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명장 귀련
1
뷔페에서 식사를 끝낸 레드 타이거 용병대는 왕궁으로 가서 참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대진표를 받았다.
"첫 시합 상대가 누굽니까?"
성격급한 대원 하나가 물었다.
"아직 결정 나지 않았어. 대진표를 짜고 있는 중이거든, 아마 첫 상대는 시시한 놈들이 될 것 같아."
"그걸 어떻게 알아요?"
"초반부터 강자들을 흩어 놔야 뒤로 갈수록 재미있는 법이니까."
한 마디로 시드 배정을 할 거라는 소리다.
자칼이 그것을 확인했다. 명성이 높은 길드들은 토너먼트 대진표에서 되도록 떨어지게 배치해 둔 것을 본 것이다.
"그건 그렇고, 경기용품 제작은 하고 있는 거겠지?"
레드 타이거 용병대가 왕궁에 간 사이, 유한은 짐마차에 구비한 대장간 설비들로 배틀 폴로의 경기용품을 만들었다.
"일단 스틱부터 만들어 봤어요."
"호오, 이게 스틱이라고?"
자칼은 유한이 만든 스틱이 마음에 들었다,
하키나 아이스하키를 할 때 쓰는 스틱 정도려니 했는데, 유한이 만든 것은 배틀 폴로라는 이름에 걸맞는 물건 이었다,
길이나 생김새는 하키 스틱과 비슷하거나 좀 더 길었지만, 공을 때리는 타격부의 형태는 길게 튀어나온 도끼날처럼 생겼다. 끝부분은 실제로 날카롭게 벼린 상태.
"이걸로 잘못 치면 죽겠는데?"
"죽으라고 만들었으니 죽어야죠."
배틀 폴로느느 스틱 외에 각자의 고유 무기를 사용할 수 이다지만, 치열한 경기를 치르는 중에 무기를 바꿔 쥘 틈이 있겠는가. 그냥 손에 쥐고 있는 스틱으로 갈기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것은 유한만이 아니었다.
그처럼 간이 대장간을 설치하고 작업중인 대장장이들은 스틱부터 살벌하게 만들고 있었다.
해머처럼 생긴 스틱, 낫이나 칼날이 달린 스틱, 손잡이를 비틀면 독침이 발사되는 스틱 등등, 여러 가지 다양하고 독창적인 스틱들이 만들어졌다.
"스틱은 됐다 치고, 갑옷이랑 투구는?"
갑옷이랑 투구는 유니폼과 마찬가지이다.
격렬한 배틀 폴로 경기에 견뎌 낼 수 있도록 방어력도 높아야 하지만, 독창적인 모양과 색상을 갖추는 것도 중요했다. 시합을 할 양쪽이 비슷한 모양과 색상의 차림새를 하면 경기 진행에 문제가 생길 테니까.
"갑옷은 지금부터 일일이 제작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판매용으로 챙겨온 성기사의 갑옷을 개조하기로 했어요."
"그래? 이왕이면 붉게 칠하고 검은 얼룩무늬를 넣어. 우리가 레드 타이거 용병대임을 만인이 알 수 있게끔."
'켁, 성기사의 갑옷에 그런 색과 무늬면 최악인데.'
"원래 복장에는 신경 안 쓰셧잖아요?"
항상 추례한 용병 복장을 하고 다니던 레드 타이거 용병대였다. 그래서 오해를 사기도 많이 샀다.
"훗, 그건 대장님 생각이고, 이런 큰 대회에까지 거지꼴을 하고 다닐 수는 없잖아?"
'그래, 원하는대로 하쇼.'
유한은 자칼에게 생각을 바꿔 보라고 권하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착용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혹 자칼이 상금의 1%라도 준다고 했다면 뜯어말렸을 지도 모르지만,
"뭐? 네 가 뭔데 나더러 장사를 하라 마라야?"
갑자기 한쪽에서 성난 고성이 들려왔다, 서람들의 시선이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갔고, 그것은 유한도 마찬가지 였다.
고성이 들려온 쪽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유한은 잔뜩 인상을 찡그린 남자보다 그와 대치하고 있는 여자에게 더 눈길이 갔다. 아름다운 외모보다는 무장이 무시무시했기 때문이다.
등에는 장창과 방패를 짊어졌고, 오른쪽 허리에는 짧고 긴 2자루의 검을, 왼쪽 허리에는 활과 화살통을 찼다. 거기가 요대에는 단검을 잔뜩 꽂았고, 표창들이 드레스 치맛자락에 장식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런 무기들만 봐도 참 무거워 보이는데 그녀는 화려한 투구에 판금으로 된 흉갑을 착용하고, 두꺼운 건틀렛을 낀 손에는 커다란 클레이모어를 들었다.
