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배틀 폴로 대회 (63/143)

8.배틀 폴로 대회

1

"형님, 찾았습니다!"

사무실의 문이 부서져라 열리더니, 온몸에 물기가 뚝뚝흐르는 덩치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뒤로 비슷한 몰골의 사내 몇이 더있었다. 어떤 사내는 이마에 물안경을 걸치고 있었고, 산소통을 짊어지고 오리발을 신은 사내도 있었다.

"뭐야? 정말 찾았어?"

앉아서 신문을 뒤적이고 있던 깍두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료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로또에 당첨된 듯 흥분한 얼굴 이었다.

"고생은 했지만, 결국 강바닥에서 이놈을 찾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덩치가 앞으로 내민 것은 도깨비 문양의 장식이 있는 지포라이터였다.

겨우 지포라이터 하나 찾은 것 갖고 이리 난리 일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있어, 아니 그들 조직에 있어 이 지포라이터는 몇년치 수입을 한번에 안겨줄 복덩이였다.

부르르떨리는 손으로 지포 라이터를 확인한 깍두기는 얼른 전화기 앞의 부하에게 소리를 질렀다.

"도끼야! 당장 그자식에게 전화해라!"

"알겠습니다, 형님!"

도끼라 불린 부하는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의뢰인은 직접 지포라이터를 받으러 가겠다고 통보해왔다.

잠시 후,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주걱턱에 가는 눈매를 지닌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바로 드림맥스에서 데이터를 턴 해커였다.

"라이터는?"

성격이 급한지 그는 인사도 생략한 채 바로 지포라이터 부터 찾았다. 그러나 순순히 물건을 넘겨줄 정도로 순진한 깍두기가 아니었다.

"물건을 받기 전에 돈부터 줘야 하지 않겠소?"

"쩝, 할 수 없지."

깍두기에게서 지포라이터를 넘겨받은 해커는 라이터를 살폈다. 확실히 자신이 잃어버린 지포라이터가 맞았다.

그는 뚜껑을 열어 라이터를 뽑아냈다.

그런데 뒤에 달려 있어야할 그것이 없는게 아닌가?

"이게 뭐야?"

"뭐라니?"

"이곳엔 원래 기름통 대신 메모리 장치가 들어 있어야 한다고!"

해커가 목청을 높이자 깍두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자식 이거 돈 주기 싫어 쇼하는거 아냐?"

지포라이터는 그의 동생들이 무려 열흘 넘게 한강 바닥을 뒤져서 건져 낸 것이다. 이를 위해 잠수 장비와 수중 금속 탐지기 까지 동원하지 않았는가.

"그런 말은 없었잖소?"

"그 메모리에는 내가 샹……."

해커는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샹화소프트의 이름이 언급 되어서는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드림맥스의 차기 게임 데이터를 훔쳐 달라고 한샹화 소프트의 관계자는 절대 자기 회사 이름이 언급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제길, 하여튼 내가 원한 것은 이깟 지포라이터가 아니라 그 속에 든 메모리 장치였단 말이야! 고삐리 녀석에게서 메모리 장치를 찾아 주지 않으면 절대 돈을 주지 않겠어."

해커가 완전 배 째라고 나오자 깍두기는 안색을 굳혔다.

이놈을 콘크리트에 묻어 인천 앞바다에 던져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가는 그동안 고생한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될것이다ㅏ.

"좋수다. 놈에게서 메모리인지 메뚜기인지 찾아주지. 하지만 약속한 금액에서 오천 만원은 더 줘야겠어."

"흥, 메모리만 제대로 전해 준다면 그 두배를 주지."

데이터만 건네주면 샹화소프트에서 받기로한 돈이 무려 30억이다. 그중에서 1억을 더 못줄까.

"대신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움직여야 해."

"보채지 마슈. 그 고딩 녀석을 손대기가 쉽지 않단 말이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해커는 짜증이 치밀었다.

이 멍청한 조폭놈들은 어째 일을 시원하게 하는 법이 없다.

