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프라테우스 신종 (58/143)

                               프라테우스 신종

연계 퀘스트를 받은 다음날.

유하은 며칠 전 새로 등록한 입시 학원에 다녀오자마자 바로 게임에 접속했다. 신전에서 받은 종 만들기 퀘스트를 후딱 해치우기 위함이다.

'그런데.......신전에서 쓰는 종의 크기는 어느정도지?'

크기만 아니라 모양도 알아야한다. 무턱대고 만들었다가 이게 아니라고 퇴짜를 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는 깨어진 종이 있는 종각으로 가보았다. 젊은 신관의 안내를 받아 종각에 간 유한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저, 저게?"

"얼마전까지만해도 우리에게 시간을정도겠지 싶었는데, 신전의 종은 정말 컸다.

둘레는 어른 세사람이 손을 마주 잡아야 할 정도였고, 높이는 2미터를 넘었다. 중학교때 수학여행가서 봤던 에밀레종보다는 작았지만, 큰 사찰의 범종만 한 크기는 될것이다.

'하, 하하하핫! 이렇게 큰 것을 어떻게 만들어!'

섣불리 퀘스트를 수락한 자신을 원망해 보았지만, 이미 배 떠나고 손 흔드는 격이다.

'일꾼들을 불러와야겠군.'

이건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못할 것도 없지만, 보름이라는 기간안에 하려면 여러손이 필요했다.

유한은 당장 송코에게 귓말을 넣어 호메론 자작령의 신전으로 일꾼과 필요한 도구들을 보내도록 했다.

"엄청난 퀘스트를 받았다면서?"

채린이 직접 일꾼들을 인솔해서 왔다.

리셉션 뒤로 오랜만에 보는 그녀였기에 반갑기 그지없었지만, 신전의 종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중압감이 유한의 가슴을 눌렀다.

"종을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제법 큰 거라서."

"호호호, 큰일 났네., 한 번도 안 해 본 일일 텐데."

"크윽, 돈 좀 벌어 볼까 해서 수락한 건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쯧쯧 그러게 왜 욕심을 부리니."

후회는 후회고, 일단 받아들인 퀘스트니 실패할 수는 없었다.

유한은 당장 대장장이 NPC들을 부려 신전의 뒷마당에 임시 대장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신전에서 준비해 준 구리와 주석들을 녹여 충분한 양의 청동을 만들었다.

신전에서 원하는 크기의 종을 만들려고 하니 엄청난양의 광물이 소비되었다.

'허걱! 이게 다 얼마치냐!'

구리와 주석

이2가지 광물은 장신구나 정밀한 조립 제품을 만드는데 요긴하게 쓰이는 광물이라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제법 비싸게 거래되고 있었다.

그런 광물들을 달라는 대로 제궁해 주는 신전의 재력이 그저 놀라울 뿐.

'흐흐, 그럼 보상도 만만치 않겠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깨를 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지는 듯했다.

제련 작업을 끝낸 유한은 곧바로 거푸집의 제작에 들어갔다.

워낙 큰 종이라 거푸집을 뜰 모형도없었다.

더구나 종을 만드는 과정에선 꽤 세밀한 작업이 필요했다.

공략사이트에 나온 종 제작법에 따르면 일단 진흙으로 모형을 만들고, 그위에 밀랍을 바른후, 그위다시 진흙과 이암, 활석을 섞어만든 점토를 단단히 바르라고 하였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끝내고 충분히 건조시킨 다음 열을 가하면 안에 있는 밀랍이 녹으면서 텅빈 공간

그렇게 완성된 거푸집의 빈공간에 쇳물을 흘려 넣으면 종이 완성되는 것이다.

"거참 더럽게 까다롭그먼."

작업을 하면서 유한은 몇번이나 투덜거렸다.

워낙 큰종이다 보니 거푸집의 제작이 쉽지 않았고, 여기저기 손댈 곳도 많았다. 거푸집 하나를 완성하는 것만해도 무려 한나절이 걸렸다.

다음은 완성된 거푸집에 녹인 쇳불을 붓는일이었다.

이 역시 쉽지 않았다. 커다란 도가니에 청동을 녹여서 기중기로 조심스레 옮겨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야 하는 것이다.

