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초승달 길드
1
개척대 퀘스트 2일째.
유한이 포함된 행렬이 드디어 네메시스 산맥에 발길을 들였을때였다.
"몬스터다!"
"어디?어디?"
개척대 행렬의 앞에 10여마리의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녀석들으 짐수레를 습격할듯 다가왔다가,수십명의 유저들이 포진한것을 보고 재빨리 발걸음을 돌렸다. 드림맥스의 우수한 인공지능이 이럴때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서라!거기 안서냐!"
"몬스터라면 당당하게 싸워라,이놈들아!"
첫째날과 둘째날에 걸쳐 위험이없자.유저들은 긴장이 나사끝까지 풀려있었다.
그들 중 일부가 고블린들을 쫓아가자,나머지는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기 바빴다. 누가 고블린을많이 잡을까 하고 내기하는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고블린들을 쫓아가던 유저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제일 뒤쳐져 도망가던 고블린들이 뒤를 돌아보며씨익 웃는다 싶은 순간.
"크악!사람 살려!"
"아아악!"
추격하던 유저들은 함정에 빠지거나,올가미에 걸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주변 수풀 속에서튀어나온 수십마리의 고블린들이 고성을 지르며 함정에 빠진유저들에게 독침을 쏘아댔다.
"아니,몬스터가전술을 !"
유저들은 깜짝 놀랐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뿌우우!
바위 위에 올라선 홉 고블린이 뿔피리를 불자 숲속에 매복해있던 수백마리의 고블린들이 한꺼번에모습을 드러냈다.
레벨은 유저들보다 낮지만, 한꺼번에많은 숫자가 나타나니 다소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병사들은 방어 대형을 구축하라!"
"상인과 일꾼들은 수레 밑으로 피해라!"
기욘의 명령에 병사들은재빨리 방어대형을 갖추었다.
그러나 유저들은 달랐다.
특별히 누구하나 지시하는 사람도없고,설령있다해도 들을 유저들이 아니었다.
초전에 당한 유저들이 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고블린을 가볍게 생각했다. 몬스터중에서 약한 편에 속한 고블린에 대한 무지와 경시때문이었다.
다들 느긋하게 서서 고블린들과 맞서 싸웠다.
"쯧쯧!저러다 큰코 다칠텐데......"
뒤에서 유저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유한은 혀를 찼다.
네메시스 산맥의 몬스터는 험한 지형만큼 흉포하기 짝이없다. 비록 몬스터 먹이 사슬의 가장 아래에 위치하는 고블린이라지만 평균 레벨이 35.유한이 링켈산에서 싸웠던 오크보다 높았다.
더구나 놈들의 숫자는 유저와 NPC를 합친것보다 배는 더 많았고,홉고블린의 지휘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놈들은 NPC병사들의 방어선이 견고하다는것을 알자,상대적으로 느슨한 유저들에게로 전력을집중했다.
고블린들이 한번에 벌떼 공격을 펼치자 유저들이 맡은 방어선의 일부가 그대로 무너졌다
"으악!살려줘!"
"난 요리사란 말이야!"
고블린들이 방어선을 뚫고 난입하자 난리가 났다. 전투능력이 고블린보다 못한 생산직 유저들은 혼비백산해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들로 인해 진형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생산직 유저라고 해서 모두도망간것은 아니다. 이 와중에서도 침착히 대응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유한과 리지스였다.
"암 브레이크!"
"돈 던지기!"
유한은어제 처음 실전에서 써 본 암 브레이크를 고블린들을 상대로 마구 남발했다.
스킬의 성패가 들쑥날쑥했지만, 효과는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무구의 내구가 깎여서 놀란 고블린들이 주춤하면 급소를노려 검을 찔러 넣었다.
반면, 리지스는 품속의 돈을 끄집어내기에 바빴다.
돈 던지기.
상인들의 호신용 스킬이다. 상행중에만난 몬스터를 물리치기 위해 설정된 스킬인데,동전을 던져 몬스터를 맞추는것이다. 스킬 숙련도가 올라가면 동전 하나로 몬스터의 단단한 이마를 꿰뚫을수 있을정도로 위력이 상승한다.
이돈던지기를 5랭크 이상 올리면 범위 공격 스킬인 '돈뿌리기'를익힐수있다.
