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광렙을 하다 >
(1)
남바린 영지의 지진 사태는 한동안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예고도 없던 지진에 대해서 드림맥스는 '버그가 아닙니다'. '벌어질 만한 일이었습니다'라는 간략한 언급만 할 뿐이었다.
유저들은 이번 일의 원인에 대해 여러 추정을 했다.
최후에 가서는, 버그였는데 드림맥스가 변명을 하고 있다는 음모론과 게임사의 말대로 벌어질 만한 일이라는 근거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승자는 근거론이었는데, 그것을 주장한 '최강현'이란 유저는 게임상에서 버추얼 에이지의 MC 미루와 만나 단독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최강현 님은 이번 일이 근거가 있다 하셨는데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그건 사고 현장을 보면 압니다. 여느 지진과 달리 남바린 성은 수십 미터 지하로 폭삭 주저앉았지 않습니까?>
-<그랬지요.>
-<바로 그겁니다. 남바린 성 밑은 텅빈 지하 동공으로 설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표에 무거운 성벽과 집들이 들어서자...>
-<아! 하중을 못 견디고 무너졌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더구나 남바린 성은 소울리버 길드의 소유 때부터 대규모 증축이 있었고, 푸른새벽 길드는 점령 후 성벽을 더 두껍게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최강현이란 유저는 자료를 모아서 꽤 근거 있게 주장했다. 더구나 그는 이번 사고의 피해 집계까지 해서 인터뷰때 공개했다.
-<이번 사고로 무려 383명의 유저가 죽거나 다쳤고, 159명의 NPC들이 돌무더기에 깔려 희생당했습니다. 인명 피해도 적지 않았지만, 재산 피해도 막대합니다. 부서진 집과 상점, 성곽 등의 피해를 다 합치면 무려 700만 골드 이상의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머나, 꽤 자세히 조사를 하셨네요?>
-<훗. 저희 길드가 이번에 구조 봉사를 하는 김에 조사를 한 겁니다. 우리 '최가장'길드는 최 씨 성의 유저는 모두 환영합니다. 특히 경주 최씨 종진회에 속하신 분들저 지금까지 버추얼 에이지의 미루가 남바린 성 앞에서 전해 드렸습니다!>
유저가 길드 선전을 하려 하자 미루는 세련되고 재빠르게 인터뷰를 종료시켰다.
인터넷으로 버추얼 에이지를 시청했던 유한은 그저 멍하니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허허허!'
푸른새벽 길드에 한 방 먹일 셈으로 수행한 퀘스트였다.
하지만, 참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굉장한 피해가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수치화된 것로 다시 보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뭐, 한편으로 오해받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할까.
유저 최강현의 인터뷰 이후 공식 홈페이지는 영지 관리를 제대로 못한 푸른새벽 길드를 성토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유저의 퀘스트로 인한 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쩝 게임이나 해야지."
혹시 의심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싶었던 유한은 찝찝함을 덮어 버리고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푸른새벽 길드의 동태가 어떤가 싶어 잠시 남바린으로 (본문에서는 남바린로 라고 표기되었음.) 찾아가 봤더니, 피해 복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번 사태로 푸른새벽 길드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제법 짭짤한 수익을 올려 주던 영지 하나가 완전히 박살나 버린 탓이다.
하지만 그들은 남바린 영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영주성이 파괴되었지만, 사냥터와 던전은 무사했기 때문이다.
이에 푸른새벽 길드는 영주성을 새로 짓기로 결정하고, 무너진 자리 옆에 다시 성을 쌓아 올렸다.
그들은 유한의 대장간 일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실제 케이지를 비롯해 남바린 지부의 누구도 유한의 대장간에 시비를 걸지 않았다. 지금 그들에게 급박한 것은 영지를 복구하고 타 길드의 위협으로부터 지켜 내는 일일 테니까.
"훗, 한동안은 조용히 지낼 수 있겠군."
유한은 대장간으로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했다.
검 하나를 고치고 잠시 손을 쉬는 사이 유저 하나가 대장간 안으로 들어왔다.
"이거 수리되나요?"
그가 내민 것은 전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대검(大劍) 클레이모어였다.
"네, 됩니다. 그런데 주문이 많이 밀려 있어서 시간이..."
"언제 오면 됩니까?"
"일주일 후에 찾으러 오세요."
유한의 말에 유저는 클레이모어를 놓고 나갓다.
대검이 놓여 있던 자리 옆에는 어제와 오늘 유저들이 맡기고 간 장비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남바린 영지가 풍비박산 나면서 유한도 대장간에 손님이 적잖게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사냥터와 던전을 향한 유저들의 발걸음이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관리하던 푸른새벽 길드원들이 영주성 재건에 매달리면서, 이를 노리고 수많은 유저들이 들어와 사냥터와 던전에서 활개를 치고 다녔다.
그런데, 유저들은 그대로거나 숫자가 더 늘어났는데 이들이 무구를 수리하고 새로 장만할 가게가 없었다.
예전에는 남바린 영지에서 좀 비싸긴 하지만 구할 수 있었는데, 영지가 박살나면서 그곳의 가게들이 모두 사라졌다.
덕분에 유저들의 발걸음은 유한의 대장간으로 몰려들었다.
"지그야! 바스타드 소드하고 배틀 엑스, 그리고 브레스트 아머가 다 떨어졌는데 더 없어? 손님들이 달라고 줄섰단 말이야."
리지스가 안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늘어난 것은 수리 주문만이 아니었다. 생산 주문도 덩달아 늘어났다.
리지스가 브로인에서 무기점을 따로 연데다, 다크나이트 길드에 무기 공급을 계약하면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윽! 아침에 만든 게 벌써 다 팔렸단 말이야?"
"순식간에 팔리더라."
그렇다! 유한의 대장간은 좀 바쁜 정도가 아니었다. 그와 10명의 NPC 대장장이들이 물건을 만들어 내놓는 즉시 유저들이 다 사가 버리는 것이다.
거기다 유한의 무기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자, 투기 심리까지 생겨 필요하지도 않음에도 유저들은 물건들을 미리 사재기했다. 나중에 따로 비싸게 팔아먹으려는 속셈들이었다.
