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고대 드워프의 유적 (39/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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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칙, 화아악!

 옌스가 갖고 있던 랜턴에 불을 붙이자 주위가 환해졌다.

 유한들은 이곳이 어디인가 살폈다.

 함정이라더니 정말 가로세로 정방형의 밀폐된 공간이었다. 천장을 제외하고 어디에도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없었다.

 "나한테 맡겨."

 유한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과거 리저드맨에게 잡혔을 때도 와이어를 이용해 가볍게 탈출할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유한은 어두운 천정을 향해 건틀렛의 와이어를 발사했다. 그러나 와이어는 잘 날아가다가 무언가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한번 올라가 볼게."

 "시아야. 잡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올라가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린은 몸을 날려 벽을 박차고, 그 반동으로 반대편 벽을 박차고, 또다시 벽을 박차는 식으로 올라갔다.

 "우와!"

 유한은 물론이고 옌스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궁수로서 착실히 쌓아 놓은 민첩성 덕분이겠지만, 웬만한 감각과 집중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재주였다.

 그렇게 채린은 한 마리 가벼운 새처럼 어두운 천장으로 날아올라 갔다.

 '이대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유한이 희망을 품었을 때였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채린이 아래로 추락했다.

 "아야야. 위에 무거운 덮개가 있어서 나갈 수 없어."

 따로 붙잡을 만한 것도 없어서 덮개를 여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보물 창고에 들어온 도둑을 가두는 곳이라더니 정말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곳인 모양이다.

 "그럼 그놈 말대로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거야?"

 "큭. 괜한 협박일걸. 내가 부활을 시도해 보지."

 자살을 하면 가까운 마을이나 부활을 지정한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마침 옌스는 유한의 대장간을 부활점으로 지정해 놓았기에 그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주저 없이 헤비 소드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HP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옌스의 몸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 이내 그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독한 놈. 주저 없이 제 목을 찌르다니."

 "난 아무리 그래도 저런 짓은 못할 거야."

 그러나 유한과 채린은 옌스가 무사히 대장간에서 부활하기를 빌었다.

 하지만 얼마 뒤 옌스는 그들의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거점 부활이 안 된다는 케이지의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크아! 이런 제기랄! 경험치만 날렸잖아!"

 열 받은 옌스는 검을 들고 벽면을 마구 찍었다. 그러나 돌 부스러기가 좀 떨어졌을 뿐 벽면은 멀쩡했다. 고대인들이 만들었다더니 정말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흥분하지 마!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런 것도 없이 이런 걸 만들어 둘 드림맥스가 아니니까."

 바츠 때 숱한 퀘스트를 하면서 그런 일을 경험했다.

 막힌 길이라고 하더니 실은 비밀 통로가 있다거나, 바닥에 쌓인 먼지를 털어 냈더니 순간 이동 마법진이 있었다거나 등등.

 얼음 궁전의 보상방에서도 그랬지 않았나. 잘 뒤져 보니 공중 요새로 가는 이동 마법진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 틀림없다.

 유한들은 희망을 가지고 주변의 벽과 바닥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살펴보자 벽과 바닥에서 예전에 이 함정에 빠졌던 이들이 남긴 듯한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분신 쾌도 크로우를 이곳에 봉하노라. ㅠ.ㅜ>

 <영자야, 이건 너무 했다.>

 <크크크, 멍청한 소울리버 놈들. 가둬 놓기만 하면 단가? 난 이카루스 윙(Icarus Wing) 있지롱.>

 이카루스 윙.

 그것은 단거리 순간 이동 아이템이다.

 소울리버 길드가 남바린 영지를 차지하고 있을 적에 여기 빠진 도적 유저가 그것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개당 1만 골드나 하는 굉장히 비싼 아이템이지만 이 상황에선 전혀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아놔, 이것도 안 돼... OTL.>

 하지만 이카루스 윙이 실패했는지, 바로 아래에 좌절하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제기랄!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물리적인 방법도 안 되고, 부활도 할 수 없고, 게다가 마법도 안 통한다니!

 유한이 절망할 때 채린이 옆에서 이야기했다.

