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정체가 드러나다
준결승 시합이 벌어지는 콜로세움.
유저들이 가득 찬 관중석 한편에서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그로지아의 왕립 콜로세움입니다.]
제법 그럴싸하게 중계석을 만들어 놓은 버추얼 에이지팀은 곳곳에 카메라맨들을 배치해두고 오늘 준결승 시합의 중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점이라면 항상 나오던 사이버 캐릭터 미루가 출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 캐릭터의 정기 점검 일이라나?
미루대신에 이정민의 옆에 자리한 사람은 꽤 럭겨실한 차림을 한 중년의 사내였다 .
[제 옆에는 오늘 배틀 풀로 경기를 해설 해주실 마스터 정 선생님이 자리해 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마스터 정입니다.]
마스터 정.
해설 위원의 정체를 안 시청자들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미루 대신 나온게 누군가 했더니 ,악명 높은 드림맥스의 부사장 정욱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정격욱의 캐릭터. 아무튼 게임사나 부사장을 해설 위원으로 초빙하다니, 방송국이나 게임시나 둘 다 보통이 아니었다.
버추얼 에이지팀이 이렇게까지 공을 들인 이유는 단순히 이대회가 예상외로 인기가 있어서도 아니고 , 내로라 하는 길드들이 참가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바츠가 컴백했다는 소문 , 그리고 그가 가짜일 수도 있다는 논란 때문이다.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 나타난 바츠가 가짜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인터넷에 좍 펴져 있었다.
대형 공략 사이트틀에서는 진실 유무를 두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고 , 그와 관련한 게시물과 리플이 홍수처럼 넘쳐 났다.
"야 , 정말 철십자 길드에 있는게 바츠가 맞냐?"
"글쎄 , 어제 숙소 앞에서 깽판이 벌어졌다던데 정작 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지?"
"로그아웃 중이었다고 하던데?"
"아냐 , 진짜는 랑스에 있었대 . 철십자 길드에 있는건 사칭을 하고 있는 가짜라는 거야."
"옌스인지 뭔지가 시비 걸려고 그런 건 아냐?"
"그래도 앞마당에서 깽판을 부리게 내버려 두다니.. 바츠답자 않잖아."
"그보다 , 외골수 캐릭터가 왜 철십자 길드랑 노는지 그게 더이상해."
반신반의하는 유저들은 어서 준결승시합이 시작되기를 바랐다.
그들은 논란의 불씨를 당긴 이대회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었다.
[네! 오늘 준경슬 첫 시합 , 가우리 길드와 레드 타이거 용병대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가우리 길드의 철갑기마대는 귀련의 갑옷을 그대로 장비하고 나왔다. 그들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유저들은 아낌 없는 환호성을 보내 주었다.
[아, 철갑기마대는 지난 경기와 달라진 점이 없는 거 같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태도일까요?]
[갑옷에 대해 신뢰를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술도 지난 시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네 , 그렇게 자신만만한 철갑기대마를 마은 레드 타이거 용병대는 과연 어떤 준비를 했을까요?]
카메라는 레드 타이거 용병대 쪽으로 돌아갔다. 시청자나 콜로세움에 모인 관중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가 8강 때까지 입고 있던 갑옷을 버려두고 상점표 가죽 갑옷을 입고나타났기 때문이다.
거기다 손에 든 스틱도 그냥 나무를 깍아 만든 볼품없는 물건이 아닌가.
[아! 레드 타이거 용병대 , 시합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경무장을 갖춰 기동성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 아닐까요?]
정경욱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그러나 이미 16강전에서 게세를 용병단이 경무장에 기동력으로 맞섰다가 철갑기마대에 패했다.
지금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무장은 게세르 용병단보다도 훨씬더 가벼워 보였다.
거기다 차림새로 보면 기동성으로 승부를 볼 듯했지만, 그들이 타고 있는 말을 살펴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대체 어쩌려는 생각일까요? 무기도 제대로 장비하지 않은 레드 타이거 용병대입니다, 거기다 안장에 커다란 보따리들을 주러주렁매달고 있습니다.]
[궁금하군요. 과연 저 보따리에 무엇이 들었을까요?]
궁금한 것은 유저들은 물론이고 , 철갑기마대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얼굴은 승리의 자신감으로 넘치고 있었다.
펑! 경시 시작을 알리는 폭죽이 울리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공격을 먼저 시작한 쪽은 철갑기마대로 , 3명의 공격수가패스를 주고 받으면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진영으로 넘어왔다.
그러자 물러설 것이라 생각했던레드타이거 용병대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대체 무슨 비장의 무기가 있다는거냐?'
협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귀련이 준 이 갑옷이라면 완벽하게 막아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것이란 없었다. 슈욱ㅡ 좌악 !