"조심해! 조심! 잘못 쏟으면 대참사야!"

기중기는 신전 지붕을 수리할 때 쓰는 것이었는데, 엔진의 힘을 빌리는 현실의 것과 달리 100% 인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힘도 부족하고 균형 잡는 것도 위태로웠다.

다행히 신전에서 힘든 일을 맡아 하는 젊은 신관들이 기중기의 조작에 능술하고, 유한이 위치를 잘 잡아 줘 쇳물을 제대로 부을 수 있었다.

쇳물이 식자 유한은 서둘러 거푸집을 벗겨 냈다.

-큰 종을 만들었습니다. 크기만 할 뿐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습ㄴ디ㅏ.

 스킬경험치 80을 얻었습니다.

완성하긴 했는데, 떠오른 안내차잉 영 시원찮았다.

'시원찮을 수 밖에. 대충 종 모양을 본떠서 만든 거니까.'

정확히 모양과 크기를 잰 것은 아니다. 장식도 빼먹엇다.

장식을 하려면 종 표면에 무늬가 생기도록 손을 써야 하는데, 번거롭고 복잡한 일이라 그냥 넘어갔다.

"종이야 소리만 잘나면 장땡이지."

유한은 시험을 히 볼겸 해서 기중기에 종을 매달고 나무망치로 두드려 보았다.

텅~~!

종이울리는 소리를 들은 신관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게 종소리?"

"냄비를 두들겨도 이보단 좋은 소리가 나오겠습니다."

"애초에 젊은 친구에게 일을 덥석 맡기는게 아닌데 말이죠."

"그러게요. 이런일은 실력보다 경험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젊은 신관들의 쑥덕거림은 유한의 속을 긁ㄱ기에 충분했다.

"으아악! 암 브레이크!"

그는 완성된 종을 두들겨 깨버린 뒤 깨진 조각들을 도가니에 밀어넣었다.

"종이 너무 두꺼웠나 봅니다. 다시 만들어 보겠습니다."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는 법. 좀 더 노력해 보도록하게."

마론신관은 너그럽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

유한은 대장장이들에게 청동을 녹이도록 한 뒤 종각으로 돌아가 깨진 종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보았다.

처음엔 수박 겉핧기로 보고 갔지만, 이번엔 종의 두께를 재어 보고, 모양과 크기도 꼼꼼히 따졌다.

"좋아! 이정도면 됐어."

충분한 조사가 끝나자, 유한은 다시 거푸집을 제작했다.

그리고 다시 완성된 거푸집에 청동쇳물을 붓고 식혔다.

-큰 종을 만들었습니다. 제법 그럴듯한 소리가 울릴것 같습니다.

 스킬경험치 150 얻었습니다.

'앗싸아!'

완성된 종은 장식만 없다 뿐이지 원래 신종과 모양과 크기가 똑같았다. 비꼬던 신관들도 낮은 탄성을 내뱉을 정도였다.

'이번에야말로 완벽해.'

그렇게 생각한 유한은 완성된 종을 나무망치로 두들겨 보았다.

뎅~~!

좀 전과 달리 제대로 된 종소리가 울렸다.

환한 표정을 지은 유한은 신관들을 돌아보았다.

아까 처럼 조롱하고 솜씨를 탓하는 신관들은 없었다. 그러나 뭐가 문제인지 그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지 않았다.

"이 정도면 신전의 종으로 쓸 만하지 않습니까?"

유한의 물음에 마론신관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그저 평범한 종일 뿐이야. 우리가 원하는 종은 좀더 맑으면서도 경건한 소리가 나는 종일세."

'이 아저씨가!'

유한은 울컥하는 마음에 나무망치를 집어던질 뻔했다. 제대로 만들었는데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다시한번 만들어 보지요."

"잘 부탁하네."

유한은 다시 종을 부숴 고로에 녹였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채린이 한 마디 했다.

"좀 더 외양에 신경을 써봐. 네가 만든 종은 밋밋했어."

"외양에 신경 쓰라고? 그런 장식 같은 걸 붙이란 말이야?"

유한이 의아한 듯 물었다.

