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움직이는 숲 (4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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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처 영지의 목마장에서 말을 빌린 즉시 유한은 서쪽을 향해 달렸다. 아바란 왕국을 지나 키예프 공국에 들어선 그는 리저드맨들이 장악했다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경계를 선 NPC 병사들이 만류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경계를 넘었다. 그리고 결국 리저드맨의 군영에 당도했다.

 "누구야! 들어오면 죽는다."

 보초인 듯한 리저드맨 두 마리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푸르게 녹슨 창을 내밀었다.

 "난 너희들의 적이 아니다! 이걸 봐라."

 유한은 리저드맨에게 동지의 목걸이를 내밀었다. 그런데, 내심 기대했던 것과 다른 반응이 나왔다.

 "그게 뭔가?"

 "이게 뭔지 모르겠어?"

 "모른다."

 유한이 재차 확인했지만, 그들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러 칭호도 '리저드의 친구'로 달고 왔건만.

 '아놔! 내가 리저드 샤먼한테 속은 거야?'

 "아이템 확인!"

 유한은 혹시 몰라서 동지의 목걸이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동지의 목걸이=)

 -방어력 3 상승.

 -곤충류 몬스터에 대한 공격과 방어 20% 상승.

 -크리티컬 발동 10% 상승.

 -설명: 리저드맨 주술사가 만든 세공품. 머나먼 원시의 영혼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확인해 보니 동지의 목걸이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 리저드들이 이상한 것이다.

 "너희들 어디 출신이야?"

 "우린 남족 늪지에서 왔다."

 그럼 그렇지. 저들은 유한이 알고 있던 플레임 마운트의 리저드맨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리저드 히어로도 그쪽 출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유한은 문득 자신이 헛짚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너희들 중에 플레임 마운트 출신은 없나?"

 "플레임 마운트?"

 "그래, 서쪽 사막에 있는 불 뿜는 산 말이다."

 유한은 바짝 속이 타는 것 같았다.

 녀석들의 한 마디에 자신과 동료들의 생사가 갈린다고 생각하니 일 분 일 초의 시간도 초조하게 느껴졌다.

 "아, 있다! 우리 대장이 거기 출신이다."

 "우리 대장. 이 창 만들어 줬다."

 자세히 보니 놈들이 들고 있는 창은 푸르게 녹이 슨 것이 아니라 화산수를 이용해 식혔기에 독성이 스며든 것이었다.

 '빙고!'

 쾌재를 부른 유한은 리저드맨들에게 말했다.

 "날 너희 대장에게 안내해라. 난 너희 대장의 스승이다."

 "스승? 스승이 뭐냐? 먹는 거냐?"

 "너희 대장의 대빵이라고, 이것들아!"

 이런 돌대가리 녀석들이 대체 무슨 수로 키예프 공국의 절반 이상을 점령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저돌적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리저드맨들은 유한을 경계하며 자신들의 대장에게 데려갔다.

 커다란 막사 상석에 앉아 있는 리저드맨은 하이에나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유한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앗! 인간 대장장이!"

 이 지역에 파견 나온 리저드맨들의 대장은 유한의 생각대로 플레임 마운트의 리저드 대장장이였다. 유한에게서 대장장이 기술을 배운 놈이 맞았다.

 "오랜만이다."

 "오오! 인간 대장장이. 리저드 보고 싶었다."

 그렇게 인사하는 리저드맨은 연방 굽실거리고 있었다.

 그 반응은 유한을 의아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리저드맨들도 궁금하게 했다. 대장이 한낱 인간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대장, 아프냐? 왜 절을 하냐?"

 "닥쳐라! 너희도 숙여라! 인간 대장장이는 위대한 혼이 보낸 사자다!"

 "헉! 정말이냐?"

 위대한 혼이 언급되자 리저드맨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빛나는 손톱 만드는 거 가르쳐 준 게 이 인간 대장장이이다. 그리고 하늘로 돌아갔다. 그러다 또 온 거다!"

 그제야 리저드맨들도 유한의 위대함(?)을 알고 모두 고개를 조아렸다. 위대한 혼이 보낸 사자 대접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굽실거리지 않아도 돼. 내가 너흴 찾아온 건 좀 곤란한 처지에 빠졌기 때문이야. 너희 리저드맨들의 도움이 필요해. 도와줄 수 있나?" (도움받는 처지에 말투가 참 뭐하네요. 참 친절하기도 하지.)