자칼이 안장에 달린 보따리 하나를 풀더니 안에 든 것을 집어던졌다. 시커멓고 무거운 그것은 공중에서 좍 펼쳐지며 공을몰고 가던 협부를 그대로 덮쳤다.
"헉 , 이것은!"
그물. 그것도 사슬을 꿰어 만든 강철 투망이었다.
자칼이 강철 투망에 연결된 와이어를 잡아당기자 투망이 쭉 오므라들면서 협부를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협부 님!"
근처에 잇던 철갑기마대원들이 협부를 구하러 달려왔다.
그들은 검으로 강철투망을 잘라 내려 했지만 , 유한이 밤을 새서 만든 강철 투망은 결코 호락호락하게 끊기지 않았다.
"어머나 , 저런 수도 있었네."
캐릭터 파우린으로 분해 경기를 관전하던 귀련은 꼼짝 달싹 못하는 협부를 보면 미소를 지었다.
철갑기마대의 무력에 눌려 시합이 시시하게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 다소 재미있어질 것 같았다. 다 그녀가 눈여본 지그란 녀석 덕분이었다.
"훗, 놀라긴 아직 일러 !"
자칼이 협부를 잡고 있는 사이 , 마검사 헨리가 품속에서 마법 스크롤을 하나 꺼내면서 외쳤다.
"마그네트(Magnet)!"
번쩍 빛이 맴돈 스크롤은 헨리의 손을 떠나 타켓으로 잡은 협부의 몸에 스며들었다.
철커덩! 철컹! 투망이 마치 본드라도 바른 듯 갑옷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투망뿐 아니라 투망을 자르려고 했던 동료들의 검과 갑옷도 달라붙기 시작했다.
-쿠쿵! 마그네트 마법에 맞았습니다. 5분동안 갑옷에 강력한
자기장이 형성됩니다.
불길한 효과음이 울리면 당황하는 협부의 눈앞에 안내창이 불쑥 떠올랐다.
"어떠냐? 인간 자석이 된 기분이?"
자칼이 다가와 씨익 웃었다.
"당, 당했다 !"
"크하핫! 네놈들 몽땅 다 자석으로 만들어 주마!"
당황한 철갑기마대가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 공과 함께 날아오는 스크롤을 보고 혼비백산했다.
마그네트 마법이 깃든 스크롤이다. 맞으면 협부처럼 인간 자석이 되고 말것이다.
기를 쓰고 스크롤을 피했지만, 결국 골키퍼를 포함해 두 명이 자석 신세가 되고 말았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는 그들의 몸에 강철 투망과 쇠사슬을 던져주고 돌아갔다.
물론 무인지경이 된 골대에 골을 밀어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아아! 뭐냐 저게!"
"절라 치사하다!"
환성과 야유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가우리 길드에서 심판에게 항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에서 시합 룰을 어긴 것도 아니고 , 1회용 마법 스크롤 역시 무기의 일종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습니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 , 상식을 뛰어넘는 공격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설마 마그네트 마법을 사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빈정거리는게 아니라 정경욱은 진짜 놀랐다.
마그네트 마법. 금속으로 된 아이템이 자성을 띠게 만든다.
얼핏 듣기에는 대단할 것 같지만 , 단지 그뿐이다. 딱히 타격을 입히거나 다른 유효한 효과를 만들지는 못한다.
한때 어느 무료했던 마법사 유저가 이 마법을 마스터하여 길드전에서 응용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상대의 무구뿐 아니라 자기네 무구마저도 봉쇄하는 자폭으로 이어졌다.
결국 던전의 ㅏ이템 탐색을 제외하면 마그네트 마법을 사용하는 일은 전무해졌다. 관련 인챈트나 스크롤 제조와 거래도 뚝 끊겼다.
그런데 그 사장된 마법을 지금 이 경기에서 사용하다니!
"머 , 머리 좀 썻구나."
예상 밖의 사태에 귀련은 식은땀 한 방울을 삐질 흘렸다. 배틀 플로라는 이름에 낚여 치고받고 싸울 줄만 알았지 , 저렇게 잔머리를 굴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여간, 대단한 녀석이라니까'
"비겁하군요.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이름이 아깝습니다!"
"후후후 , 진짜 강한 전사는 머리도 좋은 법이지."
실제 이 자석 작전을 구성한 건 유한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철갑 기마대 쪽에서 뭐라고 하건 자칼은 무시했다.
가우리 길드에선 인간 자석이 된 멤버를 교체하고 후보선수를 투입했다. 그러나 그런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최고의 갑옷이 이 시합만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거추장스러운 장매물만 되었다. 최상질의 철은 마그네틱 마법에 적중하자마자 강력한 자성을 띠어 버렸다.