상인에겐 이것 외에도 몇가지 공격 스킬이 더 있었다.
대륙 각지로 상행을 나가는 그들을 배려한 것으로,덕분에 다른 생산직들보다 높은 전투력을 가질수 있었다.
던지는 동전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리지스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아놔!님들아 ,빨리 고블린 좀 몰아내 주삼"
"호위를 맡은 님들은 고블린이랑 노는건가여?"
"제길,여기서 내가 죽으면 댁들 책임입니다!"
여기저기서 생산직 유저들의 항의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호위를 맡은유저들이라고 해서 형편이 좋은것은 아니었다. 당장 눈앞에 달려드는 고블린들을 해치우는것만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건 NPC병사들도 마찬가지.
"그러게 처음부터 방어진형을 탄탄히 구성했어야지"
유한은 고블린 한마리를 해치우며 혀를찼다.처음 고블린무리가 공격해 왔을때 병사들과 함께 방어진을 제대로 짰으면 이렇게 난리가 나지는 않았을것이다.
고블린의 공격이 드세어지자 생산직 유저들의 아우성이 더 커졌고,급기야 몇몇이 고블린에 잡혀 죽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퀘스트는 여기서 어이없이 끝나고 마는것일까?
3
"크허허허헝!"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 ,엄청난 포효가 네메시스 산맥을 쩌렁쩌렁 울렸다
공격을 하던고블린도,공격을 막아내던 유저들도 고막을 찢어버릴듯한 포효에일순 동작을 멈추었다. 무협 온라인 게임이었다면 가히 사자후라 칭할만했다.
"이놈들,보자보자 하니까 아주 가관이구나!"
사자후를 터트린 사람은 바로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길포드였다. 그는 자신의 키보다 크고 날이 넓은 기형검을 마치 풍차처럼 휘두르며 고블린 무리로 뛰어들었다.
추풍낙엽.
마치 빗자루로 마당을 쓸어내듯 칼질 한번에 고블린 수십마리가 쓸려 나갔다.
"뭐,뭐야? 어떻게 된거야?"
유한의 눈이 휘둥그레였다.
방금 전만 해도 길포드는 다른 유저들과 다를바 없이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사자후를 토한 이후,고양이에서 호랑이로 변신한것처럼 사납게 날뛰었다.
"쯔쯔,대장이 열 받았구먼"
"애들이 빌빌거리니까 그런거잖아"
달라진것은 길포드만이 아니었다 .길포드의 부하들도 언제 고전했냐는듯,고블린들을 닥치는대로 베어 나갔다.
그러나 누구보다 돋보이는것이 길포드였다.
그의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싶은순간 그 주위로 폭발이 일었다. 폭발에 휩쓸린 고블린들은 순식간에재가 되어 사라졌다.
소드 익스플로전(Sword Explosion).
최상급의 전사만이 익힐수 있는 범위 공격 스킬이다.
그렇다는말은 길포드가 그저 그런 유저가 아님을 뜻했다.
"서,설마!"
유한도 이제 생각났다.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것 같다고 했는데,정말 저 아저씨가 '폭풍의 길포드'였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길포드의 부하인 자칼이 레드 타이거 용병대라고 운운한것이 생각났다.
"크헝!모조리 죽여주마!"
길포드의 모습은 폭풍이었다.
길포드의 검은 폭풍의 핵이었으면,길포드가 일으킨 바람은 거센 태풍이 되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선두에있던 고블린 무리가 싹 몰살당하자 겁을 집어먹을 고블린들이 등을 돌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상대가 강하다는것을 인식한것이다.
홉 고블린이 싸우라고 거듭 명령을 내렸지만,한번 무너진 기세는 되돌릴수 없었다.
"폭풍의 길포드라니!그 초고렙 유저가 왜이곳에?"
"저것봐!주특기인 폭풍 휘두르기야!"
"헉,동영상으로 보던 거와 똑같잖아!"
유저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설왕설레햇다.
폭풍의 길포드는 아르페디아 온라인을 이끌고 있는 상위 랭커중 한 사람이다. 랭킹은 45위.
그의 직업은 용병이다. 주로 돈을 받고 의뢰인이나 의뢰길드를 위해 싸우는데,한번도 져 본적이 없다고 한다. 길포드가 유명해진것은 아르페디아 온라인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철십자 길드의 장'노벨'을 전사시키면서였다.