 "괜찮아. 마지막 카드가 있잖아. 아빠에게 부탁해서 구해 달라고 하면 돼."

 '안 돼! 그렇게 하면 난 사망이야.'

 딸 사랑이 남다른 송태수 성격이라면 유한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샌드백으로 삼을 것이다.

 절대 그 꼴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자력으로 탈출해야 한다. 분명 무엇인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없다면 운영자 멱살을 잡고서라도 만들어야 한다.

 '응? 이건 뭐지?'

 망치로 벽과 바닥을 때려 보던 유한은 바닥에 붙어 있는 큰 돌을 보았다.

 그 돌은 주변의 돌들과 크기와 색깔이 달랐고 (본문에서는 틀렸고 라고 표시되었음.), 돌을 두드렸을 때 나는 주변의 다른 돌들과 사뭇 달랐다.

 '오오! 이게 설마 탈출의 실마리?'

 돌에는 단검이나 검, 둔기 등으로 긁어내고 내리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예전에 여기 갇혔던 유저들도 이 돌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도구와 스킬이 없던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한 듯했다. 노력은 했지만, 그들의 능력으론 이 큰 돌을 빼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하하핫! 하지만 난 다르다 이거지!"

 지그가 어떤 캐릭터인가. 대장장이에다가 채굴과 채석 스킬을 익혔고, 관련 도구들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지그야. 뭔가 발견했어?"

 "후후. 마지막 카드는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유한은 정과 망치를 꺼내서 바닥의 돌을 내리쳤다. 그레인 스킬을 발동해서 암석의 경계와 균열이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노려 채석 스킬을 연달아 퍼부었다.

 그렇게 몇 차례 돌에 충격을 가했을까.

 돌이 큰 소리를 내며 깨지더니 아래에 좁고 어두운 통로가 드러났다. 누군가 사용할 듯한 비밀 탈출구였다.

 "옌스, 그 랜턴 좀 줘봐."

 유한은 랜턴을 들고 앞장섰고, 채린과 옌스가 그 뒤를 따랐다. 통로는 비좁았지만, 못 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유한과 나란히 가던 채린은 앞에 비치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2)

 "꺄아악!"

 정면에 있는 것은 뼈 무더기였다. 사람의 인골로 추정되는 두개골과 복사뼈 등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나참, 뭐 저런 걸 보고 놀라? 가상현실에 만들어 놓은 설정일 뿐인데, 바츠의 동료라면 대범함을 갖춰야지."

 "그래도 소름이 끼치잖아."

 옌스와 채린이 말다툼을 하는 사이, 유한은 뼈 무더기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뼈 무더기 사이에서 녹슨 곡괭이와 망치, 정이 발견되었다.

 '이들이 비밀 탈출구를 만든 자들인가?'

 왜 빠져나가지 않고 여기서 죽은 것일까.

 유한은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뼈 무더기 옆의 벽면에 뭔가 긁어 놓은 흔적 같은 게 있었다. 먼지와 거미줄을 걷어 내자 효과음과 함께 안내창이 떠올랐다.

 -지하의 기록을 발견하셨습니다. 읽어 보시겠습니까?

 아마 비밀 통로를 판 뼈의 주인들이 남긴 기록인 모양이다. 유한이 승낙하자 벽에 새겨진 글씨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나는 검은 수염 드워프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 리카로스라고 한다.

 아마 저 기록을 남긴 자는 드워프인 듯했다.

 유한은 벽면의 기록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말다툼을 하던 옌스와 채린도 다가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록을 읽어 나갔다.

 -우리 검은 수염 일족은 이곳 아바란 평원과 케이트 산맥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우리는 풍요롭지는 않아도 케이트 산맥에서 출토되는 광물들을 이용해 이곳의 인간들과 교류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십 년 전 탐욕스런 마도사들이 이곳에 쳐들어 왔다. 키메라를 부리는 무시무시한 마도사들은 학살을 일삼으며 마을들을 파괴했다. 우리들은 인간들과 힘을 합쳐 마도사들에 대항했지만...