[아, 철갑기마대 또 한 골을 실점합니다. 자석 공격에 대한 대책이 과연 없는 걸까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가 준비를 아주 제대로 하고 나왔습니다.]
정격욱의 말대로 레드 타이거 용병대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사용해도 넉넉할 정도의 마그네트 마법 스크롤을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벤치 쪽에선 유한이 간이 대장간을 열어 놓고 쇠사슬과 강철 투망 따위를 계속 제조해서 공급했다.
"제길! 이대로 당할 순 없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경기는 예상 밖으로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허를 찔린 상황에서 3골을 헌납한 가우리 길드는 작전타임을 부르곤 반격의 방안을 모색했다.
그때 협부에게 귀련이 보낸 궛속말이 날아왔다.
-사나이 근성으로 승부해!
황당하지만 , 협부는 궛속말에서 해답을 찾았다. 귀련이 이도하고 협부가 이해한 대응 방법은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자석 공격을 무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쭈, 저것들이
"재들도 엄청 근성가들인 모양입니다."
작전타임이 끝난후 , 철갑기마대는 모든 무구를 벗어놓고 나무 작대기 하나만 달랑 든 채로 경기장에 나왔다.
철갑기마대라는 이름이 무색한 천옷 차림이었지만 , 지금 이상황에선 최적의 대응책이었다.
"후후, 맨몸이라? 좋아! 받아 주지!"
이후 시합은 근성 넘치는 플레이로 진행해야 할 듯싶었다. 그러나 그역시 레드 타이거 용병대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들도 근성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사나이므로
근성넘치는 시합이 되 버린 준결승 첫 시합은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곧이어 준결승 두 번째 시합이 이어졌다.
철십자 길드는 아쉬람 길드를 압도하면 10:0의 대승리를 거두었다. 논란의 주인공인 케이지도 경기에 참가하여 다섯 골을 넣었다.
그러나 그는 또 10분이 채 되기 전에 교체해 나갔고 , 시합이 끝나기도 전에 장비를 벗고 경기장을 떠났다. 환호성을 보내던 관중들은 마지막엔 야유를 보냈다.
이전시합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인데다 , 케이지가 논란에 대한 일언반구 해명도 없이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인터뷰를 하러 온 버추얼 에이지 팀도 무시해 버렸다.
'자칼 아저씨 말대로 공격력이 더 약해진 것 같군.'
8강전 때와 달리 , 유한은 철십자 길드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덕분에 케이지의 실력이 다크나이트 길드와 시합할 때 보았던 것과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공격력이 조금 떨어진 것은 물론 , 몸의 움직임도 둔해져 있었다. 특히 9분쯤 뛰고 교체해 나갈 때는 무척 다급한 기색이었다.
'무너지 모르지만 대략 10분 정도가 한계인 건가?'
만약 그 10분이 지나면 어떻케 될까? 그 점이 대해서 생각하면 경기장을 나서던 유한은 바로 옆에 있던 기둥에 몸을 숨겼다.
맞은 편 복도에서 아이언사이드 기사단이 걸어왔다. 단지 그뿐이라면 상관없지만, 그들의 선두에 있는 두사람 때문에 엉겁결에 몸을 숨기고 말았다.
가는 실눈의 여자마법사와 창을 든 던치 큰 기사 낯익는 녀석들이었다.그러나 씨알만큼의 반가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터. 그들은 바로 유한의 손에 플레임 마운트의 용암에 빠져 죽었던 유나와 리트만이었다.
'아니 저것들이 왜 철십자 길드에?
그러고 보니 리트만이 유력한 길드와 연줄이 있다고 운운하던 것이 생각났다. 그 유력한 길드가 바로 철십자 길드였던 모양이다.
"케이지 녀석은?"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어. 우리도 얼른 돌아가야해 어제 같은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으니까"
옌스가 난동을 부린 사건으로 말미암아 철십자 길드원들 중 일부가 징계를 먹었다.
"제길 , 그 녀석 언제까지 가짜 바츠 행색을 할 거야?"
"내일 결승전이 끝일 테니 좀 참아 . 어차피 광전사의 피도 이제 한 병밖에 안 남았으니까."
광전사의 피? 그것이 무엇일까. 유한은 자세한 것을 알수 없었지만 , 그것이 케이지의 비정상인 강함과 연관이 있을 것임을 직감했다.
"쳇, 결승전이 끝나면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스텝인 녀석부터 족치러 가야겠다."
"대장장이 지그 녀석?"
"너도 그렇지만 , 그 녀석 덕분에 용암에서 아주 화끈하게 목욕을 했으니까."