"아마 그럼 더 좋은 소리가 나지 않을까?"

"설마! 장식은 소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

"단정할 수 있어?"

궁수인 채린은 이쪽 방면에 있어서 비전문가다. 그래서 그녀의 의견이 유한에겐 다소 주제넘게 들렸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장식이 소리와 관계가 없다고 막잘라 말할 수도 없었다. 유한도 종을 여러번 만들어 본 전문가가 아니니까.

"네 말대로 장식은 소리를 내는데 불필요한 요소일지도 몰라. 하지만 장식은 장인이 자신의 정성을 보이는 표현 수단이기도해. 정성이 깃든 종이 그렇지 않은 종보다 말고 경건한 소리가 나지않을까?"

"음......."

"사실 이건 게임이잖아. 내 행동 여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거야. 만약 경건한 소리가 소리를 내는데 필요한 조건이 정성이고, 그 정성을 보이는 방법이 장식을 하는 거라면?"

채린의 말대로 퀘스트는 조건을 얼마나 맞추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황당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제대로된 보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크를 토벌해 달라는 퀘스트를 받는다 치자.

마을을 침입해 온 오크 몇마리 잡는 것과 오크의 본거지인 오크부락을 완전히 쓸어버리는 것은 그 보상이나 결과에 상당한 차이가 잇엇다.

"정성, 정성이라......."

"너무 고민하지마. 나도 도와줄게."

유한은 채린과 함께 또다시 종각으로 갔다. 두사람은 갖고 간 진흙으로 깨진종의 표면에 양각된 장식들의 본을 떴다.

"좋아 이번에는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복제해 보는거야!"

유한은 장식을 찍은 진흙판에 밀랍을 녹여 부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밀랍 장식한을 종의 원형에 붙였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지만, 채린이 옆에서 일을 거들어 준 덕분에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끝낼 수 있었다.

"이야, 시아 너 제법 하는걸?"

채린은 제법 훌륭하게 외장을 붙여나갔다. 틈이 있는 곳은 녹은 밀랍을 부어 말끔하게 처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훗, 내가 이래 뵈도 손재주가 좀있거든."

"그럼 부캐로 생산직 캐릭터를 키워보는 건 어때?"

"싫어, 궁수만 해도 벅차단 말이야."

외장이 끝나자 유한은 조심스럽게 거푸집 외벽을 바른 뒤 열을 가해 밀랍을 빼냈다. 그리고 쇳물을 퍼부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헬리오스 신에게 비나이다! 이번엔 성공하게 해 주옵소서."

거푸집 안의 쇳물이 식는 동안, 유한은 정성 들여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인 보람이 있는지, 거푸집을 벗겨 내자 휘황찬란한 종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오! 프라테우스 신종이다!"

"이렇게 똑같이 만들어 내다니!"

주변의 신관들이 만들어진 종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정도로 3번째 종은 완벽했다. 

유한도 이번에는 완벽하다고 확신했다. 안내창의 문구 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큰 종을 만들었습니다. 훌륭한 소리가 울릴 듯한 걸작입니다.

 스킬 경험치 225 얻었습니다.

'됐어!'

삽질의 대가를 이제야 받아 낼 수 있을 듯싶었다.

유한은 기중기에 들린 종을 나무망치로 두드렸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 소리가 울릴 거라 확신하면서.

데에--에엥!

종의 울음이 맑고 길었다.

거기다 가볍시 않은 육중한 떨림까지!

이것이야말로 신전에 어울리는 경건한 울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신관들도 흥분했다. 예전에 들엇던 프라테우스 신종과 그 울음이 비슷했기 때문에.

"정숙! 정숙하게나!"

호들갑을 떠는 젊은 신관들과 달리 마론 신관은 냉정했다.

'쳇! 또 어떤 트짐을 잡으려고 저러는 거야?'

유한은 확신 했다. 이번에야 말로 마론신관이 승복할수 없을 것이라고, 3번째로 만든 종은 프라테우스 신종을 완벽하게 복제해 낸것이 아닌가?

어디 단순히 복제만 했나.

정성도 꽤 들었다.

"자네는 얼른 가서 확인해 보게."

마론은 중년의 신관 한 사람을 어디론가 보냈다.