 "결국 패배해서 아바란 평원의 드워프들과 인간들은 마도사들의 노예가 되어 버렸군."

 드워프들의 마을을 파괴한 마도사들은 폐허가 된 땅 위에 새로운 성과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완성된 성과 도시는 이곳을 점령한 우두머리 마도사의 이름을 따 남바린이라고 불렀단다.

 "그럼 이 함정을 만든 고대인이란 게 바로 그 마도사들?"

 "던전에 드워프들의 흔적이 많은 이유가 있었구먼."

 옌스는 자신이 입고 있는 봉인의 갑옷을 매만졌다. 갑옷에 대한 설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다 뒷사정이 있었다.

 기록은 계속 아래로 이어졌다.

 -우리들은 마도사들의 노예가 되어 폐허 위에 그들의 도시를 건설했지만, 저항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두운 지하에서 그들을 향한 복수의 칼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의 계획을 마도사들이 눈치 채고 말았다.

 '도대체 드워프들이 뭘 준비했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마도사들은 지하에 내려와 드워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간신히 도망친 몇몇 드워프들은 힘을 모아 땅굴을 팠으나, 실수로 방향을 잘못 잡는 바람에 애써 판 땅굴이 엉뚱한 곳에 다다르고 말았다고.

 "바깥으로 통해야 할 땅굴이 남바린 성의 보물 창고 함정과 연결되어 버린 거로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더니..."

 땅굴을 파느라 남은 힘을 다 쓴 그들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리카로스는 땅굴의 입구를 막은 뒤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허허..."

 드워프들의 사연을 읽은 유한과 동료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남바린 영지에 이런 비사(秘史)가 있을 줄이야.

 '그런데, 고대의 키메라를 부리는 마도사들이라?'

 딱 생각나는 녀석들이 있었다.

 바로 공중 요새를 띄운 미케니아인들. 그리고 미케니아를 다스리는 이바니우스 3세.

 '역시 나쁜 놈들이었어.'

 하지만, 게임은 게임일 뿐.

 고대의 마도사들이 저지른 것도, 그리고 드워프들이 희생당한 것도 게임사에서 세워 놓은 설정일 뿐이다.

 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였고, 드워프들의 비참한 최후에 채린은 눈물을 왈칵 쏟았다.

 "흐윽! 드워프들이 불쌍해."

 "그냥 게임 안의 스토리일 뿐이야. 울지 마, 시아야."

 유한이 토닥였지만 눈물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이제 어엿한 소녀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마음도 여느 여자애들만큼이나 어려진 모양이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지금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문제는 이곳을 통해 밖으로 나가도 출구가 없을지 모른다는 거야."

 "훗. 거점 부활을 못하는 곳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 다행이잖아. 다시 자살 신공을 발휘하면..."

 "하지 마! 아직 밖을 뒤져 보지도 않았는데 출구가 있을지 없을지 누가 알아?"

 옌스가 또다시 자살 포즈를 잡자 채린이 반대하고 나섰다. 자살할 생각도 없고, 또 남이 자살하는 것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게임이지만 자살이란 단어는 듣기조차 꺼림칙했다.

 "시아 말대로야. 기왕에 여기까지 온 거 좀 더 둘러보자."

 드워프들이 지하에 생매장된 것은 아주 옛날의 일이다. 

 그사이에 또 어떻게 변했을지 모른다. 흙이 무너져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생겼다는 식의 설정을 드림맥스가 만들어 두었을지 모르고.

 냉정을 되찾은 일행은 드워프들이 판 땅굴을 따라 계속 나갔다. 얼마쯤 내려가자 땅굴이 끝나는 곳을 바위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 바위를 밀고 나가자 커다란 동공이 나왔다.

 "우와! 엄청 크잖아?"

 "자연적인 동공은 아닌 것 같은데?"

 사방에 뻗어 오른 굵은 돌기둥들이 천장의 석재들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런 돌기둥들이 족히 수백 개는 되어 보였다.

 "아마 이 위에 남바린 성이 있을 거야. 폐허 위에 도시를 세웠다니까."