리트만 덕분에 유나는 그때 그 끔찍한 일이 다시 기억에 떠올랐다. 가상현실이라지만 뼈와 살이 녹아내리는체험을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갖고 있던 아이템까지 몽땅 증발해서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호호호, 끓는 쇳물에 발가락부터 하나하나 집어넣는건 어때?"
"오, 그거 괜찬은데?"
두 사람은 끔찍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유한은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둘의 머리를 후려 갈기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자신은 생산직에 혼자였고 , 저쪽은 다수에 전원 전투직 유저였다. 나서면 그야말로 날 잡아 잡수 ~ 하는 것이나 다를게 없다.
'뭐 , 대 신 좋은 정보를 들었으니까.'
두 녀석이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안 것만도 소득이었다. 아이언사이드 기사단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유한은 서둘러 로그아웃을 하고 캡슐에서 나왔다.
광전사의 피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급했다. 공략 사이트에서 검색이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2
배틀 폴로 대회 마지막 날. 결승전이 열리는 콜로세움에 특별한 인사들이 인장했다. 바로 그로지아 주변국의 군주와 귀족 NPC들이었다.
그로지아 국왕츼 초청으로 결승전을 참관하러 온 그들중 유저들이 가장 주목한 사람은 마노스 제국의 여제인 미네르바였다. 아리따운 용모와 달리 싸늘하고 무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철혈 여제의 곁에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수행하고 있었다.
그 황금 갑옷의 기사를 본 유저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떳다.
"베히모스다! 철십자 길드의 베히모스야!"
"헉! 아르페디아 랭크 4위 유저가!"
언제 베히모스가 철혈 여제의 마음을 잡은 것일까. 유저들의 관심이 온통 그에게로 쏠렸다. 그래서 경기장안으로 수상한 무리들이 스며들 듯이 침투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이 결승전이다.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많이 고생했다."
대기실에서 자칼은 레드 타이거들에게 일장 연설을 했다.
말솜씨는 떨어졌지만 , 그의 굵고 강한 목소리는 레드 타이거들의 긴장된 마음을 바로잡아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 결승전 상대는 광전사 바츠를 영입한 철십자 길드다. 상당히 벅찬 상대지만 , 나는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강하다 왜냐!"
자칼이 손이 유한을 가리켰다.
"우리에겐 명장 귀련을 이긴 최고의 대장자이가 있다. 그리고 불굴의 정신과 의지가 있다! 들개같이 모여 거들먹거리는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오!"
자칼의 말에 레드 타이거들이 강철 스틱을 바닥에 찧으며 연호했다. 그들의 마음 한편에 있던 패배에 대한 우려를 깨끗이 날려 버렸다.
그당당한 모습은 곁에 있던 유한의 근심마저 날리기에 충분했다. 가짜라지만 , 과연 레드 타이거들이 케이지의 상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그동안 수고 많았다, 지그야 . 마지막까지 우리를 믿고 지켜봐다오."
"싫은데요."
다소 반항이 섞인 말에 자칼은 유한을 째려보았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차림새가 평소와 달랐다. 아니 분위기도 달랐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와 같은 색의 붉고 얼룩덜룩한 갑옷을 입은 유한의 눈동자는 전의로 이글거렸다.
그 모습으로 보자면 어엿한 전사로 , 대장장이스런 면모는 털끝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저도 배틀 폴로 경기에 참가할 겁니다."
의지가 깃든 단호한 말투. 무엇이 녀석을 경기에 참가하게 만들었을까. 알 수 없었지만 , 자칼은 유한의 그런 자세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좋아, 교체 멤버로 넣어 주지."
"부대장님!"
다른 레드 타이거들이 만류했지만 , 이미 자칼은 결정을 번복하고 싶지 않았다. 유한도 교체 멤버라는데 만족했다.
"이왕에 교체되어 들어갈 거라면 그때 교체해 주세요."
"언제?"
자칼은 유한에게 뭔가 작전이 있는 것 같아 제세히 물었다. 유한은 자신의 교체 타이밍을 일러주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자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유한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띠웠다. 어제 유한은 광전사의 피에 대한 정보를 간신히 입수했다.
소규모 게임 동호회 카페에서였는데 , 예전에 철십자 길드에서 '짧은 시간 동안 2배로 강해지는 포션'을 만들었더라는 게시물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카더라 투여서 다들 믿지 않은 분위기였지만 , 관련자의 언급을 들었던 유한의 입장은 달랐다. 마침내 케이지에 대한 의문점을 풀 수 있었다.
"자 , 이제 아이언 사이드 기사단을 박살 내러 가 볼까?"
3
폭죽과 함께 결승전 시합이 시작되었다. 관중들의 엄청난 함성이 콜로세움을 뒤흔들고 , 경기장에서 부딪치는 병장기 소리가 관중들의 엉덩이를 연방 들썩이게 만들었다.