"그 고딩 놈 집 근처에 이상한 놈들이 깔렸소. 사복형사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껄끄럽수."

"설마……?"

"걱정말고 기다리슈. 애새끼 동선을 파악하고 있으니까."

틈만 보이면 달려들어 메모리를 탈취할 것이다.

물론 깍두기는 메모리만 뺏고 끝낼 생각이 없었다. 싸늘한 11월에 동생들을 용궁 유람 다녀오게 해 준 대가는 치러 줘야 하지 않겠는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슈. 조금만……."

깍두기는 그렇게 말했지만, 해커는 느긋한 입장이 되지 못했다.

예정했던 것보다 시간이 훨씬 초과한 상태다. 1분 1초가 지날때마다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2

학생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유한은 수많은 길드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다. 그의 대장장이 로서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번 혁명에서 보여 준 리더십을 높게 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 밑에 들어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던 유한은 모든 제안을 뿌리친 채 부족한 스킬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그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얼마 전 NPC 상인 홉스가 주문한 상품이었다.

"앵커(Anchor)를 제작해 달라고요?"

"후후후, 요새 조선업이 흥해서 말이지요. 조선소에서 배에 필요한 이런저런 물건들을 주문하곤 한답니다."

그렇게 주문하는 물건들 중에서 앵커, 우리말로 닻이라 불리는 것도 있단다. 닻은 정박할 때 필요하기에 배에선 빠질수 없는 장비였다.

닻은 주물스킬로 만드는 상품 이기에 유한은 이 주문퀘스트를 덥석 받아들였다.

"쇠는 아직 덜 녹았나?"

"지금 갑니다."

유한은 모래로 만든 거푸집에 펄펄끓는 쇳물을 부었다.

쇠가 다 식은 다음 거푸집을 떼내자 갈고리 모양의 시커먼 무쇠 닻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범선의 닻을 만들었습니다.

경험치 80을 얻었습니다.

-주물스킬이 5랭크로 올랐습니다.

솜씨가 3올랐습니다.

'오오, 드디어 주물 스킬이 5랭크로 올랐다!'

역시 단순한 물건 만드는 것보다 예술품이나 이렇게 다소 복잡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스킬 향상에 훨씬 도움이 된다.

"상태창 확인!"

[상태창]

이름:지그

칭호:오우거 헌터, 드워프의 조수, 공중요새의 발견자,리저드의 친구, 고대 드워프 유적 발견자, 미케니아의 은인, 신종제작자

직업:대장장이

레벨:110

체력(HP):900/900

스테미나:620/620

마나(MP):55/55

힘:110

민첩성:85+10(바람의 부츠)

인내심 :86

지식:55+15(기술관의 관복)

행운:78

솜씨:150+15(기술관의 관복)

명성:10,500

공격력: 130+130(마이티소드+ 와이어 건틀렛)

방어력:90+105(바람의부츠+기술관의관복+와이어건틀렛+동지의목걸이)

경험치:3,000/14,000

돈:152,000골드

[습득 스킬]

장작 패기 스킬 4랭크

벌목 스킬 7랭크

채굴 스킬 4랭크

채석 스킬 6랭크

제련 스킬 3랭크

생산 스킬 3랭크

합금 스킬 6랭크

정밀조립 스킬 7랭크

수리 스킬 3랭크

주물 스킬 5랭크

도발 스킬 9랭크

쇼크 웨이브 9랭크

선동 스킬 9랭크

수리 성공률 72%

[히든 스킬]

그레인 스킬 3랭크

암 브레이크 스킬 5랭크

'이제 합금만 한 단계 더 올리면 철공소 짓는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거야.'

고지가 곧 눈앞에 보였다.

흐뭇한 미소를 지은 유한이 다시 스킬 수련에 매진하려 할 때였다. 작업실 문이 열리더니 낯익은 인물이 안으로 들어왔다.

"지그야, 잘 있었냐?"

그는 바로 곽대발, 아니 자칼이었다.

"여긴 어쩐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너한테 볼일이 있어서왔지."