 "말만 해라. 리저드 뭐든 돕겠다."

 "싸움이 벌어져서 전사들이 많이 필요해."

 "얼마나 필요한가?"

 유한은 푸른 새벽 길드원들의 숫자를 생각해 보다 적절하다 싶은 숫자를 말했다.

 "한 삼천 정도면 될 것 같다."

 "삼천? 알았다. 대족장한테 말하겠다. 이런 거 대족장 허락 있어야 한다."

 "대족장? 그게 누군데?"

 "너도 알고 있다. 바로 우리 족장이다."

 녀석에게 들어 보니 리저드 히어로는 바로 예전에 만났던 플레임 마운트에 사는 리저드맨들의 족장이었다. 그는 유한이 전수해 준 우수한 철기 기술을 바탕으로 주변 리저드맨들을 통합하고 복속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식량이 풍부한 동쪽으로 진출한 것이고.

 '결국 그렇게 된 것이었군.'

 내심 아니길 바랐는데, 역시나였다.

 이렇게 자꾸 게임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다간 나중에 유저들의 원성을 살 수 있었다. 들키지 않으면 괜찮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그럼 잘 부탁한다."

 "잘 가라, 인간 대장장이. 또 와라. 언제나 환영이다."

 그렇게 놈에게 부탁한 유한은 다시 말을 타고 서둘러 대장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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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푸른새벽 놈들이 길드전을 선포했다고?"

 유한이 대장간으로 돌아오니 황당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그렇다니까."

 채린의 설명에 의하면 이랬다.

 어제 푸른새벽 길드에서 사자가 와서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그것은 유한들도 예측한 바다. 그래서 이리저리 도움을 요청했으니까.

 그런데, 그 전쟁 방식이 문제였다. 놈들이 선포한 것은 바로 길드전이었다.

 "길드전? 난 어느 길드에도 속해 있지 않은데?"

 "킁, 그러니까 웃기는 놈들이지."

 옆에서 옌스가 한심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길드전의 상대가 레드 타이거 용병대야."

 "엥? 거긴 또 왜?"

 "아무래도 우리 뒤에 레드 타이거 용병대가 있다고 착각했나 봐."

 "허!"

 '이놈들이 착각을 해도 유분수지 누굴 누구 쫄다구로 보는 거야!'

 하지만 덕분에 아주 대놓고 레드 타이거 용병대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자, 그럼 우리고 준비를 해 볼까?"

 길드전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더 싸울 준비를 해 놓을 생각이다.

 유한은 대장장이 NPC들을 총동원해 무기 생산을 늘렸고, 옌스와 나머지 동료들은 각자 필요한 물건이 있다며 구하러 갔다.

 (2)

 길드전이 벌어지는 날.

 남바린 평원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크세 세 무리로 나뉘어 서 있었는데 한쪽은 푸른새벽 길드였고, 다른 한쪽은 유한과 레드 타이거 용병대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쪽은 이번 싸움의 관람자, 즉 구경꾼들이었다.

 푸른새벽 길드는 승리를 확신하는지 길드전을 선포한 직후 아르페디아 온라인 공식 홈페이지의 게시판을 통해 이번 길드전을 홍보하고 다녔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유한과 레드 타이거 용병대를 꺾어 그들의 힘이 강하다는 걸 뽐내려는 수작인 모양인데, 그게 제대로 먹힐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쳇, 많이도 데려왔네."

 리지스가 푸른새벽 길드 진영을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정확히 세어 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대충 3천 명은 넘어 보였다.

 저들의 최대 길드원 수가 2천명이라고 들었는데, 용병으로만 천 명 넘게 끌어 모은 모양이다.

 "걱정 마, 누님. 아무리 상대가 많다고 해도 이 몸이 다 박살 낼 테니까."

 "어이구, 그래. 넌 단순해서 좋겠다." 

 유한의 진영에는 레드 타이거 용병들뿐 아니라 에이린과 오펜이 데려온 반 친구들과 리지스가 돈을 주고 고용한 몇몇 용병들이 참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압도적인 전력 차를 확인하고는 흔들리고 있었다. 이쪽은 다 합쳐 봐야 250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저쪽은 그냥 봐도 3천이 넘어 보였다.

 "으악! 저 깃발을 봐! 철십자 길드야!"

 "이번에 참가한다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이러다 우리 지는 거 아냐?"