"허, 시시한 시합이라 생각해서 안 나갔더니만."
관중석 한쪽에서 결승전을 지켜보던 길포드는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룰에 따라 움직이는 스포츠는 관심이 없어 참가를 하지 않았는데 , 생각보다 겨룰 만한 왕건이들이많이 참가해있었다. 특히 철십자 기사단에 바츠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바츠는 길포드가 예전부터 꼭 한번 붙어 보고픈 상대였다.
"아빠, 근데 철십자 기사단에 있는 바츠는 가짜래요."
길포는 옆에 있던 채린이 소문으로 들은 이야기를 말했다. 게임에서 만나기 힘든 부녀였지만 , 레드 타이거 용병대가 결승에 올랐다고 해서 응원 차 찾아온 두사람이었다.
채린의 경우 유한이 스텝으로 있다고 해서 온것이지만.
"가짜라고?누가 그러더냐?"
"옌스라고 아는 동생이 있는데 개가 가르쳐 줬어요."
현재 옌스는 케이블TV로 결승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원하게 패전의 스트레스를 푼 건 좋았지만 , 징계를 당해서 콜로세움 입장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뭐 진짜든 가짜든 실력만 있으면 되는거지 . 근데 네 친구는 어디로 간거냐?"
"리지스요? 방금까지만 해도 여기 있었는데...."
채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리지스를 찾았다. 양반은 못 되던지 그녀는 금세 나타났다.
"어딜 갔었니?"
"아 , 저쪽에서 돈을 걸고 있더라고."
콜로세움 요소요소에는 유저들이 관리들 몰래 내기판을 벌이고 있었다. 돈이라면 홙아하는 리지스가 그것을 그냥 구경만 했을 리가 만무했다.
"어허 , 학생이 도박 같은 거 하면 못 쓴다."
"에이 , 아저씨도 참 도박이라 할 정도는 아니에요. 장난삼어 조금 걸었을 뿐이에요 , 조금."
말은 그리 했지만 , 틀리면 피보다 귀환 돈을 날리게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틀릴 가능성이 많았다.
"어느 쪽에 걸었니? 레드 타이거 ? 아님 철십자?"
"그야 의리를 생각해서 레드 타이거 용병대지."
"글쎄, 의리르 지켜 준 건 고맙지만..."
누가 보더라도 바츠가 가세한 아이언 사이드 기사단의 승률이 훨씬 높았다. 그때 엄청난 함성이 콜로세움을 뒤흔들었다. 대기실에서는 잠자코 있던 바츠가 무장을 갖추더니 교체해 출전할 것이다.
"드디어 왕건이가 납시었군."
교체되어 들어온 바츠를 보며 자칼은 미소를 지었다. 남은 시간은 15분 정도 . 스코어 1 :1 로 양쪽 다 팽팽한 상태였다.
애초에 아이언사이드 기사단은 레드 타이거 용병대를 쉽게 요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장비도 그렇고 조직력에서도 자신들이 우위라 믿었기 때문.
그러나 레드 타이거 용병대는 마치 브라질 추국 대표팀과 같은 플레이를 펼치고 있었다. 전원 개인 기량이 뛰어난데다 , 굉장히 노련해서 별로 연습한 것 같지도 않은데 손발을 잘 맞췄다. 그들은 변칙적인 공격을 예상 못했던 아이언 사이드 기사단은 몇번이고 허를 찔리곤 했다.
결국 선제골을 지켜내지 못하고 동점골을 허용했다.
'망할 , 결승전에 케이지 새끼가 낄 기회는 주지 않으려했는데'
그것이 아이언 사이드 기사단원들의 소망이었지만 ,세상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그들은 케이지에게 공을 주고 놈이 마음껏 설칠 수 있도록 뒤로 물러섰다.
"다들 잘 들어라. 십 분이다 . 십 분 동안 절대 저놈이랑 상대하지 마라."
자칼의 지시에 레드 타이거들이 후방으로 물러났다. 케이지는 그런 그들을 노리고 공을 몰고 왔지만, 레드 타이거들은 녀석의 공벽 범위 밖으로 피해 버렸다.
심지어 골키퍼까지 골문을 버리고 케이지를 피해 달아났다.
"뭐야 , 꼰대들 내가 그리 무서워?"
케이지는 빈정거리며 레드 타이거들을 쫒아가 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심지어 그들은 중앙선을 넘어 아이언 사이드 기사단 진영으로 도망가기까지 했다. 도무지 상대를 해 주지 않았다.
[아 , 왜 저럴까요? 레드 타이거 용병대 , 이름 값이 아깝습니다.]
버추얼 에이지 중계석에서 이정민이 아쉽다는 듯 말했지만 ,해설 위원인 정경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작전에 대해 히애하고 있었다.