"볼일요?"

"그래. 레드 타이거 용병대에서 그로지아 왕국에서 벌어지는 배틀 폴로 대회에 나가기로 했는데, 무구나 경기용품을 만들어 줄 대장장이가 필요해서 말이야."

배틀 폴로에는 선수 외에도 신관과 마법사, 대장장이같은 스태프가 필요하단다. 신관은 부상 입은 선수를 치료하기 위해서고, 마법사는 아이템 인첸트, 그리고 대장장이는 무구 제작및 수리를 위해서 라고.

마침 철공소가 코앞에 와 있는지라 유한은 거절했다.

"바쁜 일이 있어서 못 가겠습니다."

"너 인마, 이러기냐?"

유한이 거절하자 자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러기라뇨? 저도 정말 중요한 일이 있다고요."

"어허, 내 너를 이렇게 안 가르쳤는데."

"그래도 어쩔수 없습니다. 저 철공소 만들어야 해요."

유한은 움츠러 들려는 마음을 다 잡았다.

"좋아, 할수 없지. 대장님껜 네가 시아랑 데이트중이라 못간다고 말해두마."

"뭔 소리예요. 데이트는 무슨놈의 데이트……."

지금 일하는거 보이지 않느냐고 하려던 유한은 자칼의 음흉한 미소를 보았다.

만약 자칼이 송태수, 아니 길포드에게 그렇게 거짓으로 이야기한다면 길포드는 불문곡직하고 쳐들어와 유한을 박살낼 것이다.

저번에 메모리에 야동이 들었다는 누명을 쓰고 얼마나 많이 두들겨 맞았던가.

"자, 그럼 난 간다. 시아랑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라."

"기, 기다려요!"

유한은 떠나려는 자칼의 소매를 잡아 붙들었다.

비겁한 술수에 이가 갈렸지만, 지금 상황에선 두손을 들수밖에 없었다.

"가면 되잖아요! 가면!"

"그래 잘 생각했다. 네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나서 주니 이 사부도 무척 기쁘구나."

'개뿔이 자발적이우!'

유한이 으르렁거리거나 말거나 자칼은 뒷말을 이어나갔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빼먹은게 있는데……."

자칼이 말을 끌자 유한은 짜증 난 목소리로 물었다.

"또 뭔데요?"

"만약 우리팀이 우승해서 상금을 타더라도 네몫은 없다. 어디까지나 넌 자.발.적으로 형님들을 돕기위해 나서는 것이니까. 알았지?"

'켁! 이건 아주 날 공짜로 부려 먹겠다는 거잖아!'

빙그레 웃고있는 자칼이 미워 죽겠지만, 지금은 약점을 잡힌 상황이라 잠자코 있어야했다.

"알았어요. 빨리 가기나 하죠."

서둘러 배틀폴론지 뭔지를 끝내고 오리라 다짐하는 유한 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합금 스킬을 올리기위해.

3

마노스 제국

그로지아 왕국의 동쪽, 베레타 공화국의 남쪽에 위치한 이 나라는 30년 전 마노스 왕국이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통합해 제국으로 거듭난 곳이다.

철혈의 여제 미네르바가 다스리는 이 나라는 유저들에게 공개된 지 1년이 넘지 않았는데, 이곳에 철십자 길드의 본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퀘스트르르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크의 열쇠'가 필요하단 말이지?"

"그래, 대장. 그러니까 나에게 부하들을 좀 빌려줘."

케이지의 말에 철십자 길드의 운영위원이자 무력을 담당하고 있는 베히모스가 생각에 빠졌다.

지금 철십자 길드는 저번의 길드전으로 수많은 길드들의 견제를 받고 있었다. 다크나이트 길드와 B.O.B 길드를 물리친 것까지는 좋았지만, 거대 목인병을 등장시킴으로써 다른 길드들의 시기와 질투를 산것이다.

