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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드림맥스의 초대 (5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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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틸러스에서의 일을 마친 유한은 로그아웃을 하고 캡슐 밖으로 나왓다.

 이제 잠 좀 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창밖이 환했다.

 시계를 보니 아침 5시 40분.

 그저 새벽 2~3시밖에 안 된 줄 알았는데 날을 꼬박 세워 버렸다.

 유한은 시계와 창문을 번갈아 보며 어찌할까 고민했다. 지금 잠을 자면 12시까지 곯아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랬다간 박살 날 공산이 크다.

 검정고시 합격 이후 캡슐에 대한 어머니의 잔소리는 줄어들었지만, 요새 다시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계셨다.

 식사 때마다 넌지시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기도 했다.

 "적당히 쉬고 이제 또 공부해야지. 학교에 안 가는 만큼 수능 준비는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니?"

 물런 이 같은 타이름에 유한은 '예'라고 착하게 말했다.

 그게 바로 어제다. 그래 놓고 게임으로 날밤 새운 모습을 보였다간 뭐라고 하시겠는가.

 피곤하긴 해도 어머니를 자극하고 싶진 않았다. 또다시 캡슐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하는 건 절대 사양이다.

 "그냥 일찍 일어난 척을 해야지."

 유힌은 적당히 방을 치우고, 욕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는 중간에 웬 사내자식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막 세수하고 나왔는지 목에 수건을 걸고 있는 그 녀석은 유한보다 키는 작지만, 상하체의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었고, 당돌한 눈빛에 갸름한 얼굴선 등, 어미니 김 여사를 무척 많이 닮아 있었다.

 녀석은 유한을 소 닭 보듯이 바라보았다.

 "누구시더라?"

 "니 형이다, 이 썩을 놈아!"

 유한의 동생 강유현.

 유한보다 한 살 어린 유현은 꽤 활동적인 녀석이라, 평소에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 간다고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곤 했다.

 "이상하네, 형 어제 저녁에 아이옥신이랑 멜라닌을 비벼 먹었어?" 

 "뭐가 어째, 인마, 너 죽을래?"

 유현이 하도 신기해서 하는 소리였다.

 형이란 인간은 자퇴 이후에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난 적이 없었다. 요새 형이 조금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그래도 근본이 어디 가겠는가.

 "날밤 새웠지?"

 "이렇게 팔팔한 모습이 날밤 새운 것처럼 보이냐?"

 "팔팔하니 문제지. 보통은 잠이 덜 깨서 게슴츠레해야 정상이라고."

 눈치가 빠른 동생 놈이다.

 유한은 안 그런 척 지나치며 욕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나왔다. 증인이 한 놈 있긴 했지만 일단 부모님을 속이는 범죄에는 성공했다.

 "형, 근데 요새도 아르페디아 온라인 하고 있어?"

 "그런데?"

 "해킹당했다면서?"

 "누구한테서 들었냐?"

 "저번에 엄마가, 해킹당했다고 발광을 떨었다던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 '지난 일은 잊어라' 다독이며 '너는 이제 지그만 생각해라'고 외치고 있었다.

 "해킹당해서도 다시 할 정도로 재미있나?"

 "너도 한번 해 봐라."

 "싫어. 새로 하면 지금 하는 거 때려치워야 된단 말이야."

 "너도 가상현실 게임 하냐? 너 캡슐은."

 밖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동생이 가상현실 게임을 한다니 놀랄 일이다. 그보다, 유한이 알기에 유현은 캡슐이 없다. 밖에 캡슐방에서라도 한단 말인가. 용돈도 얼마 없는 녀석이.

 "형 저번에 하나 내다 버리드만."

 그랬다. 드림맥스에서 위문품이라고 캡슐을 새로 줘 헌것은 내다 버렸다. 아니, 창고로 보냈다.

 "그거 네가 가져갔냐?"

 "멀쩡한 거 썩혀 두면 아깝잖아. 좀 때가 타긴 했지만."

 아무튼 유현은 유한이 버린 캡슐을 가져다 가상현실 게임을 맛본 모양이다. 아직 부모님이 거기에 대해서 뭐라지 않는 것을 보면 그리 많이 하지는 않은 듯했다.

 "갑자기 게임 하겠다는 생각은 왜 한거냐? 매번 애들이랑 늦게까지 놀기 바쁘더니."

 "새로 사귄 여친이 게임을 하고 있거든. 뭐가 어떤가 싶어 나도 같이 해 보게 됐지, 뭐. 공부도 되고 좋더라."