그 신관은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다시 되돌아왓다. 종이 만들어졌을 때 환한 미소를 짓고 있던 긍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마론 신관 앞에 선 중년 신관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뭐, 뭐야. 그럼 또 실패?'

유한은 중년의 신관의 행동에 불길한 느낌은 받았다.

마치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그의 앞으로 다가온 마론 신관은 안타깝다는 듯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종도 아닌 모양이네."

순간 유한의 목구멍에서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다.

간신히 올라온 욕설을 도러 넘긴 유한은 마론 신관을 바라보며 인상을 늘였다.

"아것도 아니라고요? 그럼 도대체 뭘 어떻게 만들어야 됩니까?"

"말하지 않았나, 말고 경견한 음을 내야 한다고."

"이 정도면 충분히 맑고 경건하잖습니까! 감탄까지 해 놓고 퇴짜를 놓는 이유가 뭡니까?

사람을 놀려도 정도가 있는 법. 이런 식으로 골탕 먹이는게 어디있단 말인가.

식식거리는 유한을 바라보고 있던 마론 신관은 아주 힘들게 말을 이어 나갔다.

"자네가 만든 종의 소리도 좋았지만, 예전의 신종은 그보다 더좋은 소리를 내었네. 얼마나 좋았는가 하면.......한마다로 천상의 소리라 칭할 만했지."

"천상의 소리요?"

"사람은 종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리거나 울기도 했고, 몬스터들은 종소리에 놀라 도망을 칠 정도였네."

"하, 하하하!"

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란 말인가!

종소리가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울고 몬스터가 도망간단 말인가.

'차라리 돈을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세상에 그런 종이 어딨습니까? 도대체 만들걸 만들라고 하십시오!"

"세상에 있엇으니까 제네더러 만들라고 한 것일세. 못한다ㅏ면 지금 당장 그만두게. 다른 사람을 찾아볼 테니까."

"다른 대장장이를 찾겠다고요? 내가 실력이 없어서 못 만드니까 그렇게 하겠다는 겁니까?'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 유한은 더욱더 목소리를 높였다. 신관만 아니면, 나이 많은 NPC만아니면 정말 한대 갈겨 주었을 것이다.

"정성이나 노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네. 원래 신종을 만든 사람도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 대장장이는 아니라고 하니까."

"저도 할 만큼 은 다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다르지 않는가? 할 수 없다면 지금 여기서 포기하게."

이가 절로 갈렸다. 유한은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절대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지금 까지 수락한 퀘스트를 포기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지그야......."

채린이 옆에서 보고 있었다. 가장 소중한 친구 앞에서 못난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반드시 끝장을 볼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건 간에. 몇번이고 종을 만들어 그 천상의 소리란 것에 도전할 것이다.

"계속하겠습니다. 저도 자존심이란게 있으니까요.'

"그럼 부탁하네."

마론신관은 별말 없이 그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던 유한은 허탕이 되어 버린 종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미안, 내가 생각한 대로 하면 잘될거라 생각했는데."

"아냐, 내가 못 만들엇을 뿐이야."

채린의 잘못은 아니었다. 분명 그녀가 시킨대로 해서 종소리는 더 좋아졌다. 그저 마론 신관의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뿐.

"처음부터 다시 해 보자."

유한은 다시 공구를 집어들었다.

헬리오스 신전의 지하.

지하 기도실의 한쪽 벽이 갈라지더니 그안에서 초로의 신관이 나왔다.

나이도 나이지만, 그의 초췌함은 나이를 훌쩍 넘어서 잇었다.

무척이나 힘겨운 고행이라도 한것처럼, 그의 몸은 바싹 마르고 이마에는 주름이 패여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신종은 아직도 완성하지 못했나?"

초로의 신관은 자신의 몸보다 종의 완성에 더 집착했다. 안타깝게 그를 바라보던 마론 신관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대신관님. 대장장이 청년이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신종은 찬생하지 못했습니다.

"허, 벌써 십일이나 지났는데도 말인가?'

초로의 신관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마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그라는 대장장이 청년이 ㅣ불성실했다면 이렇게 답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신종과 똑같은 모양의 종을 만들고, 그것이 실패하였음에 불구하고 계속해서 종을 만들고 있다.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실해와 성공을 되풀이하면서.

