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소리
투덜거리며 신전으로 돌아온 유한은 다시 종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아직 천상의 소리를 울릴 종을 만드는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퀘스트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가 삽질을 하더라도 주물스킬경험치는 주었기 때문이다.
"자네가 종을 만드는 대장장이인가?"
막 종의 원형에다가 밀랍을 바르고 있을 때였다.얼굴에 주름이 쪼글쪼글한 늙은 신관이 유한을 찾아왔다.
"누구십니까?"
"하든이라고 하네. 이 신전을 책임진 대신관이지"
"아,그러십니까?"
유한은 지금까지 마론이 신전의 최고 신관인 줄 알았다.그런데 대신관이라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대신관이라면서 왜 이제 나타난 거지?'
혹 작업이 지지부진하고 있으니 잔소리라도 하려는 건 아닐까.정말 그렇다면 안 옷것만 못했다.
"많이 힘든 것 같군"
"보면 모르십니까."
대신관의 말에 유한은 퉁명스럽게 맞받아쳤다.진작 끝났을 일을 천상의 소린지 뭔지 때문에 계속
퇴짜를 먹고있었다.
"그래,종을 만들 방법은 찾았나?"
"찾았을 것 같습니까?"
하든 대신관은 쓴웃음을 지었다.꼬인 듯한 상대의 말투에서 현재 그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잇었다.
지금까지 종이 완성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혹시 바쁘지 않다면 이것 좀 고쳐주지않겠나?"
하든은 유한에게 피리 한 자루를 내밀었다.구리로 된 피리는 아래쪽 3분의 1쯤 되는 부분이 살짝 구부러져 있었다.
"뭐 이런 거야 간단히......".
유한은 구부러진 피리의 양쪽을 잡고 힘을 주었다.
퀘스트로 받은 의뢰가 아니라서 적당히 힘을 줘서 펴보려고 했지만,쉽지 않았다.결국 모루 위에 피리를 놓고 망치로 두들겨야 했다.
"응?"
망치질을 하고 있던 유한의 귀에 노랫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 끄집어냈는지,하든이 작은 하프를 들고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이 영감이 지금?'
누군 일하고 있는데 누군 속 편히 놀고 있다고 생각하니 울컥 화가 치밀었다.
유한은 한 마디 쏘아 주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하든의 노래 소리가 망치질과 절묘하게 어울리며 정신이 사나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작업에 집중이
잘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요.구부러진 거 다 폈습니다."
"고맙네."
하든은 수리된 피리를 입에 대고 불었다. 별 볼일 없는 구리 피리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나왔다.
"잘부시네요."
"허허,세상에 빛을 주시고 음악으로 만물을 교화하는 헬리오스 님을 섬기는 종이 노래 한 곳 연주 못해서 쓰겠나."
하든의 연주 실력은 정말 뛰어났다.높고 맑은 피리 소리를 들으니 초조하고 복잡한 마음이 실타래처럼 풀리는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헬리오스를 믿는 신관들의 능력?'
얼마 후 연주를 끝낸 하든이 유한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어떤가?늙은이의 연주가 들을 만 했는가?"
"훌룡했습니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유한의 칭찬에 미소를 띤 하든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니 기쁘군. 난 실수를 할까 봐 걱정을 했었다네. 원래 난 악기를 다루는 데 그다지 소질이 없었으니까."
"소질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부신 겁니까?"
"연습하고 또 연습을 했지. 한 곡을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서 수백 수천 번을 연습한 적도 있었지."
"수백 수천 번이라고요?"
과장이 아닐까? 겨우 한 곡 연주하자고 수천 번을 연습한다니.
유한 자신도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알아주는 노가다쟁이지만, 저 영감은 더한 거 같았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연주라면 몇 번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연주는 다르지."
"마음을 울려요?"
"마음을 울리면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교화할 수 있지. 슬픔을 씻어 내는 것도, 분노를 다독이는 것도, 싸움을 말리는 것도 가능하다네."
잘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연주 한 번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그는 음악의 신이라 불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게임. 그런 일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더구나 음유시인 유저들은 여러 가지 특이한 스킬과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이 하든 대신관이 말하는 그것과 관련이 있다면?
"마음을 울리는 것은 매우 힘들어. 같은 음이라 해도 오묘한 차이가 있지. 그 오묘한 속에 숨겨진 소리를 꺼내기 위해서 숱한 고생을 해야 하는 거야."
거기까지 이야기한 하든은 유한을 바라보면 말했다. 지금까지 가볍게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던 것과 다른 진지한 눈빛이었다.
"자네는 심금을 울리는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어떤 노력을 하다니요? 보시면 아시잖습니까. 방법을 찾아 전력을 다하고 잇는 중입니다."
"정말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뭐라고요? 영감님이 몰라서 그렇지 제가 그동안 고생한...."
유한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하든이 들고 있는 구리 피리로 그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기 때문이다.
"이 피리, 처음에 간단하게 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
"....?"
