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드워프
노스아크의 수도 베르겐에는 드워프들의 나라답게 무수히 많은 공방과대장간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유한이 한때 몸답았던 파부치영감의 대장간보다 10배 더 큰 대장간도 있었다. 그런 대장간에는 거대한 기계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가히 공장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수준이었다.
열기가 확 밀려오는 대장간 안에는 수백명의 드워프들이 분주히 오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유한은 그중에서 나이가 많아 보이는 드워프에게 다가갔다.
"인간, 여기는 어쩐 일로 왔나?"
늙은 드워프가 경계의 눈초리를 하며 유한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푸웁!풉"
"풉풉풉!"
대장간 곳곳에서 웃음을터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괜히 모르는척했지만, 드워프들 대부분은 유한이 처음 대장간에들어갔을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노스아크에서 인간을 보기란 흔하지않았기 때문.
늙은 드워프는 입가에 비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인간을 쓰지않네만"
"일단 한번 고용해 보시죠.일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할 자신 있습니다"
유한의 너스레에 늙은 드워프는 게슴츠레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하는것이 아닌가.
"졀로 실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구먼. 그리고 대장간 일이 적성에 맞아 보이지도 않네만 직업을 바꿔 보는것은어떤가?"
'아놔,이놈의 영감탱이가'
유한이 발끈해서 늙은 드워프의 멱살을 움켜잡으려다참았다. 여기서 소란을 피웠다가는 대장간 취업은 고사하고 베르겐에서 쫓겨날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그러지 마시고 일단 한번 써 보시라니까요.한번 써 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유한은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드워프 NPC에게 아양을 떨었다. 그러나 늙은 드워프는 생긴것만큼이나 완고했다.
"써보길 뭘 써 보나.인간이 실력이 좋아 봤자 얼마나 좋다고"
"지금종족 차별하시는 겁니까?"
"뭣들하고 있어? 얼른 이 얼간이를 당장 쫓아내"
"예 ,어르신"
결국 유한은 대장간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우쒸!내가 여기가 아니면 취직할곳이 없는줄 알아? 이제 오라고 해도 사양이다!이놈의 대장간 콱 망해 버려라!"
입구에서서 갖은 악담을 퍼부은 유한은 다른 대장간을찾아갔다.
하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다.인간에다가 실력도 없어 보이는 유한을 고용할수 없다는것이다. 더욱이 어떤곳에서는 기술을 훔치려는 스파이가 아니냐며 물벼락을 맞고 쫓겨나기도 했다.
"캬악,퉤!내가 다시는 드워프한테 아쉬운 소리하면 인간이 아니고 개다.개!"
바닥에침을 탁 뱉은 유한은 대장간에 취직할 생각을 깨끗이 단념했다. 그리고 스스로 스킬을 연마하기로 했다.
비록 새로운스킬을 익힐수는없지만,기존의생산이 나수리,제련 스킬을 몇단계 더 올릴수 있을것이다.
드워프들이 인간에게 불친절하지만,노스아크는 공업국가인 만큼 좋은점도 있다. 그것은 바로 수련을 하는데 필요한 질좋은 광물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는것이다.
유한은 돈도 아끼고 채굴 스킬도 높일겸 직접 광물을캐기로 했다. 마침 홀트의 지도에는 베르겐에서 가까운 곳에 질 좋은 광석이 나오는 광산이 있다고표시되어 있었기에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2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광산은 베르겐에서 동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었다. 숲과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분지 안에 있었는데,이미 드워프들이뚫어놓은 갱도가 여럿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다 페광이 되고 실질적으로 광물을 캐는 곳은얼마 되지않지"
중간에 들른 작은마을의 식당에서 이렇게 들었다.
실망하는 유한의 얼굴을 본NPC식당 주인은 말을 이었다.
"그래도 광맥이 아주 마른건 아니야.채산성이 없으니 채굴을중단한 것뿐이니까"
"그럼 혼자 쓸 정도의 광물은있겠군요"
"그럴거라면 충분하고도 남지"
유한은 다시 분지로발걸음을 옮겼다.
