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채린의 아버지 (18/143)

채린의 아버지

1

토요일 오후 3시.

유한은 검정 고시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아 ,하느님. 왜 하루는 24시간밖에 안되는건가요?"

새로 옮긴 검정고시 학원은 헐렁하다는 소문과 달리 빡세기 그지없었다. 머리는 지끈지끈 아팠고,발걸음은 무거웠다.

마치 유한이 오자마자 바뀌기로 작정한것처럼 쉴새없이 진도를 나가고 연거푸 시험을 치렀다. 유한은 공부 해야 할것들이 늘었고,과제도,준비할시험도 많아졌다. 노스아크에서 지그를 키우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리니 단단히 발목을 잡힌 셈이 되었다.

게임할 시간이 줄어든다는것은 지그를 키울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고,그 말은 해커를 잡는것도 그만큼 늦어진다는 소리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하루가 딱 36시간이었으면 좋겠는데........."

유한이 거기까지 생각했을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유한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무방이 상태에서 차인 그는 땅바닥에 엎어질뻔하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돌아섰다.

"누구야!"

"안녕, 친구.잘 있었니?"

"송채린?"

채린이어다.

한도안 게임에 접속할 시간도 없을정도로 바쁘다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이곳에 나타난것일까.

한여름에 어울리는 가볍고 시원한 옷차림에 유한의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왜 대뜸 걷어차고난리야?"

"내가 전에 그랬잖아!썩은 동태 눈깔하면 날려버리겠다고"

"내가 썩은 동태라는거냐?"

"그래,거기다 태양 아래 푹 쉬어 가고 있구먼"

이렇게 말한 채린은 대뜸 유한의 손목을 잡았다.

"가자,이 누나가 널 시원한 태평양으로 데려가 줄테니까"

"뭐? 대,대체 어딜 가려고? 나집에 가서 저녁도 먹어야 하고 거기다 할일이.........."

"밥은내가 사주면 되잖아. 그리고 할일이라고는 게임하는 것밖에 더있어? 가자,내가 오늘 신나게 해줄테니까"

채린은 '이터널 월드'의 무료 이용권을 보여주었다.

무슨 경품 추첨에 당첨되었던모양.

"자자,빨리 가자.오늘이 아니면 쓸모없게 된단 말이야"

피곤한 가운데 갑작스레 끌려갔지만, 유한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채린과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이터널 월드는 얼마전 부천에 새로 생긴 대한민국 최고의 놀이동산이다.

영화와 만화의 아기자기한 테마 파크와 다양한 스릴만점의 놀이기구들은 한여름의 더위를 잊게 해주기에 충분 햇다.

"으에에에에에엑!천천히!천천히 가라고!"

"무슨 소리!천천히 가면 일등을못하잖아!"

지금 채린과 유한이 탄것은 '크레이지 카트'라는 놀이기구였다. 기본적으로 과거의 범버카와 비슷하지만, 상대를들이받으며 서킷을 달리는것이달랐다.

안전이 보장되어있다지만,채린이 사정없이 상대 차량을 들이받고 드리프트를 하는통에 유한은 혼이 싹 빠질 지경이었다.

"아,아깝다 .이등상품이 탐났는데"

"저기,좀 클래식한 놀이기구를 타면안될까?"

얼굴이 해쓱해진유한의 애원에 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그럼 자이로드롭 타러가자"

"그게 어디가 클래식하다는 거야!"

회전목마나 관람차 같은것도 잇지 않은가.

유한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채린은 유한을 자이로드롭이 있는곳으로 끌고 갔다.

이터널 월드의 자이로드롭은 150미터로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했다. 밑에서 구경하는것만으로도 아찔한 지경인데 저걸 타야 한다니.

'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이딴걸 만든거야!'

결국유한은 그 미친놈들이 만든 놀이기구에 탑승하게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타자 탐승대는 150미터 꼭대기롤 천천히 올라갔다.

'이거 완전 사형 집행 당하는 기분이잖아'

잔뜩 긴장해 있는 유한의 기분을 풀어주려는지,채린이 옆에서 말을 건네왔다.

"너,저번에 건네준 목걸이 있잖아"

"목걸이? 티케의 부적 말이야?"

드림맥스가 위문 차원에서 주었던 특별 아이템.

상점의 아티팩트보다 못한 옵션을 하고있던 티케의 부적은 저번에 유한이 채린에게 주었다.

궁수라서 방어력이 취약할테니 그거라도 끼고 있으라고.

"그거 굉장히 좋더라"

"좋긴 뭐가 좋아.옵션도 구리더구먼"

"아냐!그거 대단해 .차고 있을때는 크리티컬이 펑펑 터지던걸? 명중률도 꽤 높게 나오고"

"에이 설마......."