 "그, 그래도 레드 타이거 용병대가 있잖아."

 "저 아저씨들이 아무리 강해도 다굴에 장사가 없는 법이라구!"

  

 슬금슬금 뒷걸음치는 그들을 보며 길포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요즘 애들은 영 패기가 없어."

 "그러게 말입니다. 싸움이란 아슬아슬해야 붙어 볼 맛이 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옆에서 곽대발, 아니 자칼이 씨익 웃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채린이를 봤다는 애들이 있던데, 설마 지그 그놈과 함께 있는 것은 아니겠지?"

 자칼도 채린이가 유한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대장간을 찾아가자 유한이가 다급히 누군가를 대피시키는 것을 보았는데, 바로 채린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유한이 놈은...

 자칼은 일단 모른 척하기로 했다.

 "설마요, 애들이 잘못 봤을 겁니다."

 "그나저나 빨리 전투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군."

 "왜요?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하십니까?"

 "나 아무래도 이곳 체질인가 봐. 하루도 싸우지 않으면 잠이 오질 않는 거 같아."

 길포드가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빠진 이유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싸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장을 찾아오는 제자들과 몇 번 대련해 봐야 그의 갈증만 더 심해질 뿐이었다.

 그렇다고 조폭들과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나, 대회에 참가하려 해도 이런저런 규정 때문에 오히려 화만 나고 만다.

 "지그 오빠! 시아 언니는?"

 "어? 시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네."

 에이린은 오늘 시아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이 싸움은 그녀와도 관련이 있으니까.

 "시아는 오늘 못 나와."

 "에? 왜요?"

 채린과 함께 사선을 넘나들 것을 각오했던 에이린으로서는 대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병원에 있어. 하교하다가 웬 할머니가 길에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는데..."

 채린은 구급차를 불러 쓰러진 할머니를 병원에 데려다 드렸단다. 다행히 할머니 목숨은 구했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연고가 불분명해 그냥 두고 올 수가 없었다고.

 "미안, 나 반드시 오늘 길드전에서 아빠랑 너랑 같이 싸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어렵겠어. 정말 미안해."

 "아냐, 사람을 구하는 게 먼저지. 괜찮아, 잘했어."

 채린은 많이 미안해 하고 또 아쉬워했다. 그리 미안해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아아! 그랬군요. 역시 시아 언니는 멋져!" 

 '멋진 것은 물론이고, 아주 잘된 거지.'

 채린이 못 온다고 했을 때 유한은 내심 안심했다.

 송태수가 있는 상황에서 채린이 접속하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채린이야 평소대로 자신에게 친근하게 굴겠지만, 그 모습이 송태수의 눈에 띄었다간...

 '아무렴. 이건 백번 잘된 거라고!'

 채린의 희생은 오늘 사람의 생명을 둘이나 살렸다. 이름 모를 할머니와 그리고 유한 자신.

 "그건 그렇고 오빠가 부른 지원군은 언제 오는 거야?"

 유한은 친구들에게 키예프 공국에서 지원군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들만 합류하면 절대 지지 않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벌써 길드전 시작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지원군은 보이지 않았다.

 "그, 글쎄. 좀 늦네."

 '아놔! 장소를 말하지 않고 와 버렸잖아!'

 유한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지원군 요청을 하러 갔을 때 급한 마음에 얼마만큼 병력을 달라고만 했지, 어디에서 싸움이 붙는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연히 리저드맨들은 도와주러 오고 싶어도 못 오게 된 것이다.

 '야단났네, 이를 어쩌지?'

 어쩌고 싶어도 어쩔 방법이 없었다. 유한의 머릿속에 '필패(必敗)'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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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크크, 저놈들 꼬라지를 보십시오."

 케이지는 길드장인 백작 세이언 옆에서 열심히 아부를 떨고 있었다. 자신이 벌인 일이 길드전으로까지 확대되는 바람에 길드 내에서 위치가 대폭 축소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세이언에게 아부하고 있었다.

 "겁먹은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쳐들어가면 바로 꽁지 빠져라 도망칠 겁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지."

 오늘의 길드전을 위해 세이언은 다소 무리를 했다.

 처음에는 그냥 길드 자체의 병력만 동원하려 했으나 좀 더 확실한 승리를 얻기 위해, 그리고 만방에 푸른새벽 길드의 건재함을 보여 주기 위해 두 가지 준비를 더 했다.