노벨이야 래킨 42위의 마법사기 때문에 충분히 죽일수 있다지만, 랭킹 4위의 기사 베히모스를 따돌리고 그렇게 했다는것은 가히 놀랄만한 전과였다.
"폭풍의 길포드가 이런 빈티나는 아저씨였다니"
유저들이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사이 전투가 끝났다.
숲속 깊숙한곳까지 고블린들을 추격했던 길포드는 검과 갑옷에 푸른피를 잔뜩묻히고 돌아왔다.
"몇이나 당했나?"
길포드의 물음에 자칼이 대답했다.
"생각보다 피해가 컸습니다. 초반에 튀어나갔던 녀석들은거의 다 죽었습니다"
초반 고블린의 유인에 넘어간 유저들은 9명.이중에 7명은 독침 세례를 받고 운명을달리(?)했다. 그외에 죽은 유저는 생산직 2명이 다였다.
"어떻게 할까요? '부활의 성수'라면 넉넉히 챙겨와습니다"
부활의 성수는 죽은 유저를 되살리는 값비싼 아이템이다.
개당 1,500골드라서 초보들은 살 엄두를 못내지만 레드타이거 용병대는 자신들뿐만 아니라 퀘스트에 참가한 유저들을 몇번이고 살릴만한 분량을 챙겨왔다. 행렬에서 낙오되면 바로 탈락이기 때문에.
그러나 길포드는 고개를 저었다. 죽은 유저들이 살려달라 메시지를 띄워도 그는 깨끗이 무시했다.
"내버려둬.고블린 따위에 죽는 놈들은 끝까지 데리고 갈 필요가 없어"
그러면서 길포드는 유한을 바라보았다.
대장장이 주제에 겁도없이 고블린들이랑 싸우기에 죽진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멀쩡히 살아있었다. 스태미나가 떨어졌는지 헉헉대고 있긴 하지만.
'훗,제법이군'
절대 평범한 대장장이 캐릭터가 아니다.
대체 어떤 녀석일까?
하지만,길포드의 생각은 이어지지못했다. 기욘을 비롯해 NPC들과 살아남은 유저들이 감사를표하기 위해 그의 앞으로 몰려들고 있었기때문이다.
3
키라는 도적이다.
하지만, 그는 물건을 훔치는 대신 남의 목숨을 훔친다.
초보 시절 도적으로 전직하고,100건의 청부살해 퀘스트들을 한번의 실패없이 완수하여 어쌔신(Assassin)의 칭호를 얻었다.
그 칭호에 어울리게 현재 직업도 암살자.
키라는 아르페디아 온라인 89위의 초고렙이고,어썌신 랭킹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다.
'검은 초승달'이란 청부 길드의 장이기도 한 키라는 지금 관청으로 가고 있는중이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처구니없게도 도적이라면 잡아죽이지 못해 안달인 NPC관리가 부른것이다.
'도대체 무슨 퀘스트이기에?'
카라가 도착한곳은 브로딘 왕국의 재무성이었다. 왕국의 재정과 통상에 대한 모든업무를 관장하는 기과나.
그 기관의 총수는 재무대신 세르코 백작이다. 바로 그가 카라를 부른 NPC관리였다.
"부르셨습니까?"
세르코백작은 카라의 인사를 받는둥마는둥 하며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가 이야기했다.
"바르카스 왕국에서 노스아크로 무역개척대를 보낸걸 알고 있겠지?"
"예,소문으로 들었습니다"
그덕분에 앞으로 노스아크가개방될거라는 등.값싸고 질 좋은 무구를얻을수 있겠다는둥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암살자인 자신을 부른것과 무슨 상관일까.
"다른 나라에서 노스아크와 교역하기 위해서는 항상 우리 브로딘 왕국을 거쳐야 했지.바르카스 역시 마찬가지였고"
"알고 있습니다"
노스아크는 네메시스 산맥과 얼음의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로 외부와의 통하는 유일한 길이 브로딘 왕국과 이어져 있다.
덕분에 브로딘 왕국은 지금까지 노스아크와의 무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했고,다른 나라 상단들은 막대한 상세(商稅)를 지불해야 노스아크와 교역할수 있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적용되어 있었던 게임의 배경 설정이다.