"하지만 어떤가? 자네는 고치는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손에 힘을 줘 펴려고만 했지. 그래서 처음엔 허탕을 칠 수 밖에 없었던 거야."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 같았다. 종의 제작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스스로 전력을 다했다, 최선을 다했다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종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야. 처음으로 돌아가 보세. 그럼 분명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거기까지 말한 하든은 유한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떠나는 대신관의 등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한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으아악! 무슨 놈의 NPC가 말을 이렇게 어렵게 하냐? 처음으로 돌아가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대신관은 유한의 경솔함에 대해서 탓했다.
이번 퀘스트를 맡으면서 자신은 계속 진지하다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일까?
유한은 종 만드는 작업을 중지했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 무턱대고 작업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처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정말 처음부터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거랍면 말이다.
"내가 도대체 뭘 실수한 거지."
유한은 작업장 주변을 몇 번이고 빙글빙글 돌았다. 돌면서 종 제작을 의뢰받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떠올려 보았다. 뭐가 잘못이었는지, 아님 무엇을 그냥 지나쳤던 것인지.
제작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천상의 소리가 나야 할 종을 만드는 자신의 행동이나 말투가 너무 불손했던 것일까. 여러가지 요인들을 살펴보던 유한은 문득 광장에서 만난 노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악마를 잠재울 수 있는 신종은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네."
유한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아까부터 일도 안 하고 빙글빙글 돌던 유한이 멈춰 서자, 채린과 송코가 곧장 그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좋은 방법이라도 생각난 거야?"
"또 아기를 제물을 쓰려는 건 아니지?"
유한은 그들의 말을 듣는 둥 했다. 뭐가 문제였는지 감을 잡은 것이다. 그는 곧장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젊은 신관에게 달려갔다.
"고문서 보관실이 어딥니까?"
"거긴 왜 가시려는 겁니까? 거기는 상급 신관 이상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잔만 말고 안내나 하셔."
유한의 시퍼런 기세에 눌린 신관은 신전의 고문서 보관실로 그를 안내했다. 고문서 보관실의 문은 커다란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암 브레이크!"
"으악! 뭐 하는 겁니까!"
"지그야!"
안내한 신관은 물론이고 채린과 송코도 깜짝 놀랐다. 유한이 아주 막무가내로 고문서 보관실의 문을 부수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니 , 들어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서를 마구 빼서 살펴보았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옛날 기록을 좀 보려고, 일단 신종에 대한 기록을 모조리 찾아 줘."
"지그야 , 이런 짓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괜찮으니까 일단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해요!"
유한의 기세에 이끌린 채린과 송코는 장서들을 뒤져 가며 신종에 대한 기록들을 찾았다. 이곳까지 유한을 안내해 왔던 신관은 뒤에서 '나는 이제 죽었다'는 소리만 연거푸 반복했다.
'이건.....!'서고를 뒤지던 유한은 신종과 관련된 기록을 발견했다. 300년 전 , 어느 신관이 남긴 기록에 프라테우스 신종의 단면도와 종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이 적혀 있었다.
'마물을 잠재운 종?' 신종에 대한 믿기 어려운 기록들은 유한을 어리둥절 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종의 울림만으로 고대의 마물을 봉인하고 , 몬스터를 쫒아 버리는 게 가능했단 말인가.
....옛 기록을 미신이라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 프라테우스 신종의 구조를 파악해 본 사람은 그 기록이 진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신종은7음계 중 가장 맑은 음을 육중하게 울리는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파동은 신성력이 발휘될 때의 파동과 동일하다.즉,어둡고 사악한 기운을 소멸시키는 힘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마물이라도 자신의 근본을 파괴하는 파동에 당할 재간이 없다.
이 점을 생각해 볼 때, 칠백 년 전 이 종을 만든 신관 프라테우스는 신앙심이 투철할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면에서도 해박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일부러 종을 크고 두껍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마물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독특한 파동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파동이 단순히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고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유한은 이미 3번째 신종을 완벽하게 복제해 냈다.
종에서 흘러나오는 파동이 마물을 제압할 수 잇기 위해서는 분명 다른 뭔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그야, 이걸 봐."
채린이 또 다른 기록을 찾아 유한에게 보여 주었다. 그녀가 찾아낸 고서는 프라테우스 신관의 일대기였다.
거기엔 그가 신종을 만들 때 치렀던 의식들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갑자기 들려오는 엄한 호통 소리. 고개를 돌린 유한의 눈에 마론 신관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미 읽을 만한 것을 전부 다 읽은 유한은 책을 내려 놓고 마론 신관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짓이냐고요? 그럼 신관님은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무슨 짓을 하다니?"
"종을 만들라고 시켰으면 그 종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정확히 알려 줬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그랬다. 지금까지 유한이 실패하는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그 이유가 가장 큰 실패 요인이었다.
칼을 한 자루 만들어도 그것이 요리에 쓰일지 전투에 쓰일지 알아야 정확히 만들지 않는가. 목적을 제대로 밝히지도 않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오겠는가.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마론 신관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직도 종이 완성되지 못한 것은 그의 탓이 컸다.