그래서 유한은 생산 무구의 값을 기존보다 2배로 올렸지만, 그래도 주문은 줄지 않았다.
"에휴, 일꾼들을 더 늘려야 하나?"
무구 주문이 폭주하니 정밀 조립 스킬의 개인 수련을 할 시간도 없었다. 망자의 부탁 퀘스트의 보상으로 얻은 스킬북은 아직 펼쳐 보지도 못했다.
"할 수 없군! 대장간을 증축한다!"
유한은 지금의 대장간을 2배 아니 3배로 증축하기로 했다.
이왕 증축하는 김에 좀 좋게 짓자 싶어서 송코에게 부탁해서 목수 NPC들도 고용했고, 리지스를 파부치 영감에게 보내 일꾼을 좀 더 꾸어 오도록 했다.
고로도 1개에서 3개로 늘렸고, 각 고로마다 믿을 수 있는 NPC 대장장이들을 배치했다.
그렇게 증축을 하는 와중에서도 유한과 NPC 대장장이들은 밀려드는 주문과 대혈투를 벌였다. 워낙 시간이 없어서 검정고시 학원을 빼먹고 근처의 캡슐방에 들어가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한 혈투는 리지스가 신입 대장장이 NPC들을 대거 끌고 오면서 막을 내렸다.
새로 온 대장장이 NPC들의 수는 무려 20명. 처음에 데리고 왔을 때보다 2배나 많았다. 한 5~7명 정도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야! 리지스! 너 진짜 최곤데?"
"훗. 내가 한 로비 하는 사람이잖아."
유한의 칭찬에 리지스는 으쓱해 했다.
유한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대혈투 끝에 온 천군만마였기 때문이다.
"뭐, 솔직히 말하면 이보다 더 데리고 올 수도 있었어."
"응? 어째서?"
유한이 궁금해 하자 리지스는 발덴에 가서 보았던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파부치라는 영감. 엄청나게 큰 대장간을 새로 지었더라. 아냐, 거긴 대장간이 아니라 철공소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어. 파부치 철공소."
"철공소?"
대장간의 상위 개념인 것인가.
확실히 느낌부터가 달라 보였다. 어딘가 대장간보다 더 크고 세련되게 느껴졌다.
"그래. 제련만 전문으로 하는 건물이 따로 있더라. 거기서 철이 엄청나게 많이 생산되는데, 철괴만 팔면서도 엄청난 이득을 취하고 있었어."
리지스의 말에 유한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애초에 파부치에게 초열탄 기술을 알려준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닐까? 하긴 선발 업체(?)에게 기술을 건네줬으니 그 발전이야 따로 말해 무엇 하겠는가.
"서, 설마 그렇게 만든 철 모두가 드워프의 철?"
"아니, 일반 철이던데."
리지스도 유한이 드워프에게 배운 비기로 우수한 철을 생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비밀을 알아내면 엄청난 액수에 기술을 팔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술이 유출되면 지그표 무구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 눈앞의 이득보다는 꾸준히 장기적인 이득을 이어 가는 게 중요하다.
거기다 동료로서 신의를 배반하고 싶지도 않았다. 예전 같으면 그런 신의를 지키지도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렇게 된 것은 유한이 자신의 돈줄 1호인 이유도 있지만...
"드워프의 철도 파부치 영감이 만들고 잇는 것 같았어. 그런데 그건 바르카스 왕국에서 전량 매입하더라."
"흠, 전략물자라서 그런가?"
"우수하고 질이 좋으니까. 그만큼 다른 나라나 일반에는 공개하고 싶지 않겠지. 그 때문인지 몰라도 들리는 이야기론 바르카스 국왕이 파부치 영감에게 작위도 줄 거래."
참 출세했다.
제자 하나 잘 키우더니 그야말로 인생 역전, 대장장이가 작위까지 받는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다.
'그럼 나도 가능하다는 거잖아!'
파부치 영감이 작위를 받는다면 유한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기술은 다름 아닌 유한이 갖고 온 것이니까.
아무튼 무력이 아닌 방법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들은 셈이다.
"지그 님이신가요? 파부치 사장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나이도 젏은 분이 큰일을 해내셨다지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장장이 NPC들이 앞을 다투어 유한에게 악수를 청했다. 파부치가 유한에 대한 이야기를 부하 대장장이들에게 했었던 모양이다.
그들의 공손한 모습에 유한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 대장장이들뿐이지만, 분명히 자신의 명성이 퍼지고 있었다.
바츠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대륙 전체에 지그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질지 모른다. 아니, 분명 없어지게 될 것이다.
"자! 빨리 일합시다.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까."
새로 온 대장장이들과 상견례를 마친 유한은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오늘따라 손에 쥔 망치가 더욱 가볍게 느껴졌다.
(2)
증설과 새로 온 대장장이 NPC들 덕분에 지그 대장간은 주문량을 문제없이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쉴 틈 없이 바빴던 유한도 다소 여유를 갖게 되었다. 넓은 개인 작업실도 갖게 되었는데 그 안에는 고로를 비롯해 모루와 망치 등 모든 도구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이곳은 유한만의 공간으로, 스킬의 수련과 획득, 그리고 초열탄의 제조를 위해 지은 것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유한은 새로운 스킬을 익히려 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 주물이라?"
유한은 지나번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스킬북의 페이지를 넘겼다. 책에는 주물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주물 제품을 만들 수 있으며, 어떤 시설과 도구가 사용되는지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주물에서 중요한 것은 거푸집이다. 거푸집을 얼마 만큼 잘 만드냐에 따라 복잡한 주물 제품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거기다 거푸집은 무엇을 만드냐에 따라 재료와 제작을 달리해야 하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주물은 실력 좋은 조각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거푸집을 찍을 모형이 좋을수록 주물 제품도 그만큼 우수해지기에...
유한이 책을 다 읽고 덮자, 곧바로 스킬 습득 퀘스트가 날아왔다.
(<주물 스킬 익히기>)
-아령 제작.부
아령 제작에는 아령의 모형과 모형을 뜬 거푸집, 긜고 재료인 철괴 2개가 필요하다.