그래서 철십자 길드는 지금 한창 전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길드의 핵심 기사단을 한낱 열쇠 하나 얻자고 그로지아 왕국에 파견하자니 신경이 쓰일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뇌제의 홀을 얻을 수만 있다면 우리길드의 전력을 한층 업그레이드 할 수 있어."

케이지, 아니 김필중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었다.

고대 아르페디아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영웅 테라칸 황제, 일명 뇌제라 불리는 그의 능력을 손에 넣을수만 있다면 철십자 길드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좋아, 승낙하지. 하지만!"

베히모스의 허락에 희희낙락했던 케이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땐 정말 길드에서 추방해 버릴테니까 제대로해, 알겠어?"

"아, 알았어. 꼭 성공해서 돌아올게."

케이지는 과거 철십자 길드의 분파인 푸른새벽 길드를 말아먹은 일로 운영진의 눈 밖에 났다. 길드전의 원인이 그가 저지른 일 때문이었다는것이 밝혀 지면서 철십자 길드내의 지지기반이 등을 돌린 것이다.

그나마 베히모스가 그를 감싸 주지 않았다면 벌써 추방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뿌드득! 지그 녀석! 내힘을 되찾는 즉시 아주 작살내 버리겠다.'

케이지, 아니 김필중은 자신의 몰락을 초래한 대장장이 녀석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멍청한 녀석, 네 역할은 반크의 열쇠를 찾는 데 까지야.'

김필중이 나가자 베히모스는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실망시킨 녀석을 곁에 둘 만큼 너그러운 성격의 그가 아니었다. 베히모스가 저 멍청한 녀석을 감싼 이유는 학교 친구이기에 앞서 녀석이 뇌제의 홀을 찾는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황궁에 들어가 볼까?'

베히모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노스 제국의 근위 기사단장이기도 한 백작, 어떻게든 여황을 매혹시켜 제국의 힘을 얻을 생각이었다.

유한이 얼마 전 엘프의 숲에 가면서 들른적이있는 그로지아 왕국에 최근 많은 유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로지아의 국왕이 배틀 폴로 대회를 개최했기 때문이다.

"이봐, 배틀폴로가 뭐야?"

왕도 슈탈린에서 한 유저가 지나가는 NPC를 붙들고 물었다. 유저의 반말이 다소 기분 나빴는지, NPC의 말투도 공손하지 못했다.

"왜요? 매틀폴로 경기에 참가하시려고?"

"그러니까 배틀 폴로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는 거 아냐."

유저가 살짝 신경질 난 표정을 짓자 주민NPC는 입술을 삐죽이며 마지못해 설명해주었다. 일반주민 NPC는 유저가 물으면 설명해 줘야 한다고 프로그램 되어 있었기 때문.

"배틀폴로는 우리 그로지아의 전통 놀이인데, 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기존의 폴로 경기를 보다 전투적으로 변화시킨겁니다. 보통 한팀에 모두……."

NPC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이랬다.

배틀폴로란 말을타고 하는 하키랑 비슷하다는 것.

한팀은 모두 7명의 선수들로 이루어 지는데, 상대 골대에 더 많은 골을 넣은 팀이 이기는 경기였다.

배틀 폴로란 이름에 걸맞게 , 공을 지닌 사람을 공격할수 있으나, 말이나 소환수, 그리고 공을 갖지 않은 선수를 공격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을 몰고갈 스틱 외에 다른 무기의 사용도 허가되며, 때에 따라선 골키퍼를 빼고 필드플레이어를 한명 더 집어넣을 수도 있단다.

"허, 이거 완전 전쟁이군."

"그래서 시합도중에 종종다치거나 죽는 사람도 발생하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한이 자칼에게 물었다.

"원래 이런 대회가 있었나요?"

유한이 알기로 배틀 폴로라는 대회는 없었다.

저번 대규모 업데이트 이후, 기사나 전사들의 용력을 가리는 무투대회가 곧잘 열린다고 들었지만, 이런 식의 시합은 금시 초문이었다.

"이번이 처음이지. 그래서 많은 유저들이 구경삼아 오는거야."

"그렇군요. 그런데 상금은 얼마죠?"