광산을 찾아 눈덮인 숲을 지나던 유한은 중간에 이상한 소리를들었다.
"으으으..........."
처음에는 잘못들었나 싶어 그냥지나치려 했는데,계속해서 신음 비슷한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누가 있나?'
혹시 몬스터가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니 멀지 않을 나무 둥치 아래 시커먼 인영이 엎어져 있었다.
"크윽,망할 놈........감히 내 광산을......."
허리가 굵고 키가 짜리몽땅한 것이 척 봐도드워프.
전신에 입은 상처를 보면 몬스터에게 습격을 당한듯했다.이대로 두면 죽어 버릴지도.
'헹,알게 뭐야!'
이미 드워프에 대해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유한은 그냥 무시하기로했다.그러나 유한은 채 세 걸음을 떼지 못했다.
촤르르륵!
"헉!"
뭔가 날아와 유한의 다리를 휘감았다. 흠칫해서 봤더니 다리에 강철 와이어가 감겨 있었다. 쓰러진 드워프가 던진 와이어는 뱀처럼 유한의 발목을 단단히 감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크으윽. 네놈은 죽어가는 드워프를 그냥 두고 갈 셈이냐?"
드워프의 늙은 모습과달리 목소리는 제법 젊었다.
다 죽어가는드워프는 어디서 힘이났는지 유한을 붙들고 늘어졌다.
고개를 휘휘 내저은 유한은 와이어를 끊어버리려 했다. 그런데 암브레이크를 맞았음에도 와이어는끊어지지 않았다.
"크흐흐!그건 텅스텐 합금으로 만든 강철 와이어다.허접한 칼질로는 끊어지지 않지"
"우쒸!뭐야 이거!"
암 브레이크 8랭크로는 어림도 없단 말인가.
유한은 몇차레나 암브레이크로 와이어를 갈겼지만 유연하고 질긴 와아어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결국 유한이 선택한 것은 드워프의 목에 검을 겨누는 일이었다.
"이봐,난쟁이 영감.당장 이거풀지 못해?"
"쿨럭!멋대로 해라.날 살려 주던가 아님 내 시체를 끌고 다니던가"
배 째라는듯 눈을 감아 버리는 드워프의 고집에 두손다 든 유한은 베르겐의 상점에서 시세의 3배에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산 포션을 먹였다.
붉은 수염의 드워프는 포션을 꿀꺽 꿀꺽 잘도 받아먹엇다.
'크흑!어디서 이런 물귀신이 걸려서는'
돈이 아까워 죽을 뻔했다.
포션의 위력이 발휘되었음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드워프가 일어났다. 그리고 떨떠름한 포정을 하고 있는 유한의 다리에서 와이어를 풀어주었다.
유한은 드워프가 와이어를 던질때 썼던 장비를 자세히 살폈다. 와이어는 드워프가 찬 건틀렛에서 발사되었는데,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자 와이어는 거짓말처럼 도로 감겨들어갔다.
'포션 값으로 저 건틀렛이나 달라고 해볼까?'
왠지 탐이 나는 장비였다.
유한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유한을 아래위로쓱 훑어본 드워프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이봐 ,인간 .날 좀 도와주겟나?"
"또 뭘 해달라고요?"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이젠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참인가.
"그렇게 인상 쓰지 마라.날 도와주면 섭섭지 않게 보답할테니까"
'오잉?이것은?'
유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퀘스트다.
저 드워프는 분명 유한에게 퀘스트를 내놓으려는게 분명했다.
유한은 당장 태돌르바꾸었다. 드워프는 미워도 퀘스트는 사랑스러운법.그는 언제 그랬냐는듯 싹싹한 태도로 드워프를 대했다.
