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티쳐스 붕괴
1
"뭐야? 구 선생? 애한테 탈탈 털렸다고?"
"아이고, 진 선생님. 이거 정말 쪽팔려서 어디 가서 말도 못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아틸라, 아니 구 선생은 자신이 어제 당한 일을 같은 티쳐스의 일원인 진 선생에게 이야기했다.
쪽팔려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절친한 진 선생에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답답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게 어떻게 되였냐 하면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진 선생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지독한…….그 자식 정체는 알아냈소? 하다못해 다니는 학교라도."
학교들 알면 당장 쳐들어가 박살 낼 수 있다.
선생을 팼다고(?) 정학을 먹이거나, 학부모를 불러 크게 혼낼 수 있다.
"그놈 이미 학교를 졸업했답니다."
"그래도 가만둘 수 없군. 내가 길드에 알려 놈에 대한 응징을 강력히 주장하겠소."
"뭐, 그래 주신다면야."
비록 쪽팔리는 일이지만, 놈을 응징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구 선생, 오늘도?"
진 선생은 술잔을 들어 마시는 흉내를 냈다.
그의 얼굴이 기대로 살짝 붉어졌다.
"하지만 전 어제 개털이 되는 바람에 돈이……."
"하하하, 걱정 마시오. 오늘은 내가 쏠 테니까."
어제 왕건이 하나를 잡은 진 선생은 괜찮은 아이템을 압수했다.
그걸 현질로 처분해 마련한 돈으로 오늘도 단골 술집에 가려는 것이다.
"그럼, 저야 좋지요."
"하하하, 그럼 출발!"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한 채 번화가로 나갔다.
"제길, 왜 이리 귀가 가렵냐?"
대장간에 돌아와 주물 스킬을 올리고 있던 유한은 잠시 손을 놓았다.
귀가 가려운 것 때문은 아니었다.
아틸라를 손 봐 주고 채린에게 가방을 돌려주었을 때만 해도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자신은 학교를 관뒀으니까 티쳐스가 손을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생각은 점점 바뀌었다.
돌연 예전의 일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도 분명 괜찮을 거라 생각했었지만…….'
과거 학교 급식 문제를 폭로했을 때 일이다.
그때 네티즌들이 학교를 맹비난했고, 교육청에서도 장학사를 파견하는 등, 학림고는 찍 소리도 못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
유한에게 아무런 처벌을 내리지 못한 것은 당연했고 말이다.
그러나 교감은 애들을 꼬드겨 왕따를 유도하고, 일진 양아치들을 부추겨 유한에게 린치를 가했다.
그런 식으로 괴롭혀서 학교에서 유한을 내몰았다.
'물론 티쳐스 선생들이 그 빌어먹을 교감이랑 똑같을 거란 보장은 없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거기다 한 차례 '어른들의 비열한 수'를 경험했던 유한이기에, 티쳐스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확신으로 굳어 갔다.
'차라리 내가 먼저 행동에 나설까?'
보복을 당하기 전에 티쳐스에게 선공을 날리는 게 낫지 않을까?
꼭 보복 때문이 아니더라도 티쳐스는 손을 봐줄 필요가 있었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와 송코를 제외하고 자신의 동료들은 모두 현실에서 학생 신분이다.
언제든 채린처럼 피해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유한의 고객 상당수가 또래의 학생들이었는데, 그들이 게임을 하지 못하면 유한도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나 오늘 티쳐스 선생이랑 마주쳤다가 털렸어."
"어, 왜? 너 일부러 얼굴 가리는 투구까지 샀잖아."
"그랬지. 근데 수상하다면서 투구를 벗어 보라는 거야. 안 벗으면 티쳐스 홈페이지에 내 캐릭터를 소개하겠데."
"귀신은 뭐 하냐? 티쳐스 박살 안 내고……."
"확 게임 그만둬 버릴까?"
대장간에 온 유저들이 그렇게 쑥덕거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큼지막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에이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에엥~ 언니!"
"왜 그래? 무슨 일이니?"
채린의 품으로 뛰어든 에이린은 훌쩍이며 사정을 이야기했다.
"담임선생님이 내가 던전에서 힘들게 얻은 성물을 빼앗아 가 버렸어. 퀘스트 단서가 되는 소중한 아이템인데 말이야."
"뭐시라!"
벌컥 화를 낸 것은 한쪽에 서 있던 엔스였다.
그는 금방이라도 에이린의 담임선생을 잡으러 갈 것처럼 식식거렸다.
"어디 있어? 그 망할 선생! 이 몸이 아주 요절을 내 주마!"
"아서라, 인마. 괜히 너만 뜯기게 될 거야."
"흥! 선생 따위에 뜯길 내가 아니다."
유한의 충고에 엔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걸리는 게 없었다. 게임해도 좋으니 제발 말썽만 부리지 말아 달라고 학교 선생들이 사정을 할 정도인 문제아였기 때문이다.
티쳐스가 학교에 연락해 봤자 무시해 버리면 그만.
"어떻게 안 될까, 지그야? 너 아틸라 선생한테서 내 가방 되찾아 온 적 있잖아."
채린의 말에 주변의 유저들이 솔깃해져 귀를 기울였다.
대장장이 지그가 티쳐스 선생에게서 빼앗긴 물건을 되찾아오다니. 그것도 상대가 랑스의 악명 높은 약탈자 아틸라였다?
그들은 유한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지그 님. 정말 티쳐스 선생한테서 물건 돌려받으셨어요?"
"대체 뭐라고 하신 건데요? 리자드맨 대군으로 밟아 버린다고 하셨습니까?"
"지그 님, 우리 담탱이한테서 제 물건도 좀……."
"아이템은 됐고, 티쳐스 아주 개박살 내 주세요!"
유저들은 유한이 나서 주기를 애원했다.
유한은 그들의 아우성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티쳐스를 없애고 싶은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이봐, 뭘 고민하는 거야? 그냥 쳐들어가서 박살 내 버리자!"