"으음, 완전무장이 어떤건지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군."
'파우린'이란 이름의 여기사에 대한 자칼의 평이었다, 그러나 유한의 평가는 달랐다.
"완전무장이 아니라 과잉무장이겠죠."
저상태로 과연 전투를 치를 수 있을까? 무거워 조금만 격렬하게 움직여도 스테미나가 바닥을 드러낼 텐데.
"아저씨를 위해 하는 말이에요. 이대로 사기꾼으로 낙인찍히고 싶어요?"
"내가 사기꾼이라니? 난 정당한 거래를 하고 있단 말이야!"
사내는 펄쩍 뛰었다. 무척이나 억울하고 분하다는 듯.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왜 이 파우린이란 아가씨가 그를 사기꾼이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좌판 깔고 물건 파는 것은 상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닌가.
간혹 껌 좀 씹게 생긴 유저가 10골드짜리 포션을 단돈(?) 1000골드에 사라고 강요하는 일이 있긴 하지만, 사내는 그런 상인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손님에게 강매를 하지도 않았고, 상품의 시세보다도 저렴한 가격에 무기를 파고 있었다.
평범하게 호객활돌을 했고, 거래도 정상적.
이런 대회 이벤트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떠돌이 상인일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말해 봐! 왜 내가 사기꾼이라는 거냐!"
"사기꾼이라고 한 적 없어요. 사기꾼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고 했으르 뿐이지."
파우린은 손을 들어 좌판 뒤에 걸린 현수막을 가리켰다.
현수막에는 '100%귀련이 제작한 무기'라고 적혀 있었다.
"뭐? 저게 뭐가 어때서?"
"정말 이 무기들 전부 귀련이 만든 거 맞아요?"
그 물음에 잠시 주춤하던 사내는 당연한 게 아니냐는듯, 언성을 높였다.
"틀림없어! 눈이 있으면 보라고. 이 고아택을 봐! 품질은 어떻고. 여느 대장장이가 만들 수 있는 물건일 것 같아?"
그는 칼 한자루를 들고서 말을 이어 나갔다.
"보다 확실한 건 바로 이 문양이야. 귀련 님이 만든 문구에는 이렇게 '鬼'자가 새겨져 있단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파우린이 말을 이어 가려 했을 때였다.
불쑥 끼어든 제3자의 말이 그녀의 말문을 가로막았다.
2
"꽤 실력 있는 대장장이가 만든 것 같긴 하지만, 귀련이 만든 것 같지는 않군요."
"넌 또 뭐야?"
사내는 또 다른 훼방꾼에게 고개를 돌렸다.
대장장이 차림의 소년.
그는 소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을 확인했다.
"지그?"
"설마 리저드맨들의 친구라는 그 대장장이 지그?"
"얼마 전에 티쳐스 타도에도 앞장섰다는?"
주변에서 구경하던 유저들이 술렁거렸다. 최근 들어 지그라는 이름이 게임과 방송에서 곧잘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지그는 대장장이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주름잡으며 그 이름을 당당히 알리고 있었다,
거기다 품질이 좋은 무구를 만들 뿐만 아니라 수리 성공률도 높은 실력 있는 대장장이다. 저렙 유저들이 사용하는 무구 중에서 가격대 성능이 가장 좋은 것이 지그표 무구라 할 만큼 인지도도 꽤 높았다.
'후후후, 지그도 이제 유명 캐릭터가 되었군.'
유한은 사람들의 시선에 꽤 만족했다.
해킹당하고 무명 캐릭터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을 땐 서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유저는 물론이요, NPC에게조차 무시당했는데 이제는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캐릭터가 되었다.
"저 님이 지그 님이구나. 네 창이나 좀 수리해 달라고 할까?"
"관둬, 인마. 대회 관람하러 온 것 같은데 성가시게 굴면 좋아할 것 같아?"
"마,맞다! 저님 귀찮게 하면 리저드 대군의 압박이......."
저번에 버추얼 에이지 팀과 했던 인터뷰 때문인지, 쉬이 접근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존재. 그런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이 애가 지그?'
파우린은 유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최근 고렙 대장장이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유저 지그.
짧은 시간 동안 무서운 성장과 발전을 보이고 있기에, 다들 그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직업상 많은 대장장이들을 만나 봤던 파우린이지만, 지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슨 근거로 귀련이 만든게 아니라고 하는거야? 합당한 이유라고 있어?"