거푸집을 만들고 거기다 철괴를 녹여 부은 다음, 제품을 꺼내 마지막 손질을 거치면 완성시킬 수 있다.
유한은 우선 아령의 모형부터 만들었다.
보통 나무로 만든다고 하기에 벌목 스킬로 잘라 온 통나무를 깎아서 아령처럼 모양을 다듬어 만들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나무 모형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모양이 나오자 안내창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조각 스킬-)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조각가를 찾아가 배우면 조각 스킬을 배울 수 있습니다.
'참 대장장이가 별걸 다 배워야 하네.'
그래서 조각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한 모양이다. 유한도 대장간을 찾고 증설하면서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조각은 나중에 한가하면 배워야지.'
유한은 제작한 아령 모형을 점토판에 눌러 한 쌍의 거푸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푸집을 합쳐서 그 틈에 철괴를 녹인 쇳물을 부었다.
쇠가 어느 정도 식자 거푸집을 갈라서 완성된 주물을 꺼냈다. 그리고 원형의 모양에 가깝게 다듬자 퀘스트 성공을 알리는 창이 떠올랐다.
-(-주물 스킬-)을 익히셨습니다. 랭크를 높이면 보다 다양한 주물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크크크! 이걸로 무구를 왕창 양산할 수 있겠군.'
지금까지는 철괴를 일일이 망치로 두들겨 제품을 만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참 많이 걸렸다.
그런데 이제 거푸집에서 찍어 낼 수 있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물론 강화 목적으로 단조나 열처리가 필요하겠지만, 모양을 만든다고 다듬고 자르는 시간은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유한에게는 드워프의 철이라는 보다 우수하고 단단한 철이 있었다.
물론 주물 생산에 필요한 재료나 도구가 필요하겠지만,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딜론이나 리지스에게 구해 달라 부탁하면 되니까.
"이제 주문이 더 들어와도 문제없겠군."
생산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높아지게 될 것은 뻔한 일. 큰 길드에서 운영하는 대장간이나 공방과도 겨룰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푸른새벽 길드처럼 시비를 걸어 오는 길드가 나올지 모른다.
이제는 그에 대비해서도 분명 준비를 해 놓아야 한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며 채린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지그야, 바쁘니?"
"응? 아니, 다 했어."
유한은 문을 열고 작업실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채린이 새로 얻은 경갑을 입고 활을 들고 서 있었다.
"바쁘지 않으면 사냥하러 가지 않을래?"
"사냥? 좋지."
그동안 대장간에 너무 매진했었고, 저번에 옌스가 말한 대로 광렙할 필요성도 있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레벨을 올리고 전투 감각을 생생하게 닦아 놓아야 했다.
"나도 안 그래도 레벨 좀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어."
"설마 의리 없이 둘만 가려는 건 아니겠지?"
불쑥 끼어든 것은 리지스였다.
"나도 같이 갈래. 요새 장사만 한다고 레벨을 못 올렸으니까."
"그럼 가게는 누가 보고?"
새로 번듯하게 증축한 대장간 앞에는 이전의 가판대와 달리 정식으로 가게가 만들어졌다. 거기엔 무기뿐만 아니라 사냥에 필요한 여러 아이템들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새로 점원을 고용했으니 괜찮아."
리지스의 말대로 가게에는 남녀 NPC가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채린에게 가판대를 부탁할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그동안 돈을 참 많이 벌어들인 모양이다.
"만약에 몬스터가 공격해 오면?"
"손님들이 알아서 잡아 주겠지."
정말 그 점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손님들 대부분이 사냥 온 유저들 아니면 무기 사러 온 전사들이니까.
"나도 같이 가 줄게. 성직자가 있어야 사냥이 수월하지."
이야기를 들은 송코가 가세했다. 뒤이어 옌스가 무섭게 달려와 말했다.
"후후, 바츠. 날 빼놓으면 섭하지!"
"넌 안 돼!"
"네가 끼면 손해란 말이야!"
유한뿐만 아니라 리지스도 반대했다.
옌스 같은 강자가 파티에 끼면 경험치는 몰라도 골드나 아이템 드랍에 손해가 있었다.
몬스터보다 레벨이 월등히 높은 유저가 학살전을 벌여 골드나 아이템을 싹쓸이하면 레벨이 낮은 유저들이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이에 게임사는 고렙 유저가 저렙 몬스터를 잡았을 때는 레벨 차이만큼 아이템 드랍율이 감소하도록 조정해 놓았다.
"아 광렙한다며? 득템은 신경 안 쓸 거 아니야? 그리고 난 이 근방에서 광렙할 장소를 잘 알고 있다고."
옌스는 바츠가 다시 강해지기를 기다리며 근방의 필드와 던전을 설렵했다. 어디에 뭐가 나오고, 뭘 잡아야 경험치와 아이템을 알차게 주는지 줄줄 외울 정도로.
그 말을 듣고 다들 생각을 바꾸었다.
"좋아. 정보를 제공하고 날뛰지 않기로 약속한 거다?"
"이 몸만 믿으라니깐!"
'못 믿겠다, 이놈아.'
정작 가서는 혼자 싹 쓸어버리는 건 아닌지.
아무튼 이렇게 동행이 늘자 이번에는 채린이 나서서 한마디 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로키 오빠나, 오펜, 에이린도 데려가면 안 될까? 사람이 많으면 더 재밌을 거 같아."
'윽, 그럼 아주 동네 야유회가 돼 버린다고!'
분위기뿐만 아니라 몬스터를 잡은 경험치도 그만큼 나눠 먹어야 한다.
5인 파티가 경험치 500짜리 몬스터를 잡으면 (본문에서는 받으면 이라고 표기되었음.) 실제로 받는 경험치는 100. 이렇게 파티원이 필요 이상으로 많으면 광렙에 지장이 생길 수 있었다.
유한은 반대하고 싶었지만, 초롱초롱한 채린의 두 눈을 보자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았어. 내가 연락을 해 볼게."
유한은 세 사람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시간 있으면 같이 사냥이나 하자고.
다행히 세 사람 모두 아르페디아 온라인에 접속 중이었고, 곧바로 응답해 왔다.