"만약 바르카스의 무역 개척대가 노스아크와 통하는 또 다른 무역로를 만들게 되면 사정이 달라지게 돼"
"브로딘 왕궁의 수입이 줄겠군요"
키라는 왜 세르코 백작이 자신을 부른건지 알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바르카스와 우호적인 관계다. 그런일로 군대를 움직일수 없어.그렇다고 바르카스가 노스아크와 무역로를 만들는것을 그냥 두고 볼수도 없는 일이고......."
"다시말해'더러운일'을 해줄놈들이 필요하다 이거군요"
'바로 그거야"
바르카스의 개척대가 무역로 개척에 실패한다면 브로딘은 지금처럼 앉아서 돈을 벌수 있다.
물론 알아서 실패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것보다 감을 흔들어 떨어트리는게확실하다.
"이번일은 내 독단이다. 국왕 폐하께선 전혀 모르시는 일이지.일을 잘처리해준다면 섭섭하지 않게 보상해 주겠다"
세르코의 말이끝나자 카라의 눈앞으로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개척대 습격 퀘스트]
-바르카스 왕국이 노스아크로 대규모 무역 개척대를 보냈다.
브로딘의 재무대신 세르코는 이를 우려하여 그대에게 은밀한 임무를 맡기려 한다.
브로딘 왕국의 미래를 위해 바르카스의 무역 개척대를 저지해보지 않겠는가?
내용을쭉 읽어본 카라는 아래쪽으로 눈을돌렸다.
[기한 : 바르카스 왕국을 출발한개척대 행렬이 노스아크에 입국하기 전까지.
1. 이 퀘스트는 참가자를 모을수 있습니다.
2. 바르카스 무역 개척대 행렬에 한해서 PK를 허용합니다.
3. 개척대의 마차뿐 아니라 유저들의 마차나 카트에 있는 아이템도 약탈 가능합니다.
4. 실패 시 패널티가 주어집니다. 세르코와 밀약을 발설할 경우 명성을 5,000상실합니다.
5. 보상으로 10만골드를 받습니다. 참가자는 '음지의 애국자'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호오!"
보상으로 10만골드 받을수 있을 뿐만아니라 개척단이 갖고 잇는 아이템도 강탈할수 있다. 거기다 합법적인 PK까지.
무엇보다 카라의 눈에 들어오는것은 음지의 애국자라는 칭호였다.칭호는 명성을 높여주거나 숨겨진 퀘스트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는 요소이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수 없었다.
"어떤가.나의 의뢰를 받아들이겠나?"
-개척대 습격 퀘스트를 수행하시겠습니까?
안내창까지 떠올랐지만, 키라는 금방 결정을 내리지못했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것이 있었기 때문.
'개척대 쪽에 레드 타이거 용병대가끼어 있다고 하던데'
폭풍의 길포드까지 있다고 들었다. 과연 퀘스트를 성공시킬수 있을까?
아니,충분히 서공시킬수 있을지도.
'개척대의 임무를 실패하게 만들면 되는 일이잖아'
세르코 백작은 정면 승부를 하라고하진 않았다.
어떻게든 상대방이 노스아크에 도착하지 못하게 저지하면 그만이다. 무슨수를 쓰든간에.
"그 의뢰 받아들이겠습니다"
"잘 부탁하네"
재무성에서 나온 키라는 곧장 길드원들에게 전체 쪽지를돌렸다.
한번도 의뢰를 실패한적이 없다는 레드 타이거 용병대에게 한방 먹일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자신이.
"크크크,기대가 되는군!"
4
퀘스트 3일째
개척대원들은 험난한네메시스 산맥을 전진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길이 가늘어져 중간부터는 직접 길을 만들어 가야했다.
포장은 언감생심.수레가 지나갈수 있도록 나무를 뽑고 바위를 치우는데 일꾼 NPC들뿐만 아니라 생산직 유저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도왔다.
정해진시간에 퀘스트를 완수해야 하기에 마냥 구경하고 있을수 없었다.
-통나무 1개를얻었습니다.
-나무를 베었습니다.
[벌목 스킬]을 익히셨습니다.
아름드리나무가 쓰러지자 유한에게 새로운 생산직 스킬이 하나 추가되었다.