그러나 완성된 종들 중에서도 프라테우스 신종에 걸맞은 능력을 가진 종은 없었다.

'휴우, 그가 신종을 만드는데 실패하면 큰일이네. 이제 우리의 힘으로 마물을 억제하는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말일세. 놈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잇어."

"그럼 닷새도 버티기 힘들단 말입니까?'

"불가능해. 자네가 들어와서 보면 알게야."

마론은 직접 비밀 통로안으로 들어갔다.

긴통로를 따라 내려가자 거대한 지하광장이 나왔다.다.

지하 광장에는 큐빅 모양의 검은 물체가 있었고, 바닥에는 태양신 핼리오스의 디바인 마크(Divine Mark)가 새겨져 있었다.

둥근 우너형에 12방향으로 햇살이 뻗은 디바인 마크

그 12방향의 끝에는 각각 신관들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를 연결하는 금줄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금줄을 쥔 신관들의 표정은 힘겹기 짝이 없었다. 다들 창백하다 못해 핏줄이 튀어나왔고, 어느 신관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렇게 애를 쓰고 있지만, 중앙에 놓엔 큐빅에선 검은 마기가 연방 흘러나왔다. 검은 마기는 금줄에 닿을때마다 스파크를 일으켰고, 그때마다 12명의 신관들은 온몸을 부르르 떨어야만 했다.

"더 이상 저런 식으로 결계를 유지하는 건 무릴세. 신관들이 다 쓰러져 죽던지, 아니면 놈이 결계를 깨뜨리던지 둘 중 하나야."

어쨌거나 결과는 저 마물이 부활하고 만다는 것이다.

프라테우스 신종과 같은 능력을 가진 종이 만들어지지않는다면 말이다.

"휴우, 천년 전의 기적을 재현하기란 무리인가."

"벅찬 일이지요. 더구나 그는 일개 대장장이에 불과하니......"

100년 전, 신종을 만든 프라테우스는 신관이자 대장장이였던 인물이다.

그는 고대의 마물이 부활하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기술 신앙심을 바쳐 신종을 만들어 냈다.

그가 전력을 다해 만든 신종의 위력은 엄청났다.

신성력이 충만한 신종은 한번의 울림에 사악한 기운을 소멸시키고, 두번의 울림에 마물을 쓰러트리는 힘이 있었다.

덕분에 부활했던 고대의 마물은 그 힘을 상실하고 봉인 되었다.

그러한 신종이 깨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 힘이 다해서가 아니라 어떤 불측한 무리들에 의해서.

"일이 있기 며칠 전 부터 마을에 나타나 전설의 마물에 대해서 캐묻고 다닌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음, 그이야기는 나도 들었네 최초로 마물이 부활한 유적에도 다녀간 자들이 있다고."

현재 신전에서는 그 불측한 무리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력을 기울여 마물의 부활을 막아야 하는 것이 신전의 입장인지라 그들의 행방을 알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처음부터 총교단이나 다른 교단에 도움을 요청할 것을 그랬습니다."

"그랬으면 상황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 허나 이 역시 신의 뜻. 천년동안 우리는 옛성인의 유산 덕분에 안락을 누려오지 않았나. 나는 지금의 고난이 헬리오스 신께서 우리에게 내리는 시련이라 생각하네.우리가 이 시련을 이겨 낼 수 있다면 그분께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야."

대신관의 굳건한 의지에 마론은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변함없는 믿음에 존경스럽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답답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들의 힘만으로 마물을 억제할 수 있을까?"

"휴으,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잘될 것이네. 우리의 기원이 하늘에 닿으면, 기적은 또다시 일어날 것이야."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금불을 잡고 있던 신관한사람이 쓰러졌다. 그러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관이 급히 나서서 금줄을 잡았다.

과연 얼마나 버틸수 있을까.

마론 신관의 마음속에 뭉글뭉글 커져 가는 의혹과 불신은 그에게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때마다 마론 신관은 고개를 저으며 의혹과 불신을 떨쳐 냈다.