-예? 지금 시아 언니랑 같이 있어요? 난 지금 루벨에 있는데 금방 갈 테니 기다려요.
-지그 님? 안 그래도 노턴의 탑에서 마법을 배우느라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았는데 잘되었군요.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난 힘들 것 같다. 지금 관장님과 길드전에 참가했거든, 나중에 보자.
얼마 후 에이린은 큰 머리 독수리를 타고 날아왔고, 오펜은 남바린까지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이동한 뒤 부유 마법으로 날아왔다.
"언니!"
"오랜만이야, 에이린."
에이린은 반갑다며 채린에게 덥석 안겨 들었다. 채린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물었다.
"그런데 웬 독수리니?"
"호호. 걷는 게 싫어서 한 마리 구했어요."
아르페디아 온라인은 넓은 대륙이다. 그렇다 보니 여러가지 탈것들이 존재했다. 그중에 하늘을 나는 큰 머리 독수리도 있었다.
"재주도 좋네. 큰 머리 독수리는 테이밍하기 어려운데."
리지스는 신기하다는 듯 큰 머리 독수리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테이밍이 힘든 만큼 큰 머리 독수리의 가격은 굉장히 비쌌다.
"그래서 질렀어요."
"지르다니, 너 골드가 그렇게 많아?"
"헤헤헷. 현질했지요~!"
에이린은 모두를 향해 손가락 두 개를 펼쳐 V자를 만들어 보였다.
"캭! 이 부르주아 (본문에서는 부르조아 라고 표기되었음....영어긴한데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서 바꿨음) 같으니!"
"네네~ 에이린은 부잣집 딸네미에요."
누구는 게임상에서 뼈 빠지게 골드를 벌고 있건만, 누구는 현금으로 간단히 골드를 사다니. 세상은 참 불공평했다.
"독돌아, 이리 와! 여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아 언니야, 인사하렴."
에이린의 손짓에 타조만 한 독수리는 뒤뚱거리며 다가와 고개를 꾸벅했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채린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런데, 오펜. 너 마법 다 배운 거야?"
오펜이 이바니우스 3세에게 받은 퀘스트는 공중 요새 바닥에 부유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노턴 마탑에 가서 부유 마법을 배웠다.
그런데, 이렇게 날아왔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아니, 커다란 요새를 띄우려면 좀 더 배워야 해."
"그렇구나, 아참! 여기 사람들하고 인사해. 지그는 알지? 여기는 상인인 리지스와 성직자인 송코 오빠, 그리고 전사인 옌스야."
채린의 소개에 오펜과 에이린은 그들과 정식으로 통성명을 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공중 요새 발견했었지? TV에서 봤어."
사냥을 떠날 인원이 2명에서 7명으로 늘었다. 제법 수가 되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으니 좋은 점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파티가 시끌벅적하다는 것.
"아하하!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 그때는 정말 죽는구나 싶었어."
채린은 에이린과 오펜에게 푸른새벽 길드와의 분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폴크스 일당이 시비를 걸러 왔다 쫓겨났던 일, 그리고 남바린 영주란 자가 부하들을 끌고 왔다가 망신만 잔뜩 산 일 등등.
"옌스 오빠. 짱 쎈가 봐요."
붙임성이 좋은 에이린은 벌써부터 옌스를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후후. 이 몸은 지금까지 맞짱을 떠서 져 본 역사가 없지."
옌스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찢어졌다. 에이린은 채린이나 리지스보다 조금 못하지만 어딜 보나 꽤 명랑하고 귀여운 소녀였다.
"바츠한텐 쳐 맞고 뻗었다면서?"
"그, 그건 초보 시절의 일이잖아!"
유한의 비아냥에 옌스는 크게 당황했다. 다행히 그런 과거의 굴욕도 에이린에게는 대단한 것으로 비춰졌다.
"우와! 드래곤 슬레이어 바츠랑 만난 적도 있어요?"
"으응, 옛날에... 뭐 이젠 누구를 상대해도 절대 안 져. 저번에도 푸른새벽인지 붉은새벽인지 하는 녀석들이 쳐들어온 거 죄다 쓸어버렸으니까."
"와! 옌스 오빠 진짜 세구나!"
옌스의 자랑에 에이린은 감탄을 했다. 그러나 곧 푸른새벽 길드를 향해 분통을 터트렸다.
"정말 질이 안 좋은 길드라니까요. 지그 오빠, 만약 그런 일이 또 발생하면 연락하세요. 당장 날아와서 한 팔 거들 테니까."
"저도 돕겠습니다. 우리 반 애들 다 데려올게요."
두 사람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화를 내자 유한은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지금까지 자신의 일에 이렇게 열성적으로 나선 사람은 채린을 제외하고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친구들이 옛날에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학교를 그만두지도 않았을 텐데.
그러나 지나간 일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동네 야유회 분위기도 꽤나 괜찮은걸?'
채린의 말대로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어템을 얻었을 때보다 더 좋은 느낌이었다.
"자, 그럼 출발해 볼까?"
"네. 렛츠 고!"
이번 사냥의 목적은 광렙.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렇게 떠들썩하게 모여서 노는 것도 즐거우니까.
(3)
남바린 영지에는 광렙을 할 수 있는 사냥터가 2군데 존재했다. 그중 하나는 영지 남쪽에 있는 어둠의 늪지였고 또 하나는 북쪽에 있는 아홉 꼬리 여우 (본문에서는 아홉 여우 꼬리라고 되어 있지만 수정.) 계곡이었다.
어둠의 늪지는 사시사철 안개가 끼어 있어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곳은 네크로맨서나 흑마법사 계열의 다크메이지와 소서러(Sorcerer)에겐 보물 창고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아이템과 재료들이 잔뜩 널려 있기 때문이다.
아홈 꼬리 여우 계곡은 호리병처럼 생긴 계곡이 아홉 개나 이어져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서식하는데, 주로 중렙 이상의 유저들이 경험치를 많이 얻어 가곤 했다.
유한과 동료들이 가는 곳은 바로 아홈 꼬리 여우 계곡이었다.
"어이, 바츠! 생각 안 나?"