 이곳은 드워프들의 도시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면서 형성된 지하 공간이었다. 동공에는 과거 드워프들이 지었던 건물들의 잔해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무너진 드워프 신전과 밑동만 남은 첨탑, 그리고 철저히 부서진 집들.

 검은 수염 일족의 도시로 보이는 이곳은 마도사들과 그들이 부르던 키메라들에게 철저히 파괴되었던 모양이다.

 일행은 폐허를 둘러보며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때 효과음이 울리며 안내창들이 떠올랐다.

 -(지그의 파티)가 고대 드워프의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지그의 파티) 전원에게 명성치 2,500과 '고대 드워프 유적의 발견자'란 칭호가 주어집니다.

 "에에?"

 기쁨과 동시에 암울한 느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 고대 유적의 최초 발견자라는 사실은 기쁘지만, 역으로 말하면 이전에 이곳을 찾은 유저들이 한 명도 없었다는 소리다.

 그 말은 유한 일행이 들어온 통로 외엔 외부에서 이 유적으로 들어오는 길이 없음을 뜻했다. 다시 말해 밖으로 나갈 통로가 없는 것이다.

 "참나, 여기 유저들은 그동안 뭐 한 거야? 이런 유적도 발견하지 못하고."

 "등잔 밑에 어둡다고 하잖아."

 유일한 통로가 거점 부활이 안 되는 함정과 연결되어 있으니 더더욱 찾기 어려웠던지도 모른다.

 아무튼 유적 발견은 유저의 공로.

 일행의 앞에 있는 바위에 금박으로 멋들어진 글자가 새겨졌다.

 -남바린 영지 지하에 있는 고대의 드워프 유적은 지그의 파티가 최초로 발견하였습니다. (아바란 왕립 학술원) 

 *지그의 파티: 대장장이 지그, 궁수 시아, 전사 옌스.

 그들은 바위에 황금빛 글씨로 자신들의 이름이 새겨지는 걸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자살할 방법 외에 나가는 방법은 없을까?"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공중 요새에서도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있었잖아."

 마지막이 바위로 막혀 있긴 했어도 말이다.

 이곳에도 비슷한 길이 있을지 모른다. 마도사들이 드워프들을 지하에 몰아넣고 생매장했다고 하지 않은가. 몰아넣은 입구가 있었다면 그곳이 출구가 될 것이다.

 "막혀 있으면 이 대장장이께서 뚫어 버리면 그만이지."

 "후후. 과연 바츠로군. 여느 대장장이랑 확실히 달라."

 일단 일행은 탈출로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이 유적에 있을지 모를 던전이나 보물의 수색은 살길을 발견한 다음이었다.

 (3)

 유한 일행은 수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엄청난 것을 발견했다.

 오래 전에 죽었을 고대 드워프들. 그들의 유골이 지하 광장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학살의 현장이군."

 분명 꾸며진 이야기에 가상현실 게임 속의 그래픽일 뿐인데, 이상할 정도로 고대 마도사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저 '게임일 뿐'이라고 말하던 옌스조차도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앞에 뭔가 있어!"

 채린의 외침에 일행은 무기를 뽑아 들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앞쪽에 희뿌연 뭔가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살펴 보니 그것은 드워프의 영체였다.

 여기서 죽은 드워프의 원령으로 보였다. 그는 일행이 다가오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뻥 뚫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산 사람인가? 너희들은 누구지?"

 "우리는 이 유적의 발견자들입니다."

 "유적의 발견자? 여기가 유적이라 불릴 만큼 세월이 흘렀단 말인가. 크흐흐..."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신음을 흘리던 드워프는 혼잣말을 하듯이 고대에 있었던 일을 일행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크크크. 마도사 놈들은 우리의 뛰어난 기술을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를 정복하고 노예로 삼아 도시를 만들게 했지."

 그것은 땅굴을 팠던 리카로스가 남긴 기록에서도 보았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드워프는 리카로스가 말했던 '복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우리 검은 수염 일족은 절대 자긍심을 버리지 않았어. 우리는 겉으로는 놈들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면서 도시의 기단에 몰래 기관 장치를 설치했다."