엔스가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티쳐스는 선생들로 이루어진 길드다.
당연히 아르페디아 대륙 내에 근거지를 가졌고, 그곳은 학생 유저들이 절대 발을 들여놓지 않는 금단의 땅이 되었다.
현재 티쳐스에게 불만을 품은 길드는 많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 길드원들이 갈취를 당하는 걸 알면서도 티쳐스에게 길드전을 선포하지 못했다.
"단순히 싸움을 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야."
리저드맨들을 몽땅 동원하면 티쳐스의 근거지를 박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 식의 보복은 한 차례 통쾌할 따름이지, 티쳐스를 뿌리 뽑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티쳐스는 학생들을 계도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다.
섣부른 행동을 했다간 안팎으로 비난을 당할 수 있고, 애들은 어쩔 수 없다는 비아냥을 들을 게 번하다.
"어떻게 티쳐스를 게임에서 아주 추방해 버릴 방법이 없을까?"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유한은 동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로고 함께 머리를 맞댔다.
송코가 제일 먼저 자신이 생각한 방법을 이야기했다.
"학생들이 당한 것처럼 그들의 아이템을 빼앗으면 어떨까?"
"구체적인 방법은요? 그리고 선생들이 자기 거 털리면 애들에게서 또 빼앗으려 들 텐데요."
"그럼, 사기를 쳐 보는 게 어떨까? 티쳐스도 길드니까 필요한 물품들이 있을 거야냐. 거기에 납품한다고 접근해서 돈 떼먹고 달아나
는 거야."
"리지스 너다운 생각이다만, 그럼 우린 사기꾼이 될 거야."
사기꾼도 머더러 못지않은 패널티를 받기에 그런 짓은 곤란했다.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확 쓸어버리자니까! 이 몸이 선두에 서 주지!"
"인마, 그건 소용없을 거라 했잖아!"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도대체 뭘 해야 되는 걸까.
다들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뒤늦게 나타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러면 어떨까요?"
그는 바로 마법사 오펜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던전을 탐사하던 중 유한의 연락을 받고 달려왔다.
"사실은 내가 이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게 하나 있는 데요……."
그러면서 오펜은 자신이 구상한 '티쳐스 말살 계획'을 이야기했다.
IQ 180에 전교 1등을 하는 수재가 짜낸 작전답게 그의 계획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으며, 게임 내에서 티쳐스를 뿌리 뽑는다는 취지
에도 적합했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계속되고, 미약하거나 허술한 부분은 다른 사람이 제시한 방법을 더해가며 보강해 갔다.
그렇게 티쳐스 말살 계획이 완벽하게 완성되자, 모두의 입가에 감탄이 떠올랐다.
"오펜 너, 원래 이렇게 무서운 놈이었냐?"
"후후후, 날 이렇게 만든 것은 그들이에요."
오펜은 웃음을 지었지만, 모두는 그가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도 티쳐스에게 맺힌 게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런 무서운 계획을 구상했을 터.
어쨌든 그렇게 해서 티쳐스를 궁지로 몰 계획이 모두 세워졌다. 남은 것은 계획을 실행하는 일뿐.
"근데 비밀 임무를 수행할 사람을 구하기 쉬울까 모르겠네."
송코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가장 중요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 하나 있었다.
그들이 아는 사람들 중에선 그 일을 해낼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유한은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걱정 말아요.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하나 알고 있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알긴 아는데 친하지 않다는 것. 친하기는커녕 만나면 곧바로 칼을 뽑아 들 인물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구워삶아야 해.'
승리의 키는 바로 그에게 달려 있으니까.
2
베레타 공화국의 찰스턴 영지.
이곳이 바로 티쳐스의 본부가 있는 땅으로 , 나이 어린 유저들의 모습을 보기 힘든 곳이다.
원래 이찰스턴 영지는 이스라는 길드의 소유였는데, 티쳐스 길드에서 힘하나 안들이고 통째로 접수했다.
학생 신분인 이스의 길드장과 길드의 주력 인사들을 해당 학교 선생들이 볶아 댄 결과였다.
"여기가 티쳐스의 본거지라 이거지?"
어두운 밤. 찰스턴 영지의 하늘을 지나는 기구가 하나 있었다.
야음을 틈타 영지에 안착한 기구에서 2명의 소녀와 펫1마리가 내렸다. 그들은 숲 속에 기구를 숨겨 놓고 근방의 묘지로 달려갔다.
으스스한 분위기의 묘지에 겁을 먹었던지, 궁수 소녀는 앞서 가는 앞서가는 상인 소녀의 옆에 바짝 붙었다.
"어휴, 호위인 네가 떨면 어쩌자는 거야?"
"하지만 묘지로 온다는 말은 안 했잖아."
채린은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듯한 묘지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꾹 참고 들어가야만 했다.
"정말 여기에 영주성으로 가는 비밀 통로가 있는 게 맞아?"
"틀림없어. 예전 이스 길드장에게서 들었는걸."
채린의 물음에 리지스는 들고 있던 지도를 보여 주었다.
이 지도는 예전에 찰스턴의 영주였던 이스 길드장을 수소문해 찾아가 받은 것으로, 성내로 침투하는 비밀 통로가 표시되어 있었다.
예전에 이스 길드장은 몰락 귀족이 의뢰한 퀘스트의 보상으로 이 지도를 받아 찰스턴 영지를 함락시켰다고 한다.
비밀 통로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와 이스 길드원들뿐, 티쳐스의 선생들은 몰랐다. 날로 빼앗긴 것이 분해서 선생들에게는 알려 주지
않았다고.
"비밀 통로 같은 것도 알아내고, 리지스 너 정말 대단한데."
"후후, 내가 대단하다기보다 금력이 대단한 거지."
리지스는 티쳐스 덕분에 거지가 된 이스 길드장에거 적잖은 골드를 건넸다.
그러자 그는 비밀 통로의 지도뿐만이 아니라 영주성의 자세한 구조와 각각의 용도 등도 가르쳐 주었다. 덕분에 이번 작전은 무척이나
수월해졌다.