"아, 있죠."
유한은 좌판에 전시되어 있던 검 하나를 들고 말을 이어 나갔다.
"일전에 귀련이 만든 무기를 본 적이 있어요. 무척 훌륭하더군요. 지금 여기 있는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요."
"무, 무슨 소리야? 내가 파는 것도 훌륭해."
"글쎄요, 겉은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다.
그레인 스킬로 쓸어보자 여러개의 균열이 눈에 띄었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균열이지만,균열 하나 없이 말끔했던 귀련의 무기에 비하면 불만족스러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자, 내가 이 검을 부러트려 보죠. 이 검은 아마 대충 이런식으로 깨져 버릴 겁니다."
유한은 분필을 꺼내 그어서 검신의 균열을 표시했다.
그냥 부러트려서는 사람들이 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검이라 하여도 적당한 충격을 가하면 부러지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그렇지만 검이 미리 말하대로 부러진다면?
유한은 검을 들고 그대로 땅에 내리쳤다. 단단한 포장석에 부딪친 검은 날카로운 비명을 토하며 부러졌다.
"헛! 정말이네."
검의 부러진 조각들을 본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 검은 유한이 분필료 그은 자리에 금이 가서 부러져 있었다.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꼼꼼하게 손질되진 않았어요, 생산 1랭크라는 사람이 물건을 이따위 엉터리로 만들 것 같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그런 건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겠어? 난 주는 대로 받아서 팔았을 뿐이라고."
사내는 자신은 몰랐다며 발뺌했다. 그 태도는 아까 틀림없다며 큰소리 쳤을 때와 많이 달랐다.
"누구에서 받은 건데요? 귀련 님 본인입니까?"
"그야 당연히 본인에게......받았지."
그의 말에 파우린이 날카롭게 언성을 높였다.
"이봐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여기 있는 무구들, 절.대.로귀련이 만든게 아니에요."
사내가 뭐라고 반박을 하려는 찰나, 파우린이 손에 든 클레이모러을 검 집에서 뽑아 땅 위에 꽂았다.
감을 뽑는 것이나, 땅에 검을 꽂는것이나, 군더더기라곤 하나도 볼 수 없는 깔끔하고 번개같은 동작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놀랄 만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이게 진짜 귀련이 만든 검이에요."
칼날이 묵색을 띄 클레이모어는 포장석에 깊숙히 박혀 있었다. 검신에는 '鬼'자가 아주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진짜 귀련의 검이다!"
"세상에! 돌이 아니라 두부에 칼을 찔러 넣은 것 같잖아."
사람들이 감탄하는 만큼 유한도 놀랐다.
클레이모어의 아름답고 오묘한 묵빛도 감탄할 지경이지만, 그레인 스킬로 쓸어 봐도 검신엔 흠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데체 귀련이란 사람은 무슨 수로 저렇게 완벽한 검을 만들었을까? 생산 스킬이 1랭크쯤 되면 자연히 손재주가 저렇게 되는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 설마 저 여자가 가진 무기들이 전부?'
전부 귀련이 만든 무리가면?
그럼 단순히 완전무장이라고만 말할 게 아니다. 황금으로 온몸을 두른 것이나 진배없다.
귀련은 유한이 파부치의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으 ㄹ때부터 이미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명성을 떨치고 있던 대장장이다. 유한처럼 모험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장장이의 이름값만으로도 최상급에 올라 있었다.
그런 사람이 만든 무기는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도 더한 가치를 지닌다.
"귀련은 이런 고철은 절대 만들지 않아요. 아시겠어요?"
"으으으......."
사내는 뭐라고 반박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파우린이 보인 박력에 눌려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뭐야, 그럼 내가 산 건 짝퉁이란 거야?"
"가짜를 그렇게 비싼 값에 팔았따고?"
사내에게서 무기를 산 유저들이 흥분하며 앞으로 나왔다,
100% 귀련이 만든 무기라고 해서 아낌없이 주머니를 털어 무기를 샀는데, '오리지널'이 아니라 '가리지널'이라니!
"이런 짱개 같은 자식!"
"얼른 내 돈 물어내!"
사내는 파우린의 말대로 정말 사기꾼으로 낙인찍혔다.
끝까지 귀련에게 받았다며 거짓말을 한 게 화근이었다. 그냥 자신도 속아서 입수한 물건이라고 둘러댔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피해자들이 몰려와 드잡이를 시작했다.
사내는 그들을 뿌리치고 로그아웃을 하려 했지만, 벌써 놓은 좌판을 수습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참나, 하여간 별꼴을 다 보네."