최근에 좀 조용하다 싶더니 옌스가 또 병이 도진 모양이다.
"뭐가?"
"이곳에서 네가 광렙을 했었다고 들었는데, 기억 안 나냐고?"
기억이 안 나긴 왜 안 나겠는가? 유한은 이곳의 몬스터를 하나하나까지 다 외울 정도로 죽치고 놀았었다.
하지만, 여기서 안다고 했다가는 상당히 귀찮아질 것이다. 안 그래도 에이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기억나긴 뭐가 기억나! 난 바츠가 아니라니까!"
"후후후. 언제까지 그렇게 시치미를 떼려는 건지. 좋아, 남의 이목 때문이라면 나도 네가 일단 바츠가 아니라고 해 두지."
'그런 식으로 다 떠벌리고 나서 아니라고 하면 무슨 소용이야!'
유한은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아 외면해 버렸다.
"언니, 무슨 소리에요?"
아니나 다를까 에이린이 채린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에 답한 것은 리지스였다.
"신경 꺼. 저 고릴라가 혼자 착각하고 있는 거니까."
"그래요?"
"그렇다니까."
에이린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유한을 바라봤지만, 채린마저 그렇다고 하자 곧 관심을 끊어 버렸다.
푸른새벽 길드가 영주성의 복구로 정신이 없는 사이 아홉 꼬리 여우 계곡은 유저들로 북적였다. 모두들 터줏대감이 없는 틈에 레벨을 올리고 레어템을 획득하기 위해 모여든 80에서 120 사이의 중렙들이었다.
"제가 정찰을 하고 오죠."
오펜이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계곡을 알아 왔다.
"일곱 번째 계곡이 비교적 한산합니다. 그곳으로 가죠."
유한은 오펜이 거기를 언급할 줄 알고 있었다. 일곱 번째 계곡에 있는 몬스터들이 가장 레벨이 높고 사나웠기 때문이다.
"후후후, 일곱 번째 좋지. 아주 끝내준다고. 몹들 레벨이 전부 백 이상이고 선공에 인식 범위도 넓어 떼거지로 달려드니까."
"우웅, 난 그런 곳 싫어요."
옌스의 설명에 다들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이 몸이 있는 한 죽을 염려는 없을 테니까."
"내가 듣기로 거기는 전술만 잘 짜면 큰 피해 없이 사냥을 할 수 있다고 했어. 어차피 유저들로 북적 대는 곳보다는 낫잖아?"
옌스의 큰소리는 못 미더웠지만, 유한의 말은 어쩐지 믿음직스러웠다.
파티 플레이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무력보다 공수를 연계하는 전술과 협력 플레이다. 특히 몬스터가 강하고 그 수가 많다면 더더욱 그 점을 중시해야 마땅했다.
"좋아. 일곱 번째 계곡으로 가자."
잠시 의논한 끝에 모두가 합의를 보앗다.
맨 앞에 가장 강한 옌스를 세우고 후방은 유한이, 좌우로는 채린과 오펜, 중앙에는 리지스와 송코, 에이린이 포진했다.
중간 중간에 나타나는 몹들로 몸을 풀다 보니, 어느덧 일곱 번째 계곡에 다다랐다. (본문에서는 다달았다 라고 표기되었음.)
주변의 바위산들 사이에 자리 잡은 일곱 번째 계곡은 입구부터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했다. 레벨 100의 악령의 나무와 103의 파이어 폭스, 그리고 107의 폭스 레인저가 유한의 파티를 보고 한꺼번에 몰려왔다.
"맡겨 둬! 이 몸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아직 진형이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옌스가 앞으로 뛰어나갔다.
"어이, 잠깐!"
유한이 말렸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옌스는 선두에 선 파이어 폭스의 머리를 헤비 소드로 내리쳤다. 타는 듯한 붉은 털을 가진 거대한 여우는 옌스의 일격에 피가 절반 아래로 뚝 떨어졌다.
"리볼빙 파이어!"
"캥!"
오펜이 뒤에서 날린 5발의 연발 마법을 맞은 파이어 폭스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운명을 달리했다.
-경험치 550을 얻었습니다.
-320골드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흐뭇하게 안내창을 바라볼 틈은 없었다.
놈의 뒤를 이어 폭스 레인저들이 들이닥쳤다. 여우 머리에 경무장을 한 이 녀석들은 옌스를 피해서 송코와 에이린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이놈들이?"
옌스는 당황했다. 전에 왔을 땐 폭스 레인저들이 자신을 피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바츠 시절 여기서 잘 놀았던 유한도 놈들의 저런 행동은 처음 보았다. 그러나 충분히 추정할 수 있었다.
'성직자들부터 해치우자 이건가?'
성직자들의 힐링이 전투원들의 피를 항상 든든히 채워 주니까, 상대하는 몬스터의 입장에선 앞을 막아서 전사나 기사보다도 힐을 쓰고 버프하는 성직자들이 더 성가실 것이다.
"물러서!"
송코는 에이린을 피신시키곤 폭스 레인저에게 배틀 해머를 휘둘렀다. 그러나 배틀 해머에 얻어맞은 폭스 레인저 뒤에는 또 다른 녀석이 있었다.
캥!
폭스 레인저의 손에 들려 있던 단검은 유한이 날린 와이어에 맞고 날아갔다.
주춤하는 폭스 레인저에게 채린이 날린 화살이 박혀 들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죽지 않자 채린은 재차 활을 쏘기 위해 화살통에 손을 가져갔다.
"언니, 위험해요!"
에이린의 외침은 다소 늦었다. 채린의 뒤로 돌아간 또다른 폭스 레인저가 단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삐잇!"
그때 리지스의 가방 속에서 튀어나온 포포가 폭스 레인저의 얼굴에 몸통 박치기를 했다. 주춤하는 폭스 레인저에게 제2타가 날아들었다.
"백 블로우!"
"캐캥!"
리지스의 가방이 채린을 공격하려던 폭스 레인저를 후려 갈겼다. 가방에 깔려 버둥거리는 녀석을 에이린이 달려와 손에 든 큼지막한 성전(聖典)으로 마구 내리쳤다.
"앗! 뒤에!"