 하나는 케이지를 보내 철십자 길드에 지원군을 요청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용병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 모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전력을 3천명이 넘었다.

 "길드전의 시간은?"

 세이언은 길드의 참모를 맡고 있는 마법사를 향해 물었다.

 "이제 오 분 남았습니다. 오 분 후면 저놈들이 지닌 아이템들은 모두 우리 것이 될 것입니다.

 길드전은 GM의 참관하에 벌어진다. 그래서 시간과 장소를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그러나 상대편 유저들을 죽여 흘린 장비와 돈을 획득할 수 있었기에 길드전이만 전문으로 참여하는 용병들이 있을 정도였다.

 "좋아, 각 병단들마다 전투 준비를 하라고 해."

 세이언의 명령이 떨어지자 중앙 지휘소에서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뿔 나팔 소리와 북소리가 멋지게 평원에 울려 퍼졌다.

 굳이 이러지 않아도 충분히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많은 길드들은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런 중세풍의 요식행위를 선호했다.

 신호가 떨어지자 각 병단들은 저마다 공격 진형을 갖추었다. 마법 병단은 후위에서 마법 지원에 최적화된 진형을 갖추었고, 전사나 기사로 이루어진 돌격 병단은 선두에서 세모꼴 진형을 했다.

 그리고 좌우의 궁수나 원거리 타격 능력을 보유한 유저들은 적을 향해 화살을 쏠 준비를 했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무려 3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공격 준비를 하는 모습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아, 안 돼! 난 그만둘 거야."

 "받은 돈의 다섯 배요. 용병대에서 탈퇴하겠소." 

 "제길, 이런 승산도 없는 전쟁에 고용하다니! 당신 생각이 있어, 없어?"

 그렇지 않아도 단결력이 약한 용병들은 푸른새벽 길드가 공격 준비를 하자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그 모습에 오펜의 급우들이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오펜과 에이린이 나서서 그들을 진정시켰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가 있잖아. 그들을 믿어."

 "조금 있으면 지원군이 온다고 했어요. 그러니 조금만 참아요." 

 하지만, 그 어디에도 온다는 지원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길, 도대체 지원군이 어디서 온다는 거야?"

 "그러게, 이러다 돈과 아이템만 모두 잃어버리는 거 아냐?"

 "나 그만둘 거야."

 "미안, 나도 갈래."

 한 명이 그만둔다고 하자, 오펜의 급우들도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떠나가 버렸다. 하긴, 그들은 돈을 받고 참전한 용병도 아니고 그냥 반장의 부탁으로 인원수만 채우러 나왔기에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크하하하!"

 "푸하핫!"

 그 모습을 보고 푸른새벽 길드원들과 철십자에서 지원나온 녀석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지그 오빠! 도대체 지원군은 언제 오는 거에요!"

 얼굴이 벌겋게 변한 에이린이 다가와 빽 소리를 질렀다.

 "그냥 뻥이었죠? 우리들이 기 죽을까 봐 뻥친 거죠? 차라리 없으면 없다고 솔직히 말해요. 그럼 덜 실망할 테니까."

 "아, 아니 그게..."

 "안이고 밖이고 간에 솔직히 말하라구요!"

 에이린은 유한을 궁지에 몰아넣고 다그쳤다.

 '어휴, 돌대가리는 리저드맨이 아니라 나였군.'

 몇 번을 후회해도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이젠 그냥 깨끗이 포기하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죽기 살기로 싸우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지금은 그런 작은 기대에 모든 것을 걸어 보고 싶었다.

 쿵! 쿵! 쿵!

 그때였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레드 타이거 용병대 뒤쪽의 숲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 길드전이 벌어지려고 할 때라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새파란 물결이 밀려오자 신경을 쓰지 않으려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저건 뭐야?"

 "저기에 숲이 있었나?" 

 멀리서 볼 떄는 마치 숲이 움직이는 듯했다. 하지만, 점점 가까워지자 그들이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리저드맨들이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지평선을 완전히 덮어 버릴 정도로 새까맣게 밀려오고 있었다.

 "리, 리저드맨이다!"

 "뭐야? 왜 여기 나타난 거야?"

 "설마 침공하려고?"

 유저들이 놀라 호들갑을 떨 때 유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길드전에서 질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족히 수만은 될 것 같은 리저드 대군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에이린을 향해 말했다.