 "공부가 되다니?"

 "응, NPC들이 영어로 말을 걸더라고."

 '외국 게임인가?'

 도대체 유현이가 하는 게임이 무엇인지? 새로 사귄 여친은 또 누군데 그런 게임을 하는지?

 유한은 궁금했지만, 거기서 동생과 대화를 중단해야 했다.

 막 일어나신 아버지가 거실에 있는 아들 둘을 보고 반색을 하며 달려왔기 때문이다.

 "오! 웬일로 둘이 다 일어나 있냐?"

 "그게 뭐... 그렇게 됐네요."

 유한은 동생에게 '나불대면 죽는다'의 신호를 보내고 적당히 대꾸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아침 가게 정리 퀘스트에 필요한 파티원 1호, 2호가 생겨서 기쁜 듯했다.

 "니들 시간 있으면 아버지 좀 도와줄래? 같이 하면 금방 끝낼 수 있을 거다."

 "예. 뭐, 금방 끝날 거라면."

 오랜만에 효자다운 모습을 보이자 싶었던 유한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현장으로 가 본 유한은 이게 D급 퀘스트를 빙자한 A급 퀘스트임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가게 정리를 한다고 해 놓고는 아예 물건 진열을 바꿔 버렸고, 이왕에 청소도 해야겠다며 유한에게 대걸레를 장비시켰다.

 "항상 가게 손질에 신경을 써야 손님들이 자주 드나드는 법이야. 조금만 바꿔 줘도 이미지가 확 달라지거든."

 유한은 짜증이 났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아버지의 거짓말+수면 부족+중간에 동생이 학교 간다고 파티에서 이탈' 때문이었다.

 가게 정리는 아침 식사 후 오전 11시까지 계속되었다.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갈 쯤, 유한의 호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강유한 고객님 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다 싶었는데, 금세 상대를 알 수 있었다. 지난번 해킹 때 전화를 했던 사람이었다.

 "전 드림맥스의 고객 상담실 실장 양호식입니다. 전화를 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고객님을 저희 회사에 초청하기 위해섭니다."

 "초청이요?"

 "예, 사흘 뒤 본사에서 업데이트 기념 리셉션이 있습니다. 여러 유저 분들을 무작위로 뽑아 초청하기로 했는데, 고객님이 운 좋게 당첨이 되셨습니다."

 유한은 좀 어이가 없었다.

 드림맥스가 업데이트 기념 리셉션을 하든지 말든지 상관없다.

 그러나 자신이 신청도 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자기네들이 뽑아서 초청을 하겠다니.

 물론 드림맥스에선 유저를 깜짝 놀라고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그랬을지 모르지만, 드림맥스에 감정이 안 좋은 유한으로선 자신의 의사를 무시해 버린 듯해서 기분이 나빴다.

 자기네들이 한다고 결정하면 다 따르고 승낙할 것이라 생각하는 오만함이 무척 거슬렸다.

 "초청장은 이미 자택으로 보내 드렸으니 들어오실 때 제시하시면 될 겁니다. 일자는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사흘 뒤 오후 5시, 장소는 저희 회사 본가 3층 연회실입니다."

 "글쎄요, 전 그날 바쁜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못 가겠는데요."

 "그, 그렇습니까? 어떻게 꼭 오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오시면 가수나 연예인들도 만날 수 있고, 게임 제작자 분들이랑 대화, 토론도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기념상품도 드립니다. 아! 맛있는 것도 많이 나오니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안 가겠다고 하니 상대는 적잖게 당황했다. 말을 더듬는 것은 물론이요, 애원까지 하는 것이다.

 '내가 안 가기라도 하면 큰일이 나나?'

 그런 사정까지는 모르겠지만, 유한은 가지 않기로 결심을 굳혔다. 냉정한 약관으로 자신에게 뻣뻣하게 대했던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쓴맛을 보여 주고 싶었다.

 "저희는 고객님을 꼭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꼭 방문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십시오."

 "글쎄요, 공부도 해야 해서 이만."

 "고객님!"

 양호식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유한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후 몇 차례 그에게 전화가 더 왔지만, 유한은 아예 받지도 않았다.

 가게 정리를 끝낸 유한은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우체통에 드림맥스에서 보낸 초청장이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이미 드림맥스에게 한 방 먹이기로 작정한 유한은 뜯어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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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무시하기로 했다는 거야?"