"바로 여기야."
리지스는 사자 석상이 있는 묘 앞으로 갔다. 그녀는 이스 길드장이 알려 준 대로 사자 석상의 입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안쪽에 있는 레버를 비틀자 묘의 윗부분이 열리며 비밀 통로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들은 비밀 통로를 따라 영주성 내로 잠입했다. 출구는 이스 길드장이 일러 준 대로 성 서쪽의 마른 우물이었다.
채린이 먼저 우물 위로 올라가 주변에 경비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살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서둘러 밧줄을 내려 리지스와 포포를 끌어올렸다.
"무기 창고는 어디라고 했니?"
"영주관 뒤뜰."
그들은 NPC경비병들의 눈에 띄지 않게 주의하며 무기 창고가 있는 영주관 뒤뜰로 갔다.
무기 창고는 벽돌로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입구에는 2명의 NPC병사가 지키고 서 있었다.
리지스는 여기까지 자신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온 포포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너 배고프지?"
"삐이!"
포포는 쇳조각이라면 환장을 하는데, 지난 며칠 동안 그녀와 유한의 방해로 한 조각도 먹지 못했다.
유저들이 건네는 고철도 '먹이 주지 마시요' 라는 팻말을 내세워 차단시켰다.
그래서 대답하는 포포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훗! 화가 많이 났구나.'
포포를 굶기는 것은 가슴이 아팠으나 목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저기 , 저 앞에 보이는 창고 있지? 저기에 가면 맛있는 무기가 잔뜩 있거든. 나랑 시아는 먼저 돌아가 있을 테니까 들어가서 맘껏
먹고 나와."
"삐이?"
리지스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포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대장간이나 상점에서 무구에 조금만 입을 대도 혼나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무슨 이유에선지 실컷 먹으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포포가 움직이려 하지 않자 리지스는 억지로 떠밀어 보냈다.
"괜찮다니까. 얼른 가."
"삐이?삐이?"
연방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던 포포는 리지스가 계속 손짓하자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 창고로 달려갔다.
창고의 창틀에 매달린 녀석은 날카로운 이빨로 쇠창살을 뜯어 삼키고 안으로 들어갔다.
"삐이!삐이!"
주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창고 안에는 포포가 좋아해 마지않는 금속 무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종류도 다양해서 진수성찬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삐이!"
누군가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한 포포는 닥치는 대로 무기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무기 창고로 번을 교대하러 2명의 NPC병사가 다가왔다.
"여, 수고했어."
"후아함! 이제 잠이나 좀 자 볼까?"
병사들이 막 교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콰앙!
엄청난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린 병사들은 깜짝 놀랐다.
창고 안에서 괴생명체가 지붕을 뚫고 나왔던 것이다.
"삐이!삐이!"
굵고 짜리몽땅한 팔다리에 작은 날개를 가진 녀석은 파닥파닥하며 창고 주위를 날아다녔다.
"몬스터다! 괴물이 나타났다!"
곰만 한 덩치의 괴생물체의 등장에 찰스턴 영지는 난리가 났다.
괴생물체를 처리하겠다며 티쳐스 소속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달려왔지만, 놈은 여유롭게 유저들과 NPC들을 희롱한 채 하늘을 날아 사
라졌다.
"저게 대체 뭡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드래곤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그레이크나 와이번 같아 보이지도 않고."
정말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등장하는 그 어떤 몬스터와도 생김새가 달랐다.
"그런데 무기 창고는 어떻습니까?"
그제야 무기 창고의 지붕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한 기사 하나가 물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던 마법사는 충격적인 광
경을 보았다.
"으아악! 이, 이게 뭐야!"
"응? 몬스터가 나타난 건가?"
혹시 또 다른 괴생물체가 나타났나 싶어 티쳐스 길드원들은 서둘러 무기 창고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본 것은.
"이럴 수가!"
무기 창고 안이 썰렁했다.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무구와 금속 아이템들이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은 나무로 된 창대나 칼집, 그리고 쥐가 파먹
은 듯이 깨어진 금속 파편들뿐이었다.
"도대체 누가!"
그들은 방금 전에 지붕을 뚫고 날아간 괴생물체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몬스터가 무기나 아이템을 들고 갈 리가
없이 때문이다.
이 무기 창고에는 찰스턴 영지의 유저와 NPC병사들이 사용할 무구들 외에도 티쳐스의 선생들이 땀 흘려(?) 앗아 온 학생 유저들의 각
종 아이템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분명 누군가 몰래 침입해서 아이템들을 죄다 훔쳐간 것이 틀림없다.
"일급 비상이다! 당장 길드의 간부 회의를 소집해!"
길드원 한 사람이 비상종을 울리며 고함을 질렀다.
3
어쎄신 키라.
오랫동안 카므나의 저주 대문에 고생했던 그는 간신히 하이 프리스트 유저를 만나 원래의 능력을 회복했다.
그가 브로딘 왕국의 본거지로 복귀하자 검은 초승달 길드의 도적 길드원들이 대문 밖으로 마중을 나왔다.
"오셨습니까."
"응, 근데 이 상자는 뭐야?"
"길드장님 앞으로 온 소포입니다."
"나한테?"
의아한 얼굴로 상자를 받아 든 키라.
그는 발송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얼굴이 험악해졌다. 그에게 소포를 보낸 사람은 지그였다.
그놈이 누군지 똑똑히 기억하는 키라는 상자를 땅에 내던졌다.
"뭐야, 이 자식!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고!"
나무 상자가 박살나면서 자마다르 하나와 편지가 나왔다.
이니셜 Z가 새겨진 자마다르는 크롬 합금이라 상당히 가볍고 튼튼했다.
거기다 칼날은 홈을 파고 황금으로 상감해서 무척이나 멋있었다.
굉장한 선물을 받은 키라의 표정이 살벌함에서 짜증 정도의 수준으로 완화되었다.