도대체 얼마기에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안하는 자칼이 자신을 강제로 끌고 오기까지 했을까.

"우승 상금이 백만 골드에, 준우승 상금이 오십만 골드라고 하더군. 그리고 8강까지 가기만 해도 십만골드는 받을 수 있다지. 그런데 더 탐이 나는건 우승자에게는 국왕이 특별한 아이템을 하사한다는 거야."

'허억!'

100만 골드면 철공소를 지을수 있을 만큼의 큰돈이다. 거기다 국왕이 직접 하사하는 특별아이템까지.

"백만 골드나 되는데 저한테 땡전 하나 안준다는 겁니까!"

"어린놈이 벌써부터 돈을 밝히면 못써."

"그걸 잘 아는 어른이 무보수 착취를 해서야 쓰겠습니까?"

유한의 눈길이 따가워지자, 자칼은 일부러 먼 산을 바라보았다.

잠시 끊겼던 대화는 유한이 다른 주제를 언급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그런데 길포드 대장님이랑 로키형은 왜 안왔어요?"

"그 두사람은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않아. 대장님은 이런 대회는 시시하다며 빠지셨고, 로키는 헬리오스 신전에서 받은 퀘스트를 수행해야 한다고 하더군."

'음, 로키 형을 참가 못하게 한건 나였구나.'

헬리오스신전에 믿을만한 사람을 추천했던 일이 생각난 유한이었다. 아마 로키는 사라진 마물을 추적하고 있을터.

"뭐 그 두 사람이 빠진다고 전력에 차질이 생긱는 건 아니야.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지않나?"

"물론입니다!"

"당연하죠!"

꽤나 승리를 자신하는 듯, 레드 타이거 용병대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배짱 하나는 누구에게 안 뒤질 사람들이다.

"자! 밥부터 먹을까. 일단 먹어야 힘을 쓸수 있을 테니까."

"오! 안그래도 배가 출출했습니다."

"기왕이면 맛있는거 먹으러 가죠."

자칼의 말에 레드 타이거 용병들이 군침을 흘리며 좋아했다.

역시 단순한 인간들.

예로부터 힘쓰기 좋아하는 인간들 치고 먹는 거 싫어하는 인간은 못봤다.

유한과 레드타이거 용병들이 찾아간 식당은 '먹을래 죽을래'라고 하는 고기 뷔페였다. 요리스킬 1랭크 유저가 운영하는 식당이라는 문구가 간판아래 자랑스럽게 적혀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문가에서 친절하게 인사하던 여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것이 덩치가 산만한 장정들 십 여명이 우르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집 오늘 매상은 끝장났군.'

유한은 울상을 짓고 있는 식당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 든든하게 먹고 내일 아침 첫 시합을 준비한다. 알겠나?"

"옛ㅡ 썰!"

자칼의 말에 다들 쟁반을 들고가 양념된 고기를 가득 가득 담았다. 그리고 불판에 올려놓고 굽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고기굽는 냄새가 향긋했다.

"캬! 씹는 맛이 예술이네."

"젠장, 왜 게임에서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은지."

요리스킬 1랭크 유저가 양념한 고기답게 불판에 구워낸 고기는 입에 들어가는 순간, 환상적인 맛과 부가기능을 안겨 주었다.

-영양가 풍부한 식사야말로 진정한 보약입니다. 하루동안 스태미너가 20% 증가합니다.

-고기를 먹으면 기운이 세집니다. 하루동안 힘이 3증가합니다.

오늘 한턱 쏘기로한 곽대발은 술까지 주문해서 용병대원들에게 돌렸다. 물론 길포드와 달리 명성이 떨어지기 싫었던 그는 유한에게는 주스를 주었다.

"자! 모두 우리의 우승을 위해 건배!"

"건배!"

레드타이거 용병대들이 기운좋게 잔을 치켜 올렸을 때였다.

"푸하하하!"

때맞춰 들려온 웃음소리가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음색에 조롱기가 가득한 것이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무릎에 물 찬 노땅들이 우승을 운운하다니, 머리에까지 물이 차셧수?"