"후후 , 소나가기가 내릴 때는 당연히 피해야지."
관중석에서 구경하던 길포드드도 부하들의 한심한 모습을 탓하지 않았다.
깨질 것을 뻔히 알고도 덤비는 것은 쓸데없는 만용이다. 승리를 위해선 때론 움츠릴 줄도 알아야 하낟.
"쳇! 겁쟁이 꼰대들."
쫒아다니다 지친 케이지는 공을 텅 빈 레드 타이거 골대에 넣어 버리고 중앙선으로 되돌아갔다.
4
1:2
한점 뒤진 레드 타이거 쪽에서 공격할 차례였다. 그런데 레드 타이거들은 수비 진영에서천천히 공을 돌리기만 할 뿐 전진하지 않았다.
관중들의 거센 야유가 쏟아졌지만 ,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것들이 진짜!"
처음에는 몰랐지만 , 뻔히 보이는 레드 타이거들의 행동에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경기에 뛴 시간은 각각 8 ~9분 정도
저 엉큼한 꼰대들은 자신이 그 이상 날뛸 수 없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 틀림없다. 자신이 10분을 다 뛰고 나가도 경기 시간은 5분 정도 남는다.
레드 타이거 용병단은 그 5분에 승부를 보려는 심삼인것이다.
"제길! 죽여 버리겠어!"
케이지가 공을 가진 자칼에게로 질풍같이 달려왔다.
그러나 자칼은 냉큼 공을 반대쪽 팀원에게 보냈다. 케이지는 자칼을 목을 향해 날리던 검을을 가까스로 멈추었다. 공도 없는데 상대방을 공격하면 3분간 퇴장이다.
아까운 시간을 벤치를 때우다 보낼 수는 없었다.
"크아악! 니들 뭘 하는 거야! 얼른 달려와서 공을 뺏어!"
혼자 공을 뺏으려다가 실패한 케이지는 후방에서 구경만 하던 아이언사이드 기사단원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아이언사이드 기사단원들도 공뺏기에 합류했다. 밀리고 밀린 공이 레드 타이거 용병대 골키퍼에게까지 전해졌다.
"부대장님 , 달리십쇼!"
"이미 달리고 있다!"
상대 진영으로 달려가는 자칼을 노려 긴 크로스가 올라갔다. 자칼은 롱 패스를 정학하게 받았다. 그의 앞에는 상대 골키퍼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공을 뺏으러 레드타이거 진영에 내려갔기 때문이다. 자칼은 상대 골키퍼를 따돌리고 골대에 공을 집어넣었다.
[역습 ! 레드 타이거의 역습입니다!]
[2대 2 동점골을 허용합니다. 아이언 사이드 기사단 완전히 허를 찔리고 말았군요.]
경기장에 커다란 함성이 터졌다. 지금까지 철십자 기사단이 바츠를 들여보내고 나서 실점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길! 이것들이 날 가지고 놀았겠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는 세레모니까지 알차게 하면 케이지의 아까운 시간을 갉아먹었다. 경기고 뭐고 , 케이지는 저 망할 꼰대들을 모조리 날려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시간이 벗었다.
"어이 , 케이지 시간 됐다. 얼른 나가라."
"뭐라고!"
리트만의 말에 케이지는 벤치에 있는 유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활동 시간을 재고 있는 것은 그녀다. 그녀는 지금 다급하게 교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 1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증거.
'이런 젠장!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을 줄이야.'
케이지는 이를 갈며 벤치 쪽으로 말을 몰았다. 막 대기중인 후보와 교체를 하려고 했는데 , 옆의 레드 타이거쪽 벤치에서 낯익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병신, 십 분도 안 뛰고 교체냐?"
교체하려는지 무장을 완료하고 스틱을 어깨에 턱걸치고 있는 녀석 투구를 삐닥하게 쓰고 있는 놈의 이름은 지그였다. 남바린에서 자신을 농락했던 망할 대장자이 녀석.
"뭘 봐 , 머저리 시간도 없을 텐데 눈 깔고 꺼져."
말도 말이지만 , 케이지를 더 화나게 하는것이 있었다. 바로 갑자기 그의 눈앞에 불쑥 튀어나온 안내창 하나.
-쿠쿵! 도발을 당하셨습니다. 1분간 인내심이 5깍입니다. 스킬 성공률이 10% 떨어집니다.
이 창의 출현은 다른 것이 없었다. 저 망할 대장장이 녀석이 자신에게 알량한 도발 스킬을 걸었다.
'나 지금 너한테 시비 건다' 라고 말하고 있는것이다.
"케이지 , 뭐 하고 있어 ! 시간 없어 ! 얼른 교체하고 나와!"