 "기관 장치?"

 "크크크. 살짝만 건드려도 한 번에 도시를 폭삭 내려앉게 만들 수 있는 장치지. 그 잔인한 악마놈들을 한 번에 폭삭 내려앉히기 위해서 말이야."

 그게 바로 리카로스의 기록에 있던 '복수의 칼'이었던 모양이다. 드워프답고, 드워프기에 가능했을 일.

 그 일이 통쾌했던지 드워프는 연방 웃었지만, 이내 표정이 침울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마도사 놈들이 눈치를 채고 말았어. 우리가 도시 기단에 손을 써 두고 있었다는 것을..."

 리카로스의 기록에서 보았던 내용이 다시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놈들은 지하로 키메라를 몰고 와서 우리들을 무차별로 학살했다. 이래저래 죽는 건 마찬가지라 우리는 기관 장치를 가동시키려 했지만, 이미 작동 부위가 놈들에게 점거되어 있었지."

 그는 몇몇 드워프들과 함께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마도사들이 그들을 살려 둔 것은 도시 기단부에 설치된 기관 장치를 해체하기 위함이었다.

 "놈들은 그것을 해체할 기술이 없었어. 그래서 포로로 잡은 우리를 고문하고 협박했지만, 우리는 단 한 명도 굴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차례차례 죽음을 맞았지."

 "정말 악독한 자들이군요."

 "그렇지? 그래서 나는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놈들에 대한 원한 때문에 말이지."

 채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드워프는 일행을 찬찬히 둘러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라. 우리의 한을 풀어 줄 자들을 말이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유한들의 앞으로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망자의 부탁>)

 -마도사들에게 박해받은 드워프들이 복수를 위해 힘을 모았다. 하지만, 그들이 막 복수의 칼날을 뽑아 들기도 전에 마도사들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 

 정의에 불타는 자여. 남바린 성을 무너뜨려 드워프의 원혼들을 달래 주지 않겠는가?

 "남바린 성을 무너뜨려 달라고?"

 지금의 남바린 성에는 드워프들을 박해했던 마도사들이 없다. 그것은 게임 설정 상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유한이나 채린만 해도 이미 몰락한 미케니아의 유적을 보았지 않는가?

 하지만.

 "그 한을 풀어 드리죠."

 유한은 물론이고, 채린과 옌스도 승낙을 했다.

 과거와 상관없이 그들은 남바린의 푸른새벽 길드에 대한 원한이 있었다. 성을 무너트리면 드워프들의 한도 풀고, 자신들의 복수도 하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크크크. 잘못하면 너희들이 죽을 수도 있다."

 "흥. 죽음 따위 겁나지 않아!"

 옌스가 외치자 드워프는 대견하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저편에 있는 반쯤 무너진 신전을 가리켰다.

 "그럼 저기로 가라. 저 안에 기관의 작동 부위가 있다. 작동시키는 것은 매우 간단하지. 제단 위에 있는 둥근 돌을 밀어서 떨어트리면 된다."

 "알겠어요. 염려 말고 승천할 준비나 하세요."

 "크크크. 그럼 부탁하겠다."

 드워프의 영체는 투명하게 변하더니 이내 일행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유한들은 드워프가 일러 준 신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신전에 가까이 다가가자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물러가라. 이곳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어눌하게 말하며 등장하는 놈들이 있었다.

 미노타우르스와 켄타우로스를 섞어 놓은 듯한 거대한 괴물과 반인반조의 괴수, 그리고 몸에 철판으로 뒤덮고 기계 팔을 달고 있는 거인 전사.

 키메라였다.

 마도사들은 드워프들을 학살하고도 안심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딘가 생존한 드워프들이 기관을 작동시킬까봐 이곳에 키메라를 남겨 둔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기관을 작동시키지 않으면 도시는 무너지지 않으니까.

 "이것들이 퀘스트의 보스다 이거군."

 "다들 하나씩 맡아서 해치우자."

 "그럼 저 소 대가리는 내 몫이다, 바츠."