"어떤 놈이냐!"

자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살벌하게 눈을 부라렸다.

그 살벌함에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우린 아닙니다'는 식으로 눈을 내리 깔았다.

눈을 깔지 않은것은 반대편 쪽 자리에 있는 한 무리의 덩치 큰 소년들. 그리고, 

"후후훗, 확실히 목소리만은 우승할 만하군."

"네놈은!"

"옌스?"

자칼의 말에 빈정거린것은 바로 옌스였다.

며칠전부터 안보인다 했더니 그로지아에 와있던 것인가. 더구나 언제나 솔플을 하던 녀석이 오늘은 처음보는 거친 녀석들과 함께 있었다.

옌스는 질겅질겅 씹고있던 고기를 꿀꺽삼키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진짜로 우승하는 것은 이 몸이 이끄는 블루 라이언스다."

자칼은 옌스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놈이 자신의 눈에 기죽지 않을 놈이라는 건 이미 알고있다. 유한의 대장간에 들르면서 몇번 봤던 놈이고, 푸른새벽 길드와의 싸움도 함께하기도 했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애송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실력이나 배짱은 뛰어났다. 버릇이 없지만 않으면 레드 타이거 용병대에 넣어 주고 싶을 정도로…….

"블루 라이언스? 그래, 새파랗게 어린 사자새끼들이 감히 호랑이 형님들에게 이길수있다 이거냐?"

"물론, 이몸이 이끄는 사자들은 최강의 팀웍을 가졌으니까!"

잠시 말문은 끊었던 옌스는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최고의 지구력을 가졌지. 노땅들은 어떻수? 한 경기에 빌빌거릴 정도면 그냥 관람하는게 좋을거요. 안그래도 이번 배틀 폴로대회엔 쟁쟁한 놈들이 많이 나온다고 하니까."

"쟁쟁한 놈들이 많이 나온다고?"

자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는 무작정 대회에 참가하려고만 했지, 상대팀에 대한 정보 수집을 전혀 하지 않았다. 까짓것, 모두 때려눕히면 된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을 한 것이다.

"다크나이트 길드가 참가를 결정했고, 스타 더스트, 가우리, 최가장 길드도 참가할 거라 그럽디다. 아! 철십자 놈들을 빼놓을뻔했군."

"다크나이트에 철십자 길드까지?"

지금 옌스가 내뱉은 길드들 모두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길드들이었다. 어디 유명세 뿐인가, 길드의 규모나 전력이 10순위 안에 드는 길드들이다.

그런 길드들이 배틀폴로 대회에 고만고만한 길드원을 출전시키지는 않을터.

"거기다 철십자 길드에선 아주 깜짝 놀랄 비밀 병기를 준비중이라는 소문이우."

"깜짝 놀랄 비밀 병기?"

"게임이 홀랑 뒤집어 질지 모른다고 하는데, 뭐 내가 볼땐 공갈에 사기일 뿐인것 같수."

대체 철십자 길드의 비밀병기란 무엇일까.

옌스가 공갈이나 사기라고 할 정도면 정말 터무니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설마 기계목마를 타고 나오는 건 아니겠지?'

경기규칙에는 말을 대신해 소환수를 타도 된다고 했다.

일전에 철십자 길드의 거대 목인병을 본적이 있었기에 유한은 그들이 그와 흡사한 병기를 대회에 사용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아무튼 우승은 우리 블루 라이언스의 것!"

"닥쳐 애송아. 그딴 놈들은 물론이고 너희들까지 우리가 모조리 날려주마!"

"뭐라? 이 늙탱이들이!"

"훗, 덩치만 큰 코 찔찔이 주제에."

자칼과 옌스를 필두로 호랑이와 사자 양쪽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으르렁 거렸다.

그들이 그렇게 대치하든 말든 한때 아르페디아 대륙의 외로운 늑대였던 인물은 열심히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어느쪽이든 바보들 싸움에 끼이고 싶지 않은 유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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