할 놈의 허연 똥덩이 같으니라구."

이브에 외로움을 타는 두 감시자는 담배를 씹듯이 입에 물었다.

2시간 후, 채린과 유한은 극장을 나왔다.

여전히 영화 속의 활극에 취해 있는 채린은 아이처럼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주인공 너무 엇있지 않았어? 나도 차라리 마법사 캐릭터를 할 걸 그랬어."

"마법사라.....여 마법사 좋지."

유한은 노출과 방어도가 반비례하ㅡㄴ 여 마법사의 의상을 떠올렸다. 그걸 채린이 입은 모습을 생각하니 괜히 입끝이 씨익 말려 올라갔다.

"뭐야, 너 또 이상한 생각 했지?"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저번에 나 수영복 입은 거 훔쳐보던 표정과 똑같은데!"

"큭!"

채린이 부츠 굽으로 유한의 발등을 꾹 밝았다. 현실에서만 실감할 수 있는 생생한 곹ㅇ에 유한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무튼 고마워. 친구란 것들이 죄다 애인이랑 데이트한다고 오늘 심심하게 보낼 뻔했거든."

"하하, 의리 없는 친구들이네."

"그래도 한 사람은 의리를 지켜 줘서 고맙지, 뭐."

의리인가.

유한은 조금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사실 예전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도 충분했지만, 어쩐지 아쉽고 섭섭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인간이란 욕심이 많은 동물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가지면 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한다. 돈뿐만 아니고 사람의 마음까지.

"뭐, 의리 그 이상이면 더 고맙고."

채린이 싱긋이 웃으며 말하자, 유한의 마음이 순간 두근했다.

좀 전의 씁쓸한 기분이 확 날아갔다.

어쩌면 욕심을 부리는 것은 자기 혼자만이 아닐지도.

"아참, 이거 받아."

"이게 뭔데?"

"크리스마스 선물."

유한은 정성껏 포장한 작은 상자를 채린에게 넌네주었다. 고이 기른 돼지 저금통을 희생해 산 선물이었다.

"부적이야. 은목걸인데 목에 걸고 있으면 악몽 같은거 안꾼대."

"진짜? 효과 좋대?"

"좋다니까 한번 믿어 봐."

무서운 걸 싫어하는 녀석이니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좀 비싸긴 했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헤에,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난 줄게 하나도 없는데."

"괜찮아, 마음만으로도 충분해."

"안 돼, 안 돼! 난 빚지고는 못 산다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채린은 대뜸 유한에게 말했다.

"잠깐 눈 좀 감아 봐."

"눈?"

"감아 보래도."

설마 그건 아니겠지?

유한은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그것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채린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좋은 향기와 따스한 숨결이 전해진다 싶은 그 순간.

"이얏!"

쓰고 있던 털모자를 벗은 채린은 멍청하게 서 있는 유한의 머리에 깊숙히 씌워 주었다.

그리곤 유한이 버벅거리는 사이, 저만치 달아났다.

"야! 송채린 너!"

"머리 너무 차게 하고 다니지 마! 감기 걸려. 내념 크리스마스엔 내가 좀 더 좋은 선물 줄게."

그렇게 손을 흔들며 가 버리는 채린이었다.

달아나듯이 가 버린 그녀였지만, 유한에겐 섭섭한 마음 따위는 전혀 없었다. 물론 기대하던 키스가 아니라 좀 실망스럽긴 했어도.

'내년 크리스마스엔 좀 더 좋은 선물이라고 했겠다?'

은근히 기대가 되는 유한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서는 그의 맞은편에 웬 아저씨가 걸어오고 있었다. 양손을 점퍼 속에 넣고 가던 아저씨는 눈길에 쭉 미끄러졌다.

"어이쿠!"

"엇!"

유한은 엉겁결에 넘어지는 아저씨의 팔을 잡았다.

간신히 중심을 잡은 아저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고맙네, 학생."

"아니요, 뭐 그런 걸 가지고....."

어쩐지 아저씨의 얼굴을 어디서 본 듯하다고 생각한 순간, 유한은 전기가 온몸을 흝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유한이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저씨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전기충격기였다.

끼기기긱!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들 앞으로 검은색 스포츠카가 달려왔다. 아저씨는 유한을 차 안으로 밀어넣고 자신도 곧장 올라탔다.

"이, 이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더 두 감시자는 감짝 놀랐다. 드디어 열 받는 장면이 끝난다 싶었는데, 갑자기 사고가 터질 줄이야!

"기다려! 거기서!"

두 사람은 서둘러 스포츠카를 쫗아갓다.

그러나 사람의 다리로 차를 쫓아갈 수는 없는 노릇.

순식간에 속도를 높인 검은색 스포츠카는 도로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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