"미안하네. 신종에 대한 비밀을 숨기려다 보니, 자네에게 핵심을 알려 주지 못했네."
"도대체 종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비밀을 숨겨야 할 이유가 뭡니까?"
외부에 알려지면 망신이기에 말하지 않았을 것 같지는 않았다. 책에서 본 대로 고대의 마물이 관련되어 있다면,이건 굉장히 큰일이니까.
"마물의 존재 때문이네. 프라테우스 신종이 만들어진것은 천 년 전이지. 천 년의 세월은 역사를 전설로, 진실을 허구로 바꾸기게 충분했어."
신관들은 그렇게 된 데 만족했다. 죽지 않은 채 봉인된 마물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 그리고 엉뚱한 호기심과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자네도 알겠지만 지금 이 나라는 내전 중일세. 영주들은 보다 강력한 힘을 갖기를 바라지. 그 힘이 악마의 것이라도 주저 없이 탐을 낼 자들이 한둘이 아니야."
이제 유한도 마론 신관이 무엇을 우려했는지 이해했다. 그러나 비약이 너무 심하지 않을까.
마물이 달리 마물이라 불리지 않는다. 마물을 손에 넣는 자는 세상뿐만 아니라 자신도 파멸로 이끈다고 하지 않는가.
"섣불리 손을 대려는 자들이 있겠습니까?"
"자네들은 듣지 못했나 보군. 마녀 데보라의 유산을 스스럼없이 사용자 자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철십자 길드를 말하는 모양이다. 분명 저번 길드전에서 철십자 길드는 다크나이트&B.O.B길드를 상대로 마녀 데보라의 유산으로 추정되는 거대 목인병을 투입해서 승리했다.
"그뿐만이 아니지. 자신의 이득 때문에 리저드맨에게 인간의 기술을 팔아먹은 자도 있어. 키예프 공국에는 그들과 거래하는 장사치들도 있다고 하더군."
설자 자신 이야기가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한 유한이었다. 다소 불분명하고 왜곡된 정보로 전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이게 인가이야. 욕망에 눈이 멀면 악마 , 아니 그보다 더한 존재가 될 수도 있지.
'죄송합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악마 같은 자들이 나타났네. 서슴없이 신종을 부숴 버렸지. 신종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뭐야, 누군가가 일부러 신종을 깻다고?"
도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그랫단 말인가? 일단 그건 나중에 알아볼 일이다. 지금은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꾸물거리면 그 고대의 마물인지 뭔지가 부활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사정은 대충 이해했으니 다시 종을 만들겠습니다."
"부탁하네. 이제 더 이상 오래 버티기도 힘든 상황이야."
서둘러 종을 만들어야 한다. 마론 신관의 말과 표정을 미루어 보건데 금방이라도 마물이 부활해 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남아 있는 기한이고 뭐고 퀘스트는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다.
'기회는 한 번뿐인가?' 분위기도 그랫지만, 고서에서 본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면 앞으로 기회는 한 번뿐이다. 유한이 그 기회를 살리느냐 죽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상황이 결정 날 것이다.
"서둘러! 놀고 있을 시간이 없다!"
작업장으로 돌아온 유한은 일꾼들을 독려했다.
그가 신종의 거푸집을 제작하는 사이, 일꾼들은 부지런히 도가니에 불을 붙여 청동을 녹였다.
'채린이 말이 맞았어!'
신종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채린의 말은 맞았다.
하든 대신관도 '최선의 노력'을 강조하지않았나.
하지만 정성을 보이는 방법이 틀렸다.
유한과 채린은 신종의 장식을 똑같이 떴지만, 그게 아니었다.정성을 보이는 방법은 바로‥.
"쇳물은 아직 덜 녹았나?"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거푸집은 완성했는데 청동 쇳물이 아직 덜 준비되었다.
서둘러 종을 완성해야 할 상황이기에 유한은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젠장.빨리 청동을 녹일 방법이!'
화력을 좀 더 높여 보면 어떨까?
거기에 생각이 미친 유한은 인벤 구석에서 초열탄을 꺼냈다.
혹시나 해서 몇 개 가지고 다녔는데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부글부글.
도가니에 있는 청동 쇳물이 벌겋게 끓어올랐다.
태양처럼 드겁고 붉은빛. 유한은 그 쇳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뭘 어쩌려고 저러지?"
"글쌔요.지금까지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데요."
거푸집이 다른 것도 아니고,합급 비율을 바꾼 것도 아니다.
송코와 채린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유한을 바라보았다.
특히 채린은 신종을 만들 때의 의식이 적혀진 기록을 본 바가 있기에 그 불안이 더욱더 컸다.
'신관 프라테우스는 신종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혼을 바쳤다.'
신종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의식
그것은 제작자의 혼을 신종에 바치는 일이었다.그 덕분에 신종은 사악한 기운을 멸하는 천상의 소리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정성을 보인다는 것을 바로 이런 희생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야.'
처음에 유한도 프라테우스 신관이 쇳물에 몸을 던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고서의 아래쪽 기록에는 프라테우스 신관이 이후로도 용맹정진하여 불우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살다가 죽었다고 적혀 있었다.