 저녁 때 게임에 접속했을 때, 유한은 동료들 앞에서 아침에 있었던 일을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자신이 드림맥스를 물먹였다고.

 그러자 다들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들은 유저 200명을 무작위 추첨으로 리셉션에 초대한다는 것을 이미 공식 홈페이지의 공지로 알고 있었다.

 "필요 없으면 차라리 날 주지."

 "바츠, 이 배부른 자식! 그 리셉션에 누가 오는지 알아? 은비 누님이 온단 말이다! 최강 아이돌인 은비 누님이!"

 옌스가 흥분한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들겼다. 녀석은 리셉션 내용을 어디서 들었던 모양이다.

 "시꺼, 은비가 오는지, 금비가 오는지 내가 알 게 뭐야?"

 "닥치고 그걸 나한테 줘!"

 "벌써 버렸어."

 "아아!"

 좌절한 옌스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척이나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 것은 옌스뿐만이 아니라 리지스나 송코도 그랬다. 다들 배부른 유한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무슨 일이야?"

 마침 채린이 접속을 했다. 리지스는 참 잘 만났다는 듯, 그녀에게 유한의 만행에 대해 털어놓았다.

 "저 바보가 육만 대 일의 확률에 당첨되고도 권리를 포기했어."

 "뭐? 지그도 리셉션 초청을 받은 거야?"

 "지그도라니? 그럼 시아, 너도?"

 리지스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채린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꼭 와 줬으면 한대."

 "크악! 내 주변에서 둘이나 추첨됐는데 왜 나는!"

 다들 유한을 더욱 무섭게 째려보았다. 남은 뽑히고 싶어도 떨어졌는데, 어떤 놈은 당첨되어 놓고도 권리를 포기하다니.

 이는 떨어진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시아 너 그 리셉션에 갈 거야?"

 "응, 꼭 와 달라고 하는데 무시하면 실례잖아."

 유한은 채린이가 참 속이 넓다고 생각햇다. 어쩐지 그런 그녀를 보니 자신이 소인배같이 느껴졌다.

 "근데 지그 너는 정말 안 갈거야?"

 유한은 채린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채린이 간다니까 은근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솟구쳐 올랐다.

 초청장은 아직 휴지통 속에 남아 있다.

 생각을 바꿀 기회는 아직 있었다.

 (2)

 사흘이란 시간은 길고도 짧았다.

 유한은 최대한 멋지게 차려입고 드림맥스 본사로 향했다.

 드림맥스의 본사는 굉장히 세련된 양식으로 지어진 고층 빌딩으로 위풍당당하게 가상현실 세계를 접수하는 그들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유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처럼 초청받은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과, 방송국과 신문사의 기자, 어딘가의 업체 쪽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이 끼리끼리 뭉쳐 본사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채린이는 벌써 안으로 들어갔으려나?'

 두리번거리던 유한은 저 멀리 걸어오는 채린을 발견했다. 채린 쪽에서도 유한을 봤는지 손을 흔들었다.

 "후후후, 결국은 왔구나."

 "너 혼자 있으면 심심할 것 같아서."

 두 사람은 사이좋게 본사 안으로 들어갔다.

 3층 연회실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가수라든가 연예인들도 있었는데, 다들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제법 한다고 알려진 이들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업데이트 기념 리셉션을 거행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유명한 아이돌이자 가수인 은비가 오프닝을 겸해 노래를 불렀다.

 이후, 업데이트 관련 영상이 스크린에 비춰졌는데 대체로 새로 적용된 업데이트의 콘텐츠를 소개하기보다 직원들의 노고와 유저들의 성원에 감사한다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뤘다.

 영상이 끝난 다음엔 관련 업체 인사들이 나와 축하 인사와 격려를 했다. 그러나 유한과 채린을 비롯한 대다수 유저들은 아저씨들의 연설이나 인사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들 눈이 휙휙 돌아가는 요리들이나 연예인들 쪽에 관심을 두었다.

 다음에 이어진 것은 게임 제작자들과의 대화였다.

 이것은 거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초반부터 업데이트 내용에 불만을 가진 유저들이 맹공을 펼쳤다.

 "최가장 길드의 최강현입니다. 이번에 우리 길드는 범선을 건조해서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침몰했습니다. 실패한 것은 둘째 치고 왜 아이템의 일부를 상실해야 했는지, 왜 그런 식의 설정을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뭔가를 걸고 위기를 이겨 냈을 때, 성취감이 강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항해를 성공적으로 끝내면 많은 경험치와 명성을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바다에서 잃어버린 아이템은 영영 없어지는 겁니까?"