"흥! 이제 화서 이딴 걸로 용서를 구하자는 건가?"
"길드장님의 보복이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길드원의 아부에 키라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훗, 제 놈도 매일 암살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싶진 않겠지."
안 그래도 저주에서 회복되면 망할 대장장이 녀석부터 족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쪽에서 이런 식으로 머리를 숙여 오다니.
키라는 유한이 보낸 사과 편지(?)를 읽어 나갔다. 편지 중반에 눈길이 닿는 순간, 키라의 표정이 또다시 험악하게 변했다.
"왜 그러십니까? 그놈이 혹시 무례한 언사라도?"
"아니, 그런 건 없었어. 그저 일을 하나 맡아 달라고 하더군."
"감히 길드장님을 부려 먹겠단 말입니까?"
길드원들이 마치 제 일인 양 분해 했지만, 키라는 별말 없이 편지를 접어 품속에 넣었다.
그는 유한의 의뢰를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유한이 이 일의 대가로 미리 지급한 명품 자마다르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수락한 데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흥, 그래. 이번만은 네놈에게 협력하지.'
본거지를 떠난 키라는 베레타 공화국으로 향했다.
얼마 후, 키라가 다시 모습을 보인 곳은 베레타 공화국의 찰스턴 영지였다.
이곳은 며칠 전에 괴생물체가 난동을 부렸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경계가 무척 강화되어 있었다. 덕분에 거리를 활보하는 유저들도
전무한 지경이 되었다.
"이쯤이 좋겠군."
주위를 조심스레 둘러보던 키라는 은신 스킬을 발동했다.
그의 몸이 희미해진다 싶더니 이내 감쪽같이 사라졌다. 완전한 은신 모드로 들어간 키라는 영주관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갔지만, 그가 들어가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르페디아 온라인 랭크 100인 안에 들어가는 암살
자답게 발소리 하나도 흘리지 않았다. 그렇게 키라는 아무도 모르게 영주관 안으로 들어왔다.
"휴, 숨 좀 돌리고 갈까?"
조용한 곳에서 은신을 푼 키라는 인벤에서 마나 포션을 꺼내서 꿀꺽 삼켰다. 은신 스킬은 MP를 많이 고갈시키기에 틈틈이 채워 두어
야만 했다. MP의 보충이 끝나자 그는 영주관 내부의 구조를 파악했다. 병사들과 하인들과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내부를 둘러보던
그는 마침내 집무실을 발견했다. 때마침 차를 가져온 하녀가 집무실 문을 열자 그는 그녀를 따라 공기처럼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집
무실에는 마침 간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50대 초반에 화려한 갑옷을 입은 기사는 티쳐스의 길드장 같아 보였고, 안경을
쓴 40대의 마법사는 회계 담당 같았다. 중요 인물로 보이는 자들이 하녀가 갖고 온 다과를 들며 이야기를 하려 하자, 키라는 재빨리 시선을 그들에게 돌리며 게임의 기능창을 띄웠다. 반투명하게 떠오른 기능창의 단추들 중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영상 녹화'였다.
'좋아! 시작해 볼까.'
"이보게, 김 선생."
소파에 거만한 태도로 앉아 있던 영주가 마법사에게 말을 건넸다.
"예, 교감 선생님."
"티쳐스의 이번 달 활동비는 언제 나오나?"
"그, 그게 일전의 무기 창고 도난 사건으로 길드의 수입이 급감하는 바람에……."
무기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일반 무기들을 잃은 것도 큰 손실이지만 , 티쳐스로서는 자신들의 주 수입원이었던 학생 유저들에게서 압
수한 아이템이 사라진 것이 타격이 컸다.
"어허! 그러니까 내가 좀 더 선생들을 내보내 애들을 단속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단속이 심해질수록 애들도 영악해져서 실적을 올리기가 어렵습니다."
압수품들 외에 마땅한 수입처가 없었던 티쳐스는 학생 단속을 더욱 강화했고, 이에 학생들은 선생들의 지도, 단속에 더욱 불만을 품
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는 그들의 다속에 거세게 항의하는 한편, 그들의 위치를 공개해 다른 학생들이 피해 갈 수 있도록 했다.
"쯧쯧, 그러게 처음부터 창고 관리를 잘할 것이지."
혀를 차던 영주는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래도 이번 달 용돈은 마련이 되겠지?"
영주가 말하는 용돈이란 유흥비를 뜻하는 것이었다.
티쳐스의 일부 선생들은 학생들에게서 압수한 아이템을 몰래 팔아 치워 단란주점이나 노래방 같은 곳에서 유흥비로 쓰고 있었다.
김 선생이란 자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핫! 어떻게든 용돈은 충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다행한 일이군. 여러 선생들이 학생들을 지도하느라고 불철주야 고생하는데 그에 대한 보답이 없어서야 쓰나. 김 선생도 날
잡아서 단란주점에 한번 다녀오도록 하게. 저번에 보니까 오 양이 애교덩인 게 아주 죽이더구먼."
"오! 그렇습니까?"
"고년이 아주 사람을 살살 녹이는 게……."
그때부터 두 선생은 음담패설을 이어 나갔다.
'저런 망할 놈의 꼰대들!'
벽장에 숨어 그들의 이야기를 녹화하고 있던 키라는 순간 뛰쳐나갈 뻔했다. 망할 대장장이 녀석에게 받은 일만 아니면 당장 저 선생
들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버렸을 것이다.
'이놈들 때문에 나의 문혜옥 양이!'
7년 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키라, 아니 박건우는 당시 인기 절정의 가상현실 무협 온라인 게임인 '청풍명월(淸風明月)'을 하고 있
었다. 당시 그는 백도 무림에 속한 검수 캐릭터였는데, 문혜옥이란 아리따운 소녀 검수와 커플을 이뤄 즐겁게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불행이 시작된 것은 '교사맹(敎師盟)'이라는 세력이 게임에 나타나면서였다. 교사맹은 그 전부터 온라인 게임에서 악명을 떨치던 티
쳐스의 무협 버전이었다. 교사맹 선생들은 백도 흑도를 가리지 않고, 청소년들을 마구잡이로 털어 갔다. 그들은 무기와 영약, 무공서
같은 값진 아이템을 앗아 간 것도 모자라, 학생 유저들의 캐릭터에 점혈을 눌러 무공까지 제한 혹은 폐지시켰다.