"정말 이야 .안차고 있을때랑 비교해봤는데 굉장한 차이가 있었어"

크리티컬과 명중률이 높게 나온다니!

차고 있으면 재수가 좋아질거라는 의미는 그것을 뜻하는거란 말인가. 아이템 획득이 잘 되거나 물건을 잘 만드는것이 아닌?

'크윽, 그러고보니 데보라 던전에서 채린이 녀석이 크리티컬이 잘 터진다 싶었어!'

생각해 보면 ,자신은 티케의 부적의 위력을 채 실감하지도 못하고 채린에게 넘겨주었다. 실제 그런 물건이라는걸 알았다면 넘겨주지 않았을텐데.

"덕분에 사냥도 수월하고 레벨도 참 잘오르는거 있지?"

"아 그러냐?"

"앞으로도 고맙게 잘쓸게"

하긴 이제와서 돌려달라고할수도 없는노릇.

유한이 후회를 하고 있을때쯤 ,탑승대는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서늘한 상공에 매다려있던 탑승에는 까마득한 지상을 향하여 무섭게떨어져 내렸다.

"크에에에에엑!"

"꺄아아아아아!"

유한은 무서워서,채린은 재밌어서 비명을 질렀다.

'사,살려줘!살려 달란 말이야!'

한참을 비명을 질렀는데도 계속해서 추락했다.

유한은 유체 이탈을 제대로 경험한 뒤에야 자이로드롭에서 내릴수 있었다.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살았다는 생각외에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어때? 더위가 싹 가시지?"

'제길!더위? 이젠 간 떨려 죽겠다'

유한의 기분도 모른채,채린은 연방 다음 목표물을찾았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롤러코스트를 타 볼까?"

"이번엔내가가고 싶은 곳에 가면안될까?"

"뭔데? 시시한 곳이면 나 안간다"

"시시하지 않아.아주 소름이 오싹 돋는 곳이야"

유한의 말에 호기심이 동한 듯 채린이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흐흐흐!너도 한번 당해 봐라'

유한은 내심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자이로드롭에 당한 뒤에 생각해 둔곳이 있었다.

그곳에 채린을 데려간 순간, 예상대로 그녀의 아색이 변했다.

"이 놀이공원 유령의 집은어떨까나?"

"............."

"무섭겠지? 요즘은 홀로그램 영상이 발달되서 유려도 아주 실감난다던데"

컴컴했던 데보라 던전에서 채린이 보인 반응을 생각하고 선택한 것이었다.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던듯, 채린은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쳤다.

"맞다.야외 공연장에서 '브레이브 레인저'쇼 한다던데 우리 그거 보러가자"

채린은 은근히 화제를 돌렸다.

"야,너 치사하게 이러기냐!"

"뭐가 치사하다는거야!너도 전대물을 좋아하잖아!"

"초딩 때나 그랬지!"

그러나 무료 이용권을갖고 있는것은 채린이다. 그녀의 횡포를 유한이 이겨낼 힘은 없었다.

결국 유한은 야외 공연장에서 아동용 전대물 ,브레이브 레인저 쇼를 봐야했다.

"꺄악!살려주세요,브레이브 레인저!"

"으하하,오로라 공주!그렇게 불러도 놈들은 오지 않는다!"

악의 총수 다크페이건에게 아리따운 오로라 공주가 잡히자,야외 공연장을 가득 메운 아이들이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다.

아이들의 틈에서 흥미진진한눈으로 관람하는 채린과 달리,유한은 오로라 공주가 그냥 콱 죽어서 쇼가 이대로 끝났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순간 정의의 사자들이 나타났다.

"다크 페이건!네놈의 악행도 여기서끝이다!"

"와!브레이브 레인저다!"

관람석 뒤쪽에서 레드,옐로우,핑크,블랙,그린의 오색 슈트에 가면을 쓴 전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바로 브레이브 레인저.아이들의 열렬한 환호성을 받으며 브레이브 레이저들은 번개같이 무대로 다렬갔다. 그런데.

"크엑!"

무대로 달려가던 레드가 계단을 내려가다 엎어졌다.

순간 야외 공연장 전체가 싸늘해졌다. 다크 페이건 조차도 돌발 사태에 당황하여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릴정도였다.

"어이쿠,괜찮습니까?"

유한이 부축하며 안부를 묻자 레드가 흠칫 놀라는것이 아닌가.

"네,네놈은!"

"날 알아요?"

유한은 그를 모르는데,그는  유한을 아는듯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레드는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이어 갔다.