케이지는 유나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지금 케이지는 약이 바짝 오른 상태였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에게 농락당해 칼질 한 번 제대로 못했고 , 같은 편인 아이언 사이드 기사단조잧도 한심하다는 투로 그를 흘겨보았다.
이런상황에서 저 대장장이 녀석까지 나서서 허파를 뒤집어 놓았으니.
'달려들면 십초 , 아니 오 초면 죽일 수 있다.' 놈을 때려죽이고 나가도 늦지 않았다. 반칙퇴장을 당하겠지만 , 활동 시간도 거의 다 끝나 가는데 그게 무슨 대수인가.
최후의 이성이 케이지를 붙들고 있는 순간 , 유한의 빈정거림이 또 한 번 들려왔다.
"사기꾼에 찌질이 새끼"
케이지의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 그는 유나의 만류를 뿌리치고 유한에게 달려들었다. 한껏 힘이 실린 깊이 베기가 유한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갔다.
[아! 저제 무슨 일입니까? 교체하려던 바츠가 갑자기 상대팀 선수를 공격합니다!]
유한이 깊이 베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과 동시에 , 경기 심판을 맡은 그로지아의 기사가 케이지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막 싸움을 말리려던 그의 몸이 상하로 분리되었다.
"시 , 심판을 죽였다!"
"바츠가 NPC를 죽였어!"
케이지의 이름이 빨갛게 변했다. 아르페디아 온라이엔서 특별한 이유 없이NPC에게 사상을 입히면 PK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케이지는 자신의 상태나 관중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게 심판을 죽인 그는 유한을 향해 제차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이 개자식! 죽여 버리겠어!"
'이크 , 대쉬다.'
유한은 온 정신을 상대의 몸놀림과 간격을 파악하는데 집중시켰다. 아무리 거세고맹렬한 공격이라도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자세 보기 스킬 가동!' 게임에서 정식으로 존재하는 스킬은 아니지만 유한은 극기도장에서 익혔던 것을 적극 활용했다.
케이지의 몸놀림은 물론 , 동공의 움직임까지 살펴 발동스킬을 예상하고 , 말의 고삐를 당기고 박차를 가하며 적정한 간격을 벌려 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미쳐 날뛰는 케이지의 공격이 단순하다 해도 , 랭커 급의 파괴력과 스피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 콰직 !
투구가 쪼개지면 유한의 이마에 길고 가는 핏줄이 그어졌다.
'헐 , 조금만 더 깊게 들어왔다면!' 방금 케이지의 휠 슬래쉬에 머리가 쪼개졌을 것이다. 유한은 죽어라 말을 달려 케이지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때였다.
"허억!"
미친 듯이 쫒아오던 케이지가 경기를 일으키면 그자리에 멈춰 섰다. 경기장에 있던 철십자 길드원들은 물론 , 철혈의 여제 미네르바와 함께 귀빈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베히모스 까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케이지에게 허락된 10분의 시간이 다 끝난 것이다.
-광전사의 피가 효력을 다 했습니다. 스텟이 일제히 하락합니다. 경험치가 폭랍합니다. 20시간 동안 이동 능력 및 행동 능력이 떨어집니다.
바츠와 같던 위풍 당당하던 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갑옷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고 . 손에 쥐여진 검은 불덩이라도 되는 듯 뜨거웠다.
포션의 부작용으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던 케이지는 자신을 향해 비웃음을날리는 유한을 발견했다.
'이 자식 서람 일부러 날 유도한 건가?' 다음 순산 , 벼락같은 유한의 고함 소리가콜로세움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놈은 바츠가 아니다! 그것을내가 지금 증명하겠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유한의 검이 케이지의 머리로 날아갔다. 케이지는 피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콰직!
유한이 전력을 다해 날린 마이티 소드는 케이지가 쓰고 있던 투구를 쪼개고 , 그의 머리르 ㄹ지나 가슴에 깊숙하게 박혔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HP바가 0으로 떨어진 케이지는 땅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바츠, 바츠가 한 칼에 죽었습니다!]
[아니 , 저 케이지란 유저는 바츠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관중석에는 한바탕 충격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 , 일제히 야유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유저들에게 피어올라 잇던 논란의 불꽃이 한 방에 쓰러진 케이지로 인해 거세게 불타오른 것이다. 진짜 바츠라면 저리 한 방에 허무하게 갈 리가 없다. 더욱이 상대는 랭크 급의 고수도 아니지 않는가.
분명 무슨 수작이 있다고 유저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쳇, 끝났군"
베히모스는 도로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반크의 열쇠를 획득하기 위해 가짜 바츠를 내세우는 데 동의했다. 타 길드들에 위압을 가하고 바츠의 위명이 이용하여 철십자 길드드의 명성을 드높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악수(惡手)가 되어 버렸다. 꼬리를 끊어 내는 정도로 사태가 수습되면 좋으려만 과연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입술을 꽉 깨문 베히모슨느 김필중을 쓰러트린 대장장이 녀석을 노려보았다. 저 녀석은 분명 김필중이 진짜 바츠라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다.