유한은 몰매를 맞는 사내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메이커가 뜬다 싶으니 바로 짝퉁까지 등장하다니. 누구 말대로 가상현실도 어쩔 수 없은 현실의 연장선인 모양이다.
"조심해라, 지그야 네 짝퉁도 돌앚다닐지 모르니까."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자칼의 말에 유한은 벌컥 화를 냈다.
만약 자신의 짝퉁을 만드는 놈이 있다면, 상표 Z를 함부로 쓰는 놈들이 있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근데 아까 그 아가씨는 어로 갔지? 완전 내 이상형이었는데 말이야."
"몰라요, 방금 전까지 저기 있었는데."
파우린은 어느새 사리지고 없었다. 다른 곳으로 가 버렸는지, 아니면 로그아웃을 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쩝, 하나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귀련에 대해서 잘 아느냐고.
분명 그녀는 귀련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지 않으면 귀련표 무구들로 도배를 할 수 없었다.
유한은 나중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3
짝퉁을 파는 상인을 퇴치한 파우린은 슈탈린 동쪽 거리를 걷고 있었다.
중간에 노점에서 구입한 솜사탕을 뜯어먹던 그녀는 갑자기 걸을을 멈춰 섰다.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눈앞에 중무장한 기사들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가우리 길드의 최정예 철갑기마대 유저들이었다.
파우린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피곤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를 대표해서 '협부'라는 유저가 파우린에게 말을 건넸다.
"한참 찾았습니다. 어딜 그렇게 쏘다니신 겁니까?"
"그냥 여기저기 둘러보고 오는 길이야."
"그런 구경은 일을 마친 다음 하셔도 되잖습니까. 귀련님."
파우린을 귀련이라 불렀다.
그렇게 불리고도 파우린은 전혀 부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이 귀련이었기에.
베레타 공화국, 아니 아르페이다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 유저가 바로 그녀였다. 지금의 파우린은 그저 조용히(?) 돌아다닐 때 사용하는 그녀의 2번째 캐릭터였다.
물론 부캐도 약한 것은 아니다.
그건 그냐가 짊어지고 있는 무구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봐, 협부, 탐문도 중요한 거야. 이번 대회에 우수한 대장장이들도 여러 팀의 스태프로 참가한 것 같으니까."
귀련도 마찬가지이다. 가우리 길드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번 대회동안 철갑기마대의 스태프로 일하기로 했.
"눈여겨볼 자라도 있었습니다?"
"응. 지그란 녀석이 있었어."
"아, 그자라면......."
협부도 알고 있었다. 요사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말로는 대장장이답지 않은 대장장이라 하던데 어떻습니따?"
대장장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모험을 즐기는 대장장이 지그.
그는 공중 요새를 발견했으며, 험한 플레임 마운트에 가서 리저드맨을 친구로 삼았고, 얼마 전에는 학생 혁명을 주도하여 티쳐스와 싸웠다,
"뭐 대장장이가 분명 하던걸, 그것도 예상보다 실력이 뛰어난 자였어."
짝퉁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것도 쉽게 간파 할 수 없는 감춰진 균열들까지 정확하게 집어냈다.
그런 능력은 자신만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려지지 않은 히든스킬이라도 보유하고 있는 겁니까? 혹시 귀련 님과 같은?"
"아니, 내 거랑은 좀 다른 것 같았어."
지그라는 캐릭터가 나타난 지 1년이 채 안 된다.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상급 대장장이로 올라설 정도라면. 지그의 유저는 보통 폐인이 아니거나, 특별한 히든스킬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파우린. 아니 귀련은 후자에 무게를 두었다.
대장장이 캐릭터를 키우기가 얼마나 고된지 잘 아는 그녀였기에 폐인 짓을 해서 단시일에 상급 대장장이가 됏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제 돌아가시죠. 시합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알았어, 그럼 먼저 가서 작업을 하도록 할게."
가우리 길드원들의 눈앞에서 파우린이 사라졌다. 진짜 대장장이 귀련으로 돌아가기 위해 로그아웃한 것이리라.
"돌아가자, 내일 첫 시합을 준비해야 한다."
실종된(?) 귀련을 찾은 절갑기마대는 본진으로 귀한했다.
아르페디아 최고의 대장장이를 스태프로 영입한 그들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었다.
4
드디어 시합날이 밝았다.
유한은 밤새 만들고 개조한 레드 타이거들의 스틱과 무구들을 건네주었다.