"비겁하구나,다크페이건!이런 곳에 암살자를 심어두다니!"

'컥!내가 어디가 암살자냐?'

졸지에 유한은 다크 페이건의 졸개가 되어버렸다.

공연은 다시 순조롭게 이어졌고,브레이브 레인저들이 힘을 합쳐 오로라 공주를 구하고 다크 페이건을 해치우는 바람직한 엔딩으로 끝났다.

그렇게 쇼를 끝내고,관객들이 다 나가자,배우들은 다음 공연이 시작될때까지 휴식 시간을 가졌다. 물론 그사이에 레드는 선배인 다크페이건에게 갈굼을 당했다.

"야,박건우.너 거기서 넘어지면 어떡해?"

"넘어진게 아님다. 대장장이 새끼가 다리를 건겁니다"

"응? 대장장이라니?"

"그런 놈이 있습니다!"

'젠장 ,그 새끼 누군지 알아놔야 하는 거였는데'

박건우는 공연이 급해 일단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생김새로 보아 아까 다리를 건 녀석은 분명 개척단 습격 퀘스트 때 훼방을 놓았던 대장장이가 맞았다.

그놈 때문에 퀘스트를 실패해 패널티를 먹고 상당한 경험치와 명성치를 날렸다. 덕분에 길드원들의 신망까지 잃어버린 상태다.어찌 놈의 얼굴을 잊겠는가.

"아직 멀리가지 않았을거야"

"야,너 어디가?"

박건우,아니 검은 초승달 길드의 장 키라는 바람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그가 실수한 것이 잇었으니 그것은........

"야!건우야 ,옷은 갈아입고 가야지!"

2

브레이브 레인저 쇼를 보고 난다음, 유한과 채린은 놀이공원 내 매점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떄우고 있었다.

감자튀김을 씹고 있던 유한에게 채린은 살짝 쨰려보며 말을 걸었다.

"너 ,아까 레드한테 발을 걸었지?

"아니"

"내가 다 봤어"

채린의 다그침에 유한은 솔직히 시인했다.

"흐흐흐,유치한 쇼에 돌발적인 재미를 가미시켜 주려고"

"짧게 말해 고의적이었단 거군"

채린의 눈매가 가늘어 졌다. 옛날엔 딱 이럴떄 한방씩 날아오곤 했는데 ,지금은 날아오지 않았다.

"아무튼 오늘은 재밌었어.너하고 던전 탐사를 끝낸 후 쭉 도장에서 뒤치다꺼리하느라 바빳거든"

"너네집 도장하냐?"

유한은 처음 알았다는듯 물었다.

"우리가 아빠가 무술이란거 잊었어?"

"알고 있지만, 도장은 안 했었잖아"

채린의 아버진 제법 유명한 무술인이다.

그러나 도장을차리진 않았다. 자신의 무예를 완성하지 못했다며 혼자만의 수련에 더 맣은 힘을 쏟았기 때문.

"아빠가 이사가고 나서 곧바로 도장을 차리셨어.그러니까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듯이 수련생들이 찾아오더라고"

당연한 반응일것이다. 채린의 아버지,송태수 관장은 실력만큼 명성도 자자하니까.

그는 소년 시절부터 여러 무술을익히고,각국을돌면서 고수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오의를 배웠다.

그가 유명해진것은 우연히 찾아온 기회덕분이었다.

당시 무에타이 세계 챔피언인 세나무앙이 방어전을 앞두고 연습상대를 골랐는데,마침 태국에 있던 송태수가 그 상대로 발탁되었다.

송태수는 옆차기 한방으로 세나무앙의 오른쪽 넓적다리뼈를 부러트렷다. 단 일격에 무쇠만큼 단단한 넓적다리뼈를 박살낸것이다. 그의 나이 22살때 일이었다.

'그런데 이종 격투기클럽들의 러브콜을 죄다 거부했다지'

이후,송태수는 육군에 입대하여 군 생활을 하다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는 UN평화유지군에 지원했다.

탈레반과의 전투에서 실종되었던 그는 얼마후 탈레반의 포로로 방송에 나타났다. 탈레반은 한국군이 철수하지않으면 송태수 병장의 참수 동영상을 감상하게될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참수 당일 엄청난 영상이 전세계를 강타했다.

쇠사슬에 묶여있던 송태수가 괴력으로 쇠사슬을 절단내버리고 무장한 탈레반병사들을 박살낸뒤 간부를 인질로 잡아 버린것이다.

그 뒤로 한참동안 송태수의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요새 아빠는 눈코 뜰 새없이 바빠.굉장히 많은 오빠들이 아빠 밑에서 배우고 있고 ,군부대에서도 일일 교관으로 아빠를 초빙하곤 하거든"

"잘된다니 다행이네"

"너도 우리 도장 와서 한번 배워 보지 않을래?"