"벌목 스킬? 나무로 된 놈들에게 장작 패기보다 잘 통하려나?"
생산 스킬도 나름 쓸 만하다는것을 안 유한은 게으름을피우지 않았다. 직접 앞장서서 나무를 쓰러트리고,바위를 부쉈다.
바위를 부서트릴때는 그레인 스킬을 함께 사용했다.
그레인 스킬로 결을 보고 체굴 스킬로 내려쳤더니 바위가 훨씬 잘 부서졌다.
한나절동안 유한이 벤 나무와 부서트린 바위의 수는 개척대 내에서 단연 제일이었다.
"수고많네.오렌지 쥬스라도 좀 마시면서 해"
"고마워"
출발할때와 달리,리지스가 친근한 태도로 다가와 오렌지 쥬스를 건넸다. 마침 스태미나를 많이 소모했던 유한은 고맙게 받아 마셨다. 그런데.
"가격은 이십 골드야"
"뭐? 공짜 아냐?"
"얘는 .내가 무슨 자선 사업가인줄 아니?"
이런데서 바가지 상혼을 발휘하다니 정말 못 말리는 녀석이었다. 유한이 애써 무시하려하자 리지스는 근처에 잇던 NPC병사를 불렀다.
"병졸 아저씨!여기 먹튀 하는 놈 있데요!"
"알았어!주면 되잖아.이십 골드!"
"이십오 골드"
"그사이 올리냐!"
"빨리 안주면 또 오를걸?"
생산직 유저들이 길을 개척하는 동안 호위 병력들도 놀고 있진 않앗다.
"모두 조심해라.언제 어떤 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길포드는 시간이 날때마다 부하들의 긴장으 고취시켰다.
하나같이 믿을수 있는 싸움꾼들이엇지만, 방심은 금물이다.단 한번의 실수로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불패 전적이 무너져 버릴수 있었다.
"후후후!어떤 놈들이든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맞아요.지금까지 등장한 몬스터들 너무 약했다고요"
이곳까지 오면서 이들이 마주친 몬스터는 회색 오크와 라이칸 스로프무리였다. 고블린떄와 마찬가지로 네메시스 산맥에서 더욱 강해진 몬스터들이었지만, 유저들은 침착하게 그들을 막아냈다.
별 피해없이 막아낸 데는 길포드의 공이 컸다.
그가 유저들의 지휘관이 되어 방어진을 구축하고,선두에서 몬스터를 물리쳤다.
유저들은 불만없이 길포드의 명령을 따랐다. 불패의 전적을 가진 폭풍의 길포드가 통솔을 하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길포드와 레드 타이거 용병단의 활약 덕분에 개척대는 순조롭게 북쪽으로 전진해 갈수 있었다.
거기다 크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유한도 큰 활약을 해주고 있었다
"채굴!채굴!채굴!"
"오오오!바위가 순식간에!"
유한이 혼자 집채만한 바위를 부숴버리는것을 보고 유저들은 탄성을 아끼지 않았다. 유한 말고도 채굴 스킬을 익힌 유저들이 있었지만 ,저렇게 빠르고 능숙하게 바위를 쪼개지는 못했다.
그것은 그레인 스킬 덕분이었지만, 이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채석 스킬]을 익혔습니다.
-채석 스킬을 수련할수록 바위를 쉽게 쪼개고 석재를 많이 얻을수 있습니다.
-금광석 1개를 얻었습니다.
"앗싸!노다지!"
유한이 의외의 득템에 기뻐하고 있을때였다.
옆에서 돌조각을 치우던 유저가 갑자기 픽 쓰러졌다.
"뭐야,왜?"
유한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눈앞으로 뭔가가 날아왔다.유한은 반사적으로 곡괭이를 들어그것을 막았다.
'독침?'
곡괭이 자루에 박힌것은 까맣고 가느다란 독침.
고블린의 공격인가 했는데,고블린은 아니었다.
고블린들이 주로 쓰는 나무가시 독침이 아니라,날카롭고 반짝이는것이 분명 금속으로 된 것이었다.
아르페디아 대륙에서 이런 금속 독침을 사용하는이들은 한 부류밖에 없다.로그(Rogue)나 어쌔신 같은 도둑 계열의 캐릭터들 말이다.
"습격이다!모두 엎드려!"