즉, 신종을 만들고도 생존을 했다는 말이다.
'살아 있는데 혼을 바쳤다면 자신의 혼에 필적하는 뭔가를 바쳤다는 말인데….'
프라테우스는 신관이면서 대장장이.
그런 그에게 자신의 생명에 필적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장인인 그의 혼이 담겨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와 같은 대장장이인 유한은 해답을 알 것 같았다.
좌악!
유한은 갖고 있던 공구들을 인벤에서 꺼냈다.
대장장이로 독립했을 때부터 사용했던 손때 묻은 공구들.단순히 상점에 진열되어 있던 것을 샀을 뿐이지만,이 녀석들을 손에 쥐고 수많은 무기들을 만들고 고쳤다.
"그래,이것이 내 혼이다!"
자신과 함께 숱한 탄생과 재구성을 일으켰던 공구들.
대장장이 지그의 일부나 다름없는 이 공구들이 흔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유한은 주저 없이 공구들을 끓는 쇳물 속에 집어넣었다.
"저,저런!"
유한이 공구를 쓸어 넣는 것을 보고 주변의 NPC 대장장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인에게 있어 손에 익은 공구란 함부로 버릴 것이아니다.
그것은 유저도 마찬가지다.숙련도가 높은 장비는
스킬이나 생산의 성공률에 영향을 주기에 커다란 가치를 가진다.
만약 유한이 오판을 한 것이라면 그는 굉장한 실수를 한 셈이었다.
되돌릴 방법이 없는 실수를.
'나는 틀리지 않았어!'
유한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끓는 쇳물을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기록이 정확하다면,자신의 행동이 옳다면 분명 이적이 일어날것이다.
우우우웅!
낮은 울음과 함께 도가니 안의 쇳물이 환하게 빛났다.
태양보다 훨씬 더 밝은 그야말로 광명 그 자체의 빛 밤하늘로 솟구치는 빛을 본 신관들은 자신도 모르게 두손을 모았다.
"오오 헬리오스여!"
"쇳물을 부어라!"
유한의 일갈에 정신을 차린 젊은 신관들은 기중기를 조작해서 거푸집에 청동 쇳물을 부었다.
광명의 빛을 담은 뜨거운 혼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완벽히 거푸집 안으로 스며들었다.
"지그야 드디어 완성한 거지?그렇지?"
"아직!아직 아니야"
채린은 흥분했지만,유한은 냉정했다.
아직 종은 완성되지 않았다.뜨거운 혼이 식어 완성된 종에 깃들어야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드드드드드--!
"뭐,뭐야?"
모든 사람들이 거푸집을 바라보고 있을 때 땅이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신종의 탄생과 관계있는 현상일까.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모두들 그게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땅에서 돋아난 풀들이 누렇게 메마르고,딱딱하게 굳은 땅은 논바닥처럼 갈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갈라진 땅에선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크악 !이것은!"
연기에 닿은 사람들은 미라가 된 것처럼 비썩 말라 쓰러졌다.
유한 일행도 HP가 쭉 떨어지는 것에 놀라 재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
"큰일 났군 봉인이 풀렸어!"
어느새 나타났는지 하든 대신관이 옆에서 침음을 삼켰다.마론과 디바인 마크에 참가한 상급 신관들이 굳은 얼굴로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저게 그 마물인가요?"
"그렇네 천 년 전 선배 신관들께서 봉인한 것으로 세상에 나가면 엄청난 평지풍파가 일걸세"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허공의 검은 연기는 공중에서 자줏빛 큐빅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
-감히 나를 천 년 동안 봉인하다니!
마기가 일렁이며 큐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유부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음산한 목소리에 채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녀는 이런 거에 약했기에 유한의 뒤에 숨으며 물었다.
"지,지그야 이젠 어쩌지?"
"어쩌긴,놈을 잡아야지"
다행이 퀘스트가 실패했다는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만약 그랬다면 유한은 뒤도 볼아보지 않고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퀘스트가 진행 중이었으니까 종이 완성될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생각이었다.
"모두 대(大)결계를 쳐라!"
하든 대신관의 외침에 수십 명의 신관들은 마물을 중심으로 몇 겹의 디바인 마크를 만들었다.
이대로 영창을 불러 놈의 힘을 약화시킬 생각
하지만 먼저 움직인 것은 마물이었다.
-크크크!감히 이 위대한 암흑의 전사님께 대항을 하겠다고?좋다, 모두 죽어라 다크레인!
큐빅이 들썩인다 싶더니 검은 마기들이 창처럼 변해 지상에 소나기처럼 떨어졋다.
"크악!"
"모,모두 피해라!"
"홀리 실드!"
행동이 빠른 신관들은 피하거나 신성력으로 만들어 낸 방어막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힘을 되찾은 마물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기의 창들은 몇몇 신관들의 홀리 실드를 꿰뚫고 들어갔다
"어쩌지? 이 상태론 공격할 수없어"
"기다려봐 저놈도 계속 공격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유한과 채린은 송코의 등 뒤에 바싹 붙었다.레벨이 어느 정도 되는 송코엿기에 그의 홀리 실드는 쉽게 뚫리지 않았다
-흥! 제로 그라비티(Zero Gravity)!