"글쎄.난 땀 흘리고 몸 쓰는건 안 좋아해서"

게임으로 하는건 몰라도 직접 움직이는건 사양이다. 특히 맞고 터지면서 격투기를 배울 마음은눈곱만큼도 없다.

"넌 주먹 쓰는것좀 배워야해.사내자식이 어릴때도 만날맞고다니더니 커서도 변하게 없잖아"

저번에 비곗덩어리에게 맞은 것을 두고말하는 모양이다.

"만날 맞고다닌건 아니야.그리고 사실말이지 날 만날 때린게 누군데?"

두 사람이 여기까지 말을 주고받았을때였다.

누군가의 손이 둘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 턱 하니 올라왔다. 유한과 채린은 손의 주인을 올려다 보았다.

"잠시 끼어들어도 되겠니?"

두사람을 ,아니 유한을 찾아온것은 박건우였다. 

머리의 가면은 벗어 버렸지만, 아직 레드 복장 그대로인.

"내가 왜 왔는지 알겠지?"

"아,그 일은 미안하게 됐어요"

"미아낳다고 하면 끝날것 같나?"

박건우가 화가 난얼굴로 으르렁거렸다.

"그래도 공연을 아주 망친건 아니잖아요"

"뭐?"

갑작스레 공연 이야기가 나오자 박건우가 오히려 혼란스러워졌다. 이놈은 아직 자신의 정체를 모른단 말인가? 박건우는 다시한번 유한에게 말을 건넸다.

"너 내가 누군지 모르는거냐?'

"알죠.브레이브 레레인저의 레드 아저씨잖아요"

"그거 말.......뭐? 너 지금 날더러 아저씨라고 했냐?"

"왜요? 아저씨더러 아저씨라고 한게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습니까?"

올해로 24살이 된 박건우.

삭지 않은 준수한 얼굴 덕분에 '잘나가는 오빠'로 통하는 그에게 있어,아저씨란 말은모독이나 다름이 없었다.

평소 그가 제일 싫어하는말도 아저씨였다.

게임식으로 하자면 '대장장이에게 도발을 당하셨습니다'라고 말할수 있는 상황.

"유한아 ,저사람 왜 저러는거야?"

"몰라,이 아저씨 아직도 내가 다크페이건의 졸개인줄 아나봐"

유한이 유들유들하게웃으며 말하자 박건우의 분노게이지는 100을 돌파했다. 게임에서 당한것도 서러운데 현실에서 이런 취급까지 받자 박건우의 이성은 뚝 끊어졌다.

"이 대장장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퍽!

유한의 멱살을 잡아 일으킨 박건우는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유한이 땅바닥에 나뒹굴자 주변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우와!레드가 사람 쳤다!"

"브레이브 레인저잖아. 정의의 사자가 저레도 되나?"

"신고해야 하는거 아냐?"

"그러게.애들 교육에 안 좋은데......."

박건우는 그제야 자신이 레드의 의상을 그대로 입고 나왔단것을 깨달았다.

깨달은것은 그만이아니다.

유한도 박건우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대장장이란 말과 귀에 익은 고함덕분에 상대가 누군지 알수 있었다.

퀘스트때 마주쳤던 검은  초승달 길드의 장 키라라는것을.

"이 아저씨가 미쳤나 !어디서 현피 뜨고 지랄이야!"

유한은 벌떡 일어나서 박건우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박건우는 유한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이 새끼가 누구더러 자꾸 아저씨래?"

"커억!"

주먹을 피한 박건우는 무릎으로 유한의 복부를걷어찼다.유한이 비틀거리며 물러나자 곧바로 잡아서 팔꿈치로 등을때려 쓰러트려다.

떄리는 폼이 예사롬지 않았다. 꽤나 많이싸워본 솜씨다 .유한은 학교 다닐 적에 양아치들에게 실컷 맞아 봤기에 확실히 느낄수 있었다.

"크윽!"

"일어나,새꺄.말로 할려니까 감히 내 성질을 긁어놔?"

박건우가 유한의 머리채를 잡고 일으키려 할때였다.

누군가 그와 유한 사이에 끼어들더니 박건우를 확 떠밀었다.

"넌 뭐야?"

"아저씨 뭔데 자꾸 내 친구 때려요?"

유한에게서 박건우를 밀쳐낸것은 채린이었다.

아저씨란 말에 박건우의 마음이 적잖게 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람들이 빤히바라보고 있는데 여자애를 떄릴수는없는일.대신 그는 손가락으로 채린의 볼을 콕콕 누르며 으름장을 놓았다.