에이린의 등 뒤로 파이어 폭스 한 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급한 상황에 리지스가 동전을 던지려는 찰나, 하늘에서 내려온 큰 머리 독수리가 파이어 폭스를 낚아채 바위에 집어던졌다.
"휴우, 고마워 독돌아!"
에이린은 자신을 구해 주고 하늘로 올라간 큰 머리 독수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영리한 녀석이네."
"리지스 언니도 꽤 영리한 펫을 데리고 있네요. 이름이 뭐에요?"
"아, 이 녀석은... 싸움이 끝나면 알려 줄게."
지금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또다시 일련의 몬스터들이 옌스를 피해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것들이 감히 이 몸을 무시해?"
재차 몬스터들이 자신을 피해 내려가자, 옌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맡겨 두라고 큰소리를 뻥뻥 쳤는데 상황이 이리되니 망신도 보통 망신이 아니었다.
이미 지나간 놈들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을 지나치도록 허락할 수 없었다.
눈을 번쩍 뜬 옌스는 필살 스킬을 전개했다.
"우오오! 대--쉬!"
옌스는 좌우로 오가며 대쉬를 남발하자 달려들던 몬스터들이 튕겨 나갔다. 엄청난 세기의, 그것도 연속으로 펼쳐지는 대쉬의 위력에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우와, 저거 완전 불도저잖아."
그러나 그 무적의 인간 불도저는 난데없이 날아온 마법에 맞아 땅바닥에 몸을 뒹굴었다.
"크윽! 뭐야?"
쓰러진 옌스의 눈앞으로 커다란 주먹들이 연달아 날아왔다. 느릿느릿하게 다가오던 악령의 나무들이 마법을 전개한 것이다. 나무에 깃든 악령들은 연달아 자이언트 너클을 날려 댔다.
"허억!"
하급 마법을 막을 수 있는 것이 봉인의 갑옷이지만, 악령의 나무가 날리는 자이언트 너클은 하급 마법이 아니었다. 물리적 충격력도 굉장해 두들겨 맞을 때마다 옌스의 몸이 휘청휘청했다.
"이놈의 나무 쪼가리들이!"
평소라면 당장 달려들이 해치웠을 것이다.
그러나 옌스는 지금 그럴 수 없었다.
전사 캐릭터는 혼자뿐.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다른 파티원들은 그 틈을 노리고 벌 떼같이 달려들 몬스터들을 쉽게 상대하지 못할 것이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했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마법 공격을 묵묵히 견뎠다.
'남을 지키는 싸움이 저렇게 힘든 건가?'
유한은 고전하는 옌스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바츠로 이 싸움에 임해도 옌스와 똑같은 꼴이 되었을 것 같았다.
바츠 때 스스로 무척 강하다고 자부했었는데, 실은 그게 강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강한 사람은 자신만이 아닌 타인도 얼마든지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지?
"암 브레이크!"
유한은 폭스 레인저가 휘두르는 단검을 박살 내곤 앞으로 달려 나갔다.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도끼로 바꿔 쥐고, 옌스를 공격하는 악령의 나무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벌목! 벌목! 벌목!"
연달아 세 개의 통나무가 떨어지며 악령의 나무가 쩍 갈라져 쓰러졌다. 마법도 사용하는 악령의 나무지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은 두 녀석은 동료가 어이없이 당하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녀석들에게는 더 어이없는 게 날아왔다.
"리지스 스페셜 화염병이닷!"
펑!
리지스는 악령의 나무에 화염병을 집어던졌다.
보드카에 설탕을 첨가한 화염병은 화끈한 화염을 끈적하게 발라 주었다. 악령의 나무는 잘 마른 장식처럼 순식간에 타들어 갔다.
남은 한 녀석은 주춤하며 물러서려 했지만, 오펜이 날린 파이어볼을 피하지 못했다.
"됐어! 남은 녀석들 다 쓸어버려!"
파티는 곧장 잔당 소탕에 들어갔다.
날뛰는 파이어 폭스와 폭스 레인저를 상대로 유한과 옌스, 송코가 근접전으로 막아 내고, 채린과 오펜, 리지스가 화살과 마법, 동전을 사정없이 뿌려 댔다. 에이린도 뒤에서 아낌없이 힐링과 버프를 퍼부어 파티원들을 지원했다.
-레벨 92가 되었습니다.
-민첩성이 2 올랐습니다.
"에고, 간신히 다 처리했네."
유한은 스테미나 포션을 꺼내 마셨다.
입구에 있는 놈들을 처리했을 뿐인데 등이 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이 계곡의 몬스터들이 만만치 않다는 소리였다.
닥치는 대로 잡고 또 잡다 보니 유한의 레벨이 어느덧 92. 싸우느라 바빠서 중간에 떠오르는 안내창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함부로 뛰어나가지 말라고요! 지원 범위 내에 있어야 힐링 쓰던 블레스(Bless)를 쓰던 할 거 아니에요! 잘못해서 나 죽으면 오빠가 경험치 떼서 줄 건가요?"
에이린이 옌스를 향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처음 그가 뛰쳐나가는 바람에 공격 진형을 형성하지 못해 파티가 위험에 처했었기 때문이다.
"미안, 이 몸이 방심했다."
"이 바보 고릴라! 그때는 잘못했다고 해야지!"
리지스는 커다란 가방으로 옌스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그렇게 에이린과 리지스에 호되게 혼이 난 옌스는 더이상 개인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4)
입구의 몬스터를 쓸어버린 파티는 일곱 번째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도 수많은 몬스터를 만났지만, 초반에 벌어졌던 난전은 재현되지 않았다. 옌스가 지원 범위 안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냥은 다소 수월해졌다.
에이린과 오펜은 공중 요새 때보다 높아진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고, 채린과 리지스는 유효적절하게 화살과 동전으로 지원 공격을 퍼부었다.
근접전은 옌스와 송코, 그리고 유한이 수행했다.
"암 브레이크!"
"캐캥!"
5랭크에 도달한 암 브레이크는 향상된 위력을 선보였다.