"우아아았!"
공격의 효과가 떨어지자,마물은 전술을 바꾸었다.
창내를 옅은 마기가 감싼다 싶더니 사람이고 물건이고 할 것없이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조심해! 이 상태에서 공격을 받으면……!"
허공에 둥실 뜬 상태에선 방어는커녕 몸을 바로 잡기도 쉽지 않았다.그 점을 노렸던 마물은 곧장 다음 공격을 준비했따
-다크 블레이드!
마물의 주변에 초승달 모양의 검은 칼날들이 생겨났다.
빙글빙글 도는 칼날은 무중력 상태로 떠오른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악!"
"송코 오빠!"
송코는 무중력 상태에서도 홀리 실드를 유지했지만,마물의 다크 블레이드가 선회해 들어오면서 송코의 등을 베고 지나갔다.
다크 블레이드의 공격은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재차 송코를 공격하려는지 궤적을 바꾸어 또다시 날아들었다.
"제기랄, 안 돼!"
유한이 안타깝게 외쳐 보았지만, 말로는 암흑의 칼날을 막을 수 없었다.뒤에서 몇몇 신관들이 필사적으로 찬송가를 불러 보았지만
마물의 힘을 약화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였다.
"바람이여!나의 적을 날려 버려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히이 다크 블레이드를 밀어냈다.
채린의 손에서 은빛의 바람이 일어나더니 송코를 베려던 다크 블레이드를 멀리 날려 보냈따
놀란 유한이 채린을 바라보았다.궁수인 그녀에게 어디서 그런 신비한 힘이 생겨났을까.
"시아야,방금 그건?"
"바람의 날개야 아직은 바람을 일으키는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해"
채린의 손에는 투명한 보석이 쥐어져 있었다.
일전에 바람의 무녀 아르네스가 채린에게 주었던 바람의 날개였다. 그 보석은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그 힘을 톡톡히 발휘했다.
바람은 무중력 상태에서 채린의 몸을 바로 잡아 주는 한편,주변에서 날아오는 다크 블레이드들도 떠밀어 보냈다
"대단한데! 언제 사용하는 법을 익힌 거야?"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연구해 봤어"
나중에 위력이 강해지면,그때 친구들에게 자랑하려 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 덕분에 앞당겨졌지만,바람의 날개는 만족할 만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유한에게 이 불리한 상황을 뒤집을 역전의 카드가 되었다.
"시아야,바람으로 날 날려 보낼 수도 있지?"
"응 그런데?"
"날 종이 있는 곳으로 떠밀어 줘"
지금쯤이면 거푸집 안에 있던 쇳물이 다 식었을 터
프라테우스 신종과 같은 능력을 가진 저 종을 두드리면 마물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채린도 유한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바람이여!나의 친구를 인도하라!"
채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센 바람이 유한의 등을 떠밀었다.
유한이 움직이자,마물도 그의 행동을 감지했다.자신과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지만,마물은 유한의 행동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임을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감히! 다크 애로우!
"크허억!"
마기가 똘똘 뭉친 화살이 신종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는 유한의 몸에 꽂혔다.HP가 쭉 닳았지만,인벤에 있는 포션을 마시면서 버텼다.
'hp포인트가 0이 되지않는 한 나의 승리다!'
마물은 오판했다 녀석은 유한을 죽이기보다 종에 다가가지 못하게 밀어내는 공격을 했어야 옳았다.
그 오판은 마물에게 있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 했다.
"울려라! 나의 종아!"
신종으로 날아간 유한은 온 힘을 다해 나무망치를 휘둘렀다.
필사의 망치는 단단한 거푸집 외벽을 깨트리고,완성된 종을 두드렸다.종을 감싸고 있던 거푸집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성스러운 종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졋다.
데--에------엥!
맑고 경건한 울림이 길고 넓게 퍼져 나갔다.
갑자기 마기가 걷히고 사방이 환해지는 느낌
장내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보았다.천상의 울음을 토하는 신종이 광명의 빛을 내뿜는 것을
-크아아아악!
마물의 비명은 성스러운 종소리에 묻혀 버렸다.
마물의 몸이 크게 흔들린다 싶더니,마기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따.힘도 약해져서 무중력 상태로 떠올랐던 모든 사람들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유한과 유한이 만든 신종도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 큰 종을 만들었습니다. 천상의 소리가 울리는 신종입니다.
스킬 경험치를 500얻었습니다.
[신종 제작자]칭호를 얻으셨습니다.
[헬리오스 신전의 종] 퀘스트를 성공했습니다.
"만세!"
유한은 자신의 옆에 뜬 안내창들을 보고 손을 치켜들었다.
더 이상 누구도 뭐랄 수 없는 신종을 탄생시켰다.퀘스트도 완수했고 부활했던 마물도 제압했다.