"쥐뿔도 모르면나서지 마라.그러다 다치면 너만 손해다 ,응?"

세번째로 채린의 볼을 찌를때였다.

채린의 손이박건우의 얼굴을 철썩 후려갈겼다. 박건우의 고개가 빙글 돌아갔다.

꽤나 매서운 따귀.

박건우는 피식 웃었다.

계집애치고 꽤 세다고 생각했는데 입술이 터지며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하나 뚝 떨어졌다.

채린이 날린따귀는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박건우의 이성을 날려 버릴정도로.

"이런 빌어먹을 계집애가!"

박건우의 귀에는 주변사람들의 야유나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그는 채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일이 얼마나 커질지는 생각하지않았다. 사실 이미 커질대로 커지지 않았는가.

"윽!"

채린은 박건우의 주먹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 묵직한 일격은 그녀의 가느다란팔로 온전히 받아낼수 없는 수준 이었다. 뒤에서 유한이부축해 주지않았다면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을것이다.

"죽어 ,이 쌍년아!"

박건우는 재차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는 세상이 뒤집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온몸이 둔한 충격이 전해졌고 ,감자튀김 조각과 음료수방울이 그의 눈앞에서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사람들은 보았다.여자애가 휙 돌아서더니 레드의 멱살을 잡아서 거꾸로 내다 꽂아 버리는 광경을 .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쓰러진 레드는 꿈쩍도 하지않았다. 뒤늦게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비원들이 실신한 레드를 끌고 갔지만, 아무도 정의가 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악당을 퇴치한 소녀는 친구를 돌보고 있었다.

"유한아 괜찮아?"

"끙, 뭐 이정도는........"

유한은 아무것도 아니라도 이야기하려다 흠칫했다. 채린의 손목에 멍 자국이 남아있었다.

분명 아까 박건우의 주먹을 막다가 생긴것이 틀림없었다.

"너 손목 안 아프냐?"

"아,이거? 헷, 뭐 침좀 바르면 낫겠지"

채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씩 웃었지만, 유한의 표정은어두웠다.

'그러고 보니 그때 밀렸을때..........'

엉겁결에밀려난 채린을 부축했었다.

채린의 어깨는 작았다. 팔은 가늘었고,몸은 가벼웠다.

어릴때는 동네 대장이라 참 강하게 보였는데 ,7년이란 세워링 지난 다음 다시 만난 채린은 자신보다 자그마한 소녀였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자신을 지켜 주었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임에도 친구라면서 말이다.

"자,괜찮으면 얼른 먹고 다른거 타러가자 롤러코스터도 타야하고 바이킹도 타야돼 .오늘내로 다 타봐야 한다고"

이후로 채린과 함께 이런저런 살 떨리는 놀이기구들을 탔지만, 유한은 스릴감을 만끽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차있었다.

하지만 그 복잡한 생각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이대로는 언제나 지금처럼은 곤란하다는것이다.

3

채린과 함께 놀이공원에 간 이튿날 아침.

여느때와 달리 일찍 일어난 유한은 서둘러 준비를 하고 집을 나왔다.

버스를 타고 간곳은 시내 근처의 제법 큰 체육관이었다.

비록 건물은 오래 되었지만 수리를 해서인지 깨끗했고,입구에는 '대한 극기도 도장(大韓 克己道 道場)'이라는 큼직한 간판이 걸려 있었다.

'여기가 그 유명한 극기도 도장이구나'

극기도는 현재 유명세를 얻고 있는 신종무술이다.

이종격투기 대회에서 극기도 수련생들이 챔피언 타이틀을 휩쓸고 있는데다가,특수 부대에서도 도입을 서두를 정도로 위력을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극기도가 등장한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효율적인 수련 방식과 강한 실전성, 거기에 적절한 화려함까지 갖추고 있어 수련생들이 빠르게 늘고 있었다.

인터넷에 극기도라고 치면 관련 동영상들이 수두룩하게 튀어나왔다. 대부부이 실전 대련 영상들이었다.

유한도 지난밤 여러무술들을 검색하다가 극기도 동영상을 보았다.

빼빼 마른 사내가 레슬러같이 덩치 큰 거구의 남자를 가볍게 처리하는것을 보고 극기도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극기도 도장을 찾았는데,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극기도의 본원(本院)이 있었다.

그곳이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체육관인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꽤 많나 보군'

아침임에도 체육관 안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체육관 앞 주차장에는 스포츠카나 고급 세단들이 섞여 있었는데,개중에는 쉽게 볼수 없는 최고급 차량들도 있었다.