 커다란 창을 든 괴물은 옌스가 맡았고, 하늘을 날며 활을 쏘는 반인반도의 괴수는 채린이 맡았다.

 유한의 몫은 쿵쿵 발소리를 울리며 다가오는 기계 거인이었다. 크기나 덩치의 위압감은 대단했고, 얼굴도 무섭게 생겼다. 물론 레벨도 꽤 높아 보였다.

 평소라면 주춤하고 물러섰을 텐데, 유한은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두려움은 한 오라기도 없었다. 박해받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드워프들의 모습을 봐서 그런지 분노와 투지가 솟구쳐 올랐다.

 '참 대단한 게임이란 말씀이야.'

 단지 게임일 뿐인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다니.

 "침입자. 물러가라. 아니면 죽는다."

 "너나 비켜라, 이 잡탕아!"

 키메라의 기계 주먹이 날아오자, 유한은 곧장 암 브레이크로 대응했다.

 불꽃이 튀며 고요했던 지하가 함성과 굉음으로 들썩였다. 

 고대 드워프들의 오랜 한이 지금 막 풀리려 하고 있었다.

 (4)

 -경험치 2,000을 얻었습니다.

 -1,000골드를 얻었습니다.

 -키메라의 성체 합금을 얻었습니다.

 -암 브레이크 스킬이 5랭크로 올랐습니다.

 -힘이 2 올랐습니다.

 -민첩성이 1 올랐습니다.

 "휴우!"

 격전 끝에 거인 키메라를 쓰러트린 유한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분기탱천하여 달려들긴 했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나마 대장장이와 상성이 잘 맞는 상대였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아직도 고전하고 있었을 것이다.

 "케엑!"

 마침 반인반조 괴수도 비명과 함께 바닥에 툭 떨어졌다. 채린이 확인 사살을 끝내자 경험치창이 떠올랐다.

 "여, 이제들 해치웠나? 기다리느라 지루했다고."

 이미 소 괴물을 해치운 옌스는 느긋하게 한쪽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 괴물을 쓰러트리고 획득한 키메라의 창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아무래도 바츠 너, 레벨 좀 올려야겠다. 그래서 어느 세월에 나랑 싸우겠냐?"

 "안 그래도 광렙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적당히 대꾸해 준 유한은 신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신전 안에는 유령 드워프가 말한 대로 계단이 있었고, 그 위에 축구공만 한 둥근 돌이 올려져 있었다.

 "이것만 떨어트리면 퀘스트는 끝나는 거야."

 그리고 남바린 성은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그런데 유한이 돌을 떨어트리려고 손을 내밀자 경고음과 함께 안내문이 불쑥 떠올랐다.

 -도시의 기단을 무너트리면 매몰돼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돌을 밀어 떨어트리시겠습니까?

 안내창은 채린과 옌스도 볼 수 있었다.

 "까짓것 진짜로 죽는 것도 아닌데."

 "뭐해, 바츠! 얼른 퀘스트를 수행하고 그 엿 같은 푸른새벽 길드 놈들에게 한 방 먹여 주자고!"

 유한은 (본문에서는 유한 이라고 표기되었음.) 곧장 제단에 있는 돌을 밀어 떨어트렸다.

 그러자 돌 아래 깔려 있던 나무 조각이 공중으로 튀어 오르며 물줄기가 분수처럼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물줄기가 약해진다 싶은 순간.

 쿵! 쿠쿵! 그그그극!

 뭔가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이 들썩이고, 사방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다.

 -죽음을 각오한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지그의 파티) 전원에게 보너스로 명성 500씩 수여됩니다.

 -얼른 탈출하십시오.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안내창들이 연달아 떠올랐지만, 유한들은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신전에서 뛰어나갔다. 

 지하 동공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기둥들도 내려앉아 무너지고, 바닥도 쩍쩍 갈라졌다. 사방에서 돌과 바위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얼른 뛰어! 잘못하면 진짜 깔려 죽게 돼!"

 죽을 각오는 했지만, 막상 상황이 위태로워지자 유한 일행은 생존 본능에 충실했다.

 떨어지는 바위를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길을 찾았다. 혹시 붕괴와 함께 통로가 생기진 않을까 기대하면서.