이제 한 번만 더 종을 울리면 마물은 완전히 그 힘을 잃을 것이다.
데---에-----엥!
유한은 또 한번 나무망치로 종을 두들겼다.좀 전보다 소리가 약하긴 했지만 마물의 힘을 꺾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마물이 부활했을때 암담한 얼굴을 하던 신관들도 흩어지는 마기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며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소리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쇼크 웨이브] 스킬을 익히셨습니다. 음의 파동으로 상대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오! 쇼크 웨이브!"
엘프의 숲에서 알게 된 쇼크 웨이브.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소리를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았다고 하는데,이번에 신종을 울려 마물을 제압한 것이 습득 조건을 충족시켰던 모양이다
비록 히든스킬은 아니지만,유한은 공격 스킬을 하나 더 보유하게 되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딱 맞았다.
"앗!저게 뭐야?"
기뻐하는 유한의 귀에 당황하는 신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공중에 빛이 번득인다 싶더니 마법진 하나가 그려졌다.그 마법진은 유한과 채린이 얼음 궁전의 보상방에서 본 적이 있는 이동 마법진이었다.
'대체 저게 왜?'
유한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단지 이동 마법진이 나타났기 때문만은 아니다.문제의 이동 마법진은 힘이 약해진 마물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처,천 년 만에 나온 세상이거늘! 내 네님들을 잊이 않겠다.케에엑!
마물은 끌려가지 않으려 했지만,순식간에 마법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물이 사라지자 이동 마법진도 희미해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마,마물이 사라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신관들은 패닉에 빠졌다.봉인해야 할 마물이 사라져 버리다니,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달아났는가?그렇지 않으면.....?
'헐,끝이 뭐 이래?'
당황스럽기는 유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곧 안정을 되찾았다.금방 냉정과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이었다.
"흐흐흐,어쨋거나 퀘스트를 완수했다."
마물따위가 어찌 되든 알 바 아니다.어디 다른 곳으로가 사람들을 죽이든,아니면 어딘가에 숨어 힘을 기르든 그건 그때 가서의 일이다.
유한은 일단 힘들었던 퀘스트를 끝낸 것에 만족했다.
"크크크, 암흑의 심장도 짐의 손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히죽거리는 늙은 왕이 있었다.
기사와 마도사들을 거느린 왕의 손에는 헬리오스 신전에서 사라진 큐빅이 들려 있었다.
"오라! 그리고 나의 힘이 되어라!"
왕은 마기를 흘리는 큐빅을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크아악! 감히 날....
검은 마기들이 왕의 몸을 세차게 휘감았다. 마치 그의 명령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친 듯이 날뛰던 마기는 왕의 몸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하아! 꽤 사나운 놈이로구나."
마기를 모두 흡수한 왕은 사우나라도 한 듯이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만족한 모습에 곁에 있던 기사가 부복하며 축하의 인사를 올렸다.
"감축드리옵니다, 페하 이것으로 미케니아의 재건이 보다 빨라졌사옵니다."
"그러지 마도 왕국의 재건에 한 발 더...."
거기까지 말한 왕의 눈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오랜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부활했던 미케니아 왕국 공중 요새
자신의 왕국이 있던 수도는 차디찬 북해의 심해로 가라앉았다. 충선스런 신민들과 함께.
늙은 왕은 부활한 미메키아의 국왕 이바니우스 3세였다. 추락하는 공중 요새에서 몇몇 신하들과 간신히 탈출해 이렇게 마도 왕국의 부활을 꾀하고 있었다.
"페하, 암흑의 심장이 봉인된 신전에 그놈이 있었사옵니다."
근위대장 라이칸의 말에 이나비우스 3세의 눈이 번득였다.
"그놈이라 하면?"
"페하를 능멸한 그 괘씸한 대장장이 말이옵니다."
라이칸은 신종을 깨트린 다음, 신전을 동태를 몰래 살피고 있었다. 당연히 유한이 종을 만드는 것을 목격했다.
"그놈이 거기서 뭘 하더냐?"
"암흑의 심장을 가두는 봉인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구나. 봉인구 제작은 십지 않을 작업일 텐데."
"마지막에는 결국 완성을 했사옵니다. 마도사들이 이동 마법진을 구축하는 것이 늦었다면 암흑의 심장을 회수하지 못햇을 것이옵니다."
평범한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마물의 봉인구까지 만들 줄이야.
어쨋든 고약한 놈이었다. 공중 요새를 침몰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암흑의 심장까지 봉인하려 하다니. 일개 대장장이 주제에 패왕의 행보를 막아서는 꼴이 매우 괘씸했다.
"페하, 제가 그놈을 처단하겠사옵니다. 소신에게 맡겨주소서."
"으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불필요한 분란은 자제해야하느니라."
원한에 얼매어 대의를 그르칠 수 없었다. 지금은 대장장이 놈을 없애는 것보다. 봉인된 미케니아의 마도 병기와 유산을 부활시키는게 우선이다. 이 암흑의 심장을 손에 넣는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행선지는 어디냐?"