유한의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NPC일꾼 하나가 독침에 맞고 쓰러졌다.
그러나 이번엔 그냥 당하지않았다. 레드 타이거 용병대의 십인장 자칼이 독침이 날아온 방향을 감지하고 손도끼를 날린것이다.
패래래랙!
"으악!"
시커멓게 위장하고 손에 바람총을 들고 있던 도적은 머리에 손도끼를 맞고 즉사했다.
기겁하고 엎드렸던 유저들은 죽은 도적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뭐야? 이자식 유저잖아?"
"얌마!너 왜 PK한거야?"
상황 파악이 안된 유저들은 죽은 도적을 둘러싸고 말을 건넸지만, 녀석은 아무 메시지도 띄우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마 접속을 종료했거나 마을에서의 부활을 선택한 모양이다.
"아까 그 녀석 처음 보는 놈이었지?"
"응,개척단엔 없는 녀석이었어"
"혹시 이번 퀘스트에 끼지 못했다고 깽판을 치는건가?"
유저들은 오래 잡담을 나누지 못했다.
그들을 공격하는 도적은한명만이 아니었다.
"한놈 더 있다!"
바위 뒤에 웅크리고있던 녀석이 튀어올라 길포드에게 단검을 날렸다. 일부러 그를 노린것 같았다.
길포드는 단검 공격을 여유있게 검으로 쳐냈다. 그러나 다음순간,얼굴에서 여유가 싹 사라졌다.
옆에서 갑자기 어쌔신이 등장한것이다.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 기척 조차 없었다.
허공을 격하고 나타난 어쌔신은 길포드의 옆구리로 자마다르(Jamadhar)를 찔러넣었다.
"대장님!"
캉!
찰나의 순간,어쌔신의 손에 들린 자마다르가 부러졌다. 유한이 끼어들면서 날린 암 브레이크 덕분이었다.
"쓸데 없이 나섰구나"
"흥!목숨을 빚져 놓고 그런 소리하지 마시죠"
여유있게 대꾸하던 유한은 눈앞에서 번갯불이 번쩍이는것을 보았다.
길포드의 검에 맞고 튕겨 난것은 쟁반만큼이나 큰 수리검이었다. 저렇게 큰것이날아왔는데도 유한은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갚았으니 된거지?"
길포드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스텔스 어택(Stealth Attack)!'
암기나 무기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도둑 계열의 스킬이다.
유한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상대는 평범한 어썌신이 아니다. 스텔스 어택은 익히기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가진 암살 스킬이다. 그걸 구사한다는 것은 눈앞의 어쌔신이 손꼽히는 고수임을뜻한다.
스텔스 어택 뿐만이 아니다. 은신 스킬도 절정에 달해 있었다.
달려들기전까지는 길포드도 그의 기척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으니까.
"대체 웬 놈이냐?"
"검은 초승달 길드의 장 키라입니다"
길포드를 공격했던 어쌔신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사이 처음에 길포드에게 단검을 날렸던 도적과 은신망토를 두른 도적이 키라의 옆에 섰다.
"오,네가 그 유명한 청부 길드의 두목이라고?"
"고명하신 길포드님께 인사는 해야할듯해서 나왔습니다"
유저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검은 초승달 길드와 그 장인 키라의 이름을 듣는순간, 유저들의 안색이 납빛으로 변했다.
그것은 유한도 마찬가지.바츠 시절에 키라라는 놈이나 검은 초승달에 대해서 들어본적이 있엇다.
세력은 크지 않지만, 약삭 빠르고 집요한 놈들이라고 들었다.
"겨우 인사를 하려고 내 앞에 나타난거냐?"
"자세히 말하자면 인사 겸 선전 포고지요"
키라와 그의 부하들이 전력을 기울였다면 일꾼 NPC생산식 유저 몇명 죽는것으로 그치지 않았을것이다.
"선전포고? 난데없이 나타나 무슨 개소리야"
잠자코 듣고있던 유한이 나서서 따지고 들었다.
영문을 모르는것은 길포드나 다른 유저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신들이 출발하고 얼마후 우리들에게도 퀘스트가 날아왔습니다."
"설마 연계 퀘스트가?"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노스아크로 가는것을 막는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그순간 경고음과 함께 공지창이 떴다.