"뭐든지 말씀만하십시오 .제가 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다름이아니라,저 분지 안쪽에 내 광산이 있는데 ,얼마 전 갑작스레 쳐들어온 몬스터에게 뺴앗겼어.그곳을 되찾아 주지않겠나?"
효과음과 함께 창이 떴다.
[붉은 수염 일족의 이단아 갈리의 부탁]
-실력 좋은 대장장이인 갈리는 분지내에 자신만의 광산과 대장간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전 갑작스레 나타난 예티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고 간신히 탈출했다.
모험가여,갈리의 광산을 되찾아 주지않겠는가?
'뭐시라? 예티?'
유한은 퀘스트를 허락하려다 말고 눈을 똥그랗게 떴다. 레벨 85의 예티.
춥고 눈이 많이 쌓인 산에 산다고 알려진 설인이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귀여워 여자 유저들 사이에서 한때 테이밍 열풍이 불기도했다.
피부는 왠만한 칼질로는 밸수 없을정도로 질기고,간단한 얼음 마법도 펼칠줄 알아 적으로 삼으면 꽤 골치 아픈 존재다.
'왜 하필 예티냐고요!'
유한도 예전 바츠 시절 예티를 사냥해 봤기에 예티가 얼마나 강한 몬스터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바츠도 아니고레벨 55의 허접 대장장이가 아닌가.
레벨 30차이도 극복하기 힘든 판국에 상대는 마법까지 사용할줄 안다.
유한은 아쉽지만 퀘스트를 포기하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건 못하겠습니다"
"뭐? 다 해결해 준다 하지 않았나!"
거부의사를 밝혔는데도 퀘스트창이 닫히지 않았다.
몇번이고거부하고 ,창을 닫으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드워프는 어느새 유한의 소매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광산을 찾아줄때까지는 이 손을 놓지 않겟네"
'크아악!이건 또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이냐고요!'
유한은 미치고 팔짝 뛸것만 같았다.
드림맥스의 사악한 술수에 또다시 걸린것이다.
발덴에서 경비병 NPC에게 걸려 상납금을 바쳤듯, 아르페디아 온라인에서 유저가 거부할수 없는 퀘스트가 가끔씩 뜨곤 한다.
일명, 퀘스트 앵벌이!
결국 유한은 눈물을 머금고 퀘스트를 수락해야만 했다.
"할게요,하면 되잖아요,쓰벌!"
"하하하!잘 생각했네.자네야말로 나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토르(Thor)님께서 보낸 영웅일세!"
토르는 대장장이와 드워프의 신이다.
그러나 신이 보내준 영웅따위는 안해도 좋으니까 퀘스트나 취소해 줬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 유한의 진심이었다.
-갈리의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정식으로 퀘스트를 수락했다는 창이 뜨자 갈리는 광산가 주변의 정보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 시작했다.
3
'우선은 놈이 왜이곳에 왔는지를 알아내는 거다'
예티는 북쪽의 춥고 눈이 많이쌓인 산간 지방에 사는 몬스터.비록 노스아크가 북쪽에 위치해 있지만, 이곳은 예티가 살기에썩 좋은 환경은아니다.
그래서 예티를 보려면 노스아크에서도 북부로 가야한다. 유한도 바츠시절 노스아크 북부에서 예티를 만났고 사냥을 했다.
예티는 천성적으로 흉포한 몬스터가아니다.
약간의 지성이 있어서 먼저 인간을 공격하는 법이 없고,사냥할때를 빼고는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예티가 이곳에 온 이유가 있을거고,그 이유를 알아내면 예티를 상대하는데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분지 안으로 들어온 유한은 놈이 자리르 잡았다는 갱도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곳을 찾은 손님이 그만이 아닌모양이다.
"야,뭐래? 불을 더 지피라니까!"
일단의 유저들로 구성된 파티가 갱도 입구에 서서 무언가를 하고있었다. 전사둘에 마법사하나로 이뤄진 파티였는데 유한도 본적이 있는 이들이었다. 개척대 퀘스트에 참가해 노스아크까지 같이온 유저들인 것이다.