 "고래나 원양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잡아 배를 갈라 보십시오. 그럼 답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실 개발자 손석진의 대답에 몇몇 유저들의 머리가 번득이며 돌아갔다. 바다에서 잃은 아이템을 고래나 물고기들이 꿀꺽한다는 말인가?

 '흐음, 조만간 원양어업이 활성화되겠군.'

 그러면서 유한은 뒤이어 생각했다. 남의 불행을 즐기는 녀석들도 있을 거라고.

 "랭크 78위 스코필드입니다. 저는 저번에 요트를 타고 바다로 갔다가 유령선 같은 걸 봤습니다. 정말 유령선이나 관련 몬스터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근데 고객님께서 보신 건 어쩌면 유령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게 더 재미있을 겁니다."

 대체로 개발자라는 사람은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는 식으로 대답을 하곤 했다.

 하기야 200명이나 되는 유저들의 공세에 일일이 답하자면 그 정도로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그런 식의 대답은 더욱 궁금증을 유발하기 마련.

 유저들과의 대담도 끝나고 일련의 공연이 이어졌다.

 가수들이 노래도 부르고, 유명 MC들과 연예인들은 게임을 소재로 한 콩트를 보여서 유저들을 웃게 만들었다.

 유한도 채린과 함께 마음껏 웃고 즐겼다.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드림맥스 직원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그에게 말을 건넸다.

 "강유한 고객님 맞으십니까?"

 "그런데요?"

 "원 개발자님이 고객님을 따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원 개발자라면 아까 유저들의 질문에 답변해 주던 손석진이란 사람이다.

 유한은 흥미가 끌렸다. 스스로가 매번 감탄하는 이 게임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었다. 이미 누군지 얼굴을 봤지만, 따로 만나자고 하는 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유한은 아까 대담에서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주변의 다른 유저들에 묻혀 버렸기 때문이다.

 "어디 계시죠?"

 "절 따라오십시오."

 손석진이 있는 곳은 3층 연회실 한편의 휴게실이었다.

 주변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유한이 들어오자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바츠 유저 분이시죠? 반갑습니다, 손석진이라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유한은 손석진이 내민 손을 잡았다. 게임 개발자라고 들어서 손이 하얗고 가늘 줄 알았는데, 크고 거칠었다. 거기다 약력도 묵직했다. 뭔가 운동 같은 것을 한 듯했다.

 "해킹당하신 일은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지난 일이고, 생각하면 화만 날 뿐이니까.

 손석진도 그런 유한을 이해했는지 더 이상 거기에 대해 말을 건네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대장장이는 재미있으십니까?"

 "힘이 들 때도 있지만, 해 보니 재밌더라고요. 특히 장작 패기로 우드 골렘을 잡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때는 많이 놀랐어요."

 "하하하, 그러십니까?"

 "요새도 전투 때 곧잘 써먹고 있지요."

 유한이 손석진과 여기까지 대화를 나누었을 때였다.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이 울렸다. 유한은 손석진에게 양해를 구한 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다, 날 기억하겠지?"

 "넌...!"

 유한은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한순간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변조된 음성.

 그것은 바츠를 파멸시킨 그놈의 목소리였다.

 해커, 해커 녀석이 다시 전화를 했다. 오랫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었던 그 녀석이 다시 또.

 "하도 소식이 뜸해서 전화를 했다. 혹시 나와 한 내기를 잊은 건 아닌가 해서."

 "잊을 리가 없잖아!"

 찾고 있다. 바츠의 아이템을 찾아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 애송이 해커 한 놈을 잡아서 족치기도 했다.

 "무슨 일입니까?"

 손석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유한이 격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금방이라도 폭발, 아니 사람을 죽일 것 같은 기세였다.

 "잊지 말라고, 네 소중한 것을 찾고 싶으면 말이야."

 "시끄러! 잊지 않았다고 했잖아!"

 "후후후, 여전히 잘 흥분하는군. 좋아, 노력하는 널 위해서 내가 한 번 특별한 기회를 주도록 하지."

 해커는 유한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한도 녀석의 은근한 말투를 무시하려 했지만, 녀석이 뒤이어 말한 것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날 찾아봐라, 지금 네가 있는 그곳에 내가 있으니까."

 "뭐라고?"

 해커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지금 이곳,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만든 드림맥스 본사 건물에.

 "난 지금 너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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