경기에 나갈 레드 타이거 용병대는 유한이 개조해 준 성기하의 갑옷을 입고, 호랑이가 입을 벌린 듯한 모양의 투구를 썼다.
'뭐 그럭저럭 괜찮네.'
성기하의 갑옷에 붉은색과 검은색 얼룩무늬를 넣으면 최악이라 생각했는데 사람이 입어 보니 또 느낌이 달랐다,
약간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뭐 어떠리. 자기들이 좋다며 희희낙락하는데.
"수고 많았다, 지그야."
호리호리한 체격의 마검사가 유한의 등을 두들겼다.
헨리라는 이름의 그는 과거 무역로 개척 퀘스트 때 자칼과 함께 유한과 싸웠던 이들 중 하나였다.
"근데 이Z자는 꼭 넣어야 했냐?"
헨리는 갑옷 흉부에 새겨진 Z를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따.
그는 지그표 무ㅜ의 상표인 Z를 좀 유치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현실도 아님 게임에서 브랜드라니.
눈에 잘 띄지 않으면 좋으련만, 유한이 거기만 색을 칠하지 않아 하얗게 잘 드라나 보였다.
"아놔, 상금도 못먹는데 이런 식의 간접광도라고 해야할 것 아닙니까!"
"짜식, 많이 삐졌나 보구나."
"아무튼 우승하세요. 그냥 우승이 아니라 압도적인 전승 가도로! 해트트릭은 기본이고 아예 콜드 게임까지 만드는 겁니다."
"네가 하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할 거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가 우승할수록, 압도적인 실력을 보일수록 지그표 무구도 더욱 빛을 발하고 인지도도 높아질 것이다.
이번 대회에 그런 목적으로 참가한 대장장이들이 많았따.
특히 무명인 대장장이들은 이번에 어떻게든 자기 무구를 알려 보려고 애썼다. 자진해서 무보수로 일하는 유저도 있을 정도였다.
"자,가자!"
"옛--썰!"
레드 타이거들의 준비가 끝나자 자칼이 그들을 이끌고 숙소를 나섰다.
대회 기간 동안 참가팀이 머무는 숙소는 왕실의 별궁이었는데, 그로지아 국왕이 특별히 선심을 써 준 거싱다.
별궁 앞뜰에는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타고 가려는 다양한 생명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낯익은 인물도 있었다.
"여, 노땅님들. 결국 포기 안 했네?"
어제 식장에서 설전을 벌였던 옌스가 블루 라이언스들을 데리고 와 시비를 걸었다.
"어이구!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놈들이."
자칼이 이마를 부여잡자 옆에 있던 헨리가 말렸다.
"참으세요, 원래 질풍노도의 십 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보다 우리 시합은 언젭니까?"
자칼은 어제 주최 측에 등록하고 받은 대진표를 꺼내 들었따.
"어디 보자. 어라, 십 분 후 제8경기장에서 벌어지잖아?"
"그럼 빨리 가야겠는데요?"
"그러게, 빨리 가자."
시합에 5분 이상 늦으면 실격패로 간주하기에 그들은 저8경기장으로 달려갔다.
"늙탱이들. 그냥 콱 져버리라구!"
"으하하하!"
옌스의 고함에 블루 라이언스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를 바라보는 팀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한쪽에서 말을 몰아 천천히 나오던 한 무리의 인형들오 멀리 사라지는 레드 타이거 용병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군바리들도 결국 참가를 한 모양입니다."
"그러게, 하지만 폭풍의 길포드는 없는 모양인데."
키라는 레드 타이거들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옆에 있던 부하가 말을 건넸다.
"누굴 찾으십니까?"
"아, 아니, 그냥. 그보다 우리 상대는 누구지?"
떨떠름한 얼굴로 말하는 키라의 물음에 부하는 대진표를 바라봤다.
"'황야의 승냥이들'이라는 길드입니다. 뭐,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걸 보니까 별 볼일 없는 놈들일 겁니다."
"훗, 가지고 놀기에 적당하겠군, 얼른 끝내고 다음 시합을 준비하도록 하자고."
최대한 힘을 아껴야 한다.
쟁쟁한 길드들은 물론 레드 타이거 용병대까지 참가하고 있다. 그들과 만날 때까지 자신들의 전력을 감출 필요가 있었다.
'후후후! 두고 봐라. 네놈이 선물한 자마다르로 레드 타이거 용병대를 죄다 쓸어주마.'
그 다음 목표는 건방진 대장장이 지그 녀석.
그렇게 계획을 잡은 키라였지만, 잘 될지 어떨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