'버텨야 한다. 우리의 기원이 그분께 닿을 때까지! 또다시 기적이 일어날 때까지!'

믿어야한다.

지금은 믿음만이 유일한 희망이자 힘이었다.

또하나의 종이 완성되었다.

-큰종을 만들었습니다. 온세상에 맑고 고운 소리를 울릴 듯합니다.

 스킬 경험치 230을 얻었습니다.

-주물 스킬이 6랭크로 올랐스비다.

 지식이 1 올랐습니다.

 솜씨가 1 올랐습니다.

저번보다 훨씬 좋은 종을 완성햇고 덕분에 주물 스킬도 한단계 올랐지만 유한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쳇! 이번에도 실패인가?'

완성된 종소리를 들은 신관들의 안색이 어두웠다.

유한은 또다시 허탕임을 확신했다.

벌써 몇 번쨰인지 모르겟다. 이젠 눈 감고도 종의 거푸집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되었음에도 천상의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잘 만들었다 싶어도 뭔가 부족했고, 뭔가 획기적이다 싶은 방법을 적용하면 제작에 실패하거나 엉뚱하나 소리를 내곤 했다.

정말 별별 짓을 다해 보았다.

쇳물을 녹이는 동안 기도도 해 보았고, 헬리오스 교단의 성수로 종을 식혀 보기도 했다. 심지어는 종에 신성력을 불어넣으면 되지 않을까  싶어 송코를 불러와 종에다 버프를 걸어 보았다.

그러나 이 모든 수단들은 모조리 실패였다.

이제 남은 시간은 사흘 정도, 과연 그안에 천상의 소리를 내는 종을 완성할 수 있을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기술적인 문제인가? 아님 다른 비밀이 있는 건가?"

청동합금 비율이 잘못되었을 지도 모르고, 신종을 만들기 위해서는 예상 이상의 특별한 조건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에밀레종처럼 해야 되는 거 아닐까?"

곁에 있던 송코의 말에 유한은 귀가 솔깃했다.

"성덕대왕신종. 그거 만들 때도 몇번이나 실패했는데 어린 아기를 제물로 넣어서 간신히 왓성했다고 하잖아."

전설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솔깃한 이야기.

더구나 지금 유한은 한계에 봉착해 있지 않은가.

"어딜가?"

"어딜 가겠습니까?"

송코는 유한의 말을 듣고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지그 너 설마?"

비록 자신이 말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지켜보기 답답한 마음에 한 마디 한 것뿐이다.

그런데 유한이 정말 실행하려 하자 덜컥 겁이났다.

"괜찮아요. 어차피 게임인 걸요."

유한은 호메론 영지성 중앙 광장으로 나갔다.

그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자리에 자릴 잡고 준비해온 팻말을 세웠다. 팻말에는 크게 '아기 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저거 뭐하는 놈이야?"

"차림새는 대장장이 같은데 아기를 산다니?"

영지에 사는 NPC는 물론이고 유저들까지 유한의 곁으로 몰려왔다. 그중에는 아이를 업고 잇는 아줌마도 있었다.

그것을 본 유한은 반색하며 달려들었다.

"아기 파실 건가요?"

아기 엄마는 기겁했다.

"미쳤어? 금덩이 같은 자식을 내가 왜 팔아?"

"이왕이면 좀 파시죠."

"젊은 놈이 실성을 했나!"

유한은 짝 소리가 나도록 따귀를 맞았다. 피통을 한칸 쭉 내려보낸 아줌마, 아니 어머니의 힘은 위대했다.

-쿠궁! 욕먹을 짓을 하셧습니다.

 명성이 50떨어졌습니다.

'젠장 욕먹을 짓을 하도록 만든 건 드림맥스 니들이잖아!'

투덜거리는 유한에게 NPC 노인이 말을 건넷다.

"거 정신이 멀쩡해 보이는 청년이 왜 이런 짓을 하는겐가?"

"누군 좋아서 하는 줄 아십니까? 신종을 만들려니 별수 없잖습니까."

"신종? 신종을 왜 만들려는 건가?"

"그거야......."

망할 신종이 깨졌으니까.