 "꺄아악!"

 "시아야!"

 갑자기 바닥이 갈라지면서 채린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유한이 몸을 날려 그녀를 낚아챈 뒤 곧장 와이어를 발사했다. 그 와이어를 위에 있던 옌스가 잡았다.

 '나이스!'

 유한은 곧장 왼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위로 올라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미안, 바츠. 발밑이 무너졌다."

 "켁!"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세 사람의 머리 위로 무너진 돌기둥과 바위들이 쏟아져 내렸다.

 희망은 그렇게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였다.

 (5)

 게임 시간으로 정오가 되자 케이지는 길드원들을 점검했다.

 연락한 녀석들이 모두 다 도착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90명 이상 모이자, 유한의 대장간을 접수하기 위해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성안에서 길드원 하나가 총알같이 달려 나왔다. 지하 보물 창고의 함정을 확인하러 갔던 녀석이었다.

 "영주, 큰일 났어! 함정에 구멍이!"

 "흥, 역시 탈출했구먼. 하여간 이놈의 게임은..."

 뭐 상관없었다. 90명의 전투 유저들이면 놈들을 납작하게 밟아 줄 수 있을 테니까.

 "자, 그럼 모두 출..."

 그가 출발이라는 말을 하려는 때였다.

 갑자기 우르릉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남바린 성 곳곳의 건물들에 금이 갔다.

 그리고 마치 유리가 깨지듯디 땅거죽이 갈라졌다.

 "뭐,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케이지가 영문을 몰라 소리를 지를 때, 남바린 영지에 있던 모든 유저들에게 전체 공지가 떴다.

 -쿠쿵! 남바린 성이 무너집니다. 성안의 주민과 유저들은 얼른 대피하십시오.

 "지, 지진?"

 "뭐? 갑자기 왜? 어째서?"

 지진이 일어난다는 정보는 없었다.

 보통 게임 내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새나 쥐들이 도망가거나, 이유 없이 개들이 짖어 대거나 물고기들이 수면위로 튀어 오르는 징조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보고들이 전혀 없었다.

 "제길, 뭐 이따위가 다 있어!"

 뜬금없긴 하지만 유저들에게 있어 지진은 재앙.

 과거 어느 필드에서 지진이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을 여행하던 많은 유저들이 피해를 입었었다. 죽은 것은 물론이고, 돌에 깔려서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구조만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얼른 피해!"

 "아놔, 밀지 마! 로그아웃 좀 하자고!"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공지를 본 유저들은 서로 먼저 성을 빠져나가려고 난리를 쳤고, 로그아웃을 하려는 아우성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그러나 건물과 땅바닥이 무너지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빨랐고, 로그아웃을 하려고 해도 '모든 상황이 끝난 다음에 로그아웃이 가능합니다'라는 창만 떠올랐다.

 결국 성안에 있는 NPC와 유저 다수가 무너지는 성벽과 건물 더미에 깔려 다치거나 죽었다. 거기다 지반이 무너져 영주성이 수십 미터 정도 가라앉았기에 그 피해는 더더욱 컸다.

 "으악! 내 병력들이!"

 희생자들에는 영주 케이지와 그가 부른 90명의 길드원들, 그리고 남바린 영지를 운영하기 위해 파견 나와 있던 푸른새벽 길드원들도 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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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성이 왜 저러지?"

 남바린 영지에 있던 유저들은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성을 멍하게 바라다보았다.

 "지진이 난 건가?"

 "뭐? 아무런 징조나 공지가 없었잖아."

 "지금 그게 중요해? 여기도 언제 무너질지 몰라! 얼른 대피해야 한다고!"

 웅성거리던 유저들은 성을 뒤로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순간에 성이 폭삭 내려앉는 광경에 놀랐는지, 놀라서 다리가 얼어붙어 버린 유저들이 많았다.

 "엄마야, 안 가길 잘 했네."

 "그렇지?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상행을 마치고 잠시 남바린 성을 둘러볼까 했던 리지스는 서늘해진 가슴을 쓸어내렸다.