대체 이런 차를 끌고 다니는 수련생은 어떤 사람인가. 최근에 영화배우들도 극기도를 배운다고 하던데,꽤 유명인사를 볼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한은 조심스럽게 도장문을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도 크게 들리던 기합 소리가 안에서 더 크게 들렸다.

'우와,대단하다!'

도장안을 둘러본 유한은 입을 떡 하니 벌렸다.

이건 여느동네 도장들과 수준이 완전히 틀렸다. 도장 한 구석에는 역기를 비롯해 온갖 운동 기구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고,한가운데는 사각의 링까지 있었다.

걸려 있는 샌드백도 10개는 넘는듯했고,수련 용도인기묘한 도구들도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유한의 입을 벌어지게 한것은 수련생의 숫자였다.

사람이 많다 싶었지만, 아침부터 수십명은 족히 될 사람들이 까만 도복을 입고 체육관안에서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런닝으로 몸을 푸는 수련생, 줄넘기를 하는 수련생,샌드백을 치는 수련생에 대련을 하는 수련생들까지.

동네 코흘리개 들만 있는 도장과 다르게 수련생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청장년의 남자들이었다 .유한의 또래는 서너명 정도에 불과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귀에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본 유한은 깜짝 놀랐다.

"어? 아저씨는!"

유한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십인장 자칼이었다 .차림새나 헤어스타일이 틀려도 얼굴에 있는 흉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어라,너 혹시?"

자칼도 유한을 알아본 모양이다.

유한은 꾸벅 인사를 하며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제가 바로 그 대장장이입니다"

"오!반갑네.웬일이냐.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거야?"

"저,그게 사실은..........."

유한이 대충 이야기를 하려 할때였다.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우람한 체격의 중년 사내가 나왔다.

"곽 사범 ,무슨 일이야?"

"헉!"

중년 사내를 본 유한은 깜짝 놀랐다.

덥수룩한 이 중년의 털보도 안면이 있었다. 

바로 자칼의 상관이자 타이거 용병대의 길드장인 길포드가 아닌가.

그런데 길포드와 자칼이 왜 여기에 있는것인지 유한은 어리둥절했다.

"관장님 ,이 녀석 아시죠? 지그가 우리 도장에 찾아왔습니다"

"지그? 개척대 퀘스트를 같이 했던 지그?"

길포드,아니 털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길포드더러 관장이란다. 그렇다면 길포드가 바로 이곳 대한 극기 도장의 관장이라는 말이 아닌가.

놀란 유한에게 길포드가 다가와 반갑다며 등판을 펑펑 두들겼다.

"허허,세상 한번 넓고도 좁구먼 ,으하하핫!"

"켁!아파요,아프다고요"

몇번 유한의 등을 두들긴 뒤 길포드는 물었다.

"그래,여기는 무슨 일로 온거냐?"

"저기.......그러니까 싸움하는것 좀 배워 보려고요"

이왕이면 현재 최고의 실전 무술을 배워보자며 극기도장을 찾아왔다.

"싸움? 너 싸움 잘하잖아"

"그거야 게임에서나그렇죠"

"게임에서나 그렇다고? 그럼 평소에는 운동 같은거 전혀 안했냐?"

"운동했으면 이렇진 않겠죠"

유한은 자신의 팔뚝을 보여주었다. 알통과 근육으로 우락부락한 자칼이나 길포드에 비하면 성냥개비 같은 팔이었다.

"허허,거참.전투에 센스 있는 녀석이다 싶어서 나름대로 단련을 했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몸보다 머리를 더 단련한거겠죠.이미지 트레이닝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원래 캡슐, 버츄얼 시뮬레이터의 용도가 그런 식의 경험을 쌓아주는 기구 아닙니까"

"그렇지 .곽 사범 말대로 캡슐은 원래 그런 물건이니까"

길포드는 근엄한 표정을 하고유한을 내려 보았다.

유한은 마친 산속의 호라이가 자신을 조용히 노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게임에서도 이렇게 위압감을 받지는 않았는데,역시 현실과 가상현실의 차이는 존재하는 모양이다.

"싸움을 배우고 싶다라.........하지만 우리 도장은 아무에게나 싸움을 가르쳐 주진 않아.누가 칼을 쥐냐에 따라 요리 도구가 될수도 있고,살인 도구가 될수도 있으니까"

"남을 때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애초에 찾아올 이유가 없다.

당장에 무술을 배우자,싸움을 잘해보자 각오한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하나뿐인 친구에게 언제까지 기대고 싶지 않아서요"

"오오 친구 때문인가"

엄하던 길포드의 표정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옛날처럼 절 지켜줬어요.하지만 이제는 제가 녀석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단한번이라도 말입니다"

길포드와 자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폐인 같은 생활을 해서인지 몸이 부실하긴 해도 눈빛만은 살아있다.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쉽게 포기할녀석도 아니다.