레벨이 70대 수준인 그들은 두더지 사냥을 하는것처럼 갱도에 연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이곳에 뭐가 있을까?"
"글쎄,발자국이 큰걸 보니까 트롤이나 오우거 아닐까?"
"그럴지도.난 이번에 오우거 가죽을 얻었으면 좋겠다"
"난 트롤의 피"
"야,나온다. 모두 전투 대형으로!"
리더로 보이는 전사의 외침에 대화를 나누던 파티원들은 각자 자리를 잡았다. 전사 계열의 유저둘이 앞에 서고 마법사와 궁수가 뒤에서 지원해 주는 전형적인 몬스터 사냥 포메이션이다.
"크워어어어!"
연기가 매캐한 동굴안에서 회색 털이 숭숭한괴인영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나왔다.
순간 파티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뭐야? 예티가 왜 이곳에 있는거야?"
"예티가 있다는 소린 못 들었는데......"
갑작스런 예티의 출현에 파티원들은 당황해 공격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궁수의 화살곽 마법사의 마법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때 예티의 얼음 마법이 유저들에게 쏟아져 내렷다.
"마,마나 실드(Mane Shield)!"
화들짝 놀란 마법사가 방어마법을 펼쳤지만, 한 박자 늦었다. 예티가 날린 아이스 스피어(Ice Spear)가 실드를 뚫고 유저들의 몸에 박혀 들었다.
"제,제기랄!우리도 공격해!"
유저들이 반격을 가했지만, 예티는 생각보다 강했다. 구경하던 유한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예티가 저렇게 강했나?'
어떻게 된것인지 유한이 예전에 마주친 예티들보다 훨씬 더 강한 듯했다.
뻐버버버벅!
"크아악!"
"케엑!"
예티의 몽둥이에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유저들은 하나둘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로그아웃.
"우워어어어어!"
파티가 전멸하자 예티는 몽둥이를 높게 추켜올린채 흉성을 드러냈다. 그럻게 한동안 분에 겨워 씩씩거리던 놈은 배가 고팠는지 먹이를 찾으러 숲속으로 들어갔다.
'당최 이해할수 없군'
유한은 나무 뒤에서 나오며 고개를 갸웃했다. 에티의 공격력이 강하다지만 레벨 70대의 4인 파티 하나를 순식간에 전멸시킬정도는 아니다.
유한은 고개를 갸웃하며 놈이나온 갱도로 들어갔다.
갈리로부터 예티는 한마리뿐이라고 들었기에 두렵지 않았다.
폐광되어 중간이 막혀 있는 갱도에는 예티가 먹다 버린 동물의 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유한은 마치 사건 현장에 나온 형사처럼 갱도 안을 샅샅이 조사했다. 그리고 뭔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예티가 얼기설기 나무껍질을 엮어서 만든 어설픈 나무 인형이었다.
'혹시 임신중?'
다 큰 예티가 가지고 놀것은 아니고,앞으로 태어날 아기 예티에게 주려고 만든것임이 분명했다. 그러고보니 한마리가 먹는것치고는 많은 동물의 뼈도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좀 전의 강한 모습도 임신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강하다고.
'그럼 이곳에 온이유가?'
남쪽으로 사냥을 나왔다가 산기가 있자 급히 가까운 동굴을 찾은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고 해도 출산 중에는 무방비로 노출되기 마련 .아기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동굴과 같이 추위와 적으로부터 보호해 줄 곳이 필요했을것이다.
'결국 나 혼자는 무리야'
레벨 70대의 파티도 순식간에 전멸당했는데,유한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으면 뾰족하게 만들기라도 해야한다. 어쩄든 퀘스트를 수락했으니까.
유한은 서둘러 베르겐으로 돌아왔다.그리고 곧바로 무기점으로 향했다.
"무얼 찾으시오?"
무기점 주인은 흔하지않은 인간 손님에 관심을보였다.