[개척대 습격 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
-누군가 바르카스 왕국과 노스아크의 직통 무역을 방해하기 위해 암살자들을 고용했습니다. 이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정해진 기한까지 노스아크에도착해야 합니다.
"제기랄,뭐 이딴게 다있어!"
"이런 일은 미리 알여줘야지 않냐고!"
개척대에 참가한 유저들이 분통을 터트렸지만 유한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망할 드림맥스라면 충분히 이렇게 꾸미고도남았다.
'그래서 우리 용병단을 바르카스 왕국에서 고용한 것이었나?'
길포드는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레벨과 경험치를 올려준다고 저렙,중렙 길드원들을위주로 뽑아온것을 말이다.
퀘스트 난이도가 B급이라고 하더니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아시고 분발하시죠.우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신들을 저지하겠습니다"
"흥,이 길포드를 앞에 두고 큰소리를 치는거냐?"
"칠만하니 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자리에서 확 이놈을 요절내 버릴까.
그런 마음이 간절했지만 .길포드는 놈을쉽게 처리할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과 충분한 간격을 두고 있었고,곁에있는 놈의 두 부하도 여차하면 가세할것이 뻔했다.
게다가 좀 전과 같은은신술을 펼치면 찾아내는 것만도 쉽지 않을터.
"우리는 여러분들의 아이템도 노략질할수 있습니다. 아이템을 털리고 퀘스트까지 실패하고 싶지않다면 여기서 이만 발걸음을 돌리십시오"
키라는 대놓고 유저들을 협박했다.
게임하는 유저치고 자기 아이템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번에 자칫 몽땅 날릴수 있다는데 쫄지 않고 베기겠는가.
그러나 전혀 쫄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유한이었다.
"입이 뚫렸다고 말은 잘하는군.삼류 자객주제에"
"뭐라고?"
키라의 눈썹이 꿈틀했다.
지존 급 암살자가 아니란건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3류라는 말을 듣고 참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내가틀린말 했나? 어떤 일류 암살자가 '내가 널 죽일게'하고 폼 잡는데? 프로는 진짜 프로답게 구는거야.너같이 자랑하지 못해 안달하는 찌질한 모습 따윈 보이지 않는다고"
"뭐라?"
"이놈이 죽고 싶냐?"
부하들이 발끈하자,키라는 그들을 말렸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렇게 빈정거렸다면 키라는 당장 수리검을 날렸을것이다. 그가 유한이 제멋대로 내뱉도록내버려 둔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그라고했던가? 듣.보.잡 주제에 친절히 충고해 주어서 고맙다"
"곧 유명인사가 될테니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네 이름을 발판 삼아서 내 명성을 높일테니까"
"후후후!정말 건방진 녀석이로군"
실력은 모르지만 말빨은 초고렙수준.
길포드를 긴장 타게만들려던 키라는 오히려 유한에게한방 먹고 물러나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무튼 개전을 알렸으니 이만 물러나지요.부디 다들 생각을 잘하고 앞길을 선택하기 바랍니다."
이말을 마지막으로 키라는 개척대 앞에서 사라졌다.
돌아가는 길에 키라의 두 부하들은 연방 분통을터트려다.길포드를 뒤에 두고 호가호위하던 유한 떄문이었다.
"키라님 ,왜 그놈을 그냥 두신 겁니까?"
"맞습니다. 키라 님 답지 않습니다!"
부하들의 성화에 입을다물고 있던키라가 말문을 열었다.
"그놈은 내 자마다르를 부러트렸다"
길포드를 돕겠다고 유한이날린 일격.
그 일격에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자마다르가 순식간에내구가 반토막 났다.항상 풀 내구를 유지하고 잇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놈은 어쩌면 강한 전사일지 모른다"
키라가 그렇게오해를 한것은 암 브레이크에 대해 아는것이 없었던 탓이다. 거기다 유한과 별 차이가 없던 길포드의 후줄근한 차림새 덕분에 레벨의 고하를 유추할수 없었다.
"설사 레벨이 낮다 해도 평범한 놈이 아닌건 분명해"
길포드 말고 경계해야 할상대가 하나 더 늘었다.
그뿐이다. 카라는 자신들의 승리에 대해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길고짤은건 일단 대봐야 아는 일이지만.............
BY RAYAN