'지그라고 했겠다? 어디 두고 보자.
5
이후 재개된 시합의 주도권은 레드 타이거 용병대로 기울었다. 사방에서 관중들의 야유와 욕설이 쏟아지자 기가 죽은 아이언사이드 기사단이 연달아 결승골과 쐐기골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결국 그로지아 국왕배 배틀 폴로 경기의 우승은 레드 타이거 용병대가 차지했다
"승자는 짐이 내리는 검을 받으라."
그로지아의 국왕은 ' 승리의 검 ' 이라 적힌 의전용검을 상패 대신에 수여했다. 무기로서의 기능은 없었지만 , 충분히 기념할 만한 아이템이라 할 수 있었다.
"상금인 백만 골드의 어음과 부상인 투사의 슈즈를 내리겠네."
"어라 , 원래 반크의 열쇠가 아니었나요?"
유한의 뒤에서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소문을 듣자니 부상은 반크의 열쇠인가 하는 황금 장식물이라 했다. 그런데 왜 그걸 두고 이 시커먼 군바리 워커같은 신발을 주겠다는건지.
"어흠!"
그로지아 국왕이 헛기침을 하자 대신은 진땀을 흘리면 양해를 구했다.
"야 , 야간의 문제가 생겼네. 이 투사의 슈즈는 반크의 열쇠만큼 값진보물이니 부디 양해하고 받아 주게나."
우승자에게 수여할 부상이 갑자기 바뀌게 되었다? ' 도난당했군'
확실할 수는 없지만 추정할 수는 있었다. 실제 역사에도 그런일이 있었지 않는가.
유한은 오래전 월드컵 축구 우승팀에게 줄 줄레메컵을 누군가에게 도난당해 영영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뭐 , 이것도 괜찬아 보이네.'
부상을 챙겨야 할 유한의 입장에선 듣도 보도 못한 반크의 열쇠보다 투사의슈즈가 더 실용적으로 느껴졌다. 아이템을 확인해보니 옵션도 괜찬았다.
[투사의 슈즈]
방어 15 상승
인내심 10 상승
이동력 15% 증가
공격력 20% 증가
크리티컬 발동 확률 20% 증가
설명 : 옛날 이계에서 온 말년의 용사가 남긴 신발. 이계의 존재가 신던 것이라 그런지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거 같다. 이걸 신고 사람의 무릎을 함부로 자지는 말자.
'바츠의 부츠도 오래 신었으니끼.'
옷이며 장비도 여러 번 바뀌었는데 신발만 아직 그대로다 . 낡은 것은 아니지만, 방어력도 모자라고 해서 슬슬 대용품을 찾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유한과 레드 타이거 용병대는 상금과 부상을 받고 어전에서 물러나왔다.
"밖에 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한다. 우리에게 한터 쏘신다고 하는군"
"와!"
신이 난 일행은 서둘러 경기장 밖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들은 중간에 철십자 길드와 마주쳤다. 콜로세움을 경비하던 기사에게 뭔가를묻건 그들은 서둘러 어디론가 달려갔다.
"무슨 일입니까?"
궁금증이 생긴 유한은 기사에게 다가가 철십자 길드원들이 무엇을 물었는지 물었다.
"저기 그게...누가 반크의 열쇠를 훔쳐 갔나 묻더군요."
"반크의 열쇠를 훔쳐요? 그게 정달 도난당했던 겁니까?"
혹시나 했는데 , 역시나였다. 기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유한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무에게 말하지 아십쇼 우승 팀이니 말씀드리는 겁니다 , 보통 도적들이 아니었습니다 열쇠를 지키던 상급 기사들을 순식간에 해치워 버렸으니까요."
"상급 기사들을 죽이고 훔쳐 갔단 말입니까?"
"예 , 이마에 마법탄을 자은 자국으로 봐서 꽤 실력 있는 마도사들의 소행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유저들이 한창 시합에 빠져 있을 동안 경기장 한쪽에선 난리가 났다. 보물 창고를 지키던 기사들이 살해되고 보물이 도둑맞은 것이다.
' 마법사들이 왜 반크의 열쇠를 훔쳐 간 것일까 ? 혹 반크의 열쇠에 뭔가 다른 비밀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누구지?
"지그야 , 뭐하냐? 얼른 가자. 사아도 와서 기다리고 있댄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잇던 유한은 자칼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궁금하긴 했지만, 수중에도 없는 물건 때문에 오래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ㅝㄴ가 아쉬운 기분이 들긴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