"예티를 잡을만한 덫이 있습니까?"
"예티? 예티는 덫 같은것에 걸리지 않아요.쇠 냄새를 얼마나 잘 맡는데"
"그럼 독 같은걸써야 됩니까?"
"훗 ,놈을 너무 가볍게 보는군요.놈은 수상한 음식 같은건 절대 먹지 않아요.냄새도 잘 맡거니와 눈치도 매우 좋거든"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것도 안되고,저것도 안되면 방법이 영없는것인가.
"놈을 잡는 방법은 둘뿐이오.공격해서 죽이든지,아니면 구슬러서 친구가 되든지"
"구슬린다고요?"
테이밍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르페디아 온라인의 테이밍은 간단했다. 먹이를 주면서 몬스터의 호감을 사는데 상대가 비선공(非先攻)몬스터거나 지능이 낮을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예티의 경우에는 비선공이지만 지능이 제법 높아서 성공 확률이 매우낮은편이다.
하지만 예티가 임신중이니 먹이를 주면 환심을 살수 있을것 같았다. 환심을 산 다음에는 구슬려서 광산 갱도보다 더 좋은 보금자리로 옮겨주면 된다.
그럼 퀘스트는 끝.
'그러려면 준비할게 많겠군'
유한은 주변 산과 숲을 뒤지며 동물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작고 먹기 쉬운 산토끼에서부터 며칠은 뜯어먹을수 잇는 맷돼지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잡았다.
인벤토리가 가득차자 그는 다시 에티가 살고있는 갱도로 향했다.마침 그곳에있었는지 예티가 유한의 접근을 알아채고 밖으로 나왔다.
"쿠워어어!"
얼마전의 사건 때문인지 예티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중요하다.
만약 조금이라도 적대적인 행동을 취한다면 예티는 바로 공격할 것이다.
하지만 우호적으로 대한다면?
유한은 인벤 안에 있는 동물 고기들을 꺼내 쌓아 놓았다.
그리고 손으로 먹으라는 시늉을했다.
"이거 너 주려고 잡아온 거야"
"쿠억?"
예티는 도대체 이 인간이 왜이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악의는 느껴지지 않기에 슬금슬금 동물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는데 유한이 멀찍이 떨어지지 고기덩이를 하나 집어들었다.
"쿠우우"
처음에는 조심스레 유한의 눈치를 보기도했지만, 유한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자 본격적으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임신 중인 예티는 평소의 몇배에 달하는 음식을 먹는다. 평소에도 먹보인 예티가 하루동안 먹어치우는 양은 어마어마했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유한이 내놓은 고기를 다먹고도 친근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냐,너 그리 쉬운 여자가 아니라 그거지?"
유한은 다시 숲으로 들어가 사냥을 했고,그것만으로도 부족하면 나무 열매나 나무뿌리도 캤다.
물론 지루한 일이었고,춥고 황량한 노스아크에서 먹을것을 구하기도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유한은 몇번이고 때려치우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곤 했다.
"제기랄,여자 예티 환심 사려고 이 짓거리 하는 농느 나밖에 없을거다!"
유한은 통나무만한 칡뿌리를 캐 가며 연방 투덜거렸다.
그래도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고생하니 예티와 조금은 친해지게 되었다.
'테이밍은 제 살을 발라줘야 성공할수 있다고 하더니만'
유한은 요즘 그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었다.
테이밍은 직업 불문하고 누구나 할수 있지만, 많은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늑대 한마리를 꼬이는것만 해도 오랜시간 쫓아다니며 많은 양의 먹이를 먹어야한다. 설사 공격을 받더라도 절대 반격을 해서는 안된다.
예티를 테이밍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했던 것의 몇배나 더 많은 노력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한에게 중요한것은 예티를 길들이는것이 아니다.
적당히 구슬려서 다른 곳으로 내보내면 된다.
"......그래서 말이야.내가 이곳을 써야 하거든. 그러니까 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안되겠니?"