게임에서 보았던 악바리 근성이라면 원하는 만큼 성취를 이룰것이다.

"좋아,그런 마음이라면 얼마든지 가르쳐주지"

"후후,이 자칼. 아니 곽대발님이 모든 기술을 전수해주마"

본명을 밝힌 자칼은 맡겨만 두라는듯 가슴을 팡팡 두들겼다.

"그런데 너 이름이?"

"제 이름요?"

"지그는 게임에서 이름이잖아. 네 진짜 이름이 있을 게 아냐?"

곽대발의 말에 유한은 곧방 본명을 밝혔다.

"강유한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오 ,유한!우리 딸내미 옛날 소꿉친구 이름도 강유한 이었지"

"예?"

반갑다며 이야기하는 길포드에 유한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길포드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예전에 단골이었던 슈퍼 사장의 아들놈이었지. 그놈 얼마나 컸을지 궁금해지는걸?"

유한은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는것 같았다.

총알이 날아와 머리를 산산이 부숴 놓는 듯한 충격이었다.

설마 아니겠지.우연일 뿐이겠지.그럴것이라 믿은유한은 길포드에게 말을 건넸다.

'확실하게'확인하고 싶은것이 있었다.

"혹시 그 가게 이름이 행복 마트입니까?"

"오 ,맞는데 어떻게 알았지?"

"사장님 성함은 강영후라고...........맞습니까?"

"그게 강 사장 이름이었지.근데 너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

당연히 알수밖에 없지 않는가!

바로 유한네 가게였고,가게 주인은 유한의 아버지니까.

충격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보고,길포드도 대략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딸내미 옛날 소꿉친구랑 이름이 같은 녀석이 과거 단골 가게 사정까지 알고 있다면 결론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너,유한이였냐!"

"크악!꽃가게 송 건달!"

꽃가게 송건달은 채린이 아버지의 한때 별명이었다.

꽃가게를 하는 채린이 어머니를 빗대어 수련을 한답시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 송태수에게 붙은 별명이었다.

길포드가 꽃가게 송건달, 아니 송태수였다니!

유한은 벼락에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사실 눈앞의 털보가 채린의 아버지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옛날에는 얼굴도 미끈하고 차림새도반듯하던 양반이 어째서 지금은 수염이 덥수룩한 털보에 추레한 중년 남자가 된것인가?

'저 녀석이 바로 그 꼬맹이였을 줄이야!'

송태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그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들었나 생각해보니 채린에게서 들었던 모양이다.

한번은 녀석답지 않게 게임을 오래하기에 마누라가 타일렀더니,채린은 게임하다가 옛날 친구 유한이를 만났다고 이야기했다.

"유한이가 글쎄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하더라고요.캐릭터 이름은 지그라고 하는데......."

그때 그 이야기를  송태수는 지나가다 들었다.

그러나 대한 무술 총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오느라 피곤했기에 머릿속에 깊이 담아 두지 않았다.

"이건 사기야!"

유한과 송태수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유한은 그 껄렁한 길포드가 대한 극기도 관장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고,송태수는 자신의딸이 눈앞의 이 비리비리한 녀석과 어울려 다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다.

'역시 예사롭지 않은 인연이었던 거군'

곽대발은 충격에 빠져있는 두사람을 향해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두 사람의 머릿속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떠오르고있을 것이다.

-혼란에 빠지셨습니다. 60초동안 움직일수 없습니다.

4

시간이 지나자 상호아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어차피 부정하려고 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고,두사람에게 있어 미래가 더 중요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송 건달이 극기도의 창시자일 줄은!'

송태수가 유명하긴 했지만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평판은 안좋았다. 사지 멀쩡한 사내놈이 예쁜 마누라 등쳐먹으며 싸움질만 하고 다닌다고.

물론 송태수는 깡패나 조폭은 아니었고,오랜 수련 끝에 완성한것이 극기도였고,극기도를 완성한 시점에 도장을 차리게 된것이다.

유한도 처음엔 그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체육관 벽면에 걸린 송태수의 사진들을보자니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진들은 전부 송태수가 극기도를 창시한 이후의 활동들을 찍은것이었다.

"그래,내 도장을 찾아온 이유는?"

"아까 말했잖아요.친구를 위해서 싸우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옛날부터 알던 사람임을 알게 되자,유한의 말투도 조금은 편해졌다.

사실 일찍 간파했어야 한다.