이전에는 무구만 부쉈는데 (본문에서는 부셨는데 라고 표기되었음.) 이번엔 무구를 부수면서 상대에게 피해를 입혔다. 부서진 칼날과 갑옷 조각이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치명적인 일격을 선사했다.
"지그 오빠! 아홉 시 방향에 악령의 나무!"
"오케이! 장작 패기!"
위력이 올라간 것은 암 브레이크 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엔 위력이 더 강할 것 같아서 벌목 스킬을 썼지만, 얼마 후 7랭크의 벌목 스킬보다 4랭크의 장작 패기가 더 위력이 뛰어다나는 것을 알았다.
"꾸에엑!"
유한의 장작 패기를 맞은 악령의 나무가 두 조각으로 쩍 쪼개진다 싶더지 이내 여러 조각의 장작을 남기며 뒹굴었다.
-경험치 530을 얻었습니다.
-장작 20개를 얻었습니다.
-스킬 경험치 80을 얻었습니다.
대장간 고로의 연료 확보를 위해 계속 사용했던 장작 패기가 정말 큰 몫을 하고 있었다.
"으음, 과연 바츠! 장작 패기 따위로 저런 무서운 위력을!"
이미 벌목 때도 놀랐지만, 옌스는 생산 스킬들의 위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 그에게 유한이 다가와 말했다.
"실은 전설의 금도끼 나무꾼 검법이라는 히든 스킬이다."
"헛, 과연 그랬나!"
'이 자식은 농담도 안 통하는 놈이군.'
전투를 거듭할수록 사냥은 쉬워졌다. 계곡 안에 있는 몬스터들의 공격 패턴에 익숙해졌고, 레벨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재미를 들였는지 일행은 계곡에 죽친 채 몬스터 사냥에 매진했다.
그러다가 사냥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번개같이 개나리 스텝을 밟아 오는 파이어 폭스의 미간에 포이즌 세이버를 찔러 넣는 순간, 유한의 몸이 번적 빛나며 평소와 다른 효과음이 울렸다.
-레벨 100이 되었습니다.
-힘이 1 올랐습니다.
-인내심이 2 올랐습니다.
-지식이 1 올랐습니다.
-축하합니다, 지그 님. 앞으로 아르페디아 대륙의 많은 유저들을 이끌어 주시고,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시길 바랍니다.
-추가로 모든 스텟을 1씩 올려 드립니다.
드디어 레벨 100의 고지에 올라섰다.
100레벨이 특별히 무슨 경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100레벨은 넘어야 어디 가도 서러움을 받지 않는다. 아르페디아 온라인은 100레벨이 되어야 진짜로 즐길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유한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해킹된 이후로 지그를 대장장이로 키우며 얼마나 숱한 눈물과 땀방울을 흘렸던가!
"앗싸! 대한민국 만세!"
"뭐야? 100레벨 친 거야?"
"와! 축하! 축하!"
다들 생산직이 레벨 100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한의 성과에 모두 아낌없는 축하와 박수를 보내 주었다.
유한은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 레벨 100의 자신을 확인해 보았다.
<상태창>
-이름: 지그
-칭호: 오우거 헌터, 드워프의 조수, 공중 요새의 발견자, 리저드의 친구, 고대 드워프 유적의 발견자
-직업: 대장장이
-레벨: 100
-체력(HP): 730/730
-스테미나: 500/500
-마나(MP): 49/49
-힘: 97
-민첩성: 77+10(바람의 부츠)
-인내심: 81
-지식: 50
-행운: 73
-솜씨: 136
-명성: 6900
-공격력: 121+102(포이즌 세이버+와이어 건틀렛)
-방어력: 83+95(바람의 부츠+장인의 코느+와이어 건틀렛+동지의 목걸이)
-경험치: 300/11200
-돈: 207,100골드
<습득 스킬>
-장작 패기 스킬 4랭크
-벌목 스킬 7랭크
-채굴 스킬 4랭크
-채석 스킬 6랭크
-제련 스킬 4랭크
-생산 스킬 4랭크
-합금 스킬 7랭크
-정밀 조립 스킬 8랭크
-수리 스킬 4랭크
-주물 스킬 9랭크
-도발 스킬 9랭크
-수리 성공률 65%
<히든 스킬>
-그레인 스킬 4랭크
-암 브레이크 스킬 5랭크
광렙한 보람이 있었는지 레벨뿐 아니라 스텟들도 꽤 올라갔다.
'후후, 스크린샷 찍어야지. 모험 일지에 기록도 해 놓고.'
그렇게 유한이 기쁨의 기록을 작성했을 때였다.
갑자기 유한이 기쁨의 기록을 작성했을 때였다.
갑자기 일곱 번째 계곡 전체가 어두워지더니 안개가 짙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길고 날카롭게 울리는 울음소리.
캬아아아아앙!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했던 유한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이, 이건 나인 테일(Nine Tail)!"
"나인 테일! 그게 뭔데?"
나인 테일.
불규칙적으로 계곡 여기저기에 출현해 유저를 습격하는 녀석인데, 곰보다 더 큰 덩치를 가진 여우였다. 레벨은 120 정도였는데, 교활한데다 마법을 쓸 수 있고 수십마리의 부하 여우들까지 거느리고 다니기에 상대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웠다.
"후후, 드디어 계곡의 주인이 납시는군."
파티원들 중에 긴장하지 않는 것은 옌스뿐.
다들 앞쪽에 번득이는 수십 개의 안광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웬만한 고수들로 이뤄진 파티가 아니면 상대하기 힘들다는 것 같았다.
특히 유달리 크게 번득이는 한 쌍의 눈동자는 은근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다들 도망가. 저놈들을 물리치는 건 몰라도, 모두를 지켜 주는 건 자신 없으니까."
"하지만 옌스 너 혼자 싸우기엔..."
"얼른 가! 죽어서 경험치랑 아이템 떨어트리고 싶어?"
옌스는 헤비 소드를 치켜들고 안개 속으로 달려갔다.
곧 치열한 일전이 벌어졌는지 안개 속에서 짐승의 비명소리와 옌스의 고함 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과연 저대로 두어도 될까? 옌스는 물리칠 수 있다고 장담을 했지만 정말 그게 가능할는지.
"일단 우리는 피하자."