유한은 벌써 몇시간째 예티를 열나게 설득하고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예티는 한번 자리 잡은 이곳이 마음에 드는지 계속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더 아늑하고 좋은 동굴로 소개해 준다니까. 그리고 네가 옮기면 애기를 낳을 때까지 먹을 것을 책임질게. 그래도 싫어?"
"크억!크억!"
예티의 거부에 결국 유한은 비장의 카드를꺼내고 말았다.
"좋아!이 오우거 고기도 너 줄테니까 제발 좀 옮겨라"
유한이 저번에 오우거를 잡으면서 얻은 고기를 내놓자 예티의 눈빛이 달라졌다. 오우거 고기는 예티가 환장할 정도로 좋아하는 고기다.
그런데 이 오우거 고기는 꽤 쓸만한 아이템이었다. 강장 효과가 있어서 먹으면일정 시간 동안 스탯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식당을 하는 NPC에게 헐하게 넘겨도 천 골드는 받는다.
유한도 아꼈다가 먹으려고 알면서도 함부로 꺼내지 않았다. 이것을 예티의 한끼 식사로 줘야한다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다.
그러나 대업을 위해선 다소의 희생이 필요한 법.
오우거 고기를 본 예티는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예티의 마음이 흔들리는 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된다.
"이사 갈거야?"
"크어어!"
예티는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고,간신히 성공했네"
왠지 기쁨보다는 허탈함이 더했다.
어차피 하고 싶지 않은 퀘스트였고,전투 한번 치르지 않았다지만 이를 위해 유한이 들인공은결코 적지 않았다.
게임 시간으로 5일동안 잠도 자지 못한채 사냥을 해야했고,그것으로도 모자라 과일 채집이나심마니 흉내도 냈다.
그리고 아끼고 아꼈던 오우거 고기까지 상납했다.
'제기랄 !차라리 처음부터 오우거 고기를 줄걸 그랬나?'
그러면 갖은 노가다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지도.물론 확신할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제길 ,내가 그놈의 앵벌이 퀘스트때문에 뭔 고생이냐!'
어쨌든 예티가 수락했으니 녀석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
유한은 오우거 고기를 건넨뒤 예티를미리 봐 둔 산 너머의 동굴로 이끌었다. 오우거 고기를 한 입 문 예티는 선선히 유한의 뒤를 따랐다.
예티가 분지를 완전히 빠져 나가자 효과음이 울렸다.
-갈릭의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명성이 400올랐습니다.
안내창이 뜨거나 말거나 유한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보상이 엿 같기만 해봐!내 그냥 안둘테니까!"
4
퀘스트를 마친 유한은 곧장 붉은수염의 드워프 갈리를 찾아갔다. 갈리는 처음 만났던 눈덮인 숲속에 그대로 있었다.
"크하핫!역시 자네는 해낼줄 알았어!"
"닥치고 보상이나 주시죠"
시시껄렁한 것을 주면 작살을 내놓으리라 마음먹었다.
살기를 풀풀 풍기는 유한을 갈리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보상? 역시 인간은 어쩔수 없군.째째하게 보상이나 바라고 말이야"
"섭섭지 않게 보답해준다고 한건 누구셨더라?"
설마 앵벌이 퀘스트로 사람을 골탕 먹여놓고 입을 싹 닦겠다는것은 아닌지.칼자루를 쥔 유한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유한이 막 폭발하려 할때 갈리가 말을 이어나갔다.
"어흠,뭐 붉은 수염 일족의 기린아인 나를 도운 공이크긴 하니 특별히 보상을내리도록 하지.보상으로 잔에게 아주 영예로운 직책을 내리겠다"
한껏 거만한 미소를 지은 갈리는 유한을 올려보며 말했다.