 갔다가 휘말렸으면 처참한 꼴을 당했음은 물론이요, 벌어 놓은 돈도 다 날렸을 것이다. 그걸 상상해 보니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는 것 같았다.

 "아, 어지러워. 송코 오빠. 나 물 좀 주세요."

 "응, 기다려 봐."

 송코는 근처에 있는 우물로 물을 뜨러 다가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푸합!"

 "으아악!"

 우물에서 갑자기 사람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도 세 사람이나. 거기다 아는 얼굴이었다.

 "어머, 시아 네가 왜?"

 "얼레? 리지스?"

 유한과 채린, 옌스였다.

 왜 이 세 사람은 우물에서 튀어나온 걸까. 리지스와 송코로서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운이 아주 좋았어."

 "그러게, 지하 수맥으로 휩쓸렸던 게 이런 재수가..."

 바닥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세 사람은 모두 죽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밑바닥에는 지하 수맥이 있었다.

 무작정 위로 올라가는 수맥을 따라 헤엄치다 보니, 이렇게 우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망자의 부탁>) 퀘스트를 완수하셨습니다.

 -경험치 3,000을 얻었습니다.

 -(=주물 입문서=)를 얻었습니다.

 밖으로 나오자 퀘스트 완수를 알리는 창이 떴다. 그리고 우물 위로 한 권의 책과 경갑 한 벌, 투구 하나가 떠올랐다. 죽은 드워프들이 주는 보상인 듯했다.

 주물 입문서라는 책은 유한의 것이었고, 경갑과 투구는 각각 채린과 옌스의 것이었다.

 '헤, 예상 밖의 소득이군.'

 주물 입문서는 주물 스킬을 익힐 수 있는 책이다.

 일반적으로 중상급의 대장장이가 꽤 까다롭고 지루한 조건의 퀘스트를 수행해야 얻을 수 있는 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성을 하나 무너트린 것으로 이렇게 덜렁 손에 들어오게 되다니.

 "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너희들 왜 우물에서 나온 거야?"

 리지스의 물음에 세 사람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에 정신이 팔려 지상의 상황이 어찌 되었나 살펴보지 못했다.

 "남바린 성은?"

 "갑자기 지진이 나서 폭삭 무너졌어."

 유한과 채린, 옌스는 남바린 성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평원 가운데 우뚝 솟아 있던 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남바린 성의 참상을 보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성은 지하 수십 미터로 아래로 폭삭 주저앉았고,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모든 것이 부서져 있었다.

 "으하하! 아주 개박살이 났구먼! 속이 다 시원하네!"

 옌스가 고소하다는 얼굴로 웃음을 터트리자 유한이 얼른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퉤퉤! 뭐하는 거야, 바츠?"

 "입 다물어 자식아! 그리고 저길 좀 봐."

 유한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수십 명의 유저와 NPC들이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구조하는 이들은 푸른새벽 길드원뿐만이 아니었다. 일반 유저들도 많았다.

 그들은 저마다 동료나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님들아, 저 좀 구해 주셈.

 -흑흑, 바위에 깔려서 꼼짝달싹도 못하겠다능.

 -친구들하고 사냥 준비 왔다가 모두 죽었3 ㅠ.ㅠ

 -뭔 놈의 지진이 예고도 없이 터짐? 혹시 버그?

 -쌍, 이거 사람이 한 짓이면 저지른 놈 찾아서 현피 뜬다.

 잠시 남바린 지역의 채팅창을 훑어보던 유한은 채린과 옌스를 향해 속삭였다.

 "이번 일,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비밀이다."

 채린은 물론이고, 막가는 성격의 옌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자신들이 붕괴를 일으켰다는 것을 유저들이 안다면, 그때는 푸른새벽 길드와의 분쟁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이번 일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유저들이 벌 떼 같이 일어나 유한과 동료들을 처단하려고 달려들 테니까.

 "뭔데? 도데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리지스의 답답한 물음만이 우물가에 맴돌았다.

 < 6. 고대 드워프의 유적 >>>

 (힘들어 죽겠네. 오타 많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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