 "쟤들이 바로 우리 지원군이야."

 (3)

 "인간 대장장이, 리저드 왔다."

 리저드 족장이 반가운 얼굴을 하고 유한에게 다가왔다.

 반가운 마음에 유한은 그에게 달려가 부둥켜안은 뒤 물었다.

 "어떻게 장소를 알고 찾아온 거야?"

 "인간 대장장이 네 냄새를 맡고 찾아왔다. 인간 군대를 피해서 온다고 늦었다. 미안하다."

 "괜찮아, 괜찮아. 와 준 것만 해도 고마워. 근데... 꽤 숫자가 많네?"

 삼천 정도 필요하다 했는데, 이건 아주 수만 대군이 왔다. 이렇게 많은 대군을 이끌고 온 이유를 족장은 간단명료하게 말해 주었다.

 "삼천 뽑으려다 귀찮아서 다 끌고 왔다." 

 "하하핫! 그랬어?"

 정말 리저드맨답다고 할 수밖에.

 족장의 어깨를 다독인 유한은 영문을 몰라 하는 레드 타이거 용병대와 자신의 동료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동지 여러분! 위대한 리저드 히어로가 우릴 도우러 대군을 이끌고 왔습니다! 더 이상 푸른새벽 길드를 무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와아아!"

 이건 기쁨의 함성이 아니라 놀라움의 함성이었다.

 키예프 공국을 휩쓸고 있는 리저드 히어로가 길드전에 가담하다니, 그것도 인간을 돕기 위해서!

 "리저드 히어로라고?"

 "야! 이거 대박이다! 얼른 동영상 저장해!"

 구경꾼들이 소란스러워졌고, 레드 타이거 용병대 측은 기세가 올라갔다. 그에 반해 아까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하던 푸른새벽 길드는 사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시바! 이런 게 어딨어? 리저드 히어로라니!"

 "그래 봤자 리저드맨일 뿐이잖아."

 "닥쳐, 인마! 넌 키예프에 안 가 봐서 몰라! 저놈들 얼마나 질기고 무서운지 알기나 해?" 

 푸른새벽 길드가 고용한 용병 부대들부터 흔들렸다. 키예프에서 활동한 전적이 있는 용병들부터 패널티를 각오하고 빠져나가자, 길드원들도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빨리 알아 봐, GM에게 가서 항의하란 말이야!"

 세이언은 참모 마법사를 서둘러 GM에게 보냈다. 뜬금없이 가담한 리저드맨 대군에 대해서 항의하기 위함이었다.

 중립 지역에 있는 GM에게 번개같이 달려갔던 참모는 사색이 되어 돌아왔다.

 "전혀 문제가 없답니다. 유저 개인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도 인정되는 거라면서..."

 그 말을 들은 세이언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격렬하게 토로했다.

 "미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렇게 많은 리저드맨을 동원할 수 있는 놈이 어딨어! 저기에 대마왕 캐릭터라도 있는 거야? 그런 거냐고!"

 이건 세이언이 아는 상식 밖의 상황.

 길드전에 테이밍한 몬스터를 전력으로 동원하는 경우가 있고, 몰이해 온 몬스터 떼들을 적진에 밀어 넣는 경우도 있다지만, 이런 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수만 단위의 리저드맨을 몰고 온 놈들과 길드전이라니!

 "리저드 공격!"

 "우! 우! 우!"

 족장의 외침에 리저드맨들이 특유의 함성을 지르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창과 방패를 부딪치며 발을 크게 구르는 리저드맨들이 전진할 때마다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뭐해, 자식들아! 공격해! 궁수는 놀고 자빠졌냐? 마법사 졸고 있어? 여기서 지면 우린 끝장이란 말이다!"

 극도로 흥분한 세이언이 길드원들을 닦달했다.

 그가 흔들리는 만큼이나 푸른새벽 길드원들도 흔들리고 있었다. 멋들어지게 포진한 진형은 개미 떼처럼 흐트러져 있었고, 발악하듯 날리는 화살이나 마법도 그리 많이 않았다.

 아니, 그렇게 날린 공격들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몇마리의 리저드맨들이 쓰러지자 리저드맨들이 쿵쿵 뛰며 달려오더니 들고 있는 창을 일제히 집어던지는 것이 아닌가.

 "우와! 하늘이 새까매!"

 "저게 전부 다 창이냐?"