"이몸이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손해를 보는 일이지만 자네를 특별히 조수로 삼겠네.보아하니 직업이 대장장이인듯한데......어떤가? 드워프,그것도 붉은 수염 일족의 천재인 이 몸의 조수가 되는것은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무슨 소리를 하나했더니 결국 보상은 없고,조수로 부려먹겠단다.뻔뻔스럽다 못해 아주 가공할 정도로 자신만의 착각에 빠져 사는 놈이다.
어쩐지 퀘스트 창이뜰때 붉은 수염 일족의 이단아라고 하더니만.
'그래,이참에 머더러가 한번 되어 보는거야'
스르릉!검을 뽑아들던 유한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이놈의 조수가 된다는 말은 바로 대장간에서 같이 일을 한단말이고,그렇다는것은 잘하면 새로운 스킬도 배울수 있다는 거잖아'
현재 유한은 드워프에게 새로운 스킬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수 없는 형편이다. 찾아가는 대장간마다 퇴짜를 맞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 엉뚱하지만 괴팍스런 놈의 조수가 된다면 새로운 스킬도 익힐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미 익힌 스킬 수련도 할수 있고.
그렇게 생각하니 그리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전 인간인데요.인간에게 기술을 막 가르쳐 줘도 되요?"
유한의 물음에 갈리는 같잖다는 얼굴로말했다.
"흥!그깟 기술 좀 가르쳐 준다고 뭐가 닳기라도 하나? 오히려 난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니,인간은 믿을수가 없다느니 주장하는 늙다리들을 이해할수 없단말이야"
이단인만큼 갈리는 생각도 파격적이었다.
"기술이란 말이야 ,서로 비교하고 견제하면서 발전하는거야.죽어라고 감춰봐야 인간의 발전을막을수 있는것도 아니고,그럴바에는 차라리 기술을 전수한뒤 서로 경쟁해 나가는게 낫지.안그래?"
"그,그야 그렇지만......."
도대체 유한은 지금 자신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가 NPC인지 유저인지 헷갈릴정도였다. 당최 이놈의 게임은 인공지능이 어느정도란 말인가.
<붉은 수염 일족의 이단아 갈리의 조수가되시겠습니까?>
"당근말밥"
유한이 승낙하자 환한 빛이 터지며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동시에 효과음이 울리며 안내창이 떠올랐다.
-붉은 수염 일족의 이단아 갈리의 조수가 되셨습니다[드워프의 조수]칭호를 얻었습니다.
-갈리의 대장간과 공방을 제약 없이 사용할수 있습니다. 갈리의 광산에서 광물을 채굴할수 있습니다.
'얼레? 조수가 되었더니 이런것도 있네'
이걸 복이라고 해야 할지.
유한은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분지 안에는 총 7개의 광산과 1개의 대장간, 그리고 공방이 있었다. 그외 주택인듯 자그마한 집들이 십여채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오랫동안 방치되어 허물어지기 직전이었다.
7개의 광산 중 5개는 폐광이고 오로지 2개만이 지금도 광물을 캐고 있었는데,한곳에서는 순도가 높은 철이,그리고 다른 한곳에서는 크롬이 나왔다.
"이곳에서 혼자 뭐하고 있었습니까?"
철을 다룬다는것은 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드워프들은 혼자 일하기보다는여럿이서 같이 작업한느걸 즐겼다.
유한의 질문에 갈리는 기다렸다는듯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커험 ,험!내가 왜 이곳에서 혼자 작업을 하고 있었냐고? 나같은 위대한 대장장이가 어찌 다른 녀석의 도움을 필요로 하겠나,이 어르신은 말이야......."
갈리의 말을 요약해 보면이랬다.
노스아크를 구성하는6개의 드워프 일족 중에서 붉은 수염 일족으로 태어난그.
어렸을적에는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손재주로 일족 내에서 꽤 인정받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엉뚱한것들을 만들어 내 괴짜 드워프로 치부되다 '드래곤 대항 병기 개발 프로젝트'를 발표한 뒤로는 아예 일족들에게 외면당했다고 한다.