이 같은 패악에 수많은 기인 영재들이 강호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박건우의 짝인 문혜옥도 교사맹 고수의 손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고 상실감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게임을 접었고, 박건우는 영영 그
녀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박건우도 즐겁게 하던 청풍명월을 접었다.
키라가 원한에 이빨을 뿌드득 갈아붙일 때 교감이란 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시간이 늦었구먼. 이만 가 봐야 할 듯하이."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두 사람이 로그아웃을 하자 키라는 은신술을 풀었다.
그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집무실을 샅샅이 뒤져 티쳐스의 비리와 관련된 서류들을 찾았다.
"후후후, 너희들은 이제 끝장이다."
다시는 온라인 게임에서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리라.
몇장의 서류를 스크린 샷으로 찍은 키라는 그 자리서 사라졌다. 이제 남은 일은 이렇게 찍은 파일들을 공개하는 일뿐이다.
4
"티쳐스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선생들은 지금까지 학생들에게서 압수한 아이템을 돌려 달라!"
"돌려 달라!"
선두에 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유저가 확성 마법이 걸린 마이크를 붙들고 선창하지 광장을 가득 메운 앳되어 보이는 유저들이 따
라서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던 한 중년 전사가 이 모습을 보고 의아해 동료에게 물었다.
"어이, 지금 애들이 뭐 하는 거야?"
"쯧쯧, 이렇게 정보에 귀가 어두워서야. 잘 듣게. 한번만 말해 줄 테니까. 저 애들은 지금까지 티쳐스에 피해를 입은 학생 유저들이
야. 그동안 압수당한 아이템과 돈들을 돌려 달라고 이렇게 몰려온 거지."
"뭐? 그런다고 티쳐스가 돌려주겠나?"
"물론 예전이었으면 씨도 안 먹힐 소리지. 하지만 말이야. 며칠 전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폭로 동영상과 파일 때문에 그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져 버렸어."
"오잉, 폭로 동영상?"
중년 전사가 두 눈을 똥그랗게 떴다.
"티쳐스 일부 선생들이 학생 유저들에게서 압수한 아이템을 팔아 유흥비로 사용했다는 증거와 함께 음담패설을 입에 담는 동영상이
올라와 엄청난 이슈가 되었지."
"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정말 말세야, 말세. 선생들마저 저렇게 썩었다니 이젠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
두 중년 유저는 서로 혀를 차며 광장을 가로질러 갔다.
"여러분! 우리들의 요구가 저들의 귀에 아직 안 들리는 모양입니다. 조금 더 크게 고함을 지릅시다. 티쳐스는 물러가라! 그리고 우리
에게서 빼앗아 간 아이템을 돌려 달라!"
"티쳐스는 물러가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아이템을 돌려 달라!"
함성을 지르는 유저들 가운데는 이번에 계획을 구상해 티쳐스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유한 일행이 있었다. 그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피켓을 치켜들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오펜 오빠,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티쳐스 선생님들이 그런 비리를 저지를 거라 예상했어요?"
에이린의 감탄에 오펜은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가를 저었다.
"훗, 원래 명분이 걸린 일이라며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자들치고 제대로 된 사람은 별로 없거든."
"그럼 확신을 했다는 거예요?"
"좋은 명분이라도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절제를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절제가 부족해지면 비리가 생기는 게 당연하지."
오펜의 말에 동료들은 낮게 탄성을 질렀다.
그들은 다시 시선을 앞쪽으로 돌렸다. 선두에서 빨간 띠를 두르고 유저들의 함성을 모으고 있는 유저는 바로 유한이었다.
"큭, 지그 녀석 완전히 정치인 같잖아."
"나중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도 되겠어!"
그들이 키득거리고 있을 때 효과음과 함께 휴한에게 안내창이 떠올랐다.
-1,000명 이상 유저를 1시간 동안 충동질하셨습니다. 선동하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동 스킬]을 익히셨습니다.
-유저나 NPC를 선동하면 일정 시간 동안 전투력과 사기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풋! 어쩌다 보니 선동까지 익히게 되었군.'
유한은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
선동 스킬은 도발과 같이 모든 유저가 배울 수 있는 국민 스킬이다. 위력은 약하지만, 버프 효과가 있기에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획득 조건이 다소 번거로워 익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킬 획득에 좋아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유한은 새로 익힌 선동 스킬을 가동한 채 목소리를 더욱 크게 질렀다. 불끈 쥔 그의 오른 주먹에는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힘차게 외칩시다! 티쳐스는 물러가라! 우리에게서 빼앗은 아이템을 돌려 달라!"
유한이 광장에서 학생 유저들을 선동하고 있을 때 영주 집무실의 테라스에도 몇 명의 선생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 선생! 저들을 당장 몰아내지 않고 뭐 하는 겁니까?"
"저, 그게 교감 선생님. 우리들의 입장이 난처해 함부로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티쳐스는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명분 아래 학부모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활동해 왔다. 그들의 명분에는 게임 개발사인 드림
맥스도 쉬이 간섭하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전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동영상과 문서가 찍힌 스크린샷 파일로 상황이 역전되어 버렸다. 누군가 침투해서 자신들의
대화 장면을 녹화 해 갔고, 아이템 거래 내역 서류까지 찍어 갔다.
이건 정말 크게 한 방 먹은 셈이었다.
명분이 아무리 좋더라도 선도 세력이 도덕적 문제를 드러내면 지지를 받기는커녕 공격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건 합성이라고, 조작된 영상이라고 주장하세요!"