"하지만, 지그야. 우리만 이렇게 도망가는 건 옳지 못해!"
채린이 반대했지만, 유한은 고개를 저었다.
"어설프게 도와준답시고 나서는 게 저 녀석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될 거야."
옌스는 바츠를 이기기 위해 홀로 숱하게 전투를 치렀던 녀석이다. 제 몸 하나 간수하면서 싸울 만한 능력은 충분히 있다. 진짜 나인 테일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녀석을 도와줄 방법은 없을까?'
섣불리 나인 테일의 인식 범위 안으로 들어가서는 곤란했다. 안 그래도 옌스가 파티를 인식 못할 거리에서 녀석들을 저지하고 있지 않은가?
"삐이! 삐이!"
"앗, 포포야. 왜 그래?"
포포가 갑자기 종종 걸음으로 계곡 위로 올라갔다. 포포는 마치 따라오라는 듯,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녀석을 쫓아가던 유한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포포가 어디를 가려는지, 뭘 의도하려는 것인지.
'저 녀석 진짜 위대한 존재인가?'
바람의 무녀를 만났을 때도 포포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궁금해졌다.
한번은 놈의 정체를 캐기 위해 아르페디아 온라인과 관련된 게시판을 모조리 뒤진 적이 있었는데, 저런 괴생물체를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튼 지금은 그런 걸 궁금해 할 때가 아니었다. 유한은 포포를 따라 올라가면서 의아해 하는 파티원들도 함게 불렀다.
"다들 따라와. 옌스를 도와줄 방법이 생각났으니까."
유한의 말에 모두들 유한을, 그리고 포포를 따라갔다.
포포가 멈춰 선 곳은 계곡 위쪽에 툭 튀어나온 커다란 바위였다. 유한의 대장간만큼이나 커다란 바위를 포포는 조그만 몸으로 밀거나 앙증맞은 머리로 콩콩 들어받았다.
"이 아래에서 옌스가 나인 테일 무리와 싸우고 있어."
비스듬히 올라온 계곡의 아래쪽이 바로 옌스가 나인 테일과 싸우고 있는 격전의 현장이었다.
안개가 자욱해서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 볼 수 없었지만, 연방 대쉬를 외치는 옌스의 함성이 우렁찬 것을 봐서는 아직 잘 싸우고 있는 듯했다.
"이 바위를 캐서 나인 테일에게 떨어트리는 거야."
"오호!"
유한의 말에 모두들 감탄사를 터트렸다.
보통의 파티라면 불가능한 작전이다. 이 커다란 바위를 깰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파티에는 채석을 익힌 대장장이가 있었다. 거기에 필요한 도구들도 모두 갖추고 있고.
"바위를 떨어트린 다음 모두 일제히 돌격하는 거야."
"근데 떨어트린 바위가 나인 테일 대신 옌스를 덮치면?"
"다 방법이 있으니 걱정 마."
아무튼 일단 바위부터 깨야 한다. 유한은 정과 망치, 곡괭이를 번갈아 사용하며 바위 아래쪽을 깎아 냈다.
"채석! 채석! 채석!"
"힘내요. 지그 오빠! 스트랭스(Strength)!"
"퀴클리(Quickly)!"
에이린과 송코의 지원을 받자 유한의 채석 작업은 더 빨라졌다. 채린과 오펜, 리지스는 유한이 떼낸 석재를 부지런히 뒤로 옮겼다.
쿠쿠쿵!
밑이 허전해지자 바위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유한이 그 금에 힘차게 곡괭이를 찍자 바위는 무서운 소리와 함께 깨져서 계곡 아래로 떨어졌다.
"성공이다!"
커다란 바위는 굴러가면서 군데군데 박혀 있던 다른 바위들과 나무까지 부서트렸다. 그렇게 부서지고 부러진 바위와 나무들도 계곡 아래로 함께 떨어져 내렸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나인 테일과 혈전을 벌이고 있던 옌스는 커다란 굉음을 들었다. 나인 테일과 놈의 부하들도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던지, 모두 계곡 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 유한에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야, 옌스. 돌 굴러간다. 얼른 피해.
"뭐라고?"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몰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옌스는 깜짝 놀랐다. 계곡 위에서 바위와 부러진 통나무들이 우르르 떨어지더니 여우 무리들을 덮친 것이다.
"캐앵!"
"캬아앙!"
그러나 그것은 재앙의 전조에 불과했다. 뒤이어 떨어진 집채만 한 바위는 계곡 아래 있던 나인 테일 무리들을 아주 알뜰하게 짓이기기 시작했다.
"캬아악!"
곰같이 큰 덩치를 가진 나인 테일도 이 커다란 바위를 이길 수 없었다. 녀석은 자신에게 굴러오는 바위를 피하려 했지만, 좁은 계곡에서 움직일 곳은 많지 않았다.
커다란 바위는 나인 테일을 깔아뭉개고 옌스에게로 굴러갔다.
"으아악! 바츠 이 미친 자식!"
옌스는 유한을 저주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그를 쫓는 바위는 멈춤 없이 굴러갔다. 그렇게 그들(?)은 한동안 질주를 계속했다.
"우와..."
"이건 뭐 나설 껀덕지도 없네."
바위를 따라 돌격했던 유한들은 계곡 아래의 참상을 보고 멈칫했다.
나인 테일의 부하들은 태반이 죽어 버렸고, 그나마 살아 있는 녀석들 중에 멀쩡한 놈들은 없었다. 큰 타격을 입어 HP가 바닥에 다다랐거나 아님 혼란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필드 보스인 나인 테일조차도 빈사 상태에 빠져 저승길을 오락가락하고 있을 정도였다.
큰 타격을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예상보다 훨씬 더했다.
-바츠 이 ㅅㅂㄹㅁ!
어떤 상황인지 몰라도 옌스에게서 이런 귓속말까지 날아왔다.
유한은 애써 무시했다
"자, 일단 뒷정리를 하자고."
"그래, 흘린(?) 건 주워 먹어야겠지?"
그들은 광렙하러 온 자들답게 착실하게 몬스터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리고 유한은 또 레벨 업을 했다.
< 8. 광렙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