이터널 월드에 갔을때 채린이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가. 아버지가 도장을 열었고 수련생도 많고 군부대에 일일 교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라고.

"친구라..........그 친구가 혹시 채린이인 거냐?"

송태수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빛났다.유한은 어떻게 말할까 주저하다가 직접적인 답변은 회피했다.

"채린이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오냐,알았다.하지만 네가 명심할것이 하나 있다"

"그게 뭔데요?"

순간 유한은 꿀꺽 침을 삼켰다. 송태수의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마치 호랑이가 회등잔만한 눈을 코앞에서 번득이고 있는것 같았다.

"너 채린이한테 껄떡대다가 뒈.진.다.알겠냐?"

어릴땐 같이 놀아도 뭐라지 않던 사람이 왜?

하긴 이해 못할것은 아니다. 하나뿐인 딸이 참하게 컸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주변에 도사리는 늑대들을 그냥둘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고보니 채린이 녀석 .정말 예뻐졌단 말이야'

예전과 다른 녀석의 귀여운 미소와 늘씬한 자태를 생각하면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굴은 왜 붉히고 있지?"

비수처럼 날아든 송태수의 지적에 유한은 서둘러 변명했다.

"그,그냥 아저씨에게 무술을 배울것을 생각하니 좀 흥분돼서요"

'요놈 자식,거짓말을하고 있군'

좀 전의 진심어린 눈빛과 다른 거짓된 혓바닥.

그러나 송태수는 유한의 거짓말을 탓하지않았다.유한을 갈굴 사람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이봐,대발이"

"옛, 관장님"

"요 녀석을 자네에게 맡기지.삼 주 줄테니까 그사이에쓸만한 몸으로 만들어놔"

"후후,이 주면 충분합니다"

송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칼, 아니 곽대발은 2주가 아니라 1주라도 저 비리비리한장작개비를 쓸만한 재목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과거 그의 군대 보직이 해병대 훈육관이었으니까.

"근데,여기 수려비는 얼마죠?"

유한은 엄마 몰래 가져온 돈이 있지만, 혹시모자르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물론 그 걱정은 송태수가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걱정마라 .수련비는 필요 없으니까"

"필요 없다고요?"

"애들의 코 묻은 돈은 받지 않아. 그게 우리 도장의 원칙이다"

그만큼 극기도 도장이 잘 나가고있다는 건지.

그러나 유한은 그저 장사가 잘되는 모양이라 생각하고 넘길수 없었다.수련비가 공짜인데도 또래의 수련생들이 서너며뿐이라는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서서히 밝혀지려 하고 있었다.

곽대발이 도복 하나를 꺼내 오더니 유한에게냅다 던지며 말했다.

"십초 만에 갈아입는다. 실시!"

"예?"

"뭐 하나.구초 남았다!"

곽대발의 벼락같은 고함에 유한은 그 자리에서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었다. 물론 10초만에 갈아입었을리는 만무했다.

"굼뜨군.정확히 1분 15초 걸렸다"

"그게.......도복 입는게 적응이 안돼서"

나름대로 빨리 입긴했지만, 유한은 엉망으로 도복을 걸치고 있었다. 상의는 뒤집어 입었고,허리띠는 제대로 매지 못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나? 1분5초 초과했으니 그에 따른 처벌은 각오하고있겠지?"

"아니 ,그걸로 처벌 운운하기는 좀......"

"앉는다.실시!"

"저기요.여기 도장이지 해병대가 아니잖아요"

"실시!"

곽대발의 위압감에쫄아버린 유한은 더이상 찍소리도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곽대발은 유한을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일어나,앉아!일어나,앉아!어허,동작 봐라!"

나름대로 유한이 빠릿빠릿하게 쫓아간다고 애를 썼지만 ,곽대발에겐 어설퍼 보일 따름이었다.

"저쪽에 벽 보이나?손 짚고 도로 뛰어 온다. 실시!"

"저기요,아저씨 이거 정말 수련 맞나요?"

유한이 송태술르 보고 물어봤지만, 송태수는 바쁘다며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어이가 없어 멍하니 서 있는 유한을 곽대발이 냅다 엉덩이를 걷어찼다.

"실시!빨리 뛰엇!"

굴러가다시피 반대편 벽쪽으로 쫓아가는 유한을 보며 다른 수련생들은 재밌다는 듯 키득거렸다. 그중의 몇몇은 유한과 개척대 퀘스트를 함께 했던 이들이다.

바로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길드원들.

그에 반해 구석에서 수련하고 있던 유한 또래의 수련생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다만 지옥에서 함께할 동지가 늘어나서 기쁜듯했다.

                                        BY RA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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