말을 하려던 유한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신종이 깨졌다는 것을 비밀로 하기로 마론 신관과 약속한게 떠올랐기 때문.

'으이그!'

성질 같아선 그냥 내빝고 싶지만, 그랬다가 자칫 퀘스트 수행에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다.

신종이라 불릴 만한 종이 깨진 것은 신전의 입장에서 대망신이다. 이일이 종교단에 알려지면 관리 소홀로 문책을 당할 인사가 한둘이 아닐 터.

마론 신관도 처벌을 받을 것이고, 자신이 지금까지 노력한것도 허공으로 날려 보내게 될것이다.

절대 그럴수 는 없었다.

'젠장! 생각보다 복잡한 일에 휘말렸어!'

그제야 유한은 자신이 단순히 종만 만드는 퀘스트에 휘말린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유한이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는데, 노인 NPC가 또다시 물음을 건네 왔다.

"이보게. 왜 신종을 만들려는지 뭍고 있지 않나."

"그게... 옆 동네 영주가 샘이나서 자기네 신전에도 신종을 만들어 두고 싶어 해서요."

유한의 거짓말이 통했는지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하지만 악마를 잠재울 수 있는 신종은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수 있는 건 아니라네."

"영감님, 그건 그냥 전설이잖아요. 종이 무슨 힘이 있다고."

노인의 옆에 있던 청년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전설이 아니야. 우리 영지에 몬스터가 없는 것도 다 그 신종 덕분이란 말이다."

"우리 영지에는 원래 몬스터가 없잖아요."

청년의 말대로 호메론 영지에는 몬스터가 없었다. 몬스터가 살만한 환경이 아니라 그런지 몰라도 없긴 없었다.

"아무튼 그만큼 큰 종을 쉽게 만들 수는 없을 거야."

"그렇고 말고. 괜히 신종이라 불리는 게 아니지."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헬리오스 신전의 종은 영지민들에게 전설이자 자부심인 모양이다.

"그런 신종은 어린 아기를 제물로 바친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지."

어느 NPC의 말에 유한은 깜짝 놀랐다. 부뚜막에서 생선을 훔치다 걸린 고양이의 기분이 어떨까.

방금 그말을 했던 중년 NPC는 유한과 같은 대장장이인지. 허리의  오대에 망치와 끌, 집게 따위를 차고 있었다..

"흥, 어떻게 알았느냐는 듯한 얼굴이로 구먼. 이 바닥의 어두운 전설이지. 무기를 만들 때 사람을 제물로 바치면 훨씬 잘 만들어 진다고 하거든."

"아......그건?"

"미친놈들의 망상이지. 그딴 망상을 믿고 신종을 만들겟다고? 차라리 드래곤에게 비늘을 떼 달라고 하지 그라나?"

"아하하, 저는 그저!"

유한은 식은 땀을 삐질 흘렸다. 대장장이 NPC의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 살벌하게 바뀌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몰매를 가할 분위기였다.

아니 벌써 빨랫방망이를 든 아줌마, 이미 돌팔매를 날린 할머니도 있었다.

"이런 미친놈이 어디서 뻘짓을!"

"왜 옆 영지 신종에 바칠 제물을 여기서 찾고 지랄이야!"

"신종이고 복종이고, 니 인생 부터 종 쳐주마!"

"켁! 그게 아니고! 잠시 내말을......크악!"

유한은 마을 사람들에게 호되게 얻어맞았다.

사정없ㅅ이 두들겨 패고 마구 짓밟은 사람들은 어느정도 분이 풀리자 식식거리면서 돌아섰다.

"나참, 세상이 흉흉하니 별 미친놈이 다 돌아다니는군."

"신전에 도둑까지 들었다지? 말세야 말세."

주변이 썰렁해지자 유한은 부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엉망진창에 HP가 바닥으로 떨어졌있었다.

-쿠궁! 딱 안 죽을 만큼 얻어 맞았습니다.

 명성이200떨어졌습니다.

"시끄럿!"

유한은 복장을 긁는 안내창을 손으로 휘저어 없앴다.

아무래도 아기를 제물로 하는 건 안되는 모양이다. 구할 수도 없을 뿐더러, 구한다 해도 완성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참나.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유한은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하고 신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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