"하지만 함께 공개된 자료가 너무 구체적인지라 저희들의 말이 먹히지 않습니다."
이미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학부모들이 등을 돌렸고, 그 다음으로는 GM이 티쳐스 활동을 중지하라는 권고문을 주고 갔다.
길드전이 아니면 여간해서 볼 수 없는 GM들이 이번 일 때문에 찾아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심각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권고문에는
차후 티쳐스 활동을 지속할 시에는 전원 계정을 영구 압류하겠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미 우리가 쓸 카드는 없습니다. 동영상이 올라간 뒤로, 길드를 탈퇴하고 애들에게서 빼앗은 아이템을 돌려주겠다는 선생님들이 속
출하고 있습니다."
김 선생의 말에 여러 선생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정말 이번 일은 티쳐스가 생겨난 이래 최대의 위기였다.
이번 사건 덕분에 지금까지 학생계도를 명분으로 여러 게임에서 보였던 그들의 활약이 학생들을 착취하기 위함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앞으로 아르페디아 온라인은 물론이고 다른 게임들에서 티쳐스의 활동이 불가능해질지 모른다.
;아니, 그것보다 교육청에서 이번 일을 조용히 넘어갈까?'
선생들이 제일 두려운 건 그 문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우리들은 선생입니다. 이 나라의 후진들을 육성하는 교육자라고요. 당장 드림팩스에 항의하세요. 그리고 저 발칙한 것들은 당장 해산시키도록 하세요!"
그는 바로 티쳐스의 길드장인 정 교감이었다.
정 교감은 아직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아니, 이해한다 해도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대로 물러나고 인정하면 지금까지 누려 온 모든 것을 다 잃고 만다.
"교감 선생님, 지금은 고집을 부리실 때가……."
"어허! 김 선생! 당장 내가 시키는 대로 안 할 거요!"
김 선생은 학교에서 상사이기도 한, 정 교감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길드원들과 NPC병사들을
보내 시위대를 해산케 했다.
'어쭈구리! 우리들을 해산시키시겠다?'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을 본 유한은 쾌재를 불렀다.
처음에는 그냥 티쳐스의 사과와 압수한 아이템들을 보상받는 선에서 일을 끝내려 했는데, 이젠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유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유저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여러분! 이대로 저들에게 질 수 없습니다. 모두 떨쳐 일어나 우리들의 단합된 힘을 보여 줍시다!"
"우와아아아!"
그동안 티쳐스에 피해를 본 학생 유저들이 모두 떨치고 일어섰다. 그들은 영주관으로 전진하며 병사들과 충돌했다.
처음엔 밀고 당기는 식의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자그마한 불꽃이라도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뭐 하는 건가! 당장 저놈들을 해산시켜! 안 되면 때려 눕혀! 대가리를 터트려 확 죽여 버리란 말이야!"
불꽃은 영주 집무실 테라스에 서 있던 길드장 정 교감이 떨어트렸다.
교육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의 외침에 NPC들이 무기를 빼 들어 휘두르기 시작했고, 선두에 섰던 시위대 학생들이 우수수 쓰러져 나
갔다.
"모두 공격! 타락한 선생들에게 학생들의 정의를 보여줍시다!"
유한의 외침에 시위대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본격적인 유혈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내 아이템 내놔라, 꼰대들아!"
"남의 피땀 어린 아이템을 팔아 처마신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디까!"
처음에는 선공을 날린 티쳐스들의 우세로 시작되었으나,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학생 유저들이 속속 가담하자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을 정
도로 커져 버렸다.
빽빽이 일어난 창칼들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고, 마법과 버프의 물결이 영주관 앞을 화려하게 물들였다.
"광포중 선생님들더러 빨리 접속해 들어오라고 하세요!"
"카잔 방면 길드원들이 오려면 아직 멀었나?"
티쳐스는 티쳐스대로 전력을 총동원하고, 학생들도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인맥들을 모두 동원했다.
"이형복 선생님, 칠 년 전 청풍명월의 원한을 지금 풀어야겠습니다!"
"경복고 학주 다마네기! 거기 있는거 아니까 얼른 튀어나와!"
과거에 티쳐스에게 당했던 대학생, 일반인 유저들도 달려와 학생들의 전력에 힘을 보태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 측의 전력은 점점 증가하였고, 티쳐스 쪽은 하나 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교사와 학생의 싸움이 벌어진 지 3시간 후, 티쳐스 길드가 찰스턴 영지의 영주관을 버리고 퇴각함으로써 장렬하고 역사적인 전투는
끝을 맺었다.
5
밤 9시.
이 시간은 대다수 TV 채널들이 뉴스를 방송하는 시간이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BC 9시 뉴스 아나운서 전주일입니다."
KBC 9시 뉴스는 전통적인 공영방송 뉴스 프로그램으로 다소 보수적이라 평가받지만 정치, 시사, 경제 관련 소식들을 시청자들에게 꾸
준히 전해 오고 있었다.
몇 개의 보도가 흘러가고 전주일 아나운서의 얼굴에 황당함이 깃들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여러 문제가 대두되었지만, 심지어 이런 일까지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교사가 게임에서 학생
들에게 빼앗은 아이템을 처분해 유흥비로 탕진하고, 분노한 학생들이 교사들을 폭력으로 보복한 참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보도에
서준한 기자입니다."
전국 시정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사적인 전투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마치 자신들의 잘못인 양 말하는 아나운서의 말에 분노가 치밀었다.
시청자가 그러거나 말거나 화면은 뒤바뀌어 찰스턴 영지의 영주관이 나오더니 자신의 캐릭터로 접속한 서준환이란 기자가 보도를 시
작했다.
"오늘 새벽 0시 5분. 유명한 D사의 A게임 내 이곳 c영지에서 예정이 없었던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후 관련 영상이 떠오르며, '학생 혁명'이라 불리게 된 전투가 벌어진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아나운서의 다소 편파적인 말과는 달리 기자는 티쳐스의 비리와 학생들의 시위, 그리고 충돌에 대해 비교적 공평하게 소개했다.