"옛, 페하 뇌제의 홀이 묻혔을 타사르 평원이옵니다. 현재 그로지아라는 천민의 나라가 그 땅을 관리하고 있사옵니다."
"이동할 준비를 하라. 신의 종자들에게 꼬리를 밝히기 전에 떠나야 한다."
이바니우스 3세의 명령에 마도사들은 이동 마법진을 구축했다. 얼마 후 , 마법진이 완성되고 미케니아의 잔당들은 그 자리에 사라졌다.
드림맥스 본사 4층의 게임 관리실. 게임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모닠터링하는 관리실 직원들은 지금 하나의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미케니아의 잔당을 이끌고 있는 이바니우스 3세가 그로지아로 떠나는 모습이 나오고 잇었다.
"지그 녀석이 저걸 알고 있을까?"
"전혀 모르고 있을 겁니다."
정경욱 부사장의 말에 손석진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럼 지그는 이바니우스 3세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걸 전혀 모르겠군. 나중에 맞붙을 때 너무 불리해지는거 아니야?"
일전에 손석진이 대마왕이라 칭했던 미케니아의 국왕은 이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고 있었다.
과거에 읽어버린 힘을 되찾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가 힘을 되찾으면 가장 먼저 찾아갈 유저가 아마 지그가 아닐까 싶었다.
"상관없습니다. 지그 유저가 이나비우스 3세의 손에 죽으면 그 또한 스토리의 일부이니까요."
"하긴, 그자신이 원한을 만들었으니."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NPC들은 고도의 인공지능으로 인간과 거의 같은 사고를 한다. 원한을 가지면 복수할 줄알고,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도 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몇몇 스토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NPC들만이 그러는 것이지만, 이바니우스 3세는 그중에서도 핵심이다.
"그보다 저 미케니아의 잔당들 , 예상보다 행보가 빠르구먼."
"원래 본격적인 행보는 게임 시간으로 육 개월 정도 뒤가 될 예정이었습니다만...."
손석진이 손을 튕기자 허공에 홀로그램 화면이 하나 떠올랐다. 화면에 재생되는 동영상은 공중요새가 추락지 일주일 뒤에 찍은 것이었다.
이바니우스3세와 미케니아의 잔당들은 북해 가운데를 떠다니는 빙하 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구조해 준 유저들이 있었다.
범선을 타고 향해 중이던 모험가 그룹은 미케니아 잔당들을 친절히 구조했고, 이바니우스 3세는 항로를 잃은 그들에게 가까운 육지로 가는 방향을 일러 주었다.
그렇게 배가 거의 육지에 다다랏을 때였다. 힘을 회복한 미케니아 잔당들은 배에 타고 잇던 유저들은 공격했다. 유저들은 뒤늦게 반격했지만, 결국 모두 죽임을 당하고 바다에 던져졌다.
"쩝, 불쌍하게도...."
"호의가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지요."
정경욱은 씁슬한 미소를 지었다. 손석진이 창조한 이 방대한 가상 세게는 때로 현실만큼이나 냉정하고 , 비정했다.
물론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따슴함과 넉넉한 인정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되살아난 고대의 망령들이 음지에서 준동하고 있었지만 , 당사자인 유한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문제의 마물을 빨아들인 이동 마법진이 얼음 궁정의 보상방에서 본 것이라는 건 알았지만, 미케니아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지 못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알아챌 수 있겟지만 , 지금 유한에게는 그런 것보다 퀘스트의 보상이 더 중요했다.
"수고했네 잘해 주었어."
유한은 칭찬하는 마론 신관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신종을 만드는 일에 성공했지만 , 마물의 행방이 사라져 버린 탓이다. 지금 신관들이 은밀히 추적에 나서고 있지만 , 쉽게 찾을 수 잇을지는 미지수였다.
신종을 깬 자들이 마물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컸다. 문제는 그자들이 누군지 자세히 모른다는 것이고 ,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저기, 보수는?"
"아! 미안하네 .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중이라."
마론 신관은 집무실 한쪽에 있던 금고를 열어 나무 상자를 들고 왔다. 그와 동시에 보상창들이 유한의 눈앞에 떠올랐다.
-명성이 1,500 올랐습니다.
-경험치 5,000을 얻었습니다.
-레벨108이 되었습니다.
힘이 1 올랐습니다.
민첨성이 1 올랐습니다.
행운이 1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유한이 주목한 것은 마론 신관이 내놓은 상자와 관련된 문구였다.
[오래된 나무 상자]를 받앗습니다.
'안에 뭐가 있나?' 상자가 작았기에 돈이 많이 들어 있을 것 같지는 않앗다. 유한은 혹시 금덩이나 보석이 아닐까 하고 뚜껑을 열어 봤다가 눈을 휘둥그렇게 떳다.
"이, 이건!"
상장 안에 든 것은 탁구공만 한 크기의 은빛 금속 덩어리들이엇다. 혹시나 하고 아이템을 감정해 본 결과 유한의 눈앞에 다음과 같은 안내창이 떠올랐다.