 보는 구경꾼들은 감탄했지만, 그걸 맞는 푸른새벽 측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온 수만 개의 투창들은 그야말로 폭우처럼 쏟아져 푸른새벽 길드원들을 학살했다.

 "크악!"

 "으아악! 사람 살려!"

 방패가 없는 궁수나 마법사들의 피해가 가장 극심했다.

 전사나 기사들도 방패를 부술 듯이 두들겨 대는 투창에 치를 떨었다.

 왜 아까 키예프에서 왔다는 용병들이 악을 쓰며 가 버린지 알 것 같았다.

 "모두 돌격! 도마뱀한테 뒤쳐지면 지옥 훈련이다!"

 "우와아아!"

 투창 세례가 끝나자 유한과 레드 타이거 용병대, 그리고 유한의 동료들도 함성을 지르며 푸른새벽 길드를 향해 돌격해 갔다.

 나름대로 강하다 자부하던 푸른새벽 길드였지만, 그들이 오늘 우위라고 생각했던 '쪽수'가 완전히 뒤집히면서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리저드맨들의 무차별 돌격과 난전 방식의 전투는 진형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평소 그들의 스타일과 영 맞지 않는 싸움이었다.

 리저드맨 하나를 베면 다른 놈이 찌르고, 옆에서 또 찌르고, 한 놈이 더 와서 밟고...

 거기다 그런대로 리저드맨을 상대로 싸울 만하면 레드 타이거 용병대나 그들의 동료들이 가세해 균형을 기울여 버렸다.

 -아놔, 리저드맨 20마리가 한꺼번에...

 -아이고, 내 갑옷! ㅜㅜ

 -길드장 이색히 어딨어!

 쓰러진 시체들이 올려 대는 채팅 글과 그들이 떨어트린 검과 방패, 지팡이, 골드가 평원을 뒤덮었다.

 구경꾼들은 그것을 보고 입맛을 다셨고, 아까 불리하다며 레드 타이거 용병대 쪽에서 이탈한 유저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거나 주먹으로 땅을 쳤다.

 "으윽, 이럴 줄 알았으면 남아 있을걸."

 "아씨! 반장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푸른새벽 길드는 완전히 전멸 단계로 나갔다.

 살아남은 유저들도 패널티를 각오하고 이탈하거나, 몸값을 치르는 조건으로 포로가 되었다.

 '제길! 어쩌다 이렇게까지.'

 요새 일진이 더럽게 없다 싶었던 케이지는 눈치를 보다가 시체들 틈에 죽은 척 엎어졌다.

 싸움이 종료할 때까지 버텨 볼 생각이었지만, 처음부터 자신을 노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분명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끄아악!"

 "일어나, 인마. 왜 뒈진 척을 해?"

 유한은 케이지의 똥꼬에다가 포이즌 세이버를 찔러 넣었다. 퍼떡 일어난 케이지는 자신을 노려보는 유한을 발견했다.

 이곳까지 오면서 꽤 격전을 치렀는지, 유한이 들고 있는 검은 이가 거의 다 빠져 있었다.

 지금 이놈에게 덤비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게 하기엔 주변의 리저드맨들이 너무 많았다.

 "하, 항복."

 케이지는 손을 들어 올렸다. 포로가 되면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죽으면 더 손해였다. 아이템은 물론 경험치도 잃어야 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유한은 검을 아래로 내렸다.

 케이지는 자신의 항복을 받아 주는 줄 알고 안심했지만, 유한은 자세를 바꾸기 위해 그랬을 뿐이다.

 "까고 있네!" 

 목을 베인 케이지는 진짜 시체가 되어 평원에 누웠다.

 지지리 재수가 없었던지, 아이템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몽땅 떨어뜨렸다. 그리고 돈 주머니도.

 "이겼다! 우리의 승리다!"

 얼마 후, 길포드가 푸른새벽 길드의 길드장 세이언을 쓰러트리면서 길드전이 끝났다.

 GM들은 정식으로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승리를 선언하고 전투 기록을 갖고 떠나 버렸다. 승리자들은 기쁨의 함성과 함께 전리품을 수거했다.

 그러나 리저드 히어로와 수만 리저드맨이 가세한 길드전이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일으킬 거라고는 아직까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 10. 길드전 발발 >>>

 (드, 드디어!!!!! 마지막 챕터입니당. 에헤라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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