"서 기자, 교사 측에선 학생들이 위협을 해서 먼저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입니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학생들이 영주관 쪽으로 진입을 시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교사 측이 학생들과의 대
화를 단절했고 학생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먼저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이후 뉴스는 현재 찰스턴 영지의 동향이라든가, 쫓겨 간 티쳐스의 상황 같은 것들을 짤막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이게 가상현실에 얽매인 사회적 병폐라느니, 교사도 학생도 이래선 안 된다느니 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또 여기에 언제 인터뷰를 했는지, 이번 사건에 대한 모 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의견이 뒤이었다.
"이는 교사들의 잘못이 큽니다. 과연 그들이 순수한 뜻으로 그런 활동을 했는지 의문스럽고, 아이템 압수는 교육자의 행동으로 볼 수
없는 무지막지한……."
뉴스는 중도성을 유지하기 위함인지 선생들을 응호하는 일선 모 교사의 인터뷰도 소개되었다.
"이걸 해도 안 되고 저걸 해도 안 되니 급기야 아이템 압수를 했다는 겁니다. 물론 그 처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잘못이죠. 하지만
선생들도 사람이고, 이대로 놔두면 애들 학업은 둘째 치고 현실 감각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니까 어쩔 수 없었던 겁니다."
방송을 보고 있던 학생들은 분개했다.
얼마나 자신의 말에 자신이 없었으면 얼굴에 모자이크 떡칠을 하고, 음성변조까지 했겠는가.
-교사만 사람이냐? 학생도 사람임!
-학생이 어디 사람인가. 축생이지ㅋㅋ.
-우리 선생은 출석부를 때 한 마리, 두 마리 하는 식으로 헤아립디다ㅠ.ㅠ
-학생은 죄수에요. 이름으로 안 불리거든요. 전 1학년 때 12번이고, 2학년 때 19번이고, 3학년 때 8번이었습니다.
-이놈의 교육 활경은 30년이나 넘게 지나도 이따구여?
-대한민국이 교육계가 그렇지 뭐.
뉴스가 진행되는 중에 뉴스 게시판에 시청자들의 글들이 쉬지 않고 올라왔다. 대부분이 티쳐스를 비난하는 글이었고, 간혹 티쳐스를 옹호하는 글들은 올라와도 순식간에 묻혀 버렸다.
9시 뉴스의 바톤을 이어받은 것은 케이블 TV의 인기 게임 프로그램 버추얼 에이지였다.
그들이 다룰 주제도 학생 혁명이었다.
하지만 버추얼 에이지에서 구체적으로 다루려는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였다.
"자 방송 들어갑니다, 셋, 둘, 하나!"
PD의 신호와 함께 방송 화면에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귀엽고 깜찍한 여러분들의 요정 미루입니다.]
[이정민입니다.]
특유의 제스처로 시청자들을 향해 인사한 사이버 캐릭터 미루는 생글거리는 미소를 보이며 귀엽고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지금 저희는 오늘 새벽에 있었던 학생 혁명의 뒷이야기를 들려 드리기 위해 역사의 현장에 와 있습니다.]
미루와 이정민은 찰스턴 영지의 영주관 앞에 서 있었다.
이미 주변이 깨끗이 정리되어 새벽의 격렬했던 전투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여전히 많은 유저들이 흥분한 상태로 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와우! 분위기가 대단하네요. 독재자를 물리친 나라에 온것 같아요.]
[압제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같으니까요.]
카메라맨은 승리의 깃발을 휘두르고, 승전가를 부르는 유저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정민 씨, 이번 학생 혁명을 이끈 유저가 누구인지 밝혀졌습니까?]
비록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지만, 그들의 힘이 하나로 단합되지 않았다면 티쳐스를 몰아내기는커녕 그들에게 맞아 쫓겨났을 것이다.
시청자들도 이 같은 거사를 치른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아, 그건 일단 자료 화면을 보시죠.]
이정민의 눈짓에 화면 한쪽에 창이 뜨더니, 수백 명의 학생들이 찰스턴 영지의 광장에 앉아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 나왔다.
그 선두에서는 머리에 붉은 띠를 맨 한 유저가 열심히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어머, 굉장히 낯익은 유저인 것 같은데요?]
[그럴 수밖에요. 그는 공중 요새의 최초 발견자이자 리저드맨 대군을 끌어들여 푸른새벽 길드와의 길드전에서 승리한 대장장이 지그이니까요.]
[아, 그 대장장이 지그 님이었군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미루가 손뼉을 쳤다.
[정말 요즘 들어 이래저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분이네요.]
[지금 이 순간에도 화제를 만들고 있는 모양입니다. 찰스턴 영지를 처분하는 일로 말입니다.]
[찰스턴 영지를 처분한다고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미루는 얼른 바르쳐 달라는 듯 커다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하하, 일단 알려 드리기 전에 오늘 저녁 올라온 따끈따끈한 영상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정민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그들이 있던 화면이 사라지고, 몇 시간 전 누군가가 찍은 동영상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치열한 사움이 벌어진 영주관 앞의 광장.
싸움은 끝났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은 수백 명의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티쳐스가 몰락하면서 모든 것이 끝났지만, 한 가지 문제를 풀지 못해 갑론을박을 하는 중이었다.
그 문제는 다름 아닌 티쳐스를 몰아내고 손에 넣은 찰스턴 영지의 처분 문제였다. 애초에 시위만 하려고 모였지, 영지 점령은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었다.
"찰스턴 영지를 재력이 있는 길드에 팔아 그 돈을 공평하게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리지스의 의견에 같은 상인 유저들이 찬성을 보냈지만, 석궁을 어개에 걸친 궁수 유저 하나가 고개를 저으며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차라리 학생 길드를 만들고 길드 공동의 소유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몇몇은 찬성했지만, 타당하지 않다 여겨졌는지 대부분 유저들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유저들 중에는 이미 길드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이 많았다. 현재 가입된 길드에서 탈퇴하고 새로운 길드에 투신하는 일은 쉽게 결정 내릴 문제가 아니었다.
"이 영지는 원래 이스 길드의 소유였다고 들었어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건 어떻습니까?"
"글쎄 그것도 좀 아니라고 보는데요? 다 같이 힘을 모아 거둔 결과인데 원래 주인이라고 덥석 맡겨 버리기엔……."
"그냥 깨끗이 포기합시다. 우리가 영지 먹으려고 모여서 싸운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냥 버리고 가긴 아깝습니다."
한 시간도 넘게 토론이 벌어졌지만, 의견이 분분해 어느 하나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유한은 묵묵히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있었다.
여러 의견들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광장 중앙으로 나갔다.
모든 유저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대장장이 지그는 이번 학생 혁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그는 자신의 고객들을 필두로 하여 사람들을 설득하고, 아르페디아와 관련된 여러 게시판에 글을 올려 학생 유저들의 참가를 이끌어냤다.
그가 조직한 시위대에 자극을 받아 용기를 낸 다른 학생 유저들이 하나 둘 가담했고, 그렇게 뭉쳐진 커다란 힘이 결국 티쳐스를 무찌르게 되었다.
"저에게 괜찮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보겠습니까?"
"말해보시죠."
대장장이 지그가 그 어떤 유저보다 공헌이 크다는 걸 알기에, 유저들은 자기들끼리 떠드는 것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사실 우리끼리 길드를 만드는 것도 힘들고, 영지를 팔아서 돈으로 나눈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치부하게 되면 우리도 티쳐스의 선생들과 다를 게 없게 됩니다."
티쳐스도 학생 계도라는 좋은 명분을 갖고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변질되었다. 심지어 학생들에게 거둬들인 아이템을 팔아서 자기네 하고 싶은 대로 먹고 마시며 아가씨들에게 팁까지 찔러 주었다.
빼앗은 영지를 팔아서 서로의 주머니를 채우게 되면, 사람들은 학생 유저들의 의거(義擧)를 불순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은 이 영지를 자유도시로 만드는 겁니다."
"자유도시요?"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의 명의로 이 도시를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운 도시로 만드는 겁니다."
자유도시.
약간의 상업세와 토지세를 제외하면 거의 세금이 없어 유저들이 장사나 활동하기에 좋긴 하지만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아르페디아 대륙에 몇 개의 자유도시가 있긴 하지만 3~5개의 중소 길드들이 연합체를 이루고 협의를 하여 이끌어가는 방식이었다.
티쳐스 타도라는 목적 아래 모였던 유저들이 그들처럼 영지의 지배난 행정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어렵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이 영지는 부당한 폭압에 대항해 승리한 학생 유저들의 성지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될 것입니다."
하나로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있다면 혼란은 줄어든다.
학생 유저의 성지.
이번에 거사에 참가한 유저들이나, 비록 참가하진 못했어도 암묵적인 지지를 보낸 학생 유저들에게 찰스턴 영지는 영원히 유지해야 할 신성한 땅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거대 길드가 이 영지를 노리고 쳐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티쳐스가 돌아오게 된다면요?"
한 유저가 그 가능성을 제시햇지만, 유한도 그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 우리는 다시 한 번 단합된 힘을 보여 주면 됩니다. 한 번 했으니, 두 번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 모인 유저 전체의 명의로 이 도시를 건드리는 자에게 처절한 응징을 약속한다면 누가 감히 이곳을 노리겠습니까?"
이곳에 모인 유저들의 수가 수백. 거기다 그들의 인맥까지 동원하고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는 유저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가히 수천 아니 수만에 달할 것이다.
그런 유저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누가 감히 이곳을 먹으려고 덤벼들 것인가.
행여 그럴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겨우 작은 영지 하나 먹자고 수많은 유저들을 영구히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길드는 없을 것이다.
유한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자유도시의 영주와 행정관들은 석 달에 한 번씩 모여서 투표를 통해 뽑으면 됩니다."
"오오, 좋습니다!"
"나도 찬성이요! 그렇게 합시다!"
유한의 설명이 끝나자 유저들이 곳곳에서 찬성을 표했다.
민주주의 식으로 누구나 영지를 지배할 기회를 주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럼, 학생 혁명 의의를 기리기 위해 찰스턴 영지를 자유도시로 선포하는 바입니다."
유한의 선언이 끝나자 모든 유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열렬히 박수쳤다.
거기서 자료 화면이 끝났다.
[오오, 영지를 자유도시로 만들기로 결정했군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선포를 한 후, 지금 대장장이 지그님의 새로운 작업에 착수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새로운 작업이요? 어떤 건가요?]
[직접 한번 보시죠.]
이정민과 미루는 인파를 헤치고 광장 중앙으로 이동했다.
현재 광장에 모인 유저들은 광장 중앙에서 유한이 하고 있는 작업을 구경하고 있었다.
조각가 유저의 협력을 받은 유한은 광장 가운데 청동 기념상을 만들었다.
이 청동 기념상은 학생 혁명의 전승탑이자, 자유도시 찰스턴을 영구히 유지하기 위한 구심점이 될 상징이었다.
폭압에 항거하는 학생 유저의 모습은 조각가 유저가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을 유한이 청동 주물로 완성했고, 그렇게 완성된 동상을 미리 준비된 단상에 올렸다.
2미터 높이의 단상 사방에는 티쳐스에 대항한 유저들의 역사적인 전투 기록과 자유도시르 ㄹ선포한 지그 외 756명의 유저들의 서명이 새겨져 있었다.
그렇게 기념상이 완성되자 유저들은 또 한 번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야, 정말 멋지군요.]
[혁명의 마무리로 참 근사하지 않습니까?]
이정민의 짧은 감평을 끝으로 버추얼 에이지는 다음 코너로 넘어갔다.
[자, 다음으로 그로지아 왕국에서 준비 중이 국왕배 배틀 폴로 대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