"정말 말이지.우리 드워프들은 도전정신이 없어.언제까지 화이트 드래곤에게 삥을 뜯겨야 하냐고.놈이 차지한 북동부 산맥의 노다지 광맥은 또 어떻고.한시라도 빨리 놈을 몰아내고 광산을 개발해야 하지 않겠나!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글쎄요"
유한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노스아크 북동부의 산맥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화이트 드래곤 '안듀라스'.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어서 유한도 익히 알고 있는 녀석이다.
아르페디아 온라인 최강의 몬스터인 드래곤.
개중에는 인간과 유자 종족들에 우호적인 놈들도 있지만 ,기분 내킬때마다 레어에서 나와 삥을 뜯어가는 놈들도 있었다.
과거 유한이 처치한 레드 드래곤처럼 불문곡직 도시를 파괴하고 인간을 학살하는 놈들은 광룡(狂龍)이나 마룡(魔龍)으로 분류된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놈들은 많지 않았다.
안듀라스는 보석을 끔찍이도 좋아하는 드래곤이다.
다른 드래곤들 이상으로 보석에 탐욕스러운 녀석이 드워프들을 가만히놔둘리가 없다. 드워프가 아르페디아에서 보석 채굴과 세공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안듀라스는 정기적으로 부하들을 보내 노스아크에서 보석과 세공품들을 상납받고 있었따.
"언제까지 그 허연 도마뱀에게 우리의 장신 혼이 담긴 예술 작품들을 빼앗겨야 하겠는가!드래곤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우리 드워프들의 예술정신은 자유를 얻을수 없어!"
그래서 이 엉뚱한 드워프는 이곳에서 혼자 드래곤을 상대할 무기를 만들고 있었단다.
"내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않았는데.자네에게만 특별히 보여주지"
그러면서 갈리는 유한을 공방으로 데려갔다.
커다란 체육관을연상시키는 공방의 문을 열자 그 안에 커다랗고 시커먼 물체가 웅크리고 있었다.
"이게 드래곤 대항병기?"
육중한강철로 된 골격.전신에 박힌 이름 모를거대한 기계 장치들 ,어지럽게 얽혀진 와이어와 톱니바퀴.
그것은 기계로 된 드래곤 모양의 전투 병기였다.
일명 메카 드래곤.
"어떤가? 드래곤을 상대하고도 남겠지?"
갈리가 아주 자신감에 차서 유한을 바라보았다.
메카 드래곤은 진짜 드래곤처럼 덩치 하나만큼은 정말 컸다. 과거 유한이 처치한 레드드래곤과 거의 비슷한 크기.
기계 장치로 움직이는 이 드래곤은 아직 미완성. 거대한 덩치를 움직일만한 동력원을 아직 찾지못했다고 한다.
"동력원만 해결되면 당장이라도 저것을 움직일수 있지. 그럼 화이트 드래곤 정도는 한주먹 거리감도 안되지 .암,그렇고 말고!"
입에서 침을 튀겨 가며 이야기하는 갈리의 얼굴에서 자부심을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유한은 한심하기만 했다.
'다 좋은데 마법을 막을수 있는 방법은?'
드래곤이 어디 덩치가 커서 아르페디아 대륙 최강의 몬스터가 되었나? 작은 마을 하나쯤은 단번에 지워 버릴수 있는 브레스와 마법이 있기 때문에 최강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드래곤이라고 해도 덩치 큰 오우거나 트롤과 무에 차이가 있겠는가.
내심 그렇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아프게 NPC와 떠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저 적당히 맞장구치며 갈리의 기분을맞춰줄 뿐이다.
"그런데 일은 언제 시작합니까?"
유한은 은근슬쩍 화제를돌렸다. 이대로 둔다면 하루종일 메카 드래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질것 같았다.
"아참, 내정신좀 보게.대장간으로 안내해 줄테니까 따라와"
그렇게 유한은 드워프의 대장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BY RAY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