[에르젠 합금]
설명:은에 몇가지 원소가 더해진 마법 금속 강철보다 강한 강도에 마법을 영구적으로 유지시킨다. 누구나 탐을 내지만 부르는게 값일 정도로 수량이 적다.
무구의 수준을 완전히 다르게 만드는 마법 급속 에르젠 피 토하는 퀘스트를 안수한 합금 3랭크 이상의 유저들만 생산할 수 있다는 금속이다.
피 토하는 퀘스트를 완수한 합금 3랭크 이상의 유저들만 생산할 수 잇다는 금속이다. 워낙에 생산량이 적어서 던전 탐사나 몬스터 사냥을 통해 흭득하는 일이 더 많은 아이템이기도 했다.
정해진 시세가 없고 거래할 때마다 달라지기에 현질로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에르젠이 유한의 손에 들어왔다.
"그만하면 적정한 보상이 되리라 생각하네만?"
"저, 적할하다 마다요!"
역시 큰 신전답게 보상도 화끈했다. 쉽지 않은 퀘스트 였기에 더욱 그랬을 테지만.
'우헤헤! 이게 웬 떡이냐! 눈앞에 마론 신관만 아니라면 덩실덩실 춤을 추엇을 것이다.
마치 복권에 당첨이라도 된 기분. 그러나 이것은 복권과 달랐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치르고 얻어 낸 결과물인 것이다.
'이걸 당장 경매장에 넘기면...아냐 , 아냐 한탕거리로 삼기보단 더 건설적인으로 생각해야 해.
에르젠보다 에르젠이 들어간 마법 무구들이 더 비싸게 거래된다. 새삼 자신이 대장장이라는 걸 상기한 유한은 이놈으로 명품 무구를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크크큭, 이건 걸 재투자라고 말하지.'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지금도 에르젠 무구를 못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랭크가 낮고 제작 경험이 일천하기에 자칫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현재 유한의 생산 스킬은 3랭크 A급 무구를 무난하게 만들 수 잇응 2랭크가 된 뒤에 손을 대도 늦이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 부탁이 있네만?"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던 유한은 마론 신관의 말을 들었다.혹시 마물의 행방을 알아봐 달라는 연계 퀘스트가 뜨지 않을까 싶었지만 ,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입이 무거운 사람을 소개해 줄 수 있겠나? 자게 같은 대장장이라면 뛰어난 전사나 기사를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하! 이게 이렇게 되는군.' 마물과 관련된 연계 퀘스트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유한이 아니라 그가 추천하는 사람이 맡게 될 줄이야. 물론 '아는 사람 없습니다.'라고 하면 마론 신관은 사람을 따로 찾을 것이다.
그러나 유한은 실력이 뛰어난 전사를 무수히 알고 있었다. 귀찮게 하는 옌스만 해도 여느 랭커 못지않았고,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아저씨들도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대장인 길포드는 말할 것도 없고, 그중에서 유한이 선택한 사람은...
"로키라는 기사에 대해서 들어 보셧습니까?"
"로키?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철벽기사 로키 말인가?"
마론 신관도 로키에 대해 들어 본 모양이다. 그만큼 현재 아르페디아 대륙에서 로키의 명성이 드높다는 반중이기도 했다.
유한이 로키를 추천한 것은 블랙 아이언의 나머지 설계도를 양도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다. 로키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데보라의 나머지 설계도를 찾아 발품을 팔고 있었을 테니까.
"그래 그라면 믿을 수 있겠군. 과묵하다 알려진 데다 실력도 광전사 바츠에 버금갈 것이라 하니까."
"...."
이런 데서 바츠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캐릭터는 사라져도 그 명성은 NPC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제길 , 바츠가 있었으면 이번 퀘스트는 내가 맡는 건데.'본인이 본인을 추천한다는 게 조금 쪽팔리기는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반드시 자신을 추천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츠가 있엇으면 지그가 생겼을까? 흔한 말로 캐릭터가 바뀐 데는 이유가 있고 , 그게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다.
스스로 그렇게 변화햇다면 억울하지도 않지만, 유한의 경우 그런 변화의 선택을 , 가능성을 타인에게 빼앗겼다. 그리고 변화를 강요당했다.
'오냐 , 내가 이번엔 네놈의 변화를 강요해 주마!'유한은 드림맥스 본사에서 봣던 해커를 떠올렸다. 비록 정체를 알아내진 못했지만 , 실제 면상을 봤을 정도로 거리를 좁혔다.
'크크크. 그때 놀라서 도망치는 꼬락서니하곤...' 놈이 창문을 깨고 도주했을 땐 어이없고 분할 따름이지만, 지금 생각하니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까이 있으니 잡아 보란 식으로 오만방자하게 굴던 녀석이 3층에서 뛰어내릴 정도로 허겁지겁 도망을 가는 꼴이라니.
작으나마 놈에게 한 방 먹였는지 모른다. 아니 , 먹였을 것이다. 이번에 아쉽게 놓쳤지만 , 다음엔 정말 제대로 한 방 먹여 